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이야기

2018년 2월 9일 금요일

피터 래빗(Peter Rabbit)

피터가 가족과 동지들을 데리고 맥그레고씨의 채소밭을 휘젓고 다니고 있다.

채소밭 둘러싼 장난꾸러기 토끼의 모험과 액션


영국의 아동소설 작가 비애트릭스 포터가 쓴 글의 주인공으로 장난기가 심한 토끼 피터의 모험과 액션을 그린 만화영화와 라이브 액션을 혼성해 만든 아이들과 어른들이 함께 즐길 수 있는 가족용 영화다. 속도감과 액션과 유머 그리고 천방지축으로 날 뛰는 활기찬 슬랩스틱 코미디인데 컴퓨터로 그린 만화와 특수효과도 좋고 사운드트랙도 즐겁다. 실제 연기를 하는 배우들과 음성연기를 하는 배우들의 콤비도 그럴싸한데 유명 스타들이 동원됐다. 
런던 교외의 저택에서 채소밭을 가꾸며 사는 변덕스런 맥그레고(샘 닐)의 골칫거리는 자기 가족과 이웃 짐승들까지 동원해 채소밭의 채소들을 약탈(?)하는 토끼 피터(제임스 코든 음성). 피터는 장난기가 심할 뿐 아니라 천상천하 유아독존 식의 다소 오만한 악동. 피터의 아버지는 맥그레고가 잡아 파이를 해 먹어 둘 사이가 아주 안 좋다. 
어느 날 맥그레고가 다시 채소밭을 침략한 피터와 그의 일가족인 피터의 세 여동생 플롭시(마고 로비-‘아이, 토냐’로 오스카 주연상 후보)와 몹시(엘리자베스 드비츠키)와 카튼-테일(데이지 리들리) 그리고 피터의 봉인 사촌 벤자민(콜린 무디)을 쫓다가 심장마비로 급사를 한다. 
집을 물려받은 사람이 런던 시내 해로즈 백화점의 중간 간부로 병적으로 정리정돈에 집착하는 맥그레고의 젊은 친척 토마스(돔날 글리슨). 피터와 그의 가족 그리고 주위 동물들은 토마스가 집을 단장해 팔려고 한다는 것을 알고 피터의 리드로 집을 못 팔도록 사보타지 행위에 들어간다. 이로 인해 피터 일행과 토마스 간에 영토분쟁이 일어나는데 분쟁이 전면전으로 확대되면서 전류가 흐르는 울타리가 설치되고 폭탄까지 동원된다. 
이런 전쟁은 끝에 가서 양방간의 평화무드로 접어들게 되는데 그런 평화공존의 계기가 되는 사람이 토마스의 이웃에 사는 아름다운 화가 베아(로즈 번). 베아는 피터 일가족을 자기 가족처럼 사랑하면서 극진히 아끼는데 베아와 토마스가 가까워지자 베아를 자기 엄마처럼 여기던 피터가 발끈해 토마스를 아예 원수처럼 생각한다. 마치 한 여자를 둘러싼 두 남자의 삼각관계처럼 느껴진다. 베아와 토마스 그리고 베아와 피터 간에 서로 오해가 생기면서 관계에 파도가 치나 내용이 아동용이니 만큼 만사가 다 해피 엔딩! 윌 글럭 감독. ★★★½(5개 만점)
                                                                <한국일보 박흥진 편집위원/ hjpark1230@gmail.com>


육과 영(On Body and Soul)


같은 꿈을 꾸는 엔드레와 마리아가 침대에 함께 누워 있다.

