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이야기

2017년 9월 19일 화요일

그들은 먼저 내 아버지를 죽였다(First They Killed My Father)


루앙이 포탄을 피해 언덕 아래 숨어 있다.


앤젤리나 졸리 연출력의 한계 또 다시 드러내



유엔 대사로 세계의 분쟁지역을 돌며 인도주의 활동을 펴고 있는 앤젤리나 졸리가 감독한 캄보디아 크메르 루지의 양민 대학살에 관한 실화로 제작 의도가 가상하고 모양새가 번듯하나 깊이와 강한 충격이 모자란다.
졸리는 캄보디아에서 아들 매독스를 갓난 아기 때 입양해 이 나라와 긴밀한 관계를 유지하면서 캄보디아를 여러 차례 방문했고 이 작품의 실제 주인공으로 현재 미국에서 살고 있는 루앙 웅(47)과도 밀접한 관계를 유지하고 있다. 루앙 웅이 쓴 자전이 원작이다
따라서 이 영화는 졸리에게 개인적으로 가까운 심혈을 기울인 대작인데 정성을 다한 마음만큼 열매는 익지를 못 했다. 졸리의 다른 연출작품들인 보스니아 전쟁을 다룬 ‘피와 꿀의 나라에서’와 태평양전쟁의 생존기 ‘언브로큰’ 등도 마찬가지로 졸리의 연출력은 열기와 깊이와 강한 힘이 모자란다.
이 영화와 같은 내용을 다룬 오스카 수상작인 롤랜드 조피 감독의 ‘킬링 필즈’(1984)의 잔인한 폭력이 던져준 두고두고 잊지 못할 강력한 감동과 충격에 비하면 졸리의 영화는 너무 유순하게 폭력을 다뤘다. 13세 소녀의 눈으로 본 얘기여서 그렇다 치더라도 전인구의 4분의 1을 학살한 역사를 다룬 것으로선 내장이 찢어지는 듯한 격렬한 고통이나 충격이 크게 모자란다.
1975년 크메르 루지가 캄보디아를 통치하면서 프놈펜에서 정부 관리로 일하던 루앙(스레이목 사레움이 민감하고 표현력 강한 연기를 한다)의 아버지와 가정주부인 어머니 그리고 루앙의  오빠와 언니 등은 수용소로 보내져 기아와 노동과 학대에 시달린다. 그리고 정체가 드러난 루앙의 아버지가 처형된다(이런 폭력적인 장면들이 화면 밖에서 일어나거나 아니면 흐리게 처리돼 전체적으로 영화가 맹물 마시는 기분이다.)
그리고 루앙을 비롯한 아이들도 어머니를 떠나 뿔뿔이 헤어지고 루앙은 대 베트남전쟁을 위한 소녀병이 되어 지뢰매설과 총검술을 배운다. 이런 지옥 같은 역경 속에서도 루앙은 강한 의지와 지혜를 구사해 살아남고 오빠와 언니들과도 재회한다.
136분의 긴 상영시간 동안 당시의 정치적 상황이나 가족의 이산과 재회 등을 폭 넓게 다루지 못하고 같은 얘기를 반복하고 있는데 루앙과 루앙의 부모 역을 제외하고 나머지 인물들은 피상적으로 다뤄졌다. 루앙과 또래의 아이들이 지뢰를 피해 조심스럽게 피신하는 장면 등을 공중에서 찍은 촬영과 음악은 좋다. 15일부터 네트플릭스를 통해 방영되며 랜드마크(피코와 웨스트우드) 등 일부 극장에서 상영된다. ★★★(5개만점)
                                                            <한국일보 박흥진 편집위원/ hjpark1230@gmail.com>


학교 생활 (School Life)


선생님 존이 제자의 운동화 끈을 매어주고 있다.

