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이야기

2014년 4월 14일 월요일

4월은 말론 브랜도의 달

올해로 90세…뉴베벌리 시네마 한달간 연속 상영


‘파리에서의 마지막 탱고’
뉴베벌리 시네마(7165 Beverly Blvd.)는 말론 브랜도가 90세가 되는 2014년 4월(3일생)을 맞아 그의 영화들을 4월 한 달간 2편씩 동시 상영한다.

*11~12일
‘사요나라’
▲ ‘파리에서의 마지막 탱고’(Last Tango in Parisㆍ1972)-파리에 사는 미국인 남자(브랜도)가 아내의 자살에 대한 죄책감에 시달리면서 길에서 우연히 만난 도전적이요 고혹적인 젊은 여인(마리아 슈나이더)과 대화나 감정의 교류가 거의 없는 동물적인 육체관계를 맺는다. 버터를 이용한 섹스 신 때문에 개봉 당시 큰 논란이 됐던 영화로 미성년자 관람불가인 X등급을 받았다. 고독과 허무가 판을 치는 실존적 작품으로 촬영이 눈부시다. 베르나르도 베르토루치 감독. 136분. 
▲ ‘황금 눈동자 속의 반영’(Reflections in a Golden Eyeㆍ1967)-1940년대 미 남부에 주둔한 동성애자인 육군 소령(브랜도)과 남편의 부하와 정사를 나누는 소령의 아내(엘리자베스 테일러)및 이들의 주위사람들을 중심으로 억눌린 성욕과 동성애 그리고 관음증과 살인을 다룬 변태적인 영화. 카슨 맥컬러의 소설이 원작. 존 휴스턴 감독.

*13~14일
▲ ‘워터프론트’(On the Waterfrontㆍ1954)-뉴욕 항구의 부두노동자들의 생사여탈권을 쥐고 있다시피 한 깡패조직에서 졸개로 일하는 실패한 권투선수(브랜도-오스카 주연상)가 자기가 사랑하는 비둘기처럼 순수한 노동자의 대학생 딸(이바 마리 세인트가 데뷔작으로 오스카 조연상 수상)의 영향을 받아 자각해 깡패조직에 단신으로 저항한다. 오스카 작품, 감독(엘리아 카잔), 각본 및 촬영상 등 모두 8개 부문 수상. 로드 스타이거, 리 J. 캅, 칼 말덴 공연. 레너드 번스타인의 음악이 작품의 무드를 한껏 떠받쳐주고 있다. 
▲ ‘아팔루사’(The Appaloosaㆍ1966)-1870년대 멕시칸 도적들에게 자기 말을 도난당한 남자가 이를 찾기 위해 도적들을 추적한다. 침울한 무드의 진행이 느린 이색 웨스턴.   
‘워터프론트’
*15일
▲ ‘베드타임 스토리’(Bedtime Storyㆍ1964)-두 사기꾼(브랜도와 데이빗 니븐)이 한 여자(셜리 존스)를 놓고 사랑 다툼을 벌인다. 이 영화는 1988년 스티브 마틴과 마이클 케인 주연으로 ‘더티 로튼 스카운드럴’로 리메이크 됐다.
▲ ‘홍콩의 공작부인’(A Countess from Hong Kongㆍ1967)-여객선의 외교관(브랜도)과 그의 접견실에 무임 승선한 여인(소피아 로렌)과의 로맨틱 코미디. 찰리 채플린이 감독 집필 작곡의 1인3역을 하고 단역으로까지 나온 그의 마지막 작품.  

*16~17일
▲ ‘체이스’(The Chaseㆍ1966)-텍사스의 한 작은 마을을 무대로 전개되는 무지몽매한 사람들의 광적이요 파괴적인 군중심리와 이 동네 출신으로 교도소에서 탈출한 젊은이(로버트 레드포드)가 동네 사람들과 셰리프(브랜도)에게 미치는 영향을 그린 이색적인 드라마다. 호튼 후트의 소설이 원작으로 앤지 딕킨슨, 제임스 팍스, 로버트 두발, E.G. 마샬 및 마사 하이여 등 올스타 캐스트. 릴리언 헬만이 각색하고 감독은 아서 펜. 133분. 
▲ ‘사요나라’(Sayonaraㆍ1957)-한국전 당시 일본의 고베 인근에 주둔한 미 공군 소령 파일럿 에이스(브랜도)와 아름다운 일본 연예인 하나오기(타카 미이코가 만개한 벚꽃처럼 화사하다)와의 로맨틱한 사랑을 그린 빼어난 드라마. 에이스의 부하인 조(레드 버튼스)는 일본 여인 카추미(우메키 미요시)를 사랑해 결혼하려 하나 군이 이를 인정하지 않고 자기를 본국으로 송환시키려 하자 임신한 카추미와 함께 동반자살을 한다. 이에 충격을 받아 인종차별의 편견을 채 벗어나지 못한 에이스는 하나오기와의 결혼을 결심한다. 제임스 미치너의 소설이 원작으로 애절하고 아름다운 주제가는 어빙 벌린이 작곡했다. 버튼스와 미요시가 오스카 조연상을 받았고 미술상도 받았다. 147분. 상영시간 문의 (323-938-4038).                  
                                                               <한국일보 편집위원/hjpark1230@gmail.com>


연인들만이 살아 남는다(Only Lovers Left Alive)

수백년 사랑 이어온 흡혈귀 연인 스토리


오래간만에 재회한 애담과 이브가 사랑의 기운에 싸여 있다.

