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이야기

2018년 9월 4일 화요일

페퍼민트 소다(Peppermint Soda)


13세난 안은 1963-64년 학년 동안 가정과 학교생활을 통해 부쩍 성장한다.

이혼 부모와 번갈아 생활
10대 소녀의 감성·일상사
스냅샷 찍듯 아름답게 포착


어린 소녀의 마음을 참으로 솔직하고 사실적이며 또 곱고 순수하게도 그렸다. 가슴 속까지 싸하게 스며드는 신선한 소다 마시는 기분이다. 오스카 외국어 영화상 후보에 오른 ‘우리들끼리만’(Entre Nous·1983)을 감독한 프랑스의 여류 디안 퀴리스의 감독의 1977년 데뷔작인데 자신의 어릴 적 경험을 스크랩북을 들춰보는 식으로 그렸다. 
소녀의 가정과 학교생활 그리고 우정과 이성에 대한 호기심 및 별 것도 아니지만 당사자에겐 중요한 시시콜콜한 일상사를 스냅샷 찍듯이 묘사했는데 위트가 있고 매력적이며 어디 하나 흠이 없는 아담한 작품이다. 
13세난 소녀 안 웨베르(엘레오노어 클라웽)의 1963-64년 1년간의 이야기로 여름방학을 이혼한 아버지와 함께 보낸 뒤 어머니와 언니가 있는 집에 돌아와 학교를 다닌 뒤 다시 여름방학을 맞아 아버지에게로 가는 형식을 취했다. 안의 언니 프레데릭(오딜 미셸)은 동생에게 언니 노릇을 톡톡히 해 둘이 툭하면 다툰다. 안의 어머니(아눅 페르작)는 겉으로는 가끔 엄격하나 속은 다정한 사람으로 애인이 있는데 안은 이 애인에게 시큰둥한 태도다. 안은 어머니의 애인에 대해서 뿐만 아니라 딸들이 보고파 찾아온 아버지에게도 시큰둥한 태도다. 
프레데릭에겐 애인이 있는데 안은 언니에게 오는 연애편지를 몰래 뜯어본다. 그런데 프레데릭의 애인인 매우 조숙한 친구가 안을 몰래 연모한다. 이를 어쩌나 프레데릭이 애인에게 버림을 받으면서 프레데릭은 깊은 슬픔에 빠지는데 평소 언니와 싸움이 잦던 안은 가슴 아파하는 언니를 열심히 위로한다. 피는 못 속인다고 이로 인해 어니와 동생은 관계가 아주 돈독해진다. 
학교생활이 오밀조밀하게 묘사되는데 괴짜인 체육선생과 제자들을 무서워하는 수학선생 그리고 새디스트인 미술선생 등에 관한 스케치가 재미있다. 이와 함께 안과 그의 학교 친구들과의 관계가 상세하고 자상하게 그려진다. 
매우 직선적이요 있는 그대로 소녀의 일상과 속내를 그렸는데 진지하고 사실적이면서도 경쾌하고 가볍다. 순진하고 달콤하며 또 기분이 좋은 작품으로 클라웽이 귀염성 있으면서도 어른스런 성숙한 연기를 아주 잘 한다. 제목은 안과 친구들이 카페에 들려 시켰다가 언니에게 들켜 야단을 맞은 어른들이 마시는 음료수 이름이다. 프랑스의 명 촬영감독 필립 루슬로가 찍은 촬영도 곱다. PG. 복원판이 화인 아츠(8556 윌셔)에서 상영된다. ★★★★½(5개 만점)
                                                            <한국일보 박흥진 편집위원/ hjpark1230@gmail.com>



서칭(Searching)


실종된 딸을 찾으려고 몸부림치는 데이빗(존 조)은 딸의 컴퓨터를 뒤지면서 단서를 찾는다.

