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이야기

2018년 10월 12일 금요일

스타 탄생(A Star Is Born)


잭슨(왼쪽)과 앨리가 새벽까지 공연장에서 기타를 치고 노래를 부르면서 콘서트 준비를 하고 있다.

레이디 가가 주연 뮤지컬 러브스토리
남녀 가수의 사랑, 야망, 비극 그려


브래들리 쿠퍼가 감독으로 데뷔하고 가수 레이디 가가가 첫 주연을 맡은 이 영화는 1937년에 나온 동명영화의 세 번째 리메이크로 전성기에 술과 약물에 빠져 인기가 추락하는 남자 가수와 그가 발굴해 빅스타가 되는 여자가수의 야심과 사랑과 비극을 그린 뮤지컬 러브 스토리다.
원작과 첫 번째 리메이크의 주인공들은 할리웃 스타들이었으나 두 번째 리메이크의 주인공들로는 바브라 스트라이샌드와 크리스 크리스토퍼슨이 주연하면서 가수로 바뀌었는데 쿠퍼의 영화는 이것을 모델로 삼은 것이다.
두 가수의 사랑과 개인적 야망과 심리적 문제 그리고 미 가요산업계의 내막을 살펴보고 있는데 쿠퍼의 연출력은 살 만하나 노래가 너무 많아 극적 강렬성이 모자란다. 가가가 작곡에 참여한 노래들이 끊임없이 나오는데 마치 가가의 CD 선전물이나 자전적 영화 같다. 그러나 둘의 콤비는 잘 어울린다. 쿠퍼는 직접 노래를 불렀다. 이 외에도 그는 제작과 공동으로 각본과 가사까지 썼다. 그의 작품에 대한 정열과 성의를 느낄 수 있다.
빅 스타 록가수 잭슨 메인(쿠퍼)은 술과 마약에 빠져 산다. 청각 장애까지 있어 좌절감이 심한데 게다가 자기 매니저인 형 바비(샘 엘리옷)와 불화가 일면서 더 약물과 술에 의존한다. 잭슨은 어느 날 코아첼라 축제에서(직접 공연이 열리는 현장서 찍었다) 노래를 부른 뒤 차를 타고 가다가 한 바에 들른다. 여기서 그는 웨이트리스로 일하면서 노래도 부르는 앨리(가가)가 열창하는 ‘라 비 앙 로즈’에 감탄, 앨리에게 데이트를 청한다. 둘은 거리에서 밤을 새워가며 노래와 자기들의 삶에 대해 얘기한다.
얼마 후 잭슨은 자가용 비행기를 보내 앨리를 자신의 콘서트에 초청하고 노래 중간에 앨리를 무대로 불러내 앨리가 작곡한 노래를 부르게 하면서 관중들의 큰 호응을 받는다. 둘은 사랑에 빠지고 앨리의 가수로서의 성공의 문이 열린다. 그리고 둘은 결혼하는데 앨리의 인기가 부쩍 오르는 것과 달리 내면의 개인적 악마와 다투는 잭슨은 술과 약물을 물 마시다시피 하면서 인기도 빨리 추락한다. 이런 잭슨을 앨리는 어떻게 해서라도 고쳐보려고 애를 쓰나 뜻대로 되지 않는다.
앨리의 노래 실력을 발견한 영국의 스타메이커에 의해 앨리는 화려한 변신을 하면서 인기 절정에 올라 ‘새터데이 나잇 라이브’에 까지 출연하는데 이에 대해 잭슨은 앨리가 원래 지니고 있던 진짜 가수의 본질을 잃어버렸다고 비판한다. 그러나 둘의 사랑은 여전한데 잭슨은 자기  문제 때문에 앨리의 장래가 위협 받는 것을 깨닫고 극단적인 조치를 취한다.
쿠퍼의 피와 땀의 결정체 같은 영화로 연기도 잘 하는데 자기가 감독이라고 본인 얼굴 클로즈업이 심하다. 가가도 열심히 하긴 하나 아직은 어색하다. 그러나 마치 오페라 가수의 가창력을 지닌 가가의 노래는 정말 일품이다.
이 영화는 벌써부터 여러 부문에서 수상 후보감이라는 말이 나돌고 있다. R. WB. ★★★½ (5개 만점)
                                                                <한국일보 박흥진 편집위원/ hjpark1230@gmail.com>


