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이야기

2017년 11월 12일 일요일

‘LBJ’


린든 존슨이 ‘에어포스 원’에서 대통령 취임선서를 하고 있다.

36대 대통령 존슨의 정치 전기영화… 우디 해럴슨과 도노반의 연기 볼만 


존 F. 케네디 대통령의 허수아비 같은 부통령이었다가 케네디의 사망으로 대통령이 된 뒤 민권법안을 통과시키고 메디케어와 메디케이드 프로그램 등을 만든 제36대 미국 대통령 린든 베인즈 존슨의 정치 전기영화다. 
쇼맨쉽이 강했던 케네디의 후광과 그의 비극적 사망으로 인해 진가가 제대로 평가 받지 못했던 존슨의 개성과 정치적 역량을 새롭게 조명했는데 정통 전기영화의 틀을 답습하고 있지만  흥미 있는 영화다. 
존슨으로는 우디 해럴슨이 나오는데 분장을 진하게 했으나 전연 존슨 같지 않다. 그러나 해럴슨이 저속한 상소리를 내뱉으면서 저돌적으로 해내는 연기 하나만으로도 볼만한 영화다. 그와 함께 케네디로 나온 제프리 도노반의 해럴슨과 대조되는 점잖 빼는 차분한 연기 역시 아주 좋다. 그런데 도노반도 전연 케네디 같지 않게 생겼다. 
영화는 1963년 케네디가 재키와 함께 달라스를 방문해 오픈카를 타고 시내를 지나가는 장면으로 시작해 모터케이드와 케네디가 오스왈드의 저격을 받고 쓰러지는 장면이 얘기 중간 중간에 끼어드는 식으로 진행된다.
존슨은 여당인 민주당의 상원 대표로 닳고 닳은 정치인. 입이 걸고 직선적이고 실무적이며 목표를 위해선 타협도 마다 않는 남부(텍사스) 토박이로 케네디에 맞서 민주당 대통령 후보 경선에 나서나 열세다. 그를 자상하게 돌보고 응원하는 사람이 그의 부인 레이디 버드(제니퍼 제이슨 리). 이어 케네디가 동생 바비(마이클 스탈-데이빗)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존슨에게 부통령직을 제의한다. 남부표가 절대적으로 필요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막상 케네디가 대통령에 당선되면서 존슨은 의원시절의 막강한 권력을 다 잃고 대통령의 들러리 노릇을 하게 된다. 그리고 자기를 극히 싫어하는 바비가 자기 대신 존에 이어 대통령에 출마할 것이 분명하다고 믿게 되면서 그의 좌절감은 극도로 커진다. 
이를 뒤바꿔 놓은 것이 케네디의 죽음. 대통령이 된 존슨은 자기를 적극적으로 후원하던 남부출신 의원들을 배신(?)하고 케네디가 추진하던 민권법안을 통과시키기 위해 적극적으로 노력한다. 이로 인해 그는 막강한 남부 출신 의원들과 적이 된다. 마지막 장면은 케네디가 시작한 일을 계속하자는 존슨의 상하양원 의회합동연설로 장식되는데 아주 감동적이다. 존슨은 베트남전을 확대하면서 국민의 인기가 떨어지자 1969년까지의 임기를 마치고 차기 대통령 선거 불출마를 선언했다. 다시 한 번 존슨의 인물과 업적을 살펴볼 수 있는 볼만한 작품이다. ★★★(5개 만점)
                                                             <한국일보 박흥진 편집위원/ hjpark1230@gmail.com>


‘뱀피르’