수백 년간을 서로 극진히 사랑하고 있는 두 남녀 보헤미안 떠돌이 흡혈귀 연인의 러브 스토리로 항상 비스듬한 각도로 서정적 무드의 예술적이요 수수께끼 같은 작품을 만드는 독립영화인 짐 자무시(‘미스터리 열차’ ‘브로큰 플라워’ ‘데드 맨’) 감독의 영화다.
몽환적인 분위기 안에서 인간의 몰지각한 행동으로 인해 모든 것이 부식해가는 도시를 배경으로 국외자들인 연인 흡혈귀의 세상에 대한 탄식과 둘의 사랑 그리고 자신들의 앞날의 운명에 대한 불안감을 우울하고 이름답고 또 감정 가득히 부드럽게 그린 꿈꾸는 듯한 로맨틱 소야곡이다.
흡혈귀 얘기여서 대부분 밤에 얘기된다. 두 연인은 애담과 이브. 애담(탐 히들스톤)은 쇠락한 디트로이트(파산한 이 도시를 참 잘 사용했다)에 살고 이브(틸다 스윈튼)는 아프리카의 탄지에에 살고 있다. 은둔자처럼 사는 애담은 방에서 죽치고 앉아 음악에 심취해 살고 있는데 신선한 피를 돈을 주고 병원기구 담당자인 닥터 왓슨(제프리 라이트)으로부터 산다. 애담은 또 비닐 레코드와 희귀 기타를 자기를 따르는 젊은 이안(안톤 옐친)으로부터 공급 받는다.   
한편 이브는 셰익스피어와 관계가 있던 말로(존 허트)로부터 신선한 피를 공급 받는데 인간들의 피는 위험하게 오염이 돼 애담과 이브는 신선한 피를 확보하는 것이 큰일이다. 이것은 둘의 생사가 걸린 문제다. 
이브가 돌연 애담이 그리워 디트로이트로 오면서 이 음악과 문학에 정통하고 세련된 멋쟁이 연인들은 오래간만에 뜨거운 사랑으로 재회를 반긴다. 소극적인 애담과 적극적인 이브가 두문불출하고 사랑에 잠겨 있는 정경이 아주 섹시하고 로맨틱하다. 
그런데 갑자기 저돌적인 이브의 여동생 에이바(미아 와시코우스카)가 이 집에 쳐들어오면서 두 연인의 가정적 평온이 깨어지고 이를 견디다 못해 둘은 탄지에로 도피한다. 여전히 문제는 깨끗한 피를 조달하는 것. 애담과 이브는 인적이 끊긴 탄지에를 헤매고 다니면서 자신들의 앞날을 염려한다. 갈비씨 키다리 연기파인 스윈튼이 긴 백금발 가발을 쓴 채 우아하고 육감적인 흡혈귀 연기를 상냥하고 정감 가득하게 보여준다. 매력적인 영화다. 
R. Sony Classics. 아크라이트(323-464-4226), 랜드마크(310-470-0492)   ★★★½(5개 만점)
                                                                        <한국일보 편집위원/hjpark1230@gmail.com>



드래프트 데이(Draft Day)

“특A급 선수 잡아라”드래프트의 뒷거래


클리블랜드 브라운스의 제너럴 매니저(케빈 코스너)가 선수 선발을 
놓고 고심하고 있다.

