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이야기

2019년 8월 8일 목요일

‘라이언 킹’ (The Lion King)


아버지 사자 무파사가 갓난 아들 사자 심바에게 앞으로 심바가 통치할 아프리카 초원을 소개시켜주고 있다.

실사영화로 만든‘라이언 킹’ 감동은 그대로


디즈니의 돈과 기술이 있는 대로 힘을 다 낸 잘 만들고 재미있는 온 가족용 영화다. 특히 방학을 맞은 아이들이 박수를 치며 즐겁게 볼 백수의 왕 사자의 액션과 모험 그리고 가족의 끈질긴 유대관계를 다룬 교훈적인 내용마저 간직한 영화다.
이 영화는 1994년 디즈니가 만들어 빅히트를 하고 무대 뮤지컬로까지 만들어져 역시 크게 성공한 동명의 만화영화의 라이브 액션 판이다. 라이브 액션영화라곤 하지만 사자를 비롯한 동물들과 자연경관이 모두 컴퓨터로 만들어져 만화영화나 진배없다고 하겠다.
컴퓨터로 만들어진 동물들과 광대한 아프리카의 초원을 비롯한 자연의 모습이 사실보다 더 사실적이어서 보기에 황홀무아지경이지만 이런 기술적인 완벽성이 오히려 영화의 영혼을 빼앗고 있다. 지나치게 인위적인 점으로 인해 작품에 여유와 감정이 결여된 것이 흠이지만 음성연기와 노래와 음악(한스 짐머)과 촬영(케일렙 데샤넬) 등이 다 훌륭한데 특히 시각효과가 경탄을 금치 못하게 한다. 감독은 디즈니의 히트작 ‘정글 북’을 만든 존 패브로.
내용은 처음부터 끝까지 만화영화의 그 것을 그대로 답습했다. 아프리카 초원의 백수의 왕인 사자 무파사(만화영화에서도 음성연기를 한 제임스 얼 존스)가 갓난 아들 심바(JD 맥크래리)를 온 동물들에게 소개하는 장면으로 시작된다. 장난꾸러기 심바는 무럭무럭 잘 큰다.
무파사를 시기 질시하는 것이 무파사에 의해 후진 곳으로 추방돼 하이에나들을 졸개로 데리고 사는 무파사의 동생 스카(치웨텔 에지오포-만화영화에선 제레미 아이언스). 어느 날 심바가 집을 멀리 떠나 골짜기로 나들이를 나갔다가 들소 떼의 질주에 깔려죽기 직전에 무파사에 의해 구출되나 무파사는 이를 지켜보던 스카에 의해 살해된다. 그리고 심바는 아버지의 죽음이 자기 탓이라고 여기고 스카의 명령에 따라 고향을 떠난다. 이어 스카는 형의 자리를 차지한다.
집과 멀리 떨어진 곳에 도착한 어린 심바가 만나는 것이 걸맞지 않는 단짝으로 방구를 뀌는 흑멧돼지 품바(세스 로건)와 재잘대는 몽구스 타이먼(빌리 아이크너). 품바와 몽구스가 영화에 유머와 웃음을 듬뿍 쏟아 붓는다. 셋은 떨어질 수 없는 친구가 되고 심바는 여기서 아버지를 똑 닮은 우람찬 사자(도널드 글로버)로 성장한다.
집을 잊고 사는 심바를 찾아온 것이 어릴 때부터 친하게 지낸 암사자 날라(비욘세). 심바는 처음에 날라의 집으로 돌아가 스카를 몰아내고 마을에 평화를 되찾아달라는 부탁을 거절하다가 각성, 날라와 같이 고향으로 돌아간다. 심바와 날라 사이에 로맨스도 꽃 피고. 둘을 뒤따르는 품바와 타이먼. 귀향한 심바와 스카 간에 최후의 결전이 벌어지고 누가 이길지는 이미 다 아는 사실.
중요한 역을 맡은 동물들의 음성(때론 노래도 부른다) 연기가 즐거운데 무파사의 심복인 코뿔새 자주(존 올리버)도 재미있다. 만화영화의 내용을 그대로 옮겨 신선감이 모자란다. 이렇게 기시감이 느껴지는 것이 이 영화의 결점이다. PG 등급.  ★★★★(5개 만점)
                                                               <한국일보 박흥진 편집위원/ hjpark1230@gmail.com>


‘전쟁과 평화’


