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이야기

2017년 6월 20일 화요일

내가 만난 폴란스키




국제적 도망자인 명장 로만 폴란스키(83)의 오디세이는 언제나 끝날 것인가. 폴란스키는 지난 1977년 잭 니콜슨의 집에서 13세난 모델 지망생 새만사 가이머를 강제로 성추행한 혐의로 기소돼 최종 형을 선고 받기 직전 파리로 달아난 뒤 미 사법당국으로부터 지명수배가 내려 지금까지 ‘페르소나 논 그라타’ 취급을 받으며 살고 있다.
그런데 지난 9일 가이머(54)가 LA 형사법정에 출두, 판사에게 폴란스키에 대한 법적 소송절차를 중단해 달라고 요구하면서 또 다시 폴란스키가 뉴스의 초점이 되고 있다. 가이머는 “나는 이미 과거의 불상사를 극복한지 오래 된다”면서 “폴란스키에 대한 소송절차를 철회함으로써 나와 내 가족을 지난 40년간 따라다닌 미디어로부터 해방시켜 주고 아울러 폴란스키도 여행의 자유를 가지게 해 달라”고 청원했다.
폴란스키는 당시 재판 끝에 90일간의 교도소 정신병동 수감 형을 선고 받은 뒤 42일을 살고 출소했다. 폴란스키는 이로써 형을 완료했다고 믿었으나 담당판사가 당초 약속을 어기고 폴란스키에게 남은 48일을 교도소에서 마저 살고 그 뒤에 자진출국 하든지 아니면 더 긴 형을 내리겠다고 하는 바람에 달아난 것이다. 그 후 폴란스키는 지금까지 미국과 범인 인도협정을 맺은 나라에는 가지 않고 있다.
심리묘사에 뛰어난 폴란스키의 영화들은 공포와 집념 그리고 인간 마음의 탈선 특히 성적 일탈을 자주 그리고 있다. 그의 데뷔작 ‘물속의 칼’과 카트린 드뇌브 주연의 충격적인 심리극 ‘리펄션’ 그리고 미아 패로가 나온 ‘로즈메리의 아기’ 및 폴란스키가 주연도 한 ‘테넌트’ 등이 다 그렇다.
폴란스키가 할리웃에서 만든 영화로 가장 유명한 것이 잭 니콜슨과 페이 더나웨이가 공연한 ‘차이나타운’이다. 그는 지난 2003년 자기 소년시절의 참담한 경험을 바탕으로 만든 ‘피아니스트’로 오스카 감독상을 탔다. 당시 흥분에 들뜬 폴란스키가 비디오영상으로 오스카 회원들에게 감사의 뜻을 전하던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나는 폴란스키를 지난 2011년 10월 파리에서 만났었다(사진) 그가 만든 연극이 원작인 4인 드라마 ‘카니지’ 홍보의 일환이었다. 작달막한 키의 폴란스키는 당시 78세라는 나이답지 않게 젊어 보이고 에너지가 가득했다. 장난기 짙은 약간 쥐 상의 아이 같은 얼굴에 총기가 번득이는 눈을 한 그는 쾌활하고 유머와 위트가 있었다. 매우 솔직해 모든 것을 그대로 털어놓았다.
그는 할리웃 귀환 의도에 대해 “요즘은 할리웃이 아니더라도 어디서나 영화를 만들 수 있다”면서도 “그러나 할리웃의 친구들과 단골 식당이 그립다”고 고백했다. 그는 자신이 운명론자일지도 모른다면서 “내가 할리웃에 계속해 있었다면 내 생애가 달라졌을 것”이라고 말했다.
폴란스키는 도망자로서의 자기신세를 자조하면서 “여러분들이 ‘카니지’로 내게 골든 글로브상을 줘도 난 할리웃에 가지 못하니 일찌감치 다른 사람 생각하는 것이 좋을 것”이라고 능청을 떨었다.    
그는 자신의 젊음의 이유를 일단 유전자 탓으로 돌린 뒤 “스포츠하고 좋은 음식 먹고 시가를 빼고 금연하기 때문”이라고 그 비결을 고백했다. 폴란스키는 이어 반세기가 넘도록 영화를 만드는 동기의 원동력을 “새로운 것을 하고 싶은 도전정신”이라며 “그러나 작품의 주제가 날 움직여야한다”고 덧 붙였다. 폴란스키의 아내는 배우인 에마뉘엘 세녜(50)로 폴란스키는 아내와 해리슨 포드를 사용해 서스펜스 스릴러 ‘프랜틱’을 만들었다.
유대인인 폴란스키는 파리에서 태어나 어렸을 때 부모와 함께 아버지의 고향인 폴랜드로 이주했다. 2차대전이 나면서 그의 부모는 나치의 유대인 수용소에 갇혀 어머니는 개스 처형됐다. 그 후 폴란스키는 크라카우의 유대인게토를 탈출, 시골을 전전하며 죽을 고비를 수차례 넘기면서 선한 타인들의 도움을 받으며 살아남았다.
폴란스키의 많은 영화들이 보는 사람 심리를 불안하게 만드는 데는 그의 이런 어린 시절의 악몽과도 같은 경험이 큰 요인으로 작용하고 있음에 틀림없다. 그는 또 할리웃에서 활동할 당시인 지난 1969년 임신한 아내로 배우인 샤론 테이트(26)가 현재도 수감 중인 맨슨가족에 의해 살해되는 비운을 겪기도 했다.
미국의 법이 이제 그만 관용을 베풀어 폴란스키가 세상을 떠나기 전에 할리웃에 돌아와 탁월한 재주와 실력을 발휘해 만든 영화를 보고 싶다.  
                                                            <한국일보 박흥진 편집위원/ hjpark1230@gmail.com>


