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이야기

2017년 11월 2일 목요일

예비수녀(Novitiate)


캐슬린은 신에 대한 사랑을 확신하고 수녀가 되기로 결심한다.

예비 수녀들의 갈등·고뇌 사실적으로 묘사한 수작


1960년대 초 수녀원의 기성 수녀들과 예비 수녀들의 관계와 갈등과 우정을 깊이 있고 지적으로 해부한 탁월한 드라마로 신성하면서도 세속적이다. 신병 훈련소 소장처럼 엄격하고 혹독한 수녀원장과 이에 맹목적으로 헌신하는 나이 먹은 수녀들 그리고 원장의 독주에 저항하는 젊은 수녀의 얘기와 함께 이들의 밑에서 고된 훈련을 받는 예비수녀들의 종교적 인간적 정열과 신에 대한 믿음과 회의를 질서정연하고 아름답고 또 스타일 멋있게 묘사한 작품이다.
신에 대한 사랑과 믿음 그리고 회의와 함께 이 가운데서 시달리는 예비수녀들의 육체적 영적 갈등과 고뇌가 절실히 가슴을 파고드는데 이런 갈등에 서스펜스 스릴러 분위기마저 감돈다. 신인배우들의 뛰어난 연기와 함께 흥미진진한 내용에 함몰하게 만드는 수작이다. 
1964년 장소를 알 수 없는 곳의 한 수녀원. 주인공인 예비수녀 캐슬린 해리스(마가렛 퀄리)가 어떻게 해서 수녀원에 들어오게 되었는지가 회상식으로 얘기된다. 어린 캐슬린은 무신론자인 어머니에 끌려 동네 성당미사에 참석하는데 어머니가 딸을 이 곳에 데려온 이유는 종교란 허망한 것이라는 점을 알려주기 위해서다. 그러나 캐슬린은 부부싸움이 잦은 집안 분위기와 정반대인 성당의 평화로운 분위기에 사로잡힌다. 이어 캐슬린은 장학금을 주는 지역 가톨릭학교에 입학하고 17세가 되면서 신에 대한 사랑 때문에 수녀원의 예비수녀 후보로 들어간다. 
자신을 신의 대리인이라고 말하는 인정사장 없이 엄격한 원장(멜리사 리오가 과장됐을 정도로 신나게 열연한다) 밑에서 후보생들은 기혹할 정도로 모진 훈련을 받는데 이에 여러 명이 세상으로 돌아가고 12명 정도만 남는다. 다양한 후보생들의 모습과 성격이 골고루 묘사되는데 한 후보생은 오드리 헵번이 나온 영화 ‘파계’를 보고 수녀가 되기로 결심했다고 고백한다. 
이어 바티칸에서 획기적인 개혁안이 채택된다. 미사를 라틴어에서 일상어로 하고 자신에 대한 체형을 금지하며 타종교에 관대하며 아울러 수녀들이 지닌 권위를 대폭 위축시킨다는 내용이다. 이에 결사반대하는 것이 원장과 고참수녀들. 그런데 실제로 이 조치 이후 전 세계서 90,000여명의 수녀가 파계했다고 한다. 
이런 가운데서도 캐슬린은 신에 대한 확고한 믿음으로 신부복을 입고 수녀가 되기 전의 한 의식인 신과의 결혼식을 치른다. 수녀들의 성적 욕망과 자위행위 그리고 동료 간의 육체적 접촉과 이에 대한 죄의식 등이 민감하고 절제 있게 묘사되면서 작품을 사실적이면서도 고상하게 격상시킨다. 
캐슬린과 원장과 함께 중점적으로 얘기를 이끌어 나아가는 사람이 진보적인 수녀 메리 그레이스(다이애나 애그론). 그레이스는 고집불통인 원장의 횡포에 강력히 반발하면서 원장의 적이 되다시피 한다. 마침내 캐슬린이 정식 수녀가 되는 의식이 열린다. 라스트 신이 강한 인상을 남긴다. 
그림자와 빛을 잘 사용한 촬영과 고전 합창곡과 현대음악을 고루 쓴 음악도 좋다. 그러나 이 영화에서 무엇보다 빛나는 것은 배우들의 연기다. 고참 리오를 비롯해 신인 배우들의 연기가 깊이가 있고 엄숙하며 고요하게 빛을 발한다. 여류 매기 베츠의 감독 데뷔작으로 그가 각본도 썼다. 적극 관람을 권한다. 성인용. ★★★★ (5개 만점)
                                                           <한국일보 박흥진 편집위원/ hjpark1230@gmail.com>


서버비콘(Suburbicon)


가드너(오른쪽)와 로즈의 평온한 삶은 심야강도에 의해 파괴된다.

