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이야기

2017년 1월 3일 화요일

침묵(Silence)


세바스티아오 로드리게스 신부(왼쪽)가 숨어서 예배보는 일본인 신도와 작별을 하고있다.

일본서 종교적 폭력과 박해를 받는 두 명의 예수회신부


가난과 핍박에 시달리는 기독교 신자들과 투옥돼 처형을 기다리는 예수회신부가 구원과 안내를 찾아 부르짖는 소리에 대해 신이여 당신은 왜 침묵하십니까. 이 같은 물음은 이 영화의 제목이자 영화를 감독한 마틴 스코르세지 개인의 물음이다. 
보면서 162분 상영시간 내내 고행의 길을 걷는 인고와 참담함 그리고 고통과 쓰라림을 겪게 되는 믿음과 회의의 영화로 마지막에 가서 그 동안 기다렸던 구원을 받는 희열에 빠지게 된다. 인내심이 크게 필요한 영화다. 
주인공의 행적이 예수의 그것을 많이 닮은 이 묵직한 주제를 가진 ‘종교영화’는 스코르세지가 26년간을 만들려고 벼르다 완성한 것으로 그의 신에 대한 심리상태를 반영하고 있다. 이탈리아계로 가톨릭 집안에서 자란 그는 어렸을 때 신부가 되려고 했으나 신앙이 이를 뒷받침 해주지 못해 포기했다. 
그 후 그는 평생을 신에 대한 믿음과 회의간의 갈등 그리고 자책감을 안고 살았는데 이 영화는 그의 신을 향한 구원과 속죄의 부르짖음이라고 하겠다. 영화를 보면 그의 이런 의도가 절실히 느껴진다. 스코르세지의 또 다른 종교영화 ‘그리스도의 마지막 유혹’도 어떻게 보면 그가 신에게 바친 번제와도 같다.  
슈사쿠 엔도의 소설이 원작. 1643년. 포르투갈의 두 젊은 예수회신부 세바스티아오 로드리게스(앤드루 가필드)와 프란시스코 가루페(애담 드라이버)는 자신들이 존경하는 크리스토바오 페레이라신부(리암 니슨)가 일본에서 종교 탄압에 못 견뎌 신을 부인하고 일본인으로 살고 있다는 소문을 확인하려고 일본으로 간다. 
일본(대만서 촬영) 해변에 도착한 둘은 숨어서 예배를 보는 일단의 일본사람들을 만나 그들과 합류한다. 여기서 둘은 일본인 통역사(타다노부 아사노)를 통해 일본의 기독교에 대한 탄압과 신자들의 상황 등에 대해 알게 된다. 그리고 이들은 신자들과 함께 기아와 추위에 시달리면서 신도들에게 믿음을 전파한다. 이어 로드리게스와 가루페는 서로 헤어진다.           
이와 함께 기독교인들에 대한 마을 관리들의 가혹한 고문과 처형이 묘사되는데(해안에 세운 십자가에 신자들을 매단 뒤 밀물에 잠기게 해 죽인다) 이런 육체적 고통보다 더 보기 힘든 것은 신도들에게 신을 부인하라면서 예수의 모습이 새겨진 동판을 발로 밟게 하는 장면.  
페레이라를 찾아 가던 로드리게스는 어촌의 기독교신자들을 만나 그들과 생활하는데 배신을 당해 체포돼 투옥된다. 로드리게스는 장기간의 옥고를 치르면서 마을 군수 이노우에(이세이 오카타가 간교하고 코믹한 연기를 잘 한다)로부터 신을 부인하라는 종용을 받는다. 그리고 페레이라가 나타나 로드리게스에게 역시 신을 부인하라고 설득한다. 
이 과정에서 로드리게스는 믿음과 회의와의 갈등 그리고 죽음에 대한 공포에 시달린다. 전반부는 다소 내용이 단조롭고 인물들의 묘사도 부족하나 후반 들어 영육으로 강력한 충격을 받게 된다. 연기 촬영 및 음악도 좋다. R. Paramount. ★★★★(5개 만점)
                                                               <한국일보 박흥진 편집위원/ hjpark1230@gmail.com>


히든 피겨즈(Hidden Figures)


존 글렌을 맞이하는 도로시, 캐서린 그리고 메리(왼쪽 세번째부터).