사랑으로 지도하는 참 선생님들의 모습 ‘가슴 뭉클’


사부일체라는 말도 있듯 스승은 부모와도 같은 것. 아일랜드의 기숙사 초등학교 헤드포트의 스승과 제자들의 관계를 1년간 다룬 기록영화로 스승들의 제자들에 대한 지극한 정성과 돌봄 그리고 사랑이 가득히 배어있다. 
매우 감동적이요 아름답고 부드러운 작품으로 이 학교에서 근 반 세기 동안 제자들을 양성한 노부부교사 존과 아만다 레이든을 중심으로 교사들의 제자 지도와 학생들의 수업 풍경 그리고 교직원 회의와 학생들의 기숙사 안에서의 생활 및 레이든 부부의 가정생활 모습 등이 상세히 묘사되고 있다. 
레이든 부부가 가르친 제자 중에는 이 학교의 원기왕성하고 진보적인 교장 더못도 포함돼 있는데 부부가 연극과 음악 등 특별 과외 수업을 통해 수업 진도가 다소 느리고 소심한 아이들을 격려하면서 그들이 활짝 피어나게 만드는 심신을 다 한 가르침이 가슴을 뭉클하게 만든다. 
이와 함께 자연 속에 위치한 고풍찬연한 건물 안과 밖에서 공부하고 뛰어노는 어린 학생들의모습이 자연스럽고 다정하게 카메라에 포착되는데 그런 학교 안팎의 학생들의 활동과 계절의 변화를 따라 찍은 촬영과 잔잔히 물결치는 음악이 곱다. 
헤드포트는 예비학교로 이 학교를 나온 우수한 학생들은 영국의 사립명문 이튼 등에 들어간다. 한 남학생이 학기가 끝나고 선생님으로부터 이튼에 입학이 허락되었다는 통보를 받고 기뻐하는 모습이 기특해 보인다.
이웃집 마음 착한 아주머니 같은 아만다는 영어 선생으로 학생들에게 가장 중요한 것이 독서라고 적극적으로 권한다. 그리고 연극 ‘햄릿’을 무대에 올리면서 리허설하는 장면이 자세히 그려지는데 여기서 성적이 다소 부진한 남학생이 햄릿의 독살당한 아버지 귀신으로 나오면서 자신을 얻는다. 
한편 존은 이웃집의 무뚝뚝한 아저씨 같지만 속은 자상하고 인자한 라틴어 전문. 그는 정상수업과 함께 음치들보다 조금 나은 학생들을 모아 록밴드를 조직하는데 리허설 괴정에서 노래를 신통치 못하게 부르는 여학생들에게 가차 없이 “됐어”라며 핀잔을 준다. 그러나 결국 밴드가 구성돼 학생들이 모여 춤추고 박수를 치는 가운데 연주를 성공리에 마친다. 
모든 선생님들은 학생들을 극진히 사랑하고 그들의 진로 안내에 열과 성을 다하는데 더못 교장과 스승들은 한결 같이 세상의 변화를 원한다면 너희들이 먼저 스스로 그 변화 시도에 앞장서라고 역설한다. 레이든 부부의 학교에서의 지도와 함께 그들이 집에서도 학생들의 학업성취도와 개별 신상문제를 서로 염려하면서 얘기하는 다정한 정경을 통해 이들 부부의 제자 사랑이 포근하고 따뜻하게 얘기된다. 
영화는 눈가에 습기가 고이는 스승들과 제자들의 이별장면으로 끝난다. 학생들이 자기들을 데리러 온 부모들 앞에서 스승들과 함께 친구들과 포옹을 하면서 이별을 아쉬워하는데 이제 중학교에 들어갈 소년이 자꾸 흐르는 눈물을 옷소매로 닦으면서 이 사람 저 사람과 이별의 포옹을 나누는 모습을 보자니 눈물이 고인다. 
떠나가는 제자들을 두고 집으로 돌아가는 레이던 부부의 뒷모습과 부모와 함께 집으로 돌아갈 차에 올라타는 학생들의 모습에서 삶의 퇴장 길로 들어선 사람과 활짝 열린 긴 미래로 나아갈 어린 아이들의 삶의 자태가 엿보인다. 스승과 제자가 모두 보기를 권한다. ★★★★½ (5개 만점) 
                                                            <한국일보 박흥진 편집위원/ hjpark1230@gmail.com>

홈 어겐(Home Again)


술김에 하룻밤을 함께 보낸 앨리스(왼쪽)와 해리.

