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이야기

2019년 5월 13일 월요일

‘그림자’ (Shadow)


지유(오른쪽)와 징이 음양무늬의 바닥에서 무술 훈련을 하고 있다.

장이모우 감독의 예술적 액션… 대역 장군의 장렬한 전투 볼 만


‘영웅’ ‘연인’ 및 ‘황후화’ 같은 액션이 박진하고 아름다운 무술영화를 잘 만드는 중국의 명장 장이모우의 시각미가 아찔하게 예술적이며 액션이 물 흐르는 듯이 유연하고 박력 넘치는 궁중 드라마다.
음모와 배신과 기만과 로맨스가 복잡하게 연결되고 개인 간의 결투와 대규모 전투 장면이 대담무쌍하게 펼쳐지는 대하서사극인데 매우 진행이 느리고 지나치게 스타일과 외면에 치중한 감이 있는 반면 내용 서술이 실하게 처리되지 못한 감이 있다.
참으로 장관인 것은 묵화를 그린 것 같이 먹물 단색으로 찍은 화면이다. 흑백의 아름다움이 칼라보다 더욱 진하다는 것을 여실히 보여주는데 가끔가다 칼라로 인간의 육체와 대나무의 잎 그리고 사방으로 흩뿌려지는 피를 흑백과 대치하면서 장관을 이룬다.
이런 아름다운 화면과 마치 춤을 추는 듯한 개인 간의 액션 장면 그리고 대규모의 군중 전투장면 등 예술적으로 처리된 외형미와 스타일은 경탄스럽지만 인물들의 성격개발이나 이야기의 막힘이 없는 흐름이 제대로 안 된 것이 아쉽다. 그러나 촬영과 액션 안무 그리고 디자인 등은 참으로 훌륭하다.
내용은 ‘삼국지’를 재구성한 것이다. 페이 국의 비겁하고 자기만족에 빠진 왕 페일리앙(젱 카이)은 라이벌 나라에게 자기 영토인 징조우를 빼앗기고도 더 이상의 정쟁만 없다면 된다며 현상유지에 만족한다. 심지어 적국의 왕에게 자기 여동생 큉핑(구안 시아오통)을 첩으로 보내겠다고 다짐한다.
이런 왕의 뜻을 어기고 적국의 창을 잘 쓰는 양장군(후진)에게 도전하는 것이 페이 국의 용맹한 장군 지유(뎅 차오). 그러나 이 혈기 방장한 지유는 진짜 본인이 아니라 자기와 똑 같이 생긴 징(뎅 차오). 지유는 지난 전투에서 심한 부상을 입고 지하에 숨어 있으면서 자기가 훈련시킨 징으로 하여금 자기 ‘그림자’가 돼 궁정에서 활동하도록 한 것. 이를 아는 유일한 사람은 지유의 아내 시아오 아이(순 리). 그런데 시아오 아이가 가짜 장군 징에게 사랑을 느끼면서 묘한 삼각관계가 발생한다.
지유가 잃어버린 영토를 되찾기 위해 자기가 훈련시킨 부하들을 동원해 공격을 시도하면서 장렬한 전투가 벌어진다. 무술 안무가 형용하기 힘들 정도로 이름다운데 특히 지유와 징 그리고 시아오 아이 3인이 보여주는 무술장면이 우아하고 치명적인 궁중무를 보는 것 같이 멋있다.
영화에서 또 하나 볼만한 것은 무기와 방패로 써지는 우산. 방패로 써지던 우산이 조각조각 갈라지면서 쇠 날들이 날아가 상대를 쓰러트린다. 그리고 우산은 또 마치 큰 접시처럼 되어 사람이 타고 질주하는 용구로도 써진다. WellGo. ★★★ (5개 만점)
                                            <한국일보 박흥진 편집위원/ hjpark1230@gmail.com>



‘하얀 까마귀’ (The White Crow)


파리에 도착한 누레예프가 카페에 앉아 자유분방한 거리풍경을 주시하고 있다.

