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이야기

2018년 11월 14일 수요일

블랙 페이스


NBC-TV의 모닝쇼 ‘투데이’의 진행자 중 한 사람인 메긴 켈리가 최근 할로윈 얘기를 하면서 “내가 학교에 다니던 과거엔 백인들이 얼굴을 검은 칠로 분장을 해도 괜찮았다”는 망언을 해 쇼에서 퇴출당했다. 백인들의 흑인에 대한 차별의식은 그들의 DNA에 들어있다시피 한데 1983년에는 ABC-TV의 ‘먼데이 나잇 풋볼’을 오랫동안 중계해온 베테런 방송인 하워드 코셀이 풋볼중계를 하면서 워싱턴 레드스킨스의 흑인선수를 “작은 원숭이”라고 불러 그 여파로 프로그램에서 자진 사퇴했다.
백인들이 영화나 쇼에서 얼굴에 검은 칠을 하고 우스꽝스럽게 묘사된 것은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다. 특히 19세기 중반부터 근 1세기 동안이나 유행한 버라이어티쇼인 ‘민스트렐 쇼’는 얼굴에 검은 칠을 한 백인들이 무대에 나와 노래하고 춤추고 코미디를 연출하면서 흑인들을 어릿광대요 게으른 멍청이들로 묘사, 인기를 끌었었다.
‘민스트렐 쇼’의 흑인에 대한 이런 묘사는 흑인들과 직접 접촉이 없는 백인들로 하여금 흑인을 열등한 사람으로 인식케 하는데 일조를 했다 켈리가 이런 역사를 제대로 알고 있었다면 그런 몰지각한 발언을 안 했을지도 모른다. 켈리는 ‘트럼프 방송’인 폭스뉴스 출신으로 과거에도 예수와 산타 클로스를 백인이라고 우겨 물의를 빚었었다.
트럼프가 대통령이 되면서 미국은 지금 진보와 보수가 격렬한 대립양상을 띠고 있는 가운데 증오와 인종차별이 횡행하고 있다. 켈리의 발언도 이런 사회적 분위기에 편승했다고도 볼 수 있다.
백인이 얼굴에 검은 칠을 하고 흑인 노릇을 한 것은 할리웃에서도 무성영화 시대부터 있어 왔다. 그 대표적 영화가 D. W. 그리피스가 감독한 대하 서사극 ‘국가의 탄생’이다. 남북전쟁과 전쟁 직후의 드라마로 백인 배우들이 얼굴에 검은 칠을 하고 백인 여자들을 겁탈하고 그들의 재물을 약탈하는 바람에 이에 대항해 백인우월주의 집단인 KKK가 조직됐다는 내용이다. 흑인들은 무법자들로 KKK는 백마의 기수들로 묘사된 이 영화를 본 우드로 윌슨 대통령이 “번개로 쓴 역사”라고 찬양한 작품이다.
얼마 전 ‘블랙클랜스맨’을 감독한 스파이크 리를 만났을 때도 이 영화가 거론됐는데 그는 “‘국가의 탄생’과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에서 묘사된 흑인들을 보면 욕지기가 난다”고 열을 올렸다. 그가 오스카상을 받은 걸작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를 맹렬히 비판 한 것은 영화에 나오는 스칼렛의 충실한 하녀 매미와 또 다른 하녀 프리시를 비롯한 흑인들이 다 노예근성에 사로 잡혔거나 맹한 인물로 묘사됐기 때문이다.
인터뷰에서 리는 트럼프를 “디스 가이”라고 부르면서 “탄핵 받아야 마땅할 그가 절대로 재선되지 못하게 유권자 등록을 하라면서 인종차별이 없어지기를 희망하고 싶지만 결코 낙관할 수가 없다”고 비관했다.
백인 배우가 얼굴에 검은 칠을 하고 흑인 흉내를 낸 또 다른 유명한 영화가 할리웃 최초의 유성영화 ‘재즈 싱어’(사진)다. 여기서 가수로 나온 알 졸슨은 입술은 새하얗게 그리고 얼굴은 새카맣게 칠하고 무대와 나와 ‘마이 매미’를 노래한다.
특히 백인들의 흑인 노릇은 뮤지컬에서 많은데 뛰어난 뮤지컬 배우들인 프레드 애스테어, 주디 갈랜드, 빙 크로스비, 미키 루니 및 셜리 템플 등이 다 얼굴에 검은 칠을 하고 춤추고 노래 불렀다. 불과 6년 전인 2012년 오스카 시상식 때는 코미디언 빌리 크리스탈이 얼굴에 검은 칠을 하고 나와 유명 흑인가수이자 배우인 새미 데이비스 주니어의 흉내를 내 욕을 바가지로 얻어먹기도 했다.
할리웃은 예나 지금이나 백인들의 세상이다. 과거 할리웃은 아메리칸 인디언이나 동양인 역을 다 백인 배우들에게 줬다. 특히 웨스턴에 자주 나오는 아메리칸 인디언들로 백인배우들을 썼다.
록 허드슨, 버트 랭카스터, 찰스 브론슨, 잭 팰랜스, 척 코너스, 제프 챈들러, 앤소니 퀸 및 로버트 테일러를 비롯해 심지어 오드리 헵번도 아메리칸 인디언 노릇을 했다.
그 중에서도 실로 가관인 것은 제임스 스튜어트가 나온 걸작 웨스턴 ‘윈체스터 ‘73’에서 아메리칸 인디언 추장으로 나온 록 허드슨이다. 그는 영양상태가 좋은 살이 토실토실 찐 상반신을 벗어 제친 채 서툰 영어를 구사해 나는 그 장면을 보면서 아연실색 했던 기억이 난다.
과거 할리웃의 백인배우들은 동양인역도 전매특허 냈듯이 자기들이 했다. 그 중에서도 최고 걸작(?)이 ‘정복자’에서 존 웨인이 옆으로 찢어진 눈에 가느다란 콧수염을 한 징기스칸으로 나온 것. 이 밖에도 말론 브랜도, 알렉 기네스, 캐서린 헵번, 미키 루니, 폴 뮤니, 루이즈 레이너 및 피터 로레 등도 모두 동양인들로 인종 변경을 한 배우들이다. 미국에 사는 동양인으로서 나도 인종차별을 당해 봤는데 나도 이 문제에 관해선 스파이크 리처럼 비관적이다.   .       
                                                             <한국일보 박흥진 편집위원/ hjpark1230@gmail.com>