같은 꿈 꾸는 차가운 남녀, 마음 문 여는 마법적 사랑


살육의 현장인 도살장에서 일하는 두 고독한 남녀의 서서히 영글어가는 사랑의 드라마로 마법적 사실주의의 분위기가 느껴지는 아름답고 환상적인 작품이다. 엉뚱하고 약간 과격하고 괴팍하며 시치미 뚝 떼는 유머와 엄격한 현실 그리고 피와 꿈이 뒤엉킨 어른을 위한 동화와도 같은 영화로 서서히 보는 사람의 가슴을 감동으로 젖게 만든다.
고독과 동경의 얘기로 스타일이 좋고 육감적이다. 두 남녀의 상대방에 대한 그리움과 접근을 꿈속의 수사슴과 암사슴의 접촉으로 묘사하면서 인간과 동물의 교접을 동일시하고 있는데 이와 함께 도살장으로 몰려가는 소들의 모습과 도살된 짐승의 모습을 보여주면서 육과 영의 관계를 묻고 있다.
사랑이 가는 순수한 작품으로 사랑과 육과 영의 문제를 절묘하게 엮어간 헝가리의 여류 감독 일디코 에니에디(각본 겸)의 마술사 같은 솜씨가 경탄스럽다. 작년 베를린 영화제 대상인 황금곰 상을 받은 빼어난 영화다. 제90회 오스카 외국어 영화상 후보작.
처음에 눈 덮인 숲속에서 수사슴과 암사슴이 서로를 응시하며 다가 가는 장면으로 시작된다. 이 장면은 영화 플롯이 이어지면서 중간 중간 반복돼 나오는데 그림엽서처럼 곱다. 이어 부다페스트 교외의 도살장의 경리부장으로 과묵하고 다소 무뚝뚝한 중년의 독신남 엔드레(게자 모르크사니)와 도살장 고기 품질검사관으로 얼음장처럼 차갑게 아름답고 병적으로 대인관계에 서툰 마리아(알렉산드라 보르벨리)가 각기 따로 소개된다.
둘은 구내식당에서 자주 마주치면서 엔드레가 마리아를 흠모하게 되지만 내성적인 엔드레는 마리아에게 자기 마음을 고백하지 못한다. 마리아도 엔드레에 호감을 갖는다. 물론 마리아도 자기 마음을 표시하지 못한다.
이렇게 독특한 성격의 두 사람은 매일 같이 만나면서도 관계에 진전이 없는데 둘이 서서히 가까워지는데 엄청난 시간이 소요된다. 이런 둘의 고요한 분위기를 도살장의 살육이 어지럽힌다. 두 사람이 가까워지게 되는 동기는 둘이 매일 밤 같은 꿈을 꾼다는 것을 알게 되면서다. 그 꿈이란 다름 아닌 암수 두 마리 사슴의 꿈.
이 같은 사실을 알게 된 두 사람은 함께 잠자리에 들어보자며 일종의 실험을 실시한다. 둘은 같은 침상에 눕지만 육체관계를 맺진 않는다. 이런 과정을 통해 엔드레와 마리아는 서서히 깊이 상대방에게 빠져드는데 사랑의 얘기이니 만큼 그 과정이 순조롭지만은 않다. 
두 사람의 연기가 아주 좋다. 모르크사니의 속에 유머가 깃든 무딘 사람 같은 덤덤한 연기도 좋지만 백설공주처럼 하얀 얼굴과 큰 눈을 한 보르벨리의 데스마스크를 쓴 것 같은 무표정한 연기가 뛰어나다. 수많은 표정을 지닌 무표정으로 카메라가 그의 아름다운 얼굴을 자주 클로스업 한다. 이와 함께 촬영도 매우 좋다. ★★★★½ (5개 만점)
                                                              <한국일보 박흥진 편집위원/ hjpark1230@gmail.com>

팬태스틱 우먼(A Fantastic Woman)


마리나는 갑자기 애인을 잃고 깊은 슬픔과 충격에 빠진다.

