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이야기

2014년 11월 24일 월요일

‘퓨리’ 브래드 핏



“난 언제나 본능에 따라 사는 게 생활지침”


현재 상영 중인‘퓨리’에서 1945년 4월 2차 대전 종전 직전 독일전선에 투입된 미군의 셔만탱크를 4명의 전우들과 함께 몰고 독일군과 치열한 교전을 벌이는 고참상사 단‘워 대디’ 칼리어로 나온 브래드 핏(50)과의 인터뷰가 뉴욕에서 있었다.“늦어 미안하다”며 보무당당하게 인터뷰장에 들어선 콧수염을 한 핏은 작은 모자에 엷은 갈색 선글라스를 썼는데 나이답지 않게 젊어 보였다. 씩씩한 청년 같았는데 제스처와 함께 악동 같은 미소를 지으면서 농담을 섞어 차분하면서도 진지하게 질문에 대답했다.                                             
  
―영화에서 당신의 전우들로 나온 배우들과의 관계는 어땠는가.
“데이빗 에이어 감독은 우리를 급박한 상황에 넣어 우리들로 하여금 자신들의 강점과 약점을 배우도록 했다. 영화를 찍는 3개월 동안 우리는 맹훈련을 해 탄탄한 동아리로 뭉쳤다. 각기 성격과 배경이 다른 우리는 일종의 찢어진 가족으로 전쟁의 정신적 타격과 전쟁의 공포가 가져다주는 심리적 부담을 짊어져야 했다. 그 중에서도 나는 지도자여서 내 약점을 전우들에게 보여줄 수가 없었다.”

―당신은 여기서 독일어를 할 줄 아는 미군으로 나와 독일군을 때려잡는데 ‘인글로리어스 배스타즈’에 이어 이번이 두 번째 당신의 전쟁영화다. 당신과 독일과의 관계는 어떤 것인가.
“독일어 하느라 땀깨나 흘렸다. 나는 독일 미술의 열렬한 팬이다. 이 영화는 사람들이 한 이념에 매였을 때 어떤 일이 일어나는가를 보여주고 있는 것이기도 하다. 아까도 말했지만 영화는 인간의 공포에 흠집을 내는 전쟁의 충격을 다루고 있다. 난 독일어를 좋아하는데 부드럽게 말할 땐 아주 아름다워 고운 음악 같다.”

―2차 대전 참전 군인들의 자문을 받았는지.
“벌지 전투에서부터 여러 전투에 참전했던 사람들과 대화를 나눴다. 그들에 의하면 독일 탱크가 우리 것보다 성능이 월등했다고 한다. 그들의 포탄은 우리 탱크를 관통할 수 있을 정도로 막강했다. 그래서 우리 탱크 병사들이 많이 전사했는데 많은 군인들이 탱크 안에서 소사했다고 한다. 그들의 말에 충실한 영화를 만들려고 했다.”

―전쟁은 지금도 끊이지 않고 일어나고 있는데 이런 현상과 2차 대전과 어떤 상관관계라도 있다고 보는가.
“그것에 대한 명답은 모르겠다. 그 때와 지금이 다른 점이 있다면 그 때는 전쟁명분이 뚜렷했던 반면 지금은 그것이 애매모호하다는 점이다. 여하튼 나는 이 영화처럼 탱크부대를 자세히 묘사한 영화를 본 적이 없다. 이 영화는 잠수함 전투를 그린 독일 영화 ‘보트’의 탱크판이라고 하겠다. 나는 영화를 찍는 동안 ‘서부전선 이상 없다’를 읽었다. 책은 독일 보병의 얘기이지만 그것이 우리의 얘기와 너무나 같다는데 놀랐다.”
‘워 대디’(앞줄 왼쪽)가 이끄는 미군 탱크가 적진을 향해 달리고 있다.

―당신이 유럽에서 이 영화를 찍을 때 당신의 부인 앤젤리나는 호주에서 또 다른 전쟁영화를 찍으면서 서로 사랑의 편지를 교환했다고 들었는데.
“우린 동시에 일하지 않는데 이번엔 스케줄이 잘 못돼 나는 유럽에서 앤젤리나는 태평양에서 일하게 됐다(연말에 개봉될 태평양전쟁 실화인 ‘언브로큰’을 감독). 그래서 우리는 옛날에 군인들이 사랑하는 사람들에게 편지를 썼듯이 이메일과 스카이프로 편지를 교환했다.”

―얼마 전의 결혼을 축하한다. 그 후로 뭐 변한 것이라도 있는가.
“이제 진짜로 결혼한 남자처럼 느껴진다. 우린 이미 아이가 여섯이나 있어서 결혼은 이미 지나간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아이들이 우리가 결혼하기를 원했다. 결혼 후 그것이 단지 하나의 축하행사가 아니라 서로의 언약을 더욱 깊게 하는 것이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이 영화는 시상시즌에 앤젤리나의 영화와 경쟁을 할지도 모르는데 어떻게 생각하는가.
“내 영화는 종종 내 친구들의 것과 상을 놓고 경쟁을 하는 수가 있었다. 그것은 나로서나 내 친구로서나 다 축하할 일이다. 앤젤리나의 영화는 엄청난 난관을 이겨낸 인간 정신의 승리에 관한 것으로 규모가 크고 매우 훌륭하다. 우린 서로 결코 경쟁하지 않는다. 나는 앤젤리나가 모든 상을 다 타기를 바란다.”              

