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이야기

2019년 4월 2일 화요일

‘호텔 뭄바이’(Hotel Mumbai)


호텔 종업원 아르준(데브 파텔)이 테러리스틀의 동향을 숨어서 살펴보고 있다.

테러리스트의 인질 총살극… 긴장·공포·참혹


2008년 인도 뭄바이의 오랜 역사를 지닌 아름답고 위풍당당한 타지마할 팰리스호텔에서 일어난 무슬림 극렬분자들의 테러사건을 그린 실화로 긴장감 있게 만들었지만 매우 피상적이다. 
호주 감독 앤소니 마라스의 데뷔작으로 세트와 촬영과 일부 배우들의 연기 그리고 손에 땀을 쥐게 만드는 아슬아슬한 초조와 불안감 등 그런대로 볼만한 점들이 있긴 하지만 가상한 제작 의도가 제대로 결실을 맺진 못했다.
우선 큰 문제가 작중 중요한 인물들을 여러 사람으로 분산시켜 그 어느 사람에게도 관심이 모아지지 않는 점이다. 필요 없는 사람들을 지나치게 부각시켰고 인물들을 너무 2차원적으로 그려 피와 살이 있는 산 사람으로 느껴지질 않는다. 이와 함께 역경을 이긴 인간 승리라는 흔해빠진 주제를 상투적으로 다루고 있어 신선감이 없다. 부유한 호텔 손님들과 호텔 종업원 그리고 테러리스들과 경찰 등 테러와 관계된 사람들을 다양하게 다루고 있지만 얘기가 집중력을 잃고 산만하나 볼만은 하다. 
10여명의 젊은 무슬림 극렬테러리스트들이 인파로 북적거리는 뭄바이에 도착해 기차역과 식당을 비롯한 여러 곳에서 테러를 자행한다. 테러는 실제로는 사흘간 계속됐지만 영화에서는 하루 만에 끝난다. 이어 이들 중 몇 명이 타지마할 호텔을 점령한다. 
호텔손님들 중 부각되는 사람들이 갓난 아기를 가진 데이빗(아미 해머)과 그의 무슬림 아내 자라(나자닌 보니아디)와 아기의 보모 샐리(틸다 코브햄-허비) 그리고 러시안 백만장자로 특공대 출신인 바실리(영국배우 제이슨 아이작스). 이들과 함께 자기 목숨을 아끼지 않고 손님들을 보호하기 위해 현장에 남기로 한 호텔의 종업원들이 소개되는데 그들 중 중요한 사람들이 용감한 호텔 수석요리사 헤만트 오베로이(아누팜 커)와 젊은 웨이터 아르준(데브 파텔). 이들 외에도 호주에서 인도로 여행 온 젊은 부부와 호텔 리셉셔니스트 등이 소개된다. 
감독은 호텔 곳곳에 갇힌 이들 10여명의 인물들의 상황을 오락가락하면서 보여주는데 오베로이와 특히 아르준을 빼곤 나머지는 지나치게 가볍게 묘사돼 그들의 생사에 별 관심이 가질 않는다. 이들보다는 오히려 이름 없는 테러리스트들이 사실적으로 그려져 진짜 사람들 같다.  
영화는 장시간 계속되는 테러리스트들의 무차별 인질 총살로 보는 사람을 공포와 불안에 빠지게 만드는데 매우 사실적이긴 하지만 마치 다음엔 누가 죽나 하고 기다리는 식이어서 내가 사람 죽이는 것을 구경하려고 이 영화를 보고 있나 하는 자괴심에 빠지게 된다. 영화는 가끔 당시 상황을 찍은 실제 필름을 보여줘 사실감을 부추긴다. 
사건 당시 경찰 특공대가 뭄바이로부터 800마일 떨어진 뉴델리에 있어서 구조가 늦어졌다. 호텔 종업원들의 영웅정신을 제법 잘 그리긴 했지만 맹탕 같은 영화로 바실리와 샐리 역은 얘기에 전연 불필요한 인물들이다. 해머의 연기는 뻣뻣하기 짝이 없지만 파텔과 커가 실속 있는 좋은 연기를 보여준다. R등급. Bleecker Street. ★★★ (5개 만점)
                                                                <한국일보 박흥진 편집위원/ hjpark1230@gmail.com>



‘재는 순백색’(Ash Is Purest White)


구오 빈이 키아오(앞)에게 사격술을 가르쳐주고 있다.

