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이야기

2016년 10월 6일 목요일

‘맥베스’




야망과 권력, 음모와 배신과 살인 그리고 죄의식과 광기가 있는 오페라 ‘맥베스’(Macbeth^사진)는 베르디가 작곡한 셰익스피어의 세편의 연극 중 최초의 것이다. 나머지 둘은 ‘오텔로’와 ‘팔스타프’. 오페라 프로그램 노트에 의하면 베르디는 셰익스피어의 ‘리어 왕’도 오페라로 만들려고 스케치까지 했으나 완성하지 못했다.
오페라 ‘맥베스’는 연극처럼 깊고 어둡고 강렬하면서 드라마틱하다. 지난 22일 LA 다운타운의 도로시 챈들러 파빌리언에서 공연된 LA오페라의 ‘맥베스’를 보면서 느낀 점은 극과 오페라의 폭 넓은 스케일과 함께 베르디의 음악이 참으로 훌륭하다는 것이었다.
노래도 노래지만 음악이 연극이 표현하고자하는 모든 내성과 감정을 다양하고 풍성하게 드러내 오페라의 음감에 깊이 젖어들었다. 장엄하고 음산하며 쾌활하고 희롱하듯 즐겁고 또 서정적이면서 비감하게 연극의 내용을 마음껏 구현한 음악이다. LA오페라 오케스트라의 상임지휘자 제임스 콘론이 지휘하는 오케스트라가 이같은 음악을 무성한 삼림처럼 질감 있고 다변하게 연주했다.        
맥베스역의 은퇴를 모르는 사나이로 LA오페라의 총감독이기도한 플라시도 도밍고와 간교하고 표독스런 레이디 맥베스 역의 메조-소프라노 에카테리나 세멘추크를 비롯해 맥베스의 동료장군 방코 역의 로베르토 탈리아비니 및 끝에 가서 맥베스와 결투를 벌이는 맥더프 역의 아르투로 샤콘-크루스 등이 모두 노래를 잘 불렀지만 특별히 감탄할만한 음성들은 아니었다.
다만 나이 75세에도 무대를 가득 채우면서 청아한 음성을 구사하는 도밍고의 에너지가 놀랍고 세멘추크의 안개가 낀 듯한 음성이 인상적이었다. 도밍고는 처음에 바리톤으로 시작했으나 곧 이어 테너로 바꿔 활동하다가 6년 전에 바리톤으로 돌아갔다.
이번 공연에서 심하게 눈에 거슬렸던 것은 맥베스에게 스캇틀랜드의 왕이 된다고 예언을 한 마녀들이다. 연극에서는 마녀가 세 명인데 다르코 트레스냑이 연출한 이 오페라에서는 아홉 명의 긴 꼬리를 한 피부가 벗겨진 암컷 인쥐 같은 마녀들이 극중 내내 무대를 차지하면서 때로 광대처럼 굴어 극과 음악을 심하게 훼손하고 있다.
“삶은 바보가 말한 소리와 분노로 가득 찬 무의미한 얘기”라는 맥베스의 유명한 독백(윌리엄 포크너는 이 독백에서 따 자기 소설 제목 ‘The Sound and the Fury’-‘음향과 분노’로 썼다)이 있는 ‘맥베스’는 권력에 대한 야심에 가득 찼으나 머뭇거리는 스캇틀랜드의 장군 맥베스가 간악한 아내 레이디 맥베스의 사주에 따라 던칸 왕을 살해, 옥좌에 오르나 결국 부부가 함께 멸망하고 마는 얘기다.
레이디 맥베스도 말했듯이 “권력의 길이란 악의 씨가 뿌려져있어” 그것을 찬탈하려면 피를 보게 마련이다. 셰익스피어의 리처드3세와 한국의 군부쿠데타를 일으킨 군인들도 그랬다. 무서운 것이 여자라고 엉거주춤하는 맥베스를 “비겁자”라고 질책하며 던칸 왕을 죽이라고 독촉하는 것이 레이디 맥베스다.
제1막에서 레이디 맥베스가 남편의 편지를 읽는 장면은 처음에 노래가 아닌 낭독으로 시작된다. 프로그램 노트에 의하면 베르디는 오페라에 강한 극적 의미를 부여하기 위해 이런 처리를 했다. 베르디는 과거 노래 위주의 오페라 테두리에서 벗어나 극을 음악만큼이나 비중 있게 다루기 위해 레이디 맥베스는 “노래를 잘 부르지 못해야한다. 거칠고 공허하고 답답하고 악마적이어야 한다”고 강조했다고 한다. 음악과 드라마를 함께 중요시한다는 점에서 베르디와 동시대인인 바그너의 ‘뮤직 드라마’가 생각난다.
오페라는 맥베스와 맥더프의 칼싸움으로 절정에 이른다. 맥베스는 맥더프의 칼에 찔려 죽는데 물론 그 죽음은  ‘오페라적 죽음’이어서 맥베스는 치명상을 입고도 제 할 말 다 하고 죽는다.
셰익스피어의 많은 작품이 영화로 만들어졌듯이 ‘맥베스’도 여러 번 영화화했다. 그 중에서 유명한 것이 오손 웰즈가 감독하고 주연한 흑백영화(1948)다. 레이디 맥베스 역은 자넷 놀란이 맡았는데 촬영과 무드와 연기 등이 뛰어난 작품이다. 또 로만 폴란스키도 존 핀치와 프란시스 아니스를 써 영화(1971)를 만들었고 작년에는 마이클 화스벤더와 마리옹 코티야르가 주연한 ‘맥베스’가 나왔다.
그러나 ‘맥베스’ 영화 중 최고의 걸작은 아키라 쿠로사와가 내용을 사무라이영화로 변용한 ‘피의 왕좌’(Throne of Blood 1957)이다. 도시로 미후네가 맥베스 역을 고전미를 지닌 이수주 야마다가 레이디 맥베스 역을 한 이 흑백영화는 일본의 극 노와 가부키의 영향을 받은 것으로 촬영과 화면구성과 의상 및 연기 등이 뛰어난 명화다. 마지막에 갑옷을 입은 미후네가 공포에 질려 황소 눈을 한 채 빗발같이 쏟아지는 화살을 맞으며 죽는 장면이 장렬하다.
오페라 ‘맥베스’는 10월 5일, 8일, 13일(하오 7시30분)과 16일(하오 2시30분)에 공연하며 13일 공연은 산타모니카 피어와 사우스파크 게이트에서 야외 스크린으로 무료 관람할 수 있다.
                                              <한국일보 박흥진 편집위원/ hjpark1230@gmail.com>


