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이야기

2016년 1월 4일 월요일

헤이트풀 에잇(The Hateful Eight)


바운티 헌터 존(왼쪽)이 또다른 바운티 헌터 마키스 소령을 총으로 맞고 있다.

폭력과 유혈·잔인함이 뒤죽박죽 가학적 쾌감 느끼는 영화


선혈과 잔인무도 그리고 폭력과 상소리가 무성한 말이 많은 영화를 기차게 잘 만드는 감독이 쿠엔틴 타란티노다. 옛날 영화를 모르는 것이 없어 자기 영화에 옛날 것들을 빌려다 쓰기로도 유명하지만 그는 정말로 뛰어난 각본가요 감독이다.
그런데 어쩌자고 그런 타란티노가 이런 쓸데없는 잔소리들을 늘어놓는 차마 눈 뜨고 볼 수 없을 정도로 유혈낭자하고 무의미한 영화를 만들었는지 알다가도 모를 일이다. 타란티노는 본인 자신도 말을 속사포 쏘듯이 청산유수로 쏟아내는데 영화에 나오는 앙상블 캐스트들이 되지도 않는 소리들을 계속해 주절대는 바람에 사람 피곤하다.
말과 폭력과 유혈과 잔인함이 모두 과도·과다한 뒤죽박죽 영화로 별 내용도 없는데 타란티노가 옛날 로드무비 식으로 필름을 사용해 70mm로 찍은 데다가 서주와 중간 휴게시간마저 있는 상영시간 3시간7분짜리여서 큰 화제가 되고 있다. 그러나 내용이 거의 전부 폭설에 휩싸인 역마차 휴게소 안의 테이블 주위에서 전개돼 왜 그런 노고를 했을까 하고 의문이 간다.
영화는 후반부에 가서 끔찍하고 포악한 폭력이 일어나기 전까지는 별 폭력 없이 마치 아가사 크리스티의 ‘덴 데어 워 논’처럼 알쏭달쏭한 추리물을 연상케 만들었는데 따라서 아가사 크리스티 웨스턴이요 설원의 스파게티 웨스턴이라고도 하겠다.
또 이 영화는 첫 장면부터 존 포드가 감독하고 존 웨인이 나온 웨스턴 ‘역마차’를 연상시키는데 복수심에 불타는 주인공과 함께 역마차 휴게소 안에서 ’를 그대로 본 땄다.
‘역마차’에 대한 피와 폭력의 헌사라고 하겠다. 여기에다 타란티노의 또 다른 유혈이 낭자한 폭력영화 ‘저수지의 개들’도 닮았으니 타란티노는 자기 것과 남의 것을 마구 뒤섞은 짜고 맵기만 하지 제 맛이 안 나는 짬뽕을 한 사발 내놓은 셈이다.
엔니오 모리코네(‘황야의 무법자’ 음악)의 으스스하게 아름다운 음악이 흐르는 가운데 멀리서 눈밭을 가로지르며 달려오는 멋있는 첫 장면을 보면서 기대가 컸었다. 때는 남북전쟁 직후. 장소는 와이오밍주. 마차 안에는 레드락에서 사형이 집행될 흉악범 여죄수 데이지(제니퍼 제이슨 리)를 호송하는 바운티 헌터 존(커트 러셀)이 타고 있다. 곧 이어 마차는 북군 베테런인 또 다른 바운티 헌터 마키스 소령(새뮤얼 L. 잭슨)과 그가 사살한 무법자의 사체 2구를 태운다. 이어 레드락의 새 셰리프라고 자신을 소개하는 크리스(월터 고긴스)를 태우는데 아무리 봐도 크리스는 셰리프 같질 않다.
마차는 ‘미니의 휴게소’에 도착하고 폭설이 쏟아지면서 출발이 지연된다. 밥(데미안 비치르)이 주인인 휴게소 안에는 남군 장교 샌디(브루스 던)와 덩지가 큰 카우보이 조(마이클 맷슨)와 말 많은 영국인 오스왈도(팀 로스)가 먼저 와 있다. 8번째 인물인 조디(채닝 테이텀)는 영화 거의 끝에 가서 나온다. 이들이 각자 한 마디씩 하는데 털어놓은 말 어딘가에 무언가를 숨겨 놓은 것 같은 느낌이 든다. 도대체 이들의 정체가 무엇일까. 슬슬 궁금증이 끓기 시작한다.
후반부에 접어들어 폭력이 난무하고 피가 튀고 사체가 쌓이면서 마키스 소령에 의해 ‘미니의 휴게소’에 연관된 과거가 회상식으로 전개되면서 휴게소 안의 인물들의 정체가 양파껍질 벗겨지듯이 벗겨진다. 8명의 남자들 중 유일한 여자인 데이지가 죽을 고생을 하는데 이 건 완전히 여성학대다. 이와 함께 N자 상소리가 범람한다. 타란티노가 배우들을 폭력의 제물로 삼으면서 그들과 함께 영화를 보는 관객들마저 학대하면서 혼자 가학적 쾌감을 느끼는 영화다. 앙상블 캐스트의 연기는 볼만하다. R. Weinstein. 전지역. ★★½(5개 만점)
                                                   <한국일보 박흥진 편집위원/ hjpark1230@gmail.com>

조이(Joy)


조이는‘기적의 걸레’를 고안, 백만장자가 된다.