우리가 읽지 않고도 읽은 것처럼 생각되는 책 중의 하나가 레오 톨스토이가 쓴 ‘전쟁과 평화’(War and Peace). 특히 이 책은 내용에서 나폴레옹의 1812년 모스크바 침공을 다뤄 차이코프스키가 작곡하고 할리웃 보울에서도 불꽃놀이와 함께 자주 연주되는 ‘1812년’ 서곡과 연결되면서 더 가깝게 느껴진다.
내가 이 책을 원작으로 1956년에 미국과 이탈리아가 공동 제작한 동명의 영화를 본 것은 고등학생 때였다. 헨리 킹이 감독하고 오드리 헵번과 헨리 폰다와 멜 퍼러(당시 헵번의 남편이었다)가 주연한 상영시간 208분짜리 영화에는 비토리오 가스만, 아니타 에크버그, 허버트 롬 및 오스카 호몰카 등 기라성 같은 국제적 배우들이 앙상블 캐스트로 나온다.
이 대하 서사극은 이탈리아의 두 거물급 제작자들인 디노 데 라우렌티스와 칼로 폰티(소피아로렌의 남편)가 만들고 음악과 촬영 역시 그 부문의 최고들인 이탈리아의 니노 로타(‘길’ ‘대부’)와 영국의 잭 카르디프(‘흑수선’ ‘분홍신’)가 맡았으나 겉으로 보기엔 화려하지만 내용이나 인물의 성격 묘사에 있어서는 깊이가 모자란다. 특히 다소 우유부단하고 어리숭하나 선한 마음을 지닌 피에르 베주코프(피에르는 난봉꾼 도박사에서 사회개혁자요 인본주의자로 변신한 톨스토이 자신이 모델이라고 한다)  역의 폰다와 완고하나 영웅적인 안드레이 볼콘스키 역의 퍼러가 역에 어울리지가 않아 보기에 어색했다. 미국에서 평과 흥행이 다 신통치 못했다.
그런데 이 영화는 미^소간 냉전이 치열하던 당시 문화교류 프로그램의 일환으로 소련에서 상영되면서 수백만 명이 관람하는 인기를 모았는데 특히 관객들은 정열적이요 자유혼을 지닌 나타샤 로스토바 역의 헵번을 사랑했다고 한다.
이에 뿔이 난 것이 소련정부. 조국의 국보급인 작가의 소설을 적국에서 영화로 만들어 소련시민들의 큰 호응을 받은 것에 자존심을 상한 소련정부가 미국 판 보다 훨씬 더 크고 훌륭한 영화를 만들기로 작심하고 만든 것이 소련의 유서 깊은 모스필름이 1966년-67년에 걸쳐 제작한 상영시간 422분짜리 ‘전쟁과 평화’(사진)다.
얼마 전에 이 영화를 봤다. 보기 전에 전투에 임하는 것처럼 마음준비를 했다. 결점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대단한 작품이다. 베테런 배우로 이 영화 전에 단 한편의 작품을 연출한 세르게이 본다르추크가 감독했는데 역사적 사실에 집념하면서 준비기간만 톨스토이가 소설을 쓰는데 걸린 시간과 같은 6년이 걸렸다. 배우 선정에 걸린 시간만 1년이며 대사를 구사하는 배우들이 300여명에 이르는 거대한 작품이다. 
소련의 자존심이 걸린 영화이니만큼 정부의 전폭적인 지원을 받았다. 제한 없는 제작비와 전쟁장면을 찍는 공중촬영을 위한 군용기와 헬기들 그리고 15,000여명의 군인들이 엑스트라로 동원됐으며 국내 유명 미술관들의 귀중한 소장품들이 소품으로 사용됐다.         
영화에서 비극적 영웅인 피에르로 나오기도 하는 본다르추크는 포화가 불을 뿜는 장렬한 전투장면과 세인트 피터스버그의 전쟁에 무관심한 귀족들의 화려한 모습과 세 주인공 피에르와 안드레이(비야체슬라프 티코노프)와 나타샤(19세의 발레리나 류드밀라 사벨리에바가 헵번을 쏙 빼 닮았다)의 사랑과 삶을 교차해 보여주면서 드라마를 이끌어간다. 주인공들의 연기와 함께 이들의 인물과 성격묘사도 매우 훌륭하다.
특히 눈부시게 유려하고 화사한 것은 롤러스케이트를 탄 카메라맨들이 카메라를 손에 들고 찍은 나타샤가 소개되는 대무도회장면. 경탄을 금치 못할 유려하고 아름다운 장면이다. 추하고 쓰라린 전쟁의 장면들이 압도적으로 사실적이며 이와 함께 귀족들의 위풍당당한 모습 그리고 세 주인공들의 삼각관계가 교차해 파노라마를 일으키면서 보는 사람에게 드라마의 심리적 감정적 진동을 느끼게 만든다. 복잡한 부 주제들인 정치와 종교와 철학 등을 얘기할 때에는 영화가 다소 처지긴 하지만 아찔하니 거대한 느낌을 겪게 된다.
영화는 *안드레이와 피에르의 소개와 함께 전쟁이 벌어지는 ‘안드레이 볼콘스키’(Andrei Bolkonsky) *나타샤가 소개되는 ‘나타샤 로스토바’(Natasha Rostova) *나폴레옹의 모스크바 침공을 다룬 ‘1812년’ 및 * 전쟁에서 부상을 입은 안드레이의 사망과 피에르와 나타샤의 결합을 다룬 ‘피에르 베주코프’(Pierre Bezukhov) 등 모두 4부로 진행된다.
‘전쟁과 평화’는 소련서 개봉되면서 관객들의 뜨거운 반응을 받았다. 그러나 본다르추크의 동료 영화인들이 시기로 감독과 영화를 따돌리면서 영화가 점차 관객들로 부터도 외면을 받고 그 후 수 십 년 간 잊혀 지다 시피 했다.
그러나 시간이 흐르면서 영화는 신화적 자리에 오르게 되고 마침내 2000년대에 들어 모스필름의 지도자들에 의해 복원돼 재생하게 된다. 이 복원사업을 적극적으로 지원한 사람 중의 하나가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다. 그는 “조국의 타당한 애국적 문화회복을 원 한다”면서 ‘전쟁과 평화’의 복원사업을 밀었다.
영화는 아카데미와 골든 글로브 외국어 영화상을 받았다. ‘전쟁과 평화’가 크라이티리언(Criterion)에 의해 디지털로 복원돼 최근 DVD와 블루-레이로 나왔다. 한번 볼만한 방대하고 장려한 역사적 걸작이다.         
                                                              <한국일보 박흥진 편집위원/ hjpark1230@gmail.com>


