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이야기

2016년 2월 16일 화요일

데드풀(Deadpool)


가면을 쓴 데드풀이 고속도로 상에서 쌍칼을 휘두르고 있다.

상스럽고 야하고 거친 마블만화의 새로운 수퍼히로


웃어야 할지 울어야 할지 좋아해야 할지 말아야 할지 모를 상스럽고 야하고 거칠고 음탕하고 폭력적이고 잔인무도하며 시끄럽기 짝이 없는 액션영화인데 아이언 맨 등 많은 수퍼히로들을 창조해낸 마블만화가 원전이다. 보통 이런 영화는 등급 PG-13(13세 미만 관람 때 부모의 적극적 안내가 필요함)인데 이 영화는 도가 지나치게 폭력적인 데다가 나체와 섹스 농담과 대사가 눈과 귀를 씻어내야 할 정도로 노골적이고 저급해 R등급(17세 미만 관람 때 부모나 성인의 동반이 필요함)을 받았다.
절대적으로 젊은 마블만화 팬들의 영화이긴 하지만 섹스와 폭력과 야한 농담을 즐기는 어른들이 봐도 궁극적으로는 재미있을 영화다. 시종일관 자기비하적인 유머가 많아 피가 철철 넘쳐흐르는 폭력에 눈살을 찌푸리다가도 깔깔대고 웃게 되는데 이와 함께 대사와 영화 흐름의 속도가 총알처럼 빨라 보는 사람의 혼을 홀딱 뺏어간다. 
특히 이 영화는 ‘X-멘: 오리진’(2009)에서 이미 암살자인 데드풀 노릇을 한 라이언 레널즈의 교활하고 정력적인 연기가 볼만하다. 레널즈는 이 영화를 만들려고 지난 11년간을 벼르다가 이제야 목표를 이뤘는데 자신은 물론이요 마블만화의 모든 주인공 그리고 팝문화 등을 닥치는 대로 조소하고 야유하면서 반 영웅노릇을 신나게 즐기고 있다. 
영화의 내용이라야 그동안 듣고 보고 또 보고 듣고 한 구태의연한 것이다. 오프닝 크레딧부터 얄궂고 장난치듯이 시작하는 영화는 처음부터 눈알이 돌아가는 고속도로 위에서의 액션장면으로 시작된다. 몸에 꼭 끼는 적과 흑색의 스판덱스 복장에 가면을 쓴 데드풀이 쌍칼과 쌍권총 그리고 자신의 육체를 총동원해 자기를 습격하는 괴한들과 싸우는 이 장면이 가히 장관이다. 계속해 농담을 지껄이는 무모하고 뻔뻔스런 데드풀이 하늘을 펄펄 날며 공중제비를 하면서 괴한들을 때려잡는데 데드풀은 총을 맞아도 안 죽는 수퍼히로다.
여기서 영화는 2년 전으로 돌아간다. 웨이드 윌슨(레널즈)은 전직 특공대 출신의 건달로 단골 싸구려 바에서 만난 자기 신세를 비탄해 하는 창녀 바네사(브라질 태생의 모레나 바카린)와 눈이 맞아 그 즉시로 격렬한 섹스를 하는데 변태적인 섹스 신을 몽타주 한 장면이 또한 가관이다. 웨이드와 바네사는 그 후 죽고 못 사는 연인 사이가 되는데 웨이드가 바네사에게 구혼을 한지 얼마 안 돼 웨이드가 치명적인 암에 걸린다. 의사가 얼마 못 산다고 통고한다.
이 때 웨이드 앞에 미친 과학자 스타일의 에이잭스(에드 스크레인)가 나타나 자신이 개발한 특수기계로 그를 불사의 싸우는 기계로 만들어주겠다고 제의한다. 그래서 윌슨은 바네사도 버리고 에이잭스를 찾아가는데 변신의 과정에서 불상사가 일어 웨이드는 불사의 싸우는 기계가 되긴 하나 얼굴이 완전히 맷돌로 갈아놓은 빈대떡처럼 된다. 그래서 가면을 쓴 것이다.
그리고 자기를 데드풀로 명명한 윌슨은 자기를 이 꼴로 만들어놓은 에이잭스에게 복수를 하려고 이를 간다. 이런 데드풀을 돕는 두 명의 동지가 금속 거인 콜로서스와 반항적인 10대 소녀 네가소닉 틴에이지 워헤드(브리아나 힐데브랜드). 그리고 이들의 적수는 에이잭스의 졸개인 여전사 에인절 더스트(실제 종합무술 챔피언인 지나 카라노). 시작된 지 좀 지나서야 영화 안으로 몰입할 수가 있다. 히트할 것 같은데 그렇게 되면 물론 속편이 나올 것이다. 팀 밀러 감독. Fox. 전지역. ★★★(5개 만점)  <한국일보 박흥진 편집위원/ hjpark1230@gmail.com>