―당신과 앤젤리나는 어떻게 서로 스케줄을 조절하는가.
“언제나 누군가는 아이들과 같이 있도록 번갈아가면서 일하도록 짠다. 내가 배우로 일할 때는 앤젤리나가 감독으로 일하는 식이다. 어쨌든 이번에는 우리가 서로 아이들을 반씩 나눠 돌보면서 시간이 나면 서로 방문하는 식으로 보냈는데 시간 짜기가 쉽질 않았다.”     

―당신은 제작자이기도 한데 제작자와 배우가 서로 다른 점은 무엇이며 감독도 하겠는가.
“감독은 시간을 너무 많이 요구하는 일이어서 다른 할 일이 많은 나로선 할 생각이 없다. 디자인 계통의 일을 하고 싶다. 제작자로선 뭔가 문화에 기여할 수 있는 것을 만든다는 것에 자부심을 갖게 된다. 난 내 견해와 취향에 맞는 얘기를 영화로 만든다는 주관이 뚜렷하다.”     
―당신은 지금 아내가 감독하고 공연도 하는 영화 ‘바이 더 시’(By the Sea)에 나오고 있는데 아내는 세트에서 어떤 주인 노릇을 하는가.
“엄청나게 엄격하다. 유럽을 무대로 슬픔을 다루는 부부에 관한 아름답고 우아하며 또 내밀한 얘기다. 굉장히 도전적인 작품이다. 아내가 하는 일에 큰 자부심을 느낀다. 결혼 14년에 접어든 부부의 미래에 대한 회의와 그들 주변 사람들에 관한 매우 고상한 얘기다.”

―어렸을 때 가족이 한 식탁에 앉아 저녁을 먹었는가.
“우리는 언제나 저녁을 함께 먹으려고 노력했다. 그 시간이야 말로 각자의 느낌과 하루의 일을 얘기하는 시간이었다. 그러나 우리도 다른 모든 가족처럼 어쩌다 식탁에 모여 다툴 때가 있었다.”

―앤젤리니와 함께 한국에 간다는 말을 들었는데 사실인지.
“앤젤리나의 ‘언브로큰’ 스케줄을 몰라 함께 갈지는 모르겠지만 난 가려고 한다. 내일 무슨 일이 생길지는 모르지만 다시 그 곳에 가려고 시도하고 있다. 11월 중순 쯤이 될 것 같다.”

―당신은 이제 50세인데 25세 때 당신이 생각한 50세의 당신은 어떤 모습이며 지금 당신은 자신의 미래에 대해 확신감을 느끼는가.
“나는 내가 앞으로 어떻게 살고 싶고 또 나의 아이들과 아내로부터 무엇을 원할 것인지에 대해서도 명확히 알고 있다. 난 5년 또는 10년 앞을 계획하고 살지는 않는다. 난 언제나 본능에 따라 살았고 또 그것을 믿는다. 그것이 나의 생활 지침입니다.”

―당신은 지난해에 오스카 작품상(12년 노예생활)을 탔고 앤젤리나는 영국 여왕으로부터 훈장을 받았는데 삶에 얼마나 만족하는가.
“아내가 훈장 받은 것 정말로 훈훈한 일이다. 우리 가족의 아름다운 날이었다. 우리 가족이 모두 왕실 접견을 했는데 아이들이 고개를 숙여 ‘여왕 폐하’라고 인사를 하는 모습을 보는 것은 정말로 기쁜 일이었다.”                  

―당신 아내보다 12살 많은 것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가.
“정확히 말해 11살 반이다. 그러나 우린 다 같은 성숙한 나이다. 그것이 우리 부부간 조화의 비결이다. 우린 전연 다른 점을 못 느낀다. 난 언제라도 젊음과 지혜를 바꿀 용의가 있다. 

―오는 크리스마스를 어떻게 보낼 것인가.
“아직 거기까진 안 생각했지만 일을 잠시 접어놓고 가족과 함께 여행을 하고 싶다.” 

―밀폐된 탱크 안에서 무엇을 생각했는가.
“탱크 안은 사실 평화로웠다. 마치 수영장 물에 머리를 담근 기분이었다. 비록 냄새가 나는 좁은 공간 안에 다섯 명이 비비고 앉아 있었지만 곧 익숙해졌다. 사흘이 지나니 아주 편하더라. 마치 자궁 안에 있다는 느낌이었다. 어떤 날은 아침에 탱크 안에 들어가 저녁에 나올 때도 있었는데 점심도 그 안에서 먹었다.”

―배우로서 어떻게 당신의 연기를 연마하는가. 영화를 보는가.
“영화를 본다. 각본을 읽고 감독을 만나기 전까지는 영화 출연에 마음을 안 둔다. 일단 출연을 정하면 준비를 하는데 준비야 말로 모든 것이다. 준비를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 좋은 연기와 진짜로 좋은 연기의 차가 난다. 그래서 나는 역을 위해 연구하고 조사하기를 부단히 한다.”   

―앞으로 더 성취하고자 하는 목표가 무엇인가.
“영화인과 아버지 그리고 남편과 아내의 동반자로서 나를 발전시키는 것이다. 그리고 디자인에 대한 열망을 이루고 싶다.”