중국 대륙 무대로 갱스터와 순애보


격변하는 중국사회와 이로 인한 전통의 파괴 및 경제성장에 현혹된 탐욕과 빈부의 차이에 관심이 깊은 중국의 명장 지아 장케(각본 겸)의 영화로 여기서도 그가 즐겨 다루는 주제와 함께 한 여인의 장구한 세월을 통한 순애보를 여유 있게 얘기하고 있다.
또 감독이 역시 잘 다루는 범죄세계에 매어달린 변두리 인간들의 모습을 보여주면서 아울러 갱스터와 그의 여인의 오랜 인간관계를 중국의 양자강을 비롯한 거대한 대륙 캔바스를 바탕으로 내밀하게 감정적으로 취급했다. 
서양문명과 현대화에 의해 침식당하는 중국 고유문화와 전통 그리고 이와 함께 기술과 자본주의에 의해 피멍이 드는 서민들의 정신적 상태를 갱스터영화와 러브스토리와 함께 3폭의 병풍화 식으로 그린 준수하면서 재미있는 영화다. 후반에 가서 얘기가 다소 반복되는 감이 있고 서술이 매우 느리긴 하지만 잘 만든 작품이다.
얘기는 2001년에서 시작해 2018년 신년 전날에 끝난다. 중국 북서부 깡촌 탄광촌. 갱스터 구오 빈(리아오 판)은 동네 나이트클럽 뒷방에 차려 놓은 도박판을 지배하는 자로 부패한 부동산 개발업자를 모신다. 
빈에겐 아름다운 애인 키아오(자오 타오-감독의 아내)가 있는데 키아오는 연약하게 보이지만 강한 여자로 남자들이 함부로 여기질 못한다. 터프 레이디로 영화의 주인공은 키아오다. 키아오는 중국 고유의 것과 신문화를 모두 즐기는 개화여인이자 통이 큰 사람이다.
빈의 두목이 라이벌 갱에 의해 제거되면서 이들은 이번에는 빈을 제거하려고 시도한다. 키아오가 위기에 처한 빈을 총기를 사용해 구출해 주면서 키아오가 불법무기 소지죄로 5년간의 옥고를 치르게 된다. 키아오는 총의 주인인 빈의 이름을 밝히지 않고 그 대신 감옥에 간 것. 
5년 후. 출옥한 키아오는 빈을 찾지만 옥중의 키아오를 한 번도 면회하지 않은 빈은 거주지를 옮긴 채 키아오를 외면한다. 그러나 키아오는 빈의 입으로 직접 그의 외면의 이유를 듣기 위해 빈을 찾아 나선다. 이 과정에서 키아오에게 거의 코믹한 재난이 일어난다. 그러나 옥중에서 삶의 기술을 터득한 키아오는 이 재난을 재치 있게 넘긴다. 그리고 마침내 키아오는 빈을 만난다. 이 장면이 매우 감정적이다. 
마지막 부분은 다시 현재의 탄광촌에서 이어진다. 집으로 돌아온 키아오는 도박장의 여주인으로 마을에 군림한다. 그리고 키아오는 몸을 못 쓰게 된 빈을 집안으로 맞아들인다. 그러나 키아오의 이런 마음자세는 그의 빈에 대한 사랑에서라기보다 용서와 인간성의 탓으로 보는 것이 타당하다. 
리아오 판과 자오 타오의 연기가 훌륭하다. 두 사람 모두 차분하게 사실적이면서도 안으로 감정이 충실한 연기를 보여준다. 이와 함께 큰 화폭에 풍경화를 그리듯이 대담하게 장면들을 찍은 촬영도 아주 좋다. Cohen Media Group. ★★★★ (5개 만점)
                                                                <한국일보 박흥진 편집위원/ hjpark1230@gmail.com>