‘칸피덴셜 칸피덴셜’


“우리 모두 그 주간지 읽어요. 내용이 좋아서가 아니라 우리 이름이 거기에 났는지 알아보기 위해서지요.” 왕년의 할리웃의 수퍼스타 말렌 디트릭이 말한 이 격주간지는 1950년대 할리웃스타들의 스캔들 폭로로 악명을 떨친 ‘칸피덴셜’(Confidential)을 일컫는 말이다.
여자들의 야한 사진 잡지로 돈을 번 로버트 해리슨이 1952년 뉴욕에서 창간한 ‘칸피덴셜’은 할리웃 스튜디오들이 로맨틱한 가짜 이미지로 미화한 스타들의 문란한 섹스와 비행과 죄를 적나라하게 폭로해 스타들을 공포에 떨게 만들었던 잡지다.
잡지는 인기절정에 이른 1956년 가판판매부수가 무려 500여만 부를 기록하면서 타임과 라이프 같은 잡지들을 앞서갔었다. ‘칸피덴셜’은 요즘의 가십전문지들인 ‘스타’ ‘인콰이어러’ ‘어스’ 및 TV프로 TMZ의 선구자인 셈이다.
이 잡지의 내막을 파헤친 책 ‘칸피덴셜 칸피덴셜’(사진)을 재미있게 읽었다. 법학교수이자 할리웃에 관한 여러 권의 책을 낸 새만사 바바스가 쓴 책은 잡지의 내막을 해부하듯이 심층 분석하면서 아울러 할리웃 황금기 스타들의 비사를 상세히 적어 흥미만점이다.
해리슨은 기사 취재를 위해 할리웃에 해리슨 리서치사 까지 차려놓고 스타들의 스캔들을 수집했다. 해리슨은 후한 대가를 지불하면서 사립탐정, 창녀, 발레, 바텐더, 웨이터, 미용사, 하녀, 영화계 종사자 그리고 경찰과 스타들의 전처와 전남편 등으로부터 스타들의 비행을 수집한 뒤 야단스런 수식어를 가미해 대서특필, 많은 스타들을 벌벌 떨게 하면서 할리웃을 군림했었다. 
이 잡지에 의해 망신과 해를 입은 스타들은 한 두 명이 아니다. 프랭크 시내트라, 에이바 가드너, 라나 터너, 록 허드슨, 탭 헌터, 로버트 미첨, 밴 잔슨, 루실 볼과 남편 데지 아네스, 버트 랭카스터, 마릴린 몬로와 야구선수 남편 조 디매지오, 앨란 래드, 메이 웨스트, 클라크 게이블, 게리 쿠퍼, 말렌 디트릭, 에롤 플린, 킴 노백 및 리베라치 등 외에도 많은 스타들이 곤욕을 치렀다.
일반인들이 우상처럼 여기는 스타들의 뒷사정을 엿보는 것처럼 짜릿한 흥분 감을 겪는 일도 흔치 않아 ‘칸피덴셜’의 인기가 천정부지로 치솟자 해리슨은 런던에 까지 지사를 설립했을 정도다.
당시만 해도 스타들을 자기 회사 직원들처럼 고용했던 스튜디오들에게 ‘칸피덴셜’은 눈엣 가시였으나 이들은 잡지를 모른 척 하면서 오히려 때론 잡지에 자사 스타들의 비리에 대한 정보까지 제공했다. 수퍼 스타들의 비밀 폭로를 막으려고 B급 스타들의 어두운 과거를 흘리는 야비한 짓을 자행했다. ‘칸피덴셜’이 록 허드슨의 동성애사실을 폭로하려고 하자 스튜디오는 이를 잘 나가던 B급 스타 로리 칼훈의 전과기록과 교환, 허드슨을 살려냈다.