2018년 10월 29일 월요일

용서해 줄 수 있겠어?(Can You Ever Forgive Me?)


유명 작가의 편지 위조범 이즈라엘(왼쪽)과 그의 공범 잭이 바에서 스카치를 마시고 있다

유명작가의 서명위조 사기 벌이는 매카시 연기 일품


1990년대 초 유명 스타들과 작가들의 편지와 서명을 위조해 팔아먹은 뉴욕의 여류 작가 리 이즈라엘의 실화로 코미디언 멜리사 매카시가 가발을 쓰고 비루먹은 개처럼 초라하고 누추한 모습으로 나와 드라마 배우로 변신한 흥미 있는 작품이다.
뉴욕 출판계에 대한 비판과 함께 작가의 창작력의 원천을 다루면서 아울러 유명 인사의 것이라면 사족을 못 쓰는 풍조도 더불어 조소하고 있는데 매카시의 연기는 벌써부터 상감이라는 평을 듣고 있다. 
매카시의 연기와 함께 볼만한 것이 이즈라엘의 사기행각의 동료 잭으로 나오는 영국배우 리처드 E. 그랜트의 연기인데 변화무쌍하기 짝이 없다. 그리고 매카시와 그랜트의 콤비네이션도 일품으로 둘의 우정과 티격태격을 보는 것만 해도 즐겁다. 
리 이즈라엘(매키시)은 완전히 한물 간 작가로 자기 책을 출판한 회사 편집자(베테런 TV 코미디언 제인 커틴)에게 전화를 하면 받아주지도 않는다. 렌트가 몇 달씩 밀렸지만(편집자의 집에 열린 파티에 가서 화장실의 남은 휴지를 가방에 쓸어 담을 정도로 궁색하다) 단골 바에 가서 스카치를 니트(얼음 안 탄 것)로 거푸 마시는데 유일한 위로라면 애주중지하는 고양이.
*최근 매카시와 가진 인터뷰에서 실제로도 스카치를 그렇게 니트로 미시느냐고 물었더니 요즘에는 옛날과 달리 얼음과 함께 마신다면서 “난 스카치를 즐긴다”고 대답해 “나도 스카치를 즐긴다”고 스카치 예찬에 동조했다.
이즈라엘은 어느 날 도서관에 가서 자료를 연구하던 중 책 속에 있는 유명작가의 서명이 적힌 친필 편지를 발견, 자기 가방에 숨겨 빼낸다. 이를 계기로 이즈라엘의 유명인사 편지와 서명 위조 작업이 시작되는데 편지 한 장에 수백달러씩 팔리는 바람에 렌트비도 조달되고 술값도 넉넉해진다. 
이즈라엘이 위조하는 작가들은 노엘 카워드와 도로시 파커 등이 있고 연예인으로는 패니 브라이스가 있다. 이즈라엘의 필적 위조 솜씨가 어찌나 좋은지 책방에서는 의심하지 않고 사는데 편지 내용은 다 이즈라엘의 창작이다. 
어느 날 이즈라엘은 바에 들렀다가 과거 출판 기념파티에서 잠시 대면한 날건달 잭(그랜트)을 만난다. 둘 다 술꾼으로 즉석에서 죽이 맞아 잭은 이즈라엘의 위조 작업의 파트너로 참여한다. 그러나 한 동안 잘 나가던 사기행각이 꼬리가 길면 잡힌다고 FBI의 수사망에 떠오른다. 그래서 이 때부터 위조편지 판매는 잭이 대행하는데 결국 이즈라엘은 체포돼 재판에 회부된다. 
재판에서 이즈라엘은 판사가 선고를 하기 전 “나는 위조작업 하는 일이 너무나 행복했다”면서 “가짜 편지의 내용은 다 내 창작의 산물”이라고 고백한다. 이즈라엘은 집행유예를 받았는데 후에 자기 경험을 쓴 책 ‘Can You Ever Forgive Me?’는 뉴욕타임스에 의해 칭찬을 받았다. 이즈라엘은 2014년 75세로 사망했다. 매리엘 헬러 감독. R. Fox Searchlight. ★★★½ (5개 만점) 