매그니피슨트 이병헌




이병헌이 쌍칼 쓰고(사진) 총까지 쏘는 코리언 건맨 빌리 락스로 나오는 웨스턴 ‘매그니피슨트 세븐’(The Magnificent Seven-★★★½^5개 만점)은 액션과 폭력이 난무하는 오락물이다. 이 영화는 지난 1960년 웨스턴의 명장 존 스터지스가 감독하고 율 브린너, 스티브 매퀸, 찰스 브론슨, 제임스 코번 및 로트 번 등이 나온 동명영화(한국제목 ‘황야의 7인’)의 리메이크다. 그리고 ‘황야의 7인’ 역시 아키라 구로사와가 감독하고 도시로 미후네가 주연한 ‘7인의 사무라이’(1954)를 웨스턴으로 만든 것이다.
안트완 후콰가 감독하고 과거 그와 함께 2편의 영화를 만든 덴젤 워싱턴이 주연하는 ‘매그니피슨트 세븐’과 1960년 작이 서로 크게 다른 점은 옛 영화의 건맨들은 다 백인이었으나 이번에는 흑인, 동양인, 멕시칸 및 아메리칸 인디언 등 온갖 국적과 피부색깔을 지녔다는 점.
‘무지개 연합 건맨’들의 웨스턴인데 어쩌다가 한국인 건맨이 미 서부에까지 도착했는지는 알 길이 없지만 이병헌이 조연으로 나와 악인들을 종횡무진으로 처치하는 모습을 보자니 동포로서 마음 뿌듯하다. 이병헌은 과거 ‘G.I. 조’등 몇 편의 할리웃영화에 조연이나 단역으로 나왔으나 이번 역은 그 것들과 달리 상당히 비중이 크다.
이병헌이 맡은 역은 옛 영화에서 제임스 코번이 했던 과묵한 칼잡이 브릿 역으로 이병헌의 칼 대 그에게 시비를 거는 카우보이의 총 대결은 옛 영화의 장면을 그대로 따온 것이다. 그러나 이 리메이크는 철저한 액션팬 용으로 깊이와 독창성 및 신선함은 부족하다. 솜씨 있게 만든 보고 즐길만한 영화이나 옛 영화의 멋과 스타일과 스타들의 카리스마를 따를 수는 없다.
1879년 미 서부의 금광마을 로즈 크릭. 이 금광을 독식하려고 탐욕스럽고 무자비한 자본가 바톨로뮤 보그(피터 사스가드의 역이 1차원적이다)가 졸개들을 동원해 주민들에게 땅을 헐값에 팔라고 위협한다. 옛 영화의 무대는 미 접경지대 멕시코 깡촌이었고 마을 주민을 위협하는 것은 산적 두목(금이빨 한 일라이 월랙)이었다.
주민들이 마을을 구하려고 고용한 건맨이 검은 옷을 입은 샘 치솜(워싱턴-이 역은 옛 영화의 율 브린너 역). 이어 치솜은 사회의 부적응자들인 건맨들을 모은다. 폭탄전문가인 도박사로 쾌활한 조쉬 패러데이(크리스 프랫), 남부군 출신의 저격수로 ‘죽음의 사자’로 불리는 굿나잇 로비쇼(이산 호크), 로비쇼의 단짝인 동양인 칼잡이 빌리 락스, 산악인 잭 혼(빈센트 도노프리오), 직업 무법자 멕시칸 바스케스(마누엘 가르시아-룰포) 및 활 잘 쏘는 아메리칸 인디언 레드 하베스트(마틴 센스마이어) 등이 나머지 6명.
다양한 건맨들을 소개하면서 이들 개개인의 면모나 성격묘사가 부족한데 액션과 폭력을 절제하고 이들을 좀 더 깊이 있게 다뤘으면 하는 아쉬움이 있다. 클라이맥스는 개틀린 연발기관총을 동원한 보그일당 대 7인의 대결로 액션은 요란하나 과장된 만화 같다. 영화 끝에 엘머 번스틴이 작곡한 옛 영화의 신나는 음악이 나오면서 원전에 대해 치하를 하고 있다.
영화에서 약간 찜찜한 것은 로비쇼가 락스를 자기 하인이었다고 농담조로 소개하는 장면. 이에 락스가 로비쇼를 고깝지 않은 눈길로 바라보는데 미 서부시대 동양인들이란 하인이나 쿡 또는 세탁부나 철도건설 노동자들이긴 했지만 한국인이 듣기엔 거부감이 인다.
이 영화는 최근 폐막된 토론토 국제영화제 개막작이었다. 그래서 토론토에서 영화 출연진과의 인터뷰가 있었다. 다음은 내 질문에 답한 그들의 이병헌에 대한 평가이다.
*덴젤 워싱턴
난 한국영화 ‘달콤한 인생’을 좋아했는데 거기에 이병헌이 나온지 몰랐다. 그가 해외에서 그렇게 인기가 있는지도 몰랐다. 그는 훌륭하고 진지하고 조용하^ 또 철저하고 정확한 배우다. 그야말로 스타다.
*이산 호크
이병헌이 나온 ‘좋은 놈 나쁜 놈 이상한 놈’은 최고의 현대판 웨스턴 중 하나로 내가 아주 좋아한다. 뛰어나고 얄궂은 영화로 그 영화에 나온 이병헌과 함께 일하고 또 관계를 맺은 것이 매우 자랑스럽다.
*크리스 프랫
사람들은 이병헌이 얼마나 유명한 스타인줄을 모른다. 그는 한국의 엘비스다. 그는 정말로 훌륭하고 멋지고 또 친절하고 품위 있는 사람으로 역을 완전히 자기 것으로 소화하는 진짜 프로다. 이 영화가 이병헌을 몰랐던 사람들이 그를 알게 되는 계기가 될 것이며 나는 그와 함께 다시 일하고 싶다.
프랫은 인터뷰 후 나와 사진을 찍을 때도 다시 한 번 “나 정말 그와 같이 다시 일하고 싶다”고 강조했다. 브라보 이병헌!                      
                                                <한국일보 박흥진 편집위원/ hjpark1230@gmail.com> 


