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이야기

2016년 10월 28일 금요일

인퍼르노(Inferno)


로버트 랭던(가운데)과 시에나 브룩스(오른쪽)가 베니스에서‘인퍼로노’의 단서를 찾고 있다.

거대한 재앙을 막아낼 유일한 단서 찾아라


하버드대의 기호학자 로버트 랭던을 주인공으로 한 베스트셀러 미스터리 스릴러 ‘다빈치 코드’와 그 속편격인 ‘천사들과 악마들’을 쓴 댄 브라운의 소설이 원작. 이 두 소설의 영화판을 감독한 론 하워드와 역시 두 영화에서 랭던 역을 맡은 탐 행스가 나오는 시리즈의 세 번째 영화다.
영화가 재미가 없는 데다가 플롯이 터무니없이 복잡하고 과장돼 기호학자인 랭던도 어리둥절해 하니 보통 사람들은 도무지 무슨 소리를 하는지 알다가도 모를 것이다. 솜씨가 좋은 하워드의 연출력도 나태하고 산만하기 짝이 없다. 지루하고 사람 피곤하게 만드는 영화로 이탈리아에서 찍어 경치 하나는 좋다.
랭던이 이탈리아의 플로렌스에서 머리에 심한 부상을 입은 채 병원에서 깨어나는 장면으로 시작된다. 자기가 왜 플로렌스에 왔는지 모르는 기억 상실증자가 된 랭던은 지옥의 모습의 환상에 시달리는데 이런 랭던을 치료하는 의사가 영국인인 아름다운 시에나 브룩스(펠리시티 존스-‘모든 것의 이론’의 스티븐 호킹 박사의 아내 역).
이어 가죽옷을 입고 모터사이클을 모는 늘씬하고 냉기가 감도는 미녀 킬러가 병원에 와 랭던에게 총질을 하면서 랭던과 시에나는 숨이 턱에 차도록 영화 내내 도망간다. 이들 뒤를 여자 킬러와 기관총을 든 킬러들이 계속해 쫓고.
역시 첫 부분에서 누군가에게 쫓기는 과대망상증자인 억만장자 버트랜드 조브리스트(벤 포스터)가 높은 종탑 꼭대기로 도망가다가 갈 길이 막히자 투신자살한다. 조브리스트는 지구의 인구과잉 문제 해결책으로 세계 인구의 절반을 멸살시킬 바이러스 ‘인퍼르노’를 만든 장본인.
그런데 랭던은 자기도 모르는 사이 자기 수중에 들어온 작은 전등 모양의 환등기 장치를 통해 13세기 이탈리아 화가 보티첼리(‘비너스의 탄생’)가 단테의 글을 바탕으로 그린 ‘지옥의 지도’를 관찰하면서 이 그림 속에서 ‘인퍼르노’의 소재를 알 수 있는 단서를 찾아낸다.  
그리고 랭던은 재앙을 막기 위해 시에나와 함께 플로렌스에서 베니스로 이어 이스탄불로 킬러들을 피해 가면서 장소를 옮기는데 이렇게 경치 좋은 장소로 이동하는 까닭이 도무지 분명치가 않다. 그런데 과연 시에나의 정체는 무엇인가.
이와 함께 랭던의 옛 연인 엘리자베스와 비밀단체의 정체가 불분명한 해리(인도 배우 이르판 칸)가 등장하면서 랭던은 누가 자기편 인지를 몰라 갈팡질팡 한다. 클라이맥스는 물위의 무대에서 오케스트라가 연주를 하는 가운데 벌어지는데 도저히 믿어지지가 않고 맨 끝에 랭던이 하는 짓도 실소가 나올 정도로 유치하다. 행스의 연기야 늘 적당히 잘 하는 것인데 이 영화로 할리웃의 메이저 영화에 본격적으로 등장한 연기파 영국 배우 펠리시티 존스가 아깝다. PG-13. Sony. 전지역. ★★½ (5개 만점)
                                                          <한국일보 박흥진 편집위원/ hjpark1230@gmail.com>


탐포포(Tampopo)


고로(왼쪽)를 비롯한 손님들이 탐포포의 라멘국물을 사발째 들여마시고 있다.

