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이야기

2019년 2월 15일 금요일

‘달로부터 돌아오지 말아요’(Don‘t Come Back from the Moon)


둘 다 아버지로부터 버림을 받은 믹키와 소니아가 자전거를 함께 타고 무료함을 달래고 있다.

황폐한 시골마을, 가출한 아버지… 방황하는 아이들


은유가 많은 검소하고 군더더기 없는 기억에 관한 영상시로 남가주 인랜드 엠파이어의 황폐한 사막 변두리 마을 살턴 시를 무대로 한 아름답고 무드 짙은 드라마다. 한때 휴양지였으나 지금은 그 누구도 찾아오지 않는 버려진 이 마을의 성인 남자들은 모두 일자리를 찾거나 가족에 대한 부양책임을 피해 가출한 뒤 돌아오지 않는다. 
그래서 이들의 아이들은 자기들의 아버지가 “달에 갔다”고 말한다. 여기서 볼 수 있듯이 이 달은 어쩌면 하나의 이상향이기도 하지만 또 한편으로는 살턴 시를 상징한다고도 볼 수 있다. 이 황폐하면서도 아름다운 살턴 시는 인물들만큼이나 영화에서 중요한 구실을 한다. 
남편과 아버지들은 하나 둘씩 가출해 돌아오지 않고 남은 여자들은 슬픔과 고통에 시달리다가 서서히 재기하고 아이들은 분노와 불안에 휩싸여 방황하지만 이를 통해 성장한다. 영화는 주인공인 16세난 소년 믹키(제프리 왈버그)의 성장기이도 하다. 
영화는 전반부는 다소 이야기가 빈약하고 반복적이나 후반에 들면서 감정적으로 강렬한 파고를 일으킨다. 이 감정적 격랑을 눈부시게 아름다운 촬영과 짙은 물감의 감촉을 느끼게 하는 칼라가 한껏 북돋아주고 있다.
믹키는 아버지(제임스 프랭코가 잠깐 나온다)가 가출한 뒤로 미용사인 어머니 에바(라쉬다 존스)가 완전히 생기를 잃어버리면서 어린 동생 콜리아(재카리 아서)를 돌본다. 아버지는 다른 아버지들처럼 말 한마디 없이 가출했다. 남자들의 가출은 이 마을의 유행이 되다시피 했다. 
아버지들로부터 버림을 받은 믹키와 다른 아이들은 버려진 트레일러에서 고철을 모아 중고품 생필품과 교환한다. 믹키와 가장 가까운 친구는 아버지로부터 버림받은 분노를 야생 앵무새 훈련으로 승화시키는 사촌 닉(헤일 라이틀). 
믹키가 좋아하는 소녀 소니아(알리사 엘 스타이낵커) 역시 아버지로부터 버림을 받고 속으로 끙끙 앓는데 믹키는 이런 소니아에게 분노를 참지 말고 밖으로 분출하라고 부추긴다. 그러나 소니아는 가출한 아버지를 용서할 마음이어서 믹키와 갈등을 빚게 된다. 
한편 남편으로부터 버림받은 시름을 줄담배를 태우면서 달래던 에바는 서서히 무기력 상태에서 재기해 집에서 다시 손님들의 머리 손질을 하기 시작하는데 그 중 한 사람인 과묵한 식품점 점원(헨리 하퍼)이 에바에게 애정을 느끼면서 둘 사이에 아름다운 감정의 다리가 놓여진다. 이 두 사람의 관계에서 절망적인 상황을 넘어선 희망과 밝음의 빛이 느껴진다.
촬영감독 출신인 감독 브루스 티에리 청은 작중 인물들에 대해 지극한 연민의 감정을 표시하면서 죽은 마을과도 같은 세상 변두리에 사는 사람들을 따스하고 정감이 넘치도록 아름답게 묘사하고 있다. 시간이 갈수록 강한 극적 추진력을 느끼게 하는 영화로 촬영뿐 아니라 아이들을 비롯해 어른들의 연기도 모두 보기 좋다. ★★★½ (5개 만점) 
                                                                <한국일보 박흥진 편집위원/ hjpark1230@gmail.com>





‘버닝’


