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이야기

2018년 5월 1일 화요일

불복종 (Disobedience)


에스티(왼쪽)와 로닛이 사람들의 눈을 피해 밀회 장소를 찾아가고 있다.

성적 욕망과 믿음 사이 고뇌... 긴장감 있고 깊이 있게 고찰


 ‘글로리아’(Gloria)와 올 해 오스카 외국어 영화상을 받은 ‘멋있는 여자’(A Fantastic Woman)에서 여성의 성적 갈망과 심리를 깊이 고찰한 칠레 감독 세바스티안 레리오의 첫 영어영화로 보수 유대교 신도들의 사회 속에서 개인의 자유를 갈망하는 동성애자와 오래간만에 이 여인을 만난 옛 연인의 육체적 정신적 몸부림을 다룬 심오하고 자비로운 작품이다.
인간의 자유의지 대 신앙의 대결과 함께 욕망과 믿음 그리고 사랑을 다룬 얘기로 전반부는 다소 느리고 지나치게 엄격하지만 후반에 들어 서서히 작품에 불길이 당겨지면서 서스펜스 영화를 보듯이 진한 긴장감을 느끼게 된다.
특히 이 영화에서 볼만한 것은 세 주인공의 연기. 오래간만에 재회해 사랑의 불꽃을 다시 점화시키는 두 여인 역의 레이철 바이스와 레이철 맥애담스 그리고 이들 여인 사이에서 인간적 정신적 갈등을 심하게 겪게 되는 남자 역의 알레산드로 니볼라의 연기가 깊이와 무게를 가득히 지녔다.     
오래 전에 런던의 보수 유대교 신자들의 사회를 떠나 뉴욕으로 온 사진사 로닛(바이스)은 막강한 힘을 지닌 유대교 목사인 아버지가 사망했다는 소식을 받고 런던으로 온다. 왜 로닛이 런던을 버렸는지에 대한 이유는 명확히 전모가 밝혀지지 않으나 영화가 진행되면서 조금씩 알게 된다.
영화 처음에 로닛의 아버지가 교회에서 인간의 자유와 신앙에 관해 설교를 하다가 쓰러지는데  로닛은 아버지의 부음을 듣고 충격에 빠져 긴 산책과 바에서의 음주 그리고 술에 취한 채 바의 화장실에서의 남자와의 섹스로 슬픔을 달랜다.
고향에 돌아온 로닛을 처음 맞는 사람이 로닛의 어릴 적 친구로 자기 아버지의 후계자로 꼽히는 도빗(니볼라). 그러나 도빗은 자기 가족과 커뮤니티를 버린 로닛을 다소 차갑게 맞는다. 그리고 로닛의 친척과 친지 및 동네 사람들도 “오래 살기를 바란다”라는 말 한마디로 매우 냉랭하게 로닛을  대한다. 그러나 이런 것보다 로닛이 가장 큰 충격을 받게 되는 것은 역시 어릴 적 친구인 에스티(맥애담스)를 만나면서다. 뜻 밖에도 에스티가 도빗의 아내가 된 것. 적극적인 로닛과 소심한 에스티는 학생 시절 연인 사이였다.           
로닛과 에스티가 만나 대화를 나누면서 로닛은 에스티가 경직된 종교적 분위기 속에서 남편과 사랑 없는 섹스를 하면서(매주 금요일 의식처럼 치른다) 질식할 것 같은 삶을 살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된다. 그러나 도빗은 선하고 연민의 마음을 가진 좋은 사람이다. 그리고 둘이 만남을 거듭하면서 사랑이 재점화되고 이윽고 둘은 골목에서의 키스에 이어 호텔방을 빌려 뜨거운 성애를 나눈다. 둘의 섹스신이 마치 짐승들의 그것처럼 매우 노골적이요 뜨겁고 지극하다.
그리고 도빗의 아기를 가진 에스티는 남편에게 “날 자유롭게 해달라”고 요구한다. 아내의 요구에 대한 대답을 자기에게 주어진 목사의 직무를 거절하는 답변으로 대신하는 도빗의 절규에 가까운 설교가 가슴을 강하게 친다. 바이스와 맥애담스의 대조적인 연기도 좋지만 거의 충격적인 느낌을 주는 것은 니볼라의 안으로 꾹꾹 누르는 내적 폭발력을 지닌 연기다. ★★★½ (5개 만점)
                                                           <한국일보 박흥진 편집위원/ hjpark1230@gmail.com>





출생 100주년 잉그마르 베리만 대표작 상영


저승사자(왼쪽)와 기사가 체스를 두고 있다. ‘제7의 봉인’.

