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이야기

2016년 6월 20일 월요일

‘연인들과 폭군’




오는 9월에 개봉되는 ‘연인들과 폭군’(The Lovers and the Despot)의 연인들은 영화감독 신상옥과 그의 아내이자 배우인 최은희(89)요, 폭군은 북한의 영화광 김정일이다. 영국의 로버트 캐난과 로스 아담이 공동으로 감독한 최은희와 신상옥의 김정일의 지시에 따른 북한에로의 피랍사건을 다룬 기록영화다.
두 부부의 개인적 면모와 김정일의 영화에 대한 집념을 비롯해 북한의 실상을 흥미 있고 또 유익하게 다룬 영화로 서스펜스 스릴러이자 멜로드라마 같다. 흥미 있는 것은 최은희와 신상옥이 몰래 녹음한 김정일과의 전화통화 내용. 김정일의 육성으로 그의 영화에 대한 애착을 들을 수 있다.
신상옥은 1950년대 영화 활동을 시작해 1960년대 신필름을 통해 300여편의 영화를 만들면서 절정기를 이뤘는데 그의 많은 작품에 최은희를 사용했다. 그 대표적 영화가 최은희와 김진규가 나온 빅히트작 ‘성춘향’(1961). 그러나 신상옥은 신필름이 1978년대에 이르러 정부에 의해 폐쇄되고 최은희와의 이혼 및 경제적으로 곤경에 처하게 된다.
최은희는 자신과 신감독과의 만남과 남편의 부정으로 인한 이혼 그리고 북한에서의 재회와 관계의 재연결 및 작품활동에 대해 담담하게 서술하고 있다. 최은희가 홍콩으로부터 영화 제작자를 자처하는 여자에게서 영화를 함께 만들자는 전화를 받은 것은 1978년 7월. 홍콩에 간 최은희는 7월11일 괴한들에 의해 납치되는데 최은희는 증언에서 회물선을 타고 북한으로 가는 8일간 몇 명의 터프가이들이 자신을 감시했다고 말한다. 영화 제작자를 자처한 여자는 북한의 스파이였다.
북한에 도착한 최은희를 반갑게 맞이하는 사람이 김정일. 김정일은 최은희와 악수를 하면서 “와 주셔서 감사합니다”하고 반색을 한다. 그 뒤로 최은희는 집이 제공되고 좋은 대접을 받으나 방기된 상태로 남는데 최은희는 증언에서 지루함을 달래기 위해 집 마당에 각종 채소를 가꿨다고 말한다.
김정일이 최은희를 납치한 것은 그가 남한의 영화를 북한의 그것보다 월등하다고 느끼면서 동경을 했기 때문인데 그가 북한 영화인들에게 “왜 우리는 남조선처럼 영화를 못 만드냐”고 질책하는 것을 녹음테입을 통해 들을 수 있다.
최은희가 실종된지 2개월 후 신상옥이 홍콩으로 최은희를 찾으러 갔다가 역시 실종된다. 당시 신상옥이 실종되자 그가 한국의 중정요원에 의해 살해됐다는 설과 함께 북한에로의 자진 입국설 그리고 납북설 등 각종 추측이 난무했었다. 죽은 줄 알았던 신상옥이 나타난 것은 납북된지 5년 후 그가 만든 북한 영화가 알려지면서이다. 이 5년간 신상옥은 북한의 감옥에 투옥돼 있었는데 과감히 탈출해 기차를 타고 도주하다가 다시 붙잡혀 독방에 갇혀 세뇌를 받게 된다. 여기서 신상옥은 살아남기 위해 김정일에게 충성서약의 글을 쓰는데 그로 인해 신상옥은 감옥에서 풀려나 최은희와 재회, 영화활동에 들어가게 된다.
둘은 김정일의 총감독 하에 특혜를 받으면서 작품활동을 하다가 1986년 유럽에서 영화를 만든다는 핑계로 비엔나에 갔다가 주비엔나 미대사관을 통해 탈출하기까지 2년여동안 7편의 영화를 만들었다. (사진) 김정일은 신상옥과 최은희에게 ‘주의’ 대신 감정적인 영화를 만들어 북한 영화를 세계적 수준에 올려놓자고 격려했다. 그래서 ‘춘향’을 비롯한 러브스토리도 만들었고 대규모 제작비가 든 ‘불가사리’도 나왔다. 둘이 만든 ‘소금’으로 최은희는 모스크바 영화제에서 주연상을 받기도 했다.
북한 탈출 이후 신 감독부부는 미국에서 살면서 신상옥은 아이들 영화 ‘닌자’를 만들었는데 이어 한국으로 돌아가 지난 2006년 80세로 별세했다. 미국에 있을 때 신상옥의 생애 마지막 꿈은 대하극 ‘징기스칸’을 만드는 것이었으나 그 꿈은 이뤄지지 못했다.
나는 신상옥 납치 때 한국의 한국일보에 사회부 기자로 근무했는데 그 때 그에 관한 정보를 얻으려고 며칠간을 그의 집에서 죽치고 앉아 야근을 했었다. 그 후 내가 신상옥의 전화를 받은 것이 1986년 LA의 한국일보에 근무할 때였다. 당시 나는 서울의 한국일보 자매지 일간 스포츠에 매주 1회씩 2면에 걸쳐 할리웃에 관한 얘기를 연재하고 있었다. 그런데 어느 날 전화가 걸려왔다. 반말로 “나 신상옥인데 일간 스포츠 지면을 나를 위해 남겨 놓으라”는 것이었다. 나는 그 때 그의 음성이 반갑기는 했지만 “거 참 거만하기도 하구나”라는 생각을 떨쳐버릴 수가 없었다. 그 후 코리아타운의 한 식당에서 신 감독부부를 목격한 것이 마지막이었다.
신상옥과 최은희라면 잊지 못할 에피소드가 있다. 내가 오래 전에 북한을 방문했을 때였다. 안내원의 안내로 조선예술영화 촬영소를 둘러보면서 내가 안내원에게 “신상옥과 최은희를 어떻게 생각하느냐”고 물었더니 안내원은 “우리가 그렇게 잘 대접해 주었는데 배신했다”면서 “죽일 것들”이라고 악담을 했었다. 가슴이 섬뜩했었다.    
*지난주 칼럼 내용 중 바그너는 베니스에서 숨졌기에 고칩니다.          
                                                          <한국일보 박흥진 편집위원/ hjpark1230@gmail.com>