덴마크의 엄격한 감독 칼 테오도어 드라이어의 분위가 스산한 ‘뱀피르’(Vampyr^1932^사진)는 걸작 초기 흡혈귀영화 중의 하나다. 이 영화는 공포영화에 최면에 걸린 것 같은 분위기와 혹독할 정도로 꾸밈이 없고 마음을 불안하게 만드는 영상을 갖추어준 괴이하도록 아름다운 작품이다. 드라이어의 또 다른 걸작으로는 영화사에 길이 남는 마리아 팔코네티 주연의 ‘잔 다크의 수난’(The Passion of Joan of Arc^1928)이 있다. 
‘뱀피르’의 잿빛 몽상과도 같은 영상은 헝가리 태생의 촬영감독으로 유럽서 활동하다 후에 할리웃으로 옮겨 촬영을 거쳐 영화감독으로 활약한 루돌프 마테의 솜씨다. 마테가 할리웃에서 감독한 영화들은 ‘D.O.A.’   ‘낙인’ ‘유니언 스테이션’ ‘도둑왕자’ 및 ‘미시시피 도박사’ 등이다.  ‘뱀피르’는 드라이어의 첫 유성영화로 카메라 및 편집기술과 함께 다양한 음향효과를 써 꿈과 같은 공포무드를 조성하고 있는 73분짜리 작품. 움직이는 그림자와 빛의 명암을 극적으로 사용해 보는 사람을 악몽으로 몰아넣는데 세트는 독일 표현주의영화 ‘닥터 칼리가리의 관’(The Cabinet of Dr. Caligari^1919)을 연상케 한다.
내용은 신비주의를 연구하는 젊은이가 파리 인근의 한 마을에 들렀다가 겪는 초현실적이요 불길한 현상과 악마적 현실이 뒤섞인 경험을 그렸다. 서서히 움직이는 안개와 죽음을 전조하는 큰 낫 그리고 불길한 메아리 등이 보는 사람의 감관을 두려움으로 감싸 안는다. 출연은 제작비를 댄 사람과 대부분 감독이 촬영현장에서 고른 사람들이 했는데 독일어 등 3개국어로 녹음했다. ‘뱀피르’가 최근 크라이티리언(Criterion)에 의해 복원된 독일어판 블루-레이로 나왔다.
무성영화 때부터 지금까지 계속해 만들어지고 있는 흡혈귀영화의 매력은 무엇인가. 우선 그 것은 우리 내면에 잠복한 어두운 욕망이 갈구하는 공포와 변태성을 충족시켜 주고 있기 때문이다. 흡혈귀의 색깔이라 할 블랙은 감각적이요 퇴폐적이고 염세적이며 또 야수적으로 그 것은 두려움과 저주 그리고 비밀과 죽음을 품고 있다. 이런 성질은 모두 우리가 탐하거나 피치 못할 것들이다.     
검은 망토를 걸친 드라큘라는 밤에만 활동하는 사체이지만 매우 인간적이다. 그에겐 백작 칭호가 달려 있는데다가 초인의 능력을 지녀 어둠의 수퍼맨이라 부를만하다. 또 이 고독한  남자는 아름다운 여인에 집착하는 로맨틱한 정열파다. 그리고 그는 치명적인 성적 매력을 지녔다. 그 성적 매력은 악마적인 것으로 아무래도 성적 매력이란 어두워야 제 가치를 발휘하게 마련이다. 여자들이 ‘암흑의 왕자’라 불리는 드라큘라에게 자기 목을 서슴없이 내어주는 까닭을 알만하다.