“사라진 딸 검색하라”주연 존 조 열연 돋보여 


참으로 기발 난 아이디어다. 영화 전체가 컴퓨터 화면 안에서 이야기 되는데도 조금도 어색하거나 지루하지 않고 보는 사람의 관심을 (컴퓨터) 화면 안으로 잡아끈다. 구글 광고를 만든 인도계 아네쉬 차간티의 감독(공동 각본) 데뷔작인데 컴퓨터에 중독된 현 시대에 잘 부응하는 영화다.
컴퓨터에 매달려 살면서 이로 인해 상호간 대화를 상실한 가족의 문제를 범죄영화와 서스펜스 스릴러 식으로 다룬 영화로 기술적인 면과 드라마를 잘 조화시키고 있다. 가족 드라마이자 컴퓨터 스릴러로 구성이 빈 틈 없이 튼튼하고 서서히 초조와 긴장감을 조성하는 연출 솜씨가 빼어나다.
재미있는 사실은 영화의 주인공이 한국인이요 그의 가정을 중심으로 이야기가 전개된다는 점이다. 존 조(감독은 조를 염두에 두고 각본을 썼다)가 주연하면서 거의 혼자서 영화를 짊어지다시피 하고 있는데 감정적으로 복잡다단하면서도 깊이 있는 연기를 해 작품에 무게를 주고 있다. 컴퓨터에 익숙한 젊은 사람들이 좋아 할 영화지만 컴퓨터의 ‘컴’자도 모르는 사람들도 즐길 수 있는 흥미진진하고 획기적인 작품이다.
몇 년 전에 상처를 한 데이빗 김(존 조)은 16세난 딸 마고(미셸 라)와 둘이 산호세에서 살고 있다. 데이빗 가족의 역사가 컴퓨터 화면을 통해 소개되는데 마고의 출산과 첫 학교 등교와 피아노 연주 그리고 데이빗의 아내 파멜라(새라 손)의 병과 사망 등이 파노라마처럼 지나간다.
물론 데이빗과 마고는 한 지붕 아래 살면서도 마고가 온라인과 페이스북에 매달려 살고 있어 서로 별 대화가 없는데 어느 날 마고가 밤이 늦도록 귀가를 하지 않으면서 이야기가 본격적으로 극적 흥미를 자아내기 시작한다. 데이빗은 마고의 피아노 선생에게 전화를 걸어 딸의 행방을 묻는데 선생은 마고가 지나 6개월간 교습을 받지 않았다는 말만 듣는다.
이 때부터 불안이 극도에 다다른 우선 경찰에 딸의 실종신고를 하는데 이를 수사하는 사람이 여자경찰 로즈메리(데브라 메싱). 역시 10대 아들을 둔 로즈메리는 남의 일 같지 않게 수사에 매달린다. 그리고 데이빗은 마고가 집에 놓고 간 랩탑을 열어 딸의 행적을 조사하면서 그 때까지 전연 몰랐던 딸의 타인과의 관계와 일상사 등에 관해 알게 된다.
데이빗은 랩탑을 통해 마고의 일상을 알게 되면서 놀라고 당황하고 또 좌절감에 빠지는데 이로 인해 그 동안 자기가 잘 알고 있는 줄 알았던 딸에 대해 전혀 무지였다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 시간이 갈수록 데이빗은 마고의 생존여부에 대해 신경이 곤두서 미칠 지경이 된다. 계속해 마고의 컴퓨터를 뒤지는 데이빗의 초조와 불안과 공포가 압도적이다.
플롯이 배배 꼬이면서 아슬아슬한 긴장감을 자아내는데 답답해질 수도 있는 영화를 감독은 유려하고 매끈한 솜씨로 컴퓨터 이미지를 생동감 넘치게 살려 그 한계를 뛰어넘고 있다. 다시 한 번 칭찬할만한 것은 존 조의 안으로 힘이 배인 뉘앙스가 다양한 연기다. PG-13. Screen Gems. ★★★★ (5개 만점)
                                                               <한국일보 박흥진 편집위원/ hjpark1230@gmail.com>


파피용(Papillion)


파피용(찰리 헌남-왼쪽)과 데가(라미 말렉)는 지옥같은 교도소에서 강인한 우정으로 맺어진다.