코엔 형제 각본·클루니 감독… 치정살인 미스터리·인종차별 섞인 블랙코미디


유혈 낭자하고 사체가 쌓이는 블랙 코미디의 장인들인 코엔 형제가 각본을 쓰고 조지 클루니가 감독을 한 치정살인을 둘러싼 미스터리와 인종차별을 다룬 드라마인데 완전히 다른 두 영화를 잘못 섞어놓은 것처럼 생경하다. 
겉으로는 멀쩡한 백인들의 인종차별과 우월의식을 넌센스 코미디 식으로 가차 없이 우습게 풍자한 내용과 치정을 둘러싼 보험금을 노린 살인극이 물에 기름 탄 것처럼 서로 겉돌고 있다. 빅 스타들이 나와 그들의 이미지와 다른 연기를 하는 희한한 영화다. 
1959년 미국의 어느 급조한 스필버그 영화의 마을 같은 교외의 백인 동네. 하얀 담장에 새로 지은 집들이 나란히 줄지어 선 이 동네에 어린 아들을 둔 흑인 부부가 이사 오면서 평소 이웃에게 친절하고 상냥하던 백인들의 타 인종에 대한 증오심이 타오른다. 
이들과 다른 가족이 라지 가족. 다소 비만하고 안경을 쓴 가장 가드너 라지(맷 데이먼)는 회사 재무담당 사원으로 겉으로는 선하게 보이나 속은 검다. 그의 부인 로즈(줄리안 모어)는 윌체어에 의지해 사는데 둘 사인엔 어린 아들 닉키가 있다. 이 집의 또 다른 구성원이 로즈의 쌍동이 자매 마가렛(모어). 진보적인 라지 가족은 닉키를 이웃인 흑인 가족의 아들과 놀도록 한다.
어느 날 밤 두 명의 괴한이 라지 집에 들어와 로즈를 살해하고 달아난다. 졸지에 어머니를 잃은 닉키를 자기 아들처럼 극진히 돌보는 것이 마가렛. 로즈의 생명보험금이 지불되기 전 보험회사로 부터 로즈 죽음에 대해 조사를 하려고 버드 쿠퍼(오스카 아이작)가 라지네 집을 방문한다. 이어서 유혈 낭자한 폭력과 살인이 일어난다. 끔찍한데도 킬킬대고 웃게 되는데 이런 설정이 코엔 형제의 ‘화고’를 연상시킨다. 
이런 살인 미스터리와 함께 백인 주민들의 흑인 이웃에 대한 증오심이 폭발하면서 방화와 폭력이 자행된다. 그리고 여기에 남군기가 등장한다. 클루니는 평소에 내면에 잠복해 있다 때가 되면 고개를 드는 점잖은 중산층 백인들의 위선과 인종차별을 다소 젠체하면서 비판하고 있다. 
시사성이 있는 내용과 흥미 위주의 다크 코미디를 범벅했으나 가상한 뜻만큼 내용이나 연출이 따르질 못한다. 볼만한 것은 데이먼과 1인2역의 모어의 연기로 특히 데이먼이 겉은 순진해 보이나 속에 감춘 불만과 한이 있는 남자의 연기를 능청맞게 잘한다. R등급. ★★★(5개 만점)
                                                            <한국일보 박흥진 편집위원/ hjpark1230@gmail.com>



2017년 10월 23일 월요일

‘BPM’


션이 거리 시위에서 격렬하게 춤을 추고 있다.