서방 망명한 러시아 발레 스타 누레예프의 전기


1961년 공연차 방문한 파리에서 서방세계로 망명한 러시아의 수퍼스타 발레댄서 루돌프 누레예프의 전기영화로 배우 레이프 화인스의 세 번째 감독 작품이다. 영화에서 누레예프의 발레 선생으로도 나와 대사를 러시아어로 구사하는 화인스는 연출과 연기를 다 착 가라앉은 솜씨로 다루고 있다. 연출력이 섬세하다.
많은 발레 장면과 누레예프의 인물과 성격묘사 그리고 그의 파리에서의 생활과 마지막 망명 시도 등 극적인 부분을 골고루 다루고 있는데 칙칙한 단색으로 처리한 회상장면이 너무 많아 서술이 산만하다. 예술을 좋아하는 팬들이 즐길 영화로 누레예프로 스크린에 데뷔한 우크라이나의 발레 댄서인 올렉 이벤코의 연기가 카리스마가 부족하긴 하나 그만하면 잘한 편이다. 제목은 줏대가 너무 강해 무리에 잘 섞이지 못하는 외톨이를 가리킨다.   
가난한 환경에서 자란 누레예프는 어렸을 때부터 댄스에 재능을 보여 국립댄스학교에서 수련을 받는다. 성장한 그는 레닌그라드의 저명한 발레교사 알렉산더 푸쉬킨(화인스)의 제자가 된다. 그런데 누레예프는 오만하고 반항적이며 집단 위주의 소련에서 개인의 권리를 주장해 학교의 관리들과 충돌을 한다.
푸쉬킨은 누레예프의 재능과 최고가 되겠다는 야망을 파악, 그를 정성껏 지도하는데 누레예프에게 관심을 보이는 또 다른 사람이 푸쉬킨의 아내 세니아(출판 카마토바). 세니아는 남편의 코앞에서 누레예프를 유혹해 정사를 나눈다. 영화에서 누레예프는 양성애자로 나오는데 그는 1993년 에이즈로 사망했다.
학교를 졸업한 뒤 누레예프는 키로프 발레단원이 된다. 그리고 발레단은 1961년 5주간의 프랑스 공연차 파리에 도착한다. 파리에 묵는 동안 누레예프는 동행한 소련 정보부 KGB 요원의 통금명령과 삼엄한 감시를 무시하고 파리의 문화와 밤의 클럽문화를 즐긴다. 이에 누레예프를 동행하는 사람이 파리에서 사귄 프랑스 댄서 피에르 라코트(라파엘 페로나즈)와 피에르의 친구인 상류층 출신의 육감적인 클라라 생(아델 에사쇼풀로). 
파리에서의 발레 공연장면이 화사하니 멋있다. 이와 함께 파리의 데카당한 밤 문화가 소개된다. 프랑스에서의 성공적인 공연 후 발레단은 런던으로 가기 위해 공항에 도착한다. 여기서 KGB 요원이 누레예프에게 런던이 아니라 혼자 모스크바로 가야 된다는 지시를 내린다. 누레예프의 개인적 활동이 찍혀 호출되는 것이다. 
소련에 돌아가면 자기 인생이 끝난다는 것을 아는 누레예프는 망명을 하기로 결심한다. 정보부 요원들이 누레예프를 둘러싼 가운데 그의 과감한 망명을 돕는 사람이 피에르와 클라라. 특히 클라라가 결정적 역할을 한다. 공항에서의 이 장면이 긴장감 있다. 너무 많은 것을 얘기하려고해 서술에 일관성이 없는 것이 흠이지만 잘 만든 예술적 영화다. 
R등급. Sony Pictures Classics. ★★★½ (5개 만점)
                                               <한국일보 박흥진 편집위원/ hjpark1230@gmail.com>