2016년 6월 13일 월요일

흡혈귀를 위한 치료(Therapy for a Vampire)


프로이드(왼쪽)가 흡혈귀 백작의 고민을 듣고 있다.

불멸의 삶·아내에 지친 정신… 신경쇠약 흡혈귀


자기 아내와 삶에 싫증이 난 흡혈귀가 정신분석학자 프로이드에게 고민을 털어놓는다는 기찬 아이디어를 영화내용을 서술해 가는 실마리로 한 흡혈귀 코미디. 흡혈귀의 뾰족한 송곳니에 물린 사람들이 여럿 죽으면서 내뿜는 피가 화면을 흥건히 적시나 일종의 흡혈귀 풍자영화여서 끔찍하다기보다 오히려 귀염성 있고 재미있다.
조지 해밀턴이 나온 흡혈귀 코미디 ‘러브 앳 퍼스트 바이트’(1979)를 생각나게 하는 오스트리아 영화인데 해밀턴 영화는 이 영화에 비하면 아주 온순하다. 영화를 고도 비엔나에서 찍어 분위기가 고풍이 나고 으스스한데 처음 보는 배우들의 연기도 좋다.
1932년 비엔나. 게자 폰 쾨즈스넴 백작(토비아스 모레티)은 불멸의 삶과 너무 오래 함께 산 자기와 취향이 다른 아내 엘자(지넷 하인)에 지쳐 프로이드(칼 피셔)에게 거액의 도네이션을 하고 상담을 받기 시작한다. 게자는 자기가 직접 사람의 피를 빨아 마시기보다 자기에게 도전하는 하인이 채취해 병에 담은 피를 마신다. 
어느 날 게자는 프로이드의 방에서 아름다운 여인 루시(코넬리아 이반칸)의 초상화를 보고 단숨에 반한다. 그리고 루시를 옛날 옛적에 자기를 두고 떠난 애인 나딜라의 현신이라고 믿는다. 나딜라는 떠나면서 게자에게 스스로 응해 그에게 목을 내밀어 피를 빨린 여자라야 자기의 현신이 될 수 있다고 말한 바 있다. 그러니 그 게 쉬운 일인가.
루시는 가난한 화가 빅터(도미닉 올레이)의 고집 세고 독립심 강한 애인으로 빅터는 프로이드에 고용된 화가. 프로이드의 환자들의 망상과 꿈을 그리는 것이 임무다. 
게자는 루시를 자기 애인으로 만들 작전을 구상하나 먼저 풀어야 할 과제는 자기를 안 떠나는  엘자. 그래서 게자는 엘자에게 아름다운 네 모습을 초상화로 그리자고 제안해 빅터의 집으로 보낸다. 엘자가 젊은 남자 빅터의 목을 갈망할 것은 당연지사이나 자기 초상화를 그려줄 사람이어서 갈증을 꾹꾹 참는다.
여하튼 증세의 강도는 서로 다르지만 나오는 사람들이 너도 나도 흡혈귀가 되는데 게자에게 물린 루시가 목을 문 프로이드도 서푼짜리 흡혈귀가 된다. 그가 거울 앞에서 자기 모습을 보려고 아이처럼 깡충깡충 뛰는 모습이 우습다. 
권태기에 이른 부부의 얘기이자 의견충돌이 잦은 애인의 드라마이기도 한데 연기들이 좋다. 특히 모레티가 그리움과 권태에 시달리는 연기를 연민의 마음이 일도록 잘하고 이반칸의 당찬 연기와 하인의 우아하면서도 도도한 연기도 좋다. 유감은 프로이드와 게자의 상담을 좀 더 충실히 이용하지 못한 점. 다비드 륌 감독. ★★★ (5개 만점)
                                                            <한국일보 박흥진 편집위원/ hjpark1230@gmail.com>