1990년대 파리 동성애자들 AIDS 퇴치투쟁과 우정·사랑


영화제목 ‘BPM’은 심장의 박동률(Beats Per Minute)을 뜻하는 것으로 AIDS로 수많은 프랑스의 젊은이들이 쓰러져가던 1990년대 파리에서 있었던 저항단체 ‘액트 업’(ACT UP)의 활동과 회원들 간의 투쟁과 우정과 사랑을 그린 훌륭한 드라마다. 
시대에 뒤떨어진 감이 있고 대사와 나오는 인물들이 너무 많고 근 2시간 반 가량의 상영시간을 이어가면서 폭발적인 마지막 30분이 오기 전까지 진행 속도가 다소 처지는 감이 있긴 하나 신념과 정열과 확신으로 가득 찬 급박하고 맹렬한 작품이다.
노골적인 동성애 장면이 있어 모든 사람에게 어필할 영화는 아니지만 영화가 가지고 있는 강력한 사회적 정치적 의미와 함께 뛰어난 연기 그리고 작중 인물들에 대한 연민과 사랑이 넘치는 감독의 배려가 가슴에 와 닿는다. 실제로 ‘액트 업’의 회원이었던 로빈 캄필로 감독의 경험을 바탕으로 만들었다. 
당시 프랑스에서 AIDS에 감염되는 사람은 연 6,000명으로 이는 영국과 독일의 두 배가 되는 수치다. 이런데도 그 대응에 지지부진한 프랑수아 미테랑 정부와 치료약 개발에 박차를 가하지 않는 제약회사들에 저항하고 또 이들의 각성을 촉구하기 위해 생긴 것이 ‘액트 업’이다. 
차분하고 실제적인 티보(앙트완 레나르)가 회장으로 있는 ‘액트 업’의 열띤 토론 장면으로 시작된다. 강경파와 온건파들 간에 격한 토론이 벌어진다. 영화는 많은 이런 토론 장면과 함께 회원들 간의 개인적 관계 그리고 이들이 겪는 공포와 무기력감 및 근접성과 서로 간에 보여주는 부드러움을 교차해 가면서 진행되는데 불쑥불쑥 격렬한 시위와 파괴 장면이 이에 섞여든다. 지적이요 감정적인 연출 솜씨인데 조금 지적인 쪽으로 기울고 있다. 
여러 인물들 중에 중심인물이라 할 만한 사람은 AIDA환자로 극단적인 션(나우엘 페레스 베스카야르)과 나산(아르노 발라). AIDS에 감염은 안 됐지만 단체에 새로 가입한 나산과 션은 서로가 첫 눈에 가까워지면서 깊은 관계를 맺게 된다. 두 사람의 사랑과 육체적인 정열 그리고 션의 궁극적 죽음이 가슴 메어지게 절실하게 그려졌다.
이들은 시위와 함께 고등학교를 방문해 학생들에게 콘돔을 나눠주고 또 고무 파우치에 가짜 피를 담아 제약회사에 쳐들어가 사방팔방에 뿌린다. 물론 경찰에 체포되나 이들에겐 그것이 오히려 큰 선전이 된다. 
AIDS로 인한 속도 느린 죽음이 처음으로 아이 같은 얼굴의 제레미(아리엘 브론스틴)를 통해 묘사되는데 이와 함께 션의 상태 악화가 거의 보기 힘들 정도로 자세히 그려진다. 션을 돌보기 위해 아파트까지 옮긴 나산의 사랑과 지극한 간호가 감동적이다. 갈수록 면역력이 떨어지는 션의 절규가 처절하다. 
조용하게 가슴을 때리고 들어오는 장면은 나오는 인물 들 중의 한 사람이 선택한 약물에 의한 자살. 감상적이지 않고 민감하게 처리됐는데 그가 죽은 뒤 그의 집을 찾아온 조문객들의 슬픔이 배제된 클로스 업 된 얼굴들이 통곡보다 더 강하게 느껴진다. 앙상블 캐스트의 조화와 극적 열기는 좋지만 그 반면 개개인의 묘사가 약화됐다. 그러나 베스카야르와 발라의 연기가 출중하다. 촬영과 박진한 전자음악도 좋다. ★★★½ (5개 만점) 
                                                              <한국일보 박흥진 편집위원/ hjpark1230@gmail.com>


‘스노맨’(The Snowman)


형사 해리 호울은 자기 가족까지 위협하는 킬러를 집요하게 추적한다.