1월 22일 발표된 제91화 아카데미 외국어영화상 후보에서 이창동감독의 ‘버닝’(Burning)이 탈락된 것에 대해 나보다 훨씬 더 크게 실망한 사람은 LA타임스의 영화평론가 저스틴 챙이다. 저스틴과 나는 함께 LA영화비평가협회(LAFCA)의 회원으로 그는 중국인이고 나는 한국인이어서 남달리 친한 사이다.
저스틴을 지난 해 한 시사회에서 만났을 때 그에게 “‘버닝’을 봤느냐”고 물었더니 그는 “봤는데 너무 좋아 다시 보려고한다”며 큰 미소를 지었다. 저스틴을 1월 13일 센추리시티 인터콘티넨탈호텔에서 열린 LAFCA의 2018년도 베스트를 기리는 만찬에서 만났을 때 그는 내게 닥아 오더니 “‘버닝’을 세 번이나 봤다”면서 다시 극구 칭찬을 했다.
‘버닝’은 LAFCA에 의해 일본의 코레-에다 히로카주 감독의 ‘어느 가족’(Shoplifters)과 함께 최우수 외국어영화로 뽑혔다. 그리고 ‘버닝’에 나온 한국계 미국배우 스티븐 연은 최우수 조연남우로 뽑혔다. 그런데 지난 해 칸영화제 대상수상작인 ‘어느 가족’은 아카데미상 후보에 올랐으나 ‘버닝’은 탈락됐다.
이에 저스틴은 1월 23일자 LA타임스의 아카데미상 후보 선정 분석기사에서 ‘버닝’의 탈락은 심히 유감이라면서 “이창동감독의 걸작은 내가 2018년에 본 영화 중 최고의 것으로 아카데미 회원들의 이 영화에 대한 애정결핍에 대해 불평을 하지 않을 수가 없다”고 불만을 토로했다.
나도 ‘버닝’이 9편의 외국어영화상 예비후보에 포함됐을 때만해도 이 영화가 최종 후보 5편 중 하나로 오르리라고 확신했었다. 한국영화가 예비후보에 오른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버닝’이 최종후보에 오를 것을 믿은 까닭은 이 영화가 LAFCA와 전미영화비평가협회에 의해서 최우수 외국어영화로 뽑힌 것 외에도 저명한 영화잡지 사이트 & 사운드와 필름 코멘트가 비평가들을 상대로 실시한 여론조사에서도 베스트로 뽑혔기 때문이다.
‘버닝’은 일본의 하루키 무라카미의 단편소설이 원작. 막일을 하는 청년 작가 지망생 유아인과 그의 애인으로 상품선전원인 전종서 그리고 정체불명의 부자 청년 스티븐 연을 주인공으로 한 신분과 빈부의 차이 그리고 이룰 수 없는 꿈과 좌절감 및 3각 로맨스와 복수를 다룬 의문투성이의 로맨틱 드라마이자 미스터리 스릴러이다.
관객들보다 비평가들이 더 좋아할 예술성 짙은 영화로 ‘버닝’에 대한 칭찬을 입에 달고 다니다 시피 하던 저스틴은 “아카데미회원들이 2시간 반 동안 느리고 마음을 어지럽히며 쉽게 극적으로나 주제의 뜻을 수용하기가 힘든 이 영화 대신 대중에게 쉽게 어필할 ‘어느 가족’과 ‘카퍼나움’을 선정한 것을 나무랄 수는 없다”고 피력했다. ‘카퍼나움’(Capernaum)은 독일의 ‘네버 룩 어웨이’(Never Look Away), 폴랜드의 ‘콜드 워’(Cold War) 및 멕시코의 ‘로마’(Roma)와 함께 외국어영화상 후보에 오른 레바논영화다.     
