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이야기

2015년 4월 13일 월요일

‘롱게스트 라이드’ 스캇 이스트우드




“황소 탔다 2초만에 내동댕이… 얼굴 밟힐뻔”

"관계맺기의 어려움 다룬 영화로 모두가 봐주길 기대
아버지는 나의 영웅… 늘 열심히 하라, 겸손하라 조언"


10일 개봉되는 젊은 로데오 불 라이더와 미술을 전공하는 여대생과의 사랑을 그린‘롱게스트 라이드’(The Longest Ride)의 주인공 스캇 이스트우드(29)와의 인터뷰가 3월29일 뉴욕의 리츠 칼튼 호텔에서 있었다. 턱과 볼에 잔 수염을 한 스캇은 클린트 이스트우드의 아들로 키만 아버지보다 작았지 아버지를 쏙 빼다 닮았다. 손 제스처와 미소와 겸연쩍어할 때 얼굴에 홍조를 띠는 것까지 닮았는데 할리웃 외신기자협회(HFPA) 기자들이 여러 차례 아버지와 관련해 질문을 하자 지겹다는 표정을 감추려고 애쓰는 표정이 역력했다. 그러나 스캇은 직업적으로 그런 질문에 겸손하고 유연하게 대했는데 위트와 유머를 섞어가면서 비교적 짧게 대답했다. 이 영화는 그의 빅 스크린 데뷔 작품. 스캇은 씩씩하고 쾌활한 사람으로 언젠가 아버지의 그늘을 벗어나 빅 스타가 되리라고 장담해도 좋을 것이다. 이 영화는 로맨틱하고 감상적인 베스트 소설들로 역시 영화로 만들어진‘노트북’‘병 속의 편지’ 및‘디어 존’ 등을 쓴 니콜라스 스팍스의 소설이 원작이다.                
 
-이 영화는 일종의 현대판 웨스턴인데 당신과 웨스턴의 관계는 어떤지.
“나는 북가주에 있는 아버지의 큰 목장에서 자랐기 때문에 영화와 같은 분위기에 익숙하다. 그래서 말 타기를 일찍부터 배웠다. 그러나 황소는 타보지 못했다. 이번에 타보니 아주 흥분되고 재미있었다.” 

-황소를 탄 뒤 배운 것은 무엇인가.         
“난 이번에 불 라이더들을 정말로 존경하게 됐다. 그들은 아주 강인한 사람들이나 막상 그들의 전성기에도 황소를 타고 오래 견디는 사람들은 전체의 절반 정도다. 정말로 어려운 일이다.”

-당신은 영화에서 현대미술을 보고 말똥 같다고 했는데 실제로는 어떤가.
“나의 현대미술에 관한 식견은 영화와 같다. 뭐가 뭔지 잘 모르겠다. 앞으로 그것에 대해 좀 배우려고 한다.”

-이 영화를 웨스턴이라고 보는가.
“아니다. 러브스토리라고 본다.”

-아버지의 웨스턴 중 좋아하는 것은.
“‘언포기븐’으로 그 영화 이후 훌륭한 웨스턴이 나오질 않았다고 본다.”

-당신의 아버지는 웨스턴으로 유명한데 그 같은 평가를 어떻게 보는가.
“아버지는 35세 때 ‘황야의 무법자’에 나왔고 65세 때 ‘언포기븐’에 나왔다. 그 같은 진행이야 말로 남에게서 좀처럼 찾아볼 수 없는 모범적인 것이다.” 

-이 영화를 만들면서 아버지의 웨스턴을 생각했는가.
“아니다. 아버지의 웨스턴은 이 영화와 달리 다 옛날을 재현한 것이다. 난 아버지가 한 것을 결코 모방할 생각이 없었다. 클린트 이스트우드 연기는 그 밖에 해낼 사람이 없다.”

-어렸을 때 아버지와 자란 경험은 어땠는가.
“아버지는 구식 사람이어서 내가 혼자서 성장하도록 만들었다 대학도 내 힘으로 갔다. 난 바텐더도 했고 공사장에서도 일했고 또 파킹장 밸릿도 했다. 아버지는 내게 아무 것도 결코 공짜로 준 것이 없다. 아버지도 그렇게 자랐기 때문이다.”

-왜 LA를 떠나 살았는가.
루크와 소피아가 승마의 랑데뷔를 하고 있다.
“모두 날 ‘응, 저 아이는 클린트 이스트우드의 아들이야’라며 날 본격적인 배우로서 받아들이지 않았기 때문이다.‘

-당신은 로맨틱한가.
“그런 때도 있었다.”

-어떻게 해서 배우가 됐는가.
“난 늘 영화를 정열적으로 사랑했다. 반드시 배우가 되겠다고 생각한 것은 아니나 영화를 늘 사랑했다. 고등학교를 졸업했을 때 내 가장 친한 두 친구가 해군 특공대에 들어간다고 해 나도 생각이 있었다. 그런데 그 때 두 군데서 오디션이 있어 거기에 나온 뒤로 영화로 발길을 돌리게 됐다.”