도쿄에서 가장 맛 좋은 라멘집 만들기


섹스와 음식을 에로틱하면서도 코믹하게 요리한 먹는 영화로 특히 일본 라멘 먹는 영화다. 1987년에 미국에서 개봉된 일본의 풍자감독 주조 이타미의 ‘라멘 웨스턴’으로 새로 프린트해 재개봉한다. 이야기 속의 이야기가 있는 형태로 만들어졌는데 많은 사람들이 나와 소리를 내면서 열심히 라멘을 먹고 그 국물을 마시는 모습이 정겹고 우습고 따스하게 인간적이다. 
영화는 백색 신사복을 입은 갱스터가 요란한 화장을 한 애인과 함께 극장 맨 앞자리에 앉아 정식으로 음식을 시켜 먹으면서 영화를 보는 것으로 시작된다. 이 때 이들 뒤에서 한 남자가 소리를 내면서 포테이토칩을 먹자 갱스터가 자리에서 일어나 그에게 다가가 조용히 하라며 위협한다.
이어 카우보이 모자를 쓴 트럭운전사 고로(추토무 야마자키)가 자기 단짝 군(젊은 켄 와타나베)을 데리고 어린 아들을 키우는 예절 바르나 강인한 미망인 탐포포(노부코 미야모토)가 경영하는 작은 라멘집에 들른다. 탐포포는 정성껏 라멘을 만들어 고로에게 건넨 뒤 맛에 대한 의견을 묻는다. 대답은 정성은 들였으나 특징이 없다는 것. 
이에 탐포포는 고로에게 떠나지 말고 머물면서 자기에게 진미의 라멘 조리법을 가르쳐 달라고 사정하고 고로는 이를 수락한다. 탐포포의 꿈은 도쿄에서 가장 맛 좋은 라멘을 만드는 것. 그리고 둘 사이에 서서히 로맨스의 기운이 싹트고. 
이제부터 온갖 사람들이 나와 라멘을 요리하고 먹고 국물을 마시고 평가를 하고 또 라멘집끼리 경쟁을 하면서 ‘라멘 웨스턴’이 열기를 띠운다. 우선 고로는 탐포포에게 마치 올림픽 경기에 나가는 선수처럼 맹렬히 신체단련부터 시킨다. 그리고 다시 갱스터와 그의 애인이 나오면서 나체와 신선한 굴과 핏방울이 흐르는 기차게 섹시한 장면이 욕망을 자극한다. 
또 포장마차에서 신선과도 같은 나이 먹은 라멘 도사로부터 라멘 먹는 방법을 배우는 장면과 함께 탐포포를 사랑하는 동네 갱스터와 그의 졸개들 그리고 온갖 라멘 식충이들이 탐포포의 집을 찾아와 라멘을 먹는다. 
이렇게 에피소드 식으로 진행되던 이야기는 고로와 군 그리고 동네 갱스터와 그의 졸개들이 탐포포의 가게를 말끔히 새로 단장하고 간판도 새로 내건 뒤 탐포포가 그동안 공들여 연마한 일품 라멘 조리법을 사용해 맛 좋은 라멘을 제공, 모두가 포식하고 그릇 째 국물을 들여마시면서 대미를 장식한다. 군침이 돌고 입맛이 당겨지는 맛있는 영화로 연기들이 좋다. 많이들 가서 탐포포의 라멘을 즐기세요. 성인용. Janus. Nuart 극장(11272 샌타모니카). 3일까지. ★★★★(5개 만점)
                                                         <한국일보 박흥진 편집위원/ hjpark1230@gmail.com>