                                                               <한국일보 박흥진 편집위원/ hjpark1230@gmail.com>


‘길티’(The Guilty)


아스가 홈이 경찰서에서 납치된 여자가 건 비상전화를 받고 있다.

비상전화 받는 경찰과 납치된 여인의 대화… 시공 넘은 긴장감 예술적 표현


영화 전체가 경찰서 비상전화 접수실에서 일어나는 얘기로 주인공도 전화를 받는 경찰 한 사람인 협소감 가득한 덴마크 스릴러다. 별로 넓지 않은 사무실에서 전화를 받는 경찰과 그에게 구조를 요청하는 여인의 대화로 이어지는 드라마여서 답답한 것도 사실이나 영화는 이런 제한을 정신적 감정적으로 뛰어 넘고 예술성이 강한 긴장감으로 보는 사람을 유인하고 있다. 어떻게 해서든지 위험에 빠진 여자를 구하려고 온갖 수단방법을 동원하는 경찰의 노심초사에 동반해 화면 안으로 몰입하게 된다. 구스타브 묄러는 대단한 재주를 지닌 감독으로 이 영화가 데뷔작이다 
아스거 홈(야콥 세데르그렌)은 업무수행 중 사건용의자를 사살, 조사 진행 중에 비상전화 접수실 근무령을 받고 근무 중이다. 약물에 취해 응급차 보내달라는 젊은이와 홍등가에서 창녀에게 강탈을 당한 남자의 전화 따위를 받는다. 이어 이벤이라는 이름의 여인으로부터 다급한 음성으로 도와 달라는 전화가 걸려온다. 전 남편에 의해 납치를 당해 지금 차에 실려 가고 있다는 것.
홈은 어떻게 해서든지 차의 위치 등 이벤에 관해 보다 자세히 알기 위해 이벤에게 집에 있는 딸과 전화를 하는 척 하라고 지시한다. 그리고 이벤이 흰색 밴에 타고 있으며 차는 고속도로를 타고 북쪽으로 달리고 있다는 것을 비상대기 차량에 통지한다. 그러나 이벤의 전화가 끊기면서 다급해진 홈은 법규를 무시하고 혼자 지혜와 경험 등을 이용해 사건을 수사하기로 한다.
그야말로 볏단 속에서 바늘 찾기 식인데 홈은 옆 자리에 동료 경찰이 있는 자기 자리를 떠나 옆방에서 혼자 전화와 컴퓨터를 사용, 이벤 구조에 열을 올린다. 
다시 이벤과 통화가 연결된 홈은 여인과 그의 전 남편과의 관계 그리고 둘의 가정생활 내용 및 궁극적으로 그들이 가고 있는 목적지를 알아내려고 이벤에게 유도 질문을 한다. 그리고 이 과정에서 서서히 이벤의 실제 상황을 알게 된다. 감독은 홈이 이벤을 구원함으로써 자기가 저지른 행위에 대한 속죄를 하게끔 했다.
영화는 좁은 공간에서 느끼게 되는 홈의 고독과 갇힌 상태 그리고 시각적 제한을 홈의 전화를 통해 들리는 외부의 여러 가지 음향으로 해소하면서 보는 사람으로 그와 함께 하여금 감정적 여정을 하게 만든다. 세데르그렌이 혼자서 영화를 짊어지고 순전히 얼굴 표정과 음성으로 시종일관 긴장감을 풀어주지 않는 뛰어난 연기를 한다.★★★½ (5개 만점) 
                                                                 <한국일보 박흥진 편집위원/ hjpark1230@gmail.com>



