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이야기

2017년 4월 10일 월요일

콜로살(Colossal)


글로리아는 서울에 나타난 괴물과 자신의 연광성을 믿는다.

무의미해보이는 존재에서‘여성 파워’를 보여주는 영화


희한한 공상과학 드라마이자 코미디이긴 하지만 장르를 구분할 수 없게끔 온갖 스타일을 혼성한 독특한 영화다. 영화에 나와 서울을 유린하는 고질라(또는 용가리)처럼 상상을 초월한 기발난 아이디어의 작품으로 궁극적인 결론은 여성 파워의 얘기다.
여자가 아직도 남자의 종속물처럼 취급 받고 있는 세상에서 겉으로는 약하고 얌전해 보이는 여자가 남자들의 주인 노릇을 참고 참다가 마침내 이에 정면으로 충돌하면서 독립을 찾는 얘기다. 
왜 고질라가 서울에 나타났는지는 잘 모르겠으나(한국의 남성 위주 사회 관습 때문일까) 이 고질라는 분명히 주인공 여자의 심리와 행동을 상징하고 은유하고 있는데 진지하고 심각한 주제를 지녔으면서도 감독은 보는 사람이 너무 심각하구나 하고 생각할 때면 이를 재치 있게 거의 터무니없는 코미디로 뒤집어 놓는다. 
뉴욕에서 애인 팀(댄 스티븐스)과 동거하는 글로리아(앤 해사웨이)는 실직한 인터넷 잡지 기자. 술과 자기가 이름도 모르는 친구(?)와의 파티로 날을 보내다가 팀으로부터 쫓겨나 뉴욕주의 작은 마을에 부모가 남겨준 집으로 이사한다. 
여기서 글로리아는 동네 바를 경영하는 학교 동창생 오스카(제이슨 수데이키스)를 만난다. 사람 좋은 오스카는 글로리아를 바의 웨이트리스로 고용하고 또 TV를 비롯해 온갖 가구를 거저 준다. 
그런데 서울에 거대한 고질라가 나타나 건물들이 파괴되고 인명 피해가 발생했다는 뉴스가 전 세계로 퍼진다. 영화는 처음에 밤에 서울에서 한 소녀가 어머니와 함께 잃어버린 인형을 찾는데 고질라가 나타나는 것으로 시작, 그로부터 25년 후의 얘기로 이어진다. 
고질라 출현을 TV로 보던 글로리아는 자기와 고질라가 연관되어 있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처음에는 괴물로 취급받던 고질라가 자기에 도전하는 로봇이 나타나면서 두 괴물 간에 치열한 격투가 벌어진다. 
여성들이 박수를 칠 ‘여성 파워 만세’ 영화로 해사웨이가 뛰어난 연기를 보여준다. 친절을 베풀면서 그 대가로 사랑이나 섹스를 요구하는 남자들에게 짓눌려 살던 연약한 여자에서 과감히 자립하는 여자의 모습을 깊고 민감하고 힘차고 아름답게 연기한다. 수데이키스의 연기도 좋다. 
스페인의 나초 비가론도 감독. PG-13. 랜드마크(피코&웨스트우드) 아크라이트(선셋&바인), ★★★1/2(5개 만점)
                                                            <한국일보 박흥진 편집위원/ hjpark1230@gmail.com>


2017년 4월 3일 월요일

사육사의 아내(The Zookeeper‘s Wife)


안토니나(제시카 채스테인)가 사자 새끼들을 아기 돌보듯 하고있다.