‘와일드 번치’ 50주년


올해는 생전 ‘폭력의 미학’ 추구자라 불린 샘 페킨파 감독의 대하 웨스턴 ‘와일드 번치’(The Wild Bunch·1969)가 개봉 된지 50주년이 되는 해다. 웨스턴을 비롯한 다양한 장르의 영화를 만든 페킨파의 많은 영화들은 난무하는 유혈폭력이 특징으로 ‘스트로 독스’와 ‘겟 어웨이’ 그리고 ‘킬러 엘리트’ 및 ‘크로스 오브 아이언’ 등이 그 대표적 작품들이다.
그러나 그의 여러 영화들 중에서도 유난히 살육의 피비린내가 코를 찌르는 것은 마지막 웨스턴이라 불리는 ‘와일드 번치’다. 페킨파가 말했듯이 이 영화는 “변화하는 시대의 악인들에 관한 단순한 얘기”다.
서부시대와 무법자 총잡이들의 시대가 저물어가는 20세기 초, 한물간 나이 먹은 무법자들의 한탕과 의리와 우정 그리고 자존과 자포자기적인 피의 살육전을 장렬하게 그린 작품으로 사나이들의 영화다. 이 영화는 존 웨인의 웨스턴에서 보여주던 전형적인 카우보이 웨스턴의 기본을 완전히 파괴한 작품이다. 기존 웨스턴이 간직한 서부의 도덕과 신화를 헌신짝처럼 내버리고 있다.
내용(오스카 각본상 후보)과 촬영(오스카상 후보)과 윌리엄 홀든을 비롯한 기라성 같은 베테런 스타들의 쓴맛 다시는 듯한 모습과 묵직한 연기 그리고 라스트신의 슬로 모션으로 전개되는 장시간의 총격전 등 모든 것이 훌륭한 영화로 매우 비극적이요 노스탤지어가 가득하다. 
현대화에 의해 서부시대가 사라져가는 1913년. 나이 먹은 무법자 파이크 비숍(홀든)이 이끄는강도단이 미·멕시코(멕시코서 촬영) 접경마을의 철도사무소를 터나 이들을 기다리며 잠복해 있던 바운티 헌터들에 의해 기습을 당한다. 헌터들의 리더는 한때 파이크의 동료였으나 지금은 옥살이를 하고 있는 디크 손턴(로버트 라이언)으로 그는 파이크 일당을 잡는 대가로 사면을 약속 받았다.
기습에서 살아남은 파이크는 일당인 더치 엥스트롬(어네스트 보그나인)과 라일(워렌 오츠)과 텍터(벤 잔슨)형제 및 앙헬(하이메 산체스) 그리고 후에 만난 늙은 프레디 사익스(에드먼드 오브라이언) 등과 함께 추격하는 디크 일당을 피해 혁명의 와중에 빠진 멕시코로 도주한다.
여기서 파이크 일당은 마을을 지배하는 멕시칸 장군 마파체(멕시코 베테런 배우이자 감독인 에밀리오 페르난데스)와 계약을 맺는다. 미군용무기 수송열차를 털어 무기를 마파체에게 주고 대신 금화를 받기로 한다. 열차에는 디크일당이 타고 있다.
파이크 일당과 디크 일당 간에 총격전이 벌어지고 무기약탈은 성공한다. 파이크 일당은 마파체에게 무기를 전달하고 마을을 떠나려고 하나 마파체가 자기에게 거역하는 앙헬을 체포해 모진 고문을 하자 친구에 대한 의리와 충성이라는 서부 사나이들의 규약을 지키기 위해 마파체와 그의 병사들에게 대항하기로 한다.
노 무법자들인 파이크와 더치 그리고 라일과 텍터 등 4명과 마파체 휘하의 수백 명의 군인들 간에 유혈이 난무하는 살육전이 벌어진다. 슬로 모션으로 장시간 계속되는 이 라스트 신은 피의 발레를 보는 것처럼 아름답기까지 한데 특히 파이크가 탈취한 브라우닝 연발기관총으로 멕시칸 군인들을 살육하는 장면(사진)이 압권이다.
할리웃 영화사에 길이 남는 이 살육전은 개봉 당시만 해도 일부 관객들과 비평가들에 의해 지나친 유혈폭력이라는 비난을 받았다. 일부 관객들은 “존 웨인의 영화는 어떻게 된 거냐”며 불평을 했고 한 비평가는 “추하고 의미 없는 구역질나는 피범벅 영화”라고 비판했다.   
페킨파는 영화에서 현대화에 의해 침식당하는 옛 서부사나이들의 의리와 충성과 우정 그리고 그들만의 규약을 비탄하고 있다. 이 것들의 역사 속으로의 퇴장을 파이크 일당의 자살행위와도 같은 죽음으로 대변하고 있다. 그런데 사실 파이크 일당은 말로는 자신들의 도덕적 규율을 내세우나 그 것이 불편할 때는 외면하는 ‘악인들’이다. 그런 ‘악인들’이 뒤 늦게 자신들의 도덕률과 인간성을 되찾기로 하면서 격렬한 죽음을 선택한 것이다. 이 영화의 본질은 바로 이 부분에 있다고 하겠다.
한물간 무법자인 파이크 역으로는 리 마빈, 버트 랭카스터, 찰턴 헤스턴 및 로버트 미첨 등도 물망에 올랐으나 페킨파는 스타로서의 전성기가 지난 윌리엄 홀든을 최종적으로 선택했다. 극중 인물과 그를 표현하는 실제 인물이 잘 오버랩 되는 선택이다. 
이 영화의 폭력성은 개봉 당시 미국의 역사적 상황을 반영하고 있다. 1960년대 후반은 베트남전이 한창이던 때로 국내정세는 혼란하고 학생들의 시위가 격렬히 벌어지는가 하면 마틴 루터 킹과  로버트 케네디가 암살당하는 등 미국이 국내외로 폭력의 소용돌이에 휘말려 들었던 때였다. 당시 이 영화와 함께 또 다른 유혈폭력적인 영화 ‘우리에게 내일은 없다’(Bonnie and Clyde·1967)와 같은 영화들이 나온 것은 이런 시대상황을 반영한 것이라고 전문가들은 분석하고 있다. 
                                                     <한국일보 박흥진 편집위원/ hjpark1230@gmail.com>