2018년 10월 4일 목요일

노인과 총(The Old Man & the Gun)


정장에 중절모를 쓴 터커(로버트 레드포드)가 범행을 저지르기 위해 은행 안으로 들어서고 있다

연쇄 은행강도 벌이는 7순 노인 역
로버트 레드포드‘마지막 작품’관심


헤밍웨이의 ‘노인과 바다’가 아니라 노인이 총을 차고 은행을 계속해 터는 이 영화는 어쩌면 로버트 레드포드(81)의 배우로서의 마지막 작품이 될지도 모르는 담담하고 차분한 드라마다.
마치 레드포드의 머리와 모습처럼 황금빛 기운이 감도는데 조락의 분위기와 체념의 쓸쓸함이 가득해 마음이 고적해진다. 허구를 많이 섞었지만 믿어지지 않는 실화다.
총은 있지만 총 소리는 안 들리는 아름다운 강도영화로 강도라는 액션에 초점을 맞췄다기보다 강도를 하는 노인의 성격과 그가 뒤늦게 만난 여인과의 로맨스를 그린 작품이다.
이 영화는 레드포드의 연기 생활을 마감하는 ‘스완 송’이 될 것이라는 소문이 파다하게 나돌았으나 막상 최근 토론토에서 만난 그는 “반드시 그렇지는 않고 60년이 넘는 배우 생활을 한 내게 이 작품이 마지막 작품으로서 잘 어울릴 것 같다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레드포드의 말대로 그의 은퇴작품으로서 잘 어울리는 영화다.
서두르지 않고 편안하게 서술되는 매력적인 영화로 레드포드의 여유와 카리스마를 갖춘 연기가 일품이다. 7순 나이의 포레스트 터커(레드포드)는 타고난 범죄자. 양심의 가책이라곤 전연 느끼지 않고 작은 동네 은행을 터는 것이 직업(?)이다. 혼자 범행을 저지르거나 때론 두 명의 동료(대니 글로버와 탐 웨이츠)와 함께 은행을 터는데 터커는 늘 정장에 중절모를 쓰고 강도를 한다.
옷 속에 총을 감추고 위협용으로 쓰지만 총 한 번 안 쏘고 일을 끝내는데 은행 매니저나 텔러에게 자기가 강도라는 것을 알릴 때에도 미소를 지으면서 공손하고 상냥하게 현찰을 요구한다. 그래서 텔러들은 경찰에 신고할 때에도 터커에게 반했다는 듯이 나쁜 말을 안 한다. 그런데 터커는 턴 돈을 다락에 숨겨 놓고 쓰지도 않는다. 강도질 중독자다.
터커를 수사하는 사람이 젊은 형사 존 헌트(케이시 애플렉). 그런데 그도 터커를 쫓으면서도 터커라는 인물에 매력을 느끼고 오히려 연민의 마음을 갖는다. 헌트는 몇 차례 간발의 차이로 터커를 놓치는데 이 부분은 좀 억지다.
어느 날 강도 후 도주하던 터커가 길에서 차가 고장 난 주얼(시시 스페이섹이 빼어나게 잘한다)을 도와주다가 둘이 마음이 맞는다. 터커는 주얼에게 자기 직업을 알려주나 주얼은 이를 믿지 못한다. 두 사람은 짙은 로맨스로 맺어진다. 한 동안 직업을 쉬던 터커가 주얼에게 잠깐 나갔다 오겠다고 말 한 뒤 집을 나선다.
실제로 터커는 76세 때인 1981년 텍사스와 미주리주의 작은 은행들을 털다가 체포됐다. 레드포드의 영화로 유유자적하면서 역을 즐기는 그의 모습이 보기 좋은데 그와 스페이섹의 콤비도 완벽하다. 마음이 가는 미풍과도 같은 영화로 마치 악동의 미소와도 같은 레드포드의 미소를 맞는 기분이다. 데이빗 라우어리 감독. PG-13. Fox Searchlight. ★★★½ (5개 만점)
                                                            <한국일보 박흥진 편집위원/ hjpark1230@gmail.com>