‘칸피덴셜’의 기사에 시달리다 못한 할리웃의 6개 스튜디오들은 공동으로 자금까지 모아 잡지의 침몰을 시도하기도 했지만 상호 이해관계로 인해 실패했다. 두 스타 로버트 미첨과 에롤 플린도 용감히 ‘칸피덴셜’을 상대로 소송을 제기했으나 별무소득으로 끝났다.
마침내 1957년 캘리포니아주 검찰은 스튜디오와 스타 그리고 일부 여론의 압박에 몰려 ‘칸피덴셜’을 허위보도와 명예훼손 등 혐의로 기소를 했다. 검찰 측 증인들은 게리 쿠퍼, 빨강머리 모린 오하라, 동성애자인 탭 헌터 및 라나 터너였는데 결과는 재판무효.
검찰 측은 ‘칸피덴셜’에 당한 스타들을 증인으로 소환하려고 했으나 많은 스타들이 멕시코로 휴가를 간다는 등 이 핑계 저 핑계를 대면서 이를 회피했다. 법정에 나가봤자 자신들의 아름답지 못한 과거들만 다시 한 번 광고하는 셈 이였기 때문이다.
‘칸피덴셜’은 동성애를 혐오하고 인종차별적이며 또 여성비하를 마다 않았지만 해리슨은 자신의 잡지가 로맨틱한 허위로 치장한 스타들의 실체를 궁금해 하는 팬들의 갈증을 심층보도로 해갈시켜 주는 미디아의 개척자라는 자부심을 느꼈다. 비록 잡지가 옐로 저널리즘이긴 했으나 공인인 스타들의 성적 위선을 비롯한 온갖 비리를 폭로함으로써 스튜디오가 쓴 이들의 ‘신화’를 여지없이 파괴, 나름대로 어느 정도 언론의 사명을 한 셈이다.
그러나 스튜디오들이 공들여 쌓은 스타들의 이미지를 파괴하면서 미디아왕국의 첨병이 된 ‘칸피덴셜’은 1956년 중반 들어 인기 하락의 길로 접어든다. 잡지의 무리한 확장과 보수파들의 집요한 반발 그리고 잡지를 본 받아 우후죽순 격으로 생겨난 30여개의 스캔들 전문지 범람에 독자들이 실증을 느꼈기 때문이다. 해리슨은 재판무효 판결 후 1958년 가십전문의 내용을 완전히 바꿔 새 체제로 잡지를 발행했지만 독자들의 외면을 받아 세 차례 발행 후 문을 닫았다
‘칸피덴셜’의 얘기는 1997년 커티스 핸슨이 감독하고 러셀 크로우, 가이 피어스, 케빈 스페이시 및 킴 베이신저(오스카 조연상 수상) 등이 공연한 뛰어난 필름 느와르 ‘L.A. 칸피덴셜’에서  상세히 묘사됐다. 이중성과 비행의 도시 LA와 옐로 저널리즘의 어두운 이면을 아름답고 폭력적으로 가차 없이 파헤친 영화에서 ‘칸피덴셜’은 ‘허쉬-허쉬’로 그리고 해리슨은 대니 드비토가 연기한 시드 허젠스로 대체됐다. 책과 함께 영화를 보면 배로 재미가 있을 것이다.                                                                                                <한국일보 박흥진 편집위원/ hjpark1230@gmail.com>