프로야구 개막시즌에 어쩌자고 프로풋볼 영화가 나왔는지는 모르겠지만 이 영화는 골수분자 풋볼 팬이 아니면 별로 큰 관심을 못 끌 스포츠 영화다. 풋볼에 대해서 뭘 좀 알아야 제대로 즐길 수 있는 영화인데(그러고도 즐기느냐 아니냐 하는 것은 관객에게 달렸지만) 왜냐하면 뛰고 달리는 풋볼영화가 아니라 선수 선발을 놓고 일어나는 배후 흥정의 얘기이기 때문이다. 웬만한 사람들은 무슨 소리를 하는지 잘 모를 것이다. 브래드 핏이 나온 ‘머니 볼’을 연상케 하는데 ‘머니 볼’이 이 영화보다 한 수 위다.
‘불 더램’과 ‘꿈의 필드’ 및 ‘틴 컵’ 등 여러 편의 스포츠 영화에 나온 케빈 코스너가 풋볼팀 클리블랜드 브라운스의 제너럴 매니저 소니 위버 주니어로 나와 A급 선수를 선발해 무기력한 팀의 재기를 노리는 내용인데 굉장히 말이 많은 반면 활력과 흥분감은 모자란다. 
그런대로 짜임새가 있고 연기들은 괜찮지만 스토리가 약하고 진행이 느려 좋은 스포츠 드라마가 되기엔 역부족이다. 다소 지루하기까지 한데 스포츠팬들 아닌 일반 관객을 생각하고 로맨스와 가족 드라마 요소까지 삽입했지만 오히려 방해가 되는 것 같다. 
그리고 믿기가 어려운 점은 소니가 선수 선발을 놓고 벌이는 흥정의 전략. 풋볼에 대한 문외한이라도 저럴 수가 있을까 하고 의심할 정도로 그의 뒷거래 내용이 터무니가 없다. 클라이맥스인 선수 선발 당일에 가서야 다소 긴장과 스릴마저 느끼게 되나 그것도 사실은 짐작한 대로다.
클리블랜드 브라운스의 제너럴 매니저인 소니는 구단주(프랭크 란젤라)로부터 신인선수 선발에서 어떻게 해서든지 제일 먼저 선수를 선발할 수 있는 선발권을 따내 비실비실하는 팀을 살려 놓으라는 압력을 받는다. 선발 일을 코 앞에 놓고 소니는 여러 다른 팀의 제너럴 매니저들과 전화로 협상을 벌이는데 그는 팀의 코치(데니스 리어리)와 쿼터백의 강력한 반대에도 불구하고 나름대로 무모하고 기상천외한 협상을 벌인다. 어쩌자고 이런 소니를 구단주가 해고를 안 하는지 알다가도 모를 일이다.
이런 선수 선발과정의 막후 드라마를 전면에 깔고 서브플롯으로 소니의 애정문제와 가족 얘기가 들어선다. 소니의 애인은 팀의 연봉문제 전문가인 알리(제니퍼 가너). 그리고 소니는 어머니(엘렌 버스틴)와 사이가 안 좋은 상태인데 그것은 소니가 최근에 작고한 브라운스 전직 코치였던 자기 아버지를 해고했기 때문이다. 그 이유가 나중에 밝혀지는데 소니가 효자다.
분주하게 벌어지는 선수 선발을 둘러싼 흥정과정에서 소니는 다른 팀의 매니저들뿐 아니라 선발 리스트에 오른 선수(그 중에는 영화 ‘42’에서 미 프로야구의 흑백장벽을 무너뜨린 재키 로빈슨으로 나온 연기 잘 하는 채드윅 보스맨도 있지만 나오는 시간이 너무 짧아 제대로 실력 발휘를 못한다)들과도 흥정을 벌인다.           
선발 당일 실제로 ESPN과 NFL 네트웍 등을 이용해 사실감을 살리고 있고 왕년의 브라운스의 명선수로 후에 영화배우로도 활약한 짐 브라운이 캐미오로 나온다. 코스너의 연기는 단단한데 이 영화가 해외 흥행에서 얼마나 성공할지 궁금하다. 감독은 코미디 전문(고스트 버스터즈)의 아이반 라이트만.  PG-13. Summit. 전지역. ★★★(5개 만점)
                                                              <한국일보 편집위원/hjpark1230@gmail.com>  