1960년대 NASA에서 차별 받던 흑인 여성이 최고가 되기까지 이야기


남녀노소 할 것 없이 만백성이 보고 즐기고 박수 칠 영화로 이런 믿지 못할 얘기가 왜 이제야 영화로 만들어졌는지 알다가도 모를 일. 1960년대 초 존 글렌의 지구궤도 선회를 성공시키는데 일등공신 노릇을 한 세 명의 여자 수학자들의 실화로 기분 좋고 감동적이다. 
흑백문제와 여성차별 그리고 미?소간 우주경쟁과 불의에 저항하는 투혼을 지닌 인간승리의 드라마로 앙상블 캐스트의 연기가 좋은 코미디이요 드라마이며 스릴과 긴장감까지 갖춘 흥미진진한 영화다.
미?소간 우주경쟁이고조에 이르렀던 1960년대 초. 캐서린 고블(타라지 P. 헨슨)은 수학의 천재로 NASA의 랭리과학센터에서 일하고 있으나 그의 실력을 아무도 알아주지 않는다. 흑인을 이물질 보듯 하는 백인남자들 틈에 끼어서 별 볼일 없는 일을 하는 그의 실력을 알고 중요한 일을 맡기는 사람이 무뚝뚝하나 정의파인 실장 알 해리슨(케빈 코스너). 
인종차별을 보여주는 우스운 장면이 캐서린의 화장실 이용 장면. 자기가 일하는 건물의 백인전용 화장실을 못 써 건물 밖에 한참 떨어진 화장실까지 왕복으로 달리느라 고생이 많다. 캐서린의 달리기를 파렐 윌리엄스가 작곡한 주제가 ‘러닌’이 재미있게 반주한다. 
셋 중 제일 젊은 여자가 NASA에서도 알아주는 뛰어난 과학자 메리 잭슨(그래미상을 받은 가수 자넬 모나에가 발군의 연기력을 발휘한다). 그러나 메리는 버지니아주의 대학을 다니기 위해 법원에 청원서를 내서야 야간학교에 나간다. 판사에게 자신의 청원을 허락해 달라고 요청하는 메리의 모습이 당차다.
셋 중 맏언니 격인 여자가 역시 같은 곳에서 일하는 수퍼바이저 도로시 본(옥타비아 스펜서). 그러나 도로시는 책임만 많지 봉급은 백인여자에 훨씬 못 미친다. 
이들 세여자의 인종차별 속에서도 꿋꿋이 자신을 지키면서 자신의 가치를 입증하는 얘기가 아기자기하게 전개되는데 셋이 함께 있을 때가 각자 따로 있을 때보다 더 재미있다. 세 여자배우와 코스너의 연기가 좋다. 디오도어 멜피 간독. PG. Fox. ★★★★(5개 만점)
                                                               <한국일보 박흥진 편집위원/ hjpark1230@gmail.com>


‘애수’


