영화 이야기

2016년 5월 2일 월요일

엘비스와 닉슨(Elvis & Nixon)


엘비스와 닉슨이 백악관 집무실에서 마주 앉아 대화를 나누고 있다.

1970년 백악관서 만난 두 사람의 이야기



배꼽 빠지게 우습고 재미있는 이 코미디 드라마는 1970년 엘비스 프레슬리가 백악관의 집무실에서 닉슨 대통령을 만난 사실을 풍부한 상상력을 동원해 만든 일종의 풍자해학 영화로 당시 두 사람이 악수를 하면서 찍은 사진은 지금까지도 사람들의 큰 인기를 받고 있다.
그러나 실제로 두 사람이 참관자 없이 단 둘이 만났을 때의 기록이 없기 때문에 영화에서 일어나는 일은 각본가들과 감독의 자유로운 상상에 의해 일어난 일이다. 서로 닮은 데라곤 하나도 없는 둘이 만나 행동하고 나누는 대사가 기차게 재치 있고 요절복통하게 우스운데 마치 어린 아이들이 장난치듯이 귀엽기까지 하다.
이 아기자기하게 재미있는 짧은 영화(1시간반이 채 못 된다)에서 진짜로 볼만한 것은 엘비스 역의 마이클 섀넌과 닉슨 역의 케빈 스페이시의 연기. 엘비스와 닉슨이 울다 갈 연기로 섀넌의 연기가 약간 과장되긴 했지만 둘이 다 상감이다.
당시 미 젊은 층의 반문화 성향에 적대감을 표하면서 미국이 도덕적으로 타락하고 있다고 믿는 엘비스는 기찬 아이디어를 하나 낸다. 역시 젊은이들의 반문화적 성향을 증오하던 닉슨에게 자기를 연방 법집행자로 임명해 주면 자기가 젊은이들의 반문화 조직 속으로 들어가 이들의 운동을 뒤집어놓겠다는 편지를 쓰기로 한다.
그리고 엘비스는 친구 제리 쉴링(알렉스 페티퍼)과 함께 DC로 날아가 백악관 경비원에게 편지를 직접 전달한다. 이를 전달 받은 사람이 닉슨의 참모인 버드 크로우(탐 행스의 아들 칼린 행스). 버드는 편지를 비서실장인 H.R. 할데만(테이트 도노반)에게 가져가나 할데만으로부터 ‘웃기고 있네’라는 대답을 받는다.
그러나 버드는 닉슨과 엘비스의 만남이 대중문화와는 거리가 멀고 또 젊은 유권자들의 인기를 잃은 닉슨의 표 획득에도 도움이 될 것이라는 사실을 강조, 마침내 처음에 “엘비스 같은 소리하고 있네”라고 비웃던 닉슨이 엘비스를 만나기로 한다. 특히 엘비스 팬인 자기 딸 줄리를 위해 엘비스의 사인을 받겠다는 지극한 부정도 이런 결정에 한 몫 한다.
여기서부터 권총을 소지하고 백악관엘 들어오려는 엘비스에 대한 사전 검문과 함께 그가 닉슨을 만나기 전까지의 과정이 코믹하게 묘사되고 이윽고 엘비스와 닉슨이 집무실에서 만나 악수를 나눈다.
둘의 만남은 완전히 엘비스의 주도로 진행되는데 엘비스를 만나기 전에 참모에게 핑계를 대서 만남을 속히 중단시키라고 지시했던 닉슨이 엘비스의 자유분방한 분위기에 휘말려들면서 면담시간이 자꾸 길어진다. 태권도와 가라테를 배운 엘비스가 닉슨 앞에서 시범을 보여주는 것을 비롯해 요절복통할 장면들이 많다.
이밖에도 재치와 재미를 겸한 에피소드들이 여럿 있다. 섀넌보다 연기를 훨씬 더 잘하는 것은 스페이시. 닉슨의 목소리와 태도와 동작과 제스처를 보면 죽은 닉슨이 되살아난 것 같은 착각에 빠지게 된다. 상소리 잘하던 닉슨의 욕지거리 때문에 등급 R. 라이자 잔슨 감독. 전지역. ★★★★(5개 만점)
                                                             <한국일보 박흥진 편집위원/ hjpark1230@gmail.com> 


국외자들의 무리(Band of Outsiders)


카페에서 ‘매디슨 댄스’를 추는 아르튀르(왼쪽부터), 오딜, 프란츠.