2017년 6월 13일 화요일

‘원더 우먼’갤 가돗




“약점 있고 따스한 인간적 원더 우먼 그리려 노력”


DC 코믹스 만화가 원전인 영화 ‘원더 우먼’에서 아마존의 여전사 공주인 다이애나 역을 맡아 수퍼 파워를 지닌 ‘원더 우먼’이 된 이스라엘 태생의 갤 개돗(32)과의 인터뷰가 최근 할리웃의 한 스튜디오에서 있었다. 
가슴골이 깊이 드러난 검은 드레스에 긴 갈색머리를 한 팔등신 미녀 개돗은 영화에 대한 기대감과 스트레스 그리고 지난 3월에 난 둘째 딸 마야를 젖 먹여 키우느라 등이 아프다며 서서 인터뷰에 응했다. 개돗은 시종일관 미소를 지으며 친절하고 상냥하게 물음에 대답했는데 아직도 자기가 ‘원더 우먼’이 된 것을 못 믿어하는 표정이었다. 미스 이스라엘이었던 개돗은 이스라엘 시민의 의무인 군 복무를 했다. 
‘원더 우먼’은 지난 1970년대 미스 월드 아메리카인 린다 카터를 주인공으로 한 TV시리즈로 만들어져 빅히트했었다.

▲자랄 때 존경하고 그처럼 되길 원했던 모범 여성은 누구였는가.
“미국의 시인이요 작가이며 민권운동가인 마야 안젤루다. 난 그가 말한 메시지를 사랑한다. 그래서 내 둘째 딸의 이름도 마야로 지었다. 그 다음으로는 내 어머니와 할머니다.”

▲단 시일에 할리웃에서 급속도로 상승하는 스타가 되었는데 명성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나.
“난 그것에 신경 안 쓴다. 그것은 단지 부수 효과에 지나지 않는다. 난 이미 이스라엘서 오래 동안 유명했기 때문에 명성과 파파라지에 모두 익숙하다. 명성이 좋은 단 하나 이유는 더 이상 오디션 과정을 거치지 않아도 된다는 것이다. 이젠 각본을 읽고 좋으면 출연하고 싫으면 거절해도 된다.”

▲이 영화를 만들면서 도전받은 것은 무엇인가.
“‘원더 우먼’이 힘이 강하다고 해서 반드시 그를 냉정하거나 남자들을 사정없이 처치하는 여자로 묘사하지 않는다는 것에 신경을 썼다. 모든 사람이 ‘원더 우먼’에게 동질감을 느끼도록 하려고 했다. 그가 위대한 전사이면서도 약점이 있고 회의하는 사람이라는 것을 보여주려고 했다. 완벽하지 않기 때문에 더 흥미 있는 인물이 되는 것이다.”