전쟁(A War)


클라우스가 재판정에서 아내와 딸과 포옹하고 있다.

아프간 전쟁 다룬 덴마크 영화


아프간 전쟁을 다룬 덴마크 영화로 이번 오스카 외국어 영화상 후보작이다. 전장과 고향의 집을 오락가락하면서 진행되는 이 영화는 ‘우리의 목숨과 그들의 목숨의 가치’를 묻는 도덕적 얘기로 전쟁의 혼돈과 후유증을 사려 깊고 긴장감 가득하게 그린 준수한 작품이다. 
전장에서 내린 결정과 그것의 치명적인 효과에 관한 내용인데 죄의식과 책임감과 함께 짙은 가족애를 매우 사실적이자 강력하게 그린 작품으로 손으로 들고 찍은 촬영과 배우들의 꾸밈없는 연기가 좋다. 기록영화 스타일의 영화로 감독 토비아스 린트홀름(각본 겸)은 리얼리즘을 위해 실제 덴마크 군인들과 탈리반 전사들 그리고 난민들을 배우로 썼다. 
아프간 전선에 투입된 덴마크군 소대장 클라우스 M. 페더센(필루 아스백)의 부대는 지역 주민들의 안전을 키기는 것이 임무다. 처음에 이 부대가 겪는 충격적인 상실과 함께 클라우스가 고향에 있는 아내 마리아(투바 노보트니)에게 전화를 거는 장면으로 시작된다. 그리고 영화는 후반에 들어가기 전까지 전선과 고향을 왕래하면서 클라우스만이 아니라 집에서 혼자 세 아이를 키워야 하는 마리아의 ‘투쟁’을 교차해 보여준다.
어느 날 클라우스와 대원들이 평상적인 순찰을 나갔다가 적의 맹렬한 집중사격을 받는다. 그리고 여기서 클라우스의 부대원이 부상을 당한다. 적의 공격으로 부상자를 이송할 수가 없게 된 클라우스는 부하를 살리기 위해 공습을 요청한다. 그런데 문제가 여기서 생긴다.
아군의 공습이 끝나면서 적과 함께 무고한 인명이 희생을 당한 것이다. 클라우스는 민간인이 피해를 입을 것 같으면 절대로 공습을 요청해서는 안 되는데도 성급히 공습을 요청해 민간인이 피해를 입은 것에 대한 책임추궁을 당할 입장이 된 것이다.
여기서부터 영화는 고국으로 송환돼 재판에 회부된 클라우스의 재판과 함께 그와 가족 간의 드라마로 연결된다. 클라우스의 전우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진행되는 이 재판과정이 전투 신보다 더 긴장감 있고 마음을 초조하게 만든다.
최근에 개봉돼 흥해서 실패한 마이클 베이 감독의 ‘13시간’이나 벤 애플렉이 나와 빅히트를 한 ‘스나이퍼’가 전쟁을 감각적으로 윤색한 것과 달리 철저히 사실적으로 전장에서의 결정과 그것의 후유증 그리고 생명의 가치를 물은 훌륭한 영화다. R. Magnolia. 로열극장과 선댄스 선셋 시네마. ★★★★(5개 만점)  <한국일보 박흥진 편집위원/ hjpark1230@gmail.com>