-당신의 몸은 섹스심벌 감인데 언제부터 신체단련을 했는가.
“아버지가 육체가 건강해야 정신도 건강하다면서 내가 15세 때부터 신체단련을 하도록 시켰다. 건강하고 활동적일수록 부정적인 생각을 우리 안으로부터 씻어낼 수가 있다. 난 섹스심벌이 무엇인지도 모르고 또 그것이 되려고 신체단련을 한 것도 아니다.”

-왜 과거엔 잠잠히 있다가 이 영화로 처음 홍보활동을 시작하는가.
“이 영화에 대해 진실로 자랑스럽게 느끼기 때문이다. 과거에도 배우활동을 했지만 나설 필요를 못 느꼈었다. 이 영화는 좋은 영화여서 사람들이 다 봐야 한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홍보활동이 편안한가.
“물론이다. 연기나 마찬가지다. 사람들 앞에서 말하는 것이 연기나 마찬가지다.”    

-아버지가 유명하다는 것을 언제 알았는가.
“TNT 채널에서 방영하는 클린트 이스트우드의 밤을 보면서였을 것이다.”

-아버지가 여자문제에 대해 어떤 조언이라도 해 주었는가.
“강인한 남자가 진짜 남자라는 것은 틀렸다는 것이다. 여자에게 있어 진짜 남자는 상냥하고 또 여자에게 문을 열어줄 줄 아는 품위가 있는 남자라는 것이다.”      

-아버지가 당신의 데이트에 관해 어떤 조언이라도 해주는가.
“독신인 아버지한테서 그런 조언 원치도 않는다.”                            

-어디 대학을 나왔는가.
“샌타바바라와 샌타모니카 시티칼리지를 나와 로욜라 메리마운트 대를 졸업했다.”

-아버지가 명성에 관해 어떤 조언이라도 해 주었는가.
“우린 둘이 마주 앉아 그런 얘기 해본 적이 없다. 그저 너 자신을 지키면서 현장에서 열심히 일하라는 것이었다. 그리고 겸손 하라는 것이었다. 결코 자만하지 말라는 것이다.”

-어렸을 때 아버지가 가르쳐준 것이 무엇인가.
“골프다. 그리고 아버지처럼 나도 파일럿이다.”

-어떻게 해서 이 영화에 나오게 됐는가. 
“할리웃은 이상한 곳이어서 어떤 일이 일어나는데 특별한 이유가 없이 그저 일어나는 경우가 많다. 내 경우도 마찬가지다. 거기에 운도 따라야겠다. 난 다만 이 영화가 성공해 내가 다른 훌륭한 영화에도 나오게 되기를 기대할 뿐이다.”

-굳이 이 영화를 선택한 이유는.
“니콜라스 스팍스의 다른 소설과는 달리 이 얘기는 보다 사실적이고 관계를 맺기가 얼마나 힘든 것인가를 솔직히 표현했기 때문이다.”

-당신은 아버지를 어떻게 생각하는가.
“그는 전설로 나의 가장 위대한 영웅이다.”

-어떤 여자를 좋아하는가.
“신소리 안 하는 즉흥적이요 즐거운 여자다.”

-성을 바꿀 생각이라도 해 봤는가.
“아니다. 난 그저 머리를 숙인 채 지난 12년간 오디션에 나가고 영화에 안 나올 땐 남들처럼 일을 하면서 살았다. 내가 아버지의 성을 가진 내가 마음대로 어쩔 수가 없는 것 아닌가.”

-오디션 경험에 대해서 말해 달라.
“내 이름만 듣고 날 아예 보려고 하지 않은 경우가 많다. 그래서 어떤 땐 면접실에 밀고 들어가야 할 때도 있었다.”

-당신은 어떤 음식을 좋아하는가.
“연어와 브라컬리다. 고기와 감자를 좋아한다면 아버지가 노발대발할 것이다.”

-어떻게 영화를 선택하는가.
“아버지처럼 각본과 감독에 따라서다.”

-황소 탔다가 다치기라도 했는가.
“탔다가 2초반 만에 내동댕이쳐졌다. 소가 내 얼굴을 밟아 뭉갤 정도로 가까운 거리에 나가 떨어졌었다. 일촉즉발의 위기의 순간이었다.”

-여자를 놀라게 해줄 선물로 무엇을 고르겠는가.
“꽃이다. 여자들은 늘 꽃을 좋아하니까.”

-당신에게 주어진 영화에 대해 아버지와 논의하는가.
“물론이다. 아버지는 조언을 해 준다. 때문에 영화에 출연해서는 안 된다면서 자신에게 좋은 역을 고르라고 말해준다.”

-어떤 것을 좋아하는가.
“나도 아버지처럼 구식이어서 블루스를 좋아한다. 텍스팅 별로 안 한다. 전화를 옆으로 치워 놓고 밥을 먹으면서 대화하기를 좋아한다. 그러나 세상에 적응 안 할 수는 없는 일이니 텍스팅도 어느 정도는 한다. 그리고 난 야외활동을 즐긴다. 서핑과 잠수와 낚시를 즐기고 무술인 지우지추도 한다. 내 친구들도 다 그런 것을 좋아한다.”