2019년 7월 19일 금요일

‘작별’(Farewell)


한국계 코미디언 아콰피나가 주연을 맡은 빌리(앞줄 가운데)와 할머니(빌리 옆 오른쪽)를 둘러싸고 25년 만에 재회한 가족들이 앉아 있다.

할머니 죽음 앞두고 모인 이민 중국인 가족이야기


미국과 일본으로 이민 온 중국인 가족들이 집안의 기둥이나 다름없는 할머니의 사망을 앞두고 오래간 만에 함께 모여 먹고 마시고 떠들면서 가족 간의 유대와 사랑을 확인하는 달콤하면서도 신맛이 나는 가족 코미디 드라마다. 역시 중국인 가족들의 얘기인 ‘결혼 피로연’과 ‘조이 럭 클럽’ 및 ‘크레이지 리치 아시안’ 등을 연상케 하는데 ‘크레이지 리치 아시안’에서 코믹한 연기를 뛰어나게 한 한국계 코미디언 아콰피나(본명은 노라 럼으로 중국계 아버지와 한국계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났다)가 주연을 맡아 앙상블 캐스트의 영화를 이끌어간다.         
아콰피나의 어머니는 딸이 6세 때 사망해 그 후 아콰피나는 친할머니가 키웠는데 영화의 중심 내용이 할머니를 극진히 사랑하는 손녀와 역시 손녀에 대한 사랑이 지극한 친할머니와의 관계를 다뤄 아콰피나의 연기가 더 사실적인 것 같다. 감독하고 각본을 쓴 사람은 중국계 룰루 왕으로 그의 경험을 다룬 반 자전적 작품이다. 
중국 사람들이어서 잘들도 먹는데 이렇게 먹고 마시고 왁자지껄하니 떠들어대는 장면이 계속돼 다소 극적 추진력이 미흡하고 단조롭기는 하지만 매우 감정적이요 민감하게 가족관계와 문화와 세대갈등 그리고 전통과 현대화의 불균형 같은 내용을 다루고 있다. 우습고도 감상적인데 한국인들에게는 특별히 어필할 작품이다.          
빌리(아콰피나)는 6세 때 중국 장춘에서 부모와 함께 미국으로 이민 와 뉴욕의 브루클린에서 성장한 작가지망생. 빌리의 어머니 지안(다이애나 린)은 생활에 헌신하다보니 감정이 무뎌졌고 애주가인 아버지 하이안(치 마)은 천하태평형. 영화는 빌리가 장춘에 사는 친할머니 나이 나이(자오 슈젠)와 셀폰으로 통화하는 장면으로 시작된다. 빌리와 나이 나이는 못 본 지가 오래 됐지만 이렇게 끈질기게 관계를 유지하고 있다.
나이 나이가 기침이 심해 여동생 리틀 나이 나이(루 홍)과 함께 병원에 가 CT촬영을 한다. 의사는 리틀 나이 나이에게 언니가 폐암으로 앞으로 3개월 밖에 못 산다고 통보한다. 리틀 나이 나이는 이를 언니에겐 알리지 않고 빌리 네와 일본으로 이민 간 하이안의 형 하이빈(지앙 용보) 가족에게 통보한다. 
그래서 온 가족이 25년 만에 처음으로 모두 한 자리에 모이는데 핑계는 하이빈의 아들 하오 하오(첸 한)와 그가 만난 지 3개월 밖에 안된 일본인 애인 아이코(아오이 미주하라)의 벼락치기 결혼. 엉겁결에 급조된 결혼식을 올리게 된 한 쌍을 놓고 벌어지는 코미디가 재미있다. 매사에 리더 노릇을 안 하면 몸살이 나는 나이 나이의 진두지휘 하에 성대한 결혼식을 준비하느라 시끌벅적하다. 한편 나이 나이는 할머니에게 사실을 숨기는 것이 못 마땅해 속을 썩이고 항의를 하지만 가족들의 뜻을 따르기로 한다. 
아콰피나가 듬직한 연기를 하면서 영화를 어깨에 짊어지다시피 하는데 그를 둘러싼 앙상블 캐스트도 아주 좋은 연기를 한다. 특히 자오 슈첸과 치 마의 연기가 돋보인다. 촬영도 좋다. PG등급. ★★★½ (5개 만점) 
                                                              <한국일보 박흥진 편집위원/ hjpark1230@gmail.com>