―배우로서 어떻게 성장했다고 생각하는가.
“시간이 흐르면서 자신의 기능과 재능을 발전시키는 것이다. 난 요즘 재능 있는 젊은 배우들이 자신들의 재능을 충분히 개발하기도 전에 스스로를 소모하는 것에 대해 우려한다. 배우란 자기 기능을 부단히 연마할 때 비로소 성공할 수가 있다. 배우고 이해하는 것이다. 그것은 마치 수수께끼를 푸는 것과도 같은데 난 지금도 카메라 앞에 서면 이 수수께끼를 푸는 일에 몰두하곤 한다.”
                                                   <한국일보 편집위원 / hjpark1230@gmail.com>
    

‘헝거 게임: 목킹제이 제1부’ (Hunger Games: Mockingjay Part 1)

캐트니스(제니퍼 로렌스·앞)와 게일(리암 헴스워드)이 캐피톨의 공습을 피해 도주하고 있다.

“캐트니스, 혁명의 지도자가 되어주오”


 3부작 베스트셀러를 원작으로 만든 빅히트작의 제3편으로 ‘해리 포터’와 ‘트와일라이트’ 시리즈 마지막 편이 둘로 나뉘어 만들어졌듯이 이것도 제1부와 제2부로 갈라서 만들었다. 시리즈 종결편인 제2부는 내년 11월에 개봉되는데 돈벌이가 된다면 무슨 짓이라도 하는 영화사(이 영화는 Lionsgate가 배급)의 탐욕이 관객을 우롱하는 행패다.
‘헝거 게임’은 골수팬들이나 즐길 영화로 시리즈를 계속 따라가지 않은 사람들에게는 무의미한 영화에 지나지 않는다. 이 영화는 제니퍼 로렌스를 비롯한 올스타 캐스트가 나오는데다가 모양새도 좋고 액션과 드라마를 고루 섞어 그런대로 즐길 만은 하나 제2부를 위한 2시간짜리 예고편 같은데 생명력이나 살아 숨 쉬는 기운이 결여돼 그냥 손상된 곳 없이 만들어진 물품 같다.
제2편은 주인공인 캐트니스 에버딘(로렌스)에 의해 헝거 게임이 완전히 파괴되는 것으로 끝난다. 제3편의 제1부는 억눌린 자들의 혁명 봉기를 고취시키는 역을 맡은 일종의 잔 다크로 나오는 캐트니스의 혁명 지도자가 되는 과정을 그렸다. 
캐트니스가 캐피톨의 독재자 스노(도널드 서덜랜드)의 공격을 피해 지하 깊숙이 콘크리트 벙커를 만들어 사는 피압박자들의 본거지로 혁명의 온상인 디스트릭 13에서 충격과 악몽에서 깨어나면서 시작된다. 스노의 지배하에 있는 파넴의 한 부분인 디스트릭 13의 대통령은 알마 코인(줄리안 모어). 
알마의 목표는 캐트니스를 캐피톨을 전복시킬 혁명의 지도자가 되도록 설득시키는 것. 알마와 함께 캐트니스를 설득하는 사람들은 스노를 배신한 헝거 게임 고안자 플루타크(필립 시모어 하프만-영화를 올해 마약과다 복용으로 사망한 그에게 헌정했다)와 컴퓨터 귀재 비티(제프리 라이트). 
이들은 캐피톨을 뒤엎을 혁명을 학수고대하는 디스트릭 13의 주민들을 위해 캐트니스가 지도자로 나서줄 것을 요구하나 캐트니스는 처음에 이를 거절한다. 이런 캐트니스의 마음을 돌리게 하는 것이 죽은 줄 알았던 사랑하는 피타(조쉬 허처슨)의 TV 방송 인터뷰. 그런데 캐피톨의 포로가 된 피타는 방송을 통해 디스트릭 13 주민들에게 봉기를 포기하라고 종용한다. 세뇌를 받았음이 분명하다.
캐트니스는 피타의 이런 말에 실망을 하지만 그를 구하겠다는 일념과 자기가 살던 디스트릭 12가 캐피톨의 공격을 받고 폐허가 되고 주민들은 피난민들이 된 참혹한 모습을 보고 마음을 바꾼다. 이런 캐트니스의 옆을 바짝 따르는 남자가 캐트니스의 충실한 친구 게일(리암 헴스워드). 
그리고 알마는 캐트니스의 일거수일투족을 크레시다(나탈리 도머)가 이끄는 4인조 비디오카메라 촬영팀으로 하여금 영상으로 담게 한 뒤 이를 파넴 전체 주민들의 혁명분위기 고취용으로 쓴다. 우디 해럴슨과 엘리자베스 뱅스가 전편에 이어 다시 나온다. 배우들의 연기를 거론할 그런 영화는 아니다. 프랜시스 로렌스 감독. PG-13. ★★★(5개 만점)
                                                    <한국일보 편집위원/hjpark1230@gmail.com>