진지하지 않은 범죄 귀여운 로맨스를 다룬 영화



프랑스 누벨 바그의 장인 장-뤽 고다르의 1964년작 갱스터 로맨스 영화로 미풍처럼 상쾌하고 신선하다. 짤막한 대사와 겨울 파리를 찍은 그림 같이 아름다운 촬영(라울 쿠타르) 그리고 경쾌한 음악(미셸 르그랑)이 있는 로맨틱하고 서정적이며 또 비극적 코미디로 정말 매력적이다.  프랑스 영화인들이 즐겨 다루는 ‘메나지 아 트롸’(남녀 삼각관계) 영화이자 미국의 싸구려 펄프소설과 갱영화에 대한 시적 헌사이기도 한데 영화를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와 프란츠 카프카의 만남’이라고 말한 고다르가 해설한다. 
친구인 아르튀르(클로드 브롸세르)와 프란츠(사미 프라이)는 돈도 직업도 장래도 없는 백수건달들. 가진 것이라곤 아르튀르의 작은 컨버터블 하나로 둘은 서부영화 흉내를 내면서 장난을 치는 어른 아이들이다.
어느 날 프란츠는 영어학원에서 꿈꾸는 듯한 눈이 커다란 오딜(안나 카리나-한 때 고다르의 부인이었다)을 만나 친해지면서 오딜을 좋아하게 된다. 그리고 프란츠는 오딜을 아르튀르에게 소개, 두 남자가 다 오딜을 좋아하나 오딜은 아르튀르에게 간다.
그리고 오딜은 둘에게 자기가 살고 있는 파리 교외 이모집에 정체가 수상한 대량의 현찰이 있는 것을 안다며 셋이 이를 털자고 제의한다. 여기에 아르튀르의 삼촌이 개입하면서 배신과 죽음이 잇따른다.
영화에서 멋진 장면은 셋이 카페에서 즉흥적으로 추는 ‘매디슨 댄스’. 이 아름다운 춤 장면은 쿠엔틴 타란티노가 ‘펄프 픽션’에서 잔 트라볼타와 우마 서만으로 하여금 재연케 했다. 그리고 타란티노의 제박사 이름도 이 영화의 프랑스 이름인 ‘Bande a Part’의 영어명 ‘A Band Apart’이다.
또 하나 재미있는 장면은 오딜 일행이 루브르 관람 세계기록을 올리겠다며 함께 미술관의 전시실을 관통해 질주하는 것. 해설이 9분43초라고 알려 준다. 그리고 해설자는 마지막에 오딜과 프란츠의 열대지방에서의 모험을 테크니칼러 속편으로 만들겠다고 약속한다. 물론 이 약속은 공약이 되고 말았다. 갈수록 난해의 극치를 달하는 영화를 만드는 고다르의 청순하고 순진했던 시절의 고운 영화다. 꼭 보시도록. ★★★★★(5개만점)
                                                         <한국일보 박흥진 편집위원/ hjpark1230@gmail.com>