존 웨인 공항


명장 존 포드와 함께 ‘역마차’ ‘기병대 3부작’ 및 ‘수색자’ 등 여러 편의 명작웨스턴을 만든 존 웨인은 미 개척정신을 상징하는 웨스턴의 영웅으로 대접받고 있지만 인간적으로는 오만과 편견에 사로잡힌 사람이었다.
기독교신자로서 철저한 극우보수파 공화당원이었던 그는 아메리칸 인디언과 흑인과 동성애자 그리고 공산당과 좌파와 사회주의자 및 진보파 민주당원 등을 싸잡아 증오한 호전적인 인종 차별주의자였다. 그런 면에서 도널드 트럼프와 의형제쯤 되는 사람이다.   
최근 LA타임스의 칼럼니스트 마이클 힐직이 웨인의 텃밭인 오렌지카운티 공항의 이름인 ‘존 웨인 공항’(사진)을 바꿔야 할 때가 왔다는 글을 쓰면서 새삼 웨인의 과거 인종차별과 편견에 관한 발언이 화제가 되고 있다.
웨인은 1971년 플레이보이지와의 인터뷰에서 아메리칸 인디언들에 관해 “소위 우리가 그들의 땅을 훔쳤다고 하지만 그것은 생존의 문제일 뿐”이라면서 “수많은 사람들이 새 땅이 필요했는데 인디언들은 이기적으로 자기 땅을 간직하려 했다”고 비난했다. 그가 웨스턴에서 인디언들을 가차 없이 총으로 쏴 죽인 이유가 따로 있었구나하는 생각마저 들게 하는 발언이다. 웨인은 ‘수색자’에서는 인디언 사체의 눈에 대고 총질을 하는데 그 이유는 눈이 없는 인디언의 영혼은 정처 없이 허공중을 헤매게 되기 때문이다.
웨인은 또 흑인도 하급인간으로 여겼다. 인터뷰에서 그는 백인우월주의를 지지하면서 “흑인들이 책임감을 느끼는 수준에 이르도록 교육을 받기 전까지는 무책임한 그들에게 권한을 주고 또 지도하고 판단하는 자리를 준다는 것을 나는 믿지 않는다”고 말했다. 그는 동성애자에 관해서는 “스튜디오들은 지금 변태영화들을 양산하고 있다. 수년 내 사람들은 이에 넌덜머리를 낼 것”이라면서 그 대표적 영화로 ‘이지 라이더’와 ‘미드나잇 카우보이’를 들었다.
그는 또 공산주의를 사갈시 했는데 웨인이 베트남전이 한창이던 1968년 이 전쟁을 옹호하는 영화 ‘그린 베레’를 직접 감독하고 주연까지 한 이유도 이 전쟁을 비판하는 사람들에 대한 반작용 탓이다. 그가 민권운동이 한창이던 1971년 가진 인터뷰에서 흑인들을 멸시하는 발언을 한 까닭도 이 운동에 대한 반작용이라고 보면 된다. 웨인의 생일은 5월 26일로 2016년 캘리포니아 주 의회가 이 날을 ‘존 웨인 데이’로 지정, 기념하자는 결의안을 부결한 이유도 그의 이런 인종적 편견 때문이었다.