13일 LAFCA의 시상만찬이 시작되기 전 호텔 로비에서 이창동감독과 스티븐 연을 만나 반갑게 악수를 나누면서 축하의 뜻을 전했다(사진). 긴 머리에 목에 머플러를 걸친 모습이 타고난 예술인 스타일인 이감독에게 “아카데미상 예비후보에 올랐는데 최종 후보에도 오르겠지요”라고 말을 건넸다. 그런데 이감독은 뜻 밖에도 이에 대해 “자신이 없네요”라고 대답했다. 이감독은 “다른 예비후보 영화들은 배급사가 막강해 자기 작품들을 맹렬히 후원하고 있는 반면 내 영화의 배급사는 힘이 약한 것이 낙관을 할 수없는 이유 중 하나”라고 설명했다.           
이감독은 처음에 일본의 NHK측에서 자기에게 작품의 연출을 제의했을 때만해도 본인에게 맞는 작품이 아닌 것 같아 제작에만 참여하기로 했다가 감독을 맡게 되었다고 한다. 그런데 막상 연출을 맡기로 하면서 작품이 미스터리가 많은 훌륭한 것임을 깨닫게 되었다는 것.
이감독과 함께 있던 스티븐과도 한국어와 영어를 섞어가며 대화를 나눴다. 그가 손에 칵테일잔을 들고 있기에 “스카치 좋아하느냐”고 물었더니 “누군가 보드카를 주어 마시지만 난 술을 잘 못한다”며 잔잔한 미소를 지었다. 가느다란 콧수염에 깨끗한 용모를 한 스티븐은 매우 겸손했는데 좀 서투르긴 하지만 한국말을 꽤 잘했다.
그의 연기에 대해 칭찬을 한 뒤 한국에서 욱일기 문제로 겪은 경험에 대해 물었더니 “그 경험으로 많은 것을 배우게 됐다”며 차분하게 대답했다. 이어 그에게 영화의 알쏭달쏭한 미스터리들에 관해 물었더니 스티븐은 “그런 미스터리에 대한 답은 나만이 간직한 비밀”이라며 빙긋이 웃으며 한국어로 말했다.
스티븐의 역은 F. 스캇 핏제럴드의 소설 ‘위대한 개츠비’의 개츠비를 연상케 한다. 그래서 그에게 “당신은 이 영화로 코리언 개츠비가 되었다”고 농을 했더니 스티븐은 “난 절대로 코리언 개츠비가 아니다”라며 고개를 절레절레 내저었다. 이감독과 스티븐은 모두 만나 대화하기가 편하고 서민적이어서 잠시 만났지만 금방 가까워질 수가 있는 사람들이라고 느꼈다.
저스틴의 소개로 상패를 받기 위해 연단에 오른 이감독은 영어로 “스티븐 연과 일본작품과 함께 아시안영화가 상을 받게 돼 기쁘다”면서 “미스터리가 많은 이상한 영화에게 영예의 상을 줘 고맙다”고 말했다. 스티븐은 수상소감에서 먼저 이감독에게 찬사를 보낸 뒤 “내가 상을 타다니 믿을 수 없는 기적이다. 유아인과 전종서에게 감사 한다”면서 “이 영화로 나의 영화와  연기에 대한 생각이 완전히 바뀌게 되었다”고 말했다. 한편 히로카주감독은 수상소감에서 “존경하는 이감독과 함께 상을 받아 더욱 영광”이라고 말했다.                   
                                                             <한국일보 박흥진 편집위원/ hjpark1230@gmail.com>