 ‘기적의 걸레’조이 망가노의 실화… 로렌스 연기 일품


이야기꾼의 재주를 지닌 각본가 겸 감독 데이빗 O. 러셀이 다시 앙상블 캐스트를 사용해 만든 ‘미국인의 성공’ 코미디 드라마인데 그의 다른 영화들과 달리 이번에는 플롯이 산만한데다가 같은 내용을 반복하고 있으며 기라성 같은 배우들을 소모품처럼 다루고 있어 드문드문 재미가 있지만 전체적으론 실패작이다.
손으로 짜지 않아도 되는 ‘기적의 걸레’를 비롯해 자질구레한 가정용 도구를 여러 개 고안해 백만장자가 된 조이 망가노의 실화로 러셀의 ‘실버 리이닝스 플레이북’과 ‘아메리칸 허슬’에 나온 제니퍼 로렌스가 주연하는데 이 영화에서 볼만한 것은 로렌스의 카리스마 있는 연기다.
로렌스 외에 로버트 드 니로, 브래들리 쿠퍼, 이사벨라 로셀리니, 다이앤 래드, 버지니아 맷슨 및 에드가 라미레스 등이 나오지만 이들은 산산조각이 난 얘기처럼 뿔뿔이 개별적으로 행동하면서 별 신통치도 않은 대사를 반복해 남발하고 있다.
조이는 어렸을 때부터 무에서 유를 고안해 내는데 특별한 재주를 지녔다. 고등학교도 우등으로 졸업할 정도로 똑똑한 아이인데도 대학을 안 가고 엄마 캐리(맷슨)를 버리고 새 여자를 찾아간 아버지 루디(드 니로)의 고철장사의 경리사원으로 일한다. 캐리는 하구한날 침대에 누워 소프 오페라를 보는 것이 취미.
조이는 가수 지망생인 백수 라티노 토니(라미레스)와 결혼해 아이를 둘 낳고 이혼을 했는데 토니는 아직도 조이 집 지하실에서 산다. 그런데 루디가 동거하던 여자한테서 쫓겨나면서 조이 집으로 짐을 싸들고 들어온다. 이런 난장판 집안의 기둥과 같은 사람이 조이인데 이해 난감한 것은 조이가 모든 사람에게 다 친절하고 상냥하며 집을 위해 자신을 아낌없이 희생한다는 점. 천사와도 같은 여자다.
그런데 조이가 어느 날 걸레질을 하다가 아이디어를 얻어 고안해낸 것이 ‘기적의 걸레’. 아이디어는 있으나 제품생산 자본이 없어 고민인데 돈을 대는 여자가 루디의 새 애인으로 죽은 남편한테서 유산을 물려받은 트루디(로셀리니). ‘기적의 걸레’를 만든 조이는 견본을 들고 그 때 막 시작한 홈샤핑 TV 채널 QVC의 사장 닐(쿠퍼)을 찾아간다.
그러나 TV에서 ‘기적의 걸레’를 소개하는 사람이 사용법을 몰라 크게 실패한다. 이에 굴하지 않고 조이는 다시 닐을 찾아가 자기가 직접 쇼에 나가 시범을 보이겠다고 졸라 닐의 허락을 받는다. 그리고 ‘기적의 걸레’가 빅 히트를 한다. 얘기는 여기서 끝나지 않고 공연히 시간을 낭비해 가면서 조이의 후일담을 늘어놓는데 사족이다. 조이의 콩가루 집안처럼 얘기나 인물들이 제각각 튀는 콩가루 같은 영화다, PG-13. Fox. 전지역. ★★★(5개만점)
                                                              <한국일보 박흥진 편집위원/ hjpark1230@gmail.com>