폭력적이고 사나운 서스펜스물로 재미 더해진 리메이크‘파피용’ 


스티브 맥퀸과 더스틴 호프만을 주연으로 프랭클린 J. 샤프너가 감독한 실화인 ‘파피용’(1973)을 어쩌자고 리메이크 하는 것일까 하고 의문했었는데 생각보다 훨씬 재미있고 잘 만들었다. 스타일이나 작품의 무게 면에서는 원작이 보다 낫지만 이 리메이크는 순수 오락영화로서 옛 영화를 본 사람은 물론이요 안 본 사람들에게도 충분히 어필할 것이다. 
전편보다 짧고(133분) 속도감 있고 직선적인데 본격적인 액션 서스펜스 영화로 폭력적이요 사납다. 극적으로도 역동적인데 두 주인공 역의 찰리 헌남과 라미 말렉의 연기도 훌륭하다. 왕년의 두 수퍼 스타가 주연해 호평과 함께 흥행서도 성공한 원작을 넘어서지는 못하나 흡인력 있고 군더더기 없이 재미있는 리메이크다. 
‘파피용’은 1930년대 남미의 프랑스령 가이아나의 교도소와 절해고도 ‘악마의 섬’에서 옥살이를 하다가 탈출해 베네수엘라 시민이 된 앙리 샤리에르(별명은 나비라는 뜻의 파피용)의 실화로 영화는 불굴의 인간 혼과 끈질긴 우정을 그렸다.
서론 식으로 1931년 파리에서 파피용(헌남)이 금고를 터는 장면으로 시작된다. 그러나 그와 그의 글래머 걸 애인 네넷(이브 휴선)의 호사스런 암흑가 생활은 파피용이 살인누명을 뒤집어 쓰면서 끝난다. 파피용은 가이아나의 교도소로 이송되고 여기서 그는 부자인 위폐범 루이 데가(말렉)를 만나게 된다.
험악한 교도소에서 호시탐탐 탈출 기회만 노리는 파피용은 많은 돈을 소지한 데가를 폭력으로부터 보호해주는 명목으로 탈출자금을 요구한다. 이로 인해 둘 사이에 우정이 영글게 된다. 둘은 교도소의 혹독하고 살벌한 삶을 견디어 내는데 파피용은 데가를 구타하는 간수를 때려 누였다가 2년간의 독방살이를 하게 된다.
2년 후 재회한 파피용과 데가는 다른 죄수 2명과 함께 탈출에 성공 콜럼비아에 도착하나 수녀의 고발로 다시 가이아나로 이송됐다가 ‘악마의 섬’으로 이감된다. 여기서도 끊임없이 탈출의 꿈을 저버리지 않는 파피용은 바다의 조류를 이용해 탈출한다. 데가는 섬에 남기로 결정한다. 
보기에 끔찍한 폭력이 있지만 손색없이 잘 만든 영화로 헌남과 말렉이 호연하고 둘 간의 호흡도 잘 맞는다. 또 세트와 촬영과 음악 등도 좋다. 마이클 노어 감독. R. Bleecker Street. ★★★½(5개 만점)
                                                            <한국일보 박흥진 편집위원/ hjpark1230@gmail.com>