미키 루니


할리웃의 황금기 ‘하늘에 뜬 별들보다 더 많은 스타를 보유했다’고 뽐내던 MGM의 수퍼스타로 에너지 덩어리였던 미키 루니가 6일 93세로 LA의 자택에서 사망했다. 5피트 2인치의 단구에 장난꾸러기 소년 같은 얼굴을 한 루니는 20대 때 역시 MGM 소속으로 ‘할리웃의 왕’이라 불린 클라크 게이블과 스펜서 트레이시 같은 거물들을 제치고 가장 흥행성 있는 배우로서 팬들의 인기를 독차지한 MGM의 ‘황금알을 낳는 거위’였다.
그래서 루이 B. 메이어 MGM 사장은 루니를 신주단지 모시듯 했는데 루니는 신적인 존재였던 메이어를 “아저씨”라 부르며 친근감을 과시했다. 루니를 수퍼스타로 만들어준 영화는 깨끗한 가족 드라마 ‘앤디 하디’ 시리즈다. 무려 15편이나 만들어진 시리즈에서 루니는 전형적인 미국 가정의 틴에이저 앤디 하디로 나와 ‘올 아메리칸 보이’로서의 이미지를 구축했다.
그런데 루니는 스크린에서는 앤디 하디였지만 실제로는 치마만 둘렀으면 섹스하자고 달려드는 플레이보이였다. 그는 ‘앤디 하디’ 시리즈에 나온 육체파 라나 터너 외에도 여러 다른 여배우들과도 잤다. 이 때문에 루니의 스크린에서의 깨끗한 이미지를 지켜야 할 메이어는 골머리를 앓아야 했다. 그는 또 성질이 급한데다가 술과 도박(특히 경마)과 파티에 탐닉했는데 철두철미한 배우여서 쉽게 잘 울었고 또 각광 받기를 좋아했다.
표면적으로 깨끗한 이미지의 수퍼스타로 알려진 루니가 진짜로 어떤 사람이었는지에 대해서는 19세에 그의 첫 번째 부인(그는 무려 8번이나 결혼했다)이 된 할리웃 최고의 글래머 스타 에이바 가드너의 자서전 ‘에이바 가드너: 비밀 대화’(Ava Gardner: The Secret Conversation-피터 에반스 저)에 자세히 묘사돼 있다.
가드너는 루니를 사랑했고 그를 부드럽고 상냥한 사람이라고 말하면서도 “미키는 내 남편 중 가장 작은 남편이나 가장 큰 실수”였다고 고백했다. 가드너는 또 “미키는 큰 늑대로 내가 그에게서 배운 것이 있다면 섹스를 즐기는 법”이라고 말했다.
빅 스타였던 미키는 막 할리웃에 도착한 가드너에게 끈질기게 구애, 결혼했지만 틈만 나면 바람을 피웠는데 심지어 다른 여자를 가드너와 자는 자기 안방 침대에까지 불러 들였다가 후에 가드너에게 들키기까지 했다. 결국 둘의 결혼은 1년만에 끝났다.
그러나 이런 인간적 결함에도 불구하고 루니는 노래하고 춤추는 뮤지컬 배우이자 성격파 배우의 능력을 지녔던 최고의 배우였다. 보드빌 배우인 부모를 둬 생후 18개월 만에 무대에 선 루니는 80세가 되기까지 300여편의 영화와 TV 프로에 나온 쇼맨이었다. 그는 이렇게 어렸을 때부터 쇼맨 노릇을 해 일찌감치 거리의 지혜를 터득한 생활인이었다.
우리에게 잘 알려진 루니의 영화로는 엘리자베스 테일러가 소녀 기수로 나온 ‘녹원의 천사’와 미키가 신부 역의 스펜서 트레이시와 맞서는 불량소년으로 나온 ‘소년들의 도시’ 그리고 그가 오스카 조연상 후보에 올랐던 ‘검은 종마’ 등이 있다. 루니는 생애 총 4번 오스카상 후보에 올랐으나 2차례 명예상만 받았고 정신박약자로 나온 TV영화 ‘빌’로 에미상을 한 번 받았다.
그런데 루니의 영화를 생각하면 불쾌감을 일으키게 되는 것이 오드리 헵번이 나온 로맨틱한 ‘티파니에서 아침을’이다. 그는 여기서 키모노를 입고 눈에 커다란 뿔테 안경을 쓴 뻐드렁니의 일본인으로 나와 심한 액센트를 쓰면서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는데 같은 아시안으로서 볼 때마다 역겹다. 참으로 지각없는 역이다.
루니와 스크린에서 호흡이 잘 맞았던 배우는 역시 노래와 춤에 재질이 뛰어났던 주디 갈랜드다. 둘은 ‘앤디 하디’ 시리즈 외에도 뮤지컬 ‘베이브즈 인 암즈’ 등 여러 편에서 공연하며 팬들의 사랑을 독차지 했었다.
2차 대전 전 ‘앤디 하디’ 시리즈와 뮤지컬로 폭발적인 인기를 누렸던 루니는 전쟁 중 연예병으로 근무했다. 종전 후 귀국해 보니 자신의 과거 이미지로서는 배우로 살아남기 어려움을 깨달은 루니는 이때부터 본격적인 연기파로 변신을 시작했고 자신의 보금자리였던 MGM과도 작별했다.
그러나 역시 루니 하면 늘 1930~40년대 MGM 시절의 ‘올 아메리칸 보이’로서 기억될 것이다. 가드너의 자서전을 읽으면서 루니가 빅 스타가 아니었더라면 과연 그 많은 여배우들이 꼬마에 미남도 아닌 그와 잠자리를 같이 했을까 하고 궁금해 했지만 루니는 이젠 사라진 할리웃의 스튜디오 시스템이 생산해 낸 아주 잘 팔리는 대표적인 상품이었다.
나는 지난해 8월 웨스트우드의 해머뮤지엄 내 빌리 와일더 극장에서 루니를 만났었다. 복원된 ‘세일즈맨의 죽음’ 상영 전 로비 파티에서 휠체어를 탄 그를(사진) 보는 순간 나는 경악을 금치 못했었다. 루니는 마치 물기가 다 빠져 말라비틀어진 오이지 같아 보였다. 난 그에게 달려가 “반갑다”며 악수를 나누면서도 ‘아, 그렇게 노래 부르고 춤추며 활기찼던 루니가 세월 앞에선 이렇게 무기력하구나’하는 생각에 마음이 쓸쓸해졌었다. 루니는 이제 하늘에서 주디 갈랜드를 만나 춤추고 노래 부를 것이다. 굿 바이 미키.    
                                             <한국일보 편집위원/hjpark1230@gmail.com>      


2014년 4월 7일 월요일

‘노아' 주인공 러셀 크로우

“노아는 모든 종교의 연결고리 같은 인물”