대통령이 될 뻔했던 지휘자




1991년부터 2002년까지 11년간 뉴욕 필을 이끌며 이 세계 굴지의 교향악단의 오랜 연주 태도인 날이 선 외형미에 대한 치중을 지양하고 보다 따스하고 쾌적한 소리를 만들어낸 상임지휘자 쿠르트 마주어(Kurt Masur·사진)가 지난달 19일 코네티컷주 그리니치에서 88세로 타계했다. 마주어는 주빈 메이타의 바톤을 이어 받아 뉴욕 필을 맡은 이래 이 교향악단과 청중을 크게 변화시켰다는 평가를 받았다. 뉴욕 필은 웅장하고 윤곽이 뚜렷한 음악을 창조하는 악단이면서도 단원들의 성질이 까다로운 데다가 콧대가 높아 지휘자를 산 채로 잡아먹는다는 소리를 들었다.
음악 전문가들은 마주어가 뉴욕 필의 지휘자가 되면서 작품의 감정을 물 흐르듯 함으로써 작품이 스스로 숨 쉬고 노래하도록 고전음악의 전통적 의미를 되찾아 주었다고 평가한다. 즉 그는 모든 음표가 다 들리도록 허락함으로써 작품이 스스로 소리를 내게 하고 자연스러운 색채와 무게를 찾도록 했다는 것이다. 이와 함께 ‘고약한 자들’로 알려졌던 단원들로 하여금 인간성을 서로 보다 가깝게 연결시켜주는 음악의 힘을 깨닫게 만들어 주었다고 LA타임스가 현 뉴욕필의 상임지휘자인 알란 길버트의 말을 인용해 보도했다.  
마주어는 지휘자로서 뿐 아니라 인도주의자로서도 세인들의 칭송을 받았다. 현재 폴란드 땅인 브리크에서 출생한 그는 특히 동독 땅이었던 라이프치히와 깊은 관계를 맺고 있다. 라이프치히 음대에서 피아노와 작곡과 지휘를 공부한 마주어는 1970년부터 1996년까지 무려 26년간 세계적인 교향악단인 라이프치히 게반트하우스 오케스트라의 상임지휘자를 역임했다. 그런데  멘델스존도 이 오케스트라의 지휘자였다.
마주어는 1989년 10월 라이프치히에서 대규모 민주화 시위가 일어났을 때 이를 저지하려고 출동한 진압군과 민중 간의 유혈사태를 막은 ‘라이프치히 6명’ 중 한 사람이다. 마주어는 그 때 시위군중과 진압군 양측 모두에게 평온과 대화를 촉구하는 성명서를 라디오로 방송, 피가 흐르는 것을 막을 수가 있었다.
결국 라이프치히 시위 한 달 후 동독은 서독과의 국경을 개방했고 그 이듬해 독일 통일을 보았으니 마주어는 통독의 영웅이라고 해도 되겠다. 독일이 통일되자 마주어는 축하곡으로 베토벤의 교향곡 제9번을 연주했다. 그리고 통독 후 새 대통령 후보로 마주어의 이름이 거론되기도 했으나 그는 이를 거절했다. 그러니까 마주어는 독일 대통령이 될 뻔했던 사람이다.  
마주어가 2012년 뉴욕 필을 떠난 것은 타의에 의해서다. 당시 막강한 힘을 지녔던 뉴욕 필의 대표로 진취적인 데보라 보다(현 LA 필 대표)에 의해 쫓겨난 셈이다. 이유는 마주어가 베토벤과 브람스와 브루크너 같은 독일과 오스트리아의 정통 고전 낭만파 음악가들을 좋아한 반면 현대음악을 기피했기 때문으로 알려졌다. 그의 후임은 로린 마젤.
보다와 마주어의 대결은 지금 서울서 벌어지고 있는 서울시향의 예술감독 정명훈의 재임명을 둘러싼 논란을 연상케 만든다. 1년여 전에 정명훈과 시향대표였던 박현정 간에 세력다툼이 일어나 박현정이 물러났는데 지금 이 사건이 다시 도져 지난해로 끝난 정명훈의 예술감독직 재임명이 일단 보류된 상태다.
클래시컬 음악은 고상하고 거룩하며 또 순수하나 그것을 연주하는 교향악단의 지휘자와 단원들과 교향악단 관계자들 간의 세력다툼과 함께 섹스와 드럭과 술이 범람하는 막후 광경은 그야말로 아수라장이라고 한다. 이런 사정을 코믹하고 흥미진진하며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것이 현재 방영되고 있는 아마존의 30분짜리 드라마 ‘정글 속의 모차르트’(Mozart in the Jungle)이다. 이 드라마는 뉴욕 심포니의 아이 같고 야단스럽지만 천재적인 멕시칸 지휘자 로드리고 데 수자(가엘 가르시아 베르날)와 이사장 글로리아(버나뎃 피터스) 그리고 단원들과 후원자 및 주변 인물들과의 관계를 그렸는데 로드리고의 모델은 베네수엘라 태생의 두다멜이다. 그리고 글로리아도 보다를 닮은데가 있다.
두다멜과 베르날은 둘 다 라티노인 데다가 서로 작달막한 키까지 닮았는데 베르날이 두다멜의 지휘를 그대로 흉내 내고 있어 드라마에서 베르날 즉 로드리고가 지휘하는 모습을 보면 자연 두다멜의 모습이 떠오르곤 한다.
시리즈는 현재 제2 시즌이 방영 중으로 시즌 첫 에피소드에는 할리웃보울과 함께 두다멜이 캐미오로 나왔다. 나는 지난 8월 이 에피소드를 찍을 때 보울 무대 뒤에서 두다멜과 베르날을 만나 인터뷰를 했는데 둘이 나란하 서서 웃고 얘기하는 모습이 마치 정다운 형제 같았다.
나는 마주어가 지휘하는 뉴욕 필의 연주를 1998년 연말에 오렌지카운티 공연예술센터에서 들은 적이 있다. 당시 연주곡목은 리햐르트 슈트라우스의 교향시 ‘돈 환’과 ‘죽음과 변용’ 그리고 쇼스타코비치의 교향곡 제5번이었다. 독일 사람답게 큰 체구에 인자한 얼굴의 산타클로스처럼 생긴 마주어는 극히 절제된 제스처로 아름다운 화음을 빚어 나로 하여금 음들의 해심에 잠기게 만들었었다. LA 필의 소리보다 폭과 감촉이 깊고 짙었던 것으로 기억된다.
                                              <한국일보 박흥진 편집위원/ hjpark1230@gmail.com>