Music of Strangers: Yo-Yo Ma and the Silk Road Ensemble


요-요 마(앞줄 왼쪽서 두번째)와 실크로드 앙상블.

첼리스트 요-요 마가 조직한 앙상블 연주자 영화


첼리스트 요-요 마가 지난 2000년 세계 각국의 연주자들로 조직한 앙상블에 관한 기록영화로 음악은 서로 다른 국경과 문화를 넘어 범우주적인 힘을 지녔다는 것을 얘기하고 있다. 앙상블 연주자(한국 국악인도 있다)들은 계속해 교체되는데 이들은 지금까지 전 세계를 돌면서 많은 연주회를 가졌고 앨범 ‘싱 미 홈’(Sing Me Home)도 나왔다.
이란, 시리아, 스페인 그리고 중국과 이스라엘 등에서 선발된 연주자들이 각기 자신들의 전통악기를 연주하면서 요-요 마와 함께 앙상블의 연주에 이색적인 음색을 제공하는데 연주뿐만이 아니라 노래도 부르고 또 노래와 연주에 맞춰 그림도 그린다.
영화는 연주 장면과 인터뷰 그리고 자료사진들을 사용해 음악은 민족과 이념을 초월해 모두를 묶어주고 궁극적으로 희망을 가져다주는 숭고한 것임을 강조하면서 아울러 단절위기에 빠진 전통악기와 그 음악을 염려한다.
요-요 마의 이력이 어렸을 때부터 자세히 소개되는데 그에 대한 화면 할애가 다소 과다한 느낌은 들지만 다시 한 번 음악의 결집력과 아름다움을 깨닫게 해주는 작품이다. 
영화는 특히 이란과 시리아의 연주자들에 관한 개인적 얘기를 크게 다루면서 이들이 처한 입장과 음악에 관해 걱정하고 아울러 파괴에 시달리는 난민들의 모습도 생생하게 묘사했다. 이란의 전통 현악기인 카만체의 연주자인 카이한 칼호르는 마지못한 국외 망명자로 살면서 조국에서 이 악기 연주를 지도하고 또 연주할 사람이 단절위기에 처한 것을 걱정한다. 그는 예술과 문화가 정치의 볼모로 잡혀 있는 한 조국에서 연주를 안 하겠다고 다짐한다.
시리아 출신의 클라리넷 연주자 키난 아즈메는 요르단에 잇는 시리아 난민 수용소를 방문해 어린아이들에게 음악을 들려주고 연주를 가르쳐주면서 음악의 치유와 희망의 능력을 시범하고 있다. 감동적이다.                     
이밖에도 중국의 비파 연주자 우만의 조국이자 요-요 마의 뿌리이기도 한 중국을 방문해 사라져 가는 인형 쇼를 지키고 있는 장씨 일가와의 만남과 스페인 갈리시아 지방 출신의 백파이프 연주자 크리스티나 파토와 함께 갈리시아도 방문, 그곳의 음악과 풍습도 보여준다. 영화가 너무 고지식하게 기록영화의 형태를 따라 특색은 없지만 요-요 마의 숭고한 정신과 음악의 여러 가지 능력을 다시 한 번 깨닫게 하는 작품이다. ★★★ (5개 만점)
                                                           <한국일보 박흥진 편집위원/ hjpark1230@gmail.com>