-당신의 어머니에 대해 말해 보라.
“참으로 멋있는 여자다. 세상에서 가장 동정심이 많은 사람으로 전 생애를 남을 위해 기여하며 살고 있다. 명성 같은 것은 안중에도 없다. 최고의 엄마로 어머니를 생각할 때마다 난 목이 막힌다. 어머니는 내게 결코 서두르지 말라고 조언한다.”   
                                                            <한국일보 박흥진 편집위원/ hjpark1230@gmail.com>

엑스 마시나 (Ex Machina)


케일렙과 AI 여인 에이바 및 에이바의 창조자 네이산(왼쪽부터)은 두뇌싸움을 벌인다.

미모의 여성로봇과 두 남자의 두뇌싸움


냉정하고 지적이며 긴장감 감도는 스타일 멋있는 인공지능(AI)에 관한 공상과학 영화로 달랑 세 명의 인물(그 중 하나는 로봇)이 단 하나의 세트인 집에서 일종의 두뇌싸움을 벌이는 드라마로 음악으로 말할 것 같으면 공상과학 실내악곡이라고 하겠다.
영국의 각본가 알렉스 갈랜드의 감독 데뷔작으로 연출 솜씨가 주도면밀하고 자신만만한데 글 솜씨가 고도로 사고적이며 영특하다. 서서히 보는 사람을 극중으로 유인하고 있는데 폐쇄된 공간 안에서 일어나는 얘기가 누가 누구를 가지고 노는지를 분간하기가 어려워 노심초사케 만든다.
군더더기란 하나도 없는 이 영화는 일종의 프랑켄스타인의 얘기이기도 한데 인간이 신의 노릇을 하려는 것에 대해 경고를 하고 있다. 그러나 이미 AI는 고도로 발달돼 호텔 종업원 노릇도 하고 의사의 수술도 돕는 세상이 됐는데 AI가 자기를 창조한 인간을 역습하는 것은 이미 ‘2001: 우주 오디세이’에서 ‘핼'(HAL)이 한 바 있다. 결코 꿈만 같은 일이 아니다.
구글 스타일의 컴퓨터회사의 너드형 프로그래머 케일렙(아일랜드 배우 돔날 글리슨)은 회사의 로토에 당첨돼 1주일간 산수경관이 아찔하게 아름다운 첩첩산중에 있는 회사 회장 네이산(오스카 아이작)의 별장에서의 휴가를 부상으로 받는다.
회장의 집은 지하에 있는데 유리창 없는 방과 복도를 비롯해 집안의 모든 것이 지극히 차갑도록 검소하고 초현대적이다. 네이산은 권투연습을 하다가 케일렙을 반갑게 맞는다. 다부진 체구의 네이산과 약골형인 케일렙이 대조적이다.
그런데 케일렙은 복권에 당첨된 것이 아니라 네이산에 의해 선택된 것. 이유는 네이산이 만든 인공지능을 지닌 여자 로봇 에이바(스웨덴 배우 알리시아 비칸더가 곱다)가 감정적으로 또 지적으로 인간과 과연 얼마나 다른가를 시험하는데 케일렙을 보조원으로 쓰기 위해서다. 이들 세 사람(?) 외에 이 집에 있는 사람(?)은 일본인 하녀 교코.
케일렙은 이에 따라 매일 같이 얼굴과 손과 발만 인체를 지녔고 나머지는 금속인 에이바를 인터뷰한다. 이 과정에서 인간과 같은 감정과 지능을 지닌 에이바는 은근히 케일렙을 유혹하고 또 네이산을 절대로 믿지 말라고 경고한다. 그리고 케일렙은 아름다운 에이바를 사랑하게 된다. 둘의 인터뷰는 네이산에 의해 녹화된다.
케일렙은 도대체 누구의 말이 진실인지 몰라 당황하면서 네이산의 편에 서야 할지 아니면 에이바의 편에 서야 할지를 몰라 갈팡질팡하다가 사랑하는 여인의 편에 서기로 결정한다. 그런데 영화 3막에 들어가면서 내용이 반전에 반전을 거듭하다가 허무할 정도로 가공스럽게 맺음을 한다.
활화산 같은 아이작의 연기와 가녀린 버들가지 같은 비칸더의 모습과 조용하고 섬세한 연기가 좋은 대조를 이루는데 글리슨은 역에 잘 어울리질 않는다. 촬영과 음악과 세트가 모두 훌륭한 영화로 ‘스테포드의 부인들’을 연상케 한다. R. A24. 일부지역. ★★★½(5개 만점)  
                                                          <한국일보 박흥진 편집위원/ hjpark1230@gmail.com>

롱게스트 라이드 (The Longest Ride)


루크(스캇 이스트우드)와 소피아(브릿 로번슨)가 데이트를 즐기고 있다.