2015년 12월 29일 화요일

‘45 Years’의 샬롯 램플링




“배우로서 정의 내릴 수 없는 마음의 상태 표현하고 싶었다”


"유럽은 형태보다 내용을… 미국은 변화 두려워 하는 것 같아
자신을 나무라는 것 우리가 할 수 있는 가장 좋지 않은 일"


드라마‘45년’(45 Years-영화평 참조)에서 결혼생활 45년만에 자신이 남편 제프(탐 코트니)의 죽은 옛 연인 카티아의 그림자 속에서 살았다는 사실을 알게 된 아내 케이트 역을 조용하면서도 강렬하게 표현, 올해 베를린 영화제서 주연여우상을 탄 영국의 베테런 스타 샬롯 램플링(69)과의 인터뷰가 최근 웨스트할리웃의 할리웃 외신기자협회(HFPA) 사무실에서 있었다. 우아하게 세월을 받아들인 귀부인 티가 나는 램플링은 단정히 앉아 가끔 유머를 구사하면서   물음에 차분히 대답을 했는데 삶의 예지가 가득한 여자라는 인상을 받았다. 겸손하면서도 위엄이 있었는데 눈매가 매서운 눈을 가늘게 뜨고 미소를 지을 때는 싸늘한 매력을 발산했다. 오래 전부터 스크린을 통해 연모하다시피 한 여인이어서 인터뷰 후 사진을 찍을 때 두 손을 꼭 잡고 “반갑다”고 말했더니 램플링은 “댕큐”라며 엷은 미소를 지었다.              

 -영화는 결혼 속의 비밀에 관한 얘기인데 당신은 이 문제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가.
“사실 제프의 옛 여자는 비밀은 아니다. 그저 새로 만난 케이트에게 제프가 자신의 옛 여자에 대해 상세한 얘기를 안 했을 뿐이다. 그러다 시간이 갔을 뿐이다. 케이트도 제프가 여자가 있었고 그녀가 죽었다는 것은 알고 있다. 그러나 그 여자의 문제가 완전히 해결되지 못한 채 둘 사이의 관계 속에 가라앉아 있다가 뒤늦게 그 여자의 사체가 냉동상태로 발견됐다는 편지가 날아들면서 과거의 상처가 다시 도진 것이다.”

-그러나 케이트는 뒤늦게 남편이 평생을 옛 여자에 대한 정열을 간직하고 살았다는 것을 알게 되지 않았는가.
“그렇게 간단히 얘기할 영화가 아니다. 케이트는 만약 카티아가 살았더라면 남편이 그녀와 결혼했을 것인가 또 카티아와 자기 둘 중에 누가 더 남편을 사랑했을까와 같은 어떻게 보면 사소한 의문에 시달리고 있다. 이 영화는 이렇게 이성적이지 않은 것에 바탕을 둔 얘기여서 더 사무친다.”

-영화의 어떤 점이 좋아 출연했는가.
“인물들의 내적 언어의 강렬성과 배우로서 정의 내릴 수 없는 마음의 상태를 연기해 보고 싶었다. 아주 연약한 얘기를 연기로 표현해 관객을 사로잡는 도전에 응하고 싶었다.”

-당신은 영화 속에서나 실물이 다 화장을 짙게 안 한 아름다운 모습인데 할리웃 배우들은 화장 안 하고는 못 견디는 사람들이다. 유럽 여배우와 할리웃 여배우의 차이가 무엇인가.
“유럽은 늘 형태보다 내용을 더 중요시해 왔다고 여긴다. 문학서적 속에 깊이 잠기고 싶을 때 우리는 어떤 예쁜 형태를 찾지 않고 책 내용의 깊이를 진실로 이해하려고 하지 않는가. 이런 점이 미국과 다른 것이다. 미국은 변화를 두려워하는 것 같다. 변화는 성형수술로 막아지는 것이 아니다. 난 늘 내 모양을 바꾸지 않고 인간으로서 영화를 통해 사람들을 나의 여정에 함께 동반시킬 수 있다면 얼마나 흥미 있겠는가 하고 생각해 왔다. 앞으로도 그럴 것이며 이 영화가 바로 그런 큰 도전이다.”
결혼 45주년을 맞은 제프(왼쪽)와 케이트의 삶이 편지 한 통으로 혼란에 휩싸인다.

-만약 영화 속 일이 당신에게 실제로 일어난다면 어떻게 하겠는가. 남편을 떠나겠는가 아니면 남편 곁에 있으면서 의혹과 고뇌에 시달리겠는가.
“카티아는 제프의 큰 과거일 뿐으로 제프는 사실 케이트를 사랑하고 그녀와 함께 살고 싶어 한다. 영화는 케이트 개인의 여정이라고 하겠다. 왜 그녀가 그렇게 큰 혼란과 격동 속에 빠져 들게 되었는가를 묻는. 케이트는 결코 제프를 안 떠날 것이다. 영화는 그런 것보다 훨씬 더 실존적인 문제를 제시하고 있다. 영화는 남편의 죽은 옛 여인의 얘기라기보다 삶의 위기에 관한 것으로 봐야 한다. 그것은 우리가 다 겪는 것으로 이 영화가 본 사람들에게 깊은 영향을 미친 까닭도 거기에 있다.”