마지막 옷(The Last Suit)


아브라함이 파리의 기차 역무원에게 독일 땅을 거치지 않고 폴란드로 가는 길을 묻는다,

홀로코스트서 구해준 은인 찾아
남미서 유럽으로 떠나는 노인
유머·인간미 가득한 로드 무비


일종의 홀로코스트 영화이지만 어둡고 참혹하게 나치의 유대인 학살을 다룬 것이 아니라 유머 가득한 로드 무비 코미디이자 심각한 드라마다. 학살에서 살아남은 뒤 죽음에 이른 자기를 구해준 옛 친구이자 생명의 은인을 찾아 남미에서 유럽까지 혼자 여행을 떠난 팔순 노인의 여정을 정감 있게 그렸다.
여행 하는 도중에 만나는 사람들과의 관계가 훈훈하고 인간적이며 재미있는데 마지막 장면에서 눈물을 흘리지 않는다면 가슴을 검사해봐야 할 것이다. 영화는 특히 심술첨지이나 예지가 가득한 주인공 아브라함 역을 맡은 미겔 앙헬 솔라의 변화무쌍한 연기가 돋보인다.
부에노스 아이레스에 사는 88세난 은퇴한 양복 재단사 아브라함 버즈스타인(솔라)은 폴란드 태생의 유대인으로 나치의 유대인 수용소에 갇혔다가 생존, 전후 아르헨티나로 이주했다. 그는 수용소에서의 삶으로 인해 한쪽 다리를 전다. 부에노스 아이레스에서 양복점을 차려 성공한 아브라함은 자식들과 손자 손녀들이 많다. 그런데 자식들이 자기를 양로원에 보내기로 하고 집을 팔아버리면서 아브라함은 전에 자기가 살던 로즈의 친구를 찾아 가기로 한다. 70여 년 만으로 아브라함은 그동안 간직했던 신사복 한 벌을 챙긴다.             
먼저 도착한 곳이 마드리드. 가는 비행기 안에서 마드리드에 사는 젊은이 레오(마틴 피로얀스키)를 만나고 아브라함이 마드리드 공항에서 곤경에 처한 그를 도와주면서 후에 그의 도움을  받는다. 여기서 묵는 호스텔에서 아브라함은 호스텔 주인이자 파트타임 가수로 시니컬한 마리아(앙헬라 몰리나)와 아름다운 인간관계를 맺는다.
이어 파리에 도착한다. 파리에서 폴란드까지 가는 열차가 독일을 경유한다는 것을 깨달은 아브라함은 역 안내원에게 독일을 거치지 않고 폴란드로 가는 기차가 없느냐고 묻는다. 독일 땅을 밟지 않겠다는 것. 이를 듣고 기차가 독일에 도착했을 때 아브라함이 독일 땅을 밟지 않도록 도와주는 사람이 독일 여자 잉그리트(줄리아 비어홀드).       
마침내 로즈의 과거 자기 집에 도착한 아브라함은 수용소에서 나와 다 죽게 된 자기를 돌봐 준 친구를 찾아 문을 두드린다. 친구는 과연 아직 살아 있을까. 아브라함이 들고 온 옷은 그가 친구에게 주려고 가져왔다. 파블로 솔라즈 감독.  ★★★½ (5개 만점)
                                                            <한국일보 박흥진 편집위원/ hjpark1230@gmail.com>



네 번째 ‘스타 탄생’