블랙리스트




나는 박정희 정부시대 한국일보에 입사, 처음에 외신부에서 근무했다. 그때는 신문사에 중앙정보부원이 상주했고 야근에 쓴 기사가 밤새 검열에 걸려 아침신문에서 자취를 감추는 일이 종종 있었다. 
어느 해 온두라스에서 쿠데타가 났는데 당시 외신부장으로 후에 국회의원을 한 고 조순환씨가 내게 이에 대해 해설을 쓰라고 지시했다. 난 쿠데타로 집권한 박정권을 빗대어 절대권력과 부패는 일란성 쌍둥이라고 해설의 끝을 맺었다. 
이튿날 조부장이 날 데리고 신문사 옆의 다방에 데리고 가 커피를 사주면서 심각한 표정으로 “박흥진씨 당신도 정보부의 블랙리스트에 오를지 모른다”고 말했다. 내가 블랙리스트에 올랐는지 아닌지는 모르겠으나 그때 신문기자들은 다 블랙리스트 감이었다고 해도 된다.
그런데 최근 박정희의 딸 박근혜씨가 대통령으로 있는 대한민국에 무려 9,473명의 문화예술계에 대한 블랙리스트가 있다는 것이 밝혀지면서 문화예술계의 분노가 뜨겁게 끓고 있다고 한다. 나는 이 소식을 듣고 ‘아니 지금이 어느 때인데’라는 한탄과 함께 ‘역사는 반복한다’라는 말이 생각났다. 블랙리스트는 정부에 비판적인 사람들에게 공연장 대관이나 각종 지원을 배제하기 위한 것. 
정부의 문화예술계에 대한 통제는 2014년 4월 세월호 참사 이후 부쩍 강화됐다는 것이다. 그해 부산영화제 측에서 영화제에 지원금을 대는 부산 시장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세월호 참사를 다룬 기록영화 ‘다이빙벨’(사진)을 상영, 영화제가 전방위 감사를 받고 그 결과 이용관 집행위원장이 해촉되고 검찰의 수사를 받는 등 문화예술에 대한  검열이 노골화됐다고. 그래서 올 부산영화제는 반쪽짜리가 되다시피 했다.
그런데 국정감사에서 공개된 문화예술위 회의록에 의하면 예술인 지원여부를 논하는 자리에서 한 심사위원이 “그 분도 청와대에서 배제한다는 얘기로 해서 심사에서 빠졌다”고 말한 사실이 밝혀졌다. 이를 놓고 문화예술계는 블랙리스트 작성이 청와대의 뜻임에 분명하다고 비난하고 있다. 
우리나라는 민주공화국이라기보다 왕국이라 해야 할 만큼 모든 권력이 청와대에 집중돼 있다. 가장 자유로워야 할 문화예술계마저 이렇게 정부의 검열과 통제를 받아야 하니 다른 분야는 말할 필요도 없겠다. 오스카 외국어 영화상을 출품하는 영화진흥위가 출품작을 선정하는 데도 늘 정치적 입김이 작용한다고 최근 LA를 방문한 한국의 한 영화인이 내게 말했다. 
블랙리스트는 박정권 시대 툭하면 긴급조치를 발동하면서 언론과 표현과 사상의 자유를 목 조르는 수단으로 사용됐다. 그 대표적 예가 대중가요에 대한 금지곡 판정. 통기타 가수 김민기의 ‘아침이슬’은 가사 중 ‘태양은 묘지 위에 붉게 타오르고’의 붉은 태양이 공산주의를 연상시킨다고 해서 금지 당했는데 김민기 외에도 송창식의 ‘고래사냥’과 함께 여러 통기타 가수들의 노래가 반사회적이라는 이유로 금지됐다.
이미자의 ‘동백아가씨’는 일본풍이라는 이유로 금지됐는데 박정희가 술 마시고 거나하게 취하면 일본 가요를 즐겨 불렀다는 사실을 생각하면 이야말로 이율배반적이다. 또 많은 외국 팝송들도 검열에 걸려 금지곡 딱지를 맞았는데 무슨 이유인지 몰라도 자니 캐시의 ‘링 오브 파이어’도 검열의 제물이 됐다. 당국의 검열지침은 엿장수 마음대로였다.
영화들도 혹독한 가위질을 당한 뒤 상영이 허락됐는데 하길종 감독의 ‘바보들의 행진’은 장발과 미니스커트를 비롯해 무기력한 청춘묘사라는 이유로 원본의 절반이 잘려나간 채 개봉됐다. 실제로도 파출소 순경이 미니스커트를 입은 여대생들을 잡아다 자로 스커트 길이를 재고 장발족도 끌어다가 직접 가위로 공짜 이발을 해줬었다. 
블랙리스트는 미국에서도 있었다. 가장 악명 높은 것이 2차 대전 후 미국을 휩쓴 맥카시즘. 공산당 때려잡기로 미 하원의 비미국적 활동조사위의 집중공격을 받은 것이 진보파들의 아성인 할리웃이었다. 이 마녀사냥으로 좌파성향이 있는 감독, 각본가 및 배우들이 블랙리스트에 올라 할리웃에서 퇴출당했다. 조사위에 출두, 묵비권을 행사한 죄로 옥살이를 한 ‘할리웃 텐’이 그 대표적 경우다. 
부시 정권 때도 이라크전에 반대하는 가수와 배우들이 블랙리스트에 올랐다는 설이 있었다. 블랙리스트는 이렇게 정적 분쇄용으로 쓰이면서 많은 창조적 사람들을 파괴해 오고 있다. 한국 문화예술계는 지금 정부의 통제와 검열로 인해 문화예술인들이 자기검열을 해 창작의 자유가 심하게 위축될 것을 염려하고 있다. 블랙리스트야 말로 시대착오적이요 퇴행적인 불상사다. 박근혜씨는 아버지로부터 배웠는가.        
                                                              <한국일보 박흥진 편집위원/ hjpark1230@gmail.com>