샌드라 오의 밤


6일 베벌리힐즈의 베벌리힐튼호텔에서 열린 제76회 골든 글로브시상식은 샌드라 오(사진)의 밤이었다고 해도 되겠다. 샌드라는 이날 앤디 샘버그와 함께 시상식의 공동 사회자로 무대에 섰을 뿐 아니라 연기자로서도 TV부문에서 드라마 ‘킬링 이브’(Killing Eve)로 주연상을 탔다.
필자를 포함해 세계 50여 개 나라의 LA상주 기자로 외국에 송고하는 90명 정도로 구성된 할리웃 외신기자협회(HFPA)가 주는 골든 글로브상은 영화 외에도 TV부문에 대해서도 시상한다.  샌드라는 이로써 아시안으로서는 처음으로 시상식 사회자가 되었을 뿐 아니라 1981년 TV시리즈 ‘쇼군’으로 일본 여배우 요코 시마다가 주연상을 탄 이후 최초로 같은 상을 받은 아시안 배우가 됐다. 샌드라는 이미 TV시리즈 ‘그레이즈 아나토미’로 조연상을 타 아시안 배우로서는 최초로 골든 글로브상을 두 번이나 타는 기록도 세웠다.
샌드라는 수상소감을 말할 때 식에 함께 참석한 부모님에게 허리를 굽혀 절하면서 한국말로 “엄마, 아빠, 사랑해요”라고 말해 부모님과 한국에 대한 사랑을 함께 표시했다. 샌드라의 사회와 수상은 식장에 앉아 있던 나의 가슴을 뿌듯하게 해주었다.     
이날 시상식은 다양성을 찬양하듯 많은 흑인과 아시안 영화인들이 눈에 띠었다. 샌드라도 개막사에서 이들을 가리키며 “나는 처음에 이 무대에 서기가 겁이 났지만 당신들을 보고 아울러 이 변화의 얼굴들을 목격하기 위해 사회를 수락했다”고 말해 참석자들의 박수갈채를 받았다.
그러나 샌드라와 앤디의 개막사는 너무 무사안일 해 진부하게 느껴지기까지 했다. 일체 정치적인 발언을 회피하고 그냥 쇼나 즐기자는 식으로 톡톡 쏘는 맛이 없어 심심했다.         
이날 이변이라 할 정도로 크게 물을 먹은 영화는 브래들리 쿠퍼가 감독으로 데뷔하고 가수로 주연도 한 ‘스타 탄생’이었다. 이 영화는 드라마 부문에서 작품과 남^녀주연상을 탈 것으로 유력시 됐었으나 쿠퍼의 가수 애인으로 공연한 레이디 가가 작곡하고 노래한 주제가 ‘쉘로’ 하나만 상을 탔다.
이 부문 작품과 남자주연상은 영국의 록그룹 퀸의 리드싱어 프레디 머큐리의 삶을 다룬 ‘보헤미안 랩소디’와 프레디로 나온 라미 말렉이 각기 탔다. 드라마 부문 여자주연상은 레이디 가가 대신 ‘아내’에서 평생 독선적인 작가인 남편의 뒷바라지를 하다가 뒤 늦게 독립선언을 하는 아내로 나온 글렌 클로스가 받았다. 모두 예상을 뒤엎는 선정이었다. 골든 글로브상은 작품과 남녀주연상에 한해 드라마와 코미디/뮤지컬 두 부문으로 구분해 시상한다.
이 날 가장 감동적인 발언은 클로스(71)의 수상소감이었다. 그는 “아내들은 남편과 자식들을 돌보는 사람들로만 여겨져 왔다”면서 “그러나 아내들도 자신의 꿈을 찾아 나설 수 있어야한다”고 말해 참석자들의 기립 박수를 받았다.
‘보헤미안 랩소디’ 외에 이 날 큰 승리 작들은 ‘그린 북’과 ‘로마’였다. 1962년 인종차별이 심하던 때 미 남부를 순회공연하는 흑인 피아니스트와 그의 인종차별주의자인 백인 운전사가 8주간의 여정을 통해 서로를 이해하고 우정으로 맺어지는 실화다. 작품상(코미디/뮤지컬)과 각본상 그리고 흑인 피아니스트 역의 마허샬라 알리가 남자조연상을 각기 탔다. 대중의 입맛에 맞춘 이 영화가 같은 부문의 수상 후보작으로 비평가들의 격찬을 받은 ‘페이보릿’(The Favourite)을 제치고 수상한 것은 이변이라 하겠다.
멕시코감독 알폰소 쿠아론이 연출하고 흑백으로 촬영도 한 ‘로마’는 외국어영화상과 감독상을 탔다. 이 영화는 쿠아론의 소년시절 멕시코시티의 중류층 거주지인 로마에서의 성장기다. 비평가들의 찬사를 받은 이 영화가 작품상 후보에 오르지 못한 이유는 외국어영화는 작품상 후보가 될 수 없는 골든 글로브상의 규칙 때문이다. ‘로마’는 오는 22일에 있을 아카데미상 각 부문 후보발표에서 작품상과 동시에 외국어영화상 후보에도 오를 가능성이 크다. 
한편 코미디/뮤지컬 부문의 남자주연상은 ‘바이스’(Vice)에서 체중을 40여 파운드나 늘이고 아들 부시대통령 밑에서 막강한 권력을 행사하던 딕 체이니 부통령으로 나온 크리스천 베일이 탔다. 이 부문 여자주연상은 ‘페이보릿’에서 18세기 초 영국을 통치하던 변덕스러운 동성애자 여왕 앤으로 나온 영국배우 올리비아 콜먼이 탔다. 여자조연상은 ‘이프 빌 스트릿 쿠드 톡’(If Beale Street Could Talk)에서 1970년대 초 할렘의 시련을 겪는 젊은 흑인 아내의 강인한 어머니로 나온 레지나 킹이 탔다.   
영화 부문 생애업적상인 세실 B. 드밀 상은 배우 제프 브리지스가 탔다. HFPA는 올해 새로  TV의 전설적 여류 코미디언 캐롤 버넷을 기리기 위해 그의 이름을 따 캐롤 버넷 생애업적상을 마련했다. 첫 수상자는 당연히 캐롤 버넷이었다. 
                                                                 <한국일보 박흥진 편집위원/ hjpark1230@gmail.com>