그런데 드라큘라의 사랑은 저주받은 국외자의 것이요 반드시 피를 봐야하는데다가 결코 이룰 수 없는 것이어서 더욱 간절하고 비극적이다. 그래서 그가 사랑을 못 이룬 채 인간에 의해 타살되며 내지르는 한과 고통의 비명을 듣게 되면 이 밤의 신사에게 깊은 연민의 정마저 갖게 된다. 
브람 스토커의 소설이 원작인 드라큘라영화의 고전 중 하나인 유니버설사 작품 ‘드라큘라’(Dracula^1931)는 헝가리 태생의 주연 벨라 루고시를 공포영화의 빅스타로 만들어준 영화다. 그는 강한 액센트와 함께 천천히 대사를 구사하면서 압도적이요 초연한 연기로 흡혈귀의 신비감과 저 세상 같은 분위기를 완벽히 보여주었다. 그의 후배 드라큘라들로 크리스토퍼 리, 프랭크 란젤라, 잭 팰랜스 및 탐 크루즈 등이 있지만 지금도 루고시는 드라큘라와 동일인물로 여겨지고 있다. 
수 많은 흡혈귀영화들 중에서 내가 가장 좋아하는 것이 독일의 명장 F.W. 무르나우의 무성영화 ‘노스페라투’(Nosferatu^1922)다. ‘노스페라투’는 흡혈귀의 루마니아어. ‘공포의 심포니’(A Symphony of Horror)라는 부제가 붙은 이 영화는 빛과 그림자와 조명 그리고 카메라의 동작을 통해 감각적인 이미지를 만들어낸 명작이다.
특히 꿈에 볼까봐 겁이 나는 흡혈귀 올록백작(막스 슈렉)의 모습은 욕지기가 날 정도로 추하다. 역대 드라큘라 중 가장 추남으로 쥐 같은 얼굴에 해골처럼 마른 몸과 길고 날카로운 이빨 그리고 독수리 발톱을 닮은 야위고 긴 손가락을 한 그는 세균을 온몸에 묻히고 다니는 악의 화신과도 같다.
독일의 또 다른 명장 베르너 헤르조크가 ‘노스페라투’를 치하하면서 리메이크한 ‘노스페라투 흡혈귀’(Nosferatu the Vampyre^1977)도 내가 좋아하는 흡혈귀영화. 독일 배우 클라우스 킨스키가 드라큘라로 그의 희생물 루시 하커로는 프랑스의 따갑도록 아름다운 배우 이자벨 아자니가 나온다. 특이한 것은 드라큘라가 좋은 흡혈귀라는 점. 드라큘라는 루시를 사랑해 상사병에 걸리는데 그가 시름에 빠져 축 늘어져 있는 측은한 모습을 보자니 동정심마저 간다. 사랑엔 흡혈귀도 속수무책이로구나. 이 작품은 화사한 수채화 같은 칼러영상과 함께 시적 분위기를 지닌 아름다운 공포영화다. 
                                                              <한국일보 박흥진 편집위원/ hjpark1230@gmail.com>