생전 ‘듀크’라 불린 웨인(본명 매리온 로버트 모리슨)과 같은 시기에 활동한 제임스 스튜어트도 웨인만큼이나 보수적인 공화당원으로 둘은 친구였다. 그런데 스튜어트는 2차대전 때 자원입대, 폭격기 조종사로 혁혁한 무공을 세워 준장으로까지 진급했으나 웨인은 징집을 회피해 가면서 할리웃에서 활약했다. 그런 웨인이 태평양전쟁영화 ‘유황도의 모래’에서 용감무쌍한 해병으로 나온 것이야 말로 가히 희극적이다. 그러고 보니 웨인과 트럼프가 다 군대에 안 간 것도 서로 닮았다.
존 웨인하면 잊을 수 없는 영화가 ‘정복자’다. 하워드 휴즈가 주인이었던 RKO가 제작한 영화에서 웨인은 옆으로 가늘게 찢어진 눈에 콧수염을 한 징기스칸으로 나와 그가 잘 쓰는 총 대신 칼로 적을 무찔렀다. 나는 이 영화를 서울의 명보극장에서 보면서 실소를 터뜨렸었다.
아시안 배우라곤 눈을 씻고 봐도 찾을 수 없는 영화로 코가 오뚝한 내가 좋아하던 수전 헤이워드가 징기스칸의 애인으로 나오고 그밖에도 애그네스 모어헤드, 존 호잇 및 페드로 아르멘다리스 등이 나오는 호화 올스타 캐스트의 영화지만 비평가와 관객 모두로부터 철저한 외면을 당했다.   
또 ‘정복자’는 암의 저주를 받은 영화라는 오명을 안고 있다. 영화는 원폭실험장소에서 멀지 않은 유타 주의 사막에서 찍었는데 감독 딕 피웰을 비롯해 웨인과 헤이워드 그리고 모어헤드와 호잇 및 아르멘다리스(암에 걸린 것을 알고 자살) 외에도 현장에서 일한 사람들 중 90여명이 후에 암으로 사망했다. 웨인은 1979년 위암으로 72세로 사망했다.
히칙은 칼럼에서 웨인의 웨스턴과 전쟁영화를 즐기는 것은 개인의 기호에 달린 것이지만 대중이 이용하는 공공장소인 국제공항이 인종차별주의자의 이름을 달고 있는 것은 시대착오적이라고 말했다. 그는 보수파의 아성인 오렌지카운티가 지난 중간선거에서 ‘블루 웨이브’에 세척 당했고 미남부에서 남북전쟁영웅들의 동상이 철거되고 있는 지금이야말로 오렌지카운티 공항의 이름을 바꿔야 할 때라고 강조했다. 히칙은 이어 공항의 새 이름은 그냥 ‘오렌지카운티 공항’이라고 하면 좋을 것이라고 조언했다.
LA에서 존 웨인을 만나려면 윌셔와 라시에네가 코너에 있는 도색잡지 펜트하우스 발행사인 플린트출판사 건물 앞에 가면 된다. 카우보이모자를 쓴 웨인이 말을 탄 동상이 서 있는데 한때 웨인의 팬들이 포르노잡지사 앞에 미국의 영웅이 웬 말이냐며 동상을 그가 살았던 오렌지카운티로 옮기자는 운동이 있었으나 유야무야되고 말았다. 
                                                               <한국일보 박흥진 편집위원/ hjpark1230@gmail.com>