2019년 1월 17일 목요일

버팔로 보이즈(Buffalo Boys)


자마르(왼쪽)와 동생 수워가 자신들의 아버지를 살해한 반 트락 대위와 대결하기 위해 마을에 들어섰다.

잔인하고 유혈폭력 난무 복수극
이색적인‘인도네시아판 웨스턴’


인도네시아 웨스턴을 본 적이 있는지요? 한국에서도 이병헌이 나온 웨스턴 ‘좋은 놈, 나쁜 놈, 이상한 놈’이 있으니 인도네시아라고 해서 웨스턴 못 만들 줄 아느냐는 듯이 만든 것이 잔인하고 유혈폭력이 난무하는 ‘버팔로 보이즈’다. 제목은 총 찬 건맨이 물소를 타고 달려서 나온 말이다. 
독창적이라기보다는 존 포드의 웨스턴과 스파게티 웨스턴 그리고 쿠엔틴 타란티노의 영화와 쿵후 영화 및 ‘황야의 7인’ 등의 부분 부분을 짜깁기한 영화다. 
술집 격투와 마지막 거리에서 벌어지는 선과 악의 총대결 등 웨스턴의 상투적인 것들을 골고루 갖췄는데 음악마저 엔니오 모리코네의 스파게티 웨스턴 음악을 흉내 냈다. 그러나 액션 팬들이 즐길 이색적인 영화다.
네덜란드가 인도네시아를 통치하던 식민지 시대인 1860년. 영화는 먼저 미국에서 시작된다. 두 조카가 어렸을 때 이들을 데리고 미국으로 온 아라나(티오 파쿠사데워)는 성장한 이들과 함께 고향 자바로 돌아온다. 형 자마르(아리오 바유)는 과묵한 반면 동생 수워(요시 수다르소)는 혈기방장한 편. 
아라나는 이들의 아버지로 영주인 자기 동생이 네덜란드의 잔인무도한 통치자 반 트락 대위(라이누트 부세메이커가 일차원적인 악인 노릇을 한다)에 의해 살해 되자 두 아이를 데리고 미국으로 도망 간 것. 
셋은 귀향길에서 산적에게 습격을 당한 촌장의 아름다운 딸 스리(미카 탐바용)를 구해주면서 스리의 마을로 초대를 받는다. 마을 사람들은 반 트락의 학정에 시달리면서 그의 지시대로 곡물대신 아편을 재배하는데 반 트락에 조금이라도 대들었다가는 즉시 교수형에 처해진다. 
두 형제는 아버지의 복수도 하고 마을 사람들을 반 트락의 학정에서 구원하기 위해 나서는데 이 과정에서 형제간에 의견이 안 맞아 둘이 싸우기까지 한다. 공연히 주먹질을 과시하기 위한 플롯이다.
두 형제가 반 트락이 있는 마을 속으로 깊이 들어가면서 반 트락의 졸개들과 생사결단의 대결이 벌어지는데 이 때 온갖 흉기와 무기와 함께 이소룡과 재키 챈 식의 주먹질과 발길질이 동원된다. 그리고 두 형제는 마침내 반 트락과 그의 심복들과 거리 한 복판에서 최후의 결판을 내는데 이 장면은 ‘O.K. 목장의 결투’나 ‘와일드 번치’ 등 미 웨스턴의 클라이맥스 신을 그대로 답습하고 있다. 
영화는 두 형제와 스리 그리고 활의 명사수인 키오나(페비타 피어스)가 서로 눈이 맞아 로맨스를 꽃 피우면서 평화가 찾아온 마을에서 그 뒤로 내내 행복하게 살았노라하고 끝날 줄 알았는데 두 형제는 이들을 마을에 남겨놓은 채 말을 타고 석양을 향해 달려간다. 이 장면도 미 웨스턴에서 즐겨 써먹는 것이다. R 등급. Samuel Goldwyn. ★★★ (5개 만점) 
                                                                <한국일보 박흥진 편집위원/ hjpark1230@gmail.com>