눈사람 살인예고 ‘연쇄킬러’ 잡아라… 호화 출연진이 펼치는 스릴러


흐리고 춥고 눈 덮인 노르웨이를 무대로 벌어지는 연쇄살인 사건을 파헤치는 술꾼 형사와 아름다운 동료 여형사의 스산하고 으스스한 스릴러인데 보기에는 말끔하고 제대로 가다듬어졌으나 스릴러의 필요조건인 서스펜스와 스릴이 모자란다.
노르웨이 작가의 베스트셀러를 스웨덴감독 토마스 알프레드슨(‘렛 더 라이트 원 인’)이 연출하고 국제적 올스타 캐스트가 나오는데 플롯과 대사가 어디서 많이 본 영화를 모방한 듯이 구태의연한데다가 배우들 간의 화학작용이나 연기도 탐탁치 못하다. 결정적 잘못은 범인이 누구인지를 영화 중간 쯤 가서 알 수 있는 것. 알프레드슨은 이런 부실을 감추려고 공연히 여러 가지 교란작전을 쓰고 있다. 
오슬로에서 젊은 어머니들이 살해된다. 범인은 살인 전에 표적의 집 앞에 눈사람을 만들어 놓는다. 이를 수사하는 형사가 줄담배에 호주가로 규칙을 무시하는 제멋대로 형의 해리 호울(마이클 화스벤더). 여기에 새로 전근 온 아름다운 여형사 카트린 브렛(레베카 퍼거슨)이 합류한다.
둘은 수사를 통해 현재 사건이 수십 년 전에 발생한 미제 살인사건들과 함께 오슬로 외의 다른 도시와도 관계가 있다는 것을 캐낸다. 그리고 백만장자 사업가 아르베 스톱(J.K. 시몬즈)과 오래 전에 엽총 자살(?)한 또 다른 술꾼 형사 거트 라프토(발 킬머) 등이 이 사건에 연루됐음도 드러난다.
호울은 이혼한 전처 라켈(샬롯 갱스부르)과 라켈의 아들과 다시 화해하려고 애를 쓰는데 킬러가 자기 가족을 위협한다는 것을 알게 되면서 사적으로도 킬러를 잡으려고 혈안이 된다. 이와 함께 브렛의 비밀도 밝혀진다. 브렛은 개인적으로 복수를 하기 위해 킬러 체포에 매달린다.
그리고 살인자는 호울에게 편지를 보내 호울을 희롱한다. 통속적인 스릴러의 모양새를 지닌 마지막 부분에 이은 결말 처리도 미숙하다.
긴장감 있고 스릴 가득한 영화로 만들 수 있는 소재를 평범하게 처리해 심심하다. 인물들의 묘사도 깊이가 모자라는데 연기파인 화스벤더의 연기도 공연히 심각하다. 그와 퍼거슨 간의 콤비에도 열기가 부족하다.
이 밖에 희생자 중의 한 사람으로 나오는 클로에 세비니와 형사반장 역의 토비 존스 그리고 시몬즈와 갱스부르 등도 다 제대로 사용되질 못했다. 특히 어색한 것은 킬머(‘탑 건’)의 모습과 연기다. 오래간만에 보는데 자다 막 일어난 사람같이 군다. 그러나 이런 결점에도 불구하고 시간 보내기엔 적당한 영화다. R등급. Universal. ★★½ (5개 만점)
                                                              <한국일보 박흥진 편집위원/ hjpark1230@gmail.com>

하비의 ‘캐스팅 카우치’