▲두 딸을 가진 어머니로서 이 영화가 여자에게 어떤 의미로 중요하다고 보는가.
“첫째 딸 이름은 히브리어로 우주를 뜻하는 알마다. 난 그들을 이 세상으로 데려온 것이 매우 기쁘다. 난 이 영화가 여자 뿐 아니라 남자에게도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물론 여자에게 있어 여성 권력 쟁취란 중요하지만 그것은 남자를 교육시키지 않고서는 이룰 수가 없다.”

▲ ‘원더 우먼’은 인간에게 연민의 마음을 가지고 있는데 본인의 인간관은 어떤 것인가.
“난 사람들을 사랑한다. 난 사람들을 만날 때면 그들로부터 최선의 것을 기대한다. 그렇지 않으면 실망하게 되기 때문이다. 난 낙천가로 우린 모두 같은 열망과 필요와 꿈을 갖고 있다고 생각한다. ‘원더 우먼’은 이런 것들을 친절하고 따스하게 또 수용과 사랑으로써 상징하고 있다. 우리가 ‘원더 우먼’과 같은 마음을 갖고 있다면 우린 보다 나은 사회를 갖게 될 것이다.”

▲그럼 도널드 트럼프도 사랑할 수 있는가.
“그것은 각자의 기호 문제다. 그러나 난 분명히 누구도 미워하지 않는다.”

▲언제 자신을 원더 우먼처럼 느끼는가.
“내 딸들을 가졌을 때다. 좀 유치한 것 같지만 아기를 낳을 때 내가 신처럼 느껴졌다. 따라서 인생에 있어 최고의 것은 어머니가 되고 생명을 부여하는 것이다.”

▲영화를 위해 얼마나 훈련을 했는가.
“난 12년간 댄서였는데 격투 동작이 마치 춤을 추는 것처럼 느껴졌다. 난 승마가 재미있고 쉬울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진짜로 타보니 매우 고통스러웠다. 무기 중에선 ‘진실의 올가미’라 불리는 채찍이 좋았다. 그것은 칼처럼 공격적이 아니고 사람들로 하여금 진실을 말하게 하기 때문이다.”

원더 우먼이 칼과 방패를 무기 삼아 적과 맞서고 있다.

▲ ‘원더 우먼’이 완벽한 사람이 아닌 허점이 있는 사람이라는 것이 중요하다고 했는데 허점이 약점으로 보일 우려가 있지 않은가.
“‘원더 우먼’은 자기가 살던 곳에서 지상 세계로 나오면서 물 떠난 물고기가 된 셈이다. 그는 선을 믿는 젊은 이상주의자로 세상을 매우 단순한 곳으로 생각하고 있다. ‘원더 우먼’은 인간의 삶이 복잡하다는 것을 모르는데 이 자체만으로도 그는 벌써 허점을 지닌 것이다. 난 그것을 약점으로 보진 않는다. ‘원더 우먼’은 허점이 있기에 영화의 다양한 상황에 모두 적응할 수 있는 것이다.”

▲영화에서의 ‘원더 우먼’의 의상은 1970년대 TV시리즈의 것보다 현대화 했는데 디자인에 자기 의견을 반영했는지.
“옷을 입고 1주일에 6일씩 6개월 간 촬영을 했는데 아주 편했다. 싸우고 연기를 하기 위해선 편해야 했는데 몸에 강렬한 감각을 느끼긴 했으나 편했다. 다자인에 대해선 별 조언을 안 했다. 내가 이미 ‘원더 우먼’으로 나왔던 ‘배트맨 대 슈퍼맨’에서 입은 옷의 연장이라고 보면 된다. 영화를 보면 한 벌의 옷과도 같지만 실은 일곱 벌의 다른 옷들이다.”

▲연기하다 다치기라도 했는지.
“몸 곳곳에 멍이 들었다. 그런데 가장 고통스러웠던 일은 이탈리아의 해변에서 격투장면을 찍다가 섬게에 발을 찔린 것이다. 그 밖에는 안전했다.”

▲영화를 어디서 찍었는가.
“이탈리아와 파리에서도 찍었지만 대부분 런던서 찍었다. 겨울에 야외에서 찍었는데 몸을 노출한 ‘원더 우먼‘의 옷을 입어 추워서 죽는 줄 알았다. 런던 이후 이탈리아에서는 태양을 즐기면서 너무 많이들 먹어 모두들 체중이 불었다.”