-당신은 멋있고 훌륭한 생애를 살았는데 돌이켜 봐 후회하는 일이라도 있는지.
“있지만 난 별로 과거를 돌아보질 않는다. 내가 과거에 한 일들은 그것이 내 최선이었기 때문에 난 결코 후회하질 않는다. 자신을 나무라는 것이야 말로 우리가 할 수 있는 가장 좋지 않은 일 중의 하나다. 이 건 내 아버지의 가르침이다. 난 내가 한 일의 결과이기 때문이다.”

-당신의 옛날 영화를 보는가.
“안 본다.”

-당신은 국가로부터 작위를 받았는데 소감이 어떤가.
“의식은 치렀지만 유감스럽게도 여왕은 못 만났다. 난 여행을 많이 하기 때문에 지정 일에 런던에 있을 수가 없어 나중에 내가 살고 있는 파리에서 주불 영국대사로부터 받았다. 작위 받아 참 기쁘다.”

-당신은 대부분 비극적이거나 음울한 역을 자주하는데 왜 그런가.
“반드시 그런 것은 아니나 그런 역들이 가장 강렬한 역임에는 틀림없다. 그런 역을 할 때면 역에 배우로서 연결되는 것이 아니라 인간으로서 연결되기 때문에 탐구하기에 흥미를 느낀다.”

-젊었을 때 본 것들 중 당신에게 가장 강한 영향을 준 영화는 무엇인가.
“배우로서는 캐서린 헵번의 영화들이다. 나도 그녀와 같은 혼과 질을 지녀 헵번이 나온 영화와 같은 것에 나오고 싶어도 이젠 더 이상 그런 영화를 만들지 않는다. 그녀의 영화 중 기억에 뚜렷한 것은 ‘아프리카의 여왕’과 ‘필라델피아 이야기’ 및 ‘베이비 키우기’다.”

-남자와의 관계에서 배운 점은 무엇인가.
“이 영화처럼 내일 무슨 일이 일어날지 모른다는 것이다.”

-누가 탐을 당신 상대로 골랐는가.
“나와 감독 앤드루 헤이다. 난 탐을 전에 잘 몰랐지만 이 영화에서 함께 일하기를 학수고대 했었다. 그래서 그가 출연을 승낙한 뒤에는 그가 날 사랑하도록 온갖 노력을 다했다.”

-한 때 연기를 포기하려고 했다는 말을 들었는데.
“깊은 침체에 빠져 그런 생각을 했었다. 그러나 보다시피 이렇게 돌아왔다. 난 늘 가는 데까지 가서야 나 자신을 구원하는 경향이 있는데 절벽에서 뛰어내릴 필요는 없으나 그런 위기의식을 느낄 필요는 있다.”  

-여성의 힘은 어디서 나온다고 보는가.
“그것은 스스로가 개발해야 한다. 누구도 그것을 당신에게 줄 수가 없다. 그것은 하느님이 준 것이라고도 생각하지 않는다. 스스로 안에서 개발해 사용해야 한다. 여성의 성적인 힘은 대단히 강력한 내적 요소로 우리가 얻고자 하는 것을 취하는데 매우 유용한 것이다. 그러나 조심하지 않으면 그것에 당신이 휩쓸려 갈 수 있기 때문에 겸손하게 써야 한다.”

-한 사람이 동시에 두 사람을 사랑할 수 있다고 보는가.
“그렇다. 둘을 사랑은 할 수 있으나 오직 한 사람에게만 충실할 수가 있다. 그러나 충실하다는 것과 사랑은 다르다. 한 사람에게 전적으로 충실하면서도 다른 사람을 사랑할 수 있다. 적어도 내 경험에 따르면.”

-사랑하는 상대에게 상처를 줄 수 있는 말은 안 하는 것이 좋다고 보는가.
“말은 정말 조심해서 해야 한다. 난 말이 무섭다. 좋지 않은 말은 비수 같아서 진짜로 상처를 남긴다.”

-이 영화에선 다른 영화에선 좀처럼 보기 힘든 나이 먹은 사람들의 섹스신이 있는데 나이 먹은 배우로선 그런 연기를 하기가 거북한가.
“성적이란 것은 젊었을 때만 아름다운 것이다. 배우로서 섹스 신을 할 수는 있으나 내가 그런 연기를 하는 것을 보고 싶지는 않다. 난 나이 먹은 사람들을 사랑하긴 하나 어떤 것은 별로 보기가 좋지 않은 것도 사실이다.”      

-당신이 부엌에서 콧노래로 부른 플래터즈의 ‘스모크 겟츠 인 유어 아이즈’를 평소에도 좋아하는가.
“난 그 노래 사랑한다. 우리의 결혼 45주년 파티가 열리는 마지막 장면에서도 그 노래에 맞춰 나와 탐을 비롯해 모두가 춤을 추는데 영혼과 직접 연결되는 느낌을 경험했다.”

-보통 때의 삶은 어떤가.
“남들과 마찬가지다. 배우라고 해서 남들과 다를 것이 없다. 우리도 보통 사람들이다.”