희생과 난관 없는 사랑이 어디 있으랴


성격과 배경이 판이하게 다른 두 젊은 남녀의 우여곡절이 많은 사랑과 관계의 로맨스 스토리로 로맨틱하고 감상적인 베스트셀러 작가 니콜라스 스팍스의 소설이 원작이다. 그의 소설 ‘노트북’과 ‘디어 존’ 및 ‘로단테의 밤’ 등은 모두 영화로 만들어져 히트를 했는데 손수건 없이는 못 볼 영화들로 이 영화도 소위 ‘칙 플릭’(여성용)이다. 데이트 무비인데 그의 다른 작품에 비하면 덜 감상적이요 사카린 맛도 덜 난다.
‘사랑은 희생을 요구한다’라는 케케묵은 말이 중심 플롯으로 내용이 너무 환상적이어서 현실이라기보다 동화라고 해야겠다. 클린트 이스트우드의 아들과 찰리 채플린의 손녀 그리고 존 휴스턴의 손자 등 세 명의 할리웃 전설의 자손들이 나온다. 
노스캐롤라이나주(스팍스의 소설은 다 이 곳이 무대다)의 윈스턴-세일렘의 웨이크 포레스트 대학의 미술전공 4년생 소피아(브릿 로벗슨)는 뉴욕의 유명 갤러리에 인턴 취업이 돼 새 생활 시작에 들떠 있다. 소피아는 동창이 조르는데 못 견뎌 불 라이딩 대회를 구경 갔다가 깊은 사랑에 빠지게 될 늠름한 미남 청년 루크(스캇 이스트우드)를 만나게 된다.
1년 전 황소를 타다가 큰 부상을 입고 재기를 노리는 루크가 황소에서 떨어져 날아간 모자가 소피아의 무릎 위에 떨어진 것이다. 이렇게 해서 서로 모든 것이 다른 두 남녀가 데이트를 시작한다. 그런데 구식인 루크는 죽어도 불 라이딩을 포기 못한다고 우기고 소피아는 뉴욕엘 가야 하니 과연 이 둘의 사랑은 얼마나 파고가 심한 파도를 타게 될 것인가.
둘이 데이트를 하고 집으로 돌아가던 비 오는 날 밤 둘은 자동차 사고로 실신한 91세난 아이라(앨란 앨다)를 구해 준다. 그리고 불타는 차 안에서 아이라의 편지가 가득 든 박스를 꺼낸다. 병원에 입원한 아이라를 찾아간 소피아에게 아이라가 박스 안의 자기가 옛날에 아내 루스에게 쓴 편지들을 읽어 달라고 부탁하면서 영화는 아이라의 과거로 돌아간다.
편지들은 1940년 나치를 피해 비엔나에서 노스캐롤라이나로 이주한 루스(우나 채플린)와 수줍음 많은 아이라(잭 휴스턴)의 사랑과 우여곡 절이 많은 관계를 들려주는데 이런 둘의 사랑의 관계가 소피아와 루크의 그것과 병행돼 묘사된다.
소피아가 뉴욕으로 떠날 날이 가까워 오면서 두 청춘 남녀는 다투고 울고불고 하는데 과연 사랑은 모든 것을 극복하고 승리할 것인지. 소피아와 루크의 사랑에 걸림돌을 놓으려고 얘기가 다소 억지를 부리고 있는데 그것은 스팍스 영화의 상투적인 수단이다. 카메라가 부단히 스캇의 떡 벌어진 드러난 상반신과 얼굴을 포착하느라고 정신을 못 차리는데 그와 브릿과의 콤비가 잘 맞고 연기도 괜찮다. 조지 틸맨, 주니어 감독. PG-13. Fox. 전지역. 
                                                                <한국일보 박흥진 편집위원/ hjpark1230@gmail.com>

2015년 4월 10일 금요일

‘의사 지바고’