걸(Girl)


남자의 몸으로 태어난 라라는 발레리나가 되기 위해 피와 땀을 흘린다.

발레리나 꿈꾸는 미소년의 갈등과 처절한 노력


발레리나가 되고 싶은 소년의 성장기이자 변신의 드라마로 성의 문제를 가까이서 정성껏 이해하면서 연민의 감을 가지고 탐구한 뛰어난 벨기에 드라마다. 각본을 쓰고 감독한 루카스 돈트의 데뷔작인데 연출 솜씨가 확신에 차 있고 엄격하면서도 자비롭다.
어떻게 해서라도 자신의 정체를 확인하고 꿈을 좇으려는 소년의 결단력과 피땀 나는 노력을 극도로 치밀하고 민감하며 감정적으로 공감하도록 만든 작품으로 감독의 연출력과 함께 주인공 소년 역을 맡은 배우의 연기가 출중하다. 거의 차갑게 느껴질 정도로 군더더기라곤 찾아 볼 수 없는 영화다. 
15세난 금발의 미소년으로 가녀린 몸을 지닌 라라(빅토르 폴스터)는 발레리나가 되는 것이 꿈이다. 그런데 문제는 라라가 남자의 몸으로 태어났다는 것. 라라는 몸만 남자이지 내면이나 행동은 완전히 여자의 것이다.
택시운전사인 라라의 아버지(아리 보르탈터)는 라라의 발레리나가 되려는 꿈을 충분히 이해하면서 아들의 성전환 수술을 의사와 상의한다. 라라에게는 어린 남동생(올리버 보다트)이 있는데 왜 어머니가 없는지에 대해선 설명이 없다. 
라라는 새 동네로 최근에 이사했는데 가까운 곳에 있는 저명한 발레학교에서 라라가 수련을 받기 위해서다. 그리고 라라는 입학이 잠정적으로 허락된다. 라라는 뒤늦게 발레를 시작해 동급생들보다 훨씬 더 맹렬한 연습을 하는데 이로 인해 발이 피투성이가 된다. 그러나 강철 같은 의지를 지닌 라라는 이런 고통을 끈질기게 참아낸다.
라라의 좌절감은 자기 몸에 대한 불만으로 폭발 직전에 있는데 발레학교에 가기 전이면 늘 가슴을 붕대로 칭칭 감고 성기는 테이프로 감는다. 이로 인해 라라는 마음을 완전히 외부와 차단시키는데 자기를 이해하는 아버지에게마저 거리를 둔다. 
맹렬한 발레 연습 장면이 영화의 상당 부분을 차지하는데 이와 함께 라라의 성전환 담당의사와 심리상담 의사와의 대면이 이야기 된다. 
호르몬 요법 후 수술에 들어갈 예정인데 수술하기까지 걸리는 시간이 2년. 라라는 이 시간이 너무 길어 안절부절 하면서 속을 끙끙 앓는데 호르몬 요법마저 속도가 느리게 진행되면서 라라의 좌절감과 불만은 비등하기만 한다. 그리고 참다못해 라라는 극단적인 행동을 취한다. 그러나 영화는 희망의 여운을 보여준다. 
라라 역의 폴스터는 실제로 발레 댄서인데 여자보다 더 여자 같이 예쁘게 생겨 영화 내내 여자인지 남자인지를 구별할 수가 없어 궁금하게 만든다. 폴스터의 냉정하도록 자기를 억제한 연기가 감탄을 금치 못하게 한다. 대단히 잘 만든 예술적인 작품으로 제76회 골든 글로브 외국어 영화상 후보작이다. R 등급. ★★★★(5개 만점)
                                                             <한국일보 박흥진 편집위원/ hjpark1230@gmail.com>