LACMA 빙극장서 ‘제7의 봉인’ 등 5월 한달 간


LA카운티 뮤지엄 내 빙극장(윌셔와 페어팩스)은 5월 1일부터 29일까지 매주 화요일 오후 1시에 영혼과 믿음, 고독과 도덕 등 삶의 심오한 문제들을 탐구한 스웨덴의 거장 잉그마르 베리만의 영화를 상영한다. 올 해 출생 100주년을 맞는 베리만을 기리는 행사로 그의 영화들은 6월 말까지 빙극장 외에도 LA의 여러 극장에서 상영된다.

*1일
▲‘모니카와의 여름’(Summer with Monica·1953)
근로자 계층의 두 젊은 남녀의 여름 철 짧은 사랑을 민감하게 그렸다. 공격적인 젊은 여자와 아직도 소년 같은 젊은 남자가 사랑하고 아기를 가지지면서 결혼한다. 단순하고 맑고 아름답다.

*8일
▲‘제7의 봉인’(The Seventh Seal·1957)
십자군 전쟁에 나갔다가 모든 것에 실망한 채 귀가하던 기사(베리만의 단골 배우 맥스 본 시도)가 도중에 검은 망토를 입은 저승사자를 만난다. 기사는 자신의 죽음을 잠시 유예해준 저승사자와 체스를 두면서 삶의 신비에 대해 생각한다. 롱 샷으로 찍은 흑백 라스트 신이 경이롭다. 베리만을 국제적으로 알려준 불후의 명작이다. (사진)

*15일
▲‘산딸기’(Wild Strawberries·1957)
스톡홀름의 노 교수가 명예박사 학위를 받으러 차를 몰고 가면서 자기 삶의 실망스러운 것들을 회고한다. 플래시백을 효과적으로 사용한 감정적으로 강렬한 충격을 주는 영화로 역시 베리만의 단골 배우인 교수 역의 빅토 쇼스트롬의 연기가 훌륭하다. 

*22일
▲‘마술사’(The Magician·1958)
19세기. 최면술사이자 마법사인 알베르트 에마누엘 보글러(맥스 본 시도)가 자신의 순회공연단을 이끌고 한 마을에 도착하자 마을 사람들이 보글러가 엉터리 가짜라는 것을 밝혀내려고 한다. 그러나 보글러가 마을 주민들보다 한 발 앞서 간다.   .

*29일
▲‘처녀의 샘’(The Virgin Spring·1960)
중세. 신앙심 깊은 시골 농가의 한 가족의 딸이 약탈자들에 의해 겁탈당한 뒤 살해되자 딸의 아버지(맥스 본 시도)가 이들에게 가차 없는 보복을 시도한. 오스카 외국어 영화상을 탄 심오하고 아름다운 우화.
                                                             <한국일보 박흥진 편집위원/ hjpark1230@gmail.com>