위더스푼 출연 구태의연한 로맨틱 코미디


오스카상을 탄 리스 위더스푼의 오발탄 같은 로맨틱 코미디로 한 마디로 볼썽사납다. 40대 여자와 20대 남자의 사랑을 다룬 ‘메이-디셈버’ 로맨스 영화인데 진부하고 구태의연하며 인공 감미료 맛이 나는 보기에 낯간지러운 나쁜 영화다. 여성 팬들을 노리고 만들었는데 무기력하고 전연 특색이 없는 영화이니 속지 마시도록.
이 영화는 ‘왓 위민 원트’와 ‘섬싱스 갓 투 기브’ 같은 로맨틱 코미디를 잘 만드는 여류 낸시 마이어스 감독의 딸 할리 마이어스-샤이어가 각본을 쓰고 감독으로 데뷔한 작품인데 그야말로 허영의 산물이다. 연출력이 펑퍼짐하고 각본도 밋밋하며 전체적으로 너무 소독을 해 영화에 긴장감이 없고 인물들도 개성이 전무하다.
두 주인공인 나이 먹은 위더스푼과 그의 젊은 상대역으로 나오는 개인적 특징이 결여된 패션 모델 같은 피코 알렉산더 간의 화학작용도 전연 없으며 위더스푼이 철없는 소녀처럼 과장되게 애교를 떠는 연기를 하는데 어색해 얼굴이 뜨거워진다.
어린 두 딸을 데리고 뉴욕에서 살다가 남편 오스튼(마이클 쉰)과 헤어진 뒤 LA의 자기가 자란 집으로 이사 온 40대의 앨리스(위더스푼)는 실내 장식가. 고독하고 불행하다며 질질 짜는데 어느 날 친구들과 함께 바에 갔다가 일이 생긴다.
20대의 영화감독 지망생 해리(알렉산더)와 그의 동생으로 배우 지망생인 테디(냇 울프) 그리고  이들의 친구로 각본을 쓰는 조지(이온 러드니츠키)는 막 살고 있던 아파트에서 쫓겨나 홧술을 마시러 이 바에 들렀다. 그리고 모두 술에 취한 남녀들이 춤추고 얘기를 나누다가 앨리스와 해리가 눈이 맞아 둘이 앨리스의 집에서 하룻밤을 보낸다. 앨리스가 이튿날 깨어보니 테디와 조지도 카우치에서 자고 있다.
이 때 앨리스의 어머니(캔디스 버겐-오래 만에 반갑지만 하필 이런 영화에서 만날 것이 무언가)가 나타나 남자들과 얘기를 나누더니 셋을 게스트 하우스에서 살라고 선심을 쓴다. 그 다음은 어떻게 될지 명약관화한 일. PG-13. ★★(5개 만점)
                                                             <한국일보 박흥진 편집위원/ hjpark1230@gmail.com>