▲‘분노의 질주’ 시리즈와 이 영화를 비롯해 대형 액션영화에 자주 나오는 이유가 무엇인가. 
“그런 영화들이 마음에 든다. 난 자랄 때부터 매우 활동적이었고 표현 수단으로 내 몸을 사용했다. 날 액션배우라고 정형화 할 지도 모르겠지만 난 그런 역을 정말로 즐긴다. 언젠가 무거운 드라마도 할 기회가 오겠지만 난 이런 영화들이 좋다.”

▲이스라엘에서 영화나 TV에 나올 의향이라도 있는지.
“언제나 나올 용의가 있다. 난 배우로서 대부분 할리웃에서 일했지만 모국어로 연기한다는 것은 매우 편하다. 따라서 좋은 감독과 내가 흥미를 느낄 수 있는 작품만 있다면 하시라도 나올 것이다.”

▲이스라엘 군에서 받은 훈련과 영화를 위해 받은 훈련이 어떻게 다른가.
“군 훈련이 훨씬 더 강력하다. 매일 하루에 6-7시간 씩 훈련을 받았는데 정말로 고되다.”

▲여류감독 패티 젠킨스와 일한 경험은 어떤가.
“패티는 함께 일하는 배우에게 창조적으로 가까이 접근하는 방법을 터득한 사람이다. 영화 촬영 내내 그는 우리와 함께 있으면서 의견을 교환하면서 상호 교감했다. 난 사람들이 여자가 주인공이니까 여자가 감독한다고 말하는 것을 들으면 착잡한 감정이다. 패티가 이 영화를 맡게 된 이유는 그런 것이 아니라 그가 바로 영화에 적합한 사람이기 때문이다.”

▲어떻게 역을 얻게 됐는가.
“몇 년 전 미국에 왔을 때 다른 영화들을 위해 여러 차례 오디션에 참석해 지쳐 연기를 거의 포기할 상태였다. 카메라 테스트 후에 퇴짜 당하기가 일쑤였다. 난 배우가 되려고 해서 된 것이 아니라 어쩌다 됐기 때문에 그럴 때마다 배우가 내 직업이 아니구나 하고 생각하곤 했다. 그런데 어느 날 이 영화의 제작자인 잭 스나이더가 영화 이름도 안 밝히고 나보고 오디션에 나오라고 해서 참가한 뒤 이스라엘로 귀국했다. 얼마 후 스나이더가 전화로 미국에 와서 카메라 테스트를 받으라면서 ‘원더 우먼’이라고 들어 봤느냐고 물었다. 사연인즉 그렇다.”

▲어디에 사는가.
“텔아비브와 이곳이다.”

▲젠킨스가 감독한다면 ‘원더 우먼’ 속편에 나오겠는가.
“젠킨스가 감독한다면 어떤 영화에라도 나오겠다. 만약 속편을 만든다면 ‘원더 우먼’이 제3차 대전을 미리 막는 얘기를 하고 싶다.”          
                                                             <한국일보 박흥진 편집위원/ hjpark1230@gmail.com>

‘나의 사촌 레이철’(My Cousin Rachel)


상복을 입은 레이철과 필립이 예배에 참석하고 있다.