‘불릿’


사람을 깔보는 듯한 새파란 눈동자의 시선과 매력적으로 인색한 미소를 지녔던 쿨 가이 스티브 맥퀸을 액션 스타로 신격화한 영화는 형사스릴러 ‘불릿’(Bullitt^사진)이다. 갱스터 범죄영화의 금자탑과도 같은 ‘불릿’이 이달로 개봉 50주년을 맞아 요즘 미 전국 대도시에서 재상영 되고 있다.
‘불릿’하면 대뜸 생각나는 것이 형사 불릿으로 나온 맥퀸이 복잡한 샌프란시스코 시내를 초고속으로 질주하는 자동차 추격 장면이다. 맥퀸이 차를 타고 도주하는 킬러를 쫓아 포드머스탱 390GT를 모는 장면은 자그마치 10분간 계속되는데 대부분 스피드광인 맥퀸이 직접 시속 120마일로 차를 몰며 찍었다. 나도 이 장면 때문에 ‘불릿’이 TV에서 방영될 때면 다시 보곤 한다. 
자동차 추격의 전설이 되다시피 한 이 장면을 찍는데 총 3주가 걸렸는데 맥퀸은 샌프란시스코의 자동차 경주장에서 옆에서 달리는 스턴트 드라이버를 따라 맹연습을 했다. 맥퀸은 이렇게 위험한 장면을 직접 하겠다고 우겨 배급사인 워너브라더스가 전전긍긍했다고 하는데 맥퀸은 영화의 제작에서부터 영국인 감독 피터 예이츠의 선정에 이르기까지 영화 전반에 걸쳐 철저히 주도권을 행사했다. 제작비 550만 달러가 든 영화는 빅히트, 총 4,230만 달러를 벌었는데 이는 현 시가로 3억 달러에 이른다.
로버트 본과 재클린 비셋이 공연한 ‘불릿’은 후에 나온 액션영화들인 ‘프렌치 커넥션’과 ‘히트’ 및 ‘제이슨 본 ’시리즈 등에 큰 영향을 미쳤다. 특히 오스카 작품과 감독 및 남우주연상을 탄 ‘프렌치 커넥션’에서 형사 포파이(진 해크만)가 고가전철을 타고 달아나는 헤로인 밀수범을 쫓아 복잡한 뉴욕시내를 초고속으로 차를 모는 장면은 ‘불릿’의 추격 장면을 연상시킨다.
맥퀸은 온 몸에서 허위란 찾아 볼 수 없었던 생생한 실물이었다. 과묵하고 섹시한 야생동물과도 같은 남성다움으로 팬들의 사랑을 받았던 우상과도 같은 존재였다. 맥퀸은 온순해 보이기까지 하는 마초기질과 카리스마가 가득한 분위기로 인해 생전에는 물론이요 죽은 지 40년이 가까운 지금까지도 웬만한 살아 있는 배우들 보다 더 유명한 배우다.
맥퀸은 폐암으로 1980년 50세로 사망했는데 당시 아내는 범죄영화 ‘겟어웨이’에서 공연하다 사랑에 빠졌던 알리 맥그로였다. 공연 시 맥그로는 패라마운트 사장 로버트 에반스의 부인이었다. 신문들은 맥퀸과 맥그로의 로맨스를 놓고 ‘미녀와 야수’의 결합이라고 대서특필했었다.
1980년은 내가 미국에 온 해로 그 때 맥퀸이 암치료를 위해 일종의 비법치료를 한다는 의사를 찾아 멕시코에 갔다는 신문보도를 읽었던 기억이 난다. 그는 병을 못 고치고 귀국했는데 그 후 수술을 받기 위해 다시 멕시코에 갔다가 수술 후유증으로 사망했다. 그에 관한 기록영화에 의하면 맥퀸은 죽음과 필사적으로 다투다가 지쳐 마지막에는 “대츠 잇”하며 싸움을 포기했다.