최은희


한국영화계를 대표하던 최은희씨가 16일 92세로 별세했다. 최씨는 감독이자 남편인 한국영화계의 거목 신상옥과 함께 1960년대 한국영화의 르네상스를 이끈  큰 별이었다. 최씨는 생애 총 130여 편의 영화에 나왔는데 여러 편이 신감독의 작품. ‘꿈’ ‘춘희’ ‘로맨스 빠빠’ ‘지옥화’ ‘상록수’ ‘사랑방 손님과 어머니’ ‘성춘향’ 및 ‘빨간 마후라’ 등이 그 대표작들이다.
많은 영화들 중에서 최은희 하면 대뜸 생각나는 것이 ‘성춘향’(1961^사진)이다. 나는 고등학교 2학년 때 학칙을 무시하고 이 영화를 명보극장에서 봤는데 극장은 초만원을 이뤘었다. 총천연색 화면에 펼쳐지는 춘향과 이(몽령)도령의 계급을 무시한 파란만장한 사랑이 재미 만점이었는데 당시 30대의 최씨가 전형적인 한국 미인이긴 했지만 춘향이로선 너무 늙었다는 느낌을 떨쳐버릴 수가 없었다. 도령 역의 김진규도 마찬가지.
그런데 이 영화에서 춘향과 도령보다 더 화면을 압도했던 배우는 변사또역의 이예춘이다. 호색한인 사또가 자기 집 마당에 관기들을 일렬횡대로 세워놓고 수청 들 여자를 고르면서 하나도 마땅한 것이 없다고 인상을 쓰며 상소리를 섞어 투덜대던 모습이 기억에 생생하다. 이와 함께 역시 나이는 먹었지만 방자역의 허장강과 향단역의 도금봉의 밀고 당기는 애정의 줄다리기도 볼만했다.
‘성춘향’하면 또 하나 못 잊을 사건이 1960년대 최고의 스타 중 하나였던 김지미가 나온 ‘춘향전’이다. 이 영화는 당시 김씨의 남편 홍성기가 감독, ‘춘향전’과 동시에 국제극장에서 개봉했는데 흥행서 참패했다. 30대였던 최씨에 비해 20대였던 김씨가 춘향역에는 더 어울렸지만 흥행 실패의 큰 까닭 중 하나는 도령역에 신인인 신귀식을 쓴 것. 그리고 방자역의 김동원과 향단역의 양미희도 허장강과 도금봉 콤비에 비하면 한 수 아래였다.
1961년은 신상옥-최은희 콤비의 최고의 해로 둘은 이 해 심훈의 계몽소설이 원작인 ‘상록수’와 ‘연산군’ 및 주요섭의 단편소설이 원작인 ‘사랑방 손님과 어머니’(원제 ‘사랑 손님과 어머니’)도 함께 만들었다. ‘사랑 손님과 어머니’는 주요섭의 또 다른 단편 ‘아네모네의 마담’과 함께 내가 고교시절 애독한 글이다.
내용은 어린 딸(전영선)을 둔 미망인인 어머니(최은희)가 사랑방에 하숙을 하는 남자(김진규)에게 애정을 느끼지만 재혼은커녕 연애조차 하지 못하고 생이별을 해야 하는 과거 한국의 모든 미망인들의 한숨과도 같은 이야기다. 나는 이 영화를 보면서 손 한번 제대로 못 잡아보고 헤어져야하는 사랑방 손님과 어머니가 안타까워 속을 태웠었다.
지금도 기억에 남는 장면은 어머니가 사랑에 타들어가는 속을 진화시키려고 피아노로 쇼팽의 ‘즉흥 환상곡’을 치는 모습. 소설도 그렇지만 신감독은 감상성을 잘 조절해가며 은근하고 애틋한 감정의 여운을 남기는 연출솜씨를 보여주었다.
총천연색인 ‘연산군’에서 폭군 연산군으로는 후에 ‘빨간 마후라’에서도 최씨와 공연한 신영균(90)이 나와 열연을 했는데 역시 명보극장에서 봤다. 표가 완전 매진이었고 영어자막이 없었는데도 외국인까지 관람하는 대성황을 이뤘었다.
단아한 이미지의 최씨로선 파격적인 역인 양공주로 나온 영화가 ‘지옥화’(1958)다. 한국전 후 기지촌 주변의 양공주들과 이들의 남자들인 범법자들을 둘러싼 애증과 배신과 폭력 그리고 형제간 갈등과 비극적 죽음을 그린 뛰어난 작품이다. 필름 느와르이자 멜로드라마로 네오리얼리즘 분위기마저 띠었는데 1950년대 영화로선 가히 충격적인 작품이다.
기지촌 주변에 살면서 패거리들을 이끌고 미군부대 군수품을 터는 터프가이 영식(김학)과 그의 여자로 팔등신 미녀인 소냐(최은희) 그리고 시골서 상경한 영식의 동생 동식간의 삼각관계를 중심으로 양공주들과 범법자들의 삶과 한탕을 사실적이요 박력 있게 그렸다. 대담한 것은 과감히 노출된 여인들의 육체와 선정적인 섹스신. 안개가 자욱하니 핀 갯벌에서 영식이 자신을 배신하고 도주하는 소냐를 쫓아가 칼로 찔러 죽이는 마지막 장면은 치정살인의 오페라적 표현이라고 하겠다.
그런데 신감독과 최은희의 최고걸작은 이들 영화보다 1978년 둘이 몇 달 차이로 영화광 김정일의 지시로 홍콩서 납북된 사건일 것이다. 둘은 북한에서 7편의 영화를 만들었는데 최씨는 ‘소금’으로 모스크바 영화제서 주연상을 탔다. 두 사람은 1986년 영화를 만든다는 핑계로 비엔나에 갔다가 주 비엔나 주재 미대사관을 통해 망명, 그 후 한동안 LA에서 살았다.
이 때 어느 날  내게 신감독으로 부터 전화가 걸려왔다. 내가 당시 서울의 일간스포츠에 주 1회 쓰던 영화면에 자기가 줄 기사가 있으니 지면을 비워 놓으라는 지시적 부탁이었다. 그러나 그 뒤로 감감 무소식. 둘의 납북사건은 기록영화 ‘연인들과 폭군’(The Lovers and the Despot)에서 흥미진진하게 다뤄졌다.                     
                                                             <한국일보 박흥진 편집위원/ hjpark1230@gmail.com>