아시안들이 온다


아시안 감독이 연출하고 전 배역이 아시안들인 로맨틱 코미디 ‘크레이지 리치 아시안즈’(사진)가 지난 15일에 개봉돼 예상을 앞지르고 주말까지 5일간 총 3,540만 달러의 흥행수입을 올렸다. 이어 개봉 2주째에도 주말 3일간 총 2,500만 달러의 수입을 올리면서 연 2주 박스오피스 탑을 기록했다. 개봉 12일째인 27일 현재 총 7,680만 달러의 수입을 낸 것이다. 영화의 총 제작비는 3,000만 달러다. 이런 기록은 아시안 배우들을 기용해 할리웃의 메이저가 만든 영화로선 사상 초유의 기록이다. 할리웃이 이 영화 전에 아시안 감독과 배우들을 써 만든 영화는 1993년에 나온 ‘조이 럭 클럽’이었다.
중국계 존 추가 싱가포르 태생의 중국계 케빈 콴의 베스트셀러 동명소설을 바탕으로 만든 ‘크레이지 리치 아시안즈’는 사랑과 가족에 관한 이야기. 주연남녀로는 영국인과 말레지아인을 부모를 둔 헨리 골딩과 대만계인 콘스탄스 우가 나온다. 이 밖에도 한국계인 켄 정과 아콰피나(아버지는 중국인, 어머니는 한국인)와 함께 각기 말레이지아와 중국 태생의 베테런들인 미셸 여와 리사 루를 비롯해 중국계 배우들이 대거 출연한다.
영화가 흥행서 성공한 이유 중 하나는 그 내용이 난관을 극복한 사랑의 승리와 가족의 중요성을 강조한 보편적인 것이기 때문이다. 영화를 배급한 워너 브라더스에 따르면 첫 주말 관객 중 아시안이 38%, 백인은 41%, 라티노가 11% 그리고 흑인이 6%로 집계된 것만 보아도 영화가 인종을 초월한 보편성을 띠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비평가들의 격찬을 받은 이 영화가 흥행서 대박을 터뜨리자 지금 할리웃에선 ‘아시안 돌풍’이 휘몰아치고 있다. ‘오스카는 백인 일색’이라는 비판을 받은 할리웃에서 아시안 영화인들은 개밥의 도토리 같은 존재나 다름없는 것이 현실이다. USC가 발표한 바에 의하면 2017년 흥행 탑 100편의 영화 중 말하는 아시안 배우의 역은 달랑 4.8%였다.
CBS-TV의 인기 수사물 ‘하와이 화이브-0’에서 두 백인 배우 알렉스 오‘러플린과 스캇 칸과 함께 동등한 입장에서 수사요원으로 나온 한국계 대니얼 대 김과 그레이스 박이 백인 배우들보다 출연료가 훨씬 적다는 것을 알고 도중하차한 것만 봐도 할리웃의 유색인종에 대한 차별대우를 잘 알 수 있다.