내일 하루가 가면 2016년도 간다. 연말 분위기란 치열한 쾌감 뒤에 느끼는 공허와도 같다. 슬프고 착잡하고 어수선하고 어리둥절해 몸 둘 바를 모르겠다. 간다는 것은 안 됐고 슬프다. 이런 것을 미련이라고 하나보다.
나이를 먹으면서 과거와 현재와 미래의 개념이 희박해지고 그저 그들은 다 시간일 뿐이라고 여기게 된다. 그런데도 그 시간의 한 줌인 연말이 되면 과거가 아쉽다. 가슴은 천성이 센티멘탈한 것인가 보다.
이 과거의 감상성을 슬프면서도 달래주는 듯이 피력한 노래가 신년 전야 자정 직전에 부르며 새 해를 맞는 ‘올드 랭 자인’이다. ‘옛날 오래 전에 가버린 날들’을 뜻하는 ‘올드 랭 자인’은 스코틀랜드의 시에 민요의 멜로디를 붙여 지은 노래로 멜로디가 감미롭고 감상적이다.
“슈드 올 어퀘인턴스 비 포갓 앤드 네버 브럿 투 마인드? 슈드 올 어퀘인턴스 비 포갓 앤드 올 랭 자인?”으로 시작되는 노래는 지나간 날들을 회상하며 늘 기억하리라 다짐하면서 아울러 술 한 잔 차 한 잔을 서로 들고 나누는 인간의 친절을 기리고 있다.
이 안개가 자욱이 낀 듯한 곡은 지난 1929년 캐나다 태생의 지휘자 가이 롬바르도의 밴드 로열 커네이디언즈가 뉴욕의 신년 전야 파티에서 연주하면서 유명해졌는데 그 후 팝, 컨트리, 디스코 및 폴카로 편곡돼 널리 사랑을 받고 있다.
팝으로 히트한 것이 5중창단 G-클렙스가 부르는 ‘아이 언더스탠드’다. 떠난 님을 이해한다면서도 마음이 바뀌면 돌아오라고 호소하는 이 노래는 한국에서도 크게 유행해 다방과 음악감상실에서 자주 틀곤 했다.
‘올드 랭 자인’을 노래 부른 가수들도 많다. 바비 다린, 짐 리브스, 빙 크로스비 및 줄리 앤드루스 등이 불렀고 노래의 고향인 스코틀랜드의 스카티시 백파이프스 밴드의 여자의 고음 울음과도 같은 백파이프 연주도 좋다. 또 이 노래는 ‘천부여 의지 없어서 손들고 옵니다’로 시작되는 찬송가로도 불리고 있다.
‘올드 랭 자인’은 이런 내력을 지니고 있어 할러데이 시즌 영화에 즐겨 사용되고 있는데 특히 로맨틱하거나 감상적인 장면 그리고 마지막 장면에 많이 나온다. 이 노래가 가슴에 가장 강렬한 인상을 남겨주는 영화의 으뜸은 눈물 없이는 볼 수 없는 신파 멜로드라마의 결정판 ‘애수’(Waterloo Bridge^1940^사진)일 것이다. 멜로드라마를 잘 만들던 머빈 르로이 감독의 흑백영화로 MGM이 배급했다.
콧수염을 한 귀족집안의 영국군대령 로이(로버트 테일러)가 런던의 워털루 브리지에서 과거를 회상하면서 장면은 제1차 대전 때로 돌아간다. 공습경보에 지하대피소로 피하던 로이대위와 발레댄서 마이라(비비안 리)가 첫 눈에 사랑에 빠지면서 결혼을 약속한다.
전선에 나간 로이를 기다리던 마이라는 로이가 사망자 명단에 오른 것을 보고 자포자기해 워털루 역을 무대로 군인을 상대로 몸을 파는 여자가 된다. 그러나 전쟁포로가 됐던 로이가 귀국해 워털루 역에서 마이라와 재회, 둘은 사랑을 재확인하지만 죄책감에 못 견딘 마이라는 워털루 브리지에서 달려오는 트럭에 투신자살한다. 로이와 마이라의 댄스 장면을 비롯해 ‘올드 랭 자인’이 영화 내내 작품의 분위기를 애처롭게 감싸 안고 돌아 눈물깨나 쏟게 된다.      
나는 이 영화 때문에 런던에 세트방문이나 배우 인터뷰를 위해 갈 때마다 어느덧 워털루 브리지와 워털루 역을 찾아가는 버릇이 생겼다. 그러나 영화는 MGM 스튜디오에서 찍었다. 그런데 워털루 브리지는 실제로 전쟁 당시 창녀들이 런던을 거쳐 가는 군인들을 상대로 돈을 벌려고 모여들었던 곳이다.
‘올드 랭 자인’은 할러데이 시즌 단골영화 ‘멋진 인생’(It‘s a Wonderful Life^1946)에서도 콧등이 시큰해지도록 마지막 장면을 장식한다. 작은 마을 베드폴스에서 아내 메리(다나 리드)와 어린 자식들과 함께 행복하게 살고 있던 조지(제임스 스튜어트)가 사업에 실패, 강에 투신자살하려는 순간 조지의 수호천사 클래런스가 나타난다.
클래런스는 조지에게 그가 이 세상에 태어나지 않았더라면 베드폴스가 어떤 꼴이 되었겠는가를 보여준다. 이 세상이 얼마나 멋진 곳인가를 깨달은 조지와 메리와 둘의 아이들을 찾아온 동네 사람들이 ‘올드 랭 자인’을 부르고 집안의 크리스마스 트리 전구들이 깜빡이면서 노래를 따라 부른다.
이 밖에도 주디 갈랜드가 부르는 ‘해브 유어셀프 어 메리 리틀 크리스마스’가 나오는 뮤지컬 ‘세인트 루이스에서 만나요’와 빌리 와일더가 감독하고 잭 레몬과 셜리 매클레인이 나오는 ‘아파트먼트’ 그리고 ‘해리가 샐리를 만났을 때’와 ‘포사이던 어드벤처’ 및 내가 올 해 인상 깊게 보았던 스코틀랜드영화 ‘선셋 송’에도 ‘올드 랭 자인’이 나온다. 해피 뉴 이어!
                                                        <한국일보 박흥진 편집위원/ hjpark1230@gmail.com>



2016년 12월 27일 화요일

페이트리어츠 데이(Patriots Day)


타미(마크 왈버그)가 보스턴 마라톤 경비를 하고있다.