2018년 4월 25일 수요일

나 예뻐졌네(I Feel Pretty)


르네가 거울 속의 뱃살이 빠진 자기 몸을 보면서 놀라고 있다.

"뚱보가 미녀로" 에이미 슈머의 코미디


요즘 인기가 한창 오르고 있는 토실토실 살이 찐 코미디언 에이미 슈머(‘트레인렉’)가 땀을 뻘뻘 흘리면서 통통한 맨살을 드러낸 채 전력투구하는 코미디로 어리석다. 여자의 미에 대한 강박관념을 나무라면서 자신의 있는 그대로를 받아들이라는 얘기인데 다분히 설교조다.
그렇게 미인도 아니고 또 살이 찐 슈머의 자기선전이자 자화자찬 같은 영화인데 ‘자신에 대한 부정적인 마음을 거두고 자신을 긍정적으로 받아들이라’는 메시지를 지나치게 강조해 우습다기보다 짜증이 난다. 
자기 몸에 자신이 없는 여자들을 격려하려는 사명감이 가상하기는 하지만 별 재미가 없고 엉성한 영화다. 볼만한 것이라면 종횡무진으로 스크린을 주름잡는 슈머와 왕년의 수퍼 모델이자 배우인 로렌 허튼(많이 늙었다)과 나오미 캠벨 등 고참 모델들과 화장품 회사의 늘씬한 미녀들. 남자들에겐 어필하지 못할 여자들 영화다.
6년간 맨해튼의 차이나타운의 지하 골방에서 동료직원 메이슨(에이드리안 마티네즈)과 둘이 굴지의 화장품회사 릴리 르클레어를 위해 컴퓨터작업을 하는 르네 베넷(슈머)의 꿈은 5번가에 있는 고층건물 회사본부에서 일하는 것. 
르네는 직장도 있고 아파트도 있고 또 친한 두 친구 비비안(에이디 브라이언트)과 제인(비지 필립스)도 있지만 다소 비대한 몸 때문에 자신감이 없어 남의 눈치를 본다. 그런데 비비안은 뚱뚱하고 제인도 외모가 대단치 못해 셋이 다 남자 사귈 것을 거의 포기한 상태다.
마침내 르네는 큰 결심을 하고 날씬한 몸매를 만들기 위해 소울서클이라는 신체단련 짐에 등록한다. 그리고 자전거 페달을 냅다 밟는데 비둔한 몸으로 페달을 너무 강하게 밟는 바람에 페달이 떨어져 나가면서 르네는 바닥에 나 뒹군다. 그리고 머리를 다치면서 졸도한다. 
휴게실에서 깨어난 르네가 거울을 들여다보는데 이게 웬일인가. 르네는 거울 속에서 날씬한 팔등신 미녀가 된 자신을 발견하고 좋아서 어쩔 줄을 모른다. 그러나 르네의 눈에만 그렇게 보일 뿐이지 실제로 그의 몸이 달라진 것이 아니다. 
이제 자신이 생긴 르네는 두 친구에게 자기 몸 자랑을 하면서 으스대는데 자기가 팔등신 미녀인 만큼 남자에게도 자신이 생겨 빵집에서 빵을 사러온 남자(로리 스카벨)에게 적극적으로 접근해 그를 결국 자기 애인으로 만든다. 물론 이 남자는 살이 찐 르네의 있는 그대로를 좋아하는 것. 그리고 르네는 애인이 대경실색하는 가운데 술집 비키니대회에 까지 나가 맨살을 드러낸 채 노래까지 부른다. 자신감이 부풀어 터질 지경이다. 
이어 르네는 늘씬한 미녀들이 일하는 본사의 리셉셔니스트 모집에 지원해 여차여차한 이유로 취직이 된다. 물론 르네는 자기가 팔등신 미녀여서 취직이 된 줄 안다. 릴리 르클레어의 사장은 쇳소리를 내는 음성을 지닌  에이버리 르클레어(연기파 미셸 윌리엄스가 웃긴다)로 회사는 에이버리의 할머니 릴리(허튼)가 창립했다. 
이 회사는 지금 막 모든 평범한 여성들이 사용할 화장품을 개발, 이에 대한 판촉방안을 구상하는 중. 매사에 자신이 만만한 르네는 어쩌다 판촉방안을 논의하는 회의에 들렀다가 미녀가 되기 이전의 평범한 여자로서의 화장품에 대한 의견을 발표, 릴리의 마음을 산다. 
이렇게 잘 나가던 르네가 자기를 탐내는 릴리의 오빠로 플레이보이인 그랜트(탐 후퍼)와 함꼐 타 도시로 출장을 갔다가 자기 방 욕실 유리문과 충돌해 기절을 했다가 깨어나는데 이를 어쩌나 자기가 옛날 자기로 돌아간 것이 아닌가. PG-13. 애비 콘과 마크 실버스틴 감독(각본 겸). ★★½ (5개 만점) 
                                                              <한국일보 박흥진 편집위원/ hjpark1230@gmail.com>