2016년 10월 25일 화요일

실화 드라마‘부인’의 레이철 바이스




“영화와 현실이 충돌… 매우 특별한 경험했다”


실화 드라마‘부인’(Denial)에서 홀로코스트를 부인하는 영국의 저술가 데이빗 어빙을 비판하는 책을 냈다가 어빙으로부터 고소를 당해 런던 법정에 섰던 미 대학교수 데보라 립스탯으로 나온 영국 배우 레이철 바이스(46)와의 인터뷰가 최근 베벌리힐스의 포시즌스 호텔에서 있었다. 환한 미소를 지으며 씩씩한 모습의 바이스는 우아하면서도 시선이 따갑도록 강렬한 인상을 주었는데 약간 아이 같은 음성으로 위트와 유머를 섞어가며 질문에 지혜롭게 대답했다. 깔깔대고 웃으면서 액센트를 섞어 똑똑 부러지듯이 분명하고 총명하게 대답, 인터뷰가 재미있고 즐거웠다. 바이스는 현 제임스 본드 역의 대니얼 크레이그의 아내다. 한편 바이스와의 인터뷰 중간에 실제의 데보라 립스탯(맨 왼쪽)이 참석했다. *은 립스탯의 대답.         
-영화에서 립스탯은 아우슈비츠를 방문, 감정적으로 깊은 경험을 겪는데 역시 그런 느낌을 받았는가.
“이번에 처음으로 그 곳엘 갔다. 실화의 주인공으로 그 땅에 서 있자니 현실과 영화의 얘기가 충돌하면서 매우 특별한 경험을 했다. 아우슈비츠 밖에서 철조망을 통해 수용소 안을 향해 촬영이 허가되긴 이번이 처음이다.”

-역의 어떤 부분이 흥미 있었나.
“영국 사람인 내가 뉴욕 퀸즈에 사는 유대인으로 나와 런던에서 영국의 법제도에 대해 몰라 혼란을 겪는 노릇을 한 것이다.”

-영화 찍기 전에 립스탯을 만났는가.
“그렇다. 그를 안 만났더라면 이 역을 제대로 하지 못했을 것이다. 그는 우리 집을 찾아와 며칠을 함께 보내면서 자신의 얘기를 자세히 들려줬다. 립스탯은 뭐든지 자기가 하는 사람이다. 매우 독립적이요 생동적이며 다채로운 사람이다. 강렬하고 우습고 결단력이 있는 훌륭한 사람이다. 그와 오랜 시간을 함께 보낸 후에야 립스탯 노릇을 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립스탯처럼 불공정한 것에 대해 맞서는 사람인가.
“난 정의 수호를 위해 일어서는 사람을 존경한다. 그것이야말로 가장 아름다운 인간성이다. 영화를 본 젊은 사람들이 불공정에 대해 맞서는 용기를 가져주길 바란다. 나 자신도 그럴 수 있기를 바란다.”   
데보라 립스탯이 런던 법정에 서 있다.

-사랑이란 무엇인가.
“아름다운 것이다. 그러나 사랑에는 여러 종류가 있다. 난 내 고양이를 아주 사랑하는데 그것도 사랑이고 내 아들을 사랑하는 것도 사랑이다. 그 중에서도 부모의 자식에 대한 사랑이 가장 강력하고 맹렬하다고 본다.”    

-누구와 친한가.
‘난 아직도 학교 때 사귄 친구들과 교제하고 있다. 자라면서 새로 사람을 만나는 것도 좋지만 내게 중요한 사람들은 어렸을 때 안 사람들이다.“

-집과 식당 중 어느 곳에서 식사하기를 즐기는가.
“집이다. 난 훌륭한 부엌을 가지고 있다.”

-홀로코스트에 대한 부인을 불법으로 취급하는 오스트리아와 독일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나.
“난 홀로코스트 부인을 인정하지는 않으나 그것을 법으로 금지하는 것은 찬성하지 않는다. 언론의 자유를 보장해 틀린 말이라도 하게 하는 것이 낫다. 생각하는 것을 공개하지 않고 숨기면 오히려 썩게 마련이다.”