그러나 ‘크레이지 리치 아시안즈’가 빅 히트를 하면서 할리웃은 이제야 비로소 관객들이 원하는 것은 다양성이라는 점을 깨닫고 있다고 전문가들은 말한다. 다양성이야 말로 좋은 사업이라는 것이다. 현재 상영중인 스릴러 ‘서칭’에 주연한 한국계 존 조도 인터뷰에서 “할리웃은 고정관념에 사로잡혀 관객들이 다양성을 원한다는 것을 모르고 있다”고 말했다. 그런데 ‘서칭’의 감독도 아시안인 인도계 아네쉬 차간티다.
‘크레이지 리치 아시안즈’의 성공으로 콴의 시리즈 두 번째 소설인 ‘차이나 리치 걸’도 영화로 만들어진다. 또 폭스 2000는 K-팝 경연대회에 나간 아시안 아메리칸 대학생의 얘기를 영화화 할 예정이고 일부 네트웍들도 전 배역이 아시안인 시리즈 파일롯을 제작한다고 발표했다. 따라서 할리웃에서 아시안 영화인들이 활동할 수 있는 문이 보다 활짝 열리고 있다는 것이다. 
존 추 감독도 그의 영화의 성공으로 자기에게 아시안 배우들을 기용한 작품을 만들자는 제의가 답지하고 있다면서 “내 영화에 나온 아시안 배우들도 반드시 아시안 얘기가 아닌 다른 영화에의 출연 제의를 받고 있다”고 말했다. 존 추는 얼마 전 동굴에 갇혔다 구조된 태국소년들의 얘기를 영화화 할 예정이다.
할리웃이 이제 더 이상 아시안을 못 본 척 하기가 어렵게 된 또 다른 이유는 아시안 시장의 크기 때문이다. 할리웃 영화의 두 번째로 큰 시장은 중국으로 몇 년 후면 북미시장을 제치고 제일 큰 시장이 될 것으로 전문가들을 내다보고 있다. 그리고 중국 자본의 할리웃에 대한 투자도 증가일로로 요즘 웬만한 할리웃 영화에는 중국배우들이 나오는 것이 다반사다. 지금 히트 중인 거대한 식인 상어가 여름 바다에서 난리법석을 떠는 ‘멕’이 그 한 예다.
할리웃이 한국의 수퍼스타 이병헌을 기용하고 서울에서 촬영을 하면서 한국배우를 단역으로 쓰는 것도 할리웃 영화를 사들이는 한국시장의 크기 때문이다.
‘크레이지 리치 아시안즈’의 성공은 할리웃으로 하여금 새 음성과 관점을 경청하고 목격하는 계기가 될 것으로 보인다. 일종의 경종을 울린 셈이다. 그래서 지금 할리웃에서는 이 영화로 인해 전 세계에 어필할 수 있는 아시안 영화들을 보다 많이 만들 수 있는 완전히 새로운 기회가 왔으며 할리웃의 기상이 이미 변화하고 있다는 다소 이른 듯한 낙관론이 돌고 있다.
이런 낙관론에도 불구하고 한 가지 잊지 말아야 할 것은 할리웃의 철칙은 오로지 흥행 성공이라는 점이다. 앞으로 아시안 영화들이 흥행서 실패하면 할리웃은 잽싸게 다시 옛날 공식으로 돌아갈 것이 뻔하다.
                                                               <한국일보 박흥진 편집위원/ hjpark1230@gmail.com>