말러의 아다지에토



사랑을 하면 모두 시인이 된다고 하더니 폴과 에스테르가 각기 대학생과 여고생 때 만나 사랑에 빠진 10년간 서로 나눈 연애편지의 내용이 구구절절이 시다. 폴이 에스테르에게 ‘너의 존재는 내게 너무 크다. 마치 산처럼’이라고 고백했을 때 폴에게 에스테르의 존재는 무중력의 무게였을 것이다. 
폴과 에스테르는 오는 3월18일에 개봉될 프랑스의 아르노 데스플르샹 감독의 ‘나의 황금시절’(My Golden Years)의 주인공들로 둘을 보고 있자니 이젠 내게서 멀리 떠난 청춘의 탐스러움에 가슴이 터질 것 같다. 아, 청춘은 아름다워라!
오는 14일은 그동안 게을리 하던 고백성사를 하듯이 사랑하는 사람에게 편지를 쓰는 밸런타인스 데이다. 초컬릿보다 더 달콤한 것이 러브 레터다. 매시브 어택이 ‘패라다이스 서커스’에서 노래했듯이 ‘사랑은 그것을 가장 크게 느끼는 사람에겐 죄와도 같아서’ 사랑은 고백을 해야 속이 풀리게 마련이다. 
요즘은 인터넷 세상이어서 아마 이번 밸런타인스 데이에도 많은 사람들이 컴퓨터로 러브 레터를 주고받을 것이 뻔하다. 그러나 러브 레터는 잉크에 펜을 찍어 종이에 적어야 감정이 제대로 호흡한다. 
빅토리아(제니퍼 존스)가 얼굴도 모르는 알란(조셉 카튼)에게 사랑에 빠진 것도 알란이 이렇게 써서 보낸 편지 탓이다. 영화 ‘러브 레터스’(Love Letters·1945)의 주인공 알란은 2차 대전 때 이탈리아 전선에서 전우인 로저를 대신해 로저의 여자 빅토리아에게 연애편지를 보낸다. 빅토리아는 순전히 이 편지 때문에 로저와 결혼하는데 그러니까 빅토리아가 사랑한 남자는 로저가 아니라 알란이다.
‘러브 레터스’는 통속적인 여성 취향의 신파극으로 내용보다 아름다운 것은 빅터 영이 작곡해 오스카상을 탄 주제가다. ‘나는 줄마다 다 외우고 있어요/나는 당신이 사인한 이름에 키스를 하지요/달링, 그리고 난 다시 처음부터 읽어요/바로 당신의 마음으로부터 온 사랑의 편지들을’. 이 노래는 엘비스 프레슬리와 에타 제임스 그리고 딕 헤임스와 냇 킹 코울 등 많은 가수들이 불렀다.
‘러브 레터스’는 프랑스의 에드몽 로스탕이 쓴 희곡 ‘시라노 드 벨즈락’이 원전이다. 코가 너무 큰 검객시인 시라노는 눌변의 크리스티앙을 위해 그가 사랑하는 록산에게 뜨거운 연서를 보내고 어둠 속 록산의 발코니 아래서 사랑의 고백을 유수처럼 쏟아놓는다. 록산은 나중에 가서야 자기가 사랑한 남자가 시라노였음을 깨닫지만 때는 이미 늦었다. 연극은 비극인데 미국영화는 해피엔딩이다. 시라노 얘기는 여러 번 영화로 만들어졌는데 그 중에서 좋은 것은 각기 호세 퍼러(시라노로 오스카 주연상 수상)와 제라르 드파르디외가 주연한 것과 스티브 마틴이 나온 현대판 시라노 ‘록산’이다.
러브 레터라기보다 회한과 미련과 그리움의 자기 고백이라고 해야 할 편지를 쓴 여자가 리사다. 리사(조운 폰테인)는 비극적으로 아름다운 ‘모르는 여인의 편지’(Letter from an Unknown Woman·1948)의 주인공이디. 슈테판 즈바이크의 중편소설이 원작으로 틴에이저인 리사는 비엔나의 같은 아파트에 이사 온 핸섬한 콘서트 피아니스트 슈테판(루이 주르단)을 본 뒤 평생 그를 사랑하게 된다. 
리사는 성장해서도 슈테판을 사랑해 그의 아들까지 낳지만 슈테판은 오랜 세월 동안 몇 차례 리사와 관계를 맺으면서도 리사를 전연 기억 못한다. 그리고 리사는 죽음의 병상에서 자신의 변치 않는 슈테판에 대한 사랑을 적는다. 편지는 리사가 죽은 뒤 슈테판에게 전달된다.
그리고 유부녀 레즐리(베티 데이비스)가 윌리엄 와일러가 감독한 ‘편지’(The Letter 1940-서머셋 모음의 연극이 원전)에서 질투에 눈이 멀어 총으로 쏴 죽인 자기 정부 제프에게 보낸 편지도 러브 레터라고 하겠다.   
연애편지를 모래 속에 손가락으로 쓴 것도 있다. 팻 분은 ‘러브 레터스 인 더 샌드’에서 ‘우리가 함께 모래 속에 쓴 러브 레터를 물결이 쓸어갈 때마다 난 울었는데 당신은 웃었다’면서 ‘지금은 파도가 모래 속에 쓴 편지 위로 부서질 때마다 내 찢어진 가슴이 고통한다’고 징징 우는 소리를 한다. 그런데 분의 음성이 너무 달콤하고 고와서 나는 이 상심의 노래를 들어도 별로 가슴이 안 아프다.
그러나 뭐니 뭐니 해도 이 세상에서 가장 로맨틱한 러브 레터는 구스타프 말러가 자기 아내가 된 알마(사진)에게 보낸 음악편지일 것이다. 말러는 교향곡 제5번의 제4악장 아다지에토를 알마에게 보내는 연서로 작곡했다. 10분 정도 계속되는 이 악장은 매우 느린데 말러의 비탄에 가까운 동경과 사랑이 천상의 것처럼 고결하고 아름답게 음표로 쓰여졌다. 이 음악은 루키노 비스콘티의 ‘베니스에서의 죽음’(Death in Venice·1971)에서 스산할 정도로 아름답게 사용됐다. 해피 밸런타인스 데이!  
                                                              <한국일보 박흥진 편집위원/ hjpark1230@gmail.com>