디바의 귀환




청아하고 나긋나긋한 음성을 지닌 프리 마돈나 캐슬린 배틀(67·사진)이 메트로폴리탄 오페라에서 쫓겨난 지 무려 20여년만에 무대로 귀환한다. 그래미 수상자로 메트의 단골이었던 배틀은 지난 1994년 당시 메트의 총감독인 조셉 볼피에 의해 도니제티의 ‘연대의 딸’ 공연 불과 1주 전 해고를 당했었다. 이유는 배틀의 지나친 디바 같은 오만불손한 태도.          
리허설에 늦거나 아예 나타나지도 않고 리허설에서 다른 가수들을 내쫓는가 하면 리허설에서 듀엣을 부를 때는 상대에게 아예 자기 입을 보지 말라고 요구했다. 또 지휘자와의 갈등으로 슈트라우스의 ‘장미의 기사’ 출연을 거부했고 시즌 개막연주를 맡은 보스턴 심포니의 부지휘자에게 입장금지 조치를 취했다고 뉴욕타임스가 보도했다.
그 뒤로 배틀은 오페라 무대를 떠나 리사이틀에 전념했는데 오는 11월13일의 메트 복귀도 ‘캐슬린 배틀: 언더그라운드 레일로드-영적 여정’이라는 제목의 흑인영가 리사이틀로 꾸며진다. 배틀의 메트 복귀를 성사시킨 것은 오랫동안 이를 시도해온 피터 겔브 현 메트 총감독.
흑인인 배틀은 메트 복귀에 대해 “흑인영가는 영혼을 고양시키고 치유하는 능력이 있으며 우리는 지금 이것이 필요한 세상에 살고 있다”면서 “이것은 메트의 찬란한 음향 속에 내 음악적 배경과 문화적 유산을 결합시킬 프로그램”이라며 들떠 있다고 신문은 말했다.
그런데 메트에서 배틀 이전에 먼저 쫓겨난 또 다른 프리 마돈나가 마리아 칼라스다. 불같은 성격을 지녔던 칼라스도 지난 1958년 총감독과의 갈등으로 해고됐다가 1965년에 복귀, 자신의 메트 마지막 공연으로 ‘토스카’를 불렀다. 그런데 볼피는 배틀을 해고할 때 “캐시 배틀은 칼라스가 아니다”라고 말했다고 한다. 볼피는 배틀의 메트 귀환에 대해 “메트에서의 그의 리사이틀을 볼 생각에 기쁘다”고 말했다.
배틀은 1948년 오하이오주 포츠머스에서 철강노동자인 아버지와 아프리칸 감리교회 자원봉사자인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났다. 독창가수가 되기 전 신시내티 초등학교의 음악선생이었던 배틀의 열렬한 후원자는 이번 시즌으로 메트 오케스트라 상임지휘자직을 물러날 제임스 르바인. 르바인은 1977년 배틀이 양치기로 노래 부르며 메트에 데뷔한 바그너의 ‘탄호이저’를 비롯해 배틀의 많은 공연을 지휘했다.
신선하고 정결한 음성으로 자유롭게 음색을 바꿔가면서 노래를 부르는 배틀은 특히 모차르트와 슈트라우스에 능통해 무대에서 뿐만 아니라 이들 노래를 취입한 도이체 그라마폰의 빅 스타가 됐지만 무대 뒤의 갈등 때문에 문제가 많았다. 배틀과 함께 무대에 선 샌프란시스코 오페라의 단원들은 ‘나는 배틀(전투)에서 살아남았다’고 적힌 T셔츠를 입었을 정도였다고 한다.
나는 지금으로부터 20년 전인 1996년 1월 세리토스 공연센터에서 배틀의 리사이틀을 참관한 바 있다. 아름답고 맑고 달콤한 음성으로 기교가 화려한 창법을 구사했던 것으로 기억되는데 그 때 적어둔 기록을 보니 이렇게 써있다.
‘어깨가 활짝 드러난 길고 푸른 드레스를 입고 무대로 천천히 걸어 나오는 그의 모습은 마치 오만한 여왕 같았다. 배틀은 이날 헨델, 볼프, 리스트, 슈트라우스 및 벨리니의 아리아와 가곡들과 함께 흑인영가를 불렀는데 음성처럼 노래하는 얼굴 모습과 제스처도 자극적이리만치 아름답고 자유로웠다.
울며 조르는 듯 간절하다가 두 눈을 감고 으스대 듯 얼굴과 상반신을 앞으로 쑥 밀어내며 노래하는 그의 음성과 자태가 이 세상 것 같지가 않았다. 가는 하복부에서 한 없이 멜로디를 끌어내며 온 몸과 영혼으로 노래를 불렀는데 얼마나 힘이 들었으면 때론 한 곡만 부르고 무대에서 퇴장을 했다. 배틀의 미소는 아이처럼 천진난만하다가도 유혹녀의 그것처럼 고혹적이기도 했다. 두 팔을 높이 들어 춤을 추는 듯 우아하고 표현력 풍부하게 제스처를 써가며 부르는 노래들은 서정미를 지녔을 뿐 아니라 거룩하기까지 했다.
턱을 앞으로 삐죽이 내밀고 마치 물고기와 새처럼 입을 앞으로 동그랗게 오므렸다가 다시 찡그리듯 동그라미를 풀어내면서 부르는 노래들은 한곡 한곡이 피와 땀의 결정들이었다. 배틀은 한곡을 부른 뒤에 청중에게 등을 돌린 채 고개를 숙이고 다음 노래의 분위기를 몸 안으로 흡수하는 모습을 보여 주었다.’
그런데 일부 청중이 노래가 끝나기도 전에 박수를 치자 배틀은 그 쪽을 향해 쏘아보듯이 인상을 쓴 뒤 잠시 있다가 노래를 이어갔던 기억이 난다. 그 표정에 섬뜩했었다. 디바다운 기질이다. 그러나 배틀은 열광하는 청중을 위해 앙코르를 두 곡이나 불렀는데 마지막 노래는 평소 자기가 좋아한다는 흑인영가 ‘귀하신 주님’.                
귀한 경험이었는데 그 후 나는 배틀의 앨범으로 벨리니의 ‘몽유병자’와 도니제티의 ‘돈 파스쿠알레’ 그리고 로시니의 ‘탄크레디’의 아리아들이 담긴 도이체 그라마폰의 ‘벨 칸토’를 사 한동안 애청했었다. ‘웰컴 백 캐슬린!’
                                                         <한국일보 박흥진 편집위원/ hjpark1230@gmail.com>