현재 상영 중인‘노아’에서 노아로 나온 러셀 크로우(4월7일로 50세가 된다)와의 인터뷰가 베벌리힐스의 포시즌스 호텔에서 있었다. 크로우는 평소 심술첨지로 알려진 기분의 높낮이가 격심한 사람이어서 질문이 마음에 안 들면 벌컥 화를 내기도 하는데 이 날 인터뷰 전에 동석한 로렌조 소리아 할리웃 외신기자협회(HFPA)의 부회장이“러셀 크로우가 오늘 기분이 안 좋은 날이니 질문사항에 신경을 써 주세요”라고 경고를 했다. 이런 경우는 오래 전 뉴욕에서도 있었다. 그런데 다행히도 크로우와의 인터뷰는 무척 순조롭게 진행됐다. 흰 셔츠에 감색 정장을 하고 잔 수염에 머리를 단정히 빗은 그는 처음에는 약간 인상을 썼지만 시간이 가면서 미소와 함께 유머까지 구사해 가면서 질문에 차분하고 조용히 답했다. 기자는 이날 그에게“당신이 신이라면 이 세상을 보다 좋은 곳으로 만들기 위해 무엇을 할 것인가”라는 질문을 했는데 그는 이에 대해 별난 질문도 다 한다는 듯이 큰 미소를 지으면서“난 그 경지에까지 이를 수가 없어 당신 질문에 답할 재간이 없다”고 말했다. 크로우는 인터뷰 후 사진을 찍을 때 나와 악수를 나누면서“뭐 나더러 신이 된다면 어쩌겠냐구 물었지”라며 크게 웃었다. 이에 나는“당신 원래 신 아니야”라고 대꾸해 줬다.     

*바티칸에 초청돼 교황을 만난 소감이 어떤가.
- 아름답고 나를 겸손케 만들어주는 경험이었다. 그리고 매력적이었다. 난 가톨릭도 아니고 또 세례도 안 받았다. 평소 교황과 어떤 유대관계 같은 것을 느껴본 적이 없다. 그러나 그는 전의 사람들과 달리 몇 가지 문제에서 보다 열린 자세를 지닌 사람이다. 영화에 대한 일부 기독교 측의 반대 때문에 교황은 우리에 대한 초청을 취소할 수도 있었지만 그는 시종일관한 친절을 베풀어주었다. 그는 그 날 아버지가 된다는 것이 무엇이며 아버지의 자녀에 대한 교육적 책임은 무엇인가에 대해 얘기했다.

*당신이 혼자 서 있는 영화 포스터가 마음에 드는가. 좀 무섭게 보이는데.
- 패라마운트 스튜디오의 마케팅에 대해 내가 왈가왈부할 수는 없다. 다운타운 LA에 가면 14층 높이의 빌보드 광고를 볼 수 있는데 정말로 내가 봐도 대단하더라. 그런 광고는 내 생애 처음 본다.

*영화도 보지 않고 비판하는 사람들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가. 그리고 이 신화적 내용을 지닌 오래된 얘기가 왜 지금까지도 사람들에게 어필한다고 생각하는가.
- 영화를 보지도 않고 비판한다는 것은 진짜로 어리석은 짓이다. 사실이 아닌 가정 하에서 자기 이름을 내걸고 의견을 표명한다는 것은 당치도 않은 일이다. 그런데 영화를 뒤늦게 본 기독도교 지도자들은 영화에 대해 매우 긍정적 반응을 보이고 있다. 인간의 지구에 대한 관리와 인간과 동물과의 관계 그리고 영적인 문제를 놓고 우리가 대화를 나눌 수 있도록 만드는 예술은 그 어느 것이든 좋은 것이 아닌가. 이 영화가 내놓은 주제 중 하나는 개인으로서의 우리와 그 우리가 믿는 것과의 개인적 관계다. 이 얘기의 골자는 끝이 없는 부담을 부여하는 직무와 맞서는 사람이다. 노아는 표면적으로는 순결한 사람들과 동물들을 구하나 다른 한편으로는 지상의 모든 사람들이 사라지는 것을 보고 있어야 한다. 당신이 그 위치에 있다면 어떤 사람이 되었을 것인지에 대해 여러 가지로 묻고 있다. 그리고 이 영화의 골자는 가족드라마다. 어떤 특정한 임무에 오직 한 마음으로 집념하는 누군가가 초래하는 문제에 관한 영화라고 하겠다.  

*각본이 원전과 얼마나 다른가를 파악하려고 구약성경을 읽었는가.
- 영화에 대한 비판을 하는 많은 사람들은 성경의 본의를 모르고 있다. 어떤 사람들은 노아가 술에 취한 것을 가지고 비판하는데 노아는 인류 사상 처음으로 포도주를 만든 사람이 아닌가. 그리고 어떤 사람들은 영화에 나오는 거인들을 보고 비난했지만 그것은 성경에 있는 사실이다. 민수기에 ‘우리가 정탐한 땅은 그 거주민을 삼키는 땅이요 거기서 본 모든 백성은 신장이 장대한 자들이며’라는 구절이 있다. 노아에 대한 성경구절을 읽는 것은 매력적인 일이었는데 노아가 모든 종교의 경전에 나온다는 것을 이번에 처음 알았다. 이에 따라 나는 노아의 얘기를 인간과 인간이 공유하는 경험의 바탕에서 이해하게 됐다. 그러니까 노아를 어떤 거창한 은유적 인물로서가 아니라 하나의 개인으로서 표현할 수가 있어 쉬웠다. 그리고 홍수라는 신화도 모든 주요 문명과 역대의 모든 사람들이 경험한 것으로 지리학적으로도 얘기할 수가 있다. 이번에 우리가 어떤 종교를 믿건 간에 노아는 모든 종교의 연결고리 구실을 한다는 것을 알았다.  