동거 이혼남 돌연사 후 닥친 슬픔과 주변 멸시 극복… 칠레 여인의 인간드라마


상실과 고통과 멸시를 극복하고 자존을 지키며 생의 길을 가기를 포기하지 않는 여인의 인간 드라마로 칠레영화다. 강력한 드라마로 제90회 오스카 외국어 영화상 후보작이다. 세바스티안 렐리오가 감독했는데 그의 이전 영화로 역시 여인의 자존과 독립을 이야기한 ‘글로리아’와 여러 면으로 닮은 데가 있다.
영화의 주인공은 여성으로 전환한 남자로 그가 영육으로 사랑하는 애인을 갑자기 잃고 겪는 슬픔과 그 슬픔으로부터 벗어나는 안팎의 모습을 강건하고 치열하며 또 감정적으로 격하게 다뤄 보는 사람을 걷잡을 수 없이 휘어잡는다. 대단히 힘차고 생생한 작품이다.
산티아고의 나이트클럽에서 노래를 부르며 웨이트리스로 일하는 20대 후반의 마리나 비달(실제로 성 전환한 다니엘라 베가)의 애인은 이혼한 50대 후반의 직물회사 사장 올란도(프란시스코 레이에스). 둘은 극진히 사랑하는 사이로 올란도의 아파트에서 동거한다.
그런데 올란도가 갑자기 쓰러져 병원으로 옮긴 뒤 사망한다. 갑자기 닥친 상실로 마리나는 깊은 충격과 슬픔에 젖는다. 그런데 올란도가 쓰러지면서 몸에 입은 상처 때문에 경찰이 개입해 마리나를 심문한다.
경찰은 마리나를 창녀나 강간범처럼 취급하면서 모욕적인 신체검사까지 한다. 경찰뿐만이 아니라 담당 의사도 마리나를 남자로 취급한다. 그리고 올란도의 전처와 아들 등도 마리나를 사갈시면서 올란도의 아파트로부터 나가라고 요구한다.
이런 멸시와 차별을 마리나는 입을 꽉 다물고 표면적으로 침착하게 대하나 안에서는 분노가 들끓는다. 카메라가 베가의 얼굴을 크게 잡으면서 마리나의 밖과 안이 다른 감정의 미묘한 변화를 자세히 보여주는데 감탄을 금치 못할 연기다.
자기 노래 실력을 제대로 깨닫지 못하는 마리나가 아버지 노릇을 하는 오페라 음성코치를 찾아가 노래에 관해 얘기하는 등(노래도 베가가 직접 부른다) 서브플롯이 있지만 중심 내용은 마리나가 슬픔과 멸시 그리고 고통을 견디어내면서 강한 삶의 의지를 추구하는 주체성 회복의 이야기다.
가슴에 못을 박는 것처럼 충격적인 베가의 연기가 돋보이는 영화로 전자음악과 촬영도 아주 좋다. 영화를 시작하는 이구아수 폭포를 찍은 첫 장면이 아름다운데 이구아수 폭포는 올란도가 마리나의 생일선물로 함께 여행하기로 한 곳이다. Sony Pictures Classics. ★★★★(5개 만점)
                                                               <한국일보 박흥진 편집위원/ hjpark1230@gmail.com>



