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이야기

2015년 2월 2일 월요일

흑이냐 백이냐 (Black or White)

엘리옷(오른쪽)이 손녀 엘로이즈의 공부를 도와주고 있다.

7세 혼혈소녀 양육권 둘러싼‘흑백 갈등’


자녀 양육과 가족애 그리고 흑백문제를 다룬 감상적인 드라메디로 옛날 영화 분위기가 물씬 풍긴다. 매우 선의적인 온 가족용 영화로 각본을 쓰고 감독한 마이크 빈더의 가족에서 실제로 있었던 일을 바탕으로 만들었다.
아주 온화한 작품으로 흑백문제를 비록 충돌과 갈등이라는 관점에서 다루긴 했으나 결국 흑이냐 백이냐 하는 문제는 우리가 모두 착한 인간성을 지닌 한 인간이라는 것을 깨닫는다면 충분히 해결될 수 있다고 얘기하고 있다.
어떻게 보면 이런 얘기는 누이 좋고 매부 좋고 식의 결론인데 그래서 영화가 재미도 있고 구겨진 데가 없이 잘 만들긴 했으나 극적 충격이나 추진력이 다소 모자라고 또 드라마의 파고도 잔잔하다. 그러나 어린 손녀를 놓고 흑백 맞대결을 하는 두 주인공 옥타비아 스펜서와 케빈 코스너의 강렬한 연기 대결이 볼만하고 언제나 시의에 맞는 얘기여서 관람을 적극 권한다.
LA의 부유한 변호사인 엘리옷 앤더슨(코스너)은 최근에 사랑하는 아내 캐롤(제니퍼 엘)을 자동차 사고로 잃고 슬픔과 실의를 스카치로 달랜다. 그에게 유일한 삶의 기쁨이 남았다면 아내와 함께 갓 나았을 때부터 키운 7세난 흑백혼혈의 손녀 엘로이즈(질리안 에스텔-신인인데 깜찍하게 연기를 잘 한다).
엘로이즈는 엘리옷의 딸이 17세에 출산한 딸로 엄마는 아기를 낳다가 사망했다. 엘로이즈의 흑인 아버지 레지(안드레 홀랜드)는 마약중독자로 감옥에 수감 중이다. 엘리옷은 온 정성을 다해 엘로이즈를 키우는데 그는 겉으로는 무뚝뚝한 할아버지이지만 가슴은 손녀에 대한 사랑으로 가득하다. 이런 모습을 코스너가 눈물겹도록 아름답게 표현한다.
이 집에 엘리옷이 손녀의 수학 가정교사로 남의 집 가정교사 겸 일종의 집안 비서로 실력이 넘치고 재치 있는 흑인 두반(엠포 코아호)을 고용하면서 심각한 가정 분위기에 코믹 터치가 스며든다.
그런데 느닷없이 엘로이즈의 친 할머니 로웨나(스펜서)가 엘리옷을 찾아와 남자 혼자서 어린 손녀 키울 수가 없으니 엘로이즈를 내놓으라고 선언한다. 엘리옷에겐 청천벽력이나 다름없는데 그가 로웨나의 말을 들을 리가 없다. 
LA의 캄튼 흑인 동네에 사는 강철 같은 의지와 불같은 성격을 지닌 황소 눈알을 한 로웨나는 이어 LA 다운타운에서 잘 나가는 조카 변호사 제레마이아(앤소니 맥키)를 시켜 엘리오즈에 대한 양육권 소송을 제기한다. 
여기서부터 엘로이즈를 둘러싼 엘리옷과 로웨나의 감정싸움을 곁들인 치열한 대결이 일어나는데 여기에 한 수 더 떠 엘리옷이 사갈시하는 레지가 나타나 뒤늦게 딸과 관계를 연결하겠다는 바람에 엘리옷은 속을 팍팍 썩이며 스카치를 벌컥벌컥 들이마신다. 
그리고 영화는 법정 드라마 모양을 갖추는데 엘리옷이 홧김에 어쩌다 ‘N’(깜둥이) 단어를 내뱉는 바람에 이 말이 법정에서 엘리옷에게 크게 불리하게 작용한다. 클라이맥스에 엘리옷이 자기 발언에 대해 사과하면서 오랫동안 엘로이즈에 대한 사랑과 흑백문제에 대해 말하는 장면이 가슴을 뭉클하게 만든다. 
코스너와 함께 볼만한 것은 ‘헬프’에서 하녀 역으로 오스카 조연상을 탄 스펜서의 뚝심 좋은 연기다. 그의 큰 눈은 천군만마도 물리칠 수 있는 강함 힘을 발산하는데 단단한 모습과 표정으로 강직하면서도 이해심 있고 선한 근성을 지닌 훌륭한 여인의 연기를 감탄스럽게 해낸다. PG-13. Relativity. 전지역. ★★★½(5개 만점) <한국일보 박흥진 편집위원/hjpark1230@gmail.com>

팀북투 (Timbuktu)

사티마와 키다네와 토야가 텐트집에서 단란한 한 때를 보내고 있다.