-당신의 아버지는 헝가리 유대인인데 그로부터 홀로코스트에 대해 얘기를 들었는가.
“아버지는 2차 대전 직전에 조국을 떠나 그것을 실제로 경험하진 않았으나 조국에 남은 가족은 잃었다. 늘 그의 가슴엔 그것이 남아 있는데 따라서 나도 홀로코스트를 생각하는 것을 당연한 일로 여기고 있다. 나도 그것과 함께 자란 셈이다.    

-남편과 서로의 영화에 대해 얘기하는가.
“그러지 않으려고 한다. 서로의 각본도 읽지 않는다. 무슨 직업이든 간에 늘 그것에 대해 얘기한다는 것은 지루한 일이다. 그러나 난 남편의 영화에 매우 관심이 있고 그의 연기의 열렬한 팬이다. 그러나 우리에겐 세계 정치 등 다른 할 말들이 많다.”

-다음 영화는 무엇인가.
“17세기 영국을 무대로 한 ‘페이보릿’이라는 작품이다. 앤 여왕과 그녀의 자문관인 레이디 소머셋의 얘기로 나는 소머셋 역을 맡는다. ‘권력의 균형’이라고도 부르는데 제목이 계속 바뀌고 있다.   

★이 때 립스탯이 인터뷰에 동참했다.            
-당신의 얘기가 영화로 만들어진 것에 대한 느낌은.
*“우선 레이철이 투사라는 것을 강조하고 싶다. 그가 주연한 이 영화는 내 생애 있어 가장 좋은 일 중의 하나다. 영화에 대한 반응도 좋다. 레이철을 배우로서 뿐만이 아니라 개인으로서 알게 된 것이야말로 행운이다. 그는 내 얘기를 바로 표현하기를 원했다. 참으로 인간적인 사람이다.

-레이철이 당신 역을 한다는 말을 들었을 때 그에 대해 조사를 했는가.
*“레이철이 누구인지는 알고 있었지만 개인적으로는 몰랐기 때문에 철저히 연구를 한 결과 110% 찬성했다.”

-장애물이 앞에 있을 때 그것과 다투어 극복하는 편인가.
*“우리는 늘 그른 것과 싸울 수는 없으나 때론 싸워야 한다. 그러나 이 싸움은 내가 하고 싶어서라기보다 싸울 수밖에 없게 된 경우다. 그런데 승리란 기분이 좋은 것이다. 영화를 통해 젊은이들도 불의에 대항해 승리했을 때 그것이 얼마나 좋은 것인가를 깨닫게 되기를 바란다.“

-삶에 대한 청사진이라도 있는가.
“없다. 나아가면서 그때 그때 결정한다.”

-살다가 장애물을 만나면 어떻게 대처하는가.
“항복하지 않고 조용히 대응하는데 종종 실패한다.”

-당신의 책을 영화로 만든다고 들었을 때 우려한 점이라도 있는가.
*“처음부터 걱정한 것은 내 책은 진실에 관한 것이라는 점이었다. 그러나 영화는 어느 정도 진실을 변경해야 한다는 것을 난 알고 있다. 그렇지 않으면 극영화 아닌 기록영화가 되기 때문이다. 그러나 내 얘기의 본질은 진실이어서 제작자들과 얘기할 때도 그 점을 강조했다. 그랬더니 그들은 진실에 충실하겠다고 다짐했다. 그래서 그 말을 믿고 영화화를 허락하면서도 망설였고 과연 내가 바른 일을 하고 있는가 하고 물어야 했다. 그러나 영화를 보고 나서 그들이 내 믿음을 지켜주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한국일보 박흥진 편집위원/ hjpark1230@gmail.com>
     

존스 부부 따라 가기(Keeping up with the Joneses)


스파이 팀(왼쪽부터)과 그의 이웃 잭과 잭의 아내 캐런과 팀의 아내 나탈리.