도로시 말론: 바람위에 쓴 이름


투명한 붉은 나이트가운을 입은 도로시 말론이 맨발로 집안의 계단을 “우당탕 쿵쾅”소리를 내면서 뛰어 올라가더니 자기 방에 들어가 요란한 음악에 맞춰 온몸을 뒤틀고 흔들어대면서 춤을 추는 모습을 보면서 어린 학생이었던 나는 육신 안팎으로 충격에 가까운 전율을 느꼈었다. 농익은 성적매력에 압도당했던 기억이 난다.
이 장면은 말론이 오스카 조연 상을 받은 멜로드라마 ‘바람 위에 쓰다’(Written on the Wind^1956)의 한 장면으로 말론은 텍사스 석유재벌의 상속녀로 섹스에 굶주린 알코홀 중독자 메릴리 해들리로 나온다. 말론 자신도 말했듯이 말론은 이 영화 후로 본의 아니게 부정하고 섹스에 갈급한 술꾼으로 팬들의 기억에 남게 된다.
할리웃 황금기 스크린의 섹시 스타 중의 하나였던 도로시 말론(사진)이 지난 1월 19일 고향 달라스에서 93세로 사망했다. 금발에 커브가 진 몸매를 한 말론은 어딘가 다소 천박한 섹스 어필을 간직한데다가 표정이 소박맞은 여자 같아 남자들의 동물적 감각과 동정심을 동시에 자극한다. 나도 말론의 팬 중의 하나다.
50여년의 연기생활 동안 70여 편의 영화와 많은 TV작품에 나온 말론의 대표작 영화는 단연 ‘바람 위에 쓰다’이다. ‘이미테이션 오브 라이프’와 ‘매그니피슨트 옵세션’ 등 여러 편의 멜로드라마를 만든 더글러스 서크가 감독한 이 영화에서 말론은 자기 오빠(로버트 스택)의 친구 록 허드슨을 짝사랑하면서 자신은 물론이요 주위 사람까지 모두 파괴하는 욕정에 사로잡힌 여자로 나와 눈부신 연기를 보여준다.
시카고에서 태어났으나 달라스에서 자란 말론(본명 도로시 엘로이즈 말로니)은 자기가 다닌 남감리교 대학의 연극에 나갔다가 RKO사의 에이전트의 눈에 띄어 할리웃에 왔다. 그러나 처음에는 대사 없는 엑스트라 노릇만 하다가 워너 브라더스로 옮기면서 빛을 보게 된다.
여기서의 첫 영화가 범죄소설 작가 레이몬드 챈들러가 쓴 글을 원작으로 한 ‘빅 슬리프’(1946)로 서점 점원인 말론은 사립탐정 필립 말로로 나온 험프리 보가트를 은근짜로 유혹해 팬들의 눈길을 끌게 된다. 이어 프랭크 시내트라와 도리스 데이가 주연한 뮤지컬 ‘영 앳 하트’와 탭 헌터가 나온 전쟁영화 ‘배틀 크라이’ 및 딘 마틴과 제리 루이스 콤비가 공연한 코미디 ‘화가와 모델’ 등에 나왔지만 자기 경력에 큰 도움이 될 만한 것들은 아니었다.           
말론은 마침내 할리웃에서 여배우가 성공하려면 어딘가 부정한 데가 있는 섹스 어필하는 여자로 나와야 한다는 것을 깨닫고 유니버설 작인 ‘바람 위에 쓰다’의 출연에 응했다. 이로써 말론은 이 후 과거보다 양질의 영화에 나오게 된다.