-당신이 폴 뉴만과 공연한 ‘평결’ 이후 모두들 당신이 할리웃의 수퍼스타가 될 것이라고 말했는데도 당신은 유럽으로 돌아갔는데 이유가 무엇인가.
“이 곳에선 매우 위협감을 느꼈기 때문에 자발적으로 돌아갔다. 매우 두려웠다. 여기가 내 세상이 아니어서 행복할 수가 없다고 느꼈기 때문이다.”        
                                                                <한국일보 박흥진 편집위원/ hjpark1230@gmail.com>

2015년 12월 28일 월요일

레버넌트(The Revenant)


휴(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가 동료 사냥꾼에게 북수하려고 설원을 걷고 있다.

생존의 몸부림과 복수… 디카프리오의 처절한 연기


이것이야 말로 위대한 영화제작이다. 방대한 스케일과 내장을 끄집어내 씹고 생살을 깎아내는 것 같은 쓰고 고통스런 생존의 몸부림과 복수, 폭과 깊이가 대하 서사적으로 장엄하고 아름다운 영상미 그리고 불길하고 우울한 음악(사카모토 류이치와 알바 노토) 및 처절한 연기 등이 마치 명필가의 거대한 붓이 일필휘지로 쓴 것 같은 연출력에 의해 극단적으로 생생하게 표현된 걸작이다.
지난해에 ‘버드맨’으로 오스카 감독상을 탄 알레한드로 G. 이나리투(공동 각본)의 영화로 실제 있었던 모피사냥꾼의 사건을 바탕으로 캐나다의 캘거리와 아르헨티나에서 찍었는데 마치 영화 속의 복수심에 불타는 주인공처럼 이를 득득 갈면서 죽기를 각오하고 만든 것 같은 절박감과 치열한 작품 욕심이 느껴져 고개가 숙여진다. 
가차 없고 잔혹한 실존적 웨스턴이기도 한데 눈 덮인 광활한 동토에서 살아남기 위해 대장정을 하면서 겪는 주인공이 겪는 견디어내기 힘든 조건과 상황 그리고 폭력이 너무나 노골적으로 참혹하고 끔찍해 영화를 보다가 중간에 나가는 사람들이 있을 정도다.     
1823년 록키산 지역에서 캡튼 앤드루 헨리(돔날 글리슨)의 지휘 하에 모피사냥을 하던 휴 글래스(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 등 사냥꾼 일행이 포니 인디언들에 의해 기습을 당하는 장면으로 시작되는데 장시간 진행되는 이 기습장면의 속도감과 공포와 잔인성 및 혼란이 감관을 유린하는 것 같은 카메라에 의해 박진감 있게 포착된다. 그런데 휴는 한 때 포니들과 함께 살면서 원주민과 결혼하고 아들까지 낳은 사냥꾼으로 지역 지리에 대해 정통하다.
겨울이 다가오면서 사냥꾼들은 철수를 시작하는데 숲 속에서 혼자 휴식을 취하던 휴가 거대한 어미 곰에 의해 습격을 받아 빈사의 지경에 이른다. 
특수효과로 처리된 이 곰의 습격장면은 영화사에 길이 남을 것으로 너무 생생해 진짜로 곰에게 물리고 발톱에 찢기고 밟히는 것 같은 현실감을 느끼게 된다(감독은 어떻게 찍었는지 밝히질 않는다.)
들것에 실려 운반되던 휴를 날씨와 험한 지형 때문에 더 이상 운반할 수 없게 되자 앤드루는 사이코 같은 성질을 지닌 탐욕스런 존(탐 하디)과 양심적인 젊은 짐(윌 풀터)에게 휴가 죽으면 제대로 매장을 하라고 지시하고 나머지 대원들을 이끌고 요새를 향해 떠난다. 그러나 얼마 후 존은 짐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휴를 거의 생매장하다시피 한 뒤 버리고 떠난다.
여기서 살아남은 휴가 처음에는 벌벌 기어 다니면서 먹고 마실 것을 찾아다니다가 기운을 차리고 나무 지팡이에 의존한 채 존에게 복수를 하기 위해 설원과 산을 걷고 타고 넘고 급류에 휩쓸려 떠내려가면서 집요하게 목적지를 향해 간다. 이 과정에서 휴는 거의 초인적 인내와  생존본능으로 온갖 위험과 고통을 극복한다. 특히 경악할 장면은 그가 얼어 죽지 않으려고 죽은 말의 내장을 손으로 꺼낸 뒤 말 속에 드러누워 혹한을 피하는 모습.
마침내 휴는 요새에 도착, 존의 행위를 폭로하나 존이 도주하면서 휴는 이번에는 달아난 존을 잡기 위해 다시 혼자 설원으로 떠난다. 
자연광을 이용한 에마누엘 루베즈키의 촬영이 물 흐르듯 하고 급박한데 휴가 말을 탄 채 절벽 아래로 떨어지는 장면을 비롯해 경탄을 금치 못할 장면들이 많다. 내용이 간단한 영화에서 디카프리오는 별로 말을 많이 안 하는데 두꺼운 동물털가죽을 입고 텁수룩한 수염에 장발을 한 채 입안으로 웅얼대면서 강렬한 눈매와 사로잡힌 얼굴 표정으로 필사적인 연기를 한다. 상영시간 2시간36분. R. Fox. 아크라이트(선셋과 바인)와 랜드마크(피코와 웨스트우드). ★★★★1/2(5개 만점)
                                                  <한국일보 박흥진 편집위원/ hjpark1230@gmail.com>

45 Years


케이트(오른쪽)는 제프의 되살아난 과거 때문에 갈등한다.