‘인천’은 터키다

캡션 추가

27일은 매사에 감사하면서 터키고기를 먹는 추수감사절이다. 그런데 나는 미국에 산지 30년이 넘는데도 아직까지도 터키고기가 별로다. 먹긴 먹는데 그레이비 맛에 먹는다고 하겠다.
이런 터키고기를 먹을 때마다 생각나는 것이 영화계서 흥행에 참패한 영화를 터키라고 부른다는 사실이다. 1920년대부터 형편없는 연극이나 영화를 터키라고 부르기 시작했는데 그 이유가 터키는 미련하기 때문이라고.
터키고기 먹으면서 구경할 만한(?) 할리웃 역사에 길이 남을 터키 영화를 몇 편 소개한다.
먼저 맥아더의 인천상륙작전을 다룬 ‘인천’(1982·사진)은 한국인들에겐 씁쓸한 뒷맛을 남기는 터키다. 로렌스 올리비에가 맥아더 장군으로 주연하고 토시로 미후네, 재클린 비셋 그리고 이낙훈과 남궁원이 공연했는데 혹평과 함께 흥행서도 망 했다.
통일교 돈으로 만들어 말이 많았는데 나는 서울의 한국일보 김포공항 출입기자 시절 영화촬영차 한국을 방문한 올리비에를 만나 인터뷰를 했었다. 어쩌자고 셰익스피어의 대가가 이런 영화에 나왔는지 불가사의할 뿐이다.
그러나 터키 중 터키로 영화사를 들어먹은 영화는 ‘디어 헌터’로 오스카 감독상을 탄 마이클 치미노의 ‘천국의 문’(Heaven’s Gate·1980)이다. 1880년 와이오밍주의 존슨카운티에서 일어난 유럽서 이민 온 농부들과 이들을 몰아내려는 돈과 권력을 쥔 목축업자들 간의 결전을 그린 웨스턴이다.
크리스 크리스토퍼슨, 크리스토퍼 월큰 및 이자벨 위페르 등 호화 캐스트의 영화는 제작비 및 제작기간 초과로 화제가 됐었는데 완성된 영화는 상영시간이 무려 219분. 개봉되면서 비평가들의 악평을 듣고 며칠 만에 극장서 거둬들인 뒤 149분짜리로 재편집해 내놓았지만 비평가나 관객의 반응은 마찬가지였다.  
그래서 영화를 만든 유나이티드 아티스츠(UA)의 모회사인 투자보험회사 트랜스 아메리카는 UA를 MGM에게 팔아넘기고 영화사업에서 손을 뗐다. 이 후 ‘천국의 문’은 지금까지 흥행 참패 영화의 대명사가 되고 있다. 나는 219분짜리로 영화를 봤는데 생각보다 훨씬 좋았다. 나는 몇년 전에 한 파티에서 여성으로 성전환중이던 치미노를 만났을 때 그에게 “나는 ‘천국의 문’을 좋게 봤다”고 말했더니 치미노는 “고맙다”며 미소를 지었었다.
영화사상 최악의 캐스팅 영화라는 오명을 지닌 것이 ‘정복자’(The Conqueror·1956)다. 존 웨인이 콧수염을 한 징기스칸으로 나오고 내가 좋아하던 빨강머리의 수전 헤이워드가 타타르족 공주로 나오는 해괴망측한 액션 사극이다.
하워드 휴즈가 제작한 영화는 네바다주의 핵폭탄 실험장소에서 가까운 유타주의 세인트로지에서 찍었는데 공교롭게도 출연 배우들인 웨인과 헤이워드 및 아그네스 모어헤드와 페드로 아르멘다리스 그리고 감독 딕 파웰이 모두 암으로 사망했다.
모두 오스카 수상자들인 워렌 베이티와 더스틴 호프만이 공연한 코미디 ‘이쉬타’(Ishtar·1987)도 역사적인 터키다. 돈 벌어 보겠다고 모로코에 온 서푼짜리 라운지 가수들의 얘기로 베이티와 호프만의 연기가 가관이다. 5,500만달러의 제작비를 들여 14만3,700달러를 벌었다.
오리가 터키가 된 영화가 만화가 원작인 ‘오리 하워드’(Howard the Duck·1986)다. 무지무지하게 재미없고 엉성한 영화로 가혹한 평을 받아 주연 리아 탐슨 등 출연 배우들의 할리웃 생애가 내리막길을 걷게 된다.        
‘인천’처럼 종교단체가 만들어 구설수에 올랐다가 비평가와 관객 모두로부터 외면을 당한 영화가 ‘배틀필드 어스’(Battlefield Earth·2000). 사이언톨로지 창시자 L. 론 허바드의 책을 원작으로 사이언톨로지의 신봉자인 존 트라볼타가 나온 공상과학 영화로 나는 영화를 보다가 견디지 못하고 중간에 나왔다.
‘원초적 본능’을 만든 폴 베어호벤 감독이 연출한 ‘쇼걸즈’(Showgirls·1995)도 야한 터키다. 베가스 쇼걸들의 일상을 다룬 영화인데 본의 아니게 우습다. 혹평을 받아 주연 엘리자베스 버클리의 연기생활이 석양 길로 접어들고 말았다. 스타들이 역 선정에 신경을 곤두세우는 까닭이 여기에 있다.
당시 연인 사이였던 제니퍼 로페스와 벤 애플렉이 공연한 ‘질리’(Gigli·2003)는 하마터면 둘의 생애를 망쳐 놓을 뻔했던 악화다. 제작비 5,400만달러에 수입은 고작 600만달러. 버클리와 달리 ‘쇼걸즈’보다 더 나쁜 터키에 나오고도 정정한 여배우가 할리 베리다. 베리는 목불인견의 영화 ‘캣우먼’(Catwoman·2004)에 나와 공연히 몸을 비비 꼬아대 그 해 ‘래지’ 여우주연상을 탔다.
‘래지’(Razzies) 상은 해마다 오스카 시상식 전날 한 해 최악의 작품과 감독 그리고 배우 등에게 주는 상. 이상을 탄 배우들로는 실베스터 스탤론, 패리스 힐튼 및 에디 머피 등이 있고 B급 배우 로널드 레이건은 생애업적상을 탔다.
그러나 뭐니 뭐니 해도 할리웃 터키의 원조는 ‘글렌 또는 글렌다’(Glen or Glenda·1953)와  ‘외계로부터 온 플랜 9’(Plan 9 from outer Space·1959)을 감독한 에드 우드 주니어다. 돈도 재능도 없었던 그의 영화는 아이들의 홈무비 수준이다. 우드 주니어의 얘기는 팀 버튼이 감독하고 자니 뎁이 주연한 ‘에드 우드’(Ed Wood·1994)에서 재미있게 재현됐다. 해피 댕스기빙!
                                <한국일보 편집위원/hjpark1230@gmail.com>