나치로부터 유대인 탈출시킨 동물원 사육사 부부


실화를 바탕으로 만든 홀로코스트영화요 전쟁영화이자 동물영화이며 또 인간의 선과 영웅주의 및 용기를 그린 드라마로 극적이요 스릴과 서스펜스 그리고 액션마저 있는 내용을 너무 말끔하게 처리해 깊이나 충격 그리고 진정한 감정을 느낄 수가 없다. 
믿어지지 않는 놀라운 사실 속에 담긴 다양한 얘기를 지극히 평범하고 진부하고 감상적으로 처리해 참담하고 대담하고 과감한 일들이 벌어지고 있는데도 마음이 움직이질 않는다. 뉴질랜드의 여류 감독 니키 카로(‘웨일 라이더’)는 복잡한 얘기를 너무 단순화 했고 또 윤택을 냈는데 마치 벅찬 과제를 받은 학생이 어쩔 줄을 몰라 대충 뭉뚱그려 내놓은 답안지 같다.
동물원의 많은 동물들과 주인공 역의 연기파 제시카 채스테인의 모습 그리고 프로덕션 디자인과 촬영 및 음악 등 여러 모로 중간 수준은 되나 기대에 못 미치는 마음을 사로잡지 못하는 타작이다. 
나치의 폴랜드 바르샤바 점령 때 동물원을 지키면서 300명의 유대인들을 보호하고 탈출시켰던 동물원 사육사 부부 안토니나(채스테인)와 얀(요한 헬덴버그) 자빈스키의 실화로 안토니나의 일기를 바탕으로 다이앤 애커만이 쓴 베스트셀러가 원전이다.
나치가 폴랜드를 폭격하면서 어린 아들을 둔 얀과 안토니나가 돌보는 동물원이 쑥대밭이 된 채 동물들이 대량으로 죽고 호랑이와 낙타가 시내를 방황 한다(이 장면이 재미있다). 그리고 나치군인들은 우리 밖으로 나온 코끼리를 쏴 죽인다. 
전쟁 전부터 얀과 안토니나를 알고 있던 나치의 권위 있는 동물학자 루츠 헥크(다니엘 브륄)는 자빈스키 부부에게 살아남은 동물들을 전쟁이 끝날 때까지 독일에서 보호하자며 이들을 이동시킨다. 그리고 동물원의 폐쇄를 꺼리는 자빈스키 부부는 루츠에게 동물원을 독일군들을 위한 식량 조달처인 돼지농장으로 운영하겠다고 부탁해 허락을 받는다. 
돼지들의 먹이는 유대인들을 격리한 게토의 음식쓰레기. 얀은 아들과 함께 트럭을 몰고 게토로 가서 쓰레기를 옮기는데 이 때 쓰레기 속에 유대인들을 숨겨 나온다. 그리고 이들은 자빈스키 집의 지하실에 숨어 안토니나의 극진한 돌봄을 받는다. 이렇게 해서 이들의 집에 숨어든 뒤 바르샤바를 탈출한 유대인들은 무려 300여명.
그런데 필요 이상으로 게토의 참상을 자주 보여주는 영화에서 이런 참상이나 유대인 탈출과 지하실 피신 장면 등이 아무런 공포감이나 충격을 주지 못한다. 솜방망이 터치다. 영화에 약간의 액센트를 주는 것이 안토니나를 사랑하는 루츠의 모습. 안토니나가 자기 집을 찾은 루츠가 지하실에서 나오는 아이의 울음소리를 듣지 못하게 하려고 그의 귀를 막고 입을 맞추는 장면이 있는데 이 역시 서투르다. 이어 얀을 포함한 폴랜드 게릴라들과 독일군과의 시가전 장면이 나오나 마찬가지로 평범하기 짝이 없다. 
연기를 잘 하는 채스테인이 겉으로는 연약하나 속은 대담무쌍한 여자의 모습을 잘 표현하나 폴랜드 액센트는 어색하다. 나머지 배우들의 연기는 덤덤하다. 인간들보다는 컴퓨터 특수 이미지 효과를 거의 안 쓴 동물들의 생생한 모습이 무미건조한 영화에 생기를 불어 넣는다.   PG-13. Focus. 랜드마크(피코와 웨스트우드) 등 일부 지역. ★★★ (5개 만점)
                                                            <한국일보 박흥진 편집위원/ hjpark1230@gmail.com>


빅 히트(The Big Heat·1953)


갱스터의 애인 데비(왼쪽)는 자기를 보호해주는 데이브에게 애인의 범죄사실을 털어 놓는다.