할리웃에는 ‘캐스팅 카우치’(casting couch)라는 말이 있다. 스튜디오의 막강한 권력을 쥔 사장과 제작자와 감독들이 배역을 미끼로 자기들의 사무실 카우치에서 젊은 여성 스타지망생들로부터 섹스를 제공 받은 것에서 온 말이다.  할리웃 황금기 콜럼비아사의 해리 콘 사장이 그 중 한 사람이다.
이 카우치는 할리웃의 생성과 함께 있어온 것으로 얼마 전에 만난 더스틴 호프만도 “50년 전에 내가 배우생활을 시작했을 때도 그 것은 있었지”라며 한숨을 내쉬었다. ‘캐스팅 카우치’ 얘기는 조지 페파드가 영화사사장으로 나와 자기에게 섹스를 제공한 여자들을 스타로 만들어주는 야한 드라마 ‘카펫배거스’에서도 잘 묘사되어 있다.
이 ‘캐스팅 카우치’ 때문에 지금 할리웃의 뜨거운 화제 거리가 되고 있는 사람이 명제작자 하비 와인스틴(65^사진)이다. 그가 자신의 권력을 이용해 지난 수십 년 간에 걸쳐 애슐리 저드, 그위니스 팰트로 및 앤젤리나 졸리 등 수많은 여배우들을 성적으로 희롱했다는 사실이 밝혀지면서 와인스틴은 삽시에 인디영화의 거목에서 섹스치한으로 전락하고 말았다. 이로 인해 와인스틴은 자기가 회장으로 있던 와인스틴영화사와 함께 아카데미로부터도 퇴출당했다.
와인스틴은 동생 밥과 함께 영화사 미라맥스의 창업주로 남들이 다루기를 꺼려하는 주제와 개인적 비전이 뚜렷한 감독의 영화를 서슴없이 만들면서 인디영화를 흥행서도 성공시킨 인디영화의 제우스와도 같은 존재였다. 그의 영화들은 총 300여개의 오스카상 후보에 올랐는데 오스카 작품상을 탄 ‘영국인 환자’ ‘사랑에 빠진 셰익스피어’ ‘시카고’ 및 ‘왕의 연설’ 등이 다 그의 영화들이다.
와인스틴은 자기 추행이 폭로되자 “나는 요즘과는 판이한 1960년대와 70년대의 풍토에서 자랐다”면서 어설픈 변명을 늘어놓았다. 이는 옛날에 직장의 힘 있는 남자들이 자기 밑의 여자들을 성적 노리개로 삼았던 풍토를 말한다. 1950년대와 60년대 맨해탄의 광고계 실태를 그린 TV시리즈 ‘매드 멘’을 보면 여자들은 비서직만 얻어도 큰 성공이요 그 자리를 지키기 위해선 자기 상사에게 섹스를 제공하는 일은 당연지사로 그려졌다.
할리웃에서 권력 있는 남자들이 여배우들이나 부하 여직원들을 성적으로 희롱하는 일은 ‘공개된 비밀’이나 마찬가지다. 지금 할리웃에선 와인스틴 스캔들로 인해 가슴이 섬뜩한 영화사 간부들이 한둘이 아닐 것이다. 그리고 또 이런 일은 할리웃 뿐 아니라 미 산업 전반에 걸쳐 일어나고 있는 것도 현실이다.
‘캐스팅 카우치’ 사건은 비단 할리웃에서만 일어나는 것은 아니다. 한국에서도 지난 2009년 떠오르는 스타 장자연이 매니저의 압력으로 감독을 비롯해 화사사장 등에게 섹스를 제공하고 술시중 등을 들다가 심한 우울증에 빠져 29세의 나이로 자살했다. 사건 후 한 인권단체가 여배우들을 상대로 조사한 결과 조사대상 중 60%가 출세를 위해 성적 서비스를 제공하라는 압력을 받았다고 했다.
그런데 ‘캐스팅 카우치’가 지금까지도 유용하게 쓰이고 있는데는 명성과 부를 위해선 어떤 대가도 지불할 용의가 있다는 일부 젊은 스타지망생들에게도 어느 정도 책임이 있다는 것도 사실이다.
왕년의 할리웃에서 와인스틴과 같은 비행을 하고도 멀쩡히 살아남은 사람 중의 하나가 알프렛 히치콕이다. 히치콕은 자기 영화 ‘새들’과 ‘마니’에 기용한 금발미녀 티피 헤드렌에게 끈질기게 성적으로 추근거리다가 거절당했다. 내가 헤드렌과 만났을 때 그는 “그 후로 내 할리웃 생애가 내리막길을 걷게 되었다”고 말했다.
이번 와인스틴 추행사건에 대한 희생자들의 폭로가 뒤늦은 이유도 이런 보복이 두려웠기 때문이다. 할리웃은 겉으로 보기엔 진보적이지만 또래들끼리 똘똘 뭉치는 폐쇄된 동네여서 한 배우가 영화사의 눈밖에 벗어나면 다른 영화사들로 부터도 금기인물 취급을 받게 마련이다. 이런 동네이니 만큼 동료의 비행을 알면서도 너도 나도 ‘나 모르쇠’하는 것도 관례처럼 됐다.
나는 와인스틴을 몇 차례 만났는데 스모선수 같은 체구에 위압적인 인상이었지만 영화에 대한 사랑 하나만은 지극하다는 것을 깨달을 수 있었다. 그래서 그는 왕년의 명제작자들로 영화 사랑이 극진했던 새뮤얼 골드윈, 데이빗 O. 셀즈닉, 대릴 F. 재눅 등에 비유 됐었다. 그러나 그는 성질이 고약해 욕설을 밥 먹듯이 내뱉고 자기 목표를 위해선 공갈과 협박도 서슴지 않아 많은 사람들을 적으로 만들었다.
“나는 유명해 여자들을 마구 더듬어도 된다”고 호언장담하는 사람이 대통령이 되는 나라에서 와인스틴의 추행은 사실 경악할 일도 아니다. 이번 스캔들로 할리웃에서 ‘캐스팅 카우치’가 완전히 사라질지는 의문이지만 적어도 이 동네의 물이 어느 정도 맑아질 것만은 사실이다.
                                                             <한국일보 박흥진 편집위원/ hjpark1230@gmail.com>


2017년 10월 15일 일요일

‘아토믹 블론드’ 샬리즈 테론



“평소 액션영화 매료… 98% 대역없이 직접 촬영”


그래픽 노블이 원작인 ‘아토믹 블론드’에서 1989년 베를린장벽이 붕괴되기 직전 소련 스파이 수중에 넘어간 영국과 미국 스파이들의 이름이 적힌 리스트를 회수하기 위해 베를린에 파견돼 총과 칼과 온 몸을 사용해 닥치는 대로 적을 처치하는 백금발의 영국 스파이 로레인 브러턴으로 나온 샬리즈 테론(42)과의 인터뷰가 LA인근의 유니버설 스튜디오에서 있었다. 오스카 수상자인 장신의 테론은 짧은 금발의 얼음처럼 차게 보이는 미녀로 가끔 상소리를 섞어가면서 질문에 침착하고 차분하게 대답했는데 태도가 매우 도도하고 당당했다. 미소를 아끼면서 엄격하고 사무적인 자세로 질문에 대답해 거리감이 느껴졌다. 테론은 지난 2013년부터 역시 오스카 수상자인 배우이자 감독인 션 펜과 데이트를 시작해 2014년에 약혼을 했으나 다음 해 파혼했다.