2013년‘보스턴 마라톤’폭탄 테러 실화


2013년 보스턴의 ‘애국자의 날’ 마라톤에서 발생한 폭탄 테러를 허구를 섞어 긴장감 있고 또 기능적으로 잘 연출한 액션 스릴러로 아드레날린이 상승하는 박력을 만끽할 수 있는 흥미진진한 영화다. 액션 전문의 피터 버그 감독과 건실한 배우 마크 왈버그가 세 번째로 손잡고 만든 영화로 둘의 이전 영화는 ‘로운 서바이버’와 올 해 나온 ‘딥 워터 호라이전’.
이 영화는 가공할 재난을 당한 보스턴 시민들과 도시의 경찰을 비롯한 법집행자들의 강인한 시민정신에게 바치는 헌사이기도 한데 제목 그대로 미국적인 애국 냄새가 지나치게 나 다소 버겁다. 그러나 고강도의 스릴을 갖춘 튼튼하게 만들어진 팬들의 호응을 받을 영화다.
영화는 마라톤 몇 시간 전부터 시작해 경기 중 폭탄이 터지면서 도시가 아수라장을 이루고  이어 테러리스트들을 추적하는 경찰과 FBI의 긴박한 수사과정으로 이어진다. 얘기는 테러 생존자들과 수사관들 그리고 목격자들과 형제 테러리스트를 찾아다니면서 진행되는데 주인공은 허구 인물인 보스턴 경찰의 사전트 타미 선더스(왈버그). 타미의 현명한 아내로 미셸 모나핸이 나오나 장식용.
타미는 경험이 많은 형사였으나 근무 중 다리를 다쳐 휴직했다가 아직도 절름거리는 상태에서 마라톤 경비근무를 맡아 심기가 불편하다. 이어 차르나에프 형제가 마라톤 참관 인파 속에 남겨둔 사제 폭탄이 터진다. 경찰에 비상이 걸리고 고지식한 FBI요원 리처드(케빈 베이컨)가 수사 책임자로 파견돼 수사본부를 설치한다.
이와 별도로 타미는 자기 경험을 살려 테러 부상자들과 목격자들을 일일이 면담하면서 범인 추적에 열을 올린다. 그리고 신속히 사건을 해결하려는 보스턴경찰국 커미셔너 에드(잔 굿맨)와 신중을 기하는 리처드 간에 마찰이 인다. 
범인들의 도주와 경찰의 추적이 숨 막히게 긴박감 있는데 그 중에서도 도주하는 차르나에프 형제가 중국인 청년 던 멩(지미 O. 양)의 차를 카재킹 한 뒤 장시간 함께 타고 달아나는 부분이 서스펜스 가득하다. 그리고 범인들이 보스턴 인근의 작은 마을 워터타운으로 도주하면서 이 마을 경찰의 베테런 사전트 제프리(J.K. 시몬스가 잘 한다)가 수사에 나선다.       
액션과 스릴과 서스펜스를 일사불란하게 구사하면서 시종일관 손에 땀을 쥐게 만드는 버그의 연출이 탁월한데 다소 미흡한 점은 타미의 역이 너무 밋밋하게 묘사된 것이다. 평범한 사람이 영웅이라는 것을 강조하려는 것처럼 보이나 타미의 개성과 특성이 제대로 개발되지 못했다. 음악과 촬영(특히 공중촬영)도 좋다. R. CBS Films/Lionsgate. ★★★★(5개 만점)
                                                             <한국일보 박흥진 편집위원/ hjpark1230@gmail.com>


패신저스(Passengers)


짐(오른쪽)이 우주유영을 하기 전 오로라와 대화하고있다.