2016년 4월 27일 수요일

이야기 중의 이야기(Tale of Tales)


임신 못하는 왕비(샐마 하이엑)가 왕이 죽인 바다 괴물을 내려다 보고 있다.


세 왕국에서 벌어지는‘무궁무진한 환상의 세계’


옛날 옛적 먼 나라 성에 임금님과 왕비와 공주와 왕자가 살았으니 하면서 시작되는 할머니가 들려주던 옛날 얘기처럼 고소한 맛이 나는 동화로 상상력이 무궁무진하고 아름답고 재미있고 또 어둡고 겁나는 이탈리아와 프랑스 공동제작 영화다. 
17세기에 쓰여진 나폴리 동화가 원작인데 섹스 신과 무서운 장면이 있어 아주 어린 아이들에게는 적당치 않다.
이웃에 사는 세 나라의 왕과 왕비의 얘기가 오락가락하면서 이어지는데 왕과 왕비뿐 아니라 괴물 같은 인간과 바다괴물에 벼룩과 곡예사 등이 나와 보는 사람을 환상의 세계로 안내한다. 그야말로 이야기 중의 이야기로 총천연색 촬영과 의상과 프로덕션 디자인 그리고 약간 귀기 서린 잔잔한 음악(알렉상드르 데스플라)을 비롯해 미국과 유럽의 유명 스타들의 앙상블 캐스트 등이 다 좋은 얘기 풍성한 작품이다. 
먼저 아기를 못 낳아서 고민하는 왕비(샐마 하이엑)의 얘기. 왕(존 C. 라일리)은 귀신같은 무당이 왕비에게 말해준 임신 비법을 실현키 위해 자살임무나 마찬가지인 해저 괴물의 심장을 꺼내려고 잠수한다. 왕은 임무수행 후 죽는다. 이 심장을 뜯어 먹은 왕비는 그 날로 임신, 이튿날 왕자를 낳는다. 그런데 심장을 요리한 처녀 하녀 역시 요리 연기를 맡고 임신, 왕비와 같은 날 남아를 낳는다. 
두 아이는 모두 피부색소 결핍증의 눈 같이 하얀 머리와 피부를 지녔는데 왕비의 금지령에도 불구하고 둘(크리스티안과 조나 리스)은 없으면 못 사는 형제애로 뭉친다. 이 아이들을 떼어놓기 위해 왕비가 무당말을 들었다가 불상사가 생긴다.
두 번째 얘기는 벼룩을 지극히 사랑하는 왕(토비 존스)과 그의 혼기가 찬 공주(비비 케이프)의 얘기. 자기 피를 먹여 키운 벼룩이 죽자 실의에 빠진 왕이 딸을 시집보내기로 결정, 신랑감을 찾기 위한 퀴즈를 내는데 이를 푼 것이 괴물인간(기욤 드로네이). 공주는 괴물이 사는 암산 꼭대기 동굴에 살면서 죽을 고생을 하다가 줄 타는 곡예사의 도움으로 탈출을 하나…
마지막 얘기는 이 두 얘기 사이에 낀 여자 좋아하는 왕(뱅상 카셀)의 이야기. 왕은 얼굴을 못 본 동네 여자의 아름다운 노래 소리에 반해 여자의 집을 방문하는데 노래를 부른 여자는 얼굴과 온 몸이 쭈글쭈글한 할머니 도라(헤일리 카마이클). 도라는 언니 임마(셜리 헨더슨)와 함께 사는데 마법이 일어나면서 도라가 아름다운 여인으로 변신한다. 이 세 얘기가 서로 교묘하게 연결된다. PG-13. ★★★½ (5개 만점) 
                                                        <한국일보 박흥진 편집위원/ hjpark1230@gmail.com>      