경시청(Quai des Orfevres·1947)


수사관 앙트완이 심문차 제니(왼쪽)를 방문했다.

“내가 죽였어요” 진범은? ‘프랑스 히치콕’ 클루조 감독 흥미만점의 수사 느와르


이브 몽탕이 주연한 서스펜스 가득한 실존적 생존의 드라마 ‘공포의 보수’(The Wages of Fear·1953)와 시몬 시뇨레가 나온 냉기가 감도는 살인 스릴러 ‘디아볼리크’(Diabolique·1955)를 만든 ‘프랑스의 히치콕’이라 불린 명장 앙리-조르주 클루조의 스타일 멋있고 아기자기하게 재미있는 필름 느와르다. 클루조는 이 영화로 1947년 베니스 영화제 감독상을 받았다.
클루조 특유의 사회적 사실주의와 심리적 가혹성을 결합한 흥미 만점의 영화로 특히 파리 경시청 수사관으로 나오는 베테런 루이 주베의 연기와 흑백촬영이 빼어난다.
1946년 크리스마스 직전의 파리. 육감적으로 아름다운 뮤지컬 가수 제니(수지 들레르)는 빅 스타가 되기 위해 자신의 피아노 반주자인 남편 모리스(베르나르 블리에)에게 감추고 자기를 탐하는 돈 많고 추한 늙은 제작자 브리뇽(샤를르 뒬랑)의 자택 초청에 응한다.
머리가 벗겨진 소심하고 착한 모리스는 제니를 몹시 사랑해 질투가 심한데 제니에게 수작을 거는 브리뇽에게 죽이겠다고 협박을 한 바 있다. 제니는 비록 애교가 많긴 하나 남편을 극진히 사랑한다.
그런데 뒤늦게 제니가 자기를 속이고 브리뇽의 집에 갔다는 것을 안 모리스는 차를 타고 브리뇽의 집엘 찾아간다. 그리고 브리뇽이 피살체로 거실에 쓰러져 있는 것을 발견한다. 모리스는 당연히 제니가 브리뇽을 죽였다고 믿고 급히 브리뇽의 집을 빠져나오는 순간 누군가가 모리스의 차를 훔쳐 타고 달아난다. 
한편 제니는 자기 옆집의 사진사로 남편의 오랜 친구인 레즈비언 사진사 도라(시몬 르낭)에게 자기가 브리뇽을 죽였다고 고백한다. 이에 평소 브리뇽을 혐오하던 도라는 브리뇽의 집으로 가 모든 물적 증거를 제거한다.
이 사건을 수사하는 수사관은 외인부대 출신의 베테런 앙트완(주베). 세상이 피곤하다고 투덜대는 인정이 많은 휴머니스트 앙트완은 겉으로 보기엔 어수룩한 이웃집 아저씨 같지만 뛰어난 수사 감각을 지닌 사람으로 다소 냉소적이다.
앙트완은 모리스를 사건의 유력한 용의자로 보고 집요하게 심문하는데 이에 견디다 못한 모리스가 허위 자백을 한 뒤 유치장에서 자살을 시도한다. 이에 제니와 도라가 앙트완에게 서로 자기가 범인이라고 고백한다. 과연 누가 진범일까. 재미 가득한 추리영화로 이번에 새로 복원된 필름으로 로열극장(11523 산타모니카)에서 상영된다. (310)478-3836. ★★★★(5개 만점)
                                                           <한국일보 박흥진 편집위원/ hjpark1230@gmail.com>