죽은 아내의 복수를 위해 범죄조직을 파헤치는 형사


펄펄 끓는 커피가 충격적인 효과물로 사용되는 뛰어난 필름 느와르다. 
거칠고 가차 없는 야수적인 영화로 명암이 뚜렷한 촬영과 불연속적인 음악 및 에누리 없는 대사가 작품의 살벌한 분위기를 극대화 하고 있다.           
정의롭고 과묵한 형사 데이브 배니언(글렌 포드)이 동료형사의 의문의 자살을 수사하면서 상사로부터 수사 중단 명령을 받는다. 자살한 동료 형사가 시정부 관리들의 부패상을 기록한 노트를 미끼로 형사의 아내 버타가 부패사건에 연루된 범죄단의 두목 알렉산더를 협박하면서 버타가 사체로 발견된다.
이어 데이브는 알렉산더를 찾아가 그와 정면대결 한다. 그리고 알렉산더의 졸개들이 데이브의 차에 설치한 폭탄이 터지면서 데이브의 아내 케이티(조슬린 브랜도-말론 브랜도의 누나)가 숨진다. 악이 난 데이브가 알렉산더 체포에 열을 올리자 그의 상사가 다시 사건에서 손을 떼라고 지시하면서 데이브는 경찰배지를 내던지고 개인적으로 아내 살해범을 찾아 나선다.
데이브는 알렉산더의 오른 팔인 빈스(리 마빈)의 애인 데비(글로리아 그래암)를 찾아가 아는 대로 고백하라고 윽박지른다. 이를 안 빈스가 데비의 얼굴에 펄펄 끓는 커피를 들어부으면서 데비의 얼굴 반쪽에 흉한 상처가 남는다. 그리고 데비는 데이브를 찾아가 알렉산더와 빈스가 저지른 살인사건에 대해 털어놓는다. 
이어 데비는 빈스를 찾아가 이번에는 자기가 빈스의 얼굴에 끓는 커피를 들어붓는다. 격분한 빈스가 데비를 사살하고 이 때 현장에 도착한 데이브는 빈스를 걸레가 되도록 두들겨 팬 뒤 경찰에 인계한다. 데비는 입고 있는 밍크코트로 얼굴의 흉터를 가린 채 자기를 내려다보는 데이브를 바라보면서 숨진다.
배우들의 뛰어난 연기(그 중에서도 무지막지한 살인자의 모습을 촌티가 나면서도 냉혹하게 보여준 마빈의 것이 기억에 남는다)를 통한 다양한 성격 묘사와 사실적이요 긴박감 있는 내용을 잘 뒷 받침해주는 촬영 등이 돋보이는 명작 범죄영화다. 프리츠 랭 감독. 
이 영화와 함께 여러 남자를 멸망의 길로 몰아넣는 웨이트리스의 행각을 다룬 또 다른 필름 느와르 ‘사악한 여인’(The Wicked Woman^1954)이 4월 2일(하오 7시30분) 이집션극장(6712 할리웃)에서 동시 상영된다. 
                                                             <한국일보 박흥진 편집위원/ hjpark1230@gmail.com>


‘나우 보이저’