회교 근본주의 횡포-가족애 대비


사막에서 유목민처럼 자유롭게 살고 있는 가정의 평화를 가차 없이 유린하는 회교 근본주의의 횡포와 공포 그리고 우행을 신랄하게 비판하면서 아울러 가족애와 단결을 찬양한 아프리카국가 모리타니아의 작품으로 올 해 오스카 외국어 영화상 후보작이다.
영화의 톤이 고르지 못하고 서술도 다소 일관성이 없어 감정적 충격이 약하긴 하나 우리가 잘 모르고 있는 회교 근본주의의 현상을 생생하게 보여주고 있어 시의에도 맞고 또 그것에 대해  배우는 바도 있는 매우 재미있는 드라마다.   
다소 단점은 있지만 인물들의 성격 개발과 묘사가 뚜렷하고 연기도 좋고 또 태양이 작열하는 뜨거운 사막과 원주민들의 삶과 새빨간 진흙집을 비롯해 밝고 다채로운 의상 등 화면을 시적으로 가꾸어놓는 촬영이 아주 훌륭하다.
아프리카 말리의 팀북투는 최근에 회교 근본주의자들이 점령했다. 총을 멘 근본주의자들은 동네를 돌아다니면서 스피커로 각종 금기사항을 발표한다. 흡연과 축구와 음악이 금지되고 여자들은 뜨거운 낮에도 양말과 장갑을 껴야 한다. 
영화는 이렇게 심각하고 어두운 부분을 자주 유머로 다독이고 있는데 금기사항을 발표하는 사람의 언어가 지역 언어가 아니어서 불어와 영어로 통역해야 한다. 그리고 시장에서 생선을 파는 여자가 근본주의자들의 장갑을 끼라는 지시에 “아니 어떻게 장갑을 끼고 생선을 팔라는 말이냐”고 대어든다. 영화는 근본주의자들을 무기 좋아하는 꼭두각시처럼 그렸다. 
마을 밖의 사막에서 텐트를 치고 소 몇 마리를 키우면서 평화롭게 살고 있는 키다네(이브라힘 아메드)는 아내 사티마(툴루 키키)와 12세난 총명하고 독립심 강한 딸 토야(레일라 월랫 모하메드가 예쁘고 연기도 똘똘하게 잘 한다)와 함께 근본주의자들의 직접적인 지배 밖에서       기타도 치고 머리를 가리지도 않고 다소 자유롭게 산다. 이 집의 마지막 식구는 소떼를 돌보는 고아 소년 이사. 키다네 집의 이런 행동은 동네에서 했다가는 공개 매질감으로 영화는 셀폰을 쓰는 현대의 암흑기를 고발하고도 있다.  
그런데 키다네의 소가 동네 어부가 쳐놓은 그물 안으로 걸어 들어가면서 키다네와 어부 사이에 싸움이 일어나고 이 하찮은 분쟁 때문에 키다네 가족은 비극을 맞으면서 전연 기대치 않던 결말에 다다른다.  
보면 볼수록 피부로 직감하게 되는 감각적인 촬영과 아름다운 열사의 사막 그리고 토속적인 음악을 비롯해 월랫 모하메드의 연기 등이 좋은 볼만한 영화다. 아데라마네 시사코 감독. 
PG-13 정도. Cohen Media. 일부지역. <한국일보 박흥진 편집위원/hjpark1230@gmail.com>

켄지 미조구치의 흑백명작 2편

오하루의 인생 (Life of Oharu·1952)
마지막 국화 이야기 (The Story of the Last Chrysanthemum·1939)

오하루의 인생
(Life of Oharu·1952)


17세기 에도시대 자기 집 하인(토시로 미후네)과 사랑을 하다가 집에서 쫓겨난 뒤 귀족의 후처와 창녀와 시녀 노릇을 하면서 당시 남성위주의 일본사회의 계급과 신분의 엄격한 차별의 틀에 갇혀 평생을 불행하게 산 오하루(키누요 타나카)의 한 많은 일생을 그린 심오하고 아름답고 비극적인 드라마. 롱 테이크를 잘 쓰는 미조구치의 촬영이 눈부신 흑백명작.
얼굴과 몸이 모두 고운 오하루는 집에서 쫓겨나 군주의 씨받이로 팔려가 아들을 낳으나 다시 쫓겨나 집으로 돌아온다. 오하루의 아버지는 딸을 다시 창녀로 팔아먹으나 오하루는 여기서도 실패, 이번에는 남의 집 하녀로 팔려간다. 그러나 여기서도 쫓겨난 오하루는 부채 만드는 사람과 결혼하나 남편은 결혼 직후 강도에 피살된다.   
오하루는 절에 들어가 승려가 되려고 하나 여기서도 남자문제 때문에 쫓겨난다. 이어 자기가 아들을 낳아준 군주로부터 다시 부름을 받고 집안의 비밀유지를 위해 연금 상태에 처해진다. 오하루는 아들을 찾아 탈출하나 거지가 되고 만다. 148분. 30일 하오 7시30분. 해머 뮤지엄 내 빌리 와일더 극장(윌셔와 웨스트우드 310-206-8013)) ★★★★½(5개 만점)