2016년 2월 9일 화요일

시저 만세(Hail, Caeser)


로마 장군역을 맡은 약간 멍청한 빅스타 베어드(조지 클루니).

1950년대 할리웃 배우들의 스캔들 해결사 이야기


1950년대의 할리웃에 대한 그리움과 함께 스튜디오의 이면을 풍자한 조엘과 이산 코엔 형제 감독(각본 겸)의 코미디인데 ‘화고’와 ‘노 컨트리 포 올드 멘’ 같은 수작을 만든 둘의 영화치곤 지극히 펑퍼짐한 오발탄과도 같은 영화다.
드문드문 우습긴 하지만 중구난방 식인데 주제와 함께 너무 많은 서브플롯을 이것저것 마구 섞어 잡탕이 됐다. 할리웃의 옛날 영화에 대한 지식이 없는 사람들 특히 외국인들에겐 낯설기 짝이 없을 것이다.
과거 코엔 형제와 함께 3편의 영화를 만든 조지 클루니가 조연으로 나오는데 그가 나왔던 역시 황당무계한 코미디 ‘오 형제여, 당신은 어디에 있는가’와 같은 스타일의 영화다. 클루니 외에도 조시 브롤린, 스칼렛 조핸슨, 채닝 테이텀, 레이프 화인즈, 프랜시스 맥도먼, 틸다 스윈튼 및 조나 힐 등 기라성 같은 배우들이 소모된 셈이다.
주인공은 영화사 캐피톨 픽처스에서 영화제작과 스타들의 문제들을 해결해 주는 에디 매닉스(브롤린). 그는 미혼 여배우의 임신에서부터 배우들의 온갖 스캔들을 가십지에 보도(가십 칼럼니스트로 스윈튼이 라이벌 쌍둥이 자매로 나와 재미있는 연기를 한다)가 안 되도록 하는 해결사다. 그런데 그는 열렬한 가톨릭 신자여서 1주일이 멀다하고 성당엘 찾아가 고백성사를 드리는 바람에 신부로부터 너무 자주 온다고 핀잔을 받는다.
캐피톨이 촬영 중인 예수영화 ‘시저 만세! 그리스도 이야기’에서 로마 장군으로 나오는 약간 멍청한 빅스타 베어드 위틀락(클루니-베어드는 ‘쿼바디스’의 로버트 테일러와 ‘성의’의 리처드 버튼을 짬뽕한 인상이다)이 공산주의자들인 각본가들에 의해 납치되면서 10만달러의 몸값 청구서가 영화사로 날아든다. 그리고 베어드는 납치범들의 교육에 의해 세뇌가 되는데 이들 각본가들의 얘기는 과거 할리웃에 몰아닥친 미 연방 의회의 공산당 때려잡기 광풍을 묘사한 것이다.
그리고 에디가 영화의 흥행성공을 위해 기독교 신교와 구교 및 유대교 대표들을 소집해 각본에 하자가 없는지를 알기 위해 회의를 하는 것도 옛 할리웃에서 있었던 일이다.  
이와 함께 서브플롯으로 왕년의 ‘수영복의 미녀’ 에스터 윌리엄스를 재현한 입 건 여배우 디애나 모란(조핸슨)이 남편도 없이 임신하는 바람에 에디는 이 문제를 해결하느라 골치를 썩인다. 또 다른 얘기는 ‘싱잉 카우보이’(로이 로저스라고 생각하면 된다)로 스턴트는 잘 하나 진짜 연기는 못하는 젊은 배우 호비 도일(앨든 에렌라익)을 도도한 감독 로렌스 로렌츠(화인즈)가 연출하는 응접실 코미디 ‘메릴리 위 댄스’에 주연으로 잘못 발탁해 코미디가 일어난다.  
마지막 다른 얘기는 탭댄스를 추고 노래 부르는 배우 버트 거니(진짜로 춤을 잘 추는 채닝이 잘한다)가 해군복을 입고 노래 ‘노 데임즈’를 부르면서 동료들과 함께 신나게 탭댄스를 추는 모습. 이 장면은 진 켈리가 나온 뮤지컬 ‘온 더 타운’에 대한 찬미다.
그리고 영화는 흐지부지 식으로 끝이 나는데 세트와 촬영과 의상은 보기 좋다. 클루니의 자기비하적인 연기와 에린라익의 엉성한 연기가 볼만하다. PG-13. Universal. 전지역. ★★★(5개 만점)
                                               <한국일보 박흥진 편집위원/ hjpark1230@gmail.com>