제리 루이스


내가 철이 덜 든 어른 같은 코미디언 제리 루이스를 화면을 통해 처음 본 것은 루이스가 그의 명콤비였던 딘 마틴과 함께 나온 ‘화가와 모델’이었다. 중학생 때 서울의 서대문에 있던 동양극장에서 봤는데 어찌나 우습고 재미있었던지 영화가 끝나는 것이 아쉬웠었다.
내가 정신 나간 얼간이 같은 루이스를 실제로 처음 만난 것은 지난 2005년 1월 내가 속한 LA영화 비평가협회가 그에게 생애업적상을 주었을 때다. 나는 그 때 시상만찬에 참석한 그에게 다가가 악수를 청한 뒤 “난 당신 영화 보며 컸어요”라고 감개무량해 했더니 루이스는 옆에 동석한 사람에게 “이 친구 내 영화 보며 컸대”라며 웃었었다. 그 날 루이스는 연단에 올라가 상을 받은 뒤 “이 상을 받아 기쁜데 염병할 왜 이렇게 오래 걸렸지”라고 투덜대(?) 좌중의 폭소를 자아냈었다.
제리 루이스가 지난 달 20일 91세로 타계했다. 고무 얼굴에 키들 키들대면서 미친 사람처럼 과장된 동작과 함께 약간 모자라는 사람처럼 굴어 전 세계 팬들의 사랑을 받던 루이스는 무대와 TV와 스크린을 누비면서 고단하고 우울한 세상에 웃음을 선사한 천재 코미디언이었다.
나는 루이스(사진)를 작년에 그가 은퇴한 재즈 피아니스트로 나온 감상적인 ‘맥스 로즈’를 위한 할리웃 외신기자협회와의 기자회견 때 다시 만났다. 루이스는 지팡이를 짚고 윌체어를 타고 회견에 임했는데 상소리를 섞은 유머와 위트를 유감없이 구사하면서 청산유수로 대답을 했다. 그러나 귀가 잘 안 들려 질문에 “왓 왓”하며 소리를 질러댔다.
미친 에너지를 발산하며 곡예사 같은 동작으로 사람을 웃기던 그의 이런 모습을 보자니 세월의 속절없음에 가슴에 구멍이 생기듯 허전해졌다. 그러나 루이스는 90이 오히려 좋고 스릴 있다고 말했다. 그는 “난 이제 걷기도 보기도 듣기도 힘들지만 그 것이 내가 내야할 렌트라면 괜찮다”며 세월을 수용했다.
루이스는 자기 영화의 각본을 쓰고 연출과 함께 주연도 한 만능 재주꾼으로 그의 감독 데뷔작은 ‘벨 보이’(1960). 그의 대표작인 ‘정신 나간 교수’도 루이스가 1인3역을 한 영화다. 그런데 루이스는 미국 비평가들보다 유럽 특히 프랑스로부터 지극한 사랑을 받았다. 그는 프랑스 정부가 주는 최고의 문화훈장까지 받았다. 이 때문인지 루이스는 한 인터뷰에서 “미국 비평가들은 창녀들로 한 푼의 가치도 없는 것들”이라고 독설을 해댄바 있다.
루이스는 영화에서 천진난만한 아이처럼 구는데 그는 이에 대해 “내 영화가 아이들의 행동에 바탕을 둔 이유는 아이들이 즐기는 재미야 말로 순수하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자기가 행복하고 웃을 때는 좋은 영화를 만들 때라는 루이스는 그러나 요즘 미국영화에 대해서는 머리를 절레절레 내저었다. 영화들이 너무 폭력적이기 때문이다.
루이스는 1946년부터 10년간 명콤비였던 딘 마틴을 그리워하면서 “우린 마법적인 관계로 서로를 극진히 사랑했다”면서 “그와 갈라선 후 오래 동안 서로의 의견 차로 대화를 하지 않은 것은 어리석은 일이였다”며 후회했다. 둘은 함께 모두 16편의 영화를 만들었다.
루이스는 깔깔대고 웃으며 농담도 잘 했지만 이와 함께 삶을 충분히 산 현자와도 같은 말도 많이 했다. 자기 삶에 대한 후회가 없느냐는 물음에 “후회란 하고 앞으로 나아가야지 그 것을 계속해 생각하고 짊어지고 갈 필요는 없다”고 말했다. 또 자신이 사람들로부터 어떻게 기억되길 원하느냐는 질문에는 “죽은 뒤에는 들을 수가 없으니 어찌 기억되든 상관없다”고 잘라 말했다.
루이스는 영화를 통해 우리에게 기쁨과 웃음을 준 것처럼 실제로도 즐겁게 산다고 말했다. “나는 하느님이 준 매일의 24시간을 즐기며 산다”며 “어찌 행복하지 않을 수가 있느냐”고 삶을 예찬했다. 매일 아침 4시 반에 일어나 글을 쓰고 가끔 영화에 대한 강의를 하면서 지난 36년간 사랑해온 아내 샌디와 함께 행복하게 살고 있다고 했다.
루이스의 잊지 못할 평생 친구는 케네디와 채플린. 케네디는 자기처럼 영화광으로 그가 죽을 때까지 서로 뜻 깊은 관계를 유지해 왔었다고 말했다. 그리고 채플린으로 부터는 많은 것을 배웠는데 채플린이 죽었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 몸의 한 부분을 잃은 것 같았었다고 기억했다.  나는 루이스에게 “전설적인 코미디언인 당신은 우울하거나 고독할 때면 어떻게 그 것에서 벗어나느냐”고 물었다. 이에 루이스는 “묘지를 찾아가 내가 아직도 살아있다는 것에 대해 하느님에게 감사 한다”고 이죽거렸다. 그러던 그가 이제 묘지에서 쉬게 됐다. 루이스의 몸은 땅에 묻히고 영혼은 하늘에 올라 그는 지금 자기보다 먼저 도착한 사람들 앞에서 천국 코미디쇼를 보여주고 있을지도 모른다. 하늘로부터 루이스의 깔깔대고 웃는 소리가 들려오는 것 같다.                                                                
                                                           <한국일보 박흥진 편집위원/ hjpark1230@gmail.com>