    과거의 그림자 속 삶에 격변을 겪는 노부부


아내인 당신이 결혼생활 45년만에 여태껏 남편의 죽은 옛 여자 그림자 속에서 살아 왔다는 것을 깊이 의심하게 된다면 과연 당신은 이에 어떻게 감정적으로나 정신적으로 대처하겠는가. ‘아, 나는 여지껏 헛 살았구나’ 하고 깨닫게 된다면 말이다. 2인극이나 다름없는 이 조용하나 안으로 격한 감정과 의혹과 좌절 그리고 분노가 소용돌이치는 영화는 이같은 물음을 제시한 뒤 애매모호하게 끝이 난다. 
사랑과 결혼의 손상되기 쉬운 확실성에 관한 영국 영화로 소품이지만 영화가 던지는 명제가 대단히 심각하고 또 그 감정적 여파가 크고 넓어 작품 속에 깊이 파묻히게 된다. 영국의 두 베테런 샬롯 램플링(69)과 톰 코트니(78)가 주연하는 향수감 짙은 작품이다.
떨쳐버려지지 않는 과거의 그림자 때문에 내적 격변을 겪어야 하는 노부부의 드라마가 차분하고 절제됐으면서도 매우 세련되고 민감하게 그려졌는데 각본을 쓰고 연출한 앤드루 헤이의 윤기 나는 솜씨가 돋보인다.
영국 동부 노포크의 곱고 조용한 교외에서 사는 제프(코트니)와 케이트 머서(램플링) 부부는 1주 후에 가질 결혼 45주년 기념파티 준비에 바쁘다. 둘은 서로를 극진히 사랑하지만 자식은 없다(그 이유는 보는 사람 자의대로 해석하면 된다.) 영화 처음에 부엌 식탁에 제프가 앉아 있는 가운데 케이트가 설거지를 하면서 미 흑인 보컬그룹 플래터즈의 ‘스모크 겟츠 인 유어 아이즈’를 콧노래로 부르는데 이 노래는 둘이 연애할 때 즐겨 듣고 부르던 노래로 영화에는 옛 팝송이 많이 나오면서 올드팬들의 향수감을 자극한다.
그런데 느닷없이 제프에게 편지 한 통이 배달된다. 내용은 50년 전 제프와 함께 스위스 알프스 빙하지대에 놀러갔다가 실족사한 그의 옛 독일인 애인 카티아의 사체가 고스란히 보존된 채 발견됐다는 것. 이 편지를 받고 제프는 안절부절 못하면서 끊었던 담배를 다시 피고 스위스여행마저 생각한다.
그러나 제프보다 더 심각한 충격을 받은 사람은 케이트. 더군다나 제프가 알프스 여행을 하면서 카티아를 자기 아내로 등록했다는 것을 안 케이트는 깊은 좌절감과 질투 그리고 의혹에 시달린다. 그리고 다락에 올라가 남편의 옛 사진들과 필름 등을 뒤지면서 충격적인 사실이 밝혀진다. 라스트 신이 가슴을 때린다. 착 가라 앉은 연기를 하는 램플링(LA 영화비평가협회에 의해 올해 최우수 주연여우로 뽑혔다)과 코트니의 화학작용이 절묘하다. 진짜 어른들 영화다. 일부극장. ★★★★1/2(5개 만점)
                                                                 <한국일보 박흥진 편집위원/ hjpark1230@gmail.com>

‘하숙생’