마지막 국화 이야기 (The Story of the Last Chrysanthemum·1939) 

남편의 출세와 성공을 위해 자기를 희생하는 여인의 감동적인 드라마. 1885년 도쿄. 유명한 카부키 배우의 양자인 키쿠노수케 오노에(연극배우 쇼타로 하나야기)는 아버지의 대를 이어 배우로서 성공하려고 노력한다. 아직 실력이 모자라는 오노에에게 솔직하게 사실을 말해주는 사람은 오노에 가문의 갓난아기의 유모 오토쿠(카쿠코 모리).
그러나 키쿠노수케의 아버지가 아들과 유모 간의 스캔들을 염려해 오토쿠를 해고하면서 분노한 키쿠노수케는 혼자 연기 수업을 하려고 도쿄를 떠난다. 그리고 오노에를 내연의 처로 맞는다. 키쿠노수케는 아내의 격려를 받으며 연기를 연마, 마침내 도쿄의 유명한 카부키 단체에 입단할 기회를 맞는다. 이에 오노에는 남편을 위해 내연의 처 관계를 단절한다. 
그리고 마침내 키쿠노수케의 아버지도 오토쿠를 아들의 처로 인정하나 오토쿠는 폐병으로 죽음에 이른 처지다. 마치 늦가을 국화처럼 시든 오토쿠는 남편이 무대에서 명연기로 배우로서 승리하는 순간 숨을 거둔다. 흑백. 142분. 2월6일 하오 7시30분. 빌리 와일더 극장. ★★★★½(5개 만점)        <한국일보 박흥진 편집위원/hjpark1230@gmail.com>