10월 5일에 개봉되는 브래들리 쿠퍼의 감독 데뷔작으로 그와 가수 레이디 가가가 공연하는 뮤지컬 비극적 사랑의 이야기 ‘스타 탄생’(A Star Is Born^사진)은 1937년에 만들어진 동명영화의 세 번째 리메이크다. 쿠퍼는 이  영화를 자신의 감독 데뷔작으로 고른 이유를 “마음속 깊이로부터 애착이 가면서 나의 창작 혼에 불을 지펴줬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쿠퍼의 ‘스타 탄생’의 두 남녀 주인공은 모두 가수들이지만 원작의 두 사람은 할리웃의 스타들이다. 윌리엄 웰만이 감독하고 재넷 게이너와 프레데릭 마치가 급부상하는 신성 에스터 블로젯과 하락세로 접어든 빅스타 노만 메인으로 각기 나온다.
시골 처녀 에스터가 스타의 꿈을 안고 할리웃에 와 알코홀 중독자인 노만의 눈에 띠면서 배우로서의 길이 열리고 이름도 비키 레스터로 바꾼다. 둘은 사랑에 빠져 결혼하는데 노만은 술에 절어 팬들의 인기를 잃고 연기생활도 급추락하는 반면 비키의 인기는 급상승, 오스카 주연상을 받는다.
노만을 극진히 사랑하는 비키의 자비로운 마음으로 인해 노만은 한동안 금주하지만 배우로서의 자기 처지를 비관, 다시 술에 손을 댄다. 폐인이 되다 시피 한 노만을 돌보기 위해 비키가 인기정상의 자리에서 연기생활을 포기하기로 결심하자 이를 안 노만은 아내의 미래를 위해 태평양 물속으로 걸어 들어가 자살한다.
그 후 베키가 할리웃의 차이니즈극장에서 열린 자기 영화의 프리미어에 참석, 방송국 마이크를 통해 “안녕하세요 여러분, 저는 노만 메인의 부인입니다”라고 팬들에게 인사하는 장면이 눈시울을 붉게 만든다.
재넷과 마치의 연기가 좋은 훌륭한 드라마로 오스카 감독, 남녀주연 및 각본상 등 총 7개 부문에서 후보에 올랐으나 각본상(윌리엄 웰만이 공동 수상)만 탔다. 이 영화의 프리미어도 영화 속 내용처럼 차이니즈극장에서 열렸다.
이 영화 못지않게 잘 만들고 흥미진진한 것이 1954년에 나온 조지 큐커가 감독하고 주디 갈랜드와 제임스 메이슨이 나온 첫 번째 리메이크다. 내용은 원작과 거의 같은데 주연남녀를 비롯해 주제가등 총 6개 부문에서 오스카상 후보에 올랐으나 상은 못 탔다. 이 해 여우주연상은‘갈채’(The Country Girl)의 그레이스 켈리가 탔다. 갈랜드의 영화는 골든 글로브 남녀주연상(드라마 부문) 수상작이다.
갈랜드는 당시 약물중독과 체중문제 및 질병에 시달려 할리웃에서 ‘불안정한 배우’라는 딱지가 붙었을 때였다. 당초 노만 역이 제의됐던 케리 그랜트가 역을 거절한 이유 중 하나도 갈랜드의 이런 평판 때문이었다. 노만 역은 그랜트 외에도 험프리 보가트와 프랭크 시내트라에게도 제의됐으나 제작사인 워너 브라더스(WB)의 사장 잭 워너가 둘을 퇴짜 놓았다.
제1편과 제2편은 비평가들의 호평과 함께 흥행서도 성공했는데 서로 우열을 가리기가 힘들 정도로 준수하다. 다만 규모와 화려한 면에서는 WB의 첫 시네마스코프작인 갈랜드의 것이 앞선다. 그러나 나는 정감 있고 보다 인간적인 게이너의 것을 좋아한다.                     
1976년에 나온 ‘스타 탄생’의 두 번째 리메이크는 주인공이 배우가 아니라 가수들로 두 수퍼스타 가수이자 배우인 바브라 스트라이샌드와 크리스 크리스토퍼슨이 나온다. 두 사람의 극중 이름도 에스터 호프만과 존 노만 하워드로 개명됐다. 쿠퍼의 영화는 이 영화를 모델로 했음에 분명한데 촬영 시 스트라이샌드와 크리스토퍼슨이 세트를 방문 했다고 한다. 
스트라이샌드가 부른 주제가 ‘에버그린’은 오스카상을 탔고 빅히트를 했다. 이 영화는 골든 글로브 작품, 남녀주연(뮤지컬/코미디 부문) 및 음악과 주제가상을 탔다. 당초 남자주연으로 말론 브랜도와 가수 닐 다이아먼드 및 엘비스 프레슬리등이 물망에 올랐는데 프레슬리가 역에 큰 관심을 보였으나 크레딧에 자기 이름을 스트라이샌드 것 위에 올려달라는 등 요구 사항이 지나쳐 무산됐다. 프랭크 피어슨이 감독한 이 영화는 비평가들로부터 “두 가수의 허영의 산물”이라는 혹평을 받았으나 그렇게 나쁜 영화는 아니다.
세 번째 리메이크는 사실 2007년에 클린트 이스트우드가 감독할 예정이었으나 무산됐는데 이번에 쿠퍼의 집념에 의해 완성된 것이다. 처음에 쿠퍼가 레이디 가가를 주연으로 쓰려고 했을 때 제작사인 WB는 그의 연기력에 회의를 품어 가가는 자택에서 여러 시간에 걸친 스크린 테스트를 받고나서야 발탁됐다. 그런데 가가는 TV시리즈 ‘아메리칸 호러 스토리:호텔’로 골든 글로브 상을 탄바 있다. 
쿠퍼와 레이디 가가가 영육을 바치다시피 한 흔적이 역력한 이 영화가 과연 팬들의 얼마나 큰 호응을 받을 것인지 자못 궁금하다.                             
                                                              <한국일보 박흥진 편집위원/ hjpark1230@gmail.com>