*당신이 감독으로 데뷔하는 ‘워터 디바이너’(The Water Diviner)는 언제 완성되는가.
- 터키에서 막 촬영을 끝냈다. 편집은 다음 영화 촬영지인 피츠버그에서 할 예정인데 앞으로 한 5주가 걸릴 것 같다. 그것이 끝나면 호주에 가서 나의 디렉터스 컷판을 제출할 것이다. 그래서 난 지금 모스크바와 로마와 리우 등 세계를 돌면서 ‘노아’ 홍보하느라 내 영화 마치느라 상당한 스트레스에 시달리고 있다. 내가 나오는 다음 영화는 이탈리아 감독 가브리엘레 무치노가 연출하는데 각본을 읽고 너무나 아름답고 감정적이어서 눈이 퉁퉁 붓도록 울었다. 

*당신은 노아가 방주를 지었듯이 무얼 짓는 것을 좋아하는가.
- 그렇다. 호주의 내 농장에서 사람들을 위해 곱게 장식된 지팡이를 만들어주는데 그럴 땐 선을 하는 기분이다. 그리고 농장의 나무와 짐승들을 돌보는 것은 무언가를 짓는 것과 같은 느낌을 준다.

*당신이 신이라면 이 세상을 보다 좋은 곳으로 만들기 위해 어떤 일을 하겠는가.
- 우선 당신과 얘기를 나누겠다. 그러나 난 신의 경지에까지 오를 수는 없어 당신의 물음에 대해 할 말이 없다.

*연기자와 두 아이(10세와 7세난 두 아들이 있다)의 아버지로서 어떻게 균형을 맞추며 사는가.
- 쉬운 일이 아니다. 다행히 요즘에는 스카이프도 있고 전화에 페이스 타임도 있어 아이들과 얘기를 할 수 있을 뿐 아니라 얼굴을 볼 수도 있다. 그러나 요즘에는 너무 바빠서 그것이 계획대로 안 된다. 원래는 영화와 영화 사이에 상당한 공간을 두었는데 이 직업이란 모든 것이 항상 변하기 때문에 그것이 뜻대로 안 된다. 아이들이 일어날 때 그들과 얼굴을 보면서 전화로 대화를 하는 것이 나의 하루를 움직이게 만드는 주요 촉진제이다. 내 뜻대로라면  아이들이 지금 나와 함께 있겠지만 난 아이들에게 지속적인 생활환경을 마련해 주고 싶다. 그들이 같은 장소에 살고 한 학교에 다니면서 친구들과 사귄다는 것이 비행기를 자주 갈아타고 세계를 돌아다니는 것보다 훨씬 더 중요하다. 그래서 우리가 떨어져 산다는 것은 어쩔 수 없이 받아들여야 하는 사실이다. 나는 항상 시드니나 호주에서만 일을 할 수는 없다. 난 지난 25년간 영화에서 주연을 맡아 늘 돌아다녀야 했다. 이 직업에서 배운 것이 있다면 일이 있는 곳으로 간다는 것이다.     

*예언자로서의 신성한 인물인 노아의 역을 위해 어떻게 준비했는가.
- 나는 노아를 수퍼맨으로 안 보고 하나의 개인으로 보려고 신경을 썼다. 그의 과거와 은유 같은 것들을 모두 거두어내고 노아를 상응하는 부담을 짊어지게 하는 엄청난 임무를 맡은 사람으로서의 인간 여정을 그리려고 했다. 그는 자기 임무를 수행하면서 동시에 그것이 저지른 결과도 생각해야 했다. 방주에 오르지 못한 사람들과 그에 따른 죄의식을 생각해야 했다. 나는 이런 생각으로 노아를 해석했지만 노아의 얘기를 종교적으로 보는 사람들의 뜻에 거슬리고자 하는 생각은 추호도 없었다. 노아의 얘기는 꼭 얘기돼야 할 중요한 것이라고 본다. 그리고 이 영화는 관객들에게 강렬한 경험이 될 것이다. 그들은 이 영화를 보고 매우 중요한 것들에 대해 토의하게 될 것이다. 그래서 나는 이 영화에서 결코 나쁜 점은 볼 수 없고 대신 긍정적인 면만 보게 된다. 영적인 것과 인간의 지구에 대한 관리 그리고 우리와 동물과의 관계에 대해 토론한다는 것은 중요한 일이다.         
                                                    <한국일보  편집위원/hjpark1230@gmail.com> 

캡틴 아메리카: 윈터 솔저(Captain America: The Winter Soldier)

얼음 속에서 70년만에 깨어난 `전사' 


캡튼 아메리카(크리스 에반스 왼쪽)와 윈터 소울저(세바스티안 스탠). 