앞집으로 이사온 새 이웃 알고보니 스파이


할리웃의 스튜디오들이 국화빵처럼 찍어내는 전형적인 넌센스로 이름께나 있는 배우들이 아깝다. 액션과 코미디와 로맨스를 두루뭉술하니 짬뽕한 스파이영화로 브래드 핏과 앤젤리나 졸리가 나온 ‘미스터 앤 미시즈 스미스’를 연상케 한다. 그러나 내용이 터무니없는 데다가 난장판 식의 액션에 억지웃음으로 뒤범벅을 해 보면서 잊어버릴 영화다.
영화의 주인공으로 나오는 멋쟁이 존 햄은 AMC-TV의 인기 시리즈 ‘매드 멘’으로 스타가 된 배우로 TV의 작은 공간을 벗어나 빅 스크린에서도 성공하려고 노력하고 있는데 이런 영화에 나와 가지고는 그의 경력에 아무 도움도 못 될 것이다. 
애틀랜타의 중류층 동네 막다른 골목에 살면서 11년째 결혼생활을 하고 있는 제프(잭 갈리피아나키스)와 캐런(이슬라 피셔)은 서로 사랑하고 있지만 옛날의 정열은 식어가는 상태. 제프는 인공위성과 레이다 및 미사일 기술 등을 제조하는 군수회사의 직원 상담원이고 캐런은 가구 디자이너. 
둘의 아이들이 여름방학을 맞아 서머캠프에 간 사이 둘은 정열의 불꽃을 되살리기 위해 온갖 섹시한 방안을 궁리 중인데 이런 시도가 둘의 앞집에 새로 이사 온 존스 부부로 인해 망가진다. 존스 부부의 남편 팀(존 햄)은 큰 키에 건장한 체격을 한 친절하고 상냥한 미남으로 여행작가이고 그의 팔등신 미녀 아내 나탈리(갤 개도-이스라엘 사람으로 텔아비브에 사는데 내년에 나올 ‘원더 우먼’의 주역이다)는 소셜미디어 전문가로 스리랑카의 고아들을 돕는 인류박애자.
캐런은 자기들에게 싹싹하게 구는 이들을 시기와 동경의 눈길로 바라보면서 저런 ‘고급 인간’들이 우리 동네에 살 이유가 없다며 둘의 동태를 감시한다. 그러나 낙천적인 잭은 아내와 달리 삶이 따분하던 차에 잘 됐다 하고 팀과 금방 친해지는데 이에 캐런도 서서히 나탈리와 가까워지긴 하나 의심은 못 버린다. 그리고 잭과 팀의 아이들 같은 심심풀이와 우정이 에피소드 식으로 묘사되고 이와 함께 존스 부부는 동네 사람들과도 친해진다.
그런데 존스 부부는 왜 이 동네로 이사를 왔을까요. 얼마 안 가 이들이 잭의 회사에서 기밀이 빠져나가는 것을 조사하기 위해 이 동네에 온 스파이들이라는 것이 밝혀지고 이어 할리웃식의 황당무계한 총격과 자동차 추격과 도주가 있는 액션이 요란하게 일어난다. 팀이 아내와 잭 부부를 태우고 모터사이클을 타고 총을 쏘면서 쫓아오는 킬러들을 피해 초고속으로 벤츠를 역주행하는데 이 와중에 캐런은 죽는다고 비명을 지르면서 동시에 캠프에서 걸려온 자기 아이의 전화를 받는다. 
영화에서 잭 회사의 군사기밀을 사서 팔아먹는 나쁜 놈 스코르피온으로는 코미디언 패튼 오스왈트가 나온다. 뱀고기 요리도 나오는 어리석은 영화로 마치 속편이 있을 것처럼 끝난다. 킬링타임용. 그렉 모톨라 감독. PG-13. Fox. ★★½(5개 만점)
                                                             <한국일보 박흥진 편집위원/ hjpark1230@gmail.com>


문라이트(Moonlight)


완이 리틀에게 수영을 가르치고 있다.