2014년 11월 19일 수요일

타이론 파워 탄생 100주년

 ‘카스틸의 캡튼’. 여배우는 진 피터스.

잘 생긴 게 ‘핸디캡’... ‘진지한 배우 꿈’ 못 이루고 44세에 요절


할리웃에서 잘 생긴 얼굴 때문에 연기력을 제대로 인정 못 받고 또 통속적인 오락영화에만 나와야 했던 대표적인 배우가 할리웃 황금기의 수퍼스타 타이론 파워였다. 6피트 키에 새카만 눈썹과 깊고 큰 눈 그리고 코끝이 약간 도드라진 절세 미남이자 매력 만점인 파워하면 대뜸 떠오르는 영화가 스와시버클러인 칼싸움 영화다. 그의 많은 스와시버클러 중에서도 가장 유명 것은 아마도‘조로의 마크’(The Mark of Zorro·1940)일 것이다. 여기서 조로로 나오는 파워가 사악한 라이벌 바질 래스본과 칼부림을 하는 마지막 클라이맥스는 칼싸움 영화의 백미 중 하나로 꼽히고 있다.
파워는 22세 때 영국의 보험회사에 관한 드라마인 ‘런던의 로이즈’(Lloyd’s of London·1936)에 나오면서 대뜸 할리웃의 스타로 부상했는데 이 영화의 프리미어 후 6개월이 채 안 돼 차이니스극장 앞 콘크리트에 손과 발자국을 남겼다.
1939년에 이르러 그는 미키 루니에 이어 두 번째로 흥행성적이 좋은 남자 배우로 부상했는데 이 해 나온 그의 두 영화로 웨스턴인 ‘제시 제임스’(Jesse James)와 멜로드라마 ‘비가 내렸다’(The Rains Came)는 그 해 최고 흥행성적 4위권 안에 들었다.
그러나 연극계서 활동한 가정에서 태어난 파워는 스타로서만 만족 못하고 진지한 배우로 인정  받으려고 노력했으나 당시 배우를 전속으로 계약한 뒤 회사 마음대로 사용하던 스튜디오 체제 때문에 제대로 이 꿈을 이루지 못했다. 파워는 생전 배우가 되기 훨씬 이전에 스타가 된 사람이다.
파워는 1914년 5월5일 오하이오주 신시내티에서 출생해 1958년 11월15일 스페인 마드리드에서 44세로 요절했다. 이탈리아의 글래머 스타 지나 롤로브리지다와 공연하던 ‘솔로몬과 시바’(Solomon and Sheba)를 촬영하던 중 심장마비로 사망했는데 파워의 대타로 율 브린너가 솔로몬으로 나왔다.
올 해로 파워 출생 100주년을 맞아 할리웃 뮤지엄(1660 노스 하일랜드)에서는 ‘타이론 파워: 남자, 신화 & 영화 우상’이라는 제목으로 전시회를 연다. 전시회는 연말까지 계속된다.
전시회에는 파워의 개인적 및 영화인으로서의 삶과 세 번의 결혼과 세 명의 자녀에 관한 자료를 비롯해 그가 나온 영화들의 각종 기념물 등 총 400여점이 전시된다. 전시품들 중에는 파워가 투우사로 나온 ‘혈과 사’(Blood and Sand·1941)의 의상과 다른 영화들의 로비 카드와 포스터와 프레스킷과 책자 및 영화음악의 악보와 각본들이 선보인다.
이와 함께 14일에는 반스달 갤러리 극장(4800 할리웃·전화번호 323-644-6275)에서는 파워가 나온 뮤지컬 ‘알렉잰더의 랙타임 밴드’(Alexander’s Ragtime Band·1938)를 그리고 15일에는 그의 또 다른 명작 스와시버클러 ‘카스틸의 캡튼’(Captain from Castile·1947)이 각기 상영된다. 또 15일 오전에는 할리웃의 할리웃 포레버 장지에 있는 파워의 무덤에서는 그를 추모하는 모임이 열린다. 
전문가들은 파워가 진지한 배우로서 제대로 평가를 받지 못한 이유를 그가 너무 잘 생겼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파워도 이런 핸디캡(?)을 극복하고 진지하고 심각한 역을 맡으려고 무진 애를 썼으나 그의 전속사인 폭스가 이를 허락하지 않았다.
피워는 2차 대전에 해병으로 근무한 뒤 제대해 할리웃에 복귀하면서 자신의 상표가 되다시피 한 칼싸움 영화나 로맨틱 코미디를 피하려고 마음을 먹었다. 그래서 그는 폭스사 사장에게 “5편 이상의 이런 종류의 영화에 나올 테니 대신 내가 원하는 영화에도 나오게 해 달라”고 간청, 뛰어난 느와르 영화 ‘악몽의 골목길’(Nightmare’s Alley·1947)에 나왔다. 
여기서 파워는 순회곡예단의 손님 끄는 남자로 나와 마음을 읽는 여자와 짜고 목적을 위해 음모를 꾸미는데 훌륭한 연기를 한다. 그러나 폭스는 이 영화를 위해 선전도 하지 않고 일찍 극장에서 철시를 한 뒤 ‘카스틸의 캡튼’을 예정보다 빨리 개봉했다. 
파워가 나온 또 다른 훌륭한 드라마로는 빌리 와일더가 감독한 ‘검사 측 증언’(Witness of the Prosecution·1957)과 진 티어니와 공연한 서머셋 모음의 소설이 원작인 ‘면도날’(Razor’s Edge·1946)이 있다. <한국일보  편집위원/hjpark1230@gmail.com>