신비의 미망인은 살인자인가 고상한 여인인가


의심과 정열 그리고 죽음과 회한이 뒤엉킨 스산하고 어두운 분위기의 심리 로맨틱 스릴러이자  복수의 미스터리 드라마로 마치 고전 귀신영화를 보는 기분이다. 시종일관 우아하고 아름답고 신비로운 미망인 레이철의 심중 의도를 의심하게 되면서 서스펜스에 긴장하게 되는데 이런 의문은 영화가 끝이 나서도 풀리지 않는다. 과연 레이철은 살인자인가 아니면 순진한 사람인가. 애매모호하기 짝이 없다.
이 영화와 같은 어두운 분위기의 로맨스영화로 로렌스 올리비에와 조운 폰테인이 주연한 영화 ‘레베카’의 원작 소설을 쓴 영국의 여류작가 대프니 뒤 모리에의 소설을 바탕으로 만들었다. 이 소설은 지난 1952년 리처드 버튼(할리웃 데뷔작)과 올리비아 디 해빌랜드 주연으로 영화로 만들어졌다.  
1830년대 영국의 남부 해변 마을의 대저택에 사는 순진하고 부유한 청년 필립 애슐리(샘 클래플린-마이클 화스벤더를 똑 닮았다)가 자기 보호자이자 사촌인 앰브로즈의 미망인 레이철(레이철 바이스)이 이탈리아에서 도착하기를 기다린다. 앰브로즈는 뇌종양으로 사망했다. 그런데 필립은 앰브로즈가 보내온 편지를 읽으면서 서서히 앰브로즈의 죽음이 병사가 아니라 레이철에 의한 독살이라고 믿게 된다. 편지 속에 앰브로즈가 이를 시사하는 글을 남겼다.
복수심에 불타는 필립 앞에 검은 상복을 입은 레이철이 모습을 드러내면서 필립은 대뜸 이 여자의 깊고 고매한 아름다움에 사로잡힌다. 이어 레이철은 이 집안의 안주인으로 자리 잡는다. 그리고 레이철에 매료된 풋내기 필립은 레이철이 마땅히 앰브로즈의 재산을 상속 받아야 된다고 결정하고 모든 재산을 그에게 물려주는 작업에 들어간다. 
이에 관한 서류를 작성하는 필립의 대부(이에인 글렌)와 그의 총명하고 아름다운 딸로 필립을 짝사랑하는 루이즈(할러데이 그레인저)와 필립의 변호사 등이 다 필립의 이런 성급한 조치에 반대를 표명하나 세상물정 모르는 필립은 자기 뜻을 고집한다. 필립의 이런 호의에 레이철이 감사의 키스를 하면서 키스는 더 깊은 관계로 이어진다.
그런데 그 후 필립은 레이철의 행동에서 다시 수상한 점을 느끼게 되면서 이 여자가 재산을 노린 살인자라고 깊게 의심한다. 그리고 필립은 레이철을 죽이기로 결심한다. 끝이 아름답도록 충격적이다.  
기만과 술수와 의문이 기득한 영화로 안에 잠복한 짙은 선정성이 자극적인데 이런 의문과 억제된 성적 매력을 연기파인 바이스(007 대니얼 크레이그의 아내)가 침착하고 어둡고 고혹적으로 표현한다. 성격 드라마이기도 한데 중간 부분에서 다소 느슨해지는 기운이 있지만 호기심을 극대화시키는 영화로 촬영과 세트와 의상과 음악도 다 좋다. 
로저 미첼 감독(각색 겸). Fox Searchlight. 아크라이트(선셋과 바인) 랜드마크(웨스트우드와 피코). ★★★★ (5개 만점) 
                                                          <한국일보 박흥진 편집위원/ hjpark1230@gmail.com>


‘저녁 식사의 비애트리즈’(Beatriz at Dinner)


비애트리즈(왼쪽)가  부자들의 저녁식사에서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초대받지 않은 손님 눈에 비친 가진 자의 오만