고장난 우주선, 90년이나 일찍 동면 상태에서 깨어나…


비행하다 고장이 난 우주선에 단 둘이 남은 남녀의 생존투쟁과 사랑을 그린 액션과 스릴을 약간 겸비한 공상과학 로맨스영화로 재미는 있으나 영화의 전반부와 후반부의 분위기와 톤이 아주 다르다. ‘이미테이션 게임’을 만든 노르웨이 감독 모텐 틸덤이 연출하고 두 빅스타 크리스 프랫과 제니퍼 로렌스가 나오는데 스탠리 쿠브릭의 ‘2001:우주 오디세이’와 ‘샤이닝’ 그리고 맷 데이먼이 나온 ‘화성인’을 연상케 하는 장면이 많다.
오스카 작품상 후보에 오른 영화를 만들고 프랫과 로렌스라는 흥행보증 수표와도 같은 인기배우가 나오는 영화치곤 평범한 수준이기는 하나 특수효과를 비롯해 보고 즐기기엔 큰 손색이 없는 작품이다.
인간이 거주지로 만든 외계의 식민지 행성 홈스테드로 가던 우주선 아발론이 비행 중 유성들과 충돌하면서 컴퓨터가 고장 난다. 우주선에는 258명의 승무원들과 5,000명의 승객들이 동면상태로 탑승중이다. 컴퓨터가 자체 수리를 하는 동안 미캐닉인 승객 짐 프레스턴(프랫)이 누운 누에고치 모양의 탱크에 고장이 나면서 짐이 깨어난다.
짐은 처음에 목적지에 도착한 줄 착각하는데 알고 보니 도착일 보다 90년 먼저 깨어났고 인간은 달랑 자기 혼자. 슬픔과 좌절과 분노 그리고 공포와 고독에 시달리는 짐의 유일한 낙은 무표정의 익살 맞은 로버트 바텐더 아서(마이클 쉰).
그러면 로렌스의 역인 오로라 레인은 어디서 왔는가. 오로라가 후에 자신이 동면상태에서 깨어난 이유를 알게 되면서 별 얘기 없이 진행되던 영화가 어느 정도 긴장감을 갖추게 된다. 망망대해 우주를 나르는 고장 난 우주선에 신체건강하고 잘 생긴 젊은 두 남녀가 있으니 둘이 사랑에 빠질 것은 당연지사. 그러나 모든 러브 스토리가 다 그렇듯이 둘 사이에도 갈등이 인다. 갈등의 계기를 만들어 놓은 것이 아서다.
후반 들어 영화가 신파조로 기우는데 볼만한 것은 무중력 상태의 수영장의 물에 갇힌 오로라의 모습을 비롯해 우주유영 등을 찍은 특수효과. 프로덕션 디자인도 좋다. 그러나 로렌스와 프랫의 연기는 무덤덤하고 둘 사이의 콤비도 화끈하진 못하다. 오락용이긴 하나 다소 심심하다. 로렌스와 프랫은 영화 홍보 차 최근 한국엘 다녀왔다. PG-13. Columbia. ★★★1/2(5개 만점)    
                                                        <한국일보 박흥진 편집위원/ hjpark1230@gmail.com>


‘시계’와‘에디 아빠의 구애’