-영화의 무대인 베를린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가.
“베를린은 내가 좋아하는 유럽의 5대 도시 중의 하나다. 아름답고 가장 빠르게 변화하는 도시 중의 하나다. 나는 베를린 시민과 음식과 문화를 사랑하며 그 곳에서의 체류를 즐겼다. 실제로 베를린에서는 영화 내용과 같은 일이 벌어졌기 때문에 이 도시는 영화에 사실감과 함께 무게를 주고 있다.”

-영화에서 보여준 액션 신은 어느 다른 영화에서도 볼 수 없었던 굉장한 것인데 하기가 힘들었는가.
“육체적으로 얘기를 하는 영화란 점이 큰 도전이었고 그래서 그에 응전하려고 나온 것이다. 내가 발레 댄서였기에 더 그렇다. 데이빗 리치 감독은 액션을 위한 액션이 아니라 얘기를 위한 액션을 구사하면서 최대한으로 액션을 몰고 갔는데 그로 인해 난 온 몸이 쑤셔 아침에 촬영장에 와서도 차에서 내리질 못해 누군가의 부축을 받아야 했다. 그러나 시간이 흐르면서 몸은 기계처럼 액션에 익숙해졌다. 그리고 강함과 자신감을 갖게 됐다.”

-아시안 무술가로부터 훈련을 받았다고 들었는데.
“그렇다. 무술 실력이 대단한 여러 사람이 각기 자신들의 주특기를 가르쳐 주었는데 무술 선생들 중에 여러 사람들이 영화에 러시아 스파이로 나왔다. 그래서 그들을 상대로 액션을 하기가 편했고 또 단 한 건의 부상도 없었다. 액션은 일종의 댄스다. 상대와 호흡이 맞는 댄스는 하루 이틀에 배워지는 것이 아니다. 그래서 내 무술 선생이 아닌 생면부지의 스턴트맨들과 액션을 하면서는 실제로 그들이 내 발길질과 주먹질에 얻어맞기가 일쑤였다. 미안해서 술을 여러 병 사다줬다.”

백금발의 스파이 로레인이 공격하는 적을 때려 누이고 있다.
-요즘 들어 할리웃이 여성이 주인공인 액션영화를 많이 만드는데 이 동네에 바야흐로 여성시대가 왔다고 보는가.
“그럴 수도 또 아닐 수도 있다. 그저 큰 파이의 한 조각을 먹는 것이라고 보면 된다. 여성 액션영화로 내가 어렸을 때 보고 깊은 감명을 받은 것이 시고니 위버가 나온 ‘에일리언’이다. 그러나 잠깐 유행하더니 다시 중단됐다. 꾸준하지가 못하다. 한 번 여성 액션영화가 흥행에 실패하면 더 이상 안 만드는 것이 현실이다. 인구상으로는 여성이 남성보다도 많은데도 여성 액션영화가 남성 액션영화에 비해 훨씬 적다는 것은 뭔가 그른 일이다. 오래 동안 여자들은 액션을 안 좋아한다는 관념 속에서 살아왔기 때문인데 통계적으로는 여자들도 액션 비디오게임을 즐기고 격투기도 즐긴다고 나타났다. 내가 이 영화에 나온 것도 이런 영화를 관객으로서 보고 즐기고 싶었기 때문이었다.”

-진짜 여자 스파이에게 자문을 구했는가.
“아니다. 영화 내용이 분명하고 또 내 역의 임무가 뚜렷해 그저 당시 상황과 영국 정보부 MI6의 여자 스파이 모습 등을 연구했을 뿐이다. 스파이의 개성을 이해하려고 노력했다. 그들은 매우 흥미 있는 사람들이다. 스파이 생활을 오래한 사람들은 대부분 알코올 중독자이거나 무모하고 변칙적으로 정상적인 사회생활을 하기가 힘든 사람들이다. 이런 역을 한다는 것은 배우로서 매우 흥미 있는 일이다.”