무성영화의 수퍼 스타 론 체이니(제임스 캐그니)의 아내로 나온 ‘천의 얼굴을 한 남자’, 록 허드슨과 로버트 스택과 다시 공연한 ‘더럽혀진 천사’, 헨리 폰다와 앤소니 퀸과 리처드 위드마크가 나온 웨스턴 ‘왈록’ 그리고 커크 더글러스와 록 허드슨이 공연한 웨스턴 ‘마지막 황혼’ 등이 그 대표작들. 나는 어렸을 때 3명의 멋진 남자배우들이 나와 서로를 향해 총부리를 겨누는 ‘왈록’을 아주 재미있게 봤는데 여기서 말론이 자기가 사랑하는 마을 보안관 위드마크와 경련하듯 포옹을 하던 장면이 기억에 생생하다. 그러나 이들 영화의 역도 메릴리 해들리 역의 비중만은 못하다. 
예나 지금이나 마찬가지로 말론의 영화배우로서의 절정기는 그가 40이 되면서 시들기 시작했다. 이런 침체에서 벗어나 그가 재기한 작품이 ABC-TV 시리즈 ‘페이턴 플레이스’다. 당시만 해도 영화배우가 TV에 나오는 것은 직업상 자살행위나 마찬가지였지만 말론은 시리즈가 인기를 모으리라고 확신하고 출연에 응했다.
1964-1969년까지 방영된 ‘페이턴 플레이스’는 그림처럼 고운 뉴잉글랜드의 한 작은 마을 주민들의 어두운 비밀과 욕정과 욕망을 다룬 동명소설이 원작으로 1957년에 라나 터너 주연으로 먼저 영화로 만들어졌었다. 말론은 영화에서 터너가 맡았던 자기 딸(당시 19세였던 미아 패로)의 출생에 관한 비밀을 지닌 책방 주인으로 나온다. 시리즈는 미 TV사상 최초로 저녁 황금시간대에 방영된 소프 오페라로 주 3회 방영되면서 선풍적인 인기를 모았다. 이로써 말론은 영화보다 더 큰 인기를 얻고 연기자로서도 새로운 각광을 받게 되었다. 시리즈는 미국 뿐 아니라 전 세계적으로도 큰 인기를 얻었었는데 한국에서도 대단한 인기를 누렸었다.
이 시리즈로 말론의 배우로서의 전성기는 사실상 끝이 났고 그 후로는 ‘페이턴 플레이스의 살인’ 등 TV영화에 나왔다. 말론의 마지막 영화는 샤론 스톤이 나온 섹시 스릴러 ‘원초적 본능’으로 말론은 여기서 살인자로 나왔다. 독실한 기독교 신자였던 말론은 팬들에게 사인을 해줄 때에도 ‘언제나 하나님의 축복이 있기를!’이라는 글을 함께 적었다고 한다. 말론은 세 번 결혼했으나 모두 이혼으로 끝이 났는데 첫 남편과의 사이에 두 딸을 두었다. 자기 말대로 “남자 복이 없는 여자”였다. 굿 바이 도로시!           
                                                             <한국일보 박흥진 편집위원/ hjpark1230@gmail.com>