거칠면서도 상냥한 양면성을 지녔던 맥퀸은 늘 변두리를 밟으며 스릴을 좇아 산 국외자였다. 그가 나온 ‘주니어 보너’ ‘탐 혼’ ‘신시내티 키드’ 및 ‘헌터’ 등은 다 이런 변두리 인물이 주인공이다. 맥퀸의 국외자 생활 스타일은 그의 불우했던 어린 시절과 관계가 있다고들 한다.
그는 아버지를 모른 채 태어나 어렸을 때 알콜중독자인 어머니로부터도 버림받고 인디애나주의 농부인 삼촌 밑에서 자랐다. 불량아였는데 그는 이렇게 배드 보이가 될 소지가 충분히 있었는데도 오히려 배드 보이의 어두운 매력과 장난기를 십분 발휘해 자기 인기형성에 이용했다. 맥퀸은 자기주장이 강해 할리웃에서 다루기 힘든 배우로 딱지가 붙었었는데 그래서 자기를 스타로 만들어준 ‘황야의 7인’과 ‘대탈주’를 감독한 스승과도 같았던 존 스터지스와도 결별하고 말았다. 
해병대 출신으로 G.I. 빌로 뉴욕의 액터스 스튜디오에서 연기공부를 한 뒤 무대와 라이브TV로 배우생활을 시작한 맥퀸은 많은 웨스턴에 나왔다. 배우 초기 시절 나온 TV시리즈 ‘원티드:데드 오어 얼라이브’를 비롯해 ‘황야의 7인’, ‘네바다 스미스’ 및 ‘탐 혼’ 등이 다 웨스턴이다.
맥퀸은 ‘황야의 7인’ 영화 전편을 통해 불과 20여 줄의 대사(그는 대사를 싫어했다)밖에 구사하지 않았는데 그는 여기서 공연한 선배 빅스타 율 브린너에게 집중되는 시선을 자신에게 돌리기 위해 자기 멋대로 독특한 행동을 해 브린너의 심기를 크게 건드렸다는 일화가 있다. 맥퀸은 자동차만 잘 탈 뿐만 아니라 ‘대탈주’에서는 모터사이클을 ‘황야의 7인’에서는  말도 잘 탔는데 그의 자동차 질주 실력이 과시된 또 다른 영화는 그랑 프리를 다룬 ‘르 만스’다.     
맥퀸은 생전 “나는 연기하는 사람이 아니다. 나는 반응하는 사람이다”라고 자신의 본능적인 연기관을 피력했다. 그의 연기는 생경할 정도로 사실적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맥퀸이 오스카상 후보에 오른 영화는 캔디스 버겐과 공연한 ‘샌드 페블스’ 단 한편이다. 
                                                               <한국일보 박흥진 편집위원/ hjpark1230@gmail.com>


                                     

2018년 10월 12일 금요일

퍼스트 맨(First Man)


닐 암스트롱(맨 앞)이 동료 우주인들과 함께 아폴로 `11호에 탑승하기 위해 걸어가고 있다.