2019년 3월 8일 금요일

‘트리플 프론티어’ (Triple Frontier)


가르시아(왼쪽)와 레드플라이(벤 애플렉 분)가 돈이 든 백들을 회수하기 위해 남미 원주민 마을에 도착했다

마약자금 터는 전직 특공대원들의 도주극 액션


5명의 전직 미 특공대 요원이 남미의 마약왕국에 침입해 거액의 현금을 탈취해 도주하는 액션영화로 액션 팬들은 즐길만하나 인물들의 성격 개발이 한참 모자라고 내용도 아이들 딱총 쏘는 장난 같다.
덩지는 크나 철이 덜난 아이들이 전쟁놀이를 즐기는 것 같은 전형적인 미국 액션영화로 잘 생기고 가슴이 떡 벌어진 사나이들이 탐욕에 굴복해 명예로운 특공대 요원으로부터 강도로 돌변하는데 남의 나라 침입하기를 떡 먹듯이 하는 미국의 마초 정신상태를 보는 것 같아 입맛이 쓰다.
존 휴스턴이 감독하고 험프리 보가트가 주연한 ‘시에라 마드레의 황금’과 에릭 본 스트로하임이 감독한 4시간짜리 무성영화 ‘탐욕’(Greed)를 연상시키는 영화다.   
처음에 남미 한 나라 빈민촌에 있는 마약본거지를 경찰이 습격하는 액션이 장관인 장면으로 시작된다. 이 때만해도 영화가 괜찮겠다는 생각이 드나 시간이 갈수록 터무니없는 소리를 하고 있다. 이 습격에 가담한 사람이 전직 미 특공대 요원으로 남미 경찰을 자문하는 가르시아(오스카 아이작).
가르시아는 마약왕국에 정보원으로 투입한 여자 요반나(아드리아 아로나)로부터 마약거래로 번 거액의 현찰이 숨겨져 있는 장소를 알아내고 이를 털기로 결정한다. 여기에 가입하는 전우들이 부동산 에이전트로 간신히 먹고 사는 레드플라이(벤 애플렉)와 군사교관 아이언헤드(찰리 헌남)와 격투기 투사 벤(개렛 헤드런드) 그리고 전직 조종사 캣피시(페드로 파스칼). 영화 선전은 이들 중 가장 이름이 잘 알려진 애플렉이 주인공 것처럼 하고 있지만 실은 아이작이 주연이다. 
다섯 명은 돈이 숨겨진 곳에 침입해 치열한 전투 끝에 수천만 달러의 현찰을 털어 달아난다. 그러나 그 후로 일이 잘 안 풀리면서 탐욕과 도덕 문제 같은 것들이 양념으로 얘기된다. 여러 나라와 국경을 같이한 이 나라에서 현찰을 담은 큰 백들을 싣고 미국으로 튀기 위해 구닥다리 소련제 비행기가 이용된다.
그런데 비행기가 고장이 나면서 이들은 돈이 담긴 백들을 지상으로 내던진다. 이를 회수하기 위해 원주민들이 사는 마을에 도착한 가르시아 일행은 자신들을 적대시하는 원주민들의 족장과 현찰로 타협해 당나귀에 백을 싣고 자신들을 태울 배가 기다리고 있는 해변을 향해 대장정에 돌입한다. 이들을 뒤쫓는 사람들이 마을 주민들.     
이 과정에서 전혀 뜻밖의 일이 일어나고 도저히 많은 백들을 운반할 수단과 여력이 없어진 이들은 대부분의 백들을 안데스 산맥 속의 깊은 협곡에 내던진다. 영화는 속편을 만든다는 식으로 끝난다. 액션 위주의 영화이긴 하지만 연기들이 단편적이요 볼품 없는데 특히 애플렉이 마지못해 한다는 식의 연기를 한다. 오스카상을 탄 캐스린 비글로가 제작하고 마크 보알이 영화의 감독인 J.C. 챈도르와 공동으로 각본을 쓴 영화치곤 수준 미달이다. 오늘부터 1주일간 극장에서 상영한 뒤 넷플릭스로 방영된다. ★★★ (5개 만점)
                                                                  <한국일보 박흥진 편집위원/ hjpark1230@gmail.com>


‘글로리아 벨’ (Gloria Bell)


중년여인 글로리아가 퇴근 후 클럽에 들러 격렬하게 춤을 추면서 고독을 털어버리고 있다.

중년여인의 고독·사랑... 줄리안 무어 '눈부신 연기'