어머니와 단 둘이 사는 흑인 소년 성장기


마이애미에 사는 흑인 소년의 성장기이자 러브 스토리로 배우들과 감독이 모두 흑인들이다. 홀어머니와 단 둘이 사는 소년이 틴에이저가 되고 이어 청년이 되기까지의 과정을 한 점의 과장도 없이 차분하고 담담하고 자세하게 그렸는데 그런 고요 속에 강렬한 힘을 지닌 감동적인 작품이다.
세 차례의 성장과정을 세 배우가 묘사하는데 처음 보는 배우들의 연기가 마치 이웃사람의 모습을 보듯이 사실적이다. 거칠고 다소 어둡고 강인하며 또 날 것과도 같이 적나라하고 아프고 연민스러운데 연출이 매우 은밀하고 침착하며 민감하면서도 강한 흡인력을 지녀 영화 속으로 빨려 들어가게 된다. 무엇보다 아름다운데 연기뿐 아니라 음악과 촬영도 훌륭하다.
소년 리틀(알렉스 R. 히버트)은 작고 약해 학교 왈패들에게 시달린다. 어느 날 다시 이들에게 당하던 리틀은 드럭 딜러들의 거래처인 폐건물로 달아났다가 여기서 만난 적에겐 위협적이나 순진한 사람들에겐 친절한 드럭 딜러 완(마헤르샬라 알리)의 보호를 받게 된다. 그러나 리틀의 어머니 폴라(네이오미 해리스-007의 상관 M의 비서 모니페니)는 완과 아들이 가까운 것을 탐탁지 않게 여긴다.
리틀은 10대가 되어 본명 치론(애쉬턴 샌더스)으로 불린다. 키가 크고 비쩍 마른 치론은 역시 외톨이로 그의 유일한 친구는 다소 거치나 친절한 케빈(자렐 제롬). 둘은 밤의 해변에서 다정하게 대화를 나누는데 두 사람 사이에 로맨틱하고 성적인 분위기가 감돈다.
치론은 이제 신체 건장하고 터프한 청년이 돼 블랙(트레밴테 로즈)이라 불리며 애틀랜타에 산다. 그는 장식용 금이빨을 한 과묵하고 고독한 외톨이로 이제 비로소 과거 평탄치 못한 어머니와의 관계를 다소 회복한 상태.  
어느 날 느닷없이 마이애미에서 간이식당의 쿡으로 일하는 케빈(안드레 홀랜드)으로부터 전화가 걸려온다. 이에 블랙은 케빈을 찾아가 둘이 식당에서 포도주를 마시며 장시간 대화를 나눈다. 이어 둘은 케빈의 아파트로 간다. 영화에서 가장 아름답고 조용하게 보는 사람의 감정을 울먹이게 만드는 장면이 마지막 장면. 블랙의 사랑의 고백이 있고 케빈은 이를 담담하게 받아들인다. 둘 사이의 분위기가 경이롭도록 은근하고 깊고 아름답다.
연기들이 다 뛰어난데 특히 로즈의 안으로 억누르는 듯한 섬세하면서도 긴장된 연기가 돋보인다. 블랙과 케빈의 대화장면과 배우들의 연기가 밤의 월광처럼 빛나는 보석과도 같은 영화로 상냥해 좋다. 배리 젠킨스 감독. 성인용. A24. (5개 만점)
                                                              <한국일보 박흥진 편집위원/ hjpark1230@gmail.com>


‘아가씨’