6순이 넘는 나이에 오는 18일 새 장가를 드는 할리웃 외신기자협회(HFPA) 부회장으로 이탈리안인 로렌조 소리아가 얼마 전 이메일로 청첩장과 함께 다음과 같은 글을 보내왔다. “너의 나라에서는 간통을 법으로 처벌하지 않으니 썩 괜찮은 나라로구나.”
이는 물론 최근 한국의 헌법재판소가 간통을 법으로 처벌하는 것은 국민의 기본권을 침해하는 위헌이라는 판결을 내린 것에 대한 농담이다. 나는 로렌조의 글에 대해 “그래, 이제야 우리나라는 문화 선진국이 됐다”라고 답신했다.
간통은 성인 남녀 간 합의 하에 이뤄지는 행위로 그것은 도덕적 문제이지 국가가 나서서 법으로 다룰 문제가  아니다. 간통을 범죄로 처벌한 것은 옛날에 우리나라 남자들이 “마누라와 북어는 사흘에 한 번씩 패야 된다”고 떠들던 때 여자를 보호하기 위해 만들어진 조치다.
그러나 지금은 세상이 많이 달라졌다. 여성의 사회·경제적 위상이 크게 향상된 데다가 여성이 피보호대상이 아니라 자기 결정권의 주체라는 인식이 확산되고 있다. 과거 남편의 압박과 설움에 시달리던 우리나라의 아내들이 아직도 남존여비의 고루한 사고에 절어 있는 남편들을 버리는 경우가 부쩍 늘어 우리나라의 이혼율이 급증하고 있는 것이 그 일례다.
이사 갈 때 남편이 아내의 애견을 안고 아내보다 먼저 이삿짐 차에 달랑 올라탄다는 농담이 나온 지 오래다. 이번 헌재의 결정을 여성계가 환영한 것이 이렇게 달라진 시대상을 반영하고 있다.
간통은 성서시대부터 있어온 장구한 역사를 지녔는데 그 대표적 경우가 다윗과 바스세바다. 간통은 이처럼 오랜 역사를 통해 인간이 반복해 온 행위여서 소설과 영화의 주제로 자주 쓰여지고 있다. ‘간통소설’이라는 장르까지 있는데 김동인의 ‘감자’와 ‘김연실전’도 그런 소설이다. 또 ‘보바리 부인’ ‘안나 카레니나’ 및 ‘차털레이 부인의 사랑’ 그리고 ‘이산 프롬’과 볼품없는 준이치 와타나베의 ‘실낙원’ 등도 다 간통소설이다.
우리의 기억에 남는 많은 영화들도 간통을 주제로 삼고 있다. ‘간주곡’ ‘여정’ ‘종착역’ ‘자, 항해자여!’ ‘우체부는 항상 벨을 두 번 누른다’ ‘사형대의 엘리베이터’ 및 ‘지상에서 영원으로’ 등의 주인공들이 다 간부들이다. 기혼남녀가 키스만 한 것도 간통이라면 ‘카사블랑카’와 ‘짧은 만남’도 간통영화다.          
소설이나 영화 못지않게 실제 명사들 중에도 간부들이 적지 않다. 최무룡과 김지미, 보리스 파스테르나크와 올가, 잉그릿 버그만과 로베르토 로셀리니, 스펜서 트레이시와 캐서린 헵번 그리고 프랑솨 미테랑과 안 팽조 등이 다 혼외정사의 당사자들이다.
간통영화의 금자탑은 ‘의사 지바고’(사진)라고 하겠다. 간통의 두 당사자인 지바고와 라라의 얼굴 표정이 늘 우수에 젖어 있고 또 그들의 안타까워하는 눈동자를 보면서 간통의 죄책감을 절실히 느끼게 된다. 지바고는 아내 토냐를 사랑하면서도 라라를 무슨 게시처럼 지고하게 사랑한다. 아내와 애인에 대한 사랑은 그 모습이 서로 다른가.
알다가도 모를 것은 사람들은 실제 간통은 단죄하면서도 지바고와 라라의 사랑에 대해서는 온갖 미사여구로 찬미하고 있다는 점이다. 둘의 사랑은 ‘아름답고 로맨틱하고 정열적이요 비극적이며 또 황홀하고 가슴이 찢어지도록 간절하다’는 찬양 일색이지 그들을 ‘더러운 것들’이니 ‘벌 받아 마땅한 것들’이라고 비난하는 말을 들어본 적이 없다. 금기와 비밀스런 것에 대한 우리의 욕구를 지바고와 라라가 대리 충족시켜 주기 때문인지는 몰라도 참으로 역설적이요 이율배반적이다.
간통은 너무도 쉽게 저지를 수 있는 것이어서 예수는 아예 “여자를 보고 음욕을 품는 자마다 마음에 이미 간음하였느니라”고 사전 경고를 했다. 나는 교회에 나가던 고등학생 때 예쁜 여학생을 훔쳐 볼 때마다 예수의 이 말 때문에 무척 스트레스를 받았었다. 내가 지금 나가는 동부장로교회의 이용규 당회장은 남녀 신도 간의 악수도 금한다. 문제발생 가능성에 대한 사전 차단조치다. 예수도 말했듯이 간통의 주체는 남자로 간주되는데 같은 남자로서 억울하다는 느낌이 든다. 고장난명 아니겠는가.
간통은 왜 저지르는가. 다르고 새로운 것에 대한 인간의 호기심과 욕망에서 비롯된다고 생각한다. 이런 생각은 영국의 철학자 버트란드 러셀의 말에서도 내 비쳐져 있다. “간통의 심리란 일부일처제 사회에서 통용되는 어떤 한 사람에 대한 매력은 또 다른 사람에 대한 진지한 애정과 공존할 수 없다는 관습적 도덕에 의해 왜곡된 것이다. 우리는 이것이 진실이 아니라는 것을 알고 있다.”
헌재의 이번 결정을 놓고 앞으로 간통이 성해질 것이라는 의견도 있는데 그것은 유치하고 전 근대적인 발상이다. 간통죄는 남녀 불평등 시대의 산물이다. 남녀가 모든 면에서 평등해질 때에 가서야 진짜로 간통죄가 폐지될 것이다.
                                              <한국일보 박흥진 편집위원/ hjpark1230@gmail.com>


2015년 4월 6일 월요일

분노의 질주 7 (Furious 7)


덱카드(제이슨 스테이담·왼쪽)와 담(빈 디즐)이 쇠몽둥이를 휘두르며 격투를 벌이고 있다.