2016년 9월 21일 수요일

체슬리‘설리’설렌버거 역 탐 행스



난 쉽고 편안하게 살아 별 달리 스트레스 없어 


현재 상영중인‘설리’(Sully)에서 지난 2009년 1월 뉴욕에서 이륙 후 새떼와의 충돌로 엔진 고장을 일으킨 비행기(US 에어웨이즈)를 허드슨강 위에 무사히 착륙시켜 155명의 승객을 모두 위기에서 구출한 기장 체슬리‘설리’ 설렌버거 역을 한 탐 행스(60)와의 인터뷰가 지난 8월 27일 할리웃의 런던호텔에서 있었다. 짧은 머리에 나이보다 젊어 보이는 행스는 씩씩하고 명랑한 사람으로 인터뷰 내내 큰 제스처와 함께 인상을 써가며 소리 지르고 노래까지 부르면서 상소리를 섞어 속사포 쏘듯 질문에 대답했다. 꼭 장난꾸러기 소년 같았는데 도무지 수퍼스타 티를 안 내 호감이 가는 사람이다. 굉장히 낙천적이요 행복한 사람이라는 느낌을 받았다.    

-어떻게 해서 영화에 나오기로 했는가.
“나는 ‘허드슨 강의 기적’의 주인공 설리를 지난 2008년 오스카파티 때 처음 만났다. 그 후 이 영화의 각본을 단숨에 읽었는데 그 것은 영화의 교본과도 같은 것이었다. 영화에서 묘사된 설리에 대한 미 운송안전위의 조사에 대해선 나도 몰랐다. 조사 결과에 따라 설리의 40년의 경력에 큰 오점을 남길 수도 있어 설리는 그야말로 생애 최대의 위기를 맞았었다. 나는 그와 같은 긴장된 과정이 마음에 들었다. 그리고 영화를 감독한 클린트 이스트우드와 35분간 전화통화를 하고 출연을 확정지었다.”

-스트레스가 심한 공포 상황에서 어떻게 대처하는가.
“난 당신들을 만날 때 극심한 공포를 느낀다. 난 쉽고 편안하게 살기 때문에 별 달리 스트레스를 느끼진 않는다. 그리고 난 비행기 안에서도 두려움을 안 느낀다. 가급적이면 좌석벨트도 안 매려고 한다. 난 이번에 항공사들의 기장과 승무원들에 대한 대우가 매우 나쁘다는 것을 알았다. 그들은 음식도 제 돈 내고 사 먹어야한다. 이 말을 듣고는 앞으론 차나 기차를 타야겠다고 생각했다.”

-당신은 어떤 형태의 승객인가.
“신발을 벗고 물 한 병이면 된다. 때론 난 비행 내내 잔다. 나 혼자 즐기면서 누구도 귀찮게 하지 않는다.”

-실제 삶에서 당신은 역경에 대해 얼마나 빨리 대처하는가.
“본능이란 생각 없이 반응하는 것이다. 그냥 반응대로 따라 할 뿐이다. 난 비교적 역경에 잘 대처한다고 생각한다.”      

-영화 찍을 때 물 속에서 매우 추웠는가.
“영화는 10월에 찍었다. 그래서 그렇게 춥진 않았다.”

-당신은 영화에서 여러 번 영웅으로 나왔는데 당신이 한 일 중에 가장 영웅적은 일은 무엇인가.
“성장한 것이다. 사회의 변화에 맞서면서 큰다는 것이야말로 영웅적인 일이다. 그런데 난 겁쟁이다. 우리는 네 가지 형태의 사람이 될 수가 있는데 그 것은 영웅과 악한과 비겁자와 방관자이다. 난 방관자다.”   
설리 기장이 허드슨강 위 불시착 후 육지에서 아내와 통화하고 있다.

-당신의 아이들이 아빠를 영웅이라고 생각한다고 보는가.
“아니다. 날 멍청이라고 본다. 모르겠다. 내 아이들에게 물어봐라. 난 자연적 본능을 지녀 뭘 걱정하거나 전전긍긍하면서 사는 사람이 아니다.”           

-비행기 조종할 줄 아는가.
“비행이란 재미있겠지만 조종할 줄은 모른다.