공교롭게도 내가 가장 좋아하는 두 편의 연애영화의 여자 주인공들의 눈은 모두 매우 크다. 데이빗 린이 감독한 ‘짧은 만남’의 실리아 존슨과 어빙 래퍼가 연출한 ‘나우, 보이저’의 베티 데이비스의 눈은 다 크고 수심이 깊어 그들의 영화 내용처럼 이루지 못할 사랑에 걸 맞는다.
둘 중에서도 도톰한 눈두덩 아래 호수처럼 맑은 눈동자를 지녔던 데이비스의 눈은 사이렌의 노래 소리와도 같은 치명적인 흡인력을 지녔다. 그래서 킴 칸즈는 ‘베티 데이비스 눈’이라는 노래를 불렀고 데이비스는 내가 흠모하는 여배우가 되었다.
데이비스는 할리웃 황금기인 1930년대와 40년대 탑 박스 오피스 스타로 시대를 군림했던 신경 과민한 에너지의 소유자였다. 성질이 불같아 자기에게 주어지는 각본이 나쁘다고 당시 할리웃의 제왕과도 같았던 전속 사 워너 브라더스의 잭 워너 사장을 상대로 법정소송을 벌였던 시대를 앞서간 여권운동의 선봉자이기도 했다.
데이비스는 또 경쟁심도 강해 자기와 같은 시대의 또 다른 스타 조운 크로포드와 벌였던 스크린 주도권 쟁탈전은 할리웃의 전설적 에피소드로 남아있다. 모두 오스카 수상자들인 이들은 나이 먹어 퇴물 취급을 받을 때 괴이한 드라마 ‘베이비 제인에게 무슨 일이 일어났나?’(What Ever Happened to Baby Jane?^1962)에 처음으로 공연하면서 치열하게 대결, 영화가 히트하고 데이비스는 오스카 주연상 후보에 올랐었다.
둘이 이 영화를 만들 때의 얘기는 최근 FX-TV에 의해 ‘불화’(Feud)라는 시리즈로 만들어져 방영됐다. 데이비스 역은 수잔 서랜든이 크로포드 역은 제시카 랭이 각기 맡았다.
데이비스는 ‘여성 영화’에 강했다. ‘제저벨’(Jezebel^1938) ‘다크 빅토리‘(Dark Victory^1939) ’편지’(The Letter^1940) ‘작은 여우들’(The Little Foxes^1941) 및 ‘이브의 모든 것’(All About Eve^1950) 등에서 모두 강한 여성의 이미지를 보여줬는데 그 중에서도 결정판이라 할 수 있는 것이 ‘나우, 보이저’(Now, Voyger^1942)다.
이 영화는 어빙 래퍼가 올리브 히긴스 프라우티의 소설을 원작으로 감독한 화사한 흑백 멜로드라마다. 소설 제목은 월트 위트맨의 시 ‘풀잎’ 중 ‘자, 항해자여 구하고 찾기 위해 돛을 올리세’라는 구절에서 인용한 것이다.
샬롯 베일(데이비스)은 보스턴 상류층의 폭군적인 어머니(글래디스 쿠퍼)의 가혹한 통제 밑에서 자란 소심하고 수줍음 많은 혼기를 놓친 여자. 샬롯이 가정의 정신과의사 자퀴즈(클로드 레인즈)의 권유에 따라 남미 행 여객선을 탄 뒤 동승한 불행한 결혼생활을 하는 제리 던스(폴 헨리드-레인즈와 함께 데이비스가 가장 좋아한 남자배우)를 만나면서 생애 처음으로 사랑의 희열에 젖는다.