2018년 4월 19일 목요일

라이더(The Rider)


로데오 선수인 브레이디는 사고로  더 이상 경기에 참가하지 못해 좌절감에 빠진다.

서정적이고 아름다운 서부영화 진수


참으로 아름답고 서정적이며 또 거칠도록 사실적인 미 카우보이와 서부에 관한 아메리칸 목가다. 놓치기 쉬운 작은 보석과도 같은 영화로 솔직하고 민감하며 애수가 깃든 비가이기도 한데 지금은 사라진 옛 서부를 그리워하고 있다.
전연 꾸밈이 없는 엄격한 서부영화이자 부상을 입어 더 이상 말을 못 타는 주인공의 내적 고뇌와 갈등을 집요하게 파고든 성격탐구 영화이기도 하다. 대사가 별로 많지 않은 매우 조용한 영화로 황무지나 다름없는 서부에 사는 사람들의 얘기를 정확하게 고찰한 준수한 소품이다.
영화에 나오는 중요한 인물들은 비 배우들로 내용이 그들의 실제 경험과 삶을 다뤄서 마치 드라마가 아닌 현실을 보듯이 사실감이 절실하다. 연기가 아니라 그들의 일상을 카메라가 따라다니면서 찍은 것 같다.
각본을 쓰고 감독한 사람은 덴버에 사는 중국계 여류 클리오 자오로 이 영화가 그의 두 번째 작품이다. 사물과 인물의 내면을 통찰하는 능력이 뛰어난 사람으로 작중 인물들에 대해 깊은 연민의 감을 가지고 있다. 대성할 감독이다.
사우스 다코다 주 파인 리지의 황야에서 집안 살림을 돕거나 염려하기보다 마초맨의 권위주의에 사로잡혀 있는 아버지 웨인(팀 잰드로)과 정신박약자인 여동생 릴리(릴리 잰드로)와 함께 낡아빠진 트레일러에서 사는 브레이디 블랙번(브레이디 잰드로)은 로데오 챔피언으로 로데오와 말 훈련을 천직으로 여기며 사는 청년. 그의 어머니는 사망했다.
그런데 브레이디는 로데오에 참가했다가 낙마, 머리에 심한 부상을 입은 뒤로 의사로부터 더 이상 말을 타지 말라는 경고를 받는다. 말과 로데오가 자기의 전 삶이나 다름없는 브레이디는 이로 인해 깊은 고뇌와 좌절감에 시달린다. 그리고 의사의 충고를 따를 것인가 아니면 부상이 나으면 다시 말을  탈 것인가를 놓고 고심한다.
브레이디는 뇌 부상으로 오른 손에 힘을 주면 손이 마비되는데 그래서 훈련시키는 말을 타다가도 고삐를 쥔 오른손이 마비가 되곤 한다. 브레이디는 이웃의 말을 돌보거나 훈련시키면서 무료를 달래지만 언젠가 다시 말을 타겠다는 마음을 버리지 못 한다.
이와 함께 브레이디와 그의 가족 간의 관계 그리고 실제 로데오 선수로 교통사고를 입어 지체 및 정신박약자가 돼 병원에 있는 친구 레인(레인 스캇)과의 관계가 심도 있고 아름답게 그려진다.               
가난에 쪼들리는 브레이디 가족의 삶과 생활의 안전이 보장되지 못한 미래가 전연 내다보이지 않는 환경 하에서 생존하려고 몸부림치는 그들의 상황이 숨이 막힐 정도로 절망적인데 감독은 이런 멜로드라마적인 요소를 일절 감상성을 배제한 채 가혹할 정도로 있는 그대로 묘사하고 있다. 마침내 브레이디는 의사의 경고를 무시하고 로데오에 참가하기로 마음을 먹고 카우보이 모자와 셔츠와 벨트 그리고 부츠를 신고 경기장에 도착한다.
영화는 실제로 로데오 선수인 브레이디의 사고를 바탕으로 만들었는데 브레이디의 해저의 깊이와도 같은 고요하면서도 막중한 연기가 빼어나다. 브레이디와 릴리 그리고 팀은 한 가족이이다. 황량한 서부를 찍은 촬영도 훌륭하고 간간이 사용되는 음악도 좋다.  R등급. Sony Pictures Classics. ★★★★(5개 만점) 
                                                             <한국일보 박흥진 편집위원/ hjpark1230@gmail.com>