올 해의 마지막 달인 12월이다. 연말 할러데이 시즌에 잘 어울릴 두 편의 영화를 선물로 보낸다. ‘시계’(The Clock·1945·사진)와 ‘에디 아빠의 구애’(The Courtship of Eddie‘s Father·1963).  모두 아름답고 로맨틱하고 또 우습고 선한 영화들로 보고 있으면 가슴이 훈훈해져 가족이 모여 앉아 보기엔 안성맞춤인 클래식들이다.
공교롭게도 두 영화는 다 할리웃 황금기 명감독이었던 빈센트 미넬리가 만들었다. 뮤지컬과 코미디와 멜로드라마가 장기인  미넬리의 영화는 대부분 온순하고 편안하고 로맨틱하며 또 아늑해 보는 사람의 마음을 따스하게 만들어 준다. 미넬리는 ‘세인트 루이스에서 만나요’ ‘밴드  왜건’ 및 ‘지지’ 등 명작 뮤지컬을 많이 만든 감독으로 그의 다른 영화들로는 ‘삶의 열망’ ‘신부의 아버지’ ‘달려오는 사람들’ 및 ‘샌드파이퍼’ 등이 있다.
MGM작인 ’시계‘는 전쟁 중인 1945년에 만든 영화로 가수인 주디 갈랜드의 첫 드라마요 주연영화. 갈랜드가 영화에 적극적으로 나오려고 한 이유도 노래를 안 불러도 됐기 때문이다. 순진하고 깨끗한 이 영화는 뉴욕(컬버시티의 MGM 스튜디오에서 찍었다)의 펜스테이션에서 시작된다. 복잡한 퇴근길의 역 계단에서 앨리스(갈랜드)가 발을 헛디뎌 구두의 힐이 꺽어지며  뒤뚱거리는 것을 이틀간 휴가를 나온 군인 조(로버트 워커-히치콕의 ’기차 안의 낯선 사람‘에서 킬러로 나온다)가 부축하면서 둘의 만남이 시작된다.
조가 구두수선점에서 앨리스의 구두를 수선해주자 앨리스는 조에게 어디로 가느냐고 묻는다. 뉴욕이 처음인 조는 갈 곳이 특별히 없다고 하자 앨리스는 집에 가는 길에 조에게 관광안내를 한다. 여기가 센트럴팍이요 저기는 메트로폴리탄 뮤지엄. 이어 버스를 타고 귀가하는 앨리스를 뛰어 따라온 조는 앨리스에게 저녁데이트를 신청한다. 애스토호텔(타임스 스퀘어 근방에 있던 이 호텔은 지금은 철거되고 오피스빌딩이 섰다)의 시계 아래가 약속장소.
약속 장소에서 만난 둘은 저녁을 먹고 데이트를 하다가 앨리스가 집으로 가는 마지막 버스를 놓치는 바람에 밤새 우유배달차를 타고 새벽까지 데이트를 즐긴다. 아침이 되어 출근인파로 붐비는 서브웨이에서 조와 앨리스는 사람들에 밀려 서로를 잃어버린다. 이를 어쩌나 둘은 상대방의 성도 모르는 처지니 어디서 서로를 찾나.
이리 뛰고 저리 뛰는 조를 측은히 여긴 기마경찰이 조에게 너희 둘이 처음 만난 곳에 가보라고 조언, 펜스테이션으로 달려간 조가 역시 역으로 자기를 찾으러 온 앨리스를 만나 뜨거운 포옹을 나눈다. 그리고 조는 앨리스에게 구혼을 한다. 둘이 결혼하기 까진 또 여러 가지 난관을 겪어야하는데. 신랑신부가 된 조와 앨리스는 초야 후 아침을 먹고 조는 다시 전장으로 나간다. 영화가 순진하고 깨끗해 보기 좋다.
뉴욕이 제 3의 인물처럼 중요한 역할을 하는데 조와 앨리스의 첫 데이트 장소인 애스토호텔의 큰 시계와 함께 펜스테이션 안내소 위의 큰 시계가 영화제목을 뚜렷이 강조한다. 그런데 펜스테이션의 시계가 그랜드 센트럴스테이션의 시계를 닮았다. 나는 이 영화 때문에 뉴욕에 갔을 때 펜스테이션에 찾아가 큰 시계를 한참동안 쳐다봤었다.
이 영화 만들기 전 해에 역시 갈랜드를 써 빅히트작 ‘세인트 루이스에서 만나요’를 감독한 미넬리와 갈랜드는 사랑에 빠져 결혼했다. 그들의 딸이 가수요 배우인 라이자 미넬리다.    
‘에디 아빠의 구애’는 8세난 에디(론 하워드-‘뷰티플 마인드’로 오스카상을 탄 감독)가 홀아비인 아버지 탐(글렌 포드)의 중매쟁이 노릇을 하는 로맨틱 코미디로 미국의 황금기인 1960년대 중상류층 시민들의 만사 쾌적한 생활상을 잘 보여주고 있다.
외아들 에디를 극진히 사랑하는 탐은 상처 후 이 여자 저 여자와 교제를 하나 마음을 못 잡고 방황한다. 탐 외에 에디와 집안일을 정성껏 돌보는 사람이 가정부 리빙스턴 부인(로버타  셔우드). 에디를 자기 아들처럼 사랑하고 돌보는 또 다른 여자가 탐의 아파트 앞에 사는 아름다운 이혼녀 엘리자베스(셜리 존스). 에디도 엘리자베스를 자기 어머니처럼 좋아한다. 그런데 탐과 엘리자베스는 서로 친하면서도 의견 대립이 잦다.  
탐이 부유한 사교계 여자 리타(디나 메릴)와 본격적으로 교제를 하면서 결혼할 의사를 에디에게 알리자 에디의 고민이 시작된다. 에디는 리타가 무조건 싫은 것이다. 그리고 리타도 에디와 사귈 생각이 없다. 결국 탐이 냉정한 리타를 버리고 에디를 선택하면서 에디는 그 동안 궁리해온 아버지 결혼시키기 작전에 들어간다. 과연 누가 에디의 새 어머니가 될까요.
                                                         <한국일보 박흥진 편집위원/ hjpark1230@gmail.com>


2016년 12월 19일 월요일

제74회 골든 글로브 각 부문 후보작


드라마 부문에서 작품상 등 총 6개 분문 후보에 오른‘문라이트’