2017년 9월 4일 월요일

총독의 저택(Viceroy‘s House)


마운트배튼 총독이 간디(왼쪽)와 인도 독립문제를 논의하고 있다. 가운데는 총독부인 에드위나.

인도 독립 서사시, 엉성한 구성으로 몰입 떨어뜨려


1947년 8월 인도가 영국으로부터 독립하기 직전 이 역사적 절차를 순조롭게 진행시키기 위해  인도 총독으로 부임한 루이스 마운트배튼 경(휴 본느빌)의 실화를 허구와 섞어 만든 화사한 시대극으로 ‘베컴처럼 차라’를 감독한 인도계 미국 여류감독 구린더 차다가 연출했다. 
옛날 영화식의 대하 서사극으로 앙상블 캐스트와 현지 촬영을 비롯해 의상과 세트 등 표면적으로는 잔칫상처럼 화려하고 풍성하나 연출 능력이나 내용은 다소 진부하고 감정적으로나 극적으로도 깊이가 모자란다. 언뜻 보기엔 ‘인도로 가는 길’을 연출한 데이빗 린의 작품을 연상시키나 광범위하고 파란만장한 얘기를 너무 소심하고 곱고 깨끗하며 또 피상적으로 다뤄 극적 충격이 약해 작품 안으로 몰입이 제대로 되질 않는다.  
영화는 정치적 내용과 함께 340개의 방이 있는 총독의 저택 내 지배 계급과 하인 계급의 얘기를 ‘위층 아래층’ 식으로 다뤄 역시 본느빌이 나온 영국 드라마 시리즈 ‘다운턴 애비’를 생각나게도 한다.  
합리적이요 진보적인 마운트배튼 경은 아내 에드위나(질리안 앤더슨)와 함께 뉴델리 총독 저택에 여장을 풀자마자 인도 독립 문제 논의에 들어간다. 문제는 인도를 한 국가로 독립시키느냐 아니면 힌두족이 대다수인 인도로부터 회교도들을 분리시켜 2개의 국가로 독립시키느냐 하는 것. 이를 놓고 총독은 간디(네라지 카비)와 네루(탄베르 가니)와 연쇄 회담을 벌이면서 아울러 회교도 대표인 모하메드 알리 지나(덴질 스미스)와도 회담을 갖는다.
이와 함께 저택 밖 세상에서는 힌두교들과 무슬림들 간에 유혈 폭력이 일어나면서 수많은 인명이 살상되고 이런 갈등은 저택 내 하인들에게까지 번진다. 이에 마음이 다급해진 총독은 인도를 두 국가로 나누기로 결정하고 영국으로부터 변호사 시릴 래드클립(사이먼 캘로)을 불러들여 인도와 파키스탄 사이의 국경을 그리도록 시킨다.
이런 정치적 얘기와 함께 총독을 비롯한 지배 계층과 이들에게 봉사하는 사람들의 일상이 묘사되면서 뜬금없이 로미오와 줄리엣 같은 사랑의 얘기가 끼어든다. 마치 밖에서의 힌두교 대 무슬림의 갈등에 대비시키기라도 하려는 듯이 저택 내 하인층인 힌두 청년 지트(머니시 다얄)와 무슬림 처녀 알리아(후마 쿠레시) 간의 사랑이 묘사되나 이는 상투적인 당의정 식의 곁가지다.
격동적인 실화를 다룬 영화로선 얘기의 결이나 구성이 엉성한데 장려한 드라마가 되기보다는 공손한 소프트 오페라가 됐다. 그리고 인물들의 성격 개발이나 그들이 작품에 얹는 무게도 실하지 못하다. 좋은 소재를 충분히 살리진 못했으나 볼 만은 하다. 영국과 인도의 베테랑 스타들인 마이클 갬본과 지난 1월에 사망한 옴 푸리가 나온다. 그런데 바람둥이인 에드위나는 네루와 정사를 벌였고 마운트배튼도 정부가 있었다고 한다. ★★★(5개 만점) 
                                                           <한국일보 박흥진 편집위원/ hjpark1230@gmail.com>