디스트로이어(Destroyer)


안팎이 모두 죽은 LA형사 벨은 복수를 하려고 살인범인 갱두목을 집요하게 쫓는다.

송장 같은 몰골로 복수에 혈안이 된 형사
니콜 키드만의 새로운 변신… 평가는 상반


차갑도록 아름다운 니콜 키드만은 ‘세월’(The Hours)에서 유난히 큰 가짜 코를 하고 연기해 오스카 주연상을 타더니 이번에는 상거지 꼴을 한 산 송장처럼 변신해 골든 글로브 주연상 후보(드라마)에 올랐다. 그러나 그의 연기는 보는 사람에 따라 판단이 다를 수가 있다. 
LA를 무대로 한 느와르 범죄영화인데 키드만이 헝클어진 가발에 텅 비고 움푹 파인 눈 그리고 쉰 목소리에 지친 듯 느려빠진 걸음을 걸으면서 안팎으로 죽은 사람을 닮아 알아보기가 힘들 정도다. 
태양이 작열하는 불길한 기운이 가득한 LA가 인물만큼이나 중요한 구실을 하는 영화로 지나치게 어둡고 절망적이며 암담해 두 시간이 넘는 상영시간 내내 보는 사람의 안팎을 불편하게 만든다. 이와 함께 플롯이 암중모색하듯이 갈팡질팡하면서 얘기를 쓸데없이 복잡하게 엮는 것도 결점이나 더러 강한 압박감을 느끼게 하는 기술적으로는 잘 만든 영화다. 
작취미성인 LA형사 에린 벨(키드만)이 살인시건 현장에 도착한다. 그리고 벨은 사체 근처에 놓인 염색이 된 100달러 지폐를 보자마자 범인이 흉악한 갱두목 사일라스(토비케벨)라는 것을 안다. 이와 함께 벨이 어두운 과거를 회상하면서 얘기는 현재와 과거를 걸쳐 서술된다. 이어 벨은 사일라스를 찾아 나선다. 
16년 전 벨은 동료 형사로 자기 애인이 된 크리스(세바스티안 스탠)와 함께 사일라스가 연루된 사건을 수사하다가 일이 큰 비극으로 끝난다. 벨은 아직도 이 비극의 후유증에 시달리고 있다. 게다가 벨은 10대난 딸 쉘비(제이드 페티존)와도 거리가 멀어져 완전히 내면이 빈 사람이 됐다. 
벨은 증거 조작도 마다 않는 부패한 형사로 일종의 앤티히로인 인데 사일라스를 추적하면서 자신의 어두운 과거로 접근하게 된다. 그러나 그가 사일라스를 잡으려고 혈안이 된 것은 결코 정의를 위한 것이 아니라 복수와 양심의 가책 때문이다. 영화는 다시 처음의 사건 현장이 등장하면서 끝이 나는데 벨의 구원을 찾을 길 없는 모습이 안쓰럽다. 
여류 카린 쿠사마 감독의 연출 솜씨는 매우 기능적이나 서술형태가 자연스럽다기보다 작위적이라고 해야 옳겠다. R등급. Annapurna작. ★★★(5개 만점)
                                                              <한국일보 박흥진 편집위원/ hjpark1230@gmail.com>




바이스(Vice)


딕 체니는 아내 린의 사랑과 격려를 등에 업고 정계의 막강한 인물이 된다.