2018년 8월 21일 화요일

‘크레이지 리치 아시안즈’ (Crazy Rich Asians)

아들 닉의 애인 레이철을 맞이하는 엘리노어(왼쪽)의 표정에 온기가 감돌지 않는다.

재벌가 아들과 우여곡절 사랑 화사하게 묘사 ‘수작’


할리웃 메이저가 25년 전에 아시안 감독과 아시안 배우들을 사용해 만든 ‘조이 럭 클럽’ 이후 처음으로 아시안 감독(존 추)과 아시안 배우들을 동원해 만든 막대한 재산과 편견을 극복한 사랑의 승리의 코미디 드라마로 현기증이 날 정도로 화사하고 재미있다. 
둘 다 뉴욕에 사는 싱가포르의 중국계 거대 부동산 재벌집 아들과 가난한 홀어머니 밑에서 자라 성공한 중국계 딸과의 우여곡절이 심한 사랑의 얘기인데 원작은 싱가포르 작가 케빈 콴의 베스트셀러. 가족과 전통과 명예에 집착하는 아시안들에게 특히 어필할 영화지만 내용은 보편적인 것이다. 
싱가포르에서 찍은 초현대식 건축과 의상과 음식 그리고 장식 등이 눈부신 칼라 촬영에 의해 화면을 야단스러울 정도로 찬란하게 장식하는데 이와 함께 주인공의 일가친척과 친구 등 수 많은 배역이 나와 누가 누구인지를 잘 구별하지 못할 정도다. 그러나 개개인의 묘사가 뚜렷하고 부와 호사의 극치를 보여주면서도 이를 천박하게 처리하지 않은 감독의 재치 있는 솜씨와 배려가 가상하다.
레이철 추(콘스탄스 우)는 2세 때 홀어머니와 함께 미국으로 이민 와 NYU의 경제학 교수가 된 아름답고 독립심 강한 여자. 그의 애인은 싱가포르의 엄청난 재벌집 아들 닉 영(헨리 골딩)인데 닉은 레이철에게 자기가 부자라는 것을 숨긴다. 닉의 절친한 친구 콜린(크리스 팽)이 자기 결혼식에 닉을 들러리로 서달라고 부탁하면서 닉은 레이철에게 동행을 제의한다. 
싱가포르에 도착한 레이철은 궁궐 같은 저택에 사는 닉의 가족이 동양 굴지의 부자라는 것을 알고 놀라고 당황한다. 그런데 레이철을 예의를 갖춰 맞는 닉의 어머니 엘리노어(미셸 여)의 표정에 온기가 안 돈다. 엘리노어는 미국에서 홀어머니 밑에서 가난하게 자란 미국화한 레이철을 중국가족의 전통을 이해 못하는 여자라고 치부한다. 이와 함께 엘리노어의 친척들과 이웃 가십꾼들은 레이철이 닉의 재산을 노리는 여자라고 입방아들을 찧는다. 
레이철이 닉의 가족들에게 일일이 소개되면서 마지막으로 만나는 사람이 닉의 근엄한 친할머니 아 마(리사 루-필자가 속한 할리웃 외신기자협회<HFPA> 회원). 아마는 처음에는 레이철을 친절하게 맞는다. 
물 떠난 물고기 신세처럼 된 레이철의 싱가포르 문화와 풍습 안내자요 위로가 되는 사람이 미국에서 함께 대학을 다닌 졸부 아버지(켄 정이 웃긴다)를 둔 딸 펙 린 고(한국계 어머니와 중국계 아버지를 둔 래퍼 코미디언 아콰피나가 다른 배우들을 제치고 영화를 훔치다시피 한다).
연일 파티와 대연회가 열리고 장소도 도시와 휴양지 섬 등으로 이동하면서 눈요기 거리를 충분히 제공한다. 이런 상황 하에서 레이철은 자기를 수용 못하는 닉의 가족으로 인해 깊은 좌절감에 빠져 닉을 떠날 생각마저 한다. 그러나 참 사랑은 모든 악조건을 이기는 법. 
가족과 사랑의 중요성을 티 나지 않게 강조한 흥미진진하고 진지한 작품으로 연기들이 다 좋은데 특히 여의 엄격하면서도 자비로운 연기와 함께 우의 지적이요 민감하며 또 감정적인 연기가 돋보인다. 우와 골딩의 콤비도 일품. 연출이 물 흐르듯 매끄럽고 촬영과 음악도 좋다. 
PG-13 WB. ★★★★ (5개 만점) 
                                                             <한국일보 박흥진 편집위원/ hjpark1230@gmail.com>



우리는 짐승들(We the Animals)

세 형제 중 막내인 조나(왼쪽)는 엄마와 감정적으로 깊은 관계를 맺는다.