베이루트(Beirut)


전직 외교관 메이슨(가운데)은 납치된 옛 친구를 구하려고 베이루트에 도착한다. 왼쪽은 CIA요원 샌디.

 “납치된 동료를 구하라” 인질석방 위해 고군분투 전 외교관 그린 정치물


1980년대 초 내전이 치열하게 벌어지던 베이루트에서 일어난 납치사건을 해결하려고 현장에 뛰어든 전직 미 외교관의 정치 스릴러로 시종일관 긴장감이 깃든 요즘 시의에도 맞는 볼만한 영화다. 
중동의 어지러운 정치와 군사적 상황과 대결을 둘러싼 난마와도 같은 이해 당사국 간의 서로 다른 목적을 헤집고 다니면서 인질 석방을 위해 고군분투하는 한 사람의 필사적 노력을 흥미 있게 다뤘는데 주인공역의 존 햄(TV시리즈 ‘매드 멘)이 중후하게 보기 좋은 연기를 한다. 
1972년 베이루트 주재 미 외교관 메이슨 스카일즈(햄)의 집에서 다국적 인사들이 참석한 가운데 열린 파티가 테러로 아수라장이 된다. 그리고 이 테러로 자신의 귀중한 가족을 잃은 메이슨은 관직을 떠난다. 
그로부터 10년 후 알콜중독자로 폐인이 되다시피 한 채 노사분규 중재로 밥벌이를 하는 메이슨이 CIA의 부름을 받는다. 베이루트에서 메이슨의 옛 친구이자 동료였던 캘(마크 펠레그리노)이 아랍 무장단체에 의해 납치됐는데 그의 석방을 납치범들과 협상하라는 것이다.            
CIA가 메이슨을 부른 이유는 납치범들이 메이슨을 협상 중재자로 선택했기 때문. 그래서 메이슨은 내란이 한창인 베이루트에 도착하는데 메이슨과 함께 일하는 CIA직원이 샌디 크라우더(로자먼드 파이크). 
납치범들이 요구하는 것은 캘과 이스라엘 교도소에 수감 중인 뮌헨 올림픽 테러리스트를 맞바꾸자는 것. 메이슨은 자신의 중재능력을 믿고 이 기회를 이스라엘과 아랍국가 간의 문제 해결을 위한 좋은 계기로 삼아보려고 시도하나 국가 간에 얽히고 뒤엉킨 이해관계 때문에 큰 혼란에 빠진다. 그리고 메이슨은 미 정부가 캘의 석방을 원치도 않고 있다는 것을 눈치 채면서 단독으로 캘의 석방을 위해 적지로 뛰어든다.
납치범들과 미 정부 그리고 CIA 요원들이 모두 제각기 서로 상반된 이해관계를 지니고 있어  플롯이 다소 복잡한데 영화를 보면 그 때나 지금이나 중동의 문제는 여전하구나 하는 느낌을 갖게 된다. 햄의 무게 있는 연기에 비해 그 다음으로 중요한 역인 샌디로 나온 파이크는 충분히 사용되지 못했다. R등급. ★★★(5개 만점) 
                                                              <한국일보 박흥진 편집위원/ hjpark1230@gma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