속임수가 판을 치면서 플롯이 반전을 거듭하는 세계적 오퇴르 박찬욱 감독의 레즈비언 에로틱 스릴러 ‘아가씨’(The Handmaiden-★★★★-5개 만점·사진)는 발가벗은 욕정과 선혈이 흥건한 범죄영화로 본질은 러브 스토리다. 원작은 웨일즈의 여류작가 새라 워터즈의 빅토리아 시대를 배경으로 한 레즈비언 로맨스 소설 ‘핑거스미스’(Fingersmith).
무대를 1930년대 일제치하 한국으로 옮긴 ‘아가씨’의 주요 인물은 4명. 친일파로 일본서 살다가 한국으로 온 음란서적 수집가인 변태적 인간 코주키(조진웅)와 자신의 후견인인 코주키의 엄격한 감시를 받으며 대저택(오사카서 촬영)에 갇혀 사는 히데코(김민희). 그리고 히데코의 막대한 유산을 노리고 그를 사랑으로 유혹하는 날사기꾼 백작(하정우)과 백작의 사주를 받고 히데코의 하녀로 들어간 소매치기 숙희(김태리).
누가 누구를 속이고 속는지 모를 만큼 얘기가 엎치락 뒤치락을 반복하는데 히데코와 숙희가 깊은 사랑에 빠지면서 흥미진진한 얘기가 점입가경에 이른다. 장르감독인 박찬욱의 뛰어난 솜씨가 뽐을 내는데 구도와 색깔과 촬영 및 프로덕션 디자인(올 칸영화제서 벌칸상 수상) 등 외형미가 완벽하고 연기도 훌륭하다. 특히 이 영화로 스크린에 데뷔한 김태리의 어리숙한 듯하면서도 당돌한 연기가 단연 돋보인다.
물론 박찬욱의 영화여서 피가 흐르는 잔인성을 목격하게 되는데 ‘친절한 금자씨’에서 처럼 손가락이 싹독 싹독 잘려나간다. 이와 함께 히데코와 숙희의 전라의 격렬한 성애장면이 장시간 계속되는데 이 장면은 프랑스 영화 ‘푸른색이 가장 따뜻한 색’의 레즈비언 섹스신 다음 갈만하게 극사실적이다. 그런데 음악이 BBC-TV의 드라마 ‘다운턴 애비’의 것을 똑 닮았다.
그러나 이 영화는 내적 깊이나 투철한 예술혼이 있는 것은 아니다. 나는 박감독의 재능에 감탄하면서도 왜 그가 장르감독의 틀을 벗어나 그 재주로 예술성이 강한 영화를 만들지 않는 것인가 하고 궁금히 여긴다. 그는 언젠가 내게 말했듯이 자기가 깊은 영향을 받은 장르감독 히치콕의 길을 고수하려는 것인가.
얼마 전 영화 홍보차 LA에 온 박감독과 김태리를 만났다. 그는 시대를 1930년대로 잡은 것에 대해 “귀족 아가씨와 하녀라는 신분제도와 정신병원이라는 근대기관이 공존하는 시기가 그 때였기 때문이다”면서 “이와 함께 한반도의 근대성과 친일파들의 내면도 탐구할 좋은 기회였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김태리에 대해 “1,500명에 육박하는 배우들을 오디션 했으나 내가 생각하는 숙희를 찾지 못했다”면서 “거의 자포자기적 심정으로 마지막 한 명을 만났는데 그 사람이 김태리였다. 독립적이고 주체적이며 솔직한 여성의 모습을 그에게서 발견해 캐스팅했다”고 말했다.” 내가 김태리에게 “러브신 연기하기가 힘들었겠는데 참 용감한 연기”라고 말하자 태리는 “하기 힘들었어요”라며 엷은 미소를 지었다.
왜 한국어 제목은 ‘아가씨’인데 영어 제목은 하녀를 뜻하는 ‘핸드메이든’이냐고 물었다. 박 감독은 이에 대해 “두 여성 주인공이 균형을 이루기를 바랐다. 원제가 숙희를 가리키는 ‘핑거스미스’(소매치기)이니까 한국어 제목은 히데코가 주인공인 것처럼 ‘아가씨’ 그리고 영어 제목은 다시 ‘핸드메이든’으로 정했다”고 대답했다. 불어 제목은 ‘마드므와젤’이라고.
다소 길다고 느낀 동성애 장면에 대해서는 “애초에 우려했던 만큼 동성애 혐오자들이 준동하지는 않았다. 댓글을 악의적으로 달고 별점을 0으로 주어 깎아내리려는 시도는 많았지만 대세에 영향을 줄 정도는 아니었다”면서 “젊은이들 특히 여성들 반응이 뜨거웠다. 무턱대고 혐오하던 사람들이 영화를 보고 ‘자연스럽고 아름답더라’고 말할 때 정말 보람을 느낀다”고 말했다. 영화는 한국에서 430만명이 관람하며 히트를 했다.
앞으로 구상 중인 영화에 대해서는 한국어, 영어 영화 여러 편이 기획 가동 중이나 아직 확정된 것은 없다는데 박 감독의 한 측근은 내게 네트플릭스 영화를 만들 가능성이 있다고 귀띔해 줬다.
박 감독은 지난 2013년 히치콕 스타일의 ‘스토커’(Stoker)로 할리웃에 데뷔했다. 박 감독은 이어 자신의 예술관과 영화관에 관해 “말로 설명할 만한 것은 없다”면서 “그때 그때 좋게 느껴지는 내용을 정확하게 표현하려고 애쓸 뿐”이라고 말했다.
나는 이어 “꼭 사람의 손가락을 잘라야 하느냐”고 물었다. 박 감독은 이에 “코주키에게 그의 장서와 서화 컬렉션이 어떤 의미인지 이해한다면 그것이 파괴되었을 때 그의 분노도 짐작이 갈 것이다. 손가락을 자르는 것은 최소한의 표현이라고 생각한다”고 대답했다.
세계적으로 칭찬을 받은 ‘아가씨’를 제치고 한국에서 김지운 감독의 ‘밀정’(The Age of Shadows-현재 CGV서 상영)을 오스카 외국어 영화상 후보작으로 올린 것에 대해 박 감독의 한 측근은 “그것은 늘 있는 한국의 정치적 성향 탓이라고 말했다. ‘아가씨’는 코리아타운 내 CGV, 아크라이트(바인과 선셋), 랜드마크(피코와 웨스트우드)에서 상영한다.      
                                                    <한국일보 박흥진 편집위원/ hjpark1230@gma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