폭스캐처 USA(Foxcatcher USA)

마크(채닝 테이텀·왼쪽)가 존(스티브 카렐)으로부터 레슬링 지도를 받고 있다.

긴장… 갈등… 마치 스릴러 같은 레슬링 영화


1996년에 발생한 펜실베니아주의 억만장자 존 E. 뒤판트의 미 레슬링 올림픽 챔피언 데이브 슐츠 살인사건을 다룬 단단히 조여진 어둡고 긴장감 가득한 심리드라마이자 성격탐구 영화로 보는 사람의 마음을 어지럽게 만드는 강렬한 힘을 지녔다.
묵직한 영화로 내용과 연기와 연출 그리고 촬영 등 여러 부문에서 상감인데 특히 볼만한 것은 코미디언 스티브 카렐과 별로 무거운 역을 하지 않았던 테이텀 채닝의 극적인 변용. 둘이 과거의 틀을 벗어나 보여주는 심각하고 진지한 연기는 경탄을 금치 못하게 한다.
둘 다 올림픽 레슬링 메달리스트인 데이브와 그의 동생 마크 그리고 이들을 물심양면으로 후원한 존의 삼각관계를 다루었는데 상영시간이 134분인데도 얘기에 군더더기가 없다. 
해괴한 얘기를 심리적으로 또 감정적으로 바짝 조인 베넷 밀러 감독(‘카포티’ ‘머니볼’-올 칸 영화제 감독상 수상)의 완숙되고 튼튼한 연출력 때문에 무슨 공포영화를 보는 듯한 한기마저 느끼게 된다.
둘 다 1984년 LA 올림픽의 레슬링 금메달리스트인 데이브(마크 러팔로)와 마크(테이텀)는 형제. 성격이 밝고 긍정적인 데이브는 자신들의 부모가 이혼한 뒤로 동생 마크를 돌봤는데 둘은 형제애가 돈독하면서도 침울한 성격의 마크는 늘 형의 그림자를 못 벗어난다는 강박관념에 잡혀 있다.
데이브는 1988년 서울 올림픽을 앞두고 코치로서 마크와 맹훈련에 들어가는데 영화는 둘의 레슬링 장면을 통해 형제간의 사랑과 갈등을 상징적으로 잘 묘사하고 있다. 그런데 어느 날 난데없이 펜실베니아의 밸리포지에 대규모 저택과 경마용 녹초지 폭스캐처를 소유한 존(카렐)에게서 마크에게 초청장이 날아든다.
폭스캐처에 있는 자신의 체육관에서 서울 올림픽에 대비해 훈련 중인 레슬링 팀에 합류하라는 것이다. 이에 마크는 데이브에게 함께 가자고 종용하나 아내(시에나 밀러)와 어린 두 아이가 있는 가정적인 데이브는 집을 떠날 수 없다고 사양한다.
마크가 혼자 폭스캐처에 도착하면서 존의 영접을 받는다. 존으로 분장한 카렐의 얼굴을 알아볼 수가 없다. 커다란 가짜 코에 눈썹이 거의 없는 창백한 색깔의 얼굴을 한 존은 마치 인조인간처럼 괴이하고 병적인 모습. 게다가 이상한 억양으로 말까지 느리게 해 보고 있자니 기분이 으스스하다.
존은 일종의 과대망상증자요 자기가 원하는 것은 무조건 성취해야 만족하는 이고 투성이의 인간으로 마크와 팀을 가혹하게 훈련시킨다. 그리고 팀의 실력을 향상시키려고 마크에게 데이브를 코치로서 폭스캐처로 오게 하라고 보챈다. 이에 데이브가 가족과 함께 폭스캐처로 이사 오면서 3인 간에 깊은 관계가 맺어진다.
그러나 다시 형의 후광에 자신이 가려졌다고 생각하는 마크는 개인적으로 선수로서 타락의 길을 걷는데 데이브는 이런 동생을 어떻게 해서든지 구원하려고 모진 애를 쓴다. 여기에 존이 데이브를 무시하고 팀의 코치 노릇을 자처하면서 존과 데이브의 관계에 갈등이 인다. 마크를 비롯한 폭스캐처 팀은 존을 코치로 서울 올림픽에 참가하나 메달권에서 밀려났다.
연기들이 모두 훌륭한데 그 중에서도 뛰어난 것은 카렐의 연기. 완전히 자신의 생애를 뒤바꾸어 놓을 경탄할 연기로 살아 있는 괴물을 보는 것 같다. 
R. Sony Classics. 랜드마크(310 -470-0492), 아크라이트(323-464-4226), 센추리15(888- AMC-4FUN) ★★★★(5개 만점) <한국일보  편집위원/hjpark1230@gmail.com>

홈스맨(Homesman)

조지(왼쪽)가 메리 비에게 험한 여정에 대해 훈시를 하고 있다.