-어떤 운동을 하는가.
“난 매우 활동적인 사람으로 하이킹을 즐긴다. 나는 밖에 나가기를 좋아하며 움직이고 무언가 하기를 좋아한다. 그리고 사람들과 어울리고 파워 요가 등 내 육체적 한계를 극도로 밀어 올리기를 좋아한다.”

-수많은 나쁜 남자들을 차고 때리고 죽이는 기분이 어땠는가.
“위험한 부분은 스턴트 대역이 했지만 이렇게 심한 육체적 훈련을 받는다는 것은 단순히 육체적일 뿐만이 아니라 뇌 속의 엔도르핀을 방출하는 것이요 정신적으로도 가공할 일이다. 자신을 강하게 느끼고 동작에 대해 분명한 생각을 지닌다는 것은 멋진 일이다. 내가 그런 싸움을 해보진 않았지만 기분은 매우 좋았다.” 

-이런 액션영화를 계속 만들 것인가.
“난 장르를 좋아하나 그것에 연연하지는 않는다. 난 좋은 얘기에 감동하고 영감을 얻는다. 그래서 ‘몬스터’에선 체중을 40파운드를 늘렸고 ‘매드 맥스: 분노의 도로’에선 머리를 밀고 나온 것이다. 육체적인 것으로 얘기를 한다는 것은 드문 일이어서 난 늘 액션영화에 매력을 느꼈고 또 그것을 탐구하려고 했다. 내가 말없이 얘기를 한 첫 경험은 발레리나 때였다. 그 때 난 단순히 몸을 사용해 얘기를 했는데 그래서인지 난 아직도 육체로 얘기를 하는 것과 깊은 연관을 맺고 있다.”

-촬영할 때 카메라를 얼마나 의식 하는가.
“연기한다는 것은 카메라를 의식하지 않고 스스로를 역에 몰입시키는 것이다. 배우로서 가장 어려운 첫 번째 일은 자기만의 공간과 공연하는 배우들과의 직접적 관계를 맺기 위해 그 밖에 자기 앞의 다른 모든 것 즉 조명과 촬영진과 카메라 등을 다 마음으로 제거해야 한다는 것이다. 자기를 완전히 역에 투자하고 가능한 한 사실적이 되려고 시도한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영화를 찍다가 다치진 않았는가.
“액션 훈련을 받을 때 이에 문제가 있었지만 큰 문제는 없었다. 문제는 데이빗이 한 액션 장면을 쉬지 않고 8-9초 동안 찍으려고 하는 것이었다. 보통 액션 장면은 하나 찍는데 2초 정도 걸린다. 액션 장면은 그렇게 찍은 뒤 다 편집과정에서 짜맞추는 것이다. 데이빗의 의도대로 찍으려면 스턴트 대역을 쓸 수 없다. 좋은 액션 장면을 8-9초 동안 찍으려면 같은 사람이 계속해 움직여야 한다. 액션 장면의 98%는 나다.” 

-이젠 남자를 진짜로 때려누일 수가 있는가.
“모르겠다. 격투에는 진짜 기술이 필요하다. 그리고 싸운다는 것은 수학이다. 공격하기 전에 먼저 상대의 체중과 크기 그리고 자신의 육체를 어떻게 움직일 것인가를 셈해야 한다. 손을 써야 하느냐 아니면 무릎과 어깨와 팔꿈치를 써야 할 것인가를 다 셈해야 한다.”

-원작인 그래픽 노블을 읽었는가.
“아직 출판되지 않은 10페이지짜리를 읽었다. 난 인물이 마음에 들어 출연에 응했는데 영화의 인물과 원작의 인물은 육체적으로 서로 많이 다르다. 원작자와 후에 만났는데 그는 로레인을 자기 장모로부터 영감을 받아 그렸다고 말했다. 그래픽 노블 속의 로레인은 왜 그가 액션을 휘두르는 여자가 되었는가에 대해 아무 설명이 없는데 난 그것이 아주 마음에 들었다. 제임스 본드가 왜 액션을 휘두르는 남자가 되었는가에 대해 별 설명이 없는 것처럼 여자라고 해서 그 이유를 밝혀야 될 까닭이 없지 않은가.” 

-할리웃에선 보기 드물게 할 말은 꺼림없이 하는 여자로 알려졌는데.
“어머니 덕이다. 어머니는 내가 어렸을 때부터 여자라는 것 때문에 결코 부정적이거나 무언가 하고픈 말이나 행동을 주저해선 안 된다고 가르쳐 주었다. 그리고 난 10대 때 남아공의 시골에서 자랐는데 그 때 그곳 사람들은 늘 반쪽짜리 진실을 얘기하고 속삭이거나 거짓말 아니면 허황된 선전이나 하면서 살고 있었다. 난 이에 반발해 하고픈 말은 해야겠다고 결심했다. 죽을 때 어느 정도 진실하게 살았다고 생각할 수 있어야 하지 않는가.”
                                                              <한국일보 박흥진 편집위원/ hjpark1230@gmail.com>


브리드(Breathe)

로빈과 다이애나(왼쪽)가 케냐의 황혼 속에 사랑을 나누고 있다.