2017년 11월 2일 목요일

예비수녀(Novitiate)


캐슬린은 신에 대한 사랑을 확신하고 수녀가 되기로 결심한다.

예비 수녀들의 갈등·고뇌 사실적으로 묘사한 수작


1960년대 초 수녀원의 기성 수녀들과 예비 수녀들의 관계와 갈등과 우정을 깊이 있고 지적으로 해부한 탁월한 드라마로 신성하면서도 세속적이다. 신병 훈련소 소장처럼 엄격하고 혹독한 수녀원장과 이에 맹목적으로 헌신하는 나이 먹은 수녀들 그리고 원장의 독주에 저항하는 젊은 수녀의 얘기와 함께 이들의 밑에서 고된 훈련을 받는 예비수녀들의 종교적 인간적 정열과 신에 대한 믿음과 회의를 질서정연하고 아름답고 또 스타일 멋있게 묘사한 작품이다.
신에 대한 사랑과 믿음 그리고 회의와 함께 이 가운데서 시달리는 예비수녀들의 육체적 영적 갈등과 고뇌가 절실히 가슴을 파고드는데 이런 갈등에 서스펜스 스릴러 분위기마저 감돈다. 신인배우들의 뛰어난 연기와 함께 흥미진진한 내용에 함몰하게 만드는 수작이다. 
1964년 장소를 알 수 없는 곳의 한 수녀원. 주인공인 예비수녀 캐슬린 해리스(마가렛 퀄리)가 어떻게 해서 수녀원에 들어오게 되었는지가 회상식으로 얘기된다. 어린 캐슬린은 무신론자인 어머니에 끌려 동네 성당미사에 참석하는데 어머니가 딸을 이 곳에 데려온 이유는 종교란 허망한 것이라는 점을 알려주기 위해서다. 그러나 캐슬린은 부부싸움이 잦은 집안 분위기와 정반대인 성당의 평화로운 분위기에 사로잡힌다. 이어 캐슬린은 장학금을 주는 지역 가톨릭학교에 입학하고 17세가 되면서 신에 대한 사랑 때문에 수녀원의 예비수녀 후보로 들어간다. 
자신을 신의 대리인이라고 말하는 인정사장 없이 엄격한 원장(멜리사 리오가 과장됐을 정도로 신나게 열연한다) 밑에서 후보생들은 기혹할 정도로 모진 훈련을 받는데 이에 여러 명이 세상으로 돌아가고 12명 정도만 남는다. 다양한 후보생들의 모습과 성격이 골고루 묘사되는데 한 후보생은 오드리 헵번이 나온 영화 ‘파계’를 보고 수녀가 되기로 결심했다고 고백한다. 
이어 바티칸에서 획기적인 개혁안이 채택된다. 미사를 라틴어에서 일상어로 하고 자신에 대한 체형을 금지하며 타종교에 관대하며 아울러 수녀들이 지닌 권위를 대폭 위축시킨다는 내용이다. 이에 결사반대하는 것이 원장과 고참수녀들. 그런데 실제로 이 조치 이후 전 세계서 90,000여명의 수녀가 파계했다고 한다. 
이런 가운데서도 캐슬린은 신에 대한 확고한 믿음으로 신부복을 입고 수녀가 되기 전의 한 의식인 신과의 결혼식을 치른다. 수녀들의 성적 욕망과 자위행위 그리고 동료 간의 육체적 접촉과 이에 대한 죄의식 등이 민감하고 절제 있게 묘사되면서 작품을 사실적이면서도 고상하게 격상시킨다. 
캐슬린과 원장과 함께 중점적으로 얘기를 이끌어 나아가는 사람이 진보적인 수녀 메리 그레이스(다이애나 애그론). 그레이스는 고집불통인 원장의 횡포에 강력히 반발하면서 원장의 적이 되다시피 한다. 마침내 캐슬린이 정식 수녀가 되는 의식이 열린다. 라스트 신이 강한 인상을 남긴다. 
그림자와 빛을 잘 사용한 촬영과 고전 합창곡과 현대음악을 고루 쓴 음악도 좋다. 그러나 이 영화에서 무엇보다 빛나는 것은 배우들의 연기다. 고참 리오를 비롯해 신인 배우들의 연기가 깊이가 있고 엄숙하며 고요하게 빛을 발한다. 여류 매기 베츠의 감독 데뷔작으로 그가 각본도 썼다. 적극 관람을 권한다. 성인용. ★★★★ (5개 만점)
                                                           <한국일보 박흥진 편집위원/ hjpark1230@gmail.com>


서버비콘(Suburbicon)


가드너(오른쪽)와 로즈의 평온한 삶은 심야강도에 의해 파괴된다.