“음악이라면 독일이지요”




베르코르의 소설 ‘바다의 침묵’에서 프랑스를 점령한 나치장교 베르너 폰 에브레낙은 자기가 묵고 있는 집의 주인과 그의 질녀에게 이렇게 독백한다. 작곡가인 그는 자신의 존재에 침묵으로 저항하는 두 사람에게 먼저 프랑스 문학을 찬양한 뒤 “그러나 음악이라면 독일이지요”라면서 바흐와 베토벤의 이름을 든다. 내가 지난달 바그너를 매우 좋아하는 내 친구 C의 안내로 독일을 기차여행한것도 이 음악 때문이었다.
뮌헨서 버스를 타고 1시간반 정도 바바리아 지방을 달려 바그너의 열렬한 신봉자였던 수줍음 타는 왕 루드빅 II의 노이슈반슈타인성에 닿았다. 산정에 세운 거대한 성내 벽화들은 ‘탄호이저’와 ‘트리스탄과 이졸데’ 등 바그너의 음악에서 영감을 받은 것이라고 안내원이 알려준다.  
넥카 강변의 그림엽서 같은 대학 도시 하이델베르크에 도착했다. 이 도시를 굳이 음악과 연결시키자면 영화 ‘황태자의 첫사랑’ 때문이다. ‘철학자의 길’에서 도시를 내려다보니 마리오 란자가 열창한 영화 속 노래 ‘세레나데’와 ‘드링킹 송’이 절로 흥얼거려진다.
쾰른에 짐을 푼 뒤 베토벤의 얼굴처럼 엄격한 마음을 품고 본의 그의 생가를 찾았다. 초상화 속 베토벤의 불멸의 연인 안토니 브렌타노의 얼굴이 곱다. 내 마음을 아프게 한 것은 쇠로 만든 작은 나팔모양의 보청기. 귀 먹은 작곡가의 고뇌가 금속성을 낸다. 베토벤의 머리칼도 있다. 아기 베토벤이 태어난 방은 참 작다. 친구가 “이런 작은 방에서 태어난 사람이 우주를 울리는 음악을 짓다니”라면서 나지막하게 말한다.
뤼벡을 거쳐 날씨가 브람스 음악처럼 스산한 함부르크에 왔다. 브람스가 세례를 받은 세인트 마이클 교회와 기념관을 둘러보고 그가 거닐었던 산책로를 답습했다. 브람스가 어렸을 때 피아노를 친 선원들의 색주가는 어디쯤 있을까.  
이어 동독의 잿빛 그림자가 아직도 남아 있는 소도시 루터슈타트 비텐부르크에 들러 루터호텔에 짐을 풀었다. 도시 이름을 비롯해 손수레에서 파는 루터소시지에 이르기까지 온통 루터 때문에 먹고 사는 도시다. 루터가 시민들의 영육의 양식을 다 책임지고 있다. ‘내 주는 강한 성이요’를 작곡한 루터는 종교인이요 혁명가이자 음악인이다. 그가 바티칸에 항의하는 95개조의 반박문을 못질한 캐슬처치의 문 앞에 선다. 보통 용기가 아니다. 내년은 그의 반박문 발표 500주년이 되는 해다.
라이프직을 거쳐 바그너가 유년시절과 젊은 시절을 보내고 후에 궁정지휘자로 일했던 드레스덴으로 내려왔다. 버스를 몇 차례 갈아타고 바그너의 시골 여름휴양지 그라우파의 집을 찾아갔다. 신록과 새소리 그리고 강으로 둘러싸인 여기서 그는 ‘로엔그린’을 작곡했다. 이어 여기서 조금 떨어진 곳에 있는 베버의 집에 도착했다. 바그너는 9세 때 베버가 지휘하는 오페라 ‘마탄의 사수’를 듣고 큰 감동을 받았다고 한다. 친구는 이 오페라의 서곡을 좋아한다.