폴리나(Polina)


폴리나(오른쪽)가 아드리앙과 함께 댄스훈련을 받고 있다.

“꿈을 찾아서…” 발레리나의 고뇌·피와 땀 그려


독립심 강한 발레댄서의 자아 추구를 직선적이면서 약간 기록영화 식으로 다룬 프랑스영화로 감독과 주·조연 배우가 다 실제로 발레를 연마한 사람들이다. 발레영화로 뛰어나 것은 ‘분홍 신’과 ‘흑조’가 있는데 이 영화는 이 둘의 수준에 이르진 못하나 댄서의 고통과 고뇌와 인내 그리고 피와 땀을 진지하고 흥미 있게 다뤘다. 특히 전통 발레와 현대 무용을 표현한 안무가 볼만하다. 바스티앙 비베의 그래픽 노블이 원작.
공산체제 하 소련의 한 공업도시에서 가난한 부모와 함께 사는 소녀 폴리나(베로니카 조브니츠카)는 발레학교 오디션을 통과해 엄격한 스승(알렉세이 쿠스콥)으로 부터 강훈련을 받는다. 폴리나는 귀갓길에도 즉흥적으로 댄스를 하면서 즐거워하는 타고난 댄서다.
이어 10대가 된 폴리나(아나스타시아 쉐브초바-실제로 마린스키 발레단원이었다)는 저명한 볼쇼이 발레단 오디션을 앞두고 현대무용을 보고나서 자신의 예술적 본능을 추구하기 위해 함께 댄스를 수련한 프랑스 청년 아드리앙(닐스 슈나이더)과 함께 프랑스로 간다. 틀에 박힌 전통 무용을 탈피해 즉흥적이요 살아 있는 현대적인 댄스를 배우겠다는 욕심에서다
여기서 폴리나는 아드리앙과 동거하면서 자유혼을 지닌 현대 무용가 리리아(연기파 베테런 쥘리엣 비노쉬도 실제로 발레를 수련했다)로 부터 강훈련을 받는다. 몸에 상처가 나고 발톱이 뭉개지는 고된 수련이다.
그러나 부평초 같은 폴리나는 리리아가 약속한 ‘백설 공주’의 프리마 돈나 역을 다른 사람에게 주자(자기 탓이긴 하지만) 이번에는 벨기에 안트웝으로 이주해 바에서 일한다. 그리고 거리의 생활과 전자음악으로 부터 영감을 취하는 즉흥적 댄스단체에 들어간다. 폴리나는 비로소 여기서 춤을 추면서 자신의 예술적 욕망을 만족시킨다.          
재능 있는 젊은 여인의 자기 음성을 찾는 이야기의 서술 과정이 고르지 못하고 주인공의 내면 묘사가 약하긴 하지만 쉐브초바의 단단한 연기와 함께 다채로운 안무로 꾸며진 댄스 장면이 볼 만하다. 발레리 뮐러와 프랑스 안무가 앙젤린 프레료카 공동 감독. PG. ★★★(5개 만점)
                                                        <한국일보 박흥진 편집위원/ hjpark1230@gmail.com>