고독한 중년 여인의 텅 빈 가슴과 반복되는 일상의 권태 그리고 모처럼 찾은 사랑의 붕괴를 강렬히 탐색했던 칠레 감독 세바스티안 렐리오(각본 겸)의 2013년 작품 ‘글로리아’의 미국판 리메이크로 렐리오가 감독했다. 렐리오는 산티아고에 사는 여성으로 성 전환한 남자의 삶의 투쟁을 다룬 ‘팬태스틱 우먼’(A Fantastic Woman)으로 작년에 오스카 외국어영화상을 탔다.
충분히 감상적이 될 수 있는 내용을 감독은 값싼 감정을 배제한 채 고상하고 품위 있으며 다소 엄격하게 다루면서도 코믹한 분위기를 가미한 훌륭한 성인용 드라마로 만들었다. 감독과 함께 주인공 글로리아로 나오는 연기파 줄리안 모어의 변화무쌍한 연기가 이 영화의 품격을 높이면서 아울러 재미있는 것으로 만드는데 큰 보탬이 되고 있다. 미국 판은 원작을 상당히 충실히 따르고 있다.   
LA에서 혼자 사는 60대 문턱에 이른 이혼녀 글로리아(모어)는 보험회사 사원. 결혼한 두 남매를 두었지만 만남은 뜸하다. 글로리아의 유일한 낙이라면 퇴근 후 자기 또래의 나이 먹은 사람들의 단골 나이트클럽에 가서 요란한 음악에 맞춰 춤을 추는 것. 마치 고독과 무료를 몸을 흔들어 떨쳐버리기라도 하겠다는 듯이 격렬하게 춤을 춘다. 
어느 날 클럽에 들렀다가 자기에게 눈을 주는 남자 아놀드(존 투투로)를 만나면서 둘은 서서히 감정적으로 가까워진다. 아놀드는 1년 전에 이혼한 남자로 작은 위락공원의 주인. 둘 다 고독한 글로리아와 아놀드는 몸과 마음을 섞는 연인 사이가 되는데 이로 인해 모처럼 삶의 활력을 되찾은 글로리아는 햇볕을 맞아 활짝 피는 꽃처럼 변화한다.     
그러나 뒤늦게 찾은 글로리아의 사랑은 아놀드의 줏대 없는 성격과 그로 인한 후유증으로 인해 분해되기 시작한다. 비록 이혼은 했지만 아내와 장성한 두 딸이 정신적으로 또 경제적으로 아놀드에게 매어달려 사는 바람에 이들은 조금만 일이 생기면 아놀드에게 전화를 걸어댄다. 아놀드는 글로리아와 함께 있으면서도 툭하면 걸려오는 아내와 딸의 전화를 받으면서 무드를 깨는데 이로 인해 둘 사이에 불화가 생기지만 아놀드가 글로리아를 사랑한다고 통사정을 하면서 다시 화해무드로 접어든다.
그러나 결정적인 관계의 균열은 둘이 화해를 위한 여행으로 베가스에 가면서 일어난다. 호텔식당에서 로맨틱한 분위기에 감싸여 저녁식사를 하고 있는데 또 아놀드에게 전화가 걸려온다. 처음에는 이를 무시하던 아놀드가 잠시 후 곧 돌아 오마며 자리를 뜬다.
영화의 모든 장면에 나오다시피 하는 모어의 희비쌍곡선이 교차하면서 만감이 광채를 발하는 연기가 눈부시다. 섬세하고 깊이가 있고 준엄하고 아름다운 경탄을 금치 못할 연기다. 그리고 투투로도 우유부단한 남자의 연기를 차분하게 잘 한다. 영화에서 인물들만큼이나 중요한 것이  음악이다. 라틴 댄스음악과 디스코와 재즈 및 길버트 오설리반이 부르는 ‘얼론 어겐’ 등 인기 팝송들이 작품의 분위기를 잘 살려주고 있다. 그리고 촬영도 좋다. R등급. ★★★★(5개 만점)
                                                                 <한국일보 박흥진 편집위원/ hjpark1230@gmail.com>



2019년 3월 6일 수요일

‘로마’