2018년 9월 25일 화요일

콜렛(Colette)


콜렛(키라 나이틀리)이 방에서 작품을 집필하고 있다.

여류 문학가의 성적 자각과 독립
나이틀리의 단단한 연기 인상적


19세기 말부터 20세기 중반에 이르기 까지 활동한 프랑스의 센세이셔널 한 레즈비언 여류 문학가 콜렛의 전기영화로 차분하게 잘 만들어 어른들이 즐길만한 드라마다. 정석적으로 전기영화의 틀을 그대로 따르고 있는데 보기 좋은 것은 콜렛 역의 키라 나이틀리의 단단하면서도 열정이 가득한 연기다. 콜렛은 뮤지컬 영화로도 만들어진 ‘지지’(Gigi)의 작자다.  
남성 위주의 세상에서 소박한 시골 처녀가 자신의 문학적 재능과 성적 기호를 자각하면서 자아와 독립을 찾는 문학적이요 개인적인 성장기라고 하겠는데 따라서 콜렛의 인물과 성격 묘사는 잘 된 반면 그녀의 재능을 갈취하는 남편 윌리의 그것은 다소 빈약하다. 윌리 역의 도미닉 웨스트는 이를 알고 그 점을 보충이라도 하겠다는 듯이 ‘돼지’라 불릴만한 저돌적이요 밉상스런 연기를 씩씩거리며 해댄다. 
버건디 지방 시골에 사는 10대 소녀 콜렛(나이틀리)은 자기 부모의 친구인 나이 먹은 윌리(웨스트)의 언변과 사내다움에 이끌려 그와 헛간에서 정사를 나눈다. 그리고 둘은 결혼하고 콜렛은 파리로 이사한다. 윌리는 파리에서 악명 높은 바람둥이로 일종의 문학작품 장사꾼. 젊은 문학인들을 싸구려로 고용해 소설과 평론을 쓰게 하고 그 것을 자기 이름으로 출판한다. 그러나 그는 오입과 도박으로 돈을 탕진해 늘 가난에 시달린다. 
한편 콜렛은 파리의 문화와 패션을 수용하면서 서서히 도시 여인으로 변모한다. 궁색에 쪼들리던 윌리는 콜렛에게 그녀가 자기에게 들려준 소녀 시절의 얘기를 소설로 쓰라고 종용한다. 그래서 쓴 글이 ‘클로딘’인데 윌리는 글이 평범하다고 원고를 내팽개친다. 이로부터 몇 년 후 윌리는 콜렛의 원고를 다시 보고 콜렛의 재능을 새삼 깨달으면서 콜렛과 함께 원고 수정 작업에 들어간다. 내용을 보다 야하게 만들어 낸 것이 ‘학창 시절의 콜렛’으로 윌리의 이름으로 출판된 책이 빅히트를 한다. 이어 윌리는 콜렛에게 속편을 쓰라면서 콜렛을 방에 가두는데 콜렛은 군소리 없이 글을 써 역시 히트한다. 이 역시 윌리의 이름으로 출판된다.          
콜렛은 자기가 여자를 사랑한다는 것을  윌리에게 통보하는데 윌리는 놀란다기보다 오히려 콜렛을 격려한다. 그래서 만난 것이 미국서 온 젊은 바람둥이 여인 조지(엘리노어 탐린슨). 그런데 윌리도 이 여자와 놀아나면서 얄궂은 삼각관계가 이뤄진다. 그리고 콜렛은이 같은 관계를 소설로 쓴다. 역시 히트. ‘클로딘’ 시리즈는 연극으로 만들어져 역시 히트를 한다.  
콜렛의 다음 연인은 남자처럼 차려 입는 귀족 여인 미시(드니즈 가우). 이 여인과의 사랑이 진하고 아름답게 묘사된다. 그리고 콜렛은 연극무대에 자기가 직접 올라 연기생활을 즐기면서 순회공연에 나선다. 이 과정에서 콜렛은 윌리가 자기 작품의 판권을 마음대로 팔아버린 것을 알게 되면서 둘의 파란만장 했던 결혼생활에도 종지부를 찍기로 한다. 콜렛은 후에 가서야 자기 이름으로 책을 냈다. 워시 웨트모어랜드 감독. R. ★★★½ (5개 만점)   
                                                           <한국일보 박흥진 편집위원/ hjpark1230@gmail.com>