아니타의 분수



로마에 가면 동전 몇닢은 꼭 준비해야 한다. 레스피기와 포 에이시즈가 교향시와 노래로 찬미한 트레비 분수에 던지기 위해서다. 던질 땐 분수에 등을 대고 뒤로 던지면서 로마에 다시 올 것을 기원하면 그 소원이 이뤄진다고 한다. 
나도 몇 년 전에 로마에 갔을 때 트레비 분수에 두 번에 걸쳐 매번 1유로짜리 동전을 던졌으면서도 도떼기시장을 방불케 하는 인파에 밀려 소원을 깜빡 잊었었다. 생각하면 지금도 아쉽기 짝이 없다.
콜러시엄과 스패니시 계단만큼이나 유명한 트레비 분수는 영화에도 많이 나온다. ‘로마의 휴일’에서는 로마 주재 미 신문기자 그레고리 펙이 평상복 차림으로 숙소를 빠져나온 공주 오드리 헵번의 사진을 찍으려고 이 분수에 견학차 온 어린 여학생이 목에 건 카메라의 끈을 손가락으로 잡아당기면서 빌려달라고 하다가 수행 여선생의 눈총을 받았다.
그리고 애천(Three Coins in the Fountain)에서는 로마에 사는 세 미국인 처녀들이 분수에 동전을 던지면서 로맨스를 기원, 정말로 꿈이 이뤄진다. 오스카상을 받은 이 영화의 주제가는 프랭크 시내트라와 카니 프랜시스 및 포 에이시즈 등 유명 가수와 보컬그룹 등이 노래해 빅 히트를 했다.
그러나 트레비 분수 하면 대뜸 눈앞에 선하게 떠오르는 영화는 이탈리아의 명장 페데리코 펠리니가 감독한 흑백영화 ‘달콤한 인생’(La Dolce Vita·1960)이다. 마치 그리스 신화에서 걸어 나온 여전사 아마존과 같은 풍만한 육체의 아니타 에크버그가 옷을 입은 채로 분수 안으로 첨벙첨벙 걸어 들어가 슬로 댄스를 추는 모습이야말로 저 세상의 것처럼 몽환적이다. 나도 영화를 보면서 아니타의 경악할 지경으로 거대하고 탐스러운 육체가 휘저어대는 율동에 압도당했던 기억이 난다.
어깨 밑으로 내려오는 치렁치렁한 금발에 젖무덤의 절반이 훤히 드러나고 옆이 길게 찢어진 검은 이브닝드레스를 입은 아니타가 폭포처럼 쏟아져 내리는 분수 속에서 긴 두 팔을 각기 아래위로 쭉 뻗은 채 눈을 감고 천천히 춤을 추는 모습(사진)은 몸 둘바를 모르게시리 유혹적인 제스처다. 이 장면 때문에 사람들은 트레비 분수를 지금도 아니타의 분수로 생각하고 있다.
옆에 있다간 다칠 것 같은 위험감을 느끼게 하는 폭발 직전의 힘차게 솟아 오른 거대한 두 개의 활화산과도 같은 젖가슴을 지녔던 스웨덴 태생의 배우 아니타 에크버그가 이달 11일 로마에서 83세로 타계했다.
39-22-37의 몸매를 지녔던 아니타는 20세에 미스 스웨덴에 뽑혀 부상으로 미국에 왔다가 할리웃에 들어섰다. 그러나 존 웨인이 나온 ‘블러드 앨리’와 딘 마틴과 제리 루이스가 나온 ‘화가와 모델’ 및 프랭크 시내트라와 딘 마틴이 공연한 ‘텍사스의 4인’ 등 아니타의 할리웃 영화들은 대부분 그의 육체미를 내세운 것들이었다. 그 중 그래도 나은 것이 ‘전쟁과 평화’에서의 헨리 폰다의 부정한 아내 역이지만 영화가 외화내빈이다.        
바이킹의 유전인자를 그대로 물려받은 아니타는 영화의 질과는 무관하게 1950년대 할리웃의 섹스심벌로 군림했는데 이런 그를 대뜸 국제적 스타로 만들어준 감독이 펠리니다. 펠리니는 아니타의 강력한 아름다움과 가득한 육체와 함께 그의 위풍당당한 태도와 귀족적 자세에서 프리 마돈나의 자질을 포착하고 아니타를 ‘달콤한 인생’에 전격 발탁했다.
마르첼로 마스트로이안니가 가십기자로 나온 ‘달콤한 인생’은 당시 로마의 옐로 저널리즘과 사회적 도덕적 타락을 비판하고 풍자한 작품으로 ‘파파라치’라는 말이 여기서 나왔다. 아니타는 이 영화 이후로도 ‘보카치오 70’과 ‘광대들’을 비롯해 ‘인터비스타’ 등 펠리니의 영화에  나오면서 1993년 그가 죽을 때까지 서로를 사랑하고 이해하는 친구관계를 유지했었다.
뭇 남성들을 왜소하게 만들었던 아니타를 놓고 밥 호프는 “스칸디나비아식 전채 이후 스웨덴에서 나온 가장 훌륭한 산물”이라면서 “아니타의 부모는 이로 인해 노벨 건축상을 받았다”고 농담을 했다. 이 보다 한 수 더 뜬 농담은 유명 가수이자 배우였던 에셀 머맨의 것. 머맨은 “아니타는 생각하는 남자의 던스 캡(공부 못하는 아이에게 벌로 씌우는 원추형 모자)이다-합이 두 개”라고 아니타의 벅찬 가슴을 찬양했다.     
그런데 아니타는 할리웃 활동 때 별명이 ‘아이스버그’(빙산)였다. 아니타가 할리웃의 절대군주들과 같았던 제작자와 감독들에게 대놓고 할 말을 했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아니타는 섹스심벌답게 할리웃의 숱한 빅 스타들과 로맨스를 불태웠는데 타이론 파워, 게리 쿠퍼, 에롤 플린, 율 브리너 및 프랭크 시내트라 등이 아니타의 연인들이었다.     
아니타는 결혼을 두 번 했지만 모두 실패하고 사망할 때까지 로마 교외에 있는 집에서 혼자 살았다. 이 집은 ‘인터비스타’에서 나온다. 
나는 아니타의 사망 소식을 듣고 할리웃 외신기자협회(HFPA)의 스웨덴 동료기자 마그너스에게 소감을 물었다. 그는 “내가 어렸을 때 내 엄마와 아빠가 스웨덴을 벗어나 국제적으로 명성을 날린 아니타를 크게 칭찬하는 것을 여러 번 들었다”면서 “그러나 어린 나에겐 아니타는 겁나게 생긴 괴이하고 나이 먹은 여자였다”고 회답했다. 활화산 아니타는 이제 사화산이 됐지만 늘 검은 드레스를 입고 트레비 분수 안에서 우리를 유혹하는 슬로 댄스를 추고 있을 것이다. 
                                                  <한국일보 박흥진 편집위원/hjpark1230@gmail.com>
                           