암스트롱의 역사적 달 착륙과정
영웅담 탈피 인간적 내면세계 조명



난 아직도 인간의 달 착륙이 왜 인류를 위한 승리인지 그 까닭을 못 깨달았지만 이 영화는 그 승리의 장본인인 닐 암스트롱의 달 착륙을 그린 준수한 영화다. 뮤지컬 ‘라라 랜드’로 오스카 감독상을 탄 데이미안 차젤과 ‘라라 랜드’에 나온 라이언 가슬링이 다시 콤비가 돼 만든 수고와 열정과 정성이 가득한 기품 있는 작품이다. 
차젤은 무슨 영화든지 잘 만드는 뛰어난 재능의 소유자임이 여실히 증명된 영화로 연출과 연기가 지나치게 차분한 것이 흠이라면 흠이지만 그의 작품에 대한 접근이 매우 지적이요 진지하고 신중해 거의 경외감마저 느끼게 된다. 확신에 찬 연출력이다. 
암스트롱의 가족의 얘기와 그의 테스트 파일롯으로서의 활동 그리고 달 착륙을 위한 준비 과정이 차분하게 서술되는 작품의 절반 정도까지는 분위기가 너무 착 가라앉아 심심하게 느낄 사람들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차젤은 흥분하기 쉬운 영웅담이라는 내용에 결코 부응하지 않고 매우 사적인 암스트롱이라는 개인의 충실한 업무수행을 보여주고 있을 뿐이다. 그가 영화에서 암스트롱이 달에 성조기를 꽂는 장면을 안 보여주는 것도 이런 맥락에서 보면 이해할 수 있다. 이로 인해 차젤은 비애국적이라는 비판을 받았다.
처음에 대뜸 1961년 테스트 파일롯 암스트롱이 캘리포니아의 모하비 사막 공중에서 비행하는 격렬한 장면으로 시작된다. 같은 해 그의 세 살 난 딸 캐런이 암으로 죽으면서 암스트롱의 내면의 일부가 죽는다. 그러나 절대적으로 자기 감정을 죽이는 암스트롱은 겉으로 슬픔을 표시하지 않는다. 딸의 죽음은 암스트롱을 달 착륙에 도전케 하는 계기가 된다.
암스트롱의 아내 재넷(클레어 포이가 알찬 연기를 한다)은 땅에 발을 굳건히 디딘 믿음직스러운 집안의 기둥으로 어린 두 아들을 돌본다. 이어 암스트롱은 달 착륙을 위한 제미니/아폴로 프로그램에 선발돼 휴스턴으로 이사를 한다. 그의 앞집에 사는 사람이 같은 우주인 에드 와잇(제이슨 클락)으로 둘은 친구가 된다. 와잇은 시험 비행에서 사망하는데 그 외에도 여러 명이 희생된다. 
아폴로 11호가 발사되기 전까지 고되고 치열한 훈련이 계속되고 마침내 암스트롱과 버즈 알드린(코리 스톨) 등이 탑승한 우주선이 하늘로 치솟는다. 여기서부터 달 착륙과 이륙에 이르기까지 숨이 답답할 정도로 팽팽한 긴장감이 감돈다. 아폴로가 달에 접근하는 모습을 카메라가 천천히 포착하는데 이 때 서정적인 음악(저스틴 허위츠)이 여유롭고 아름답게 흐르다가 달 착륙에 이르면서 영화는 무성이 된다. 침묵이 황금이다. 
우주가 경탄을 금치 못하도록 신비하고 아름답게 묘사되는데(촬영이 훌륭하다) 암스트롱이 달에 죽은 딸이 차고 있던 구슬 팔찌를 남겨 놓는 장면이 가슴을 감정으로 복받치게 만든다. 가슬링의 연기가 맥이 빠진다고 볼 수도 있겠지만 그것보다는 훌륭한 내면연기로 봄이 옳을 것이다. PG-13. Universal. ★★★★ (5개 만점) 
                                                           <한국일보 박흥진 편집위원/ hjpark1230@gmail.com>




‘7월22일’(22 Jul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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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르웨이 여름캠프‘우토야 살육’
살인자와 살아 남은 자, 재판…
브레이빅 역의 리에 연기 볼 만