사냥꾼: 겨울 전쟁(The Huntsman: Winter’s War)


사악한 여왕 언니에게 배신당한 프레이아는 얼음여왕(왼쪽)이 된다.

내용도 엉성하고 연기도 어정쩡한 얼어붙은 동화



2012년에 크리스튼 스튜어트가 백설공주로 나온 ‘백설공주와 사냥꾼’의 후속편으로 동화 ‘백설공주’를 제멋대로 변용한 특수효과 위주의 친근감 없는 영화다. 제목처럼 내용과 연기와 배우들의 상호작용이 얼어붙어 동화가 영혼이 빠진 딱딱한 습작문 같다.
특수효과와 프로덕션 디자인 그리고 잘 생긴 배우들과 의상은 구경거리이나 얘기도 엉성하고 연기도 어정쩡한데 특히 주인공이 되어야 할 백설공주는 간 곳이 없고 그 주위의 인물들을 주요 인물로 등장시켜 허전하다. 전형적인 외화내빈의 스튜디오 영화로 배우들이 아깝다.
백설공주의 계모로 수리수리 마수리를 할 줄 아는 사악한 여왕 라베나(샬리즈 테론)에게 착한 여동생 프레이아(에밀리 블런트)가 있는데 라베나가 마법을 써 프레이아의 애인으로 하여금 둘 사이에서 난 아기를 태워 죽이게 한다.
그래서 프레이아는 사랑을 저주하는 얼음여왕이 돼 북쪽에 왕국을 차리고 혼자 살면서 납치해온 아이들로 ‘사냥꾼’이라는 부대를 구성해 지상에서 사랑을 쓸어버리려고 한다. 납치된 아이들 중에 소년 에릭과 소녀 새라가 있는데 둘은 커서 얼음여왕의 명을 어기고 사랑에 빠진다. 이를 본 얼음여왕이 에릭(크리스 헴스워드)과 새라(제시카 채스테인) 사이에 얼음벽을 치고 둘을 갈라놓은 뒤 부하를 시켜 새라를 살해한다.            
그로부터 7년 후. 백설공주(등만 보인다)의 명에 의해 괴물의 손에 들어간 라베나 소유의 마법의 황금거울 회수에 나선 에릭이 자기를 돕는 7~8명의 남자 난쟁이와 두 명의 여자 난쟁이(이 두 여자 난쟁이와 두 명의 남자 난쟁이의 코믹한 콤비가 헴스워드와 채스테인의 그것보다 백배 낫다)와 함께 적을 맞아 칼부림을 하면서 액션이 일어난다.
그런데 이게 웬 일인가. 7년 전에 죽었는 줄 알았던 새라가 살아나 에릭 앞에 나타난다. 에릭은 새라에게 “난 네가 죽는 것을 분명히 봤다. 난 여전히 널 사랑한다”고 호소하나 새라는 “넌 날 버린 배신자다. 난 사랑을 더 이상 안 믿는다”고 억지를 쓴다. 둘이 노는 모습이 아주 어색하다.
그리고 마지막에 라베나와 프레이아의 사생결단의 자매 싸움이 벌어지면서 난리법석이 일어난다. 피곤한 영화다. 세드릭 니콜라스-트로이얀의 연출 솜씨가 무디다.
PG-13. Universal. ★★½(5개 만점) <한국일보 박흥진 편집위원/ hjpark1230@gmail.com>