10대 눈에 비친 어른들 삶·형제애·동성애… 시적이고 아름답게 그려



정열적으로 서로를 사랑하나 때론 폭력까지 동원해 싸우는 부모를 둔 어린 세 형제의 눈 그 중에서도 10세짜리 막내의 눈으로 본 어른들의 삶과 형제애 그리고 육체적 성장과 성적 각성(동성애)을 거칠도록 시적이요 거의 초현실적으로 아름답고 강렬하게 그린 보석 같은 소품이다. 
지극히 절제된 영화로 별 얘기가 있는 것은 아니나 환상적인 촬영과 애니메이션을 동원해 표현한 아이의 내면의 온갖 생각과 감정이 피부가 상하도록 까칠까칠 하면서도 서정적으로 그려진 인상파 화가의 한 폭의 수채화와도 같은 영화다. 
벗은 육체들이 치열하게 부딪치고 생명력을 과시하는데 특히 경탄스런 것은 세 아이들로 나오는 비배우 소년들의 자연스런 연기다. 그야말로 짐승처럼 뛰고 다투고 도둑질 하고 또 부모의 사랑을 갈구하고 반항하는데 이들이 나오는 첫 장면부터 화면 안으로 빨려들게 된다. 그러나 아이들이 중요한 배역을 맡았지만 실제로 또래 아이들이 보기엔 성적 장면(TV화면이지만)이 많다. 
영화는 10대 안팎의 세 형제 중 막내인 조나(에반 로사도)의 눈과 귀와 내레이션에 의해 서술된다. 뉴욕 주 북부 시골에서 백인 엄마(쉴라 밴드)와 푸에르토 리칸 아빠(라울 카스티요)와 사는 세 형제 매니(아이재이아 크리스찬)와 조엘(조시아 게이브리엘) 그리고 조나는 “우리는 형제다”라며 똘똘 뭉친 아이들. 엄마는 소다공장에서 일하나 아버지는 이 직업 저 직업을 전전한다. 영화는 이들 부부를 통해 앞날이 막막한 소시민들의 삶도 얘기한다.
엄마와 아빠는 뜨겁게 사랑하나 좌절감에 의해 자주 다투는데 그러면서도 엄마는 과거가 험남한 아빠의 육체와 성적 매력에 사정없이 빨려든다. 아이들은 이런 부모의 사랑과 애정 행위와 폭력과 화해를 순진한 눈으로 보면서 자란다. 아이들 중 위로 둘은 아버지에게 더 친근감을 느끼나 감수성이 예민한 조나는 어머니와 더 가깝다. 얘기의 부분 부분이 조나가 보고 느낀 것을 노트에 그림과 함께 빽빽이 적은 글로 서술된다. 
세 형제인 어린 아이들의 우정과 분노와 좌절 그리고 희망과 육체적 감정적 성장 및 막내의 성적 각성이 사랑하고 다투고 헤어졌다 화해하는 부모인 어른들의 삶과 교직되면서 정교하게 서술된다. 특히 훌륭한 것은 시골의 자연 풍경과 함께 클로스업을 자주 이용해 인간의 육체와 감정의 동물적인 근접성을 과시하면서 아울러 조나의 상상을 환상적인 형식으로 표현한 아름다운 촬영이다. 음악도 좋다. 원작은 저스틴 토레스의 자신의 성장기를 쓴 동명 소설. 제레마이아 제이가 감독. R. The Orchard. ★★★½(5개 만점)
                                                               <한국일보 박흥진 편집위원/ hjpark1230@gmail.com>



‘마키오카 자매들’