코엔 형제 각본·클루니 감독… 치정살인 미스터리·인종차별 섞인 블랙코미디


유혈 낭자하고 사체가 쌓이는 블랙 코미디의 장인들인 코엔 형제가 각본을 쓰고 조지 클루니가 감독을 한 치정살인을 둘러싼 미스터리와 인종차별을 다룬 드라마인데 완전히 다른 두 영화를 잘못 섞어놓은 것처럼 생경하다. 
겉으로는 멀쩡한 백인들의 인종차별과 우월의식을 넌센스 코미디 식으로 가차 없이 우습게 풍자한 내용과 치정을 둘러싼 보험금을 노린 살인극이 물에 기름 탄 것처럼 서로 겉돌고 있다. 빅 스타들이 나와 그들의 이미지와 다른 연기를 하는 희한한 영화다. 
1959년 미국의 어느 급조한 스필버그 영화의 마을 같은 교외의 백인 동네. 하얀 담장에 새로 지은 집들이 나란히 줄지어 선 이 동네에 어린 아들을 둔 흑인 부부가 이사 오면서 평소 이웃에게 친절하고 상냥하던 백인들의 타 인종에 대한 증오심이 타오른다. 
이들과 다른 가족이 라지 가족. 다소 비만하고 안경을 쓴 가장 가드너 라지(맷 데이먼)는 회사 재무담당 사원으로 겉으로는 선하게 보이나 속은 검다. 그의 부인 로즈(줄리안 모어)는 윌체어에 의지해 사는데 둘 사인엔 어린 아들 닉키가 있다. 이 집의 또 다른 구성원이 로즈의 쌍동이 자매 마가렛(모어). 진보적인 라지 가족은 닉키를 이웃인 흑인 가족의 아들과 놀도록 한다.
어느 날 밤 두 명의 괴한이 라지 집에 들어와 로즈를 살해하고 달아난다. 졸지에 어머니를 잃은 닉키를 자기 아들처럼 극진히 돌보는 것이 마가렛. 로즈의 생명보험금이 지불되기 전 보험회사로 부터 로즈 죽음에 대해 조사를 하려고 버드 쿠퍼(오스카 아이작)가 라지네 집을 방문한다. 이어서 유혈 낭자한 폭력과 살인이 일어난다. 끔찍한데도 킬킬대고 웃게 되는데 이런 설정이 코엔 형제의 ‘화고’를 연상시킨다. 
이런 살인 미스터리와 함께 백인 주민들의 흑인 이웃에 대한 증오심이 폭발하면서 방화와 폭력이 자행된다. 그리고 여기에 남군기가 등장한다. 클루니는 평소에 내면에 잠복해 있다 때가 되면 고개를 드는 점잖은 중산층 백인들의 위선과 인종차별을 다소 젠체하면서 비판하고 있다. 
시사성이 있는 내용과 흥미 위주의 다크 코미디를 범벅했으나 가상한 뜻만큼 내용이나 연출이 따르질 못한다. 볼만한 것은 데이먼과 1인2역의 모어의 연기로 특히 데이먼이 겉은 순진해 보이나 속에 감춘 불만과 한이 있는 남자의 연기를 능청맞게 잘한다. R등급. ★★★(5개 만점)
                                                            <한국일보 박흥진 편집위원/ hjpark1230@gmail.com>



2017년 10월 23일 월요일

‘BPM’


션이 거리 시위에서 격렬하게 춤을 추고 있다.