‘다시 동부로’여성들의 거친 여정 담은 이색 웨스턴


2005년 웨스턴 ‘멜퀴아데스 에스트라다의 세 번의 매장‘으로 감독으로 데뷔한 배우 타미 리 존스의 두 번째 감독작품으로 그가 주연도 한 이색적인 웨스턴이다. 우리에게 잘 알려지지 않은 개척시대 서부정착에 실패하고 동부로 돌아가는 사람들의 여정을 그린 영화로 서부 광야처럼 거칠고 에누리 없이 각박하다. 그러나 이런 가혹한 환경 속에 인간적인 면을 강조해 오히려 훈기마저 느끼게 된다.
특히 이 영화는 서부개척 시대의 여자들의 얘기를 다루고 있는데 윌리엄 웰만이 감독하고 로버트 테일러가 주연한 웨스턴 ‘서부로 가는 여자들’(Westward the Womanㆍ1951)을 연상케 한다. 비록 ‘홈스맨’의 여자들은 서부를 떠나 동부로 가고 있긴 하지만.
네브래스카주에서 농장을 일궈 성공한 신심과 정의감이 강한 31세의 노처녀 메리 비 커디(힐라리 스왱크)는 열심히 남편감을 물색하나 누구도 줏대가 센 그녀와 결혼하려고 하지를 않는다. 그런데 메리의 이웃들인 세 여자가 혹독한 서부환경에 지쳐 정신이상자들이 된다. 아라벨라(그레이스 거머-메릴 스트립의 딸)는 장질부사로 세 아이를 잃었고 테올린(미란다 오토)은 갓난아기를 변기통에 내던졌고 그로(손자 릭터)는 귀신에 씌었다. 
동네 목사(존 리트가우)의 주선으로 아이오와주의 목사 부인(메릴 스트립)이 이들을 받아주기로 했는데 문제는 이들을 아이오와주까지 데리고 갈 남자가 없다는 점. 미친 여자들 수송을 자원한 사람이 메리 비. 
메리 비는 미친 여자들을 태운 마차를 몰고 길을 떠난 지 얼마 안 돼 탈영병이자 타인 명의의 광구횡령자로 목에 밧줄이 감긴 채 말에 앉아 있는 조지 브릭스(타미 리 존스)를 만난다. 그리고 조지를 살려주는 대신 그가 아이오와까지 함께 간다는 약속을 받아낸다.
서부 광야를 가로지르는 일종의 ‘로드 무비’로 여기서부터 아이오와에 도착하기까지 여러 가 지 에피소드로 꾸며진다. 이 부분에서 전형적인 웨스턴의 내용을 과감히 벗어나진 못하고 있어 기시감이 있다.              
좋은 점은 메리 비와 조지의 성격묘사가 뚜렷한 것. 둘의 개성과 내면이 매우 풍부하게 그려졌는데 연기파들인 스왱크와 타미 리 존스가 깊이 있는 연기를 탁월하게 해낸다. 특히 스왱크의 튼튼한 연기가 출중하다. 심술첨지 모습의 타미 리도 무뚝뚝하면서도 코믹한 연기를 잘 하는데 둘의 콤비가 썩 잘 어울린다. 이와 함께 서부를 미화하지 않고 삭막한 모습 그대로 잡아낸 촬영과 음악도 인상적이다. R. Roadside. 랜드마크극장과 아크라이트극장. ★★★(5개 만점)                   <한국일보  편집위원/hjpark1230@gmail.com>

‘새벽’