둘은 짧은 로맨스를 남긴 채 헤어지는데 샬롯은 이 사랑으로 미운 오리새끼로부터 우아하고 아름다운 백조로 화사하게 변신한다. 그리고 두 사람은 재회, 변함없는 사랑을 확인하나 결합하지 못하고 둘이 서로를 사랑하고 있다는 것에서 행복을 찾는다.
영화에서 샬롯이 말하는 마지막 대사는 할리웃이 남긴 최고의 대사 중 하나로 남아있다. 샬롯이 제리에게 “오, 제리, 우리 달을 요구하지 말아요. 우리에겐 별들이 있잖아요.”라고 말하면서 카메라가 서서히 별이 가득한 하늘을 향해 올라간다.
영화에서의 ‘담배 두 개비’장면(사진)은 영화의 그 어느 면보다 더 잘 알려진 것이다. 제리가 담배 갑에서 담배 두 개비를 꺼내 자기 입에 물고 불을 붙인다. 이어 제리가 건네준 담배 한 개비를 샬롯이 입에 무는데 두 입술의 뜨거운 접촉을 실제의 키스를 대신해 아름답게 상징한 장면이다. 이 제스처는 헨리드가 생각해낸 것이다.
영화는 빅 히트를 했고 데이비스와 쿠퍼가 각기 오스카 주^조연 상 후보에 오르고 풍성하고 로맨틱한 맥스 스타이너의 음악이 오스카상을 탔다. 이 영화는 고도의 오락성과 로맨티시즘 그리고 당시 시대상황에 거역하는 여성의 힘이라는 주제를 지닌 주옥같은 명화다.
데이비스는 반세기간의 연기생애를 통해 ‘데인저러스’(Dangerous^1935)와 자기 애인이었던 윌리엄 와일러가 감독하고 자기를 스타로 만들어준 ‘제저벨’로 두 차례 오스카 주연상을 탔다. 그리고 ‘다크 빅토리’ ‘편지’ ‘작은 여우들’ ‘미스터 스케핑턴’(Mr. Skeffington^1944) ‘이브의 모든 것’ 및 ‘스타’(The Star^1952) 등으로 모두 여덟 차례 주연상 수상후보에 올랐었다. 데이비스는 한 인터뷰에서 ‘이브의 모든 것’의 베테런 연극배우 마고 채닝 역으로 오스카상을 탔어야 했다고 말했다.  
그런데 아카데미상의 작은 남자상에 오스카라는 별명이 붙게 된 것은 데이비스 때문이다. 데이비스는 이 남자상을 보고 그 뒷모습이 미들 네임이 오스카인 자기 첫 남편의 것을 닮았다고 말해 그 뒤로 오스카로 불리고 있다.
렘리극장은 ‘나우, 보이저’ 개봉 75주년을 맞아 오는 4월 4일 이 영화와 역시 데이비스가 주연하고 험프리 보가트가 공연한 갱스터 드라마 ‘마크트 우먼’(Marked Woman^1939)을 화인아츠(8556 윌셔)와 노호7(노스 할리웃) 및 플레이하우스7(패사디나)에서 동시상영 한다.                                                                                <한국일보 박흥진 편집위원/ hjpark1230@gmail.com>