2018년 1월 26일 금요일

‘적의 있는’(Hostiles)


블락커 대위는 자기가 증오하는 아메리칸 인디언들을 호송하고 대륙종단의 길을 간다.

대륙종단 여정서 겪는 모험 ‘웨스턴 무비’


웨스턴의 장인 존 포드 감독의 ‘역마차’(Stage Coach)와 ‘수색자’(The Searchers)의 분위기를 갖춘 옛날 스타일의 준수한 웨스턴으로 중심 플롯이 포드의 마지막 웨스턴으로 리처드 위드마크, 칼 말덴, 제임스 스튜어트 및 캐롤 베이커 등 올스타 캐스트의 ‘샤이엔 가을’(Cheyenne Autumn)을 연상시킨다. 그리고 클린트 이스트우드의 오스카 작품상 수상작인 강인한 웨스턴 ‘용서 받지 못한 자’(Unforgiven)의 숨결도 느껴진다.
대형화면에 파노라마치는 서부광야의 웅장한 아름다움과 심각한 내용 그리고 뛰어난 연기 등이 있는 길고 긴 대륙종단의 드라마로 사실감 가득한 폭력이 영화의 쓴 맛을 한층 북돋는다. 
아메리칸 인디언들을 고향으로 호송하는 미군 기마대 장교의 얘기여서 인디언들을 다룰 땐 상투적인 점도 있으며 진행 속도가 매우 느리긴 하지만 감독(각본 겸) 스캇 쿠퍼의 야심만만한 대하 서사극이다.
1892년. 뉴멕시코 주 베린저 요새에 주둔한 조셉 블락커 대위(크리스천 베일)는 수십 년 간 아메리칸 인디언들을 토벌하면서 그들에 대한 적개심에 가득 찬 사람. 그에게 상관이 긴 세월을 부대 내 감옥에 수감돼 살면서 이제 불치의 중병에 걸린 샤이엔 인디언 추장(웨스트 스투디)과 그의 아들(애담 비치) 등 가족을 그들의 몬태나 주의 고향까지 호송하라고 지시한다.
블락커는 처음에 이를 거절하다가 군인으로서의 명예와 곧 제대하면 타게 될 연금을 생각해 마지못해 자기가 믿는 부하들과 신병(‘네 이름으로 날 불러다오’로 오스카 주연상 후보에 오른 티모데 샬라메가 어색하다)을 소집해 인디언들과 함께 북행을 시작한다. 그리고 이 긴 여정에서 살인혐의를 받고 있는 범죄자(벤 포스터)와 인디언들의 습격으로 가족을 잃어 거의 실성할 지경에 이른 여인 로잘리 퀘이드(로자먼드 파이크) 등을 만나 이들도 일행에 합류한다. 
영화는 처음에 퀘이드의 가족이 인디언들의 습격으로 살해되는 장면으로 시작되는데 폭력이 매우 사실적이다. 이들이 길을 가는 도중에 여러 가지 사건과 인디언들과 또 다른 적들의 습격이 발생하는데 이런 액션과 함께 블락커와 인디언 추장 간의 증오와 적대감이 극적 긴장감을 조성한다. 그리고 블락커는 이 여정에서 서서히 인간성을 되찾으면서 백인과 인디언이 모두 같은 사람이라는 교훈마저 남긴다. 좀 상투적이나 관용을 얘기하고 있다.
베일의 연기가 눈부시다. 얼굴과 몸에 힘을 꽉 주고 시종일관 팽팽한 긴장감을 풀지 않아 보는 사람의 숨통을 조인다. 아메리칸 인디언 배우들인 스투디와 비치의 연기도 훌륭하다. 파이크도 연기는 좋지만 뜨거운 태양 아래 말을 타고 긴 여정을 하는 여자의 백색 피부가 어떻게 그렇게 타지도 않고 흰지 알다가도 모를 일. 그리고 라스트 신은 통속적인 할리웃식 결말이다. R등급. ★★★½ (5개 만점)
                                                           <한국일보 박흥진 편집위원/ hjpark1230@gmail.com>