스크루지 같은 소리인지 모르겠지만 공연히 번잡하고 번거로운 시즌이다. 부질없다는 생각마저 든다. 내가 이런 생각을 하는 까닭은 지나가는 것에 대한 아쉬움 탓인지도 모른다. 나는 어렸을 때부터 해마다 이 때가 되면 지독한 군중 속의 외로움을 느끼면서 자꾸 슬퍼했다. 이 때 이런 마음을 갖는 것은 나만이 아닐 것이다.
내가 이 시즌의 군중 속의 고독을 느낄 때마다 생각나는 터무니없는 과거는 대학생 때의 일이다. 그 때 통금이 있던 한국에서는 크리스마스와 신년 전야에 통금을 해제했었다. 그래서 크리스마스 전날 밤에는 종교에 관계없이 사람들은 모처럼 밤의 자유를 만끽하려고 거리로 몰려 나왔었다.
나와 대학 친구들도 음주창가하며 마치 풀어놓은 개떼들처럼 명동거리를 몰려다니면서 아기 예수의 탄생을 자축했었다. 그 때 느낀 가슴 속의 한파를 생각하면 지금도 몸서리가 처지곤 한다.
난 요즘 진짜 캐롤 대신에 내 고등학교 선배인 최희준이 부른 ‘하숙생’을 듣는다. “인생은 나그네길 어디서 왔다가 어디로 가는가/구름이 흘러가듯 떠돌다 가는 길에 정일랑 두지 말자 미련일랑 두지 말자/인생은 나그네길 구름이 흘러가듯 정처 없이 흘러서 간다.”
최희준이 약간 코가 막힌 듯한 저음으로 부르는 창법과 가사와 곡조가 청승맞기 짝이 없어 부운 같은 인생의 자락에 매달린채 가는 세월 말리지도 못하고 술 한 잔 하면서 따라 부르기에 딱 맞는 캐롤이다.      
KBS 라디오 동명 드라마의 주제곡이었던 ‘하숙생’은 신성일과 김지미 주연의 동명영화로도 만들어졌는데 나도 재미있게 봤다. 사랑과 배신과 복수의 멜로드라마로 흑백영화로 기억하는데 실연당한 남자가 보면 가슴 싸하니 아플 영화다.              
그러나 세상이 온통 즐겁고 행복해만 보이는 시즌이니 만큼 크리스마스 연휴에 듣고 보면서 즐길만한 캐롤과 영화를 찾아보았다. 캐롤 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것이 빙 크로스비가 솜사탕 같은 음성으로 부르는 ‘와이트 크리스마스’다. 어빙 벌린이 작곡한 이 노래는 크로스비가 주연한 시즌영화 ‘할러데이 인’의 주제가로 오스카상을 탔다.
짙은 초컬릿 맛 나는 벨벳 감촉의 음성을 지닌 냇 킹 코울이 부르는 ‘크리스마스 송’도 좋다. “체스넛 로스팅 온 언 오픈 파이어”라면서 시작되는 노래를 들으면 늘 털스웨터를 입고 장작불이 타는 벽난로 앞에 앉아 있는 기분이 되곤 한다.                    
캐롤 앨범을 8개나 출반해 ‘미스터 크리스마스’라 불리는 앤디 윌리엄스의 ‘이츠 더 모스트 원더풀 타임 오브 더 이여’와 역시 캐롤의 단골가수인 자니 마티스의 ‘아베 마리아’ 그리고 맑고 고운 음성의 팻 분의 ‘퍼스트 노엘’과 함께 크로스비와 음성이 비슷한 페리 코모의 ‘두 유 히어 왓 아이 히어’ 등도 좋다.
그리고 시내트라는 ‘아일 비 홈 포어 크리스마스’를 잘 부르고 주디 갈랜드가 부른 자기가 주연한 영화 ‘세인트루이스에서 만나요’의 노래 ‘해브 유어셀프 어 메리 리틀 크리스마스’도 시즌 송 18번이다. 합창으로 부르는 ‘리틀 드러머 보이’는 애잔해 더욱 연말 분위기에 잘 어울리고 엘비스 프레슬리가 “당신 없는 크리스마스는 외롭다”고 궁상을 떠는 ‘블루 크리스마스’와 ‘실버 벨즈’도 재미있다.
이 밖에도 대중의 사랑을 많이 받고 있는 캐롤들로는 *어 할리 졸리 크리스마스 *오 홀리 나잇 *징글 벨 록 *록 어라운드 더 크리스마스 *윈터 원더랜드 *렛 잇 스노 *펠리스 나비다드 등이 있다. 앤젤리노들은 지금 KOST-FM(103.5)을 틀면 하루 종일 시즌 송들이 나와 이들 캐롤들을 들을 수 있다. 그리고 며칠 후 ‘올드 랭 자인’을 들으세요. “메리 크리스마스!”
크리스마스 영화로 콧등이 시큰해지는 고운 것이 ‘동방박사의 선물’(The Gift of the Magi-사진)이다. O. 헨리의 단편소설이 원작으로 가족의 유물인 회중시계를 애지중지하는 말단 사원 짐(팔리 그레인저)과 탐스럽고 아름다운 긴 머리칼을 지닌 그의 아내 델라(진 크레인)의 크리스마스 선물교환 얘기다.
델라는 남편이 그렇게 좋아하던 자신의 머리칼을 팔아 남편을 위해 백금시계줄을 사고 짐은 자기 시계를 팔아 아내를 위해 고급 빗을 산다. 둘은 머리칼 없는 빗과 시계 없는 시계줄을 서로 교환하면서 자기들의 실수를 크게 웃는데 이 때 창 밖에서 캐롤이 울려 퍼진다.    
이 단편은 O. 헨리의 다른 단편들인 ‘마지막 잎새’와 ‘경찰과 성가’ 그리고 ‘클래리언 콜’ 및 ‘인디언추장의 몸값’ 등을 영화로 만들어 묶은 DVD ‘O. 헨리의 풀 하우스‘(O. Henry’s Full House)에 수록됐다.
크리스마스 단골영화로 해마다 이맘때면 TV로 마라톤 방영되는 3편의 영화가 있다. 꼬마 나탈리 우드가 나오는 진짜로 산타가 있다는 것을 법정에서 증명하는 ‘34가의 기적’(The Miracle on 34th Street)과 지미 스튜어트가 주연한 모든 개인의 중요성을 얘기한 ‘멋진 세상’(It’s a Wonderful Life) 그리고 빨간 장난감엽총을 크리스마스 선물로 받고파 안달이 난 소년 랄피의 소원성취를 우습게 그린 ‘크리스마스 이야기’(A Christmas Story)를 꼭 보세요.  “해피 뉴 이여!”
                                                               <한국일보 박흥진 편집위원/ hjpark1230@gma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