-당신을 짜증나게 하는 것은 무엇인가.
“난 무난한 사람이다. 그러나 컴퓨터의 프린터가 말을 안 들을 땐 소리를 지른다. 

-부인(배우인 리타 윌슨)이 유방암 진단을 받았는데.
“고개를 숙이고 모든 것의 우선순위를 재검토해야 했다. 그러나 내가 할 일이란 아내를 지원하고 그녀의 건강에 주의를 기울이는 것뿐이다. 엄격히 말해 그 질병의 짐이란 아내의 것이지 내 것은 아니다.”

-영화에서 머리와 수염이 백색이 된 느낌이 어떤가.
“백색가발을 만들기란 쉬운 일이 아니어서 온통 염색을 했다. 그러면서 배운 것이 머리털과 수염의 구조가 다르다는 것이다.”

-당신 생애의 정점과 바닥은 무엇인가.
“내가 아직도 여기 있다는 것이 정점이다. 한 직업을 오래 가지고 있다는 말이다. 내가 나온 많은 영화들 중에 그 어느 것 하나가 나의 바닥일 수가 있다. 배우란 대중의 관찰 대상으로 단 한 번의 실수로 판단을 받을 수가 있다. 내 경우 과거보다 요즘에 와서 어떤 실수를 하더라도 사람들이 보다 빨리 잊어주는 것 같다. 그러나 배우라는 직업을 가진 이상 늘 정점과 바닥이 있게 마련이다. 나의 또 다른 정점은 내가 아버지요 할아버지라는 것이다.”

-클린트와 일한 경험은 어땠는가.
“그는 연습을 안 한다. 그는 자기 경험을 통해 배우들이 자기 일이 아닌 것에 신경을 쓰다보면 연기자로서의 본능을 잃기 쉽다는 것을 알 고 있다. 그가 원하는 것은 오직 즉시성과 확신이다. 그런데 하루의 긴 촬영 시간 동안 그 것을 유지한다는 것이 쉬운 일이 아니다. 그래서 그는 그 것을 방해하는 것을 전부 제거한다. 한 장면을 딱 한 번의 촬영으로 끝낸다. 혹시 배짱이 있어 그에게 가서 한 번 더 찍자고 말해봤자 ‘노’라는 소리나 들을 것이다. 그는 배우가 촬영시 자신의 최선을 다 할 것이라는 점을 믿는 사람이다.”

-취미가 무엇인가.
“한 두어 가지 스포츠에 관심을 기울인다. 그러나 난 세 가지의 직업을 가지고 있어서 취미를 가질 여유가 없다. 타이프라이터를 수집은하나 전문가는 아니다. 난 자유 시간이 없다. 스포츠 중에선 축구경기를 보는 것을 즐긴다. 한두 잔의 생맥주와 따스한 날씨만 있으면 족하다.”    

-타이프라이터를 몇 대나 가지고 있는가.
“집과 사무실에 모두 200개 정도 갖고 있다.”

-사람들이 결과를 다 아는 왜 이 영화를 보리라고 생각하는가.
“그 것은 책이나 사실을 바탕으로 만드는 영화가 늘 당면하는 문제다. 그러나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도 그 결과를 다 알지만 사람들은 여전히 극장엘 가서 본다. 사람들이 다 아는 일을 바탕으로 만든 영화를 보는 이유는 자신을 스크린 위에 올려놓고 환상의 대상으로 삼고 싶기 때문이다. 그래서 ‘아이언 맨’도 되고 택시 운전사도 되는 것이다. 사람들이 영화를 보는 까닭은 스크린 위의 인간적인 조건을 우리가 어떻게 보며 또 우리가 알고 있는 것을 영화가 어떻게 반영하는 가를 알고파 하기 때문이다. 사람들은 모두 결과를 알긴하나 그 것에 이르기까지의 과정을 모르고 있다. 나는 어려서부터 지금까지 영화를 보면서 늘 나도 저렇게 할 수만 있다면 하고 느끼곤 한다. 또 때론 아이고 나도 저런 경험을 했어 하고 감탄하곤 한다.”

-프랭크 시나트라가 부른 ‘플라이 투 더 문’을 처음 들었을 때 달에 가서 살고 싶다는 생각이라도 했는가.
“단 한 번도 그런 생각 한 적이 없다. 그러나 하나 얘기할 것이 있다. 난 영화 일로 많은 아폴로 우주인들을 만났는데 만날 때마다 그들에게 당신은 몇 번이나 ‘플라이 투 더 문’을 들어야 했느냐고 물었다. 그리고 그들이 참석하는 파티에선 반드시 그 노래가 연주됐고 우주인들은 그에 따라 콧노래를 부르는 것을 봤다.”

-당신의 생애에 있어 획기적인 전환점은 무엇인가.
“이혼하고 세금 문제에 시달리고 있을 때 ‘빅’을 찍고 있었는데 후에 그 것이 개봉되면서 빅히트를 한 것이다. 마침 그 땐 내가 막 리타와 결혼을 한 때여서 모든 시름에서 해방이 되는 경험을 했다. 생의 획기적인 전환점이란 이렇게 간단한 것일 수가 있다.”

-살면서 크게 후회한 것은 무엇인가.
“내가 젊었을 때 그 때 네 살 난 내 아들 콜린(역시 배우다)이 2층 창가에서 날 부르는 것을 무시하고 차를 타고 떠난 일이다. 그런 작은 일이 내겐 오래 동안 후회스런 일로 남아 있다. 다시 과거로 돌아가 그 잘못을 고칠 수가 없기 때문이다. 언젠가 콜린에게 그 일을 기억하느냐고 물었더니 모른다고 해 한 숨 놓았던 기억이 난다.”                    
                                            <한국일보 박흥진 편집위원/ hjpark1230@gmail.com> 

스노든 (Snowden)


스노든이 홍콩의 호텔 방에서 인터뷰를 위한 준비를 하고 있다.