할리웃의 아시안




올 오스카 남녀 주조연상 후보 20명이 몽땅 백인이어서 ‘오스카는 온통 백색이다’라는 비판을 받았던 할리웃이 이번에는 2편의 메이저 영화에서 주요 아시안 역에 백인을 써 또 다른 구설수에 말려들고 있다.
오는 11월4일에 개봉될 마블작품인 ‘닥터 스트레인지’는 외과의사 스티븐 스트레인지(베네딕 컴버배치)가 자기 계몽과 구제를 찾아 히말라야에 가 티벳인 여도사 에인션트 원 밑에서 수련 후 세상을 보호하는 마법사가 된다는 얘기. 그런데 이 아시안 도사 역을 순백의 틸다 스윈튼이 맡고 있다. 또 내년 3월에 개봉될 패라마운트의 공상과학 액션영화 ‘공각기동대: 고스트 인 더 셸’은 일본의 인기 만화와 영화가 원전으로 여기서 초정밀 기계와도 같은 특수부대 요원 메이저 소령의 본명은 구사나기 모도꼬. 그런데 이 구사나기 역도 역시 순백의 스칼렛 조핸슨이 맡았다. 
할리웃이 아시안 역에 백인배우들을 쓰는 것은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다. 그 중에서도 가장 희극적인 것이 ‘정복자’에서 징기스칸으로 나온 존 웨인. 말론 브랜도도 ‘8월 달의 찻집’에서 찢어진 눈을 한 일본인 통역사로 나온다. 또 폴 뮤니와 루이즈 레이너는 ‘대지’에서 중국인 부부로 나왔다. 그 중에서도 아시안에게 가장 치욕적인 것이 ‘티파니에서 아침을’에서 일본인으로 나온 미키 루니. 큰 뿔테안경에 기모노를 입고 뻐드렁니를 한 루니가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는 모습을 보노라면 같은 아시안으로서 모멸감에 속이 다 메슥거린다.
할리웃은 백색지대여서 오래 전부터 아시안뿐 아니라 흑인과 아메리칸 인디언과 멕시칸 등 소수계 역을 백인배우들이 해왔다. 첫 유성영화 ‘재즈 싱어’에서는 알 졸슨이 얼굴에 검은 칠을 하고 나와 노래를 불렀다. 
백인배우들로 아메리칸 인디언 역을 한 사람들은 록 허드슨, 제프 챈들러, 찰스 브론슨, 버트 랜카스터와 오드리 헵번 및 데브라 패젯 등이 있다. 자니 뎁도 몇년 전에 ‘로운 레인저’에서 아메리칸 인디언 톤토로 나왔다. 백인 수퍼스타로 유명 멕시칸 실제인물 역을 한 것이 말론 브랜도. 그는 ‘비바 사파타!’에서 멕시코의 풍운아 사바타로 나왔다. 
할리웃이 이렇게 제멋대로 피부색을 무시하는 이유는 물론 흥행 때문이다. 막대한 제작비를 투입한 영화에 인기 백인스타가 아닌 아시안을 비롯한 비백인을 썼을 경우 흥행에 실패할 것이 두렵기 때문이다. 요즘 할리웃 흥행 총수입의 70%가 해외시장 몫이다. 특히 그 중에서도 중국과 한국 및 일본 등 아시안 시장에서 벌어들이는 몫이 큰 비중을 차지하는 데도 할리웃은 영화의 중요한 역에 아시안 배우를 쓰는 것을 꺼려하고 있다. 