1990년대 파리 동성애자들 AIDS 퇴치투쟁과 우정·사랑


영화제목 ‘BPM’은 심장의 박동률(Beats Per Minute)을 뜻하는 것으로 AIDS로 수많은 프랑스의 젊은이들이 쓰러져가던 1990년대 파리에서 있었던 저항단체 ‘액트 업’(ACT UP)의 활동과 회원들 간의 투쟁과 우정과 사랑을 그린 훌륭한 드라마다. 
시대에 뒤떨어진 감이 있고 대사와 나오는 인물들이 너무 많고 근 2시간 반 가량의 상영시간을 이어가면서 폭발적인 마지막 30분이 오기 전까지 진행 속도가 다소 처지는 감이 있긴 하나 신념과 정열과 확신으로 가득 찬 급박하고 맹렬한 작품이다.
노골적인 동성애 장면이 있어 모든 사람에게 어필할 영화는 아니지만 영화가 가지고 있는 강력한 사회적 정치적 의미와 함께 뛰어난 연기 그리고 작중 인물들에 대한 연민과 사랑이 넘치는 감독의 배려가 가슴에 와 닿는다. 실제로 ‘액트 업’의 회원이었던 로빈 캄필로 감독의 경험을 바탕으로 만들었다. 
당시 프랑스에서 AIDS에 감염되는 사람은 연 6,000명으로 이는 영국과 독일의 두 배가 되는 수치다. 이런데도 그 대응에 지지부진한 프랑수아 미테랑 정부와 치료약 개발에 박차를 가하지 않는 제약회사들에 저항하고 또 이들의 각성을 촉구하기 위해 생긴 것이 ‘액트 업’이다. 
차분하고 실제적인 티보(앙트완 레나르)가 회장으로 있는 ‘액트 업’의 열띤 토론 장면으로 시작된다. 강경파와 온건파들 간에 격한 토론이 벌어진다. 영화는 많은 이런 토론 장면과 함께 회원들 간의 개인적 관계 그리고 이들이 겪는 공포와 무기력감 및 근접성과 서로 간에 보여주는 부드러움을 교차해 가면서 진행되는데 불쑥불쑥 격렬한 시위와 파괴 장면이 이에 섞여든다. 지적이요 감정적인 연출 솜씨인데 조금 지적인 쪽으로 기울고 있다. 
여러 인물들 중에 중심인물이라 할 만한 사람은 AIDA환자로 극단적인 션(나우엘 페레스 베스카야르)과 나산(아르노 발라). AIDS에 감염은 안 됐지만 단체에 새로 가입한 나산과 션은 서로가 첫 눈에 가까워지면서 깊은 관계를 맺게 된다. 두 사람의 사랑과 육체적인 정열 그리고 션의 궁극적 죽음이 가슴 메어지게 절실하게 그려졌다.
이들은 시위와 함께 고등학교를 방문해 학생들에게 콘돔을 나눠주고 또 고무 파우치에 가짜 피를 담아 제약회사에 쳐들어가 사방팔방에 뿌린다. 물론 경찰에 체포되나 이들에겐 그것이 오히려 큰 선전이 된다. 
AIDS로 인한 속도 느린 죽음이 처음으로 아이 같은 얼굴의 제레미(아리엘 브론스틴)를 통해 묘사되는데 이와 함께 션의 상태 악화가 거의 보기 힘들 정도로 자세히 그려진다. 션을 돌보기 위해 아파트까지 옮긴 나산의 사랑과 지극한 간호가 감동적이다. 갈수록 면역력이 떨어지는 션의 절규가 처절하다. 
조용하게 가슴을 때리고 들어오는 장면은 나오는 인물 들 중의 한 사람이 선택한 약물에 의한 자살. 감상적이지 않고 민감하게 처리됐는데 그가 죽은 뒤 그의 집을 찾아온 조문객들의 슬픔이 배제된 클로스 업 된 얼굴들이 통곡보다 더 강하게 느껴진다. 앙상블 캐스트의 조화와 극적 열기는 좋지만 그 반면 개개인의 묘사가 약화됐다. 그러나 베스카야르와 발라의 연기가 출중하다. 촬영과 박진한 전자음악도 좋다. ★★★½ (5개 만점) 
                                                              <한국일보 박흥진 편집위원/ hjpark1230@gmail.com>


‘스노맨’(The Snowman)


형사 해리 호울은 자기 가족까지 위협하는 킬러를 집요하게 추적한다.