내가 아카데미시상식을 보는 이유 중 하나가 해마다 일어나는 이변 때문이다. 예상과는 전연 다른 후보가 수상하는 것을 볼 때 갖는 느낌이야말로 스릴러영화를 보는 것과 유사하다. 2월 24일에 열린 제91회 아카데미시상식에서도 어김없이 이변이 일어났다.
작품상을 탈 것이 거의 분명했던 ‘로마’(Roma)가 고배를 마시고 대신 ‘그린 북’(Green Book)이 트로피를 거머쥔 것이다. 모두 10개 부문에서 수상후보에 오른 ‘로마’는 멕시칸 감독 알폰소 쿠아론(사진 왼쪽)의 1970년대 소년시절의 추억담으로 로마는 멕시코시티의 중류층이 사는 동네이름이다. 스페인어와 멕시코 원주민어로 된 흑백영화로 쿠아론과 그의 가족의 일상사를 집에서 고용한 젊은 식모(얄리차 아파리시오-사진 오른쪽)의 눈을 통해 얘기하고 있다. 여러 면에서 1970년대 한국 사정과 닮았다.
나는 스트리밍업체 넷플릭스가 제작한 이 영화를 작년 토론토영화제서 처음 보고 지난 연말 TV로 다시 봤는데 비평가들의 격찬에도 불구하고 어딘가 거리감을 느낀 바 있다. 마치 사진전시장에서 흑백사진들을 보면서 ‘참 잘 찍었구나. 아름답네’라고 생각하면서도 감정적으로 작품 안으로 함몰되지 못하는 듯한 아쉬움을 느꼈다.
이번 시상식에서 ‘로마’가 촬영상과 외국어영화상 및 감독상을 받았을 때만해도 이 영화가 작품상을 탈것은 떼논 당상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상은 1962년 미 남부를 순회 연주하는 흑인 피아니스트(마허샬라 알리)와 그의 인종차별주의자인 백인 운전사(비고 모텐슨)와의 관계를 통해 흑백문제를 다룬 ‘그린 북’이 탔다.
전문가들은 ‘로마’가 상을 타지 못한 이유로 우선 이 영화가 극장이 아니라 TV를 통해 영화를 방영하는 넷플릭스의 작품이라는 점을 들고 있다. 그리고 외국어영화(오스카사상 지금까지 외국어영화가 작품상을 탄 적은 없다)라는 것과 ‘그린 북’이 ‘로마’보다는 대중의 마음을 편하고 즐겁게 해주는 영화라는 점을 들고 있다. 쿠아론으로서는 섭섭한 일이겠지만 혼자서 3개 부문 수상자가 된 것으로 만족해야할 것만 같다. 모든 길은 반드시 ‘로마’로 통하지만은 않는 것 같다.             
‘그린 북’은 비평가들이 별로 좋아하지 않는 영화다. LA타임스의 저스틴 챙은 25일자 기사에서 “‘그린 북’은 2005년 작품상 수상작인 ‘크래쉬’ 다음으로 최악의 작품상 수상작”이라고 질타했다. 비평가들이 이 영화에 등을 돌린 이유는 흑백문제를 너무 안이하게 누이 좋고 매부 좋은 식으로 그렸기 때문이다. 복잡한 흑백문제를 백인의 눈으로 서술하면서 만사형통 식으로 매듭짓는 관객의 비위를 맞추는 고루한 스타일의 영화라는 것. 말하자면 백인을 위한 흑백문제 해결 교본이라는 것이다   
‘그린 북’은 역시 오스카 작품상을 탄 ‘드라이빙 미스 데이지’와 닮은 구식영화로 아직도 나이 먹은 백인들이 대다수인 어카데미회원들의 입맛에 딱 맞는 영화라고 하겠다. 그러나 이런 비판에도 불구하고 이 영화는 작년 토론토영화제서 관객인기상을 타면서 오스카상 후보감으로 부상하기 시작했다. 이어 연초 골든 글로브시상식에서 각본상을 탄데 이어 지난 1월에는 제작자협회상을 타면서 강력한 오스카 작품상 후보작으로 대두했다.
‘그린 북’은 이번에 작품상 외에도 각본상과 마허샬라 알리가 남우조연상을 탔다. 알리는 이미 2년 전 ‘문라이트’로 오스카 조연상을 탄바 있다. 
‘로마’의 작품상 탈락에 버금 갈만큼 놀라운 이변이 여우주연상이다. 이 상은 이번으로 모두 7차례 오스카 수상후보에 오른 ‘아내’(The Wife)의 글렌 클로스의 것으로 예견됐었다. 클로스는 여기서 수십 년간 독선적인 작가 남편의 글을 자기가 쓰다시피 하면서 뒷바라지를 해오다가 남편이 노벨상을 받기 직전 독립을 선언하는 아내로 나와 섬세하고 민감한 연기를 한다. 클로스는 이 역으로 올 골든 글로브상(드라마)을 탔다.
그런데 여우주연상은 얄궂은 궁정 드라마 코미디 ‘페이보릿’(The Favorite)에서 변덕스럽고 모시기 힘든 영국여왕 앤으로 나온 올리비아 콜만이 탔다. 콜만의 연기가 훌륭하기는 하나 클로스의 탈락은 화들짝 놀랄만한 이변이다.       
이번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특기할만한 것은 중요 부문의 수상작들이 전부 내가 속한 할리웃 외신기자협회(HFPA)가 1월 초에 시상한 골든 글로브 수상작과 같다는 점이다. 작품상(‘그린 북’-코미디/뮤지컬), 감독상(알폰소 쿠이론), 남우주연상(라미 말렉-드라마), 여우주연상(올리비아 콜만-코미디/뮤지컬), 남우조연상(마허샬라 알리), 여우조연상(레지나 킹), 각본상(‘그린 북’), 외국어영화상(‘로마’), 주제가상(‘스타 탄생’의 ‘쉘로우’) 및 만화영화상(‘스파이더-맨-인투 더 스파이더-버스’) 등이 전부 골든 글로브상을 탄 것들이다. 아카데미 회원들은 골든 글로브상이 자신들의 투표에 아무런 영향도 안 미친다고 말하고 있지만 글쎄올시다. 
                                                                 <한국일보 박흥진 편집위원/ hjpark1230@gma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