NSA의 국민 사찰 폭로한 에드워드 스노든의 실화


CIA와 NSA(미 국가안보국)의 정보 분석원으로 일하다가 정보기관의 개인 사생활 침해에 환멸을 느껴 국가기밀을 누설하고 러시아에서 망명생활을 하고 있는 에드워드 스노든의 실화로 음모론자요 반체제 인사인 올리버 스톤이 감독하고 공동으로 각본을 썼다. 거의 기록영화 식으로 스노든의 개인과 공인으로서의 삶과 함께 그의 기밀 폭로과정을 다루고 있는데 너무 고지식하게 얘기를 이끌고 가 도무지 흥분이 안 된다.
스노든의 얘기는 일종의 스파이 스릴러라고도 하겠는데 스톤은 영화를 진지하고 솔직하게 다루고는 있지만 연출 솜씨가 진부할 정도로 무덤덤하고 평범해 긴박감이나 스릴 또는 서스펜스가 결여돼 영화에 감정적으로 몰입하게 되지를 않는다. 한 마디로 말해 불길이 모자라는 작품이나 시사적인 영화이니만큼 볼만은 하다. 스노든의 얘기는 오스카상을 탄 로라 포이트라스의 기록영화 ‘시티즌 포’(Citizen Four)로도 볼 수 있다. 
영화는 2013년 홍콩의 한 호텔에서 포이트라스(멜리사 레오)와 런던의 가디언지 기자 글렌 그린월드(재카리 퀸토)와 그의 상사 이완 맥캐스킬(탐 윌킨슨)이 스노든(조셉 고든-레빗)을 인터뷰하는 장면으로 시작된다. 그리고 얘기는 2004년으로 돌아가 스노든의 삶을 다루면서 여러 차례 이 호텔방으로 다시 돌아온다.
20세인 스노든은 처음에는 애국심이 강한 청년으로 9.11 사태의 반응으로 육군 특공대에 입대하나 부상을 입고 제대, CIA에 지원해 정보요원이 된다. 그는 고등학교도 안 나왔지만 뛰어난 지능과 컴퓨터에 정통해 상사 코빈 오브라이언(리스 이판스)의 신임과 사랑을 받는다. 스노든이 CIA에서 일하는 동안 기계실에서 일하는 행크 포레스터(니콜라스 케이지)와 친해지는데 케이지가 오래간만에 영화 같은 영화에 나와 짧지만 폭과 깊이가 있는 연기를 보여준다.  
스노든의 CIA와 NSA에서의 일상과 함께 그와 그의 애인으로 사진작가인 린지 밀스(쉐일린 우들리)와의 관계가 묘사되는데 린지의 역은 하나의 장식품에 불과하다. 우들리뿐만이 아니라 레오와 윌킨슨 및 퀸토 같은 좋은 배우들이 제대로 실력 발휘를 못하고 있다. 
그리고 NSA 하와이 사무소에서 일하던 스노든은 미 정보기관의 국민 사찰에 심한 좌절감을 겪으면서 이에 대한 반발로 엄청난 국가기밀을 빼내 가디언지와 접촉한다. 맨 끝에 실제로 스노든이 인터뷰에 응하는 장면이 나온다. 한편 린지는 스노든을 찾아 모스크바에서 합류했다.
고든-레빗이 내성적이요 조용한 스노든 역을 차분히 하고는 있지만 스노든이 카리스마가 있는 인물이 아니어서 감정적으로 접근하기가 쉽지 않다. 
서스펜스 스릴러 스파이영화라기보다 많은 배우를 동원한 밋밋한 기록영화 스타일이어서 극영화의 재미와 흥분감이 아쉽기는 하나 볼만은 하다. 모두가 잘 알고 있는 얘기라는 점도 영화의 핸디캡으로 작용할 수 있다. 상영시간 134분. R. Open Road. ★★★ (5개 만점)
                                                             <한국일보 박흥진 편집위원/ hjpark1230@gmail.com>     


브리짓 존스의 아기(Bridget Jones’ Baby)


만삭의 브리짓을 데리고 병원으로 들어가는 두 애인 잭과 마크(위).