스턴트·특수효과 뒤범벅된‘액션의 광란’ 


정신 나간 막가파식의 ‘광란의 질주’로 액션 스펙태클이 초고속에 아찔하게 박력이 있긴 하지만 자동차가 하늘을 나는 식으로 과장이 심해 보는 사람을 당황하게 만든다. 시리즈를 자꾸 만들기 위해선 새 것이 전편의 액션을 훨씬 능가해야 하기 때문에 편수가 늘면 늘수록 그 횡포가 더욱 자심해지게 마련이긴 하나 모든 물리의 법칙을 깨면서 이치라곤 도저히 찾아볼 수가 없도록 난동을 부리는 바람에 정나미가 떨어진다. 이건 액션영화라기보다 초현실적 공상과학 영화라고 해야 옳겠다.
이 시리즈를 중간쯤 찍던 중 주인공 가운데 하나인 폴 워커가 아이로니컬하게도 자동차 사고로 사망하면서 화제가 됐었는데 그의 모습은 워커의 시용하지 않은 다른 영화의 필름과 두 동생을 대신 찍은 다음 거기에 얼굴을 디지털로 덮어 마치 살아 있는 워커가 처음부터 끝까지 나오는 것처럼 보인다.
플롯이란 순전히 액션을 사용하기 위한 구실에 지나지 않고 대사도 아주 유치하다. 스턴트와 특수효과와 막강한 액션과 길길이 날뛰는 에너지는 가상하나 마치 약물에 취한 도깨비들의 장장 137분짜리 살풀이를 구경하는 것 같아 헛웃음이 나온다. 제8편이 나오겠다.
전편에서 담(빈 디즐)의 패거리에 의해 얻어터져 런던 병원에 빈사상태로 누워 있는 동생 오웬을 황천으로 보낸 덱카드(제이슨 스테이담)는 담 일당에게 복수의 선전포고를 한다. 담 일당 중 한 명이던 한국계 한(성 강)은 전편 끝에서 죽는다. 만만한 게 아시안이다.
이에 담과 아내와 어린 아들에게로 돌아가 가정생활을 하던 브라이언(폴 워커) 그리고 아직도 기억상실증에 시달리는 담의 애인 레티(미셸 로드리게스) 등 담의 일당은 덱카드를 맞을 준비를 한다. 이 때 이들 앞에 정체불명의 정부기관 소속 ‘무명씨’(커트 러셀)가 나타나 코카서스에 있는 테러리스트 모세(자이몬 훈수)가 납치한 예쁜 처녀 컴퓨터 해커 램지(나탈리 에마누엘)를 구출해 오면 덱카드를 처치해 주마고 제의한다.
램지는 세계 어느 곳에서든지 셀폰과 감시카메라를 통해 사람들의 일거수일투족을 관찰할 수 있는 프로그램 ‘신의 눈’을 개발했는데 이것이 나쁜 놈의 손에 들어가면 세상은 어떻게 될지 뻔한 일.
그래서 담 일행은 아제르바이잔으로 갔다가 이어 아부다비로 간다. 여기서 ‘신의 눈’ 칩이 든 아부다비의 거부가 소유한 세계에서 몇 안 되는 빨간 스포츠카를 담이 마천루 꼭대기로부터 몰고 건물의 유리창을 뚫고 날아가 옆의 건물의 유리창을 뚫고 착륙했다가 다시 한 번 옆의 건물로 비상한다. 믿든지 말든지라는 식이다.
영화는 이들이 LA로 돌아와 또 한 번 뛰고 달리고 치고 박고하면서 난리법석을 떨고 나서야 끝이 난다. 여하튼 영화 내내 자동차가 하늘에서 땅에 떨어지고 사람이 죽도록 치고받으면서 싸우지만 어디 하나 누구 하나 상처가 안 난다. 수퍼카요 수퍼맨이다.
전편에서 담 일행과 일종의 친구가 된 수사관 루크(드웨인 잔슨)도 덱카드에게 찍힌 원수여서 당연히 담 일행과 행동을 같이 해야겠지만 그는 영화 일찍 영웅적인 행동을 하다가 영화 내내 병상에 누워 있다. 그러다가 마지막에 가서 “아빠는 할 일이 있다”고 어린 딸에게 통보하면서  팔의 캐스트를 으스러뜨린 뒤 싸우러 나간다. 마지막에 워커를 추모하는 장면을 삽입했는데 전체적으로 액션에 멜로드라마를 섞어 넣으려고 시도한 흔적이 역력하다. 제임스 완 감독. PG-13. Universal. 전지역. ★★★(5개 만점) <한국일보 박흥진 편집위원/ hjpark1230@gmail.com>

하얀 신 (White God)


릴리가 부다페스트 거리를 달리며 자기를 따라 오는(또는 추격하는) 개들을 돌아다 보고 있다.