2011년 7월22일 노르웨이의 여름캠프 섬 우토야에서 일어난 극우파 인종차별주의자 안더스 베링 브레이빅의 살육사건을 다룬 스릴러 드라마로 ‘블러디 선데이’와 ‘유나이티드 93’ 등에서 북아일랜드의 유혈폭동과 9/11 테러를 다룬 영국의 폴 그린그래스 감독(각본 겸) 작품이다. 우토야 사건에서 사망한 사람은 총 77명으로 절대 다수가 어린 학생들이었다. 부상자는 이보다 더 많았다. 
그린그래스는 액션과 스릴을 긴장감 가득하게 다룰 줄 아는 감독인데 이번에는 박력감이 다소 약하다. 거의 기록영화 식이어서 뉴스필름을 보는 것 같은데 이런 영화가 갖춰야 할 통렬하고 열정적인 감정을 느끼기가 힘들다. 그러나 볼 만은 하다.
영화는 세 갈래로 나뉘어 서술된다. 
첫째는 브레이빅(안더스 다니엘슨 리에)의 살육, 둘째는 여기서 큰 부상을 입고 살아남은 고등학생 비야르 한센(요나스 스트란드 그라빌)의 후유증 그리고 마지막은 브레이빅의 재판. 
먼저 7월21일 브레이빅이 무기와 폭발물을 밴에 싣는 장면으로 시작된다. 그는 밴을 오슬로의 수상 사무실과 정부청사가 있는 지역에 주차한 뒤 폭파시킨다. 이는 우토야 살육을 위한 교란작전이다.
이어 브레이빅은 우토야에 도착해 학생들과 지도교사들을 무차별 사살하는데 그가 무감정한 얼굴로 총기를 난사하는 모습이 마치 사냥꾼이 짐승을 사냥하는 장면을 연상시킨다. 이 장면이 끔찍하긴 한데 너무 도식적으로 묘사해 안으로 격한 기분을 느끼게 되진 않는다.
여기서 한센은 동생을 구하고 자기는 뇌를 비롯해 온 몸에 총상을 입는다. 중간 부분이 다소 지루할 정도로 한센의 회복과정과 좌절감과 분노와 살아남았다는 회한 및 가족과의 관계로 이어진다. 그린그래스는 인종화합을 그리기 위해 한센과 살육에서 살아남은 아랍계 소녀와의 사이에 로맨스 기운까지 가미했지만 잘 어울리지 않는다.
마지막은 브레이빅의 재판. 그는 자신의 소신을 세상에 알리기 위해 법정에 선다. 브레이빅은 자기가 악몽 속의 괴물이 아니라 전쟁에 나간 군인이라고 주장하면서 다인종화 하는 노르웨이의 현실을 냉정히 비판한다. 그리고 증인으로 한센이 출두한다. 그의 증언이 감동적이다. 볼 만한 것은 리에의 연기다. 차갑게 생긴 얼굴에 감정을 일체 숨기고 마치 살육을 사무 보듯이 하는 그의 연기는 겁이 날 정도다. 그라빌도 차분하다. Netflix. ★★★½ (5개 만점) 
                                                            <한국일보 박흥진 편집위원/ hjpark1230@gmail.com>