‘미드솜마’(Midsommar)


대니(오른쪽서 두번째)가 크리스천의 기상천와한 행위를 보고 대성통곡하자 마을 여인들이 함께 통곡하고 있다.

공동생활촌 축제 중 벌어지는 한여름의 공포·악몽


제목은 스웨덴어로 한 여름을 뜻하는데 이 영화는 한 여름 작렬하는 태양 아래서 눈을 뜨고 꾸는 악몽이다. 
감독 겸 각본을 쓴 아리 애스터의 재주 자랑이 장난이 지나치다시피하다고 여기질 만큼 변덕을 부리는 공포영화로 과다하게 끔찍한 장면(눈 뜨곤 못 본다)을 사용해 영화의 내용은 물론이요 흥미를 오히려 저해한다.
뭐라고 정의 내리기가 힘든 영화로 북구라파의 민화요 전설 같기도 하고 피범벅 변태적인 동화이기도 한데 영화가 잘 나가다가 어디로 빠진다는 식으로 흥미를 자극하는 얘기를 서술하다가 돌연 너무 터무니가 없어 폭소가 터져 나올 정도로 잔인하고 해괴한 내용을 섞어 넣어 “또 저러네. 별짓 다하네”하는 소리가 절로 나온다. 
스타일과 무드가 얘기를 앞지르고 배우들의 역이나 성격 묘사가 충분히 개발 되진 못 했지만 보면서도 도저히 믿지 못 하겠다고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게 만드는 해괴망측하고 이상하고 얄궂은 영화다. 그러나 상영시간 2시간 26분을 충분히 즐길 수 있는 작품이다. 보기 전에 마음 단단히 간직할 각오들을 하도록 충고한다. 
외지인을 산 제물로 바치는 공동 생활촌의 컬트영화라고 하겠는데 삶의 순환 같은 철학적인 소리도 하고 있지만 그 것은 괜한 소리. 
주인공인 젊은 여자 대니(플로렌스 퓨)의 끔찍한 가족 비극으로 시작된다. 이로 인해 대니는 슬픔과 고통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시달린다. 그에겐 대학원생으로 인류학 논문을 준비 중인 애인 크리스천(잭 레이노)이 있는데 둘의 관계는 파경 직전에 이른 상태. 크리스천은 다소 감정이 둔해 대니의 아픔 달램에 별 도움이 못 된다. 
크리스천에게는 3명의 친구가 있는데 이들은 역시 인류학을 공부하는 진지한 조쉬(윌리엄 잭슨 하퍼)와 스웨덴에서 유학 온 펠레(빌헬름 블롬그렌)와 막돼먹은 마크(윌 풀터). 이들은 펠레의 초청으로 그가 자란 스웨덴의 공동 생활촌으로 여행을 떠난다. 여기에 대니가 합류한다. 그리고 이들의 2주간의 여름 여행은 악몽과 공포와 유혈참극으로 끝난다.
모두 얇은 백의를 입고 머리에 화관을 두른 채 친절한 미소를 짓는 마을 사람들은 외지인들을 반갑게 맞는다. 크리스천 등은 환각상태를 유발하는 약초를 서비스 받으며 여름의 목가적 분위기를 즐기는데 마을은 9일간의 여름 축제를 시작한다. 그리고 축제과정의 하나로 방문객들은 차마 눈 뜨고 못 볼 끔찍한 일을 목격한다. 이들이 그 후에도 마을을 왜 안 떠나는지 알다가도 모를 일. 역시 외지인인 펠레 동생의 영국인 친구와 그의 애인은 짐을 꾸려 마을 떠나나 그 후 행방불명이 된다. 
축제가 계속되면서 크리스천 일행은 기상천외한 일들을 목격하는데 이어 동네 처녀의 유혹을 받은 마크가 사라지고 그 다음 희생자는 조쉬. 그러나 대니는 쓰러질 때까지 춤을 춰야하는 댄스(상-상스의 교향시 ‘죽음의 댄스’가 들려오는 것 같다)에서 이겨 ‘메이 데이’ 여왕이 되면서 제물로 바칠 마을 사람들의 생사여탈권을 갖는다. 처음에 크리스천 일행이 마을에 도착했을 때 우리에 갇힌 거대한 누런 곰을 보게 되는데 이 곰의 역할은 영화 끝에 끔찍하면서도 폭소가 터져 나올 만큼 해괴한 용도로 쓰여진다. 마지막 대니의 웃어야 할지 울어야 할지 모르겠다는 표정이 영화를 본 필자의 느낌을 대변한다. 촬영과 함께 음악과 음향효과가 아주 좋다. R등급. A24배급. ★★★½ (5개 만점) 
                                                             <한국일보 박흥진 편집위원/ hjpark1230@gmail.com>