2017년 3월 24일 금요일

CHIPS


폰치(왼쪽)과 조가 캘리포니아 고속도로를 순찰하고 있다.

TV시리즈‘고속도로 순찰대’리메이크 영화


‘이 영화는 결코 캘리포니아 하이웨이 패트롤(CHP)의 승인을 받지 않았습니다’라는 자막으로 시작되는 영화는 지난 1970년대 말부터 1980년대 초까지 인기리에 방영되었던 동명 TV시리즈의 리메이크다. 
두 CHP 경찰인 존 베이커와 프랭크 ‘폰치’ 폰체렐로의 우정과 의리와 액션을 그린 시리즈에서 존으로는 래리 윌칵스가 그리고 폰치로는 에릭 에스트라다가 각기 나왔었다. 그런데 에스트라다는 리메이크 끝에 구급차 요원으로 캐미오로 나오나 윌칵스는 시리즈의 영화화에 반대하는 성명까지 냈었다.
영화를 보면서 윌칵스가 리메이크에 반대한 까닭에 수긍이 갔다. 코미디언 댁스 쉐파드가 각본을 쓰고 감독하고 주연도 한 액션 코미디는 전형적인 저급한 할리웃 메이저 작품으로 거칠고 조야하고 상스럽고 음탕하다. 
얘기란 터무니없고 빈약하기 짝이 없는 대신 폭발과 파괴, 자동차와 오토바이 추격과 스턴트 그리고 저속한 농담과 음담패설과 성적 제스처 및 노출된 여자의 젖가슴 등이 나오는 영화로 젊은 세대들에게 어필하려고 기를 쓰고 있다.
성격이 정 반대인 두 남자가 한 팀이 돼 티격태격 하면서도 서로의 다른 점을 극복하고 우정과 충성과 의리로 뭉쳐 나쁜 놈들을 소탕하는 ‘버디 캅’ 영화요 ‘브로맨스’ 영화로 ‘배드 보이즈’와 ‘리설 웨펀’의 모조품과도 같다.       
40대의 존 베이커(쉐파드)는 X-게임 모터사이클리스트로 온 몸의 뼈가 다 부러졌을 정도로 몸이 나빠져  현장에서 은퇴하고 진통제를 밥 먹듯이 하면서 산다. 그리고 허영에 들뜬 아내 캐런(크리스튼 벨-쉐파드의 실제 아내)으로부터 이혼을 당했다. 
그래서 존은 새 출발을 하고 아내와 재결합을 추진하려고 CHP 대원모집에 응한다. 존은 모터사이클을 기차게 잘 타 합격한다. 존의 파트너인 폰치(마이클 페냐)의 본명은 카스티요로 그의 진짜 직업은 마이애미의 베테런 FBI요원. 영화는 처음에 카스티요의 마이애미에서의 마약범 소탕장면을 보여준다. 
카스티요가 폰치라는 이름으로 위장하고 CHP 대원이 된 까닭은 연쇄 현금 무장 호송차의 강도사건을 수사하기 위해서인데 사건의 배후에 CHP 대원들이 있다는 정보를 입수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폰치라는 이름으로 존의 파트너가 된 것이다. 그런데 폰치는 섹스 중독자다. 
분주히 티켓을 발부하는 고지식한 존과 뒷골목 범죄 수사에 능한 거들먹거리는 베테런 폰치는 사사건건 대립을 하는데 존이 뒤늦게 폰치의 정체를 알게 되면서 둘은 합세해 강도사건을 해결한다. 
강도사건의 혐의자 중 하나가 고참 CHP 대원 레이 커츠(빈센트 도노프리오). 그리고 존과 폰치는 각기 동료 대원 에이바(로사 살라자르)와 린지(제시카 맥나미)로부터 적극적으로 구애를 받는다. 
폰치는 사건을 해결한 뒤 CHP가 좋아 LA에 남는데 이 영화가 히트하면 속편이 나올 것이다. R. WB. 전지역. ★★1/2(5개 만점)
                                                          <한국일보 박흥진 편집위원/ hjpark1230@gmail.com>


프란츠(Frantz)


아드리엔(왼쪽)과 안나가 호수가에서 서로의 의중을 탐지하고 있다.