폭격으로 잿더미가 되었다 피닉스처럼 부활한 드레스덴의 로열 팰리스 마당에서 이스라엘 교향악단의 일부 연주자들이 연주하는 모차르트와 이스라엘과 아랍음악을 들었다. 독일과 이스라엘과 아랍이라는 화음이 분쟁의 세상에서 인류 평화를 생각하게 한다. 도시의 한 가운데를 차지한 프라우엔키르헤(성모교회)의 외벽들이 전화에 그을린 숯빛의 돌들과 복원할 때 새로 사용한 흰색 돌들과 오묘한 신구의 조화를 이루고 있다,        
다시 라이프직으로 갔다. 이 도시는 멘델스존과 전 뉴욕필 상임지휘자 쿠르트 마주어가 바톤을 잡았던 유서 깊은 라이프직 게반트하우스 오케스트라가 있는 곳이다. 나치에게 끌려간 유대인들의 명판이 집 앞 보도에 깔린 멘델스존기념관은 멘델스존의 음악처럼 산뜻하게 정돈됐다. 악보와 기둥 위에 놓인 형광등으로 연주 악기를 대신한 음악실에서 지휘봉을 들고 멘델스존의 경쾌한 ‘한여름 밤의 꿈’ 서곡을 지휘했다. 그 옆방에서 멘델스존은 두 번의 심장마비 끝에 요절했다.
슈만이 클라라와 신혼을 보낸 집을 둘러봤다. 슈만의 서정미가 물결치는 교향곡이 나는 좋다.  이어 바흐가 음악장을 지낸 세인트 토마스교회를 찾았다. 바흐의 무덤이 있는 이 곳에서 때마침 라이프지거 보컬앙상블이 합창을 한다. 성스럽다. 교회 앞의 바흐기념관을 찾아보았다. 라이프직 오페라하우스에서 바그너의 최초의 오페라 ‘요정들’(Die Feen)을 관람했다. 피곤에 깜빡깜빡 졸면서 들었는데 그의 깊고 진중한 여느 오페라들과 달리 음악이 밝고 경쾌하다. 그런데 이 오페라가 좀처럼 공연되지 않는 이유가 무엇일까.
이윽고 바그너의 본고장이라 부를 만한 바이로이트에 왔다. 도착한 날 22일은 마침 바그너의 생일이어서 기념관 구경이 공짜. 그가 건축하고 해마다 ‘링’사이클이 공연되는 페스트슈필 하우스는 보수 중이다. 바그너가 작곡을 하고 생활하다가 숨진 기념관이 된 반프리트 저택 뒤에 바그너와 그의 아내 코지마가 함께 묻힌 무덤(사진)이 있다. 잿빛 대리석 무덤에 이름이 없다. 개인적으로 결함이 많았던 천재 바그너는 죽어서도 보통 사람과 다르게 존재하겠다는 것 같았다. 반프리트 바로 옆에 바그너의 친구이자 장인인 리스트기념관이 있다. 짧은 일정에 분주한 방문이었지만 가는 곳마다 내 심장은 음악처럼 율동했다.
                                                            <한국일보 박흥진 편집위원/ hjpark1230@gmail.com>


2016년 6월 7일 화요일

내 앞의 당신(Me Before You)


루이자가 윌의 무릎에 앉아 사랑의 눈길을 나누고 있다.