샤를르 아즈나부르


내가 대학생 때 자주 들른 음악다방들은 미 팝송뿐 아니라 샹송도 제법 많이 틀어댔었다. 나는 이 때 프랑스가수들이 비음을 섞어가며 체념이라도 한 듯이 중얼중얼 대는 노래들을 들으며 괜스레 심각해지곤 했었다. 안개가 낀 감상적인 콧소리로 노래해 듣는 사람의 가슴을 사로잡는 샤를르 아즈나부르의 노래를 처음 들은 것도 이 때였다. 지금도 기억에 생생한 것이 그가 “이자벨 이자벨 이자벨”하면서 떠나간 님 이자벨을 몸살 나게 찾던 노래 ‘이자벨’이다.
아즈나부르가 10월 1일 남불 프로방스의 자택에서 94세로 타계했다. 그의 사망에 엠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은 “샤를르 아즈나부르는 심오한 프랑스인이자 그의 아르메니안 뿌리에 깊이 연결된 세계적으로 인정받은 사람이었다. 그는 세 세대에 걸쳐 기쁨과 슬픔을 동반한 사람이다. 그의 걸작들, 그의 음색, 그의 독특한 소리의 광채는 그와 함께 길이 살아남을 것이다”고 조의를 표했다.
‘세기의 엔터테이너’로 불린 아즈나부르는 에디트 피아프, 질베르 베코, 쥘리엣 그레코 및 모리스 슈발리에 등과 함께 활약한 샹송의 마지막 전설이자 역사였다. 가수요 작곡가이자 배우이며 인도주의자였던 그는 아르메니아계 부모 밑에서 파리에서 태어났다. 11세 때 학교를 그만두고 연예계에 투신했는데 처음에는 파리의 술집 물랭 루지에서 피아프가 노래하기 전 무대분위기를 달구는 가수로 일했다. 그는 20대 초 피아프와 함께 미 순회공연을 마친 뒤 솔로로 전향했는데 피아프는 아즈나부르의 성공을 뒤에서 적극적으로 밀어준 은인이었다.
그러나 생애 8개국어로 총 1,200여곡의 노래를 불러 모두 1억8,000만장의 음반을 판 아즈나부르는 처음에 음성코치로부터 카리스마도 없고 노래도 부를 줄 모른다는 평가를 받았었다. 키가 5피트 3인치에 체중이110파운드 밖에 안 되는 것도 핸디캡이었다. 그러나 그는 이런 평가를 극복하고 목이 쉬도록 노래했는데 그의 노래들은 대부분의 샹송들처럼 주로 사랑에 관한 것이었지만 그는 이 밖에도 결혼과 시대를 앞서간 동성애에 관해서도 노래했다.         
나는 20년 전 아즈나부르가 LA의 윌셔와 라 시에네가 인근의 윌셔극장(현재 사반극장)에서 공연했을 때 참관했었다. 검은 옷을 입은 그는 작달막했지만 그윽한 분위에 카리스마가 있었는데 애매하게 매혹적인 음성으로 자기 히트곡들을 노래하는 것을 보면서 황홀무아지경에 빠졌던 기억이 난다. 그의 히트곡들로는 ‘라 보엠’ ‘라 마마’ ‘나를 포옹해주오’ ‘아베 마리아’ ‘눈이 내리네’ ‘그녀’ ‘파르스 크’ ‘함께’ 및 ‘기억해야 하리’ 등이 있다.   
1950년대 초반 그의 인기가 절정에 이르렀을 때 프랑스의 한 신문은 “프랑스는 아즈나부르에 의해 점령당했다”고 찬양했는데 아즈나부르는 이런 명성과 콘서트를 열 때마다 표가 매진되는 인기에도 불구하고 매우겸손한 사람이었다고 한다. 그는 죽기 2주 전까지 도쿄에서 공연할 정도로 노래에 살고 노래에 죽은 사람으로 생전 “노래를 포기한다는 것은 내겐 죽음이다”라고 말한바 있다.
아즈나부르는 영화배우로서도 유명하다. 스크린에 나서면 화면이 꽉 차는 스타 파워를 지닌 사람이었다. 그는 ‘10명의 작은 인디언들’과 오스카 외국어 영화상을 탄 ‘양철 북’ 등 총 60여편의 영화에 나왔는데 그 중에서도 가장 유명한 것이 그를 세계적 스타로 만들어준 프랑솨 트뤼포 감독의 느와르 ‘피아노 연주자를 쏴라’(Shoot the Piano Player^1960^사진)이다.
트뤼포가 할리웃 갱스터영화에 바치는 헌사와도 같은 작품으로 범죄스릴러이자 희비극이다. 실험정신이 가득한 인간미 넘치는 로맨틱한 영화로 흑백촬영과 음악도 아름답다. 파리의 싸구려 카페의 피아니스트 샬리(아즈나부르)의 영광과 몰락과 여인과 사랑에 관한 얘기로 입을 꽉 다문 무표정한 얼굴의 아즈나부르의 연기가 볼만하다.   
프랑스 서민들의 노래인 샹송은 길바닥 노래다. 처음 가수들은 길가에서 자기가 쓴 노래들을 부르며 행인들에게 악보를 팔아 입에 풀칠을 했다. 가슴이 터져라 노래하던 ‘작은 참새’ 피아프도 길바닥 가수출신이다.
샹송은 곡조나 가사가 다 격렬히 감정을 부추기는데 멜로드라마 같은 거리 인생의 얘기가 우수와 감상과 동경에 찬 멜로디와 무드 속에서 흘러나와 멜랑콜리하기 짝이 없다. 초창기 가수들은 고등교육을 받지 못한 사람들로 이들은 자신들의 경험인 사랑의 아픔과 이별의 후유증 그리고 욕망과 유혹과 회한 등을 노래해 그 사실감으로 인해 노래 부르는 사람과 듣는 사람이 느낌을 공유하게 된다.     
아즈나부르는 인터뷰에서 “나는 술과 에이즈와 교통사고, 이혼과 전쟁의 아이들과 귀 먹고 말 못하는 여인을 사랑하는 남자에 관해 노래 부른다”고 말했다. 그에게는 노래가 철학이었다. 아듀 아즈나부르!
                                                              <한국일보 박흥진 편집위원/ hjpark1230@gma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