비밀 장막 속 권력자 딕 체니 부통령의 흑역사


아버지 부시 대통령 밑에서 국방장관을 그리고 아들 부시 밑에서는 부통령을 지낸 딕 체니의 전기 영화로 미국의 정치사요 역사이자 가족 드라마이며 또 체니를 풍자한 코미디이다. 체니는 비밀의 장막 속에서 미 역사상 가장 막강한 권력을 쥐고 행사했던 부통령으로 행정부의 권력을 비만하게 확대하고 민주주의의 원칙을 훼손했던 사람으로 무소불통의 권력을 장악하는 것이 삶의 동기였다.
영화는 체니의 젊은 시절부터 부시 밑에서 8년간의 부통령직을 수행한 뒤 정계에서 은퇴할 때까지의 그의 가족관계와 정치인으로서의 삶을 폭 넓고 다양성 있게 다루고 있다. 각본을 쓰고 감독한 애담 맥케이는 ‘악의 뻔뻔스러움’을 상징하다시피 하는 체니를 사실적으로 그리면서 아울러 블랙 코미디 식으로 비꼬고 있는데 그에 대해 일말의 동정심마저 보여주고 있다.
이 영화는 작품(코미디/뮤지컬), 남우주연(크리스천 베일), 여우조연(에이미 애담스) 및 감독 등 6개 부문에서 제76회 골든 글로브상 후보에 올랐다. 그 중에서도 볼만한 것은 체중을 40파운드나 늘이고 체니 역을 기차게 해낸 베일의 연기다. 
체니는 예일대를 중퇴하고 고향인 와이오밍 주에 내려와 전선 설비공으로 일하면서 술독에 빠져 삶의 방향을 잃고 살았는데 이를 구해준 것이 그의 약혼녀 린(애담스)이다. 린이 체니에게 삶의 태도를 고치지 않으면 그를 떠나겠다고 말하자 체니는 ‘앞으로 절대로 당신을 실망시키지 않겠다”고 약속한다.
그는 이어 의회의 인턴으로 들어가는데 이 때 그는 제럴드 포드(빌 캠프) 대통령 밑에서 국방장관을 지낸 도널드 럼스펠드(스티브 카렐이 활력 넘치는 연기를 한다)를 사부처럼 모시게 된다. 그리고 체니는 철저한 자아 통제와 간지와 운을 업고 정계에서 일취성장 한다. 이런 체니의 성공에 큰 기여를 하는 사람이 강철 같은 의지와 야심을 지닌 린이다. 린은 레이디 맥베스다.
체니의 정치편력과 함께 그와 린의 서로에 대한 강인한 헌신과 애정 그리고 체니의 두 딸과의 관계가 자세히 묘사된다. 정치적으로는 괴물인 체니가 집에서는 자상한 남편이자 아버지로 그려지는데 그의 딸 중 한 명은 동성애자였다 
체니는 아버지 부시와 아들 부시 밑에서 봉사하면서 중동 전쟁을 촉발시킨 사람으로 아버지 부시 때는 이라크 전쟁을 그리고 아들 부시 밑에서는 9/11 테러에 대한 보복전쟁을 일으킨 장본인 중의 하나다. 미국은 아직도 이 전쟁에서 빠져나오고 있지 못한 상태다. 
가장 우습고 재미있는 장면은 아들 부시(샘 록웰-골든 글로브 남우조연상 후보)가 대통령 출마를 결심하고 부통령 감으로 체니를 골라 텍사스의 자택으로 체니를 초청해 대화하는 모습. 여기서 체니는 대통령 권한의 중요한 부분을 자기가 행사하는 조건으로 부통령 후보직을 수락하는데 이를 뭣 모르고 수용하는 부시가 멍청이처럼 보인다. 
베일이 완전히 체니로 변신해 카리스마가 있으면서도 감지할 수 없을 만큼 민감하고 섬세한 연기를 완벽히 해내고 단단한 모습의 애담스 역시 빼어난 연기를 한다. 모두 잘 아는 헨리 키신저, 폴 월포위츠, 콜린 파웰 및 콘돌리자 라이스 같은 정치인들이 대거 조연으로 나온다. R 등급. ★★★★(5개 만점)
                                                                <한국일보 박흥진 편집위원/ hjpark1230@gma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