여전히 귀엽운 르네 젤웨이거의 로맨틱 코미디


르네 젤웨이거가 나와 큰 인기를 모았던 로맨틱 코미디 ‘브리짓 존스’ 시리즈 제3편으로 엉터리 제2편 ‘브리짓 존스: 이성의 낭떠러지’가 나온지 12년만이다. 어리숙한 브리짓은 나이는 먹었지만 여전히 귀엽고 동정이 가는데 영화가 너무 달콤하려고 애를 쓴 흔적이 역력해 오히려 뒷맛이 개운치가 않다. 그러나 재미있고 우습고 선의적이며 앙상블 배우들의 연기와 콤비도 좋아 즐거운 시간을 보낼 수가 있겠는데 특히 데이트 쌍들에게 어울릴 영화다.   
전편에서 자신의 영원한 사랑인 고지식한 변호사 마크 다시(콜린 퍼스)와 헤어진 TV 토크쇼 제작자인 브리짓(젤 웨이거)이 울상을 해가지고 생일을 혼자서 자축하는 장면으로 시작된다. 다시는 장가를 갔다. 그리고 전편의 대니얼 클리버(휴 그랜트)는 영화에서 종적을 감추는데 그 이유가 억지다.  
이런 브리짓을 토크쇼 호스트로 브리짓의 친구인 미란다(새라 소울마니가 매우 재미있는 연기를 한다)가 끌어내 진흙탕 바닥에서 열린 음악축제에 데려 가면서 브리짓의 인생이 대전환을 이룬다. 진흙탕 구덩이에 넘어진 브리짓을 구해준 남자가 영국에서 데이팅사이트로 거부가 된 준수한 미국인 잭(패트릭 뎀시도 보기 좋다). 여차여차해 둘은 축제에 마련한 잭의 텐트에서 하룻밤을 보낸다. 이어 다시가 다시 브리짓 앞에 나타나면서 둘 사이에 옛 정이 모락모락 타오르기 시작한다. 그리고 브리짓은 다시와도 하룻밤을 보낸다.
그런데 문제는 브리짓이 각기 두 남자와 잘 때 사용한 콘돔이 토니 블레어가 영국 수상일 때 이미 시효가 지난 오래된 것이라는 점. 그래서 브리짓은 아기를 임신하는데 진짜 문제는 과연 아기 아버지가 누구이냐 하는 것이다. 이 신데렐라 얘기 같은 영화 속의 남자들은 어찌나 착한지 다시와 잭이 모두 아기의 아버지가 되겠다고 나선다. 그리고 영화는 아기의 아버지가 누구인지를 맨 끝에 가서야 알려주는데 그러느라고 플롯을 엿가락 늘리듯 잡아당기고 있다.
연기들이 다 좋다. 브리짓의 친구들로 나오는 셜리 헨더슨과 샐리 필립스 및 제임스 칼리스 등이 다 잘 하는데 특히 광채를 발하는 것은 브리짓의 산부인과 의사로 나와 시치미 뚝 떼는 연기를 하는 엠마 탐슨(공동 각존)이다. 브리짓의 아빠와 엄마로 나오는 짐 브로드벤트와 젬마 스톤도 좋고.    
영화에서는 ‘강남 스타일’이 요란하게 울려 퍼지면서 파티의 사람들이 신나게 춤을 춘다. 그리고 끝에 가서 속편이 나올 것을 암시하고 있다. 샤론 매과이어 감독. R. Universal. ★★★(5개 만점)           
                                                              <한국일보 박흥진 편집위원/ hjpark1230@gmail.com> 



‘크레이지 러브’




“크레이지 러브 이츠 저스트 크레이지 러브”라면서 숨 넘어가는 소리로 “이 미친 사랑으로부터 날 놓아주세요”라고 하소연한 폴 앵카(75·사진)의 노래를 내가 처음으로 들은 것은 고등학교 1학년 때였다. 그 때 서울 명동에 있던 지하 음악감상실 ‘돌체’를 내 집 드나들다시피 하던 나는 앵카의 ‘크레이지 러브’와 ‘다이애나’ 그리고 닐 세다카의 ‘오, 캐롤’을 들으면서 미 팝송의 팬이 되었다. 나는 지금도 종종 이들의 노래를 들으면서 다시는 돌아오지 못할 과거를 그리워하곤 한다.
노래로만 듣던 앵카의 공연을 직접 본 것은 지난 2000년과 2005년 두 차례 세리토스 공연센터에서였다. 10대 때 들으며 따라 부르던 노래를 부른 앵카를 그 때로부터 무려 반세기가 지나 만나 악수까지 나눴으니 감격일색일 수밖에. 그는 칠순의 나이에도 정열과 에너지가 넘쳐 흘렀는데 모두 나처럼 인생 노을기에 접어든 남녀팬들이 박수를 치고 아우성을 지르면서 앵카의 노래를 즐기는 모습을 보자니 가슴이 찡하게 아름다웠다.
그는 철저한 쇼맨이었다. 세련되고 박력 있는 제스처를 구사하면서 자주 청중들로 하여금 자기와 함께 노래를 부르도록 해 장내가 팬들과 가수의 혼연일체가 된 열기로 후끈 달아올랐던 기억이 난다.        
앵카는 가수로서의 매너만 뛰어난 것이 아니라 노래를 정말 잘 불렀다. 뉴욕타임스도 앵카를 “확신에 찼으나 뽐내지 않는 세련된 가수”라면서 “감상적인 노래들과 스윙송들을 다 손쉽게 다룰 수 있는 음성을 지닌 매력적인 가수로 쇼맨십의 교과서와도 같은 사람이다”고 칭찬한 바 있다.
앵카의 첫 빅히트는 그가 16세이던 지난 1957년에 부른 ‘다이애나’이다. “아 임 소 영 앤 유아 소 올드”로 시작되는 노래는 캐나다 오타와 태생인 앵카가 동네 경찰서에서 비서로 일하던 4세 연상의 다이내나 아이웁에게 바친 구애의 노래다. 그런데 앵카는 다이애나로부터 어리다고 퇴짜를 맞았다고 자서전 ‘마이 웨이’에서 고백했다. 그러나 이 노래는 순식간에 수백만장이 팔려나가면서 앵카는 10대 소녀들의 우상이 되었을 뿐만 아니라 찬란한 가수로서의 길을 터주었다.
내가 ‘돌체’에서 들은 앵카의 노래들은 ‘다이애나’와 ‘크레이지 러브’ 외에도 ‘퍼피 러브’ ‘풋 유어 헤드 온 마이 숄더’ ‘유 아 마이 데스트니’ ‘론리 보이’ ‘텔 미 댓 유 러브 미’ 및 ‘돈 갬블 위드 러브’ 등. 노래가 좋아 따라 부르려고 가사를 외워 공부하다시피 해 내 영어실력 향상에 일조를 했다.
앵카는 가수로서뿐 아니라 작곡가로서도 팝송에 큰 공헌을 한 사람이다. 그도 자서전에서 자신의 음악인으로서의 비결은 작곡이 먼저이고 노래는 그 다음이라는데 있다고 말했다. 그가 작곡한 노래들을 부른 가수들로는 프랭크 시나트라, 엘비스 프레슬리, 바브라 스트라이샌드, 앤디 윌리엄스, 탐 존스, 소니와 셰어 및 엥겔버트 험버딩크(‘릴리스 미’로 유명한 험퍼딩크가 오는 24일 하오8시와 25일 하오 3시에 세리토스 공연센터서 공연한다) 등. 그가 작곡하고 노래한 영화 주제가로 유명한 것이 노르망디 상륙작전을 그린 ‘사상 최대의 작전’의 주제가 ‘더 롱게스트 데이’다.
앵카가 작곡해 남에게 준 노래로 전 세계적으로 빅히트를 한 것이 시내트라가 부른 ‘마이 웨이’다. 시내트라의 간판곡이 되다시피 한 이 노래는 앵카가 1967년 프랑스 칸 인근의 한 작은 마을에 머물 때 라디오에서 나오는 프랑스노래 ‘콤므 다비튀드’(애즈 유주얼)를 듣고 노래의 판권을 사 ‘마이 웨이’로 편곡을 한 것이다.
레바논계인 앵카는 10대 때부터 순회공연을 시작했다. 아침 9시부터 시작해 하루 5~6회 노래하고 받은 돈이 달랑 300달러. 그 때 앵카와 같이 버스를 타고 다니면서 공연한 가수들로는 후에 다 팝송의 수퍼스타들이 된 오티스 레딩, 에벌리 브라더스, 패츠 도미노 및 버디 할리 등이 있다. 앵카의 라이벌들로는 역시 10대 소녀들의 우상이었던 바비 라이델, 프랭키 아발론, 바비 다린 및 제리 리 루이스 등.
앵카는 자서전에서 그 때를 고되나 즐거웠다고 회상하면서 그러나 순회공연 하느라 자신의 어린시절을 잃었다고 회상했다. 앵카의 음악계 진출을 적극 지원한 사람은 그의 어머니. 앵카의 히트곡 ‘마마’는 어머니를 그리워하는 노래인데 앵카는 ‘파파’라는 노래도 불렀다.
자기 노래를 사랑과 인생에 관한 것이라고 말하는 앵카가 지금까지 작곡하고 노래 부른 곡은 자그마치 900여곡. 지금까지 팔린 레코드와 싱글은 1억만장에 이른다.
아직도 연 100회 공연을 하면서 ‘내 사전에 은퇴란 없다’고 말하는 앵카는 칠순 중반에도 자신의 현재를 ‘내 생애의 가을’이라고 부른다. 그는 자서전에서 “내 생의 여정이 끝날 때 중요한 것은 그 모든 잡다한 것들과 집과 자동차 그리고 상들도 아니요, 이 여정이 끝날 때 나를 따뜻하고 사랑하는 사람으로 생각해 줄 내가 남겨둘 내가 사랑했던 사람들”이라고 고백했다.
                                                        <한국일보 박흥진 편집위원/ hjpark1230@gmail.com>      