2015년 1월 26일 월요일

‘아메리칸 스나이퍼’ 감독 클린트 이스트우드




“인간이 계속 싸우고 죽이는 건 유전자 탓”


이라크전 실화를 다룬‘아메리칸 스나이퍼’(American Sniper)를 감독한 클린트 이스트우드(84)와의 인터뷰가 LA 다운타운에 있는 애슬레틱 클럽에서 있었다. 
총을 휘두르는‘황야의 무법자’요‘더티 해리’로 거칠고 사나운 남성의 대표상으로 여겨졌던 그도 나이는 못 속이는지 잿빛 머리에 고목의 등걸처럼 주름진 목을 한 모습이 다소 쇠약해 보였다. 그러나 그의 상표와도 같은 째려보는 눈매는 여전했다. 
이스트우드는 질문에 위트와 유머를 섞어 여유만만하게 대답했는데 기분이 좋은 듯이 부드러운 미소를 지어가며 상냥하게 굴었다. 자기 여자문제에 관해 얘기할 때는 부끄럽다는 듯이 얼굴을 붉히기까지 했다. 
이스트우드는 한국전 때 군에 징집됐으나 미국에서 근무했는데 인터뷰 후 기념사진을 찍을 때 필자가“나는 한국인”이라고 소개하자 그는“이젠 한국에 가야지. 그러나 1951년에는 안 간 것이 나았지”라고 말했다. 이에 기자가“한국에 가보라. 아름다운 나라”라고 종용하자 그는 큰 미소로 답을 대신했다.
‘아메리칸 스나이퍼’는 9.11사태 후 조국과 가족을 지킨다며 해군 특공대(SEAL)에 자원 입대해 이라크전에서 저격수로 활약, 160여명의 적을 사살한 텍사스 태생의 크리스 카일의 호전적인 실화로 카일로는 브래들리 쿠퍼가 나온다. 카일은 이라크전에 4차례나 참전한 뒤 제대, 2013년 2월 고향의 사격장에서 전투경험 후유증을 앓던 제대 해병의 총에 맞아 38세로 사망했다. 
이 영화는 15일에 발표한 제87회 오스카상 후보에서 작품과 남우주연 및 각색상 등 총 6개 부문에 올랐다.

―브래들리 쿠퍼와 일한 경험은 어땠는가.
“그는 일단 카일 역을 맡은 뒤로는 세트를 떠나서도 카일과 같이 살다시피 했다. 저녁을 먹을 때도 텍사스 액센트를 써가며 말을 했는데 영화를 다 찍을 때까지 카일을 떠나지 않았다.”  

―어떻게 이 영화를 만들게 됐는가.
“신문에 난 카일의 얘기와 그의 전투경험에 관한 책을 읽고 있는데 워너 브라더스에서 전화가 걸려와 영화를 감독해 달라고 부탁을 했다. 그래서 각본을 받아 읽고 있는데 이번에는 브래들리 쿠퍼가 전화를 걸어 연출을 맡아 달라고 해서 오케이를 했다. 그리고 촬영에 들어가기 전에 작품의 충실을 기하기 위해 쿠퍼와 함께 텍사스로 내려가 카일의 미망인을 비롯한 가족을 만났다.”

-성조기 앞에 섰을 때 어떤 기분이며 당신의 군대 경험에 대해서도 말해 달라.
“난 1930년대와 40년대에 자랐다. 11세 때 2차 대전이 일어났는데 그 땐 모두가 열렬한 애국자였다. 따라서 나도 애국주의 세대다. 그리고 2차 대전이 끝난지 얼마 안 돼 한국전이 일어났고 나도 1951년에 군에 징집됐다. 그러나 이 땐 2차 대전과 달리 우린 도대체 우리가 거기서 무얼 하고 있는 것인가 하고 회의들을 했다. 베트남전 때도 마찬가지다. 그리고 왜 우린 이렇게 계속해 싸우는 것이며 전쟁은 도대체 언제나 끝날 것인가 하고 크게 회의를 하게끔 됐다. 내 생각엔 역사는 평화의 편이 아닌 것 같다. 그러나 전쟁에는 창의적인 면도 있다. 전쟁 중에는 인간성과 함께 기술이 크게 발전한다. 그러나 그렇다는 사실은 부끄러운 일이다. 내 군대 경험을 말하자면 M1 같은 장총을 쏠 줄 안다. 여러 분의 눈알을 쏴 빼낼 수도 있다.”

―이라크전을 어떻게 생각하나.
카일(오른쪽·브래들리 쿠퍼)이 전우와 함께 적진상황을 살펴보고 있다.
“처음에 우리나라가 이라크에 들어갔을 때 난 그것에 반대했다. 그 이유는 내가 한국전을 비롯해 모든 다른 전쟁에 반대한 이유와 같다. 전쟁은 많은 고통이기 때문이다.”