‘마르탕 게르의 귀환’(The Return of Martin Guerre)


베르트랑드는 9년 만에 귀환한 남편 마르탕을 반갑게 맞는다.

전쟁 나갔다 9년만에 돌아온 남편이 가짜? 스릴 넘치는 기상천외 프랑스영화


재미있게 지어낸 전설과 같은 얘기인데 실화다. 신분 도용에 관한 이상하고 얄궂은 미스터리 드라마로 흙냄새가 물씬 풍기는 토속적인 실화인데도 내용이 하도 기상천외해 초현실적 분위기마저 느껴진다.
흥미진진한 옛날 애기를 듣는 것 같은데 시간이 갈수록 서스펜스와 스릴마저 갖추면서 결과가 과연 어떻게 될까하고 긴장하게 만든다. 일종의 재판 드라마이기도 한데 이와 함께 16세기 중엽 프랑스의 농촌의 모습과 가족관계, 결혼의 신성 및 교회의 역할 그리고 재산과 돈에 관한 역사도 함께 알아 볼 수 있는 재미있고 유익한 프랑스 작품이다. 
1549년 프랑스 남부 피레네산맥 아래 농촌 마을 아티가. 근면하고 아름다운 아내 베르트랑드(나탈리 바이가 고혹적이다)와 어린 아들을 둔 마르탕은 농사에는 관심이 없고 전쟁에 나가 세상 구경이 하고파 안달이 났다. 그리고 마르탕은 어느 날 아내와 아들과 부모를 버리고 사라진다. 
그로부터 9년 후 마르탕(제라르 드파르디외)이 느닷없이 귀환한다. 동네 사람들은 처음에 많이 달라진 마르탕을 거리를 두고 대하다가 마침내 받아들인다. 그리고 베르트랑드도 마르탕과 포옹을 나눈다. 마르탕은 과거와 달리 근면하게 일하면서 아내와의 사이에 아이까지 낳고 행복하게 산다. 그리고 전쟁에서 겪은 경험을 재미있게 마을 사람들에게 들려주면서 주민들의 큰 환심을 산다. 
그런데 마르탕이 자기 없는 동안 자기 농토를 돌본 삼촌 피에르(모리스 바리에)에게 자기 땅으로 번 돈을 내놓으라고 요구하면서 친척 간에 반목이 생기고 이 반목은 마을 사람들에게로 까지 번진다. 어느 날 마을에 떠돌이 세 명이 도착해 마르탕을 보더니 그가 마르탕이 아니라 마르탕과 함께 전쟁에 나갔던 아르노라고 마을 사람들에게 밝힌다. 진짜 마르탕은 한 쪽 다리를 잃은 채 플란더스에서 살고 있다는 것이다. 
물론 마르탕은 이를 부인하나 조카에게 앙심을 품은 피에르가 마르탕을 가짜라고 고소하면서 재판이 열린다. 재판에서 마르탕이 자기 결혼과 마을에 관한 질문에 대해 정확히 대답하면서 승소한다. 그러나 피에르가 얼마 후 다시 마르탕을 고소하면서 두 번째로 재판이 열리고 여기서 극적인 일이 일어난다. 
돌아온 마르탕은 진짜인가 아니면 가짜인가. 가짜라면 어떻게 해서 아내가 그 것을 모를 수가 있을까. 대답은 재판에서 나온다. 드파르디외가 차분하게 연기를 잘하고 바이도 조용하나 알찬 연기다. 촬영과 이미지도 마치 한 폭의 농촌화를 보는 것 같다. 1982년 작으로 새 프린트로 재개봉된다. 이 영화는 1993년 리처드 기어와 조디 포스터 주연의 ‘소머스비’로 리메이크됐다. ★★★★½ (5개 만점) 
                                                             <한국일보 박흥진 편집위원/ hjpark1230@gmail.com>



‘예스터데이’(Yesterday)


수퍼스타 가수가 꿈인 잭이 동네 후진 술집에서 노래를 부르고 있다.