칠드런 액트(The Children Act)


아담은 자기를 살려준 판사 피오나(엠마 톰슨, 오른쪽)를 집요하게 쫓아 다닌다.


미성년 전담판사 역 엠마 톰슨
자비롭고 엄격한 연기 돋보여


오스카상 수상자인 엠마 톰슨의 자비롭고도 엄격한 연기가 돋보이는 어른들을 위한 영국영화로 제목은 미성년자에 관한 법령을 말한다. 일벌레 여판사의 가정문제와 법정 결정에 따른 후유증을 다루었는데 전반부가 멜로드라마가 되어버린 후반부보다 낫다.
판사가 불치병을 앓는 미성년자에 대한 결정을 내리기 전까지의 자신의 개인적 문제와 함께 이 결정을 둘러싼 긴장감이 막상 판결 이후에 거의 믿을 수 없는 뚱딴지같은 얘기로 비화해 어리둥절한데 이 같은 단점을 톰슨의 조용하면서도 강력한 연기가 보상해준다. 
처음에 런던의 미성년 문제 전담 판사인 피오나 메이(톰슨)가 갓난 샴 쌍둥이에 대한 분리수술 문제를 심리한다. 수술을 안 하면 둘 다 죽고 수술을 하면 하나는 사는데 부모는 수술을 반대한다. 이를 놓고 피오나는 나름대로 고민한다. 하나만 살린다 해도 다른 하나는 죽이는 것이어서 법을 따를 것이냐 도덕을 따를 것이냐 하는 것이다. 그러나 피오나는 법을 집행하는 사람이다. 
이에 대한 판결을 내리고 집에 돌아오니 아닌 밤중에 홍두깨라고 남편 잭(스탠리 투치)이 자기는 피오나를 사랑하지만 바람을 피우겠다고 선언한다. 사랑하기 때문에 알리고 바람을 피우겠다면서 둘이 지난 11개월 간 섹스를 하지 않았으며 애정의 표시라고 해야 고작해서 형식적인 볼 키스뿐이었다고 말한다. 그리고 피오나가 일벌레라고 비판한다. 
겉으로 보기엔 이상적이요 흠잡을 데 없어 보이는 피오나의 가정에 파고가 일어나는 것과 함께 피오나는 법정에서 중대한 재판을 주재하게 된다. 피오나는 개인 문제와 직무 문제 양쪽으로 시달리는데 맡은 일은 백혈병을 앓는 미성년자인 17세난 아담(피온 와이트헤드)의 수혈.
아담이 독실한 여호와의 증인 신도여서 수혈을 거부하는데 그의 부모도 마찬 가지다. 이를 둘러싸고 고발한 측과 아담네 변호사 간에 치열한 공방전이 벌어지는데 피오나는 판결을 내리기 전에 입원한 아담을 방문한다. 이 면담에서 아담은 수혈을 거부하면서도 피오나의 자비와 지혜에 깊이 감복한다.
그리고 피오나는 수혈 판결을 내린다. 수혈 후 아담은 일단 건강을 회복하는데 그가 너무 건강해보여 백혈병을 앓은 사람 같지가 않아 도무지 믿어지지가 않는다. 이어 아담은 피오나를 찾아가 고마움을 표시한다. 그런데 아담의 피오나에 대한 감정이 거의 집념과도 같은 사랑으로 모양을 바꾸면서 격식 있던 얘기가 엉뚱한 곳으로 간다. 아담이 피오나에게 한다는 소리가 자기 부모는 자기가 죽기를 바랐는데 당신이 날 살려주었다는 것이다. 
아담은 스토커처럼 피오나를 쫓는데 남편이 집을 나간 뒤 고독과 상심에 시달리는 피오나도 아담의 집착에 이끌린다. 이것은 완전히 신파다. 그리고 이틀 간 집을 나가 바람을 피운 잭이 귀가하면서 터무니없이 가정문제를 해결한다. 와이트헤드가 영화의 전반적 분위기에 어울리지 않게 너무 튀어나온다. 다시 한 번 강조할 것은 톰슨의 감지하기 힘들도록 섬세하고 아름다우면서도 다부진 연기다. 리처드 아이어 감독. 등급 R. ★★★½ (5개 만점) 
                                                            <한국일보 박흥진 편집위원/ hjpark1230@gmail.com>