―당신은 배우로서 또 감독으로서 매우 과감한 사람인 줄 아는데 실제로도 그렇게 겁이 없나.
“겁 없이 살 수야 없겠지. 공포가 당신의 마음을 사로잡는다면 그 삶이 행복할 수는 없으니 긍정적인 것을 찾아 나아가야 할 것이다.” 

―영웅이란 무엇인가.
“영웅이란 전쟁에서 자기 동료를 구하기 위해 자신을 희생하는 사람이며 불타는 집 안의 사람을 구하기 위해 그 곳으로 뛰어 들어가는 사람이다. 요즘은 전쟁에 나가는 사람을 다 영웅이라고 하지만 옛날에는 달랐다. 웬만해선 영웅이라고 안 했다. 전에 나는 뭔가 목에 걸려 숨이 막혀 하는 사람을 구해준 적이 있는데 그 때 날 보고 사람들이 영웅이라고 하더라. 그러나 그 것은 결코 영웅적 행동이 아니었다.”

―특수효과가 큰 구실을 하는 가상현실을 다룬 아이들과 젊은 사람들이 좋아하는 영화를 만들 생각은 없는지.
“나도 여러 분야의 영화를 좋아하고 또 영화는 장르마다 특색이 있지만 난 만화 속의 인물을 다루거나 미래를 그린 아이들의 영화에는 관심이 없다. 난 이오지마 전투와 같은 옛 역사에 더 관심이 많다. 그래서 이 전투를 일본군의 눈으로 본 영화도 만든 것이다.”

―왜 인간은 성서시대 이후로 지금까지 끊임없이 서로 싸우고 죽인다고 생각하는가.
“거 참 훌륭한 질문이다. 나도 그 문제를 어렸을 때부터 궁금하게 여겼는데 그것은 우리의 유전인자 탓인 것 같다. 그리고 우리가 원치도 않는 다른 나라에 민주주의를 심어놓으려고 하는데도 문제가 있다. 철학가들은 언제나 인간은 이성을 찾을 것인가 하는 질문을 해왔는데 어쩌면 우리는 그것을 결코 찾지 못할지도 모른다. 그것은 어찌 보면 삶의 하나의 사실이라고 하겠다.”

―요즘처럼 미국이 전쟁을 하고 있는 때에 이런 전쟁영화들이 사람들에게 무엇을 얘기하며 또 가르쳐 준다고 생각하는가.
“전쟁이란 극적이요 삶과 죽음이며 또 고난으로 결국 충돌과 갈등이다. 따라서 이런 것은 좋은 극적 소재다. 내 영화로 말할 것 같으면 전쟁에 가족 드라마가 포함됐다. 요즘 전쟁영화가 여러 편 나온 것은 영화계의 정기적인 사이클이다. 어느 한 장르의 영화가 특정기간에 많이 만들어지고 있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중요한 것은 좋고 흥미 있는 얘기가 있다면 만들라는 것이다.”

―당신의 여성관계와 사랑과 결혼관이 과거와 달라졌으며 또 아직도 사랑을 추구하기를 원하는지.
“그것들은 내게 매우 중요하며 그래서 이 영화도 만든 것이다. 이 영화는 카일과 그의 아내와의 관계와 그것의 유지에 관한 것이기도 하다. 내 자신으로 말할 것 같으면 사랑과 결혼에 성공한 편이 못되네. 두어 번 시도를 했으나 실패했다. 그러나 순간 순간적으론 성공하기도 했다. 나는 사랑이 매우 위대한 것이라고 생각하며 그것을 성취하는 사람들을 존경한다. 그러나 특히 요즘엔 그러기가 보통 어려운 것이 아니다. 왜냐하면 사람들을 끌어당기는 것이 너무 많고 또 각자의 이해관계가 서로 달라서 그렇다. 내 나이에 다시는 사랑을 안 한다고 할지도 모르겠으나 결코 그것을 장담할 수는 없는 일이다. 어떤 위대한 철학자가 ‘결코 아니다 라는 말을 결코 하지 말라’고 했거든.”

―당신은 16세짜리 막내를 비롯해 자손들이 많은데 그들과 어떻게 관계를 유지하는가.
“난 내 아이들뿐만 아니라 다른 사람의 아이들에게도 깊은 정을 느낀다. 나는 내 아이들에게 특히 교육을 비롯해 여러 문제에 있어서 도움과 조언을 주면서 그들이 가능한 최고의 기회를 가질 수 있도록 노력할 것이다. 한동안 내 유전인자가 맹활동을 해 아이들을 많이 보았지만 이젠 다 끝난 것 같다. 그러나 또 모르는 일이지.”           