사랑의 힘을 얘기하는 로맨틱 코미디


나처럼 센티멘털한 사람들이 좋아할 위피(눈물 짜는 영화)로 매우 감상적인 멜로드라마이지만 정결하고 단순하고 선의가 가득한데다가 로맨틱해 비극인데도 보고 나면 기분이 고양된다. 물론 슬퍼서 눈물을 찔끔찔끔 흘리게 되지만 울어서 몸과 마음이 다 시원해진다. 영화가 곱다.
아름답고 잘 생긴 두 선남선녀 배우들의 콤비와 연기도 좋고 슬픈 내용인데도 유머가 가득해 때로 로맨틱 코미디를 보는 것 같은 착각에 빠질 정도다. ‘러브 스토리’와 ‘우리 별들의 잘못’을 연상케 만드는 완벽한 데이트용 영국 영화다. 원작은 조조 모이에스의 동명 베스트셀러로 모이에스가 각본도 썼다.
주인공은 영국의 작은 마을에 사는 덤벙대지만 착한 루이자(에밀리아 클라크-‘왕좌 게임’). 아이 같은 얼굴을 한 루이자는 한 없이 친절하고 늘 얼굴 가득히 미소를 지어 주위를 밝게 만드는 태양과도 같은 여자로 옷과 구두를 총천연색으로 갈아입고 매니큐어도 색색깔로 바꿔가며 칠해 마치 동화 속의 인물 같다.
루이자가 일하던 빵가게가 문을 닫으면서 루이자는 실직을 하는데 아버지마저 실직자여서 집에 걱정이 쌓인다. 이 때 루이자가 직업 안내소를 통해 얻은 직업이 동네 부자로 성을 소유하고 있는 부부(찰스 댄스와 재넷 맥티어)의 목 아래를 못 쓰는 아들 윌(샘 클래플린-‘헝거 게임’)을 돌보는 일.
윌은 런던 금융가의 총아로 미남에 신체 건강한 사람이었으나 2년 전 교통사고로 지금은 휠체어 신세를 지며 산다. 그러니 사람이 냉소적이요 한으로 가득 찰 수밖에 없다. 윌을 실제로 돌봐주는 사람은 네이산(스티브 피칵)인데 윌의 어머니는 루이자의 생명력과 밝음에 마음이 끌려 아들의 주위를 밝게 하기 위해 그녀를 고용한 것.
물론 윌은 처음에는 루이자를 퉁명스럽게 대하나 루이자의 낙천성과 선의에 감화돼 둘 사이에 가로 놓였던 서리가 서서히 녹기 시작한다. 루이자에겐 7년을 사귄 달리기광인 애인 패트릭(매튜 루이스)이 있지만 둘이 어떻게 될지는 뻔한 일.
문제는 윌이 루이자로 인해 미소마저 짓게 되지만 자기가 결코 과거처럼 될 수 없으며 또 건강도 갈수록 악화된다는 사실로 인해 더 이상 살기를 원치 않는다는 점이다. 이런 윌에게 생의 의욕을 되살려주기 위해 루이자는 윌을 데리고 경마장에도 가고 모차르트의 오보협주곡 연주회에도 가지만 윌의 결심은 변하질 않는다.
잔가지 플롯으로 루이자의 집안 얘기와 그녀와 패트릭의 나빠져 가는 관계 그리고 윌의 전 애인이 윌의 친구와 결혼하는 식장에 윌과 루이자가 참석해 즐기는 장면 등이 있다. 사랑의 힘을 얘기하는 통속적인 내용이지만 두 배우가 호흡이 잘 맞는 진실된 연기로 보는 사람의 마음을 사로잡아 그들의 기쁨과 슬픔에 함께 웃고 울게 된다. 테아 샤록 감독. PG-13.
★★★ (5개 만점)           <한국일보 박흥진 편집위원/ hjpark1230@gmail.com>

옛날 옛적 서부에(Once Upon a Time in the West)


3명의 건맨이 역에서 무명씨(찰스 브론슨)를 죽이려고 기다리고 있다.