지난 12일 발표된 할리웃 외신기자협회(HFPA)가 수여하는 골든 글로브상 각 부문 후보의 특징은 흑인배우들과 그들이 연기한 작품들이 예년에 비해 많다는 점이다.
주 조연을 비롯해 연기상 후보에 오른 이들은 ‘울타리’(Fences)의 덴젤 워싱턴과 바이올라 데이비스, ‘문라이트’(Moonlight)의 마헤르샬라 알리와 네이오미 해리스, ‘러빙’(Loving)의 루스 네가 및 ‘히든 피겨즈’(Hidden Figures)의 옥타비아 스펜서 등 모두 6명이다. ‘문라이트’로 감독상과 각본상 후보에 함께 오른 배리 젠킨스도 흑인이다. 또 ‘라이언’(Lion)으로 남우 조연상 후보에 오른 데브 파텔은 인도계 영국인이다.
이 밖에도 파렐 윌리엄스 등이 작곡한 ‘히든 피겨즈’의 음악과 스티브 원더 등이 작곡한 만화영화 ‘싱(Sing)’의 노래 ‘페이스’(Faith)도 각기 해당부문에서 후보에 올랐다. 가히 흑인들의 잔치라 부를만한데 2년 연속 연기상 부문에서 흑인이 제외돼 ‘오스카는 온통 백색이다’라는 비판을 받은 아카데미가 내년 오스카상 후보발표에서 HFPA의 선례를 따를지 궁금하다.
이번 발표의 또 다른 특색은 강한 내성과 독립심을 지닌 여성위주의 영화들이 여러 부문에서 후보에 올랐다는 것. 음정과 박자가 전연 맞지 않게 노래를 부르는 뉴욕 사교계 여성이 이에 불구하고 자비로 카네기홀 무대에 서는 실화 ‘플로렌스 포스터 젠킨스’(Florence Foster Jenkins)와 외아들을 파격적으로 키우는 자유사상을 지닌 독립적인 홀어머니의 드라마 ‘20세기 여자’(20th Century Woman), 며칠 전 작고한 존 글렌의 우주비행에 큰 기여를 한 흑인 여성 수학자들의 드라마 ‘히든 피겨즈’ 및 워싱턴의 여자 로비이스트의 얘기 ‘미스 슬로운’(Miss Slone) 등이다.
HFPA는 작품과 남녀주연상 부문에 한해 드라마와 뮤지컬/코미디 부문으로 나누어 시상한다.  HFPA는 매년 상을 다양한 작품에 골고루 나누어 주는 경향이 있는데 올 해도 마찬 가지. 특히 올 해는 작품상 후보에 오른 많은 영화들이 메이저가 아닌 독립영화사들의 것들이다.
모두 7개 부문에서 후보에 올라 최다 후보작이 된 ‘라 라 랜드’(La La Land)와 이에 이어 총 6개 부문에 후보에 오른 ‘문라이트’ 및 총 5개 부문에서 후보에 오른 ‘바닷가의 맨체스터’(Manchester by he Sea)등이 다 독립영화사 작품들이다. 이 세 영화는 오스카상 경쟁에서도 치열한 접전을 벌이게 됐다. 이들에 이어 총 4개 부문에서 후보에 오른 ‘라이언’과 텍사스의 형제 은행강도와 이를 추적하는 텍사스 레인저(제프 브리지스)의 현대판 웨스턴 ‘헬 오어 하이 워터’(Hell or High Water)도 마찬 가지.
이 영화들은 작은 규모의 성인용 영화들로 비평가들의 평에 의해 흥행의 성패가 달린 영화들이다. 이들은 이제 골든 글로브상 후보에 오름으로써 앞으로 흥행 호조가 순풍에 돛을 올린 격이 됐다.
수상 후보 발표 때마다 늘 있는 일이지만 이번에도 뜻밖에 수상 후보에 오른 작품과 배우들이 있다. 만화를 원작으로 만든 폭력적이요 상스럽기 짝이 없는 ‘데드풀’(Deadpool)과 주연배우 라이언 레널즈가 각기 뮤지컬/코미디 부문에서 작품상과 남우주연상 후보에 오른 것. 이와 함께 그 누구도 후보에 오르리라고 짐작하지 못했던 사람이 ‘전쟁의 개들’(War Dogs)의 주연배우(뮤지컬/코미디) 조나 힐. 이라크전쟁의 와중에 무기를 팔아 떼돈을 번 두 젊은이의 액션 코미디 드라마인 이 영화는 평과 흥행이 다 신통치 못해 힐의 후보 선정이 한층 더 화제가 되고 있다.
HFPA로부터 완전히 무시를 당한 두 베테런 감독이 클린트 이스트우드와 마틴 스코르세지. 이스트우드가 감독하고 탐 행스가 주연해 호평과 함께 빅히트한 여객기 사고영화 ‘설리’(Sully)와 스코르세지의 심혈을 기울인 야심작으로 17세기 일본에서 핍박을 받는 예수회 선교사들의 드라마 ‘침묵’(Silence)도 외면을 받았다.
외면을 당한 또 다른 베테런들은 워렌 베이티와 로버트 드 니로. 베이티가 감독하고 하워드 휴즈로 나온 ‘룰스 돈 어플라이’(Rules Don‘t Apply)는 그가 15년 만에 스크린에 컴백한 작품으로 영화사 사장이었던 휴즈가 신인으로 발굴한 앳된 여배우 역의 릴리 칼린스가 주연상 후보에 오른 것이 전부. 그리고 ‘코미디언’(The Comedian)에서 스탠드업 코미디언으로 나와 상소리를 침 뱉듯 하는 로버트 드 니로도 제외됐다.
이들과 달리 할리웃의 망나니로 취급받아온 멜 깁슨은 자기 작품이 세 개 부문에서 후보에 오르는 쾌거를 이뤘다. 그가 감독한 태평양전쟁을 다룬 실화 ‘핵소 리지’(Hacksaw Ridge)가 드라마 부문에서 작품, 감독 및 남우주연상 후보에 올랐다.
또 패션디자이너 탐 포드가 자신의 두 번째 영화 ‘야행성 동물’(Nocturnal Animals)로 감독과 각본상 후보에 오른 것도 작은 이변. HFPA가 사랑하다시피 하는 메릴 스트립은 ‘플로렌스 포스터 젠킨스’로 주연상후보에 올랐는데 이번으로 총 30번째 후보에 오르는 기록을 보유하게 됐다.
스트립은 내년에 1월에 열리는 골든 글로브 시상식에서 생애업적상인 세실 B. 드밀상을 받는다.  제74회 골든 글로브 시상식은 2017년 1월 8일 지미 팰론의 사회로 베벌리힐스의 베벌리힐튼호텔에서 열린다. NBC-TV가 전 세계로 생중계 한다.