내가 지금까지 본 영화들 중에서 가장 아름다운 영화를 딱 하나만 고르라면 난 서슴없이 곤 이치가와 감독이 만든 ‘마키오카 자매들‘(The Makioka Sisters^1983^사진)을 고르겠다. 2차대전의 전운이 감도는 1938년 몰락해가는 오사카의 갑부 집 네 딸들에 관한 가족 멜로드라마로  화사하게 아름답고 향수감이 고즈넉하니 배인 작품이다.
원작은 주니치로 다니자키의 ‘세설’(Sesameyuki)로 제목은 봄철 가지에서 눈처럼 떨어져 내리는 사쿠라꽃을 말한다. 그리고 제목에서 ‘눈’이라는 뜻의 ‘유키’는 네 자매 중 주인공이라 할 수 있는 셋째인 유키코를 말한다.
소설은 2차대전이 한창이던 1943년에 출판돼 독자들의 큰 인기를 끌자 검열당국에 의해 ‘온건하고 나약하며 천박하도록 개인적인 여자의 삶을 그렸다’는 이유로 출판이 금지됐다. 작품 인물과 사건들은 작가의 아내를 비롯한 주변 사람들과 일들을 바탕으로 구성됐는데 소설은 이전에도 두차례나 영화화 했었다. 인본주의자였던 이치가와의 다른 영화들로는 반전영화들인 ‘버마의 하프’와 ‘들불’ 그리고 기록영화 ‘도쿄 올림피아드’ 등이 있다.
봄비가 촉촉이 내리는 가운데 사쿠라꽃이 활짝 핀 숲을 카메라가 롱샷으로 잡으면서 시작된다. 첫 장면에서 수줍은 기색의 화사한 사쿠라꽃을 보여준 카메라는 이어 눈 시린 푸른 기모노 차림에 입술에 새빨간 루즈를 바른 네 자매 중 둘째인 사치코(요시코 사카무)의 얼굴을 화면 가득히 클로스업 한다.
사치코를 비롯해 네 자매 중  첫째인 추루코(게이코 기시)와  유키코(사유리 요시나가) 그리고 막내 다에코(유코 고테가와) 및 사치코의 남편 데이노수케(코지 이시자카)는 연례 사쿠라 꽃 구경차 나들이를 나선 것. 나는 이 장면을 보면서 내가 어렸을 때 봄이 오면 모처럼 주말에 어머니와 여동생과 함께 도시락을 싸들고 발 디딜 틈 없이 인파로 복작대던 창경원에 가서 사쿠라꽃 구경을 하던 옛날을 떠올렸었다.
추루코와 사치코는 시집을 갔으나 수줍음 많고 보수적이며 과묵한 유키코는 나이 서른이 되었는데도 아직 미혼이어서 언니들의 속을 태운다. 유키코는 여러 번 선을 보긴 하지만 매번 퇴짜를 놓는다. 그런데 데이노수케는 순수한 유키코를 연모한다.
넷 중 가장 신식이요 반항적인 다에코는 한 때 애인과 사랑의 줄행랑을 놓은 ‘모던 걸’로 집안 전통상 언니가 시집을 가기 전에는 결혼을 할 수가 없어 아예 시집 갈 생각을 포기한 상태. 다에코는 마키오카 가문의 미운 오리 새끼.
마키오카 네는 과거 부상으로 크게 성공, 부와 호사를 누리던 집이었으나 아버지가 사망하면서 가운이 기울어가는 처지. 영화는 시대와 사회상과 가치관 및 가족의 전통 등이 변화하고 있는 역사의 전환점에서 구시대를 상징하는 네 자매가 이런 변화에 어떻게 대응하는가를 계절의 변화에 따라 고요하고 밀도 있게 그리고 있다. 네 자매는 몰락한 귀족사회를 상징하는데 이들의 현대화의 물결 앞에서 과거를 지키려는 안쓰러운 모습이 자매들의 내밀하고 세세한 일상사를 통해 거의 긴장감 감돌도록 무게 있게 묘사된다.
과거에 사는 자매들의 얘기이니만큼 작품 전체에 애잔한 노스탤지어가 고여 있다. 품위와 자존을 잃지 않으려는 이들의 권위의식과 체면과 신분유지의 꼿꼿함이 의연한데 이런 자매들의 양반의식은 이들이 입고 있는 화려한 기모노에 의해 함축성 있게 상징된다.
영화는 기모노와 오사카에 바치는 헌사와도 같다. 카메라가 형형색색의 무늬와 색깔로 물든 기모노를 관상하면서 아울러 이를 입은 아름다운 자매들의 얼굴과 자태를 우아하게 포착한 촬영이 관능적이다. 이치가와는 색깔을 마치 무지개를 채색한 신의 조화처럼 부리고 있다. 봄의 분홍 일색인 사쿠라꽃들과 붉고 노란 가을 단풍 그리고 사방에 가득히 내리는 백설이 마치 살아 숨 쉬는 풍경화처럼 아름답고 몽롱하게 감각적이다.
끝에 도쿄로 전근하는 남편 다추오(‘담포포’ 등을 감독한 주조 이타미)를 따라 이사를 가기로한 추루코의 독백이 우리들의 삶을 잘 대변하고 있다. “계절도 변하고 일들도 벌어지지만 결국 변하는 것은 없구나.” 기품 있고 조락의 비감이 깃든 고운 영화로 가족을 한데  묶는 사랑을 강조한 작품인데 개봉이 되면서 일부 비평가들에 의해 ‘기모노 쇼’라는 평을 들었다. 그런데 이치가와는 기모노상의 아들이다.
‘마키오카 자매들’이 개봉 35주년을 맞아 22일 하오 7시 로열(11523 Santa Monica Blvd.)과 플레이하우스 7(673 E. Colorado Blvd. Pasadena) 및 타운센터 5(17200 Ventura Blvd, Encino) 등에서 상영된다. (310)478-3836. 
                                                              <한국일보 박흥진 편집위원/ hjpark1230@gma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