“윌체어로는 막을 수 없다” 사랑과 생존 투쟁기


소아마비 환자로 의사의 예견과 권유를 무시하고 병원에서 나와 특수 윌체어에 의지해 살면서 자기와 같은 처지의 사람들의 권익을 위해 투쟁한 영국의 로빈 캐븐디쉬와 그를 옆에서 돕고 격려하고 또 사랑한 아내 다이애나 블랙커의 생존 투쟁기이자 순애보다. 아름답고 매력적이며 가슴 울리는 멜로드라마이지만 감상적이지 않고 진지하면서도 경쾌하고 밝고 맑게 그렸는데 영화가 너무 말끔하고 고운 것이 흠이라면 흠.
에디 레드메인이 오스카상을 탄 스티븐 호킹의 얘기 ‘모든 것의 이론’을 연상케 하는 이 영화는 배우인 앤디 서키스의 감독 데뷔작이다. 서키스는 ‘반지의 제왕’에서의 골룸 역과 ‘원숭이들의 혹성’ 시리즈에서 얼굴 표정과 움직임을 포착해 원숭이들의 리더인 시저를 연기한 배우로 연출 솜씨가 매우 스무스하다.
1950년대 중반 영국의 상류층 멋쟁이 로빈(앤드루 가필드)은 클럽하우스에서 크리켓을 하다 경기를 구경하던  아름다운 다이애나(클레어 포이)를 보고 첫눈에 반한다. 다이애나도 마찬가지로 둘은 곧 결혼한다. 그리고 둘이 로빈의 업무차 케냐에 갔다가 로빈이 쓰러진다. 그의 나이 28세 때였다. 
진단결과 악성 소아마비. 귀국한 로빈은 목 아래를 쓸 수 없게 되는데 의사는 몇 달 못 산다고 진단한다. 그러나 로빈과 다이애나는 의사의 권유를 무시하고 사랑과 삶의 의지와 용기로 똘똘 뭉쳐 감옥 같은 병원을 떠나 집으로 돌아온다. 이 때부터 두 부부의 치열한 생존을 위한 투쟁이 시작되는데 이 투쟁의 주도자는 로빈이라기 보다 다이애나다. 따라서 이 영화는 다이애나의 얘기기도 하다.
로빈은 과학자 테디 홀(휴 본느빌)이 만든 호흡기가 부착된 윌체어를 타고 우선 집 밖으로 나가 신선한 공기를 즐기다가 이어 차량을 개조해 멀리 나들이를 가고 마침내는 비행기에 윌체어를 싣고 스페인 등 유럽 여행까지 즐긴다.
남편을 돌보는 다이애나에게 좌절과 어려움이 없을 리 없으나 그는 때로 좌절하고 지치고 화를 내다가도 곧 남편에 대한 지극한 사랑과 투지와 정성 그리고 밝은 성격으로 인해 이를 극복한다. 그리고 두 사람 간에 육체적 애정의 표시도 은근히 묘사되는데 물론 이런 애정의 행위는 전적으로 다이애나에 의해 표현된다.
로빈은 이어 산송장 취급받는 자기 같은 사람들을 위해 독일을 방문, 의사들 앞에서 이들의 편의와 권익을 위해 보다 진취적으로 대응해줄 것을 호소한다. 로빈은 영국에서 호흡기가 부착된 윌체어를 이용해 집 밖으로 나간 첫 사람이다. 그는 의사의 예견과는 달리 소아아비로 쓰러진 뒤에도 36년을 더 살았다.
늘 진지한 가필드(핵소 리지)와 넷플릭스 시리즈 ‘크라운’(The Crown)에서의 엘리자베스 여왕 역으로 급부상한 포이의 콤비가 보기 좋은데 두 사람의 인물이 빛과 그림자를 고루 섞어 묘사되진 못했다. 끝에 가서 손수건이 필요한 사람들이 있을 것이다. 로빈과 다이애나의 사랑을 반주하듯이 빙 크로스비가 부르는 ‘트루 러브’가 흐른다. PG-13. ★★★ (5개 만점)
                                                                 <한국일보 박흥진 편집위원/ hjpark1230@gma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