램스(Rams)


동네 수양치기들이 우수수양 선발대회에 나왔다


아이슬란드 시골서 수양들을 키우는 앙숙지간 형제


 눈보라가 몰아치는 삭막한 아이슬란드 시골에서 수양들을 치는 앙숙지간인 나이 먹은 형제의 갈등과 궁극적 화해 그리고 이들의 자부심인 수양들을 기르고 다듬으면서 한 가족처럼 사랑하는 단순한 이야기를 매우 소박하면서도 정감 가득하게 그린 아이슬란드 드라마다.
심술궂은 유머와 함께 고립된 시골 사람들의 힘든 하루하루를 사실적으로 그렸는데 드라마와 코미디 그리고 비극(클라이맥스 부분으로 애매모호하게 끝난다)을 고루 잘 섞어 흥미 있다. 특히 이 영화는 겨울눈으로 덮인 정경이 살벌하게 아름다운데 이와 함께 수양들도 사람 못지않은 몫을 한다. 
아이슬란드 깡촌에서 수양들을 키우면서 사는 둘 다 결혼을 안 한 형 키디(테오도어 율리우손)와 동생 굼미(시구르두르 시구르욘슨)는 바로 이웃에 살면서도 지난 40년간을 말을 안 하고 지낸 사이다. 이들의 통신수단은 키디의 개로 서로 할 말이 있으면 종이에 그 내용을 적어 개를 통해 전달한다.
키디는 술꾼이요 무뚝뚝하고 사나운 반면 굼미는 술 안 마시는 이성적이요 부지런한 사람인데 이들은 자기들이 키우고 다듬는 수양들을 자기 자식처럼 사랑한다. 그런데 연례 우수 수양선발대회에서 뜻밖에도 키디가 우승하면서 굼미는 크게 실망한다.
이어 마을에 수양들에게 치명적인 전염병이 창궐하면서 보건 당국은 온 동네의 수양들을 다 살육하라고 지시한다. 그리고 이로 인해 내용에 극적 기폭이 일어난다. 이에 굼미는 자기 수양들을 다 살육하나 키디는 못한다고 아우성을 친다. 그러나 그도 당국의 지시를 따를 수밖에 없다.
그러나 굼미는 자기가 가장 아끼는 수양 몇 마리를 죽이지 않고 자기 집 지하실에 우리를 만들어 놓고 키운다. 굼미가 조사 나온 보건소 직원에게 이를 들키지 않으려고 애쓰는 모습이 안쓰럽게 우습다. 그러나 키디가 동생의 비밀을 알아낸다. 그리고 둘은 이 때부터 서로 간의 앙심을 조금씩 풀고 공동으로 쿰미의 양들을 보호하기 위해 총력을 기울인다.
둘은 수양들을 더 이상 집안에 가둘 수가 없게 되자 이들을 몰고 심한 눈보라가 몰아치는 산꼭대기로 수양들의 은신처를 구해 간다. 지척을 분간할 수 없도록 폭설이 몰아치는 가운데 밤이 되면서 형제는 생존의 위협을 받는다. 마지막 장면이 가슴을 울컥하게 만든다.
나이 먹은 두 주인공들이 별로 말도 많이 하지 않고 눈과 얼굴 표정으로 흙냄새가 나는 연기를 뛰어나게 한다. 촬영과 음악도 좋다. 성인용. 일부 지역. ★★★½(5개만점)
                                                  <한국일보 박흥진 편집위원/ hjpark1230@gmail.com>