―배우들에게 해줄 수 있는 충고는 무엇인지.
“너무 많이 생각하지 말라는 것이다. 그러다 보면 망친다. 배우로서 최고의 것은 본능을 따르라는 것인데 본능이 옳다고 느끼지 않을 땐 안 하면 된다. 난 배우들이 자기가 낫다고 느끼는 연기를 할 때면 그것이 얘기의 방향과 반대로 가지만 않는다면 허락하는 유연성이 있다.”  

-미국의 애국주의를 강조한 이 영화의 해외 반응에 대해선 어떻게 생각는지.
“난 내 영화가 어떻게 받아들여질 것인가에 대해선 생각하질 않는다. 그러나 내 영화는 모든 사람들의 감정을 다루고자 하기에 국제적으로 받아들여지기를 원하는 것도 사실이다.”   
―젊은 당신에게 충고를 준다면 무엇입니까.
“난 똑똑한 아이는 아니었다. 배우는 것이 아주 느렸지. 따라서 ‘속도 좀 내라’고 조언하겠다. ‘좀 더 많이 연습해라’고.”
                                                           <한국일보 박흥진 편집위원/hjpark1230@gmail.com>


겨울 잠 (Winter Sleep)


아이딘(왼쪽)이 자기에 등을 돌린 아내 니할에게 독선적인 말을 보내고 있다.

빈자와 부자의 세상에 대한 엄숙한 탐구


독선적이요 지적으로 오만한 남편과 그의 편견과 냉정한 가슴으로 인해 영육이 피폐해진 젊은 부인과의 부식해 가는 결혼관계를 해부하고 또 사소한 사건으로 말미암아 여러 겹으로 파장을 일으키는 가진 자와 못 가진 자의 관계를 탐구한 터키 영화로 궁극적으로 영혼 탐구의 엄숙한 걸작이다. 
지난해 칸영화제서 대상인 황금종려상을 받았는데 알다가도 모를 일은 15일에 발표한 오스카 외국어 영화상 후보에서 탈락했다는 사실. 기자가 지난해에 본 외국어 영화 중 가장 훌륭한 영화다. 머리를 질끈 싸매고 입시 공부하는 마음으로 봐야 할 대사가 많고 느린 상영시간 196분짜리의 진지한 영화다. 체홉의 작품을 바탕으로 만들었다. 
심오하고 사색적이며 영혼을 압도하는 영화로 칸영화제서 이미 상을 두 번이나 탄 터키의 명장 누리 빌지 세일란(‘기후’ ‘옛날 옛적 아나톨리아에’)이 연출했는데 롱샷으로 찍은 촬영과 암석과 말 달리는 초원 등 황홀한 정경 그리고 배우들의 뛰어난 연기가 절묘하게 조화를 이룬   감동적인 작품이다.
때로는 대사가 너무 길어 부담감을 느끼게도 되지만 그 대사 안에서 인물들의 성격이 표현되고 또 그것으로 인해 작품이 서술되기에 인내심을 갖고 보면 큰 기쁨을 맞보게 될 것이다. 특히 중간 부분에 이르기까지가 인내심이 필요한데 후반으로 가면서 유머마저 곁들여 극적 재미를 주면서 끝에 이르러선 충분한 보상을 받는 기분이 든다.
터키 중부 아나톨리아 지방의 동쪽에 있는 카파도시아의 작은 시골마을이 무대. 수염을 덥수룩하게 기른 중년의 은퇴한 배우 아이딘(할룩 빌지너)은 대지주. 그에게는 젊고 아름답고 총명한 아내 니할(멜리사 소젠)이 있으나 니할은 남편의 천상천하 유아독존식 지식인의 오만과 편견에 내몰리다시피 해 남편과 거의 대화나 관계가 없다. 
카파도시아는 기암괴석과 함께 푸른 초원이 공존하는 풍광이 수려한 곳으로 아이딘은 암석에 난 동굴들을 개조해 관광객을 상대로 한 호텔을 만들고 이름을 오텔로라고 지었다. 그리고 자기는 거실에 죽치고 앉아 동네 신문용 칼럼을 쓴다. 아이딘과 니할을 비롯해 아이딘의 집에 묵고 있는 그의 이혼한 도시 누나 네클라(데멧 크박) 등이 자아내는 을씨년스런 고독의 분위기가 으스스하다.
어느 날 아이딘이 충실한 하인 히다옛(아이베르크 펙칸)이 모는 지프를 타고 마을로 가던 중 아이딘의 소유인 집에 세든 가족의 어린 소년이 지프에 돌팔매질을 하면서 큰 사고가 날 뻔한다. 소년의 아버지는 얼마 전에 출소한 전과자로 실의에 빠져 술만 마신다. 그런데 아이딘은 자기 땅에 사는 여러 못 사는 사람들의 실상을 잘 알면서도 이를 못 본 체한다. 
이에 반해 니할은 동정심이 많은 여자로 동네 학교를 위한 기부금을 걷는데 열심인데 이를 안 아이딘이 니할을 윽박질러 그녀의 좋은 뜻을 뭉개버린다. 
길긴 해도 영화의 중요한 부분은 아이딘과 니할의 상호 충돌하는 대화와 네클라와 아이딘의 대화. 네클라와의 대화에서 부자의 가난한 사람들에 대한 냉소주의가 스며나온다. 아이딘이 오랫동안 도시에 가 있겠다고 나갔다가 샛길로 빠져 들른 친구 집에서 벌어지는 음주장면 등 몇 개의 이색적인 에피소드가 엄숙한 분위기를 다소 녹여줘 보는 마음도 쉬게 한다. 그리고 끝에 일말의 희망이 엿보인다. 
경직되다시피 듬직한 빌지너의 연기를 비롯해 배우들의 연기와 멀리 대자연 안에 하나의 점처럼 있는 인간과 장엄하고 아름다운 정경을 길게 잡은 촬영이 출중하다. 
성인용. 로열(310-478-3836) 등 일부극장.  ★★★★½(5개 만점)  
                                                      <한국일보 박흥진 편집위원/hjpark1230@gmail.com>