졸린 눈에 종잇장처럼 얇은 입술 그리고 주먹코를 한 과묵한 프랑스 명우 장 가방은 1930년대 로맨틱한 염세주의를 상징했던 프랑스 영화의 동의어와도 같은 배우였다. 그는 운명을 트렌치코트처럼 걸치고 다니는 저주받은 반영웅처럼 기억될 만큼 숙명적이요 비극적이며 어두운 영화에 많이 나왔다. 장 가방 하면 세속적인 국외자요 고독자가 연상되는 까닭이 여기에 있다.    
가방은 1930년대 프랑스 영화의 흐름이었던 ‘시적 사실주의’(Poetic Realism)의 대표적인 스타로 많은 영화에서 자기를 파괴하려는 잔인한 운명과 투쟁하는 평범한 인간으로 나왔다. 고독이라는 병을 앓은 뒤 순수한 사랑을 찾아 잠시 위로를 받으나 또 다시 기만당하고 자신의 꿈을 빼앗겨 살인을 저지르고 자살하거나 총에 맞아 죽었다.
‘시적 사실주의’는 주로 파리 주변을 무대로 한 노동자 계급의 도시 드라마로 매우 어둡고 염세적인 분위기에 젖어 있다. 신화 속 존재 같은 남자들이 주인공으로 이들은 때로 범죄를 저지르고 이룰 수 없는 사랑을 하다가 대부분 처절한 종말을 맞는다.
전쟁의 암운이 하늘을 뒤덮은 당시 프랑스의 시민들의 절망과 허무를 대변했는데 뛰어난 형식미 속에 각박한 일상과 서정적이요 감정적인 것의 이중성을 담고 있다. 회색으로 채색된 실존적 영화다.
가방이 나온 ‘사적 사실주의’의 걸작 중 하나가 살인자 프랑스와의 하룻밤을 그린 ‘새벽’(Le Jour se Leve·1939·사진)이다. 노르망디 교외의 노동자층이 사는 6층짜리 아파트 꼭대기 층에서 분노한 음성과 함께 한 발의 총성이 울리면서 아파트의 좁은 계단 아래로 말끔하게 차려 입은 남자가 굴러 떨어져 내린다.
이어 아파트에 들이닥친 경찰들이 프랑스와가 바리케이드를 친 아파트 문을 향해 총알을 쏟아 붓는다(실탄이 사용됐다). 이렇게 시작된 영화는 프링스와의 현재와 그가 회상하는 과거가 교차되면서 이튿날 새벽까지 이어진다. 그리고 프랑스와의 권총자살로 끝난다.
공장 노동자인 프랑스와와 그가 사랑하는 가녀린 꽃가게 여점원 프링스와즈(자클린 로랑) 그리고 프랑스와를 사랑하는 클럽 쇼걸 클라라(아를레티) 및 이 두 여인을 소유하다시피 한 쇼맨 발랑탕(쥘르 베리) 등 4인이 맺는 기구한 운명의 이야기로 암담하기 그지없다.
흑백 촬영이 뛰어난 이 영화의 감독은 마르셀 카르네이고 각본가는 시인이기도 한 자크 프레베르인데 프레베르의 아름다운 글이 자칫 멜로드라마가 될 수도 있는 절망적인 얘기를 시적으로 승화시키고 있다.
그런데 두 사람은 ‘시적 사실주의’의 또 다른 걸작으로 역시 가방이 나오고 호심 같은 눈을 지녔던 미셸 모르강이 공연한 음습한 분위기의 ‘안개 낀 부두’(Le Quais des Brumes·1938)와 이 영화사조의 마지막 작품 중 하나로 마르셀 마르소와 아를레티가 나오는 영화사에 길이 남는 명작 ‘천국의 아이들’(Les Enfants du Paradis·1943-45)도 같이 만들었다.    
‘새벽’은 프랑스의 저명한 영화 평론가 앙드레 바장이 ‘우리 시대 영화의 비극적 영웅’이라고 칭한 가방이 사랑과 희망을 잃고 살인을 한 뒤 스스로를 자기 아파트에 가두어 놓은 킬러의 연기를 마치 우리 안에 갇힌 치명상을 입은 짐승처럼 불안하고 절실하게 보여준 명화다.
영화는 개봉되면서 당시 나치의 프랑스 괴뢰정부였던 비시 정부의 혹독한 검열을 받고 아를레티의 나신장면과 경찰을 파시스트에 비유한 대사를 비롯해 둘 다 유대인이었던 촬영감독 쿠르트 쿠란트와 프로덕션 디자이너 알렉상드르 트러네의 이름이 잘려 나갔다. 그러다가 곧 이어서는 영화가 ‘지나치게 사기를 저하시킨다’는 이유로 아예 상영금지 조치를 당했다.
가방의 신화를 창조한 ‘시적 사실주의’의 첫 영화는 쥘리앙 뒤비비에가 감독(공동 각색 겸)한 운명이 판을 치는 로맨틱한 갱스터 영화 ‘페페 르 모코’(Pepe le Moko·1937)다. 파리에서 은행강도를 한 뒤 프랑스의 식민지 알제리의 항구도시 알지에의 언덕 위 아랍계들이 사는 치외법권 지대나 마찬가지인 달동네 카스바에 숨어 사는 플레이보이 페페의 이야기다.
하구한날 항구를 바라다보며 파리를 그리워하던 페페가 파리에서 놀러와 구경 차 카스바로 올라온 돈 많은 늙은이의 정부로 깊은 눈동자를 지닌 가비(미레유 발랑)을 사랑하게 되면서 비극적 종말을 맞게 된다.
암흑세계의 갱스터에 대한 동경이요 미녀와 야수의 드라마로 페페가 고동소리를 내며 항구를 떠나가는 귀국선을 탄 가비를 향해 “가비”하고 외치면서 주머니에서 꺼낸 손칼로 스스로 목숨을 끊는 라스트신은 잊지 못할 장면이다. 이 영화는 1938년 샤를르 봐이에와 헤디 라마 주연의 흑백 미국 영화 ‘앨지어즈’(Algiers)로 만들어졌다. 이 영화도 삼삼하다.
가방이 저주 받은 사랑을 하는 남자로 나와 치열한 연기를 한 또 하나의 1930년대의 명작이 장 르느와르(화가 피에르 오귀스트 르느와르의 아들)가 감독한 ‘인간 짐승’(La Bete Humaine· 1938)이다. 에밀 졸라의 소설이 원작인 영화에서 열차 기관사인 가방은 역장인 남편을 죽여 달라고 요구하는 요부(시몬 시몽)를 사랑하다가 여자를 목 졸라 죽이고 자기는 달려오는 기차에 투신자살한다.  
‘새벽’ 개봉 75주년을 맞아 처음으로 잘려나간 장면과 대사 그리고 크레딧이 복원된 새 프린트로 14일부터 로열극장(11523 Santa Monica)에서 상영된다. (310-478-3836), 플레이하우스(패사디나). <한국일보  편집위원/hjpark1230@gma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