한국시장이 할리웃의 중요한 판매처로 등장하면서 최근 들어 할리웃은 한국 팬들 나아가서 아시아권 팬들의 비위를 맞추기 위해 동양권에서 잘 알려진 한국 배우들을 더러 쓰고 있다. 대부분 조연이나 단역이지만 아주 가끔 주연으로도 쓴다. 
오래 전에 박중훈이 ‘찰리의 진실’에 조연으로 나왔고 가수 비도 ‘스피드 레이서’와 ‘닌자 어새신’에서 각기 조연과 주연으로 나왔으며 장동건도 ‘워리어스 웨이’에서 주연을 맡았으나 유감스럽게도 이들 영화들은 다 평과 흥행면에서 좋지 않은 반응을 받았다. 
한국 배우가 할리웃 영화에 조연으로 나와 빅히트한 것은 스칼렛 조핸슨이 나온 액션 스릴러 ‘루시’. 여기서 최민식이 킬러 두목으로 나와 칭찬을 받았는데 흥행성공은 물론 조핸슨 탓이다.               
배두나도 2012년 탐 행스가 나온 ‘클라우드 아틀라스’에 조연했으나 이 영화는 평과 흥행이 다 나빴다. 
한국 배우로 명실 공히 국제적 배우의 문턱에 올라선 사람이 이병헌이다. 물론 다 조연이나 그는 ‘G.I. 조’ ‘레드 2’ ‘터미네이터 제니시스’ 및 ‘미스칸덕트’ 등 여러 편의 할리웃 영화에 꾸준히 출연하고 있다. 그의 할리웃 영화로 지금 기대되고 있는 것이 오는 9월23일에 개봉될 웨스턴 ‘황야의 7인’. 이 영화는 율 브린너와 스티브 매퀸이 니온 동명영화의 리메이크로 원작은 구로사와 아끼라의 ‘7인의 사무라이’. 안트완 후콰가 감독하는 리메이크에는 덴젤 워싱턴과 이산 호크 등이 나오는데 이병헌은 검은 옷차림의 건맨 빌리 락스(사진)로 나온다.   
할리웃의 아시아계 배우 홀대에도 불구하고 한 가지 고무적인 현상은 한국계 미국인 배우들이 타 아시안들보다 유난히 많이 할리웃에서 활약하고 있다는 사실. 마가렛 조, 켄 정, 릭 윤, 윌 윤 리, 성 강, 스티븐 연, 랜달 박, 존 조, C.S. 리, 대니얼 대 김, 그레이스 박, 샌드라 오, 제이미 정, 그레타 리 등 외에도 많은 배우들이 영화와 TV에서 활동하고 있다.      
할리웃이 비백인 역에 백인을 쓸 때마다 내세우는 말이 “배역 선정은 색맹이다”라는 것. 그런데 이 말은 소위 유색인종 역에 백인배우를 쓸 때만 적용되는 일방통행용이다. 할리웃은 언제나 백색이기 때문이다.  
                                         <한국일보 박흥진 편집위원/ hjpark1230@gmail.com>



2016년 4월 19일 화요일

정글 북(The Jungle Book)


늑대소년 모글리와 꿀 중독에 걸린 곰 발루가 정글여행을 하고 있다.