영적인 영화로 심각한 생각과 느낌에 젖게 된다. 부유한 자들과 없는 자들 간의 차이와 계급간의 갈등과 함께 정치적 사회적 논평을 날카로운 위트를 구사해 표현한 코미디이자 드라마로 얘기가 대부분 저녁 식사 자리에서 진행돼 연극 같은 느낌이 든다.
깊이 있고 통찰력 있는 대사들이 있는 시적 분위기마저 지닌 드라마로 논쟁의 두 당사자로 나오는 셀마 하이엑과 존 리트가우의 언어의 대결에서 흐르는 전류가 감각적이다. 둘이 연기도 잘 하는데 특히 하이엑의 코믹하면서도 심오한 연기가 눈부시다.
영화 끝이 거의 초현실적으로 마치 마법적 사실주의 분위기를 지녔다. 고개를 갸우뚱하게 만든다. ‘초대 받지 않은 손님’이라는 부제가 어울리는 영화다.
집에서 개와 염소를 키우는 마사지사이자 암 환자센터에서 정신적 요법으로 환자를 돌보는 비애트리즈(하이엑)는 치유와 생명을 사랑하고 그 것들에 헌신하는 여자. 비애트리즈가 자기 손님인 엄청나게 부유한 캐시(카니 브리튼)에게 마사지를 해주려고 뉴포트비치에 있는 집에 갔다가 차가 고장이 나자 캐시가 비애트리즈를 저녁 식사에 초대한다.
캐시가 비애트리즈를 이렇게 대접하는 이유는 비애트리즈의 요법 때문에 자기 딸의 암이 치유됐기 때문. 저녁 식사의 손님은 돈이 최고인 부동산업자 재벌 덕(리트가우) 부부와 또 다른 부부. 잘 차려 입은 이들은 모두 거부들로 덕은 처음에 평상복을 입은 비애트리즈를 하녀로 오인한다.
저녁 식사가 시작되면서 이들이 나누는 대화란 모두 돈에 대한 것. 돈이 된다면 비리도 마다 않는 덕의 오만에 얌전히 앉아 있던 비애트리즈가 반박을 하면서 둘 사이에 적대 의식과 함께 논쟁이 벌어진다.
식사 후 자리를 옮겨 대화가 이어지는데 덕이 아프리카 사파리에서 사살한 코뿔소 사진을 자랑하자 비애트리즈가 이를 격렬히 비난한다. 비애트리즈의 덕에 대한 증오를 묘사한 상상에 이어 비애트리즈는 토우트럭을 타고 귀가하다 바닷가에 차를 세운다.
트럼프 시대에 잘 맞는 영화로 모두 자기보다 키가 훨씬 큰 물질주의자들 사이에서 입을 다물고 있던 키가 작은 비애트리즈가 틈틈이 이들의 말을 비판하는 모습이 코믹하면서도 진지하다. 그런데 감독 미구엘 아르테타는 덕을 괴물이라기보다 인간적으로 묘사, 그에게 연민의 마음을 품도록 처리했다. 랜드마크 등  일부지역. ★★★½(5개 만점)
                                                              <한국일보 박흥진 편집위원/ hjpark1230@gmail.com>

2017년 6월 5일 월요일

원더 우먼(Wonder Woman)


원더 우먼이 1차대전 전선에서 독일군을 무찌르고 있다.

1차 대전에 간 여전사 ‘원더 우먼’ 액션장면 장관


DC 코믹스 만화의 여전사 원더 워먼의 액션과 모험을 그린 환상영화로 경쾌하고 단순한 옛날 영화 스타일의 작품이다. 
원더 우먼의 얘기는 지난 1970년대 미스 월드 아메리카인 린다 카터를 주인공으로 한 TV시리즈로 만들어져 빅 히트했었다. 남자 영웅 대신 여자 영웅이 맹활약하는 이 영화는 전쟁액션영화요 로맨틱 코미디이자 여자 영웅의 성장기로 액션이 볼만하고 유머도 충분해 오락영화로 안성맞춤이다. 순진한 영화로 상영시간이 2시간20분이나 돼 후반부에 가서 얘기가 지지부진한 감이 있다.
원더 우먼 역은 미스 이스라엘 출신의 갤 개돗이 맡았는데 개돗은 지난 해 ‘배트맨 대 수퍼맨: 정의의 새벽’에서 이미 이 역을 맡았었다. 그런데 개돗의 표정 연기가 지극히 단순하다. 
영화는 여전사들인 아마존들이 사는 저 세상 낙원의 섬에서 시작된다. 여왕 히폴리타(카니 닐슨)의 딸인 어린 다이애나는 이모 앤티오피(로빈 라이트)에 의해 싸움 잘 하는 여전사로 성장한다. 
이 섬에 1차 대전에서 영국정보부를 도와 활약하는 미국인 스티브 트레버(크리스 파인)가 탄 비행기가 불시착하면서 다이애나는 처음으로 인간 남자를 만난다. 그리고 스티브를 추격해온 총을 든 독일군들이 섬에 도착하면서 활을 쏘는 아마존들과 격전을 벌인다. 
다이애나는 스티브로부터 처참한 1차 대전의 얘기를 듣고 인간을 전쟁에서 구하기 위해 스티브와 함께 런던으로 간다. 원더 우먼은 인간이 선하다고 믿는 열린 마음을 지닌 낙천적인 여자 영웅이다. 다이애나 프린스라는 이름을 한 원더 우먼이 처음 보는 세상 구경에 얼떨떨해 하는 모습이 우습다. 
이어 원더 우먼은 스티브와 세 명의 용병들을 이끌고 유럽의 전장으로 진출한다. 원더 우먼의 적은 독일군 장성(대니 휴스턴이 만화 속 인물처럼 그려졌다)과 인간을 증오하는 독성 화학물질의 발명자인 이사벨 마루(엘레나 아나야).                
방패와 긴 칼 그리고 진실의 올가미를 무기로 원더 우먼이 스티브와 함께 독일군들을 무찌르는 액션장면이 박진감 있다. 이 영화의 액션 장면들은 정말로 장관이다. 원더 우먼과 스티브는 함께 적을 무찌르다가 로맨스마저 꽃 피운다. 속편이 반드시 나올 영화다. 
여류 패티 젠킨스  감독. PG-13. WB. 전지역. ★★★½ (5개 만점)
                                                            <한국일보 박흥진 편집위원/ hjpark1230@gmail.com>