엘리아 카잔


수년전 뉴욕에서 마틴 스코르세이지 감독을 인터뷰할 때 내가 이렇게 질문했다. “당신이 감독이 되겠다고 결정하게 만든 영화는 무엇인가.” 이에 그는 서슴없이 “엘리아 카잔의 ‘워터프론트’”라고 대답했다.
내가 최근에 읽은 리처드 쉬클이 쓴 통찰력 있는 카잔의 전기 ’엘리아 카잔‘(Elia Kazan)에서도 스코르세이지는 “나는 12세 때 ’워터프론트‘를 보고 내 피의 한 부분처럼 느꼈었다”면서 “이 영화는 사실주의의 표본으로 인간의 자연적 행위인 표면 뒤의 진실을 드러낸 획기적인 작품”이라고 찬양했다. 스코르세이지는 후에 카잔이 자신의 후기작품인 ’어레인지먼트‘를 찍을 때 무보수 견습생으로 일했다.
이 ‘표면 뒤의 진실’은 카잔(사진)이 평생 짊어지고 다닌 부담이었다. 1909년 오토만 제국의 콘스탄티노플(현 이스탄불)의 그리스계 부모 밑에서 태어나 어릴 때 미국으로 이민 온  카잔은 2003년 94세로 뉴욕에서 사망할 때까지 늘 ‘아나톨리안 미소’을 지으며 살았다. ‘아나톨리안(현재의 터키) 미소’란 속내와 다른 미소를 일컫는데 이는 평생 자신을 이방인으로 여긴 이민자로서의 카잔의 삶의 한 모습이었다. 이민자인 나도 그 의미를 잘 알 것 같다.   
영화와 연극감독이자 연기선생이며 각본가요 제작자이며 작가인 카잔은 브로드웨이에서부터 연출활동을 시작했다. 그 대표적 작품이 테네시 윌리엄스가 쓴 ‘욕망이라는 이름의 전차’와 아서 밀러의 ‘세일즈맨의 죽음’이다. 이 두 작품은 종전의 무대의 역할을 혁신적으로 바꿔놓은 것들로 평가받고 있다. ‘욕망이라는 이름의 전차’는 후에 카잔이 말론 브랜도와 비비안 리를 써 영화로 만들어 리가 오스카주연상을 탔다.
활기왕성하고 대담하고 창조적이면서도 사적이요 자기회의적이며 복잡한 성격과 어머니로부터 물려받은 강한 집념의 소유자였던 카잔은 배우들로부터 생생한 연기를 이끌어내는 능력을 지닌 ‘배우들의 감독’이라 불리면서 사회의식이 강한 사실주의적 작품들을 여럿 만들었다.
그 대표적 영화가 뉴욕부두의 노동자들을 착취하는 깡패집단의 횡포를 폭로한 ‘워터프론트’다. 이 밖에도 미국 내 흑백문제를 그린 ‘핑키’와 반유대주의를 폭로한 ‘신사협정’, 미디어의 대중우민화를 다룬 ‘군중 속의 얼굴’ 및 테네시강 유역 개발공사에 관한 ‘거친 강’ 등이 있다.
카잔은 명배우들을 배출한 뉴욕의 액터스 스튜디오의 창립자로 말론 브랜도, 몬고메리 클리프트, 제임스 딘 및 줄리 해리스 등 기라성 같은 연기파들을 키운 탁월한 스승이기도 했다. 배우들의 숨은 잠재력을 찾아 끌어낼 줄 아는 신통력을 지닌 선생이었다.