아메리칸 포크(American Folk)


엘리옷(왼쪽)과 조니가 차 안에서 기타를 치며 노래를 부르고 있다.

66번 국도 따라 뉴욕 가며 만나는 다양한 풍경·사람


제목 그대로 미국의 민요에 바치는 헌사이자 때가 덜 묻은 미국의 뒤안길의 진짜 모습을 볼 수 있는 로드 무비로 ‘홍하의 골짜기’ ‘섀난도’와 같은 민요와 ‘잠발라야’ 등 컨트리 송이 많이 나온다. 두 남녀 주인공으로 나온 조 퍼디와 앰버 루바드는 배우가 아니라 실제 포크송 가수들이다. 그래서 둘은 노래는 잘 부르나 연기는 어색하다. 그러나 그 점이 오히려 사실감을 살리는 가슴을 따스하게 만들어주는 소품이다. 
뉴욕의 무대에서 동료 음악인들과 함께 연주하기로 된 포크싱어 엘리옷(퍼디)과 중병을 앓는 어머니를 보기 위해 역시 뉴욕으로 가야 하는 가수 조니(루바드)는 LA발 뉴욕행 비행기에 탔다가 9/11 테러로 비행기가 회항하면서 다시 LA에 내린다. 이어 조니는 토팽가캐년에 사는 친구(크리샤 페어차일드)로부터 낡아빠진 밴을 빌려 뉴욕으로 가면서 여기에 엘리옷이 동승한다.
여기서부터 둘은 미국의 최초의 하이웨이인 66번 국도를 따라 뉴욕으로 가면서 서로에 관해 얘기를 나누고 또 각양각색의 사람들을 만난다. 이 과정에서 영화는 미국의 아름다운 풍경과 다양한 인물들을 소개하면서 국토를 찬양하고 인간관계를 살펴보고 있다.
엘리옷은 다소 좌절감에 빠진 노한 사람인 반면 조니는 밝고 명랑한 사람으로 엘리옷은 여정을 통해 조니의 긍정적인 마음에 영향을 받아 굳은 마음이 눈 녹듯 한다. 밴이 원래 낡아 가다가 툭하면 과열돼 둘이 차를 세우면서 여러 사람들을 만나게 되는데 그 중에서 가장 인상적인 사람은 사막 한복판에 세워둔 차 안에서 혼자 사는 나이 먹은 남자(데이빗 화인). 또 이들이 밴에 태워준 두 명의 젊은 여자 동성애자들과의 에피소드도 관용에 관해 얘기하고 있다. 
엘리옷과 조니가 밴 안에서 또 가다가 쉬면서 기타를 치면서 부르는 노래들이 아주 좋은데 9/11 테러 직후의 얘기여서 미국인들이 이를 슬퍼하는 분위기가 화면에 배어 있다. 그러나 영화는 결코 이 사건을 강조하지는 않는다. 뉴스도 밴의 라디오를 통해 희미하게 들리고 사람들이 TV로 뉴스를 보는 장면에서도 실제 테러 장면은 보이지 않는다. 사려 깊은 조치다. 
둘이 여러 장소에서 만나는 사람들의 얘기가 아기자기 하게 재미있는데 실제로 14개 주에서 찍은 현장감 가득한 촬영이 아름답다. 차를 타고 엘리옷과 조니가 간 길을 따라 대륙횡단을 하고 싶은 마음을 일게 한다. 데이빗 하인즈 감독. ★★★ (5개 만점)
                                                                <한국일보 박흥진 편집위원/ hjpark1230@gmail.com>