2016년 9월 13일 화요일

‘데칼로그’


폴란드의 거장 크르지스토프 키슬로우스키 감독.

성경 10계명을 현대적으로 해석한 10부작... 폴란드 거장 키슬로우스키 감독


프랑스 국기의 색깔인 ‘블루’(Blue-자유)와 ‘화이트’(White-평등) 그리고 ‘레드’(Red-우애)를 바탕으로 현대 유럽의 삶을 탐구한 ‘3색 3부작’을 만든 폴란드의 거장 크르지스토프 키슬로우스키(사진)가 폴란드 TV 작품으로 만든 불후의 걸작인 10부작 ‘데칼로그’(Dekalog·1988)가 감독의 사망 20주년을 맞아 디지털로 새로 복원돼 9~13일 그리고 17~18일 두 차례로 나뉘어 시네패밀리 극장(611 N. Fairfax: 323-655-2510)에서 상영된다.   
키슬로우스키가 크리스토프 피시비츠와 공동으로 각본을 쓴 이 10부작은 성경의 10계명을 현대적으로 해석한 것으로 압도적으로 심리와 영혼을 뒤흔들어 놓는 심오한 서사적 작품이다. 매 편의 길이는 1시간.  
감독은 제목을 단순히 ‘데칼로그: 원’에서 시작해 ‘데칼로그: 텐’으로 끝내고 있는데 ‘데칼로그 원’이 십계명의 제1계명을 나타낸 것은 아니다. 그래서 이 작품이 지난 1989년 칸에서 상영됐을 때 혼란을 겪은 비평가들이 아우성을 치는 바람에 주최 측은 매 영화마다 그것이 십계명 어느 조항을 나타낸 것인지를 알려주는 제목을 새로 붙여 상영하기도 했다. 그러나 그것은 감독의 의도는 아니다.  
1980년대 중반 공산주의가 허물어져가는 바르샤바의 서민층 아파트의 주민들이 주인공들이다. 이들의 삶이 미묘하게 교차되면서 이들이 당면한 개인적이자 또 보편적으로 인간적인 제반문제와 감정적 딜레마들이 다뤄진다. 삶과 죽음, 사랑과 증오 그리고 진실과 시간의 흐름 등에 관한 도덕적 실존적 문제들을 상징적이요 은유적으로 탐구했다. 우리 삶을 형성하는 불가사의한 힘에 관한 고찰이기도 한데 키슬로우스키는 “나는 이 영화에서 인생의 참된 의미와 함께 우리는 왜 아침에 일어나는가와 같은 삶의 기본적이요 필수적이며 인간적이자 또 인간의 물음을 하고 있다”고 말했다.  
9명의 촬영감독이 촬영을 했고 내면을 뒤흔들어 놓는 음악은 ‘3색 3부작’의 음악을 작곡한 즈비그뉴 프라이스너가 작곡했다. 잘 알려진 기성배우와 무명배우들의 연기도 훌륭하다. 정신을 몽땅 화면 안으로 부어 넣으며 봐야 할 명작이다.