그는 특히 1950년대 여러 편의 명작들을 만들었는데 ‘욕망이라는 이름의 전차’와 ‘워터프론트’와 함께 역시 브랜도 주연의 ’혁명아 자파타!‘와 제임스 딘 주연의 ’에덴의 동쪽‘ 그리고 ’베이비 달‘ 및 ’군중 속의 얼굴‘ 등이 이 때 작품들. 뛰어난 비전과 왕성한 추진력을 지녔던 카잔은 1950년대 미국에서 가장 중요하고 영향력 있는 감독이었다.
그의 또 다른 영화들로는 한국에서 개봉됐을 때 10대 여학생들의 열화와 같은 반응을 받은 워렌 베이티와 나탈리 우드가 공연한 ‘초원의 빛’과 자기 가족의 자화상인 ‘아메리카 아메리카’가 있다. 마지막 영화는 F. 스캇 핏제럴드의 미완성 소설로 MGM의 요절한 명제작자 어빙 달버그를 모델로 쓴 로버트 드 니로 주연의 ‘라스트 타이쿤’(1976).
카잔은 생전 명성과 오명을 함께 지니고 살아야 했다. 그는 ‘신사협정’과 ‘워터프론트’로 오스카 감독상을 두 번이나 탔고 1983년에는 미 정부가 주는 케네디센터 생애업적상을 그리고 1999년에는 오스카 생애업적상을 탔다.           
 그러나 그의 이런 영광은 그의 사후 지금까지도 논란거리가 되고 있는 ‘배신자’라는 오명의 그림자에 가려져 있다. 한 때 공산당원이었다가 환멸을 느끼고 탈퇴한 카잔은 미국 내 공산당 때려잡기 광풍이 불던 1952년 연방하원의 ‘반미활동 조사위’의 청문회에 출두, 공산당과 관계한 동료 영화·연극인들의 이름을 밝혔다. 그래서 카잔이 오스카 생애업적상을 탈 때 많은 참석자들은 기립하지 않고 자리에 앉아 그의 수상에 반감을 표했었다.
그러나 카잔의 ‘고자질’을 옹호하는 사람들도 적지 않은데 그 중 한 사람이 책을 쓴 쉬클이다.  이들은 카잔이 청문회에서 밝힌 이름들은 이미 모두가 알고 있던 이름들로 새삼스러울 것이 없으며 아울러 국가에 해가되는 단체 소속원들을 고발한 것이 왜 나쁘냐는 주장이다.         흥미 있는 사실은 카잔이 ‘워터프론트’의 주인공으로 부두노동자들을 착취하다 뒤 늦게 각성하는 깡패 테리 말로이(브랜도)를 통해 자기 입장을 대변한 점이다. 테리는 동료깡패들의 불법행위를 고발하면서 정의 수호자가 되는데 카잔은 이런 동료에 대한 배신행위를 정당화함으로써  자신의 고발행위를 옹호하고 있다.
‘엘리아 카잔’의 저자 고 리처드 쉬클은 내가 속한 LA영화비평가협회의 회원이었다. 타임지 영화비평가로 오래 활동한 그는 영화에 대해 해박한 지식을 지녔던 사람으로 많은 저서와 함께 찰리 채플린, 우디 알렌 및 엘리아 카잔 등 여러 영화인들에 관한 30여 편의 기록영화를 만들기도 했다. 쉬클은 책에서 카잔의 60년에 이르는 감독으로서의 삶과 작품들을 지적이요 폭넓게 조명하면서 아울러 매력적인 인물이었던 카잔을 추모하고 있다.                       
                                                <한국일보 박흥진 편집위원/ hjpark1230@gmail.com>