흑해 (Black Sea)


로빈슨(주드 로)이 해저에서 건져 낸 금괴를 만져보고 있다.

흑해에 가라앉은 황금을 찾아라


해저에 갈아 앉은 황금을 건지러 가는 현대판 해적 스릴러로 황당무계하지만 재미있는 얘기를 제대로 살리지 못해 산소부족으로 질식사하고 말았다. 당연히 액션 모험 스릴러인데도 케빈 맥도널드 감독(스코틀랜드의 마지막 왕)은 영화 속 인물들의 충돌과 후회와 갈등 묘사에 더 주력, 공연히 심각한 영화가 됐다. 
따라서 잠수함이라는 협소한 공간 안에서 일어나는 말 많은 연극 같은데 주드 로가 육체를 단단히 단련시킨 모습으로 잠수함 선장으로 나와 다부지고 엄격한 연기를 보여주지만 혼자서 영화를 살려낼 재간이 없겠다. 그리고 결말이 어떻게 끝날지도 뻔한 일로 ‘액션, 액션’하고 기다리다 지치겠다.                
난파선 화물구조 작업회사에서 일하던 전직 베테런 잠수함 선장 로빈슨(주드 로)은 회사에서 해고를 당한 뒤 함께 해고된 동료들을 모아 보물찾기에 나선다. 2차 대전 때 소련이 히틀러에게 보내는 금괴를 실은 독일 잠수함이 흑해 해저에 침몰했다는 얘기를 듣고 이를 건져내자는 것이다. 물주는 미국인으로 로빈슨은 소련제 고물 잠수함을 사서 개조한다.
승무원은 영국인 6명과 러시아인 6명 등 총 12명인데 일종의 감시책으로 미국인 물주가 보낸 하수인 대니얼스가 탔다. 영국 선원 중 한 명은 아직 어린 토빈으로 로빈슨은 토빈을 실직 후 자살한 동료 대신 배에 태웠다. 영화는 플래시백으로 로빈슨이 아내와 어린 아들과 헤어졌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로빈슨은 선원들에게 금괴를 건지면 모두에게 똑같이 배분하겠다고 약속하고 잠수함을 흑해로 몰고나간다. 그런데 좁은 배안에 서로를 별로 탐탁지 않게 여기는 거친 두 나라의 뱃사람들이 탔으니 충돌이 일어나지 않을 수가 없다. 이들의 다툼과 함께(말리는 것은 물론 로빈슨) 기계가 고장을 일으키면서 잠수함 영화의 상투적인 것들을 그대로 모방하고 있다.
그런데 황금에 눈이 먼 일부가 사람 수가 줄면 줄수록 자기에게 돌아올 몫이 많아진다는 것을 잘 알고 탐욕에 눈이 멀어 사람까지 잡는다. 마치 해저의 ‘시에라 마드레의 황금’을 연상시킨다. 액션이 가끔 있지만 신통치가 못한데 스릴러가 스릴과 긴장감이 결여돼 맥이 빠진다.
로의 연기가 볼만하고(때론 너무 굳은 표정이긴 하지만) 협소한 공간 안에서 벌어지는 상황을 찍은 촬영과 프로덕션 디자인 등은 좋다. 그러나 해저의 잠수함을 만든 컴퓨터 그래픽은 아주미숙하다. R. 전지역. ★★★(5개 만점)  <한국일보 박흥진 편집위원/hjpark1230@gma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