과거의 삶(Past Life)


세피(왼쪽)와 나나는 홀로코스트 생존자인 아버지의 과거를 캐들어간다.

아버지의 미스터리한 과거 파헤치는 두 자매


홀로코스트 생존자의 두 자매가 과거 폴란드에서의 아버지의 삶을 캐들어 가면서 처참한 과거와 직면한 뒤 이 과거의 족쇄로부터 자신들 뿐 아니라 부모까지 해방시키고 아울러 화해와 용서를 찾는 실팍한 성격 드라마로 이스라엘 영화다. 실화에 바탕을 뒀다.  
과거를 함구하는 아버지의 삶을 파헤치는 과정에서 서스펜스와 긴장감 팽팽하게 감도는데 플롯이 이중삼중으로 얽혀들면서 호기심과 궁금증을 자극한다. 특히 영화를 위해 작곡한 합창곡이 아름답고 두 자매로 나오는 배우들의 연기가 출중하다.    
1977년 예루살렘. 이 해는 이집트의 사다트 대통령이 이스라엘을 방문, 이스라엘과의 평화 관계를 맺으려고 시도했던 해다. 주인공들인 두 딸 중 언니 나나(넬리 타가르)는 저널리스트로 사사건건 대결하는 스타일. 나나의 동생은 천상의 음성을 지닌 음악학도 세피(조이 리거)로 작곡가 지망생. 이들의 아버지 바룩 밀히(도론 타보리)는 엄격한 산부인과 의사로 결혼한 나나와 만나면 언쟁이 잦다. 둘의 어머니(에브게니아 도디나)는 상냥한 전형적 모범주부.
콘서트 출연 차 서베를린에 갔던 세피는 공연 후 리셉션 장에서 갑자기 나이 먹은 폴란드여인(카타르지나 그니브코우스카)로 부터 공격을 받으면서 “네 아버지는 살인자야”라는 말을 듣는다. 이를 말리는 남자가 이 여인의 독일인 아들로 작곡가인 토마스 질린스키(라파엘 스타초비악).
세피가 이런 사실을 귀국해 언니에게 알리자 나나는 아버지에 대한 반감과 함께 진실을 밝히려는 기자정신을 동원해 마다하는 세피를 부추겨 아버지의 과거를 캐들어 간다. 그러나 이 노력이 뜻대로 결실을 맺지 못하면서 나나는 이번에는 아버지에게 단도직입적으로 과거를 이실직고하라고 도전한다.
이에 바룩은 자신의 나치 점령 하 폴란드에서 행적을 상세히 기록해 낭독하나 나나는 여전히 이를 믿지 않는다. 그래서 나나와 세피는 폴란드까지 찾아가 아버지의 행적을 탐문한다. 플롯이 배배 꼬이면서 바룩의 과거가 서서히 드러난다. 세피의 음성과 함께 개인적 매력에 이끌린 토마스가 매스터 클래스 차 이스라엘을 방문, 세피에게 과거와의 직면을 독려하면서 세피의 부모의 미스터리가 밝혀진다. 
마지막 폴란드에서의 합창곡 연주회 장면에서 모든 것이 용서되고 눈물과 함께 평화와 화해가 영그는데 매우 감동적이다. 타가르와 리거가 대조적인 연기를 잘 하는데 특히 타가르의 맹렬한 연기가 훌륭하다. 
홀로코스트 생존자의 아들인 아비 네쉐르 감독(각본 겸). 일부 극장. ★★★½(5개 만점)
                                                           <한국일보 박흥진 편집위원/ hjpark1230@gmail.com>

워 머신(War Machine)


글렌 맥매언 장군(브래드 핏)이 아프가니스탄 전선을 시찰하고 있다.