‘파리는 불타고 있는가?’


‘빛의 도시’ 파리하면 언뜻 생각나는 것들을 보자. 고다르의 ‘밴드 오브 아웃사이더스’에서 프란츠와 아르튀르와 오딜이 세계 신기록을 낸다며 뛰어다니면서 9분43초 만에 그림과 조각등 전시품들을 다 본 루브르미술관, 튀어나온 송곳니처럼 파리의 하늘을 찌르고 선 에펠탑, 강변에 앉은 연인들의 키스가 물결치는 센 강.
고다르의 ‘브레스리스’에서 단발의 진 시버그가 “뉴욕 헤럴드 트리뷴”하며 신문을 팔던 샹젤리제와 반전 작가 에릭 마리아 레마르크의 소설 제목인 개선문 그리고 얼마 전에 불이 난 노트르담성당.     
파리를 두 차례 찾았던 내가 애착을 느끼는 곳은 개선문 앞 샹젤리제에 있는 120년의 역사를 지닌 식당 푸켓(Fouquet’s)이다. 내가 이 식당을 처음 알게 된 것은 소설 ‘개선문’(Arch of Triumph)을 통해서다. 소설은 2차대전 직전 독일서 파리로 도망 온 불체자 의사 라빅과 역시 불체자로 배우 출신인 혼혈녀 조앙의 우수와 절망과 불안에 가득 찬 비극적 사랑을 그렸다.
라빅과 조앙이 자주 들렀던 곳이 푸켓이다. 둘은 여기서 시큼한 맛이 나는 사과브랜디 칼바도스를 즐겨 마셨는데 칼바도스는 둘의 육체적 사랑을 촉진시키는 최음제 구실을 한다. 소설은 샤를르 봐이에와 잉그릿 버그만 주연의 동명영화로도 만들어졌다.
나는 그 이후 파리하면 이 책과 영화에 나온 푸켓이 먼저 떠올라 2011년 로만 폴란스키를 인터뷰하러 파리에 들렀을 때 샹젤리제를 걸어 마침내 그 곳엘 들러 노변 테이블에 앉았다. 가르송에게 칼바도스를 시켜 프랑스 사람들이 즐기는 에스카르고(달팽이)를 안주 삼아 마시며 이방인의 소슬함에 취했던 기억이 난다.
이 때 들렀던 기차역 가르 뒤 노르(북 역)도 잊지 못할 곳이다. 만남과 헤어짐이 분주한 가르 뒤 노르는 메이-디셈버 로맨스영화로 게리 쿠퍼와 오드리 헵번이 나온 ‘하오의 연정’의 라스트신을 찍은 곳이다. 
내 기억에서 지워지지 않는 파리의 또 다른 곳이 파리에서 가장 오래된 다리인 센 강 위의 퐁 뇌프다. 폴란스키를 만나기 몇 년 전에 이 다리를 무대로 한 영화 ‘다리 위의 연인들’을 취재하러 간 것이 파리 초행이었다. 영화는 한 쪽 눈이 먼 화가 미셸(쥘리엣 비노쉬)과 퐁 뇌프를 집으로 삼고 사는 알코올 중독자인 거리의 곡예사 알렉스(드니 라방)와의 집념적인 사랑을 그린 것이다.           
센 강을 따라 걸어 황혼녘에 퐁 뇌프에 이르러 다리 위에서 주위를 살펴보니 저만치에 노트르담이 보인다. 내가 노트르담을 본 것은 이렇게 멀리에서였다. 노트르담에 가지 않고 다리 옆에 있는 카페 퐁 뇌프에 들러 위스키를 시켜 마셨다.
‘우리들의 성모’라는 뜻의 노트르담은 빅토르 위고의 소설 ‘노트르담의 꼽추’(The Hunchback of Notre Dame)와 이를 원작으로 한 동명영화로 더 유명해졌다. 여러 편의 영화 중에서도 가장 잘 만든 것이 찰스 로턴이 흉측하게 생긴 성당 종지기 콰지모도로 그리고 모린 오하라가 화끈하게 요염한 집시댄서인 에스메랄다로 나온 1939년 작 흑백작품이다. 성당 지붕의 괴물상 모습을 한 로턴이 뛰어난 연기를 하는데 소설과 달리 해피 엔딩이다.
영화는 1956년 앤소니 퀸과 이탈리아의 글래머 걸 지나 롤로브리지다 주연으로 리메이크 됐는데 전편만은 못하나 볼만은 하다. 이 영화는 소설처럼 비극으로 끝난다. ‘노트르담의 꼽추’는 이 밖에도 론 체이니 주연의 무성영화로도 만들어졌고 만화영화로도 만들어졌다. 노트르담은 이 밖에도 많은 영화에서 그 위용을 뽐냈다. 그런데 노트르담 화재 후 책 판매부수가 늘었다고 한다.
파리는 요즘 불타고 있다. 프랑스의 시민 시위대인 ‘노란 조끼’들이 시내에 나와 마크롱 대통령의 정부를 비난하는 격렬한 시위를 벌이면서 방화와 파괴를 하고 있는데 지난 3월에는 ‘노란 조끼‘들이 푸켓에 불을 지르고 내부를 때려 부셔, 그 처참한 모습(사진) 을 보자니 내 가슴에 서운함이 스며든다.
노트르담 화재 후 정부가 성당 복구를 위해 돈과 힘과 노력을 아끼지 않겠다고 선언하면서 대기업들이 거액의 후원금을 기부하자 20일 ‘노란 조끼’들이 이에 반감을 표시하면서 다시 폭력적인 시위를 벌였다. 한 시민은 “노트르담이 귀중한 것이긴 하지만 인간이 돌보다 더 중요하다”면서 시위의 이유를 밝혔다.
‘파리는 불타고 있는가?’(Is Paris Burning?)라는 영화도 있다. 미국과 프랑스의 기라성 같은 배우들이 나오는 영화로 2차대전 종말기 독일군이 파리에서 철수하기 전 노트르담과 에펠탑등 파리의 기념비적인 모든 것을 파괴하라는 히틀러의 명령과 이의 실행을 놓고 갈등하는 점령군 총사령관의 유사 기록영화 스타일의 작품이다.                     
‘카사블랑카’에서 이별이 안타까워  눈물을 흘리면서 “우리는 어떻게 하구요”라고 애소하는 일사를 릭은 “우리에겐 언제나 파리가 있을 거요”라며 달랬다. 일사와 릭 그리고 우리 모두의 낭만의 도시 파리가 불타지 않기를 바란다. 
                                                                <한국일보 박흥진 편집위원/ hjpark1230@gmail.com>