프랑스 영화 ‘구멍’ (Le Trou·1960) 복원

롤랑이 하수구 벽을 뚫으면서 시멘트 조각들을 나르고 있다

탈옥 준비과정 사실적 묘사 조마조마


시몬 시뇨레와 세르지 레지아니가 공연한 어두운 러브 스토리 ‘황금 투구’(Casque d‘Or·1952)와 장 가방, 리노 벤투라 및 잔느 모로가 나온 갱스터 영화 ‘황금에 손대지 마라’(Touchez Pas au Grisbi·1954)와 같은 걸작을 만든 프랑스의 자크 베케 감독이 1960년에 만든 흑백영화 ‘구멍’(Le Trou)은 실화를 바탕으로 한 긴장감 팽팽한 교도소 탈출 이야기다. 
베케는 5명의 탈출을 시도하는 미결수들 역에 주로 비배우들을 썼는데 영화 처음에 카메라를 향해 “이것은 내 친구 자크 베케가 내 실화를 영화로 만든 것”이라고 말하는 사람이 실제 탈출을 기도한 롤랑 바르바(무대 이름 장 케로디)다. 또 베케는 바르바와 함께 탈출을 시도한 미결수 중 2명을 기술 자문으로 고용해 영화의 사실성을 극대화 했다. 
프랑스 갱영화의 거장 장-피에르 멜빌이 “사상 가장 위대한 프랑스 영화”라고 칭찬한 작품으로 또 다른 프랑스 영화계의 거장 장 르놔르에 사사한 베케는 영화 촬영이 끝난지 몇 주 후 53세로 요절했다. 원작은 조제 지오반니가 탈옥 시도를 소설로 쓴 ‘탈출’(The Break)로 베케는 처음에 이 사건을 신문에서 읽고 영화화를 생각했다고 한다. 
1947년 파리의 상테 교도소. 터프 가이들인 중범자 미결수 롤랑 다르방(장 케로디)과 마뉘 보렐리(필립 르로이) 그리고 별명 ‘각하’로 불리는 보슬랑(레이몽 뫼니에)과 제오 카신(미셸 콩스탕팅) 등이 수감된 좁은 방에 아내 살해 미수범으로 기소된 젊은 클로드 가스파르(마르크 미셸)가 이감돼 들어온다. 
롤랑 등은 그 때 탈옥을 기도하던 중이어서 마지못해 클로드에게도 그 계획을 말하는데 이에 클로드도 함께 탈출하겠다고 동의한다. 롤랑 등은 먼저 나무로 된 감방 바닥의 일부를 뜯어낸 뒤 안 쓰는 침대의 철제 골조를 뜯어 망치로 사용해 나무 바닥 밑의 시멘트를 뚫기 시작한다. 마침 이들이 있는 동이 공사 중이어서 망치로 시멘트를 강타하는 소리를 막아준다.
건장한 남자들이 사제 망치로 온 힘을 다해 시멘트를 까부수는 장면을 카메라가 오래 동안 집요하게 붙잡고 늘어지면서 보는 사람마저 온 몸의 근육이 당겨지는 압박감을 느끼게 하는데 영화는 전혀 음악 없이 실제 소리만을 써 사실감이 극에 이른다. 한 사람이 시멘트를 강타하는 동안 다른 한 사람은 손거울을 깬 파편을 칫솔 끝에 감아 잠망경 식으로 감시구멍을 통해 복도의 상황을 탐지한다. 
교도소 내 시설과 숟가락 등 온갖 소지품으로 탈출용 도구를 만들 줄 아는 사람이 과묵한 롤랑으로 그는 주도면밀하고 침착하고 하는 일에 능숙하다. 그와 역시 말수가 적은 마뉘가 팀의 리더 구실을 한다. 