*‘데칼로그: 원’-언어 의미론학자요 컴퓨터가 취미인 크리스토프는 어린 아들 파벨에게 모든 의문의 답을 과학에서 찾으라고 가르친다. 이와 반면으로 파벨의 고모는 신심이 돈독한 여자. 이 두 사람은 어느 날 파벨이 아파트 앞 못으로 스케이트를 타러나간 뒤 돌아오지 않으면서 각자가 믿고 있는 체제에 대해 의문을 품게 된다. 과학의 우상화를 경고하고 있다.
*‘데칼로그: 투’-중병에 걸린 남편과 동료 음악인 두 남자를 모두 사랑하고 있는 음악인 도로타는 애인의 아기를 임신했다. 그리고 도로타는 같은 아파트에 사는 의사에게 남편의 병의 상태에 대해 알려 달라고 조른다. 남편이 죽으면 아기를 낳고 병에서 회복되면 임신중절을 할 예정이다. 도덕적 선택과 인간의 삶에서 한 마디의 말이 차지하는 중요성을 얘기하고 있다.
*‘데칼로그: 스리’-크리스마스 전야. 에바는 결혼해 가정을 이룬 전 애인 야누스에게 자기 남편이 실종됐다고 거짓말을 하고 그와 함께 밤을 보내려고 계획한다. 그리고 두 사람은 밤새 자신들의 불륜이 발견되었을 때 한 결정과 다시 한 번 맞서면서 현재의 자신들의 삶의 가치를 생각한다. 시간의 신성함을 다루었다.            
*‘데칼로그: 포’-대학에 갈 나이인 딸 앙카와 그녀의 아버지 미칼은 거의 애인과 같이 오해 받을 정도로 가까운 사이. 이에 대해 점점 불편을 느끼던 앙카가 어느 날 자신의 죽은 어머니가 남긴 뜯지 않은 편지를 읽고 미칼이 자기 친 아버지가 아닐지도 모른다는 것을 알게 된다. 개인 신원을 규정하는 역할을 맡은 가족과 사회적 관계에 관한 내용으로 권위의 중요성을 말한다.   
*‘데칼로그: 파이브’-시골에서 비운의 사고를 목격한 뒤 바르샤바로 이주한 분노에 가득 찬 젊은이 야첵이 묻지 마 살인 식으로 택시운전사를 살해하고 체포돼 재판에 회부된다. 야첵의 변호사는 사형제도에 반대하는 이상적인 젊은 피오트르. 야첵과 피오트르가 관계를 맺으면서 솔직한 감정들이 노출되고 피오트르는 이로 인해 모든 형태의 살인에 대해 반대하는 자신의 신념을 재확인한다. 살인과 처벌에 관한 이야기로 야첵의 살인장면은 영화 사상 가장 긴 살인장면으로 알려졌다. 
*‘데칼로그: 식스’-10대의 우체국 직원인 토멕은 자기 아파트 건너편에 살고 있는 성적으로 개방된 연상의 여자 화가를 훔쳐보는 것이 취미. 두 사람의 사생활이 뒤엉키면서 매력은 집념으로 변하고 사랑과 호기심의 경계선이 가차 없이 무너진다. 사랑과 정욕의 본질과 관계를 다뤘다.
*‘데칼로그: 세븐’-고교생 때 딸 아니아를 낳은 마이카는 그동안 자기 어머니 에바가 키워온 딸을 뒤늦게 찾으려고 하자 에바가 이에 응하지 않는다. 이에 마이카가 아니아를 납치하면서 뜻하지 않은 감정적 결과를 맞게 된다. 소유욕과 유혹에 관한 이야기.
*‘데칼로그: 에잇’-윤리학 교수인 조피아가 2차 대전 때 살아남은 유대인들의 삶을 연구하는 미국인 엘즈비에타의 방문을 받는다. 둘 간의 대화가 장시간 이어지면서 조피아는 엘즈비에타의 삶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친 자신이 수십년 전에 내린 결정에 대해 대답을 내리지 않을 수 없게 된다. 불가피한 사악함 속에서의 진실의 어려움을 얘기한다. 
*‘데칼로그: 나인’-로만과 한카는 서로 사랑해 결혼한 사이. 그러나 남편의 성적 무능력 때문에 한카는 혼외정사를 한다. 이로 인해 로만이 육체적 정신적으로 극단적인 조치를 취하면서 아내와의 사랑과 자신의 삶의 의지가 시련을 당한다. 섹스와 질투와 성숙에 관한 내용. 
*‘데칼로그: 텐’-예르지와 아르투르의 아버지가 사망하면서 형제는 아버지가 우표수집상들이 탐을 내는 귀한 우표들을 유산으로 남긴 것을 알게 된다. 형제가 뒤가 깨끗하지 못한 우표수집상들과 거래를 하면서 둘은 긴박하면서도 코믹한 상황에 빠진다. 탐욕과 관계에 과한 이야기.                                     <한국일보 박흥진 편집위원/ hjpark1230@gma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