2019년 4월 25일 목요일

‘손수건을 꺼내라’ (Get Out Your Handkerchiefs


라울(왼쪽)과 스테판은 라울의 아내 솔랑지를 공유하고 사랑한다.

두 남자 한 여자 공유… 기이하고 발칙 프랑스영화


기이할 정도로 색다르고 독창적이며 귀엽고 경쾌한 프랑스 섹스 코미디로 프랑스영화답게 대사가 많지만 말들이 톡톡 튀도록 재치 있다. 도저히 믿기 어려운 어른들을 위한 동화 같은 세 남자와 한 여자의 사랑과 섹스를 다뤘는데 이런 영화는 프랑스가 아니면 만들지 못한다. 
프랑스영화에서 자주 다루는 ‘메나지 아 트롸’(두 남자가 한 여자를 공유하는 관계) 얘기인데 이 삼각관계는 후에 또 하나의 남자가 등장하면서 사각관계로 변이한다. 그런데 마지막 남자의 나이가 불과 13세. 이 소년과 젊은 아내의 섹스를 보자니 루이 말르의 ‘가슴앓이’(Murmur of the Heart·1971)이 생각난다. 프랑스의 명장 베르트랑 블리에가 각본을 쓰고 연출한 1978년 작으로 오스카 외국어영화상을 탔다.
대뜸 일요일 파리의 식당에서 젊은 부부 라울(제라르 드파르디외)과 솔랑지(카롤 로르)가 점심을 먹으면서 대화를 나누는 장면으로 시작된다. 라울은 솔랑지가 잘 먹지도 않고 불면과 두통에 시달리며 가끔 졸도까지 하는 것이 자기와의 결혼생활에 대한 불만 탓이라며 이 ‘병’을 고쳐주겠다며 다른 남자와 사귀라고 종용한다. 그리고 식당에 앉아 있던 스테판(파트릭 드웨르)을 억지로 끌고 오다시피 해 그에게 솔랑지를 소개한다. 
무표정한 얼굴로 젖가슴을 드러낸 채 뜨개질을 즐기는 솔랑지는 라울과의 섹스에 만족을 못해 탈이 났는데 남편과 스테판과 돌아가면서 섹스를 하는데도(둘은 때로 어제 솔랑지가 누구와 섹스를 했는지 잊어버려 혼란에 빠진다) ‘병’은 안 낫는다. 임신을 하면 ‘병’이 나을 것 같아 노력하나 그것도 안 된다. 
스테판은 모차르트 숭배자이자 독서광인 중학교선생. 영화에서 모차르트의 피아노협주곡 제21번(‘엘비라 마디간’ 협주곡)과 클라리넷협주곡이 효과적으로 쓰이는데 이와 함께 프랑스 영화음악의 거장 조르지 들르뤼가 작곡한 음악이 아름답게 흐른다. 
스테판의 제자 중 한 명이 13세난 IQ 160짜리 크리스티앙(리통 리브망). 스테판이 돌보는 여름캠프에서 왈패들에게 시달리는 크리스티앙을 캠프에 라울과 함께 참석한 솔랑지가 보호를 한다. 어느 날 밤 솔랑지가 조숙한 크리스티앙을 자기 침대에 함께 들게 하면서 크리스티앙은 잠든 솔랑지의 아름다운 육체를 탐구하는데 이에 잠이 깬 솔랑지는 처음에 크리스티앙을 나무라다가 둘이 섹스를 하게 된다. 그리고 솔랑지는 둘 다 아이 같은 라울과 스테판보다 비록 나이는 어리나 이 둘보다 어른다운 크리스티앙에게 의지하게 된다. 
크리스티앙의 부모가 아들을 기숙사학교에 보내면서 솔랑지가 크리스티앙이 보고파 안달이 나자 솔랑지와 라울과 스테판이 학교를 찾아가 크리스티앙을 납치한다. 이어 솔랑지는 크리스티앙과 사랑의 줄행랑을 놓는다. 그리고 솔랑지는 마침내 크리스티앙의 아기를 임신한다. 마지막 장면은 납치 죄로 6개월 옥살이를 하고 나온 라울과 스테판이 밤에 솔랑지가 사는 집 쇠문을 붙잡고 멀리 창속으로 보이는 배가 부른 솔랑지를 그리운 눈으로 바라보다가 떠나는 우습고도 가슴 싸하니 저려오는 장면으로 장식된다. 로맨틱하고 고소한 맛이 나는 참신한 영화로 시간이 흐르면서 서서히 보는 사람의 가슴을 사로잡는다. 연기들이 훌륭하다. 로열극장(11523 Santa Monica Blvd. 310-478-3836)    ★★★★½ (5개 만점)
                                                                 <한국일보 박흥진 편집위원/ hjpark1230@gmail.com>





2019년 4월 17일 수요일

‘독맨’ (Dogman)

'
마르첼로가 덩지가 큰 개의 발톱을 다듬어주고 있다.