‘농, #미투’


하비 와인스틴의 여성에 대한 성추행 고발로 비화된 돈과 힘과 명성이 있는 남자들의 성추행 문제가 연예계는 물론이요 정^관계와 언론계 및 사회 전반적 문제로 대두하면서 급기야 클래식 음악계로까지 확산되고 있다.
최근 뉴욕 메트로폴리탄 오페라의 상징이나 다름없는 명예감독 제임스 르바인(74)은 과거 청소년 연주자들을 그리고 영국의 로열 필하모닉 오케스트라 수석지휘자 샤를 뒤트와(81)는 여자 성악가와 연주자들을 성추행 했다는 고발이 있자 두 사람 다 자리에서 물러났다. 
요즘은 자고 일어나면 트럼프가 또 무슨 망언을 했을까와 어떤 유명인사가 성추행자로 찍혔을까를 살피는 것이 일상사가 되다시피 했다. 특히 성추행 및 폭행 문제는 그 어느 사회조직보다 남성위주인 할리웃에서 빈발하고 있다.
최근 성추행자로 거론된 영화인으로는 오스카상을 탄 배우 마이클 더글러스와 지난 골든 글로브 시상식서 TV시리즈 ‘매스터 오브 넌’으로 남자주연상을 받은 아시안 아지즈 안사리가 있다. 또 ‘디재스터 아티스트’로 역시 골든 글로브 남자주연상(뮤지컬/코미디)을 탄 제임스 프랭코도 성추행자로 거론됐다. 이 탓인지 프랭코는 지난 23일 발표된 오스카상 후보 발표 시 전문가들의 예상과 달리 주연상 후보에서 탈락됐다.   
성추행이 거론될 때마다 단골로 이름이 들먹거려지는 우디 알렌도 무사하지 못하다. 과거 알렌의 아내였던 미아 패로가 입양한 딸 딜란 패로가 최근 다시 자기가 어렸을 때 알렌으로부터 성추행을 당했다고 폭로하면서 많은 배우들이 다시는 알렌의 영화에 출연하지 않겠다고  선언했다. 개봉을 기다리고 있는 알렌의 ‘뉴욕의 비 오는 날’에 나온 레베카 홀과 티모데 샬라메(‘네 이름으로 날 불러다오’로 오스카 남자주연상 후보)는 이 영화 출연료를 전액 대 여성성폭력과 남녀불평등 퇴치를 위해 최근 조직된 ‘타임즈 업’(Time’s Up)에 기부하기로 했다.
그런데 여성에 대한 성추행 및 폭력을 고발하는 ‘#미투’(#MeToo)’와 ’타임즈 업‘을 통한 여성들의 피해 사례가 소셜 미디아를 통해 요원의 불길처럼 번지면서 일각에서는 이의 폐단에 대한 우려가 일고 있다.
가벼운 성희롱마저 도매금으로 성폭력과 같은 범죄행위의 테두리 안에 포함시키는 것은 옳지 않다는 논리다. 맷 데이먼도 최근 “있어서는 안 되겠지만 엉덩이를 토닥이는 것과 강간과 아동 성추행은 다른 것”이라고 말했다가 바가지로 야단을 맞고 “앞으론 입 조심 하겠다”며 사과를 했다. 그러나 그의 말은 맞는 것이다. 
요즘에는 분위기가 ‘#미투’나 ‘타임즈 업’에 거슬리는 말을 했다가는 반동분자로 몰리게 마련이다. ‘레이디 버드’로 오스카 감독 및 각본상 후보에 오른 그레타 거윅도 최근 알렌에 대한 성추행 고발에 관한 질문에 “깊이 생각해 봤다. 큰 관심을 갖고 있다”고만 말하고 더듬거리다가 여론의 질책을 받았다. 이에 과거 알렌의 영화에 나온 거윅은 며칠 후 “다시는 그의 영화에 안 나오겠다”고 선언했다.
한 할리웃 관계자는 이처럼 ‘#미투’나 ‘타임즈 업’에 대해 이견이나 심지어 “노 코멘트“를 할 경우 마치 죄인 취급을 받아 그에 대한 개인의 솔직한 의견을 말 할 수 없는 분위기가 조성되고 있다고 털어 놓았다. 잘 못 말했다가는 소셜 미디아에 의한 캥거루재판에 회부될까봐 두렵다는 것이다.
프랑스의 베테런 여배우 카트린 드뇌브(74^사진)와 100여명의 연예계와 출판계 및 학계여성들이 최근 르 몽드지에 ‘#미투’와 프랑스판 ‘#미투’인 ‘너의 돼지를 폭로하라’를 비판하는 일종의 ‘농(non-아니다라는 뜻) #미투’의 글을 발표한 것도 바로 이 운동의 이런 부작용을 우려하고 있다.
이들은 글에서 “‘#미투’가 개인적 경험을 공개적으로 기소하고 있으며 전체주의적 분위기를 조성하면서 도를 너머서고 있다”고 비판했다. 글은 이어 “남자가 여자의 무릎에 손을 대고 키스를 하려고 하는 등 서툴게 추근댔다고 해서 자기변호의 기회도 안 주고 벌로 직장에서 물러나게 한다는 것은 희생자를 미리 정해놓은 정의의 성급한 집행”이라고 덧 붙였다. 
드뇌브 등은 또 “여자들도 같은 날 직장의 리더가 되면서 아울러 남자의 성적 대상이 되는 기쁨도 즐길 수 있다”고 강조했다. 글은 결론으로 여성들에게 “피해자 의식을 버리고 자유에 따르는 위험을 수용하라”면서 “여자의 육체에 영향을 주는 불상사가 반드시 자존에게도 영향을 미치지는 않는다. 우리의 내적 자유는 범할 수 없는 것이며 우리가 아끼는 이 자유는 위험과 책임을 동반하게 마련”이라고 매듭지었다.
섹스를 먹는 것이나 자는 것처럼 삶의 자연스런 한 조건으로 생각하는 유럽과 그 것을 아직도 청교도적 입장에서 보는 미국의 성에 대한 인식에 차이가 있긴 하지만 드뇌브와 그의 동료들의 선언은 상당한 설득력을 지녔다. 어쩌면 이런 성에 대한 서로 다른 인식이 미국에서 ‘#미투‘ 쓰나미를 일으키게 한 원인 중 하나인지도 모른다. 
                                                                <한국일보 박흥진 편집위원/ hjpark1230@gma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