마블만화의 주인공으로 미국의 수퍼히로 중 하나인 캡틴 아메리카를 주인공으로 만든 2011년 작 ‘캡틴 아메리카: 퍼스트 어벤저’의 속편으로 전편보다 얘기나 스펙태클 그리고 액션과 인물들의 성격 개발 등이 한층 진보한 흥미진진한 영화다.  
냉전시대의 분위기를 풍기는 영화의 내용은 요즘 시의에도 맞는 요소를 지녔는데 가급적 컴퓨터 특수효과를 지양하고 옛날 영화들처럼 실제 액션을 구사해 더 재미있다. 액션과 서스펜스와 다소 복잡한 얘기 그리고 다양한 인물들의 묘사가 고루 조화를 이루면서 강약과 완급의 보조를 잘 이루고 있다.
특히 영화에서 볼만한 인물은 거대한 군수업체의 최고급 간부로 나오는 로버트 레드포드. 뜻밖에도 진보파인 그가 매파로 나와 차갑고 단단한 연기를 하는데 레드포드가 조연으로 나온 것도 이색적이다.
전편에서 얼음 속에서 동면상태에 들어간 미 육군장교 스티브 로저스 즉 캡틴 아메리카  (크리스 에반스)가 그로부터 70년만에 워싱턴 D.C.에서 깨어난다. 아날로그 시대의 그가 디지털 시대의 문화에 얼떨떨해 하면서 적응하려는 에피소드가 우습다. 
처음에 캡틴 아메리카가 쏜살같이 달리는 조깅을 하면서 역시 조깅을 하는 전직 육군 특공대 출신의 샘 윌슨(앤소니 맥키)과 안면을 트는데 거대한 두 날개를 몸에 달고 하늘을 나는 샘(일명 팰콘)은 이로 인해 캡틴 아메리카와 동지가 돼 후에 무시무시한 파괴력을 지닌 윈터 솔저와의 대결에 동참한다.
캡틴 아메리카가 궁극적으로 대결하게 되는 적은 거대한 군수산업체 쉴드(SHIELD)의 고급간부 알렉잰더 피어스(레드포드). SHIELD는 공중에 무한정 떠 있으면서 막강한 파괴력으로 목표물들을 제거할 수 있을 뿐 아니라 개인과 공적인 자료를 토대로 잠재적인 적을 구별해 낼 수까지 있는 무인정찰 공격기인 ‘헬리캐리어’를 3개 제조해 실용할 채비를 마쳤다. 그런데 알렉잰더는 유엔의 안보리 같은 세계 안보위의 리더이기도 하다. 
알렉잰더의 이같은 계획에 대해 ‘헬리캐리어’의 기능과 임무에 의문을 표하면서 아직은 이르다고 반대하는 사람이 알렉잰더의 옛 친구이자 SHIELD의 감독인 닉 휴리(새뮤얼 L. 잭슨). 이로 인해 힘으로 적을 박살내겠다는 알렉잰더와 신중론자인 닉 간에 갈등이 생기고 결국 둘은 적이 되고 만다.
이 둘을 대리해 직접 치고 박으면서 육박전을 벌이는 사람이 닉의 지시를 받는 캡틴 아메리카와 알렉잰더의 졸개인 금속제 왼팔을 가진 기공할 파괴력을 지닌 윈터 솔저(세바스티안 스탠). 그런데 둘은 과거의 절친한 전우. 둘이 지상과 공중에서 싸우느라 난리법석이 일어나는데 팰콘 외에 캡틴 아메리카를 돕는 또 다른 동지가 전직 KGB 출신의 늘씬한 나타샤 로마노프/블랙 위도(스칼렛 조핸슨이 얼굴이 퉁퉁 부어 보기가 안 좋다).
운행 중인 좁은 엘리베이터 안에서의 격투를 비롯해 굉장히 속도가 빠르고 박력 있는 액션신이 많은데 에반스가 캡틴 아메리카 역을 손에 꼭 맞는 장갑을 낀 듯이 완벽하게 해낸다. 빅 히트와 함께 제3편이 나올 것이 분명하다. 앤소니와 조 루소 형제 감독. 
PG-13. Disney. 전지역. ★★★★(5개 만점)  <한국일보  편집위원/hjpark1230@gmail.com>