평범한 시민 폭력적으로 변하는 과정 사실적 묘사


나폴리 인근 후진 동네의 갱의 범죄와 폭력을 사실적으로 다룬 ‘고모라’를 연출한 이탈리아 감독 마테오 가로네의 또 다른 범죄영화로 긴장감 팽팽하고 우중충한 분위기를 지녔는데 이런 범죄적 분위기를 가끔가다 블랙 코미디로 얼려주고 있다.
주인공은 착하고 평범한 소시민으로 이런 사람이라도 주변의 악에 의해 막다른 골목에 몰리면 쥐가 고양이에게 대어들듯이 가차 없는 폭력을 행사할 수 있다는 것을 처절하게 보여주고 있다. 가난과 폭력 그리고 범죄와 무지 및 탐욕이 인간에게 미치는 악영향을 실존적으로 그린 손에 땀을 쥐게 만드는 작품이다.
큰 눈에 다소 우스꽝스런 얼굴을 한 마르첼로(마르첼로 폰테)는 나폴리 인근 후진 해변마을에서 개미용사로 일하는 소시민이다. 아내와는 헤어졌고 성질 사나운 어머니(눈치아 스키아노)가 있다. 
마르첼로는 사랑하는 어린 딸 소피아(알리다 발다리 칼라브리아)와 스쿠버 다이빙을 하고 동네 사람들과 축구하면서 소일한다. 언젠가 돈을 벌어 딸과 함께 외국의 휴양지를 찾아가 스쿠버 다이빙을 하는 것이 꿈. 그래서 돈을 모아놓으려고 부업으로 서푼짜리 코케인 밀매를 한다. 그가 사는 동네는 마치 유령촌과도 같다. 아무렇게나 지은 콘크리트 아파트들이 칙칙한 색깔로 분위기를 을씨년스럽게 만드는데 폐가나 같은 건물들이 보잘 것 없는 동네사람들의 정신적 상태를 잘 대변하고 있다.
동네사람들이 사갈시 하고 있는 사람이 거구의 폭력적인 시모네(에도아르도 페스체). 시모네는 미친 개 같은 사람으로 험악하고 사납고 어딘가 나사가 빠진 사람이다. 그의 유일한 친구가 마르첼로로 마르첼로는 자기에게도 가끔가다 폭력적으로 나오는 시모네를 참는데 그가 왜 시모네를 좋아하는지 알다가도 모르겠다. 마르첼로는 시모네를 갱의 습격으로부터 구해준 생명의 은인이기도 하다. 
재미있는 에피소드. 범죄 친구를 동반한 시모네가 마르첼로를 윽박질러 아파트 털이에 운전사로 동원한다. 범죄 후 동네로 돌아오면서 시모네가 마르첼로에게 턴 집의 치와와가 짖어대 개를 냉장고 안에 처넣었다고 고백한다. 이에 마르첼로는 시모네를 내려놓은 뒤 아파트로 돌아가 냉장고 안의 개를 구해낸다. 마르첼로는 어찌 보면 사람보디 개를 더 믿고 사랑하는 사람이다.
마르첼로에게 시모네가 찾아와 시모네 옆 가게의 금은방을 털자고 제의한다. 이에 마르첼로는 금은방의 주인 프랑코(아다모 디오니시)가 자기 친구라며 이를 거절한다. 그러나 시모네는 마르첼로가 저녁에 축구를 하러 나간 사이 마르첼로의 가게 안에 들어가 금은방과 붙은 벽을 뚫는다. 이로 인해 잔인하고 폭력적인 복수극이 벌어진다.  
폰테와 페스체의 연기가 뛰어나고 다색을 절제하고 화면을 퍼렇게 멍들게 채색한 컬러와 죽어가는 마을의 을씨년스런 모습을 잘 찍어 보는 사람의 가슴을 침울하게 만드는 촬영도 아주 좋다. ★★★★ (5개 만점)
                                                              <한국일보 박흥진 편집위원/ hjpark1230@gmail.com>


‘나는 쿠바다’