진실과 거짓, 화해와 용서의 메시지를 담은 작품


때로는 거짓말이 진실보다 더 아름답고 슬픔을 치유하며 또 증오를 화해와 용서로 바꾸어 놓을 수 있다는 것을 고요하고 담담하게 그린 프랑스영화다. 프랑스의 프랑솨 오종 감독의 작품으로 무대가 독일이어서 대사가 대부분 독일어이며 또 흑백이다. 
흑백촬영이 뛰어나게 아름다운 한 폭의 풍경화와도 같은 작품인데 내용은 매우 심오하고 복잡하다. 진실과 거짓 그리고 죽음과 슬픔 또 화해와 용서를 말한 평화적 메시지를 담은 영화로  특히 주인공들의 내밀한 내면 묘사가 좋은 연기와 함께 섬세하고 깊이 있게 다루어졌다. 감동이 서서히 가슴 속으로 밀려드는 작품이다.
1차 대전 직후 독일의 한 작은 마을 올덴부르크. 아름답고 총명한 안나(파울라 베어)는 전사한 약혼자 프란츠(안톤 폰 룩케)의 엄격하나 마음은 자상한 의사인 아버지 한스 호프마이스터(에른스트 스퇴츠너)와 그의 부드러운 아내 마그다(마리 그루버)와 함께 산다. 
어느 날 안나는 프란츠의 무덤에 한 젊은 남자가 꽃을 놓는 것을 목격한다. 이 남자는 안나에게 자기는 프란츠가 전쟁 전 프랑스에서 공부할 때 그와 절친해진 아드리엔(피에르 니네이)이라고 소개한다(회상 장면이 칼러로 나온다). 그리고 안나는 아드리엔을 프란츠의 부모에게 소개한다. 
모든 프랑스 사람이 자기 아들을 죽였다고 생각하는 한스는 처음에는 아드리엔을 받아들이기를 망설이나 안나와 마그다는 프란츠를 잘 아는 아드리엔을 통해 프란츠의 얘기를 들으면서 마음의 위로를 받는다.   
아드리엔이 마을에 묵는 동안 안나와의 관계가 가까워지고 안나는 서서히 이 신비로운 적국의 남자에게 마음이 이끌린다. 그리고 한스와 마그다도 아드리엔을 마치 아들처럼 받아들인다. 한편 마을의 나이 든 크로이츠(요한 폰 뷜로)는 자기를 마다하는 안나에게 끈질기게 구혼한다.
아드리엔이 귀국한 뒤 안나의 편지에 대답이 없자 안나는 그를 찾아 프랑스에 도착한다. 안나는 한스가 귀족집 아들이라는 것을 알게 된다. 그리고 안나는 프랑스에 머물면서 한스와 마그다에게 편지를 쓴다. 끝이 관객이 예상하던 길에서 벗어난다. 
PG-13. Music Box. 뉴아트(310-473-8530) 웨스트팍8(어바인) 리전스(라구나 니겔), ★★★1/2(5개 만점)
                                                             <한국일보 박흥진 편집위원/ hjpark1230@gmail.com>