알랭 르네



영화가 단순한 오락적 차원을 넘어 선험적이요 지적으로 도전적인 예술 매체임을 작품에서 추구해온 프랑스의 명장 알랭 르네(사진)가 3월1일 파리에서 91세로 사망했다. 그가 숨지자 프랑스의 프랑수아 올랑드 대통령은 “국가의 가장 위대한 감독 중 하나를 잃었다”고 애도했다.
70년에 가까운 영화인으로서의 생애를 통해 공상과학영화, 기록영화, 코미디, 기족드라마, 뮤지컬 및 도저히 장르를 구분하기가 힘든 독특한 영화 등 다양한 부류의 영화를 만들었던 르네는 죽기 직전까지 병상에서도 다음 영화의 편집 초안을 구상 중이었다고 한다.
뉴웨이브의 대표적 인물로 모더니스트였던 르네의 많은 영화들은 너무 지적이요 초현실적인 데다가 실험적이어서 대중적이진 못했지만 영화를 통해 무언가 새로운 것을 터득코자 하는 사람들에겐 선지자 같은 감독이었다. 그의 영화는 수수께끼를 푸는 지적 재미마저 있다.
르네도 이 점을 잘 안다는 듯이 생전 한 인터뷰에서 “나는 보지는 않았지만 수백만명이 본 ‘조스’와 같은 영화에 물론 관심이 있다”면서도 “그러나 나는 집에서 TV 보기를 원치 않는 극소수의 사람들을 위해 영화를 만든다”고 말했다.
우아한 트래킹 샷과 생략적인 편집 그리고 과거와 현재의 왕래가 잦은 르네의 큰 주제는 인간은 기억이라는 불치병에 시달리는 환자들이라는 것이었다. 그의 초기 작품들로 르네하면 대뜸 이 두 영화가 떠오르게 되는 ‘히로시마 내 사랑’(Hiroshima Mon Amourㆍ1959)과 ‘작년 마리앙바드에서’(Last Year at Marienbadㆍ1961)는 모두 기억에 관한 것들이다.
르네의 첫 극영화인 ‘히로시마 내 사랑’은 일본인 건축가와 프랑스인 여배우(에마뉘엘 리바)의 핵의 피폭지인 히로시마에서의 짧은 만남을 통해 사랑의 망각성과 기억의 아픔을 이 도시의 고통과 핵 투하 불과 14년 만에 서서히 잊혀져가는 기억의 상실과 접목시킨 러브스토리이자 반전영화다.
이름도 없는 국적이 서로 다른 두 남녀의 대사와 포옹과 클로스업 되는 두 얼굴을 통해 사랑과 죽음, 기억과 망각 그리고 전쟁과 평화에 대한 명상이 거의 초현실적 분위기에서 서술되는데 프랑스의 여류 소설가 마게리트 뒤라스가 쓴 각본이 육감적이요 상징적인 시와도 같다. 리바(87)는 지난해에 ‘아무르’로 오스카 주연상 후보에 올랐었다.
이 영화도 그 진의를 깊이 깨달으려면 여러 번 봐야 되겠지만 ‘작년 마리앙바드에서’는 완전히 비논리적이요 시공을 초월한 사랑과 기억의 영화여서 마치 정답이 없는 문제를 푸는 것 같은 작품이다. 내가 이 영화를 처음 본 것은 고등학생 때(그 때 마음과 두뇌가 당한 혼란이 지금도 어렴풋이 기억이 난다)로 그 때부터 지금까지 여러 번 봤지만 매번 어려운 수학문제 풀듯이 끙끙 앓는다..
처음 공포영화의 음악을 연상시키는 오르간 음악과 함께 카메라가 화려하게 장식된 바로크풍의 호텔 내부의 천장과 복도와 계단을 트래킹 샷으로 천천히 포착한다. 이어 ‘히로시마 내 사랑’에서 처럼 이름도 없는 남자의 “다시 한 번 나는 걷는다”라는 내레이션으로 시작된다. 영화는 남자의 반복되는 과거 회상과 그가 만났다고 주장하는 역시 이름 없는 여인(델핀 세릭)의 이에 대한 부인이 계속되면서 장소를 바꿔가며 과거와 현재가 분주히 교차된다. 그런데 과연 둘은 남자의 말대로 작년에 마리앙바드에서 만났을까.
영화가 논리와 질서정연한 서술방식을 무시하고 자기 마음대로 상상의 미로를 헤매고 다녀 오죽하면 당대 굴지의 비평가였던 뉴요커의 폴린 케이엘이 “목표 없는 대재난”이라고 혹평을 했을 정도다. 그러나 이와 반대로 뉴욕타임스는 “1960년대 가장 신비한 영화 중 하나”라고 칭찬했고 재클린 케네디는 백악관에서 이 영화를 관람했다. 멋 부린 의문부호와도 같은 영화로 지식인들의 컬트영화라고 하겠는데 ‘히로시마 내 사랑’과 닮은 데가 있다
르네의 또 다른 유명한 영화가 30분짜리 기록영화 ‘밤과 안개’(Night and Fogㆍ1955)다. 나치의 유대인 수용소에서 찍은 영화로 홀로코스트에 관한 가장 감동적인 시적 수필이라고 불린다.
큰 키에 멋쟁이 신사로 수줍음이 많았던 르네는 몸이 약해 어릴 때 집에서 교육을 받았는데 아들이 영화에 사로잡힌 것을 안 부모가 8mm 카메라를 사 준 것이 그가 영화인의 길로 들어서는 계기가 되었다.
그는 생애 프랑스의 오스카상인 세자르 상을 두 번 탔고 칸영화제서 생애업적상을 받았는데 자기 영화에 부인이자 배우인 사빈 아제마(1998년 결혼)와 함께 베테런 배우인 앙드레 뒤솔리에 등 단골배우들을 자주 기용했다. 르네의 첫 부인은 작가이자 프랑스 문화상을 지낸 앙드레 말로의 딸인 플로랑스였으나 이혼했다.          
                                                      <한국일보  편집위원/hjpark1230@gma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