“인간에게 복수하라”개들의 반란


‘개들의 반란’이라고 불러야 좋을 이 영화는 인간이 짐승에게 가하는 가혹한 행위를 비판한 우화이자 인종과 계급 차이에 대한 기소이기도 하다. ‘래시 컴 홈’의 살벌한 신판으로 자기를 사랑하는 어린 주인을 찾아 온갖 모험과 위험을 겪으면서 달리고 또 달리는 황구의 의지가 가상하다. 
신화적 분위기를 지닌 헝가리 영화로 볼만한 것은 개들의 연기다. 영화가 다정다감하다가 잔인하고 폭력적인 톤을 갖추면서 감정적 곡선을 혼란케 만드는데 미물로 여기는 개들이 사람 뺨치게 영리하고 생각이 있어 마치 초현실적 영화를 보는 것 같기도 하다.
주인공은 부다페스트의 허름한 아파트에서 백수 아버지 다니엘(산도르 소토)과 둘이 사는 13세난 영리한 소녀 릴리(소피아 소타). 릴리에게는 잡종인 황구 하겐이 유일한 친구인데 당국에서 잡종 개에게 세금을 부과하자 다니엘은 하겐을 길에다 내다버린다.
주인 없는 홈리스가 된 하겐은 자기를 잡아 처리하려는 시공무원들을 피해 도주하다가 터키 인에게 붙잡혀 투견훈련을 받는다. 이 부분이 매우 잔인하다. 그러나 불굴의 정신을 지닌 하겐은 모진 고난을 참다가 탈출해 시내를 배회하는 주인 없는 개들을 규합해 리더가 된다. 
하겐은 이제 서서히 졸개 개들을 이끌고 인간에 대한 역습을 도모하는데 이 같은 하겐의 점진적인 발전은 자기를 찾는 릴리의 아버지를 비롯한 주위의 무지막지한 어른들에 대한 항거와  평행적으로 묘사된다.
릴리와 하겐은 일종의 국외자들로 서로 같은 처지인데 하겐이 졸개들과 함께 인간에 대한 반격을 준비하는 과정이 긴장감과 공포감 가득히 연출된다. 히치콕의 ‘새들’에서 새들이 인간을 공격하는 장면을 연상시킨다. 복수심에 불타는 하겐을 위무해 줄 사람은 오직 릴리. 마지막 부분이 충격적이다. 
하겐 역의 개와 많은 개들의 일사불란한 연기를 담당한 조련사의 솜씨가 감탄을 금치 못하게 하고 릴리 역의 신인 소피아 소타도 아주 잘 한다. 기술적으로도 탁월한 작품으로 촬영이 아주 좋고 오케스트라 음악도 훌륭하다. 영화의 제목은 흑인만 공격하도록 훈련된 백구가 주인공인 새뮤얼 풀러 감독의 ‘백구’(White Dog·1982)를 연상케 한다. 코넬 문드루조 감독. 개가 나오고 소녀가 주인공이나 성인용이다. Magnolia. 4월9일까지 뉴아트(310-473-8530) ★★★½(5개 만점)  
                                                       <한국일보 박흥진 편집위원/ hjpark1230@gmail.com>


‘스펙터’