눈사람 살인예고 ‘연쇄킬러’ 잡아라… 호화 출연진이 펼치는 스릴러


흐리고 춥고 눈 덮인 노르웨이를 무대로 벌어지는 연쇄살인 사건을 파헤치는 술꾼 형사와 아름다운 동료 여형사의 스산하고 으스스한 스릴러인데 보기에는 말끔하고 제대로 가다듬어졌으나 스릴러의 필요조건인 서스펜스와 스릴이 모자란다.
노르웨이 작가의 베스트셀러를 스웨덴감독 토마스 알프레드슨(‘렛 더 라이트 원 인’)이 연출하고 국제적 올스타 캐스트가 나오는데 플롯과 대사가 어디서 많이 본 영화를 모방한 듯이 구태의연한데다가 배우들 간의 화학작용이나 연기도 탐탁치 못하다. 결정적 잘못은 범인이 누구인지를 영화 중간 쯤 가서 알 수 있는 것. 알프레드슨은 이런 부실을 감추려고 공연히 여러 가지 교란작전을 쓰고 있다. 
오슬로에서 젊은 어머니들이 살해된다. 범인은 살인 전에 표적의 집 앞에 눈사람을 만들어 놓는다. 이를 수사하는 형사가 줄담배에 호주가로 규칙을 무시하는 제멋대로 형의 해리 호울(마이클 화스벤더). 여기에 새로 전근 온 아름다운 여형사 카트린 브렛(레베카 퍼거슨)이 합류한다.
둘은 수사를 통해 현재 사건이 수십 년 전에 발생한 미제 살인사건들과 함께 오슬로 외의 다른 도시와도 관계가 있다는 것을 캐낸다. 그리고 백만장자 사업가 아르베 스톱(J.K. 시몬즈)과 오래 전에 엽총 자살(?)한 또 다른 술꾼 형사 거트 라프토(발 킬머) 등이 이 사건에 연루됐음도 드러난다.
호울은 이혼한 전처 라켈(샬롯 갱스부르)과 라켈의 아들과 다시 화해하려고 애를 쓰는데 킬러가 자기 가족을 위협한다는 것을 알게 되면서 사적으로도 킬러를 잡으려고 혈안이 된다. 이와 함께 브렛의 비밀도 밝혀진다. 브렛은 개인적으로 복수를 하기 위해 킬러 체포에 매달린다.
그리고 살인자는 호울에게 편지를 보내 호울을 희롱한다. 통속적인 스릴러의 모양새를 지닌 마지막 부분에 이은 결말 처리도 미숙하다.
긴장감 있고 스릴 가득한 영화로 만들 수 있는 소재를 평범하게 처리해 심심하다. 인물들의 묘사도 깊이가 모자라는데 연기파인 화스벤더의 연기도 공연히 심각하다. 그와 퍼거슨 간의 콤비에도 열기가 부족하다.
이 밖에 희생자 중의 한 사람으로 나오는 클로에 세비니와 형사반장 역의 토비 존스 그리고 시몬즈와 갱스부르 등도 다 제대로 사용되질 못했다. 특히 어색한 것은 킬머(‘탑 건’)의 모습과 연기다. 오래간만에 보는데 자다 막 일어난 사람같이 군다. 그러나 이런 결점에도 불구하고 시간 보내기엔 적당한 영화다. R등급. Universal. ★★½ (5개 만점)
                                                              <한국일보 박흥진 편집위원/ hjpark1230@gmail.com>

하비의 ‘캐스팅 카우치’