영화 ‘대부’에서도 볼 수 있듯이 바티스타 독재정권 하의 쿠바의 하바나는 미 자본주의자들의 카리브해 판 베이가스였다. 방탕과 타락이 판을 치는 가운데 국민들은 극심한 빈곤과 기아에 시달려야 했다. 결국 바티스타정권은 피델 카스트로의 공산혁명에 의해 붕괴됐고 그 후 미국과 쿠바는 서로 적이 되었다. 이런 두 나라가 반세기 전 단절했던 외교관계를 복원한 것이 4년 전.
바티스타정권의 타락상과 카스트로의 혁명에 이르기까지의 과정을 유려하고 역동적인 카메라로 흑백화면에 기록영화 식으로 묘사한 영화사의 기념비적인 작품이 ‘나는 쿠바다’(I Am Cuba·사진 ★★★★★)이다. 이 영화는 1962년 소련핵무기의 쿠바배치로 미·소간 핵전쟁의 전운이 감돈지 2년 후인 1964년 소련과 쿠바가 합작한 쿠바혁명을 찬미한 불후의 명화다. 
비배우와 잘 알려지지 않은 배우들을 써 대사를 가급적 줄인 채 미 자본주의의 방탕과 부패를 비판하고 아울러 미 정부의 지원을 받던 바티스타정권의 붕괴를 찬양한 영상미가 뛰어난 영화로 매 이미지가 마치 시 구절과 같이 절실하고 아름답다.
카메라의 리듬이 춤을 추듯 하고 그 동작이 물 찬 제비의 비상처럼 사뿐히 날렵한데 이제는 사라진 공산주의를 찬양하고 있지만 매우 엄숙하고 감각적인 작품이다. 특히 소련의 세르게이 우루세프스키가 찍은 촬영은 새 영화언어를 창조해 냈다는 찬사를 받았는데 클로스업과 와이드 앵글을 잽싸게 교체해 가면서 찍은 장면들을 보고 있으면 영화 속으로 빨려 들어가 카스트로의 쿠바를 환호하는 군중 속에 동참한 현실감을 갖게 된다.
역시 영상미가 수려한 ‘두루미들의 비상’(The Cranes Are Flying·1957)을 만든 소련의 미하일 칼라토조프가 감독했고 각본은 각기 소련과 쿠바의 시인들인 예프게니 예프투셴코와 엔리케 바넷이 썼다.
영화는 데카당한 바티스타의 쿠바와 칵테일을 마시면서 노리개 여자를 거래하는 미국남자들과 해군 그리고 비키니 차림의 여자들의 모습과 굶주리고 일상의 고역에 시달리는 농촌과 도시 슬럼의 쿠바인들의 모습을 병행해 보여 준다. 손에 들고 찍은 카메라가 마치 리듬체조를 하듯이 리드미컬하게 움직이면서 사물과 인물들을 끊임없이 확대하고 또 변형시키고 있다. 이런 카메라 테크닉 때문에 우리는 영화 속 고통 받는 쿠바인들을 내 이웃처럼 연민하게 된다.
제작기간 2년 그리고 상영시간 141분짜리 영화는 *식민주의와 그 것이 하바나에 미친 영향 *농부들의 비극 *노동자와 학생들의 투쟁 준비 및 *산 속에서의 투쟁과 승리로 구성됐다.
팜트리와 사탕수수가 검은 바다와 하늘을 배경으로 마치 흰 깃털처럼 출렁이는 꿈을 꾸는 듯한 첫 장면 부터 단숨에 우리의 감관을 사로잡는 영화의 주인공 중 하나는 아름답고 육감적인 마리아. 마리아는 밤에는 베티라는 이름으로 야한 나이트클럽에서 일 하다가 새벽이 되면 하바나 교외의 썩어 문드러져 가는 달동네로 퇴근한다. 6.25후 G.I.가 주둔한 한국이 생각난다. 마리아를 사랑하는 르네는 과일 수레행상을 하면서 혁명세력에게 암호메시지를 전달한다.
근면한 농부 페드로는 자기 사탕수수밭을 외국의 대기업에 잃게 되자 밭을 불 태워 버린다. 페드로의 10대난 자식들은 마을에 나가 코카 콜라를 마시면서 주크박스에서 나오는 양키 팝송을 듣는다. 
대학생 엔리케는 혁명가로 부르주아들의 단골 드라이브-인 극장에 몰로토프 칵테일을 투척하면서 공산혁명 동조자들에게 경찰의 물 폭탄과 총격에 맞서라고 촉구한다. 이 장면은 4.19혁명을 연상케 한다. 산꼭대기에 사는 농부 알베르토는 처음에는 부상당한 혁명군의 도움 요청을 거절하나 정부군 폭격기에 의해 집이 파괴되면서 저항의 무기를 든다. 
카메라가 이들의 얘기를 장면에서 장면으로 뛰어 넘어 포착하면서 우리는 빈곤과 폭력에 시달리는 이 섬나라 사람들의 삶의 모자이크를 뚜렷이 목격하게 된다.
콜럼버스가 “인간의 눈으로 본 가장 아름다운 나라”라고 부른 쿠바의 명물은 시가와 럼과 맘보와 룸바. 내 미국인 친구로 시가를 태우는 마이크는 “쿠바시가는 일종의 지위의 상징으로 맛이 굉장히 강하다”고 알려 줬다. 해적들의 술 럼은 코카 콜라와 라임과 칵테일한 ‘쿠바 리브레’가 달짝지근하니 맛있다. 미국에서는 ‘럼 앤 코크’라 부르는데 옛날 옛적에 세 자매 보컬그룹 앤드루스 시스터스가 ‘럼 앤 코카 콜라’라는 노래를 불러 빅 히트를 했었다.   
‘나는 쿠바다’가 새 프린트로 복원돼 상영된다. *13일(하오 4시와 7시30분)-화인아츠(8556 윌셔) *13일과 14일(상오 10시와 하오 7시30분)-플레이하우스7(673 이스트 콜로라도, 패사디나) *15일(하오 7시30분)-렘리 글렌데일(207 노스 메릴랜드) *16일(하오 7시30분)-모니카 필름센터(1332 2nd St. 샌타모니카) *17일(하오 7시30분)-노호7(5240 랭커심 Blvd.-노스 할리웃)                                                                                              <한국일보 박흥진 편집위원/ hjpark1230@gma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