해리엣 로빈스




해리엣 로빈스는 죽음의 침상에서도 영화를 봤다. 귀가 잘 안 들려 자막이 있는 외국어 영화들을 봤는데 해리엣은 원래 외국어 영화에 정통하고 또 그 것들을 사랑했다. 해리엣이 얼마 전 96 세로 타계했다.
나는 해리엣을 생전 나의 ‘영화 대모’라 부르며 친하게 지냈었다. 해리엣과 역시 영화통인 해리엣의 남편 샘과 나는 종종 우리 집에서 멀지 않은 해리엣의 집에서 술을 들면서 영화 얘기를 나누곤 했다. 샘은 해리엣 보다 두 해 먼저 세상을 떠났다.
내가 해리엣을 나의 ‘영화 대모’라고 부른 까닭은 내가 해리엣 때문에 LA영화비평가협회(LAFCA) 회원이 됐기 때문이다. 내가 항상 등산모를 쓰고 다니던 해리엣을 알게 된 것은 영화담당 기자들을 위한 시사회장에서였다.
LAFCA 회원이던 해리엣은 나를 볼 때마다 “다양한 민족과 문화로 구성된 LA의 코리안 커뮤니티를 대신해 미스터 팍이 우리 회원이 되기를 권한다”며 나를 동료 회원들에게 소개하면서 즉석 로비를 하곤 했다.
이와 함께 내가 LAFCA 회원이 되는데 큰 힘을 써준 사람이 홍보회사 포가쳅스키사(현재의 MPRM)의 한국계 부사장 로라 김이었다. 로라는 한편으로는 주저하는 나를 다그치고 또 한편으로는 당시 LAFCA회장이었던 엠마누엘 레비(현재 나와 함께 할리웃 외신기자협회 회원)에게 적극적인 로비를 하면서 나를 밀어줬다.
내가 LAFCA 회원 가입을 망설였던 이유는 한국어로 영화평을 썼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그 때 스페인어로 글을 쓰는 라 오피니언 기자와 스페인어로 방송하는 유니비전 기자가 LAFCA 회원으로 활동하고 있어 영어 아닌 외국어로 글을 쓰는 나의 가입이 가능했다. 그런데 지금 두 스페인어 언론매체는 LAFCA 회원이 아니다.
두 사람의 적극적 지원 속에 나는 지난 1998년 4월 해리엣과 LA타임스의 영화비평가 케네스 투란의 추천과 회원들의 심사와 투표를 거쳐 LAFCA 회원이 되었다. 당시 LA타임스, 타임, 뉴스위크, 버라이어티, 할리웃 리포터 및 USA 투데이 등 막강한 언론매체의 기자들로 구성된 LAFCA에 가입했으니 감개가 무량할 수밖에 없었다. 그래서 그 뒤로 나는 해리엣을 나의 ‘영화 대모’라 불러왔었다.
지난 1975년에 창립된 LAFCA는 LA지역에서 활동하는 활자, 방송 및 전자매체 영화비평가들로 구성된 권위 있고 영향력 강한 단체로 현 회원은 54명. 나는 지난 2006년에는 골든 글로브 시상식을 주관하는 할리웃 외신기자협회(HFPA) 회원이 됨으로써 나의 ‘아메리칸 드림’을 이룬 셈이다. 해리엣 덕분이라고 하겠다.
부산 피난시절 꼬마가 혼자서 대낮부터 무성영화를 보면서 영화란 눈을 뜨고 꾸는 꿈이란 것을 깨달은 뒤로 나는 지금까지 끊임없이 백일몽을 꾸고 있다.
해리엣은 지난 1940년대 초 뉴욕에서 LA로 이주, 권위 있는 액터즈 랩과 관련해 일하면서 연극과 영화를 사랑하게 됐다. 이어 샌프란시스코로 올라가 극단 레이버 디어터 작품을 유엔을 위해 공연하는 일을 돕다가 이 도시에서 만난 샘과 결혼, 1950년대 초 둘이 함께 다시 LA로 돌아왔다.
이어 독립영화 배급사에 고용돼 영화를 사기 위해 연중 내내 영화시장과 칸, 토론토 및 몬트리얼 등 영화제를 찾아 다녔다. 나도 오래 전에 업무 차 토론토영화제에 온 해리엣과 샘을 만난 적이 있다. 이런 활동을 하면서 해리엣은 세계적으로 유명한 외국인 감독과 배우들을 알게 됐고 외국어영화의 전문가가 되었다. 나도 해리엣과 샘처럼 할리웃영화 보다는 외국어영화를 더 좋아해 우린 만나면 주로 외국어영화에 관해 얘기를 나눴었다.
배급회사를 떠난 해리엣은 자기가 본 영화에 대해 비평을 써 영화를 선전하겠다고 결심했다. 그리고 여러 미디아에 기고를 하면서 지난 1980년대 초 LAFCA회원이 되었다. 이와 함께 해리엣은 필르멕스영화제를 포함해 LA지역 영화제와 특별행사에 관여했고 LA 인근 베니스의 폭스베니스극장의 외국어 영화상영을 적극적으로 주선했다. 해리엣은 이밖에도 UCLA 필름&TV 아카이브의 ‘비평가들의 선택’ 프로그램에 관여하면서 당시만 해도 무명씨였던 독립영화인인 찰스 버넷감독 등의 영화를 대중에게 알리는데 기여했다.
해리엣과 파이프 담배를 즐기던 샘은 늘 시사회에 함께 참석하곤 했다. 나는 이들을 친구 겸 부모처럼 여기면서 우정을 즐겼었다. 항상 명랑하고 활기찬 만년 소녀 같던 해리엣은 양로병원의 침상에 누워서도 LAFCA회원들에게 외국어영화를 갖다 달라고 부탁해 영화를 봤다.
내가 해리엣에게 은혜를 갚은 것이 있다면 해리엣이 나이를 먹으면서 글 쓸 매체를 찾지 못하고 있을 때 우리 신문에 그의 글을 번역해 게재한 것이다. 이제 해리엣은 하늘에서 샘과 함께 영화를 보고 있을 것이다. 날 만나면 늘 “H.J.”하며 반가워하던 해리엣의 음성이 귓전을 맴돈다. 굿바이 해리엣.    
                                                           <한국일보 박흥진 편집위원/ hjpark1230@gma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