‘로코와 그의 형제들’


내가 고등학생 때 지금은 없어진 서울의 중앙극장에서 이탈리아의 명장 루키노 비스콘티의 걸작 ‘로코와 그의 형제들’(Rocco and His Brothers^1960^사진)을 보면서 화면 속 모습에 단숨에 빨려들었던 여자가 프랑스 배우 아니 지라르도였다. 영화에서 창녀로 나온 지라르도는 마치 염가로 시장에 내놓은 매물 같은 모습이어서 음험토록 선정적이었다. 구름이 낀 얼굴에 드리워진 비굴한 색조를 띤 표정과 함께 방정치 못한 품행을 뽐내듯 과시하는 태도가 10대였던 내게는 과도하도록 육감적이었다.
후에 ‘표범’과 ‘이방인’ 및 ‘베니스에서의 죽음’과 같은 명작을 만든 비스콘티의 ‘로코와 그의 형제들’은 네오리얼리즘의 정수로 사실성과 약간 멜로성을 갖춘 감정을 잘 조화한 작품이다.
이탈리아의 남부에서 보다 나은 삶을 찾아 남부여대해 밀란으로 온 로코와 그의 네 형제 그리고 이들의 강인한 어머니의 이야기로 존 포드가 만든 ‘분노의 포도’를 연상케 한다. 밀란의 달동네와 거리 현장에서 찍은 주세페 로툰노의 탁월한 흑백촬영과 니노 로타의 만가풍의 비감한 음악과 함께 연기가 뛰어난 영화로 1960년 베니스영화제서 삼사위원 특별상을 탔다.
비스콘티가 가장 좋아하는 자기 영화로 그가 잘 다루는 현대화와 계급 간 갈등 및 가족의 결집력과 균열 등을 담대하게 서사적으로 다뤘는데 내가 이 영화에 심취했던 또 다른 이유는 로코 네 삶이 내가 어렸을 때 6.25를 겪은 우리 집 형편을 생각나게 했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더욱 애착이 간다.
영화는 이탈리아 남부의 시골에 살던 파론디 가족의 기둥인 어머니 로자리아(‘누구를 위하여 종은 울리나’로 오스카 조연상을 탄 카티나 팍시누)가 아들 넷과 함께 보따리를 싸들고 장남 빈첸조(스피로스 포카스)가 먼저 올라온 이탈리아의 북부 산업도시 밀란의 기차역에 도착하는 장면으로 시작된다.
강력한 모권을 쥔 로자리아의 둘째는 촌티가 흐르는 건강한 체격의 시모네(레나토 살바토리), 셋째는 착한 로코(알랭 들롱) 넷째는 평범한 치로(막스 카르티에) 그리고 막내는 아직 어린 루카(로코 비도라치). 밀란의 달동네 아파트를 전전하는 이들은 새로운 도시의 삶에 적응하면서 먹고 살려고 안간힘을 쓰는데 빈첸조는 중류가정의 딸 지네타(클라우디아 카르디나레)와 결혼한 뒤 자기 가족과 별 교류가 없다.
작품을 이끌어가는 사람은 로코와 시모네와 시모네가 사랑하는 창녀 나디아(아니 지라르도)로 두 형제간에 나디아를 두고 삼각관계가 형성되면서 끝내 피를 부른다. 시모네와 로코의 관계가 마치 카인과 아벨의 그 것을 닮았다.