스즈키 세이준 회고전


‘짐승 같은 청춘’


액션, 무질서 그리고 대담무쌍‘컬트영화에 독보적 감독’


반세기의 생애를 통해 흥행위주의 B영화에서부터 형이상학적 미스터리에 이르기까지 자신만의 독특한 파격적인 영화들을 만들어 컬트영화 감독의 독보적인 위치를 차지하고 있는 일본의 스즈키 세이준 감독(92)의 영화들이‘액션, 무질서 그리고 대담무쌍:스즈키 세이준 회고전’(Action, Anarchy and Audacity: A Seijun Suzuki Retrospective)라는 제목 하에  5일부터 3월13일까지 해머뮤지엄 내 빌리 와일더 극장(윌셔와 웨스트우드)에서 2편씩 동시 상영된다. (310)206-8013.
그의 전성기인 1960년대 영화들은 야쿠자(조 시시도가 그의 단골배우)와 화류계 여성 그리고 부패한 경찰과 방황하는 청춘들의 얘기로 이들의 드라마를 과거의 스타일을 파괴, 자유롭고 혁신적이요 몽환적이며 때로는 전위적인 기법으로 다루고 있다. 그래서 ‘터무니없는 영화를 만든다’는 이유로 전속사인 니카츠로부터 해고를 당했다. 
그의 영화는 1990년대 해외의 새 세대 영화인들에 의해 재발견되면서 스즈키는 이들의 우상이 되다시피 했는데 짐 자무쉬와 쿠엔틴 타란티노 등이 그의 추종자들이다. 스즈키는 2000년대에 들어와서도 새 기술을 이용해 2편의 영화를 만들었다. 독특한 기법과 스타일로 흥미진진한 영화를 만든 감독으로 완전히 신경지에 들어선 경험을 맛보게 될 것이다. 

*2월5일(하오 7시30분)
▲ ‘살인의 표적’(Branded to Kill·1967)-밥 짓는 냄새에 성적 충동을 느끼는 암살자가 살인에 실패하면서 거꾸로 자기가 살해 표적이 된다. ▲ ‘짐승 같은 청춘’(Youth of the Beast·1963)-오명을 쓴 경찰이 자기 파트너의 죽음에 복수키 위해 라이벌 야쿠자끼리 서로 싸우게 만든다.

*6일(하오 7시30분)
▲ ‘도쿄 낭인’(Tokyo Drifter·1966)-개과천선한 야쿠자가 자신의 과거 동료들을 피해 도주한다. 주인공이 노래 부르는 일종의 뮤지컬로 격투장면이 만화적이다. ▲ ‘격투 비가’(Fighting Elegy·1966)-자기가 하숙하는 집의 순결한 가톨릭 신자인 딸을 사모하는 고교생이 싸움으로 육적 욕망을 달랜다.

*8일(하오 7시30분)
▲ ‘간토 낭인’(Kanto Wanderer·1963)-야쿠자 두목의 바디가드가 자기 두목에 대한 신변보호와 자신의 과거로부터 나타난 팜므 파탈 사이에서 번뇌한다. ▲ ‘피가 부른다’(The Call of Blood·1964)-각기 야쿠자요 광고회사 직원인 형제가 야쿠자였던 아버지의 죽음을 복수한다.