시멘트 바닥이 뚫리면서 롤랑과 마뉘는 좁은 통로를 기어 쇠로 된 창살을 끌로 자르고 넓은 지하 공간으로 진출한다. 그리고 순찰하는 교도관들을 피해 숨어가면서 사제 열쇠로 문을 열고 하수구로 내려간다. 이제 마지막 남은 공사는 하수구의 시멘트벽을 뚫고 외부 세계로 나가는 것. 하수구와 감방 사이의 거리가 멀어 벽을 뚫는 사람들은 사제 모래시계로 시간을 잰 뒤 감방으로 달려가 다음 사람을 깨운다. 이 모래시계는 ‘각하’가 엄살을 부려 교도소 내 병원에서 치료를 받으면서 훔쳐온 2개의 주사액 병으로 만들었다. 
마침내 벽에 구멍이 뚫리고 이제 남은 것은 야반 탈출뿐이다. 롤랑 등은 정장에 타이를 매고 구두를 닦아 신은 뒤 담요를 뒤집어쓰고 자는 척 한다. 순찰이 끝나면 탈옥할 예정이다. 
그런데 교도소장이 클로드를 불러 클로드의 아내가 소를 취하해 얼마 안 있어 출소할 수 있다고 통보하면서 일행의 탈출 시도에 난관이 생긴다. 과연 클로드는 동료들의 탈출 계획을 교도소장에게 고발할 것인가 아니면 동료애를 지킬 것인가.
남자들의 탈출을 위한 일거수 일투족과 지극히 세밀한 부분까지도 정확을 기하려고 신경을 쓴 노력이 역력한 영화로 대부분 좁은 공간에서 진행돼 협소감에 호흡하기가 힘들 정도다. 베케는 마뉘의 단단한 근육질의 벗은 상반신처럼 군더더기를 일체 배제하고 미결수들의 강인하고 치열한 탈출 시도를 물고 늘어지듯이 묘사했다. 그래서 보고 있으면 괴로울 정도로 고단함을 느끼게 된다. 
또 영화는 브로맨스 영화라고도 하겠다. 협소한 감방 안에서 동거하는 사나이들의 동지애가 믿음직한데 이런 과묵하고 듬직한 사나이들이 풍기는 묵직한 분위기를 ‘궁정의 광대’역을 맡은 ‘각하’의 유머가 다정하게 다독여준다. 
영화의 단순하고 꾸밈없는 스타일은 프랑스의 명장 로베르 브레송의 솜씨를 생각나게 하는데 특히 브레송의 감옥 탈출 실화를 그린 ‘남자 탈옥하다’(A Man Escaped·1956)를 거의 모방했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닮았다. 이 영화는 나치가 프랑스를 점령했을 때 레지스탕스 활동을 하다가 수감된 남자의 탈옥을 그린 것으로 ‘구멍’의 집요한 탈옥을 위한 빈틈없는 준비와 과정 등이 이 영화에서 빌려온 것처럼 유사하다. 
*‘구멍’(★★★★½, 5개 만점)이 새로 복원돼 9월1~7일 화인 아츠(8556 Wilshire Blvd.)에서 상영된다.
                                                        <한국일보 박흥진 편집위원/ hjpark1230@gma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