시모네는 부와 명성을 빨리 거머쥘 수 있는 권투선수가 되라는 나디아의 종용에 따라 링에 오른다. 그리고 시모네는 나디아에게 창녀생활을 청산하고 자기 애인이 되어 달라고 요구하나 나디아는 이를 거절한다. 로코는 막일을 하다가 군에 입대, 투린에 주둔하는데 여기서 매춘 죄로 옥살이를 하고 나온 나디아를 만난다. 그리고 나디아는 로코의 순진성과 마음의 순결에 감동, 창녀 생활을 버리고 로코의 애인이 된다. 제대 후 로코도 권투선수가 된다. 가난한 사람들에겐 주먹과 몸이 자산이다.
그러나 시모네가 로코와 나디아의 관계를 알게 되면서 시모네와 그의 일당이 로코와 나디아에게 가공할 폭력을 행사한다. 시모네의 나디아에 대한 끈질긴 사랑을 깨달은 로코는 나디아에게 시모네에게 돌아가라면서 그녀와 헤어진다. 그 뒤 로코는 챔피언이 된다. 창녀생활을 다시 시작한 나디아는 자기에게 돌아오라는 시모네의 간청을 거부, 시모네는 나디아에게 피비린내 나는 폭력을 행사한다.
자동차공장에서 일하는 치로는 양가 규수와 결혼, 평온하게 살고 루카는 뒷전에서 형들의 삶을 관망하는데 마지막에 루카가 치로에게 고향으로 돌아가고 싶다고 말한다. 과연 루카가 돌아가고파 하는 고향은 옛 모습 그대로일까.
작품의 주인공인 로코는 선의 상징으로 가족의 복지와 폐인이 되다시피 한 시모네의 재생을 위해 희생을 감수한다. 밀란에서 태어난 귀족가문의 비스콘티는 파론디 가족을 통해 이탈리아 남과 북의 지방색과 차이 그리고 역경 속에서도 지켜내려는 가족의 결집력을 적나라하게 보여주고 있다. 이런 파론디네의 삶이 한국가족의 모습과 많이 닮았다. 
이 영화로 비스콘티는 세계적 명성을 얻고 당시만 해도 잘 알려지지 않았던 들롱과 살바토리와 지라르도 및 카르디나레 등이 빅 스타로 부상했다. 들롱의 차분한 연기도 좋지만 뛰어난 것은 금방 터질 것 같은 살바토리의 야수적 연기와 지라르도의 오만하고 육감적이요 가엽고 또 자기를 내버리는 듯한 연기다. 이 영화는 지라르도의 데뷔작. 통렬하고 감각적이며 감정적으로 상처를 내는 걸작으로 마일스톤 필름(Milestone Film)에 의해 복원판 DVD로 나왔다.       
                                                                <한국일보 박흥진 편집위원/ hjpark1230@gma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