비틀즈 없는 시대로 간 가수지망생
환상을 그린 뮤지컬 로맨틱 코미디


제목에서 알 수 있듯이 이 영화는 비틀즈에게 바치는 헌사와도 같다. 비틀즈 노래가 계속해 나오는 뮤지컬 로맨틱 코미디 환상영화로 터무니없는 얘기지만 보고 즐길 만한 영국영화다.
감독은 ‘슬럼독 밀리어네어’를 만든 대니 보일이고 각본은 달짝지근한 로맨스 영화들인 ‘노팅 힐’과 ‘러브, 액추얼리’를 쓴 리처드 커티스.
커티스의 이런 영화들처럼 내용이 사카린 맛이 나고 관객에게 아첨하듯이 알록달록 겉치장을 한데다가 감상적이긴 하나 비틀즈의 노래를 들으면서 향수감에 젖어볼 만한 영화다.
런던 서부에 살면서 수퍼마켓 창고에서 일하는 인도계 영국청년 잭 말릭(히메쉬 파텔)은 유명 가수 겸 작곡가가 되는 것이 꿈. 그래서 저녁과 주말이면 동네 후진 술집에 나가 노래를 부른다. 잭을 적극 후원하는 사람이 학교 때부터 친구이자 팬으로 그의 매니저 노릇을 하는 엘리(릴리 제임스). 그런데 엘리는 잭을 속으로 사랑한다.
어느 날 전 세계가 잠깐 정전이 되는 순간 잭은 교통사고를 당해 병원에 입원한다. 잭이 깨어나 보니 과거 시간과 공간에 변동이 생겨 아무도 비틀즈가 누구인지를 모른다. 잭이 엘리와 친구들 앞에서 비틀즈의 ‘예스터데이’를 부르니까 친구들이 “너 어떻게 해서 이런 멋진 노래를 작곡했느냐”며 경탄한다. 잭이 구글을 두들겨 보니 ‘비틀즈’는 딱정벌레라고 나온다. 그룹 비틀즈의 스펠링은 Beatles이고 딱정벌레의 그 것은 Beetles이다.
잭은 이제야 말로 출세와 부의 문이 열렸다고 생각하고 비틀즈의 노래들을 자기 것으로 소개하면서 노래 부른다. 잭이 비틀즈의 많은 히트곡들의 가사를 다 못 외워 쩔쩔매는 모습이 재미있다. 
잭의 노래를 듣고 접근한 사람이 유명 가수 에드 쉬란(실제 영국의 가수인 쉬란이 캐미오로 나온다). 쉬란은 잭을 자기 순회공연의 백업가수로 기용하는데 자기가 잭보다 재능이 떨어진다는 것을 알고 잭을 시샘한다.
잭의 노래 실력이 점차 널리 알려지면서 잭을 찾아온 사람이 할리웃의 비도덕적인 에이전트 한나(케이트 맥키논). 그리고 둘은 음악사상 최고의 앨범을 발매할 준비에 들어간다. 잭의 인기가 전 세계적으로 퍼지면서 잭은 명성과 부에 눈이 멀어 자기를 믿고 후원하던 엘리에 대해 소홀히 하면서 착한 엘리가 가슴앓이를 한다.
‘예스터데이’를 비롯해 ‘헤이 주드’(쉬란은 ‘주드’를 멋쟁이의 속어인 ‘듀드’로 바꾸자고 제안한다), ‘백 인더 U.S.S.R.’, ‘아이 쏘 허 스탠딩 데어’ 및 ‘아이 와나 홀드 유어 핸드’ 등 비틀즈의 노래들이 줄줄이 나온다. 파텔이 명창은 못되지만 직접 노래를 부르는데 연기도 귀염성 있게 한다. 그러나 제임스는 다소 충분히 사용되지 못한 감이 있다. PG-13 등급. Unversal. ★★★ (5개 만점)
                                                             <한국일보 박흥진 편집위원/ hjpark1230@gma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