뮤지컬/코미디 부문에서 작품상 등 총 7개 분문 후보에 오른‘라라랜드’


<골든 글로브상 각 부문 후보 영화들>
▶작품(드라마)
‘핵소 리지’ ‘헬 오어 하이 워터’ ‘라이언’-어릴 때 길을 잃은 뒤 호주에 입양된 고아가 25년 만에 고향을 찾아가는 감상적인 드라마. ‘바닷가의 맨체스터’-가족의 처참한 사고 후 폐인처럼 살고 있는 남자의 후유증과 갱생의 드라마. ‘문라이트’-마이애미의 달동네에 사는 흑인 남자 동성애자의 갈등과 자아 인식을 세 시간대로 나누어 그렸다.

▶여우주연(드라마)
에이미 애담스-지구에 도착한 외계인과 소통하려고 애쓰는 언어학자의 드라마 ‘도착’(Arrival) 제시카 채스테인(미스 슬로운) 이자벨 위페르-강간당한 여사장의 후유증과 변태적 성적 호기심 그리고 반격을 그린 프랑스영화 ‘엘르’(Elle) 루스 네가-흑백결혼이 불법이던 버지니아주에서 백인 남자와 결혼한 흑인여자와 남편의 투쟁실화 ‘러빙’. 나탈리 포트만-케네디대통령 암살 작전과 직후의 재클린 케네디의 이야기 ‘재키’(Jackie)

▶남우주연(드라마)
케이시 애플렉(바닷가의 맨체스터) 조엘 에저턴(러빙) 앤드루 가필드(핵소 리지) 비고 모텐슨-숲 속에서 혼자 아이들을 키우는 히피 아버지의 드라마 ‘캡튼 팬태스틱’(Captain Fantastic) 덴젤 워싱턴-한과 분노에 묻혀 사는 피츠버그의 쓰레기 수거원의 드라마 ‘울타리’

▶작품(뮤지컬/코미디)
‘20세기 여자’ ‘데드풀’ ‘플로렌스 포스터 젠킨스’ ‘라 라 랜드’-옛 할리웃과 뮤지컬에 바치는 로맨틱한 찬미. ‘싱 스트릿’(Sing Street)-1980년대 더블린의 14세난 소년이 자기가 좋아하는 소녀의 마음을 사기 위해 친구들과 밴드를 급조한다.

▶여우주연(뮤지컬/코미디)
엠마 스톤(라 라 랜드) 릴리 칼린스(룰즈 돈 어플라이) 헤일리 스타인펠드-여고 3년생의 성장기 ‘에지 오브 세븐틴’(Edge of Seventeen) 아넷 베닝(20세기 여자) 메릴 스트립(플로렌스 포스터 젠킨스).

▶남우주연(뮤지컬/코미디)
칼린 패럴-독신자가 45일 안에 새로운 짝을 못 찾으면 동물이 되는 우화 ‘랍스터’(LObster) 라이언 가슬링(라 라 랜드) 휴 그랜트(플로렌스 포스터 젠킨스) 조나 힐(전쟁의 개들) 라이언 레널즈(데드풀)

▶감독
데이미언 차젤(라 라랜드) 탐 포드(야행성 동물) 멜 깁슨(핵소 리지) 배리 젠킨스(문라이트) 케네스 로너갠(바닷가의 맨체스터)  

▶여우조연
바이올라 데이비스(울타리) 네이오미 해리스(문라이트) 니콜 키드만(라이언) 옥타비아 스펜서(히든 피겨즈) 미셸 윌리엄스(바닷가의 맨체스터)

▶남우조연
마헤르샬라 알리(문라이트) 제프 브리지스(헬 오어 하이 워터) 사이몬 헬버그(플로렌스 포스터 젠킨스) 데브 파텔(라이언) 아론 테일러-잔슨(야행성 동물)
                                                            <한국일보 박흥진 편집위원/ hjpark1230@gma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