할리웃에는 ‘캐스팅 카우치’(casting couch)라는 말이 있다. 스튜디오의 막강한 권력을 쥔 사장과 제작자와 감독들이 배역을 미끼로 자기들의 사무실 카우치에서 젊은 여성 스타지망생들로부터 섹스를 제공 받은 것에서 온 말이다.  할리웃 황금기 콜럼비아사의 해리 콘 사장이 그 중 한 사람이다.
이 카우치는 할리웃의 생성과 함께 있어온 것으로 얼마 전에 만난 더스틴 호프만도 “50년 전에 내가 배우생활을 시작했을 때도 그 것은 있었지”라며 한숨을 내쉬었다. ‘캐스팅 카우치’ 얘기는 조지 페파드가 영화사사장으로 나와 자기에게 섹스를 제공한 여자들을 스타로 만들어주는 야한 드라마 ‘카펫배거스’에서도 잘 묘사되어 있다.
이 ‘캐스팅 카우치’ 때문에 지금 할리웃의 뜨거운 화제 거리가 되고 있는 사람이 명제작자 하비 와인스틴(65^사진)이다. 그가 자신의 권력을 이용해 지난 수십 년 간에 걸쳐 애슐리 저드, 그위니스 팰트로 및 앤젤리나 졸리 등 수많은 여배우들을 성적으로 희롱했다는 사실이 밝혀지면서 와인스틴은 삽시에 인디영화의 거목에서 섹스치한으로 전락하고 말았다. 이로 인해 와인스틴은 자기가 회장으로 있던 와인스틴영화사와 함께 아카데미로부터도 퇴출당했다.
와인스틴은 동생 밥과 함께 영화사 미라맥스의 창업주로 남들이 다루기를 꺼려하는 주제와 개인적 비전이 뚜렷한 감독의 영화를 서슴없이 만들면서 인디영화를 흥행서도 성공시킨 인디영화의 제우스와도 같은 존재였다. 그의 영화들은 총 300여개의 오스카상 후보에 올랐는데 오스카 작품상을 탄 ‘영국인 환자’ ‘사랑에 빠진 셰익스피어’ ‘시카고’ 및 ‘왕의 연설’ 등이 다 그의 영화들이다.
와인스틴은 자기 추행이 폭로되자 “나는 요즘과는 판이한 1960년대와 70년대의 풍토에서 자랐다”면서 어설픈 변명을 늘어놓았다. 이는 옛날에 직장의 힘 있는 남자들이 자기 밑의 여자들을 성적 노리개로 삼았던 풍토를 말한다. 1950년대와 60년대 맨해탄의 광고계 실태를 그린 TV시리즈 ‘매드 멘’을 보면 여자들은 비서직만 얻어도 큰 성공이요 그 자리를 지키기 위해선 자기 상사에게 섹스를 제공하는 일은 당연지사로 그려졌다.
할리웃에서 권력 있는 남자들이 여배우들이나 부하 여직원들을 성적으로 희롱하는 일은 ‘공개된 비밀’이나 마찬가지다. 지금 할리웃에선 와인스틴 스캔들로 인해 가슴이 섬뜩한 영화사 간부들이 한둘이 아닐 것이다. 그리고 또 이런 일은 할리웃 뿐 아니라 미 산업 전반에 걸쳐 일어나고 있는 것도 현실이다.
‘캐스팅 카우치’ 사건은 비단 할리웃에서만 일어나는 것은 아니다. 한국에서도 지난 2009년 떠오르는 스타 장자연이 매니저의 압력으로 감독을 비롯해 화사사장 등에게 섹스를 제공하고 술시중 등을 들다가 심한 우울증에 빠져 29세의 나이로 자살했다. 사건 후 한 인권단체가 여배우들을 상대로 조사한 결과 조사대상 중 60%가 출세를 위해 성적 서비스를 제공하라는 압력을 받았다고 했다.
그런데 ‘캐스팅 카우치’가 지금까지도 유용하게 쓰이고 있는데는 명성과 부를 위해선 어떤 대가도 지불할 용의가 있다는 일부 젊은 스타지망생들에게도 어느 정도 책임이 있다는 것도 사실이다.
왕년의 할리웃에서 와인스틴과 같은 비행을 하고도 멀쩡히 살아남은 사람 중의 하나가 알프렛 히치콕이다. 히치콕은 자기 영화 ‘새들’과 ‘마니’에 기용한 금발미녀 티피 헤드렌에게 끈질기게 성적으로 추근거리다가 거절당했다. 내가 헤드렌과 만났을 때 그는 “그 후로 내 할리웃 생애가 내리막길을 걷게 되었다”고 말했다.
이번 와인스틴 추행사건에 대한 희생자들의 폭로가 뒤늦은 이유도 이런 보복이 두려웠기 때문이다. 할리웃은 겉으로 보기엔 진보적이지만 또래들끼리 똘똘 뭉치는 폐쇄된 동네여서 한 배우가 영화사의 눈밖에 벗어나면 다른 영화사들로 부터도 금기인물 취급을 받게 마련이다. 이런 동네이니 만큼 동료의 비행을 알면서도 너도 나도 ‘나 모르쇠’하는 것도 관례처럼 됐다.
나는 와인스틴을 몇 차례 만났는데 스모선수 같은 체구에 위압적인 인상이었지만 영화에 대한 사랑 하나만은 지극하다는 것을 깨달을 수 있었다. 그래서 그는 왕년의 명제작자들로 영화 사랑이 극진했던 새뮤얼 골드윈, 데이빗 O. 셀즈닉, 대릴 F. 재눅 등에 비유 됐었다. 그러나 그는 성질이 고약해 욕설을 밥 먹듯이 내뱉고 자기 목표를 위해선 공갈과 협박도 서슴지 않아 많은 사람들을 적으로 만들었다.
“나는 유명해 여자들을 마구 더듬어도 된다”고 호언장담하는 사람이 대통령이 되는 나라에서 와인스틴의 추행은 사실 경악할 일도 아니다. 이번 스캔들로 할리웃에서 ‘캐스팅 카우치’가 완전히 사라질지는 의문이지만 적어도 이 동네의 물이 어느 정도 맑아질 것만은 사실이다.
                                                             <한국일보 박흥진 편집위원/ hjpark1230@gma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