멕시코시티 중심부에 위치한 소칼로(광장)는 어마어마하게 넓다. 국빈 영접과 국경일 행사 등이 열리는 광장 한복판에 게양된 거대한 멕시코 국기가 바람을 맞으며 위풍당당하게 펄럭이고 있었다.
광장 위로 제임스 본드가 탄 헬기가 굉음을 내며 날아오더니 마침 ‘사자의 날’을 맞은 축제인파를 헤치고 착륙한다(사진). 007시리즈 제24편 ‘스펙터’(SPECTRE)의 프리 타이틀 시퀀스를 촬영하는 현장에는 시리즈 제작자들인 바바라 브로클리와 마이클 윌슨 및 제작사인 MGM의 게리 바버 회장과 조나산 글릭맨 영화제작 담당 사장 등이 참석, 3월 말 취재차 이 곳을 찾은 할리웃 외신기자협회(HFPA)원들을 맞았다.
헬기에는 본드가 타고 있어야 하겠지만 기내에서 본드가 암살자와 격투를 벌이는 장면을 소칼로에서 찍기에는 위험부담이 커 본드 없이 찍은 뒤 본드가 실제로 싸우는 장면은 후에 다른 곳에서 찍는다고 브로클리가 설명했다. 그는 이어 “‘스펙터’는 ‘스카이폴’보다 규모가 훨씬 더 크고 더 좋다”면서 “대중이 그만 만들라고 할 때까지 시리즈는 이어질 것”이라고 자랑했다.
브로클리는 이날 촬영에 나온 엑스트라는 1,500여명으로 광장을 가득 메운 나머지 인파는 촬영이 끝난 뒤 디지털로 만든다고 말했다. 바바라 브로클리는 본드시리즈를 처음 제작한 커비 브로클리의 딸이다.
시리즈 제23편 ‘스카이폴’을 감독한 샘 멘데스가 다시 연출하는 ‘스펙터’에서 본드 역은 역시 대니얼 크레이그가 맡는다. 본드 역 만큼이나 중요한 본드 악한 역은 오스카 조연상을 탄 오스트리아 배우 크리스토프 월츠가 그리고 본드걸들로는 이탈리아 배우 모니카 벨루치(50세로 역대 본드걸 중 가장 나이가 많다)와 프랑스배우 레아 세이두(‘푸른색이 가장 따뜻한 색’) 및 멕시코 배우로 신성인 스테파니 시그맨 등이 나온다. 이들 외에 본드를 짝사랑하는 본드의 상관 M(레이프 화인즈)의 여비서 모니페니(네이오미 해리스)까지 합하면 본드걸이 자그마치 4명이나 된다. 여복도 많지!
영화 제목은 본드의 천적인 국제적 범죄 및 테러조직의 영어 두문자로 스펙터는 본드 시리즈 제1편 ‘닥터 노’에서부터 활약을 했다. ‘스펙터’는 이미 오스트리아와 로마와 런던에서 촬영을 마쳤고 멕시코시티 촬영이 끝나면 모로코로 이동한다. 가히 세계적 영화다.
우리는 영화의 제작진과 배우들을 인터뷰했지만 누구 하나 영화의 내용에 대해선 “말할 수 없다”며 나 모르쇠 일관이었다. 크레이그의 선배 본드인 티머시 달턴이 나온 ‘라이선스 투 킬’을 찍은 소칼로가 내려다보이는 고색창연한 그랜드호텔 4층 테라스에서 촬영과정을 지켜본 뒤 시내 극장에서 관람한 ‘스펙터’의 예고편도 길이가 1분 남짓했다. 영화 내용을 철저히 보호하려는 제작진의 장삿속이겠지만 농담 같은 짓이다.
촬영현장 방문 다음 날 월츠, 세이두, 시그맨 및 졸개 본드 악한으로 나오는 격투기 선수인 데이브 바우티스타 등과의 인터뷰가 있었다. 제일 만만한 시그맨과의 인터뷰 내용만 쓸 수 있고 나머지는 영화 개봉일인 11월6일 보름 전쯤에나 쓴다는 서약서에 서명까지 했다. 그러나 도대체 배우들이 영화 내용에 대해 “모른다” “아마 그럴 수도 있겠지” 또는 “말할 수가 없다”는 식이어서 나중에 써먹을 만한 얘기가 과연 있을지 의문이다.
마이클 윌슨이 들려준 내용 이래봐야 고작 “크레이그는 촬영 내내 올림픽 선수처럼 신체단련에 매달렸고 저녁 9시에 취침해 아침 5시에 기상하는 수사와도 같은 생활을 하고 있다”는 것이 전부. 그는 이어 “영화를 위해 시당국이 광장을 완전히 외부로부터 차단하면서 적극적으로 협조했고 시민들도 마찬가지”라며 멕시코를 치켜세웠다.
그런데 일설에 의하면 멕시코 당국에서 영화 속의 멕시코의 이미지를 좋게 표현하기 위해 각본을 수정하는 조건으로 2.000여만달러를 제작비 협조 명목으로 주었다고 한다. 물론 당국은 이를 부인했다.
본드 시리즈에 처음 등장하는 멕시칸 본드걸 역의 시그맨(28)은 아마추어 권투선수다. 내가 그에게 “이 건 내 추측인데 당신은 권투선수로 제임스 본드 영화에 나오니 아마 본드의 엉덩이를 걷어찰 모양이지요”하고 물었더니 그는 “모르겠네요, 아마 그럴지도 모르지요”라며 웃었다. 그러나 내 추측이 맞을 것 같다.
교통대란의 도시 멕시코시티는 곳곳에 고가도로가 설치된 모습이 1970년대 서울을 연상시킨다. 이 곳이 위험한 도시라는 말은 익히 들어 알고 있었지만 이번에 현장에서 그 사실을 직접 경험했다. 우리가 묵은 호텔은 시내 중심부의 고급 호텔이었는데 밤에 호텔 밖에서 호텔 내 바에 들어가려면 가드가 지켜보는 가운데 금속 탐지기를 통과해야 했다. 그런 살벌한 분위기를 거쳐 바에 들러 테킬라에 매운 토마토주스 상그리타를 체이서로 마시니 이국의 노독이 깜빡깜빡 졸음에 빠진다. 이번 여행서 얻은 큰 수확은 틈을 내 프리다 칼로와 그의 남편 디에고 리베라가 함께 살고 작업을 한 원색의 프리다 칼로 개인주택 뮤지엄을 방문한 것이었다.    
                                                             <한국일보 박흥진 편집위원/ hjpark1230@gma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