*12일(하오 7시30분)
▲ ‘육체의 문’(Gate of Flesh·1964)-전후 파괴된 건물을 거처로 활동하는 창녀들의 피도 눈물도 없는 생존경쟁. ▲ ‘창녀의 이야기’(Story of Prostitute·1965)-일본의 만주 침공 때 위안부로 끌려간 7명의 위안부들의 이야기로 군국주의에 대한 맹렬한 비판.

*13일(하오 7시30분)
▲ ‘문신의 인생’(Tattooed Life· 1965)-각기 미술학도와 야쿠자인 형제가 야쿠자의 임무수행이 빗나가면서 함께 도주한다. ▲ ‘카와치의 카르멘’(Carem from Kawachi·1966)-오페라 ‘카르멘’을 모방한 이야기로 도시에서 가수로 성공하려는 시골여자의 파란만장한 삶.

*21일(하오 7시) 
▲ ‘피스톨 오페라’(Pistol Opera·2001)-‘실인의 표적’의 속편으로 액션이 콩 튀듯 한다. ▲ ‘비탄과 슬픔의 이야기’(A Tale of Sorrow and Sadness·1977)-프로골퍼로 성공한 여자 모델이 협박자에게 시달린다.

*22일(하오 7시30분)
▲ ‘암흑에로의 여권’(Passport to Darkness·1959)-신혼여행 때 살해된 아내의 살인자를 찾아 헤매는 트럼본 연주자의 필름 느와르. ▲ ‘공포의 8시간’(Eight Hours of Fear·1957)-경찰이 호송하는 살인자를 비롯해 산사태에 갇힌 기차 승객들이 버스를 타고 시골길을 따라가면서 신경전이 일어난다.

*27일(하오 7시30분)
▲ ‘잠자는 야수’(The Sleeping Beast Within·1960)-해외여행에서 돌아온 후 실종된 사업가 아버지를 찾기 위해 사업가의 딸에게 고용된 신문기자가 실종의 배후에 마약밀매와 살인이 연관된 것을 발견한다. ▲ ‘O라인 분쇄’(Smashing the O-Line·1960)-특종을 위해서라면 누구라도 팔아먹는 기자가 무자비한 여자 갱 두목에 의해 자기 여동생이 납치되면서 곤경에 처한다. 
                                                             <한국일보 박흥진 편집위원/ hjpark1230@gmail.com>

‘액션의 사나이’