전쟁 미치광이 장군 통해 아프간전 풍자


전쟁과 전쟁을 이끄는 군 장성을 비롯한 막강한 권력을 쥔 계급에 대한 새카만 풍자영화로 황당무계할 정도로 터무니없고 우습다. 현재 싸우고 있는 아프가니스탄 전쟁을 비롯해 끊임없이 전쟁을 하는 미국과 전쟁이 직업인 군인들에 대한 인정사정 없는 공격으로 코미디이자 전쟁의 현실을 폭력적이요 사실적으로 묘사했다. 톤이 다소 고르진 못하나 흥미진진한 작품이다. 
반전 풍자영화들인 ‘닥터 스트레인지러브’ ‘캐치-22’ ‘매쉬’ 및 ‘3명의 왕들’을 연상케 하는데 결코 이길 수 없는 전쟁을 이기겠다고 호언장담하는 주인공 장군이 마치 전쟁놀이를 즐기는 아이 같아서 실소가 터져 나온다. 이런 구세주적 망상에 빠진 장군으로 브래드 핏(제작 겸)이 나오는데 과장됐을 정도로 으스대는 동작과 표정이 장군모를 쓴 아이 같아 혀를 차게 된다. 마치 꼭두각시가 살아 움직이는 것처럼 어색한데 그것이 풍자영화에 더 잘 어울린다. 
영화는 2009~2010년 아프가니스탄 주둔 연합군 총사령관을 지내다 오바마 대통령과 조 바이든 부통령 등을 비롯해 정부 고위인사들을 싸잡아 비난해 해고당한 스탠리 A. 맥크리스탈 장군의 얘기를 바탕으로 만들었다.    
처음에 글렌 맥매언 장군(핏)이 부관들을 이끌고 으스대면서 아프가니스탄에 도착하는 장면으로 시작된다. 맥매언은 “우린 이 전쟁에 이길 거야”라며 부하들의 사기를 북돋운다. 이에 예스 맨들인 부하들은 “옛 서”하며 동의한다. 이들도 우스꽝스런 전쟁 미치광이들로 묘사됐다. 
맥매언은 매일 새벽에 일어나 내복바람으로 7마일을 뛰고 잠도 잘 안자는 골수분자 군인으로 아프간전쟁은 미국의 화력이 아니라 건드리지 못할 막강한 이상 때문에 이긴다고 믿는 사람. 그리고 오바마가 더 이상 아프간에 군대를 투입하지 않는다고 했는데도 4만 명의 병력 증강을 요청한다. 배짱 하나 큰 친구다. 
맥매언은 첫 공격지로 탈레반의 요충이나 반군들이 없는 헬만드를 선정한다. 맥매언은 공격하기 전에 형식적으로 카르자이 대통령(벤 킹슬리가 지나치게 만화적으로 묘사된 것은 흠이다)을 방문한다. 이어 그는 유럽 국가들의 병력지원을 얻어내려고 프랑스와 독일 등을 방문한다. 맥매언은 독일의 기자회견에서 여기자(틸다 스윈튼)로부터 날카로운 질문 공격을 받는다. 
맥매언이 이끄는 부대가 헬만드를 공격하면서 코미디의 톤이 전쟁 액션의 사납고 튼튼한 근육질로 변한다. 매우 긴장감 있고 조마조마한 처리다. 맥매언의 몰락은 그가 롤링스톤 잡지의 부대 취재를 허락하면서 초래된다. 그가 자기 속에 있는 워싱턴에 대한 불만과 비판을 마구 내뱉은 것이 그대로 집지에 실리면서 그는 오바마로부터 소환 당한다. 
감독은 호주 태생의 데이빗 미초드(‘애니멀 킹덤’). R등급. Netflix 작품으로 일부 극장 상영과 함께 TV로 스트리밍 된다. ★★★½ (5개 만점)
                                                             <한국일보 박흥진 편집위원/ hjpark1230@gma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