디즈니의 정글 북…컴퓨터로 새롭게 탄생


컴퓨터로 만든 정글과 거기서 사는 온갖 동물들이 진짜보다 더 진짜 같이 아름답고 장엄하고 수려하며 또 움직이고 살아 숨 쉬는 이 디즈니 만화영화는 디즈니가 지난 1967년에 만든 만화영화의 신판인데 3-D로 보는 시각효과가 믿을 수가 없을 정도로 완벽해 혀를 찰 지경이다.  
영화의 또 다른 재미는 동물들의 대사를 말하는 배우들의 음성연기. 처음에는 좀 이상하게 들리나 시간이 가면서 귀에 익숙해진다. 영화의 약점이 있다면 모두가 너무 잘 아는 얘기라는 것과 플롯의 무게가 시각미를 제대로 따라가지 못하고 있는 점.
온 가족이 같이 즐겁게 볼 수 있는 정글 속의 늑대소년 모글리의 모험과 액션영화로 영화의 원작은 영국 작가 루디야드 키플링의 동명소설. 모글리 얘기는 지난 1942년에는 사부 주연으로 라이브 액션영화로도 만들어졌는데 만인필견의 명작이다.
그런데 모글리 얘기는 현재 워너 브라더스에 의해 크리스천 베일, 케이트 블랜쳇 및 베네딕 컴버배치 등이 나오는 라이브 액션영화로 만들어지고 있는데 감독은 ‘반지의 제왕’에서 골룸 역을 맡은 앤디 서키스. 서키스는 감독과 함께 모글리의 정글친구인 곰 발루로 나온다. 2017년 10월 개봉 예정.  
카메라가 유연한 동작으로 정글의 생태계를 자세하게 묘사하면서 고아소년으로 늑대가 키운 모글리(닐 세티-인도계 미국 소년으로 2,000여명의 웅모자 중에서 뽑았다. 나긋나긋하고 날렵한 동작과 연기를 아주 잘 하는데 다소 지나치게 어른스러운 것이 흠이다)의 보호자인 검은 표범 바기라(벤 킹슬리의 음성)의 해설로 영화가 진행된다.
정글은 모든 동물들이 평화공존하는 지상낙원. 이런 평화를 무시하고 자기가 정글의 왕이 되려고 성질을 부리는 못된 짐승이 호랑이 시어 칸(이드리스 엘바). 
특히 시어 칸은 인간인 모글리를 싫어하는데 그래서 둘은 적으로 마지막에 사생결단의 격투를 벌인다. 시어 칸 외에 정글의 평화공존에 대해 별로 호의적이지 못한 것이 나무에 사는 거대한 뱀 카(스칼렛 조핸슨).
바기라가 모글리가 이젠 인간세계로 돌아갈 때가 됐다고 결정, 처음에는 이에 반대하던 모글리를 인간세상으로 돌려보내기 위해 둘이 함께 험한 정글여정을 진행하면서 모글리는 각종 동물들을 만나고 또 모험과 액션을 겪게 된다. 
먼저 만나는 것이 영화의 코미디 쉼표를 하는 장난기 심한 곰 발루(빌 머리). 모글리가 꿀이라면 사족을 못 쓰는 발루에게 꿀을 제공하면서 둘은 친구기 된다. 그리고 발루는 1967년 영화에 나온 노래 ‘베어 네세시티즈’(The Bare Necessities)를 신나게 부른다. 이어 모글리는 원숭이떼들에게 납치돼 버려진 고도에 사는 흉측하게 큰 오랑우탕 킹 루이(크리스토퍼 월큰) 앞으로 끌려간다. 킹 루이가 모글리에게 원하는 것은 ‘빨간 꽃’ 즉 불이다.  
마침내 모글리는 인간세계에 도착하는데 과연 그가 정글가족을 버리고 인간세계로 돌아갈까요 아니면 정글로 되돌아갈까요. 재미있고 즐거운 영화로 컴퓨터 정글 속에서 유일한 살아 있는 짐승인 인간 소년과 컴퓨터 동물들이 물에 물 섞이듯이 자유롭게 대화하고 교감하고 또 행동하는 시각효과야 말로 경이롭기만 하다. 존 홰브로(‘셰프’) 감독. PG. ★★★½ (5개 만점)
                                                <한국일보 박흥진 편집위원/ hjpark1230@gma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