영화인이라기보다 대쪽 같은 선비 스타일인 한국 영화계의 대부 정창화 감독(사진)을 내가 존경하고 좋아하는 이유는 우리 둘이 다 영화를 정열적으로 사랑하는 만년 ‘영화청년’이기 때문이다. 정 감독의 이런 영화에 대한 정열은 그가 최근 펴낸 자신의 영화인생 회고록이자 한국 영화의 증언인 책 ‘액션의 사나이’(The Man of Action)의 부제 ‘내 영화인생은 아직 치열하다’에서 잘 나타나 있다.
‘액션’은 정 감독의 이름표와도 같다. 그는 대사위주의 느린 속도의 멜로드라마인 ‘신파영화’  위주의 초창기 한국 영화에 속도와 리드미컬한 템포를 동원한 액션영화의 장르를 구축한 개척자다. 정 감독이 액션영화를 만들기로 결심하게 된 것은 조지 스티븐스가 감독한 웨스턴 ‘셰인’을 보고나서였다.
그는 이 영화의 빠른 템포와 속도를 배우기 위해 영화를 상영하는 단성사의 사장을 몇 차례나 찾아가 사정사정해 필름의 일부를 빌려다 밤을 새우며 수없이 보면서 공부했다. 정 감독은 노력파다. 그래서 만든 영화가 ‘햇빛 쏟아지는 벌판’(1960)으로 이 영화는 한국 최초의 본격적인 액션영화다.
‘자유만세’를 만든 최인규 감독의 밑에서 처음에는 깡통에 담은 설렁탕을 배달하면서 영화수업을 한 정 감독은 홍성기와 신상옥과 함께 초기 한국 영화계의 삼총사로 활약했는데 그의 문하생들로는 임권택, 유현목, 강대진 감독 등이 있다. 정 감독의 또 다른 초기 액션영화들로는 ‘노다지’ ‘지평선’ ‘사르빈강에 노을이 지다’ 등이 있다. 그의 모토는 늘 대중에게 재미있는 영화를 보여주겠다는 것이었는데 이 같은 뜻을 제대로 이해 못하던 평단에 대해 아쉬움을 표하고 있다.
‘창의성’이 화두인 정 감독은 액션에만 매달리지는 않았다. 늘 새로운 것을 추구하던 그는 현대물, 청춘물, 사극, 검객영화 및 멜로드라마 등 다양한 장르의 영화를 만들면서 1960년대 한국 영화에 활기를 불어 넣었었다.
그러나 역시 그의 장기가 액션이니 만큼 정 감독의 솜씨를 눈여겨보던 홍콩의 쇼 브라더스의 란란 쇼 사장의 초청으로 1976년 홍콩으로 진출한다. 쇼 브라더스에 입성한 정 감독은 승부욕이 강해 자기를 ‘외인부대’ 취급하는 영화사의 토박이 감독들보다 나은 영화를 만들기 위해 쇼 브라더스의 작품을 무려 100여편을 보면서 숙지했다. 그가 홍콩에서 만든 첫 영화가 액션이 멋진 ‘천면마녀’(1969)로 빅 히트를 했는데 홍콩 영화로서는 처음으로 유럽으로 수출되는 기록을 남겼다.
이어 정 감독은 홍콩 최초의 무협영화인 ‘여협매인두’와 ‘아랑곡’ 및 ‘래여풍’ 등을 만들면서 홍콩 영화계에 발판을 굳혔다. ‘여협매인두’(1970)에는 당시 19세였던 성룡이 엑스트라로 나왔는데 그 때부터 성룡은 장난기가 심했다고 한다.
정 감독의 이름을 세계적으로 알려주게 된 영화가 로레이와 남석훈이 나온 무술영화 ‘죽음의 다섯 손가락’(Five Fingers of Death·1972)이다. 이 영화는 홍콩 영화 최초로 워너 브라더스에 의해 미국에 수입돼 개봉 첫 주말 흥행 1위를 차지했다. 같은 주말에 개봉된 기라성 같은 할리웃 스타들이 나온 해양 재난영화 ‘포세이돈 어드벤처’를 제치고 흥행 1위를 했다는 것이야말로 쾌거라고 하겠다. ‘죽음의 다섯 손가락’은 쿠엔틴 타란티노 감독의 올타임 베스트 텐 중의 하나로 그는 자신의 액션영화 ‘킬 빌’에서 이 영화의 장면을 빌려다 오마지 형식으로 쓰기도 했다.
정 감독은 다시 새로운 것을 찾아 쇼 브라더스에서 자기와 함께 일한 제작자 레이먼드 차우가 새로 만든 영화사 골든 하베스트로 몸을 옮겼다. 골든 하베스트는 이소룡이 나온 ‘당산대형’과 ‘정무문’을 만든 회사다. 정 감독은 당시 이소룡이 자기를 찾아와 영화를 함께 만들자고 제의, 기획단계에 들어갔었는데 갑자기 이소룡이 사망했다고 회고했다.
정 감독이 10년간의 홍콩생활을 마감하고 귀국한 것은 당시 군사정권의 권유에 의해서였다. 귀국 후 화풍흥업이라는 영화사를 설립, 작품활동을 해보려고 했으나 창작의 자유가 제한돼 심한 좌절감에 빠졌다. 특히 당시 이영희 공연윤리위원장의 전횡에 시달려야 했다고 한다.
심신이 피로해진 자신을 안타깝게 여기던 아내의 권유에 따라 정 감독은 1996년 미국으로 이주, 남가주 샌디에고 인근의 라호야에 자리를 잡고 은둔생활에 들어갔다. 정 감독의 영화인으로서의 삶이 뒤 늦게 부활하게 된 것은 지난 2003년 부산국제영화제 때 그의 회고전이 열리면서였다. 이어 칸과 홍콩 및 런던 등지에서 정 감독의 회고전과 함께 그의 영화인생이 재조명되면서 그는 지금 ‘제2의 영화인생’을 살고 있다. 정 감독은 현재 샌디에고 한국영화제 집행위원장으로서 꺼질줄 모르는 영화에 대한 열정을 불사르고 있다.                
                                                     <한국일보 박흥진 편집위원/ hjpark1230@gma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