세르지오 레오네의 강인한 대하서사 서부극


‘황야의 무법자’ 시리즈를 만든 이탈리아의 세르지오 레오네 감독이 미 서부에 바치는 헌사로 서정적이며 감상적이고 또 강인한 대하서사 서부극이다. 헨리 폰다가 보기 드물게 검은 모자에 검은 옷과 부츠를 신은 악인으로 나와 마지막에 복수심에 불타는 찰스 브론슨과 결투를  벌인다.  
첫 장면이 멋있다. 허허벌판에 달랑 서 있는 기차역에 내리는 수수께끼의 사나이 브론슨과 그를 처치하려고 기다리는 3인의 악당을 카메라가 가물가물하게 롱샷으로 찍은 다음 갑자기 4인의 얼굴을 극대로 클로스업해 보여준다. 이 때 흐르는 엔니오 모리코네가 작곡한 하모니카가 주도하는 비감한 진혼곡과도 같은 음악이 황량한 서부의 무드를 향수 짙은 음색으로 스크린에 채색한다.
폰다와 브론슨 외에도 클라우디아 카르디날레와 제이슨 로바즈가 공연하는 165분짜리 걸작이다. 이 영화로 브론슨은 미국을 벗어나 유럽에서도 탑스타의 자리에 오르게 된다.
서부의 개척지 플랙스톤과 인근의 유일한 수원지가 있는 스윗워터를 무대로 벌어지는 철도 건설과 땅을 둘러싼 갈등 그리고 복수심에 불타는 정체불명의 건맨의 얘기로 폰다는 프랭크라는 이름으로 철도 건설업자 모턴의 고용된 킬러로 나온다.
프랭크가 수원지가 있는 땅을 소유한 브렛을 사살한 직후 뉴올리언스의 전직 창녀로 브렛의 신부인 질(카르디날레)이 마을에 도착해 남편의 땅을 관리한다. 프랭크와 그의 일당 그리고 모턴과 그의 졸개들이 음모와 배신에 말려들어 살육이 벌어지고 이 난장판에 끼어드는 것이 강도 샤이엔(로바즈). 여기에 무명씨로 하모니카를 부는 브론슨이 나타나는데 이 하모니카 때문에 샤이엔은 브론슨을 ‘하모니카’라고 명명한다.
그런데 ‘하모니카’는 처음에 질의 땅을 차지하려는 프랭크를 돕는데 그가 이 킬러를 돕는 데는 이유가 있다. 프랭크는 옛날에 ‘하모니카’의 동생의 죽음에 책임이 있는 자로 ‘하모니카’는 오랜 세월 뒤 프랭크에게 복수하기 위해 나타난 것이다. 마침내 프랭크와 ‘하모니카’ 간에 필사의 대결이 벌어지는데 이 때 마주 선 둘을 놓고 카메라가 회전촬영을 한다.
프랭크는 ‘하모니카’에게 “도대체 너는 누구냐”고 물으나 ‘하모니카’는 묵묵부답. 이어 총성이 요란하게 난다. 필견의 걸작 웨스턴이다. ★★★★★(5개 만점)
                                            <한국일보 박흥진 편집위원/ hjpark1230@gmail.com>


헤세의 고향을 찾아서




남독의 헤르만 헤세의 고향 칼프를 찾아간 날은 봄비가 내리고 있었다. 헤세의 섬세한 언어들과 아름다운 시어들이 소리를 내며 떨어지고 있었다. 뮌헨에서 울름과 슈투트가르트를 거쳐 칼프를 향해 달리는 기차의 창밖을 내다보니 신록이 무성하다. 한스 기벤라트가 마울브론 수도원학교에서 쫓겨나 고향으로 돌아오는 기차에 타 내다본 창밖에도 신록은 저렇게 냄새를 풍기며 푸르렀을 것이다. 독일을 잘 아는 내 친구 C의 안내로 우리 두 부부가 지난 5월 중순 2주간 독일을 다녀왔다. 독일을 아래서 위로 그리고 좌우로 돌면서 헤세 등 작가와 바그너를 비롯한 음악가들의 고향과 집을 둘러보았다.
나는 헤세를 좋아한다. 어렸을 때 그의 ‘나르치스와 골트문트’를 읽은 뒤로 나는 지금까지 헤세를 하나의 이상처럼 여기고 있다. 나로선 도저히 다다를 수 없는 이상이어서 마치 헤세가 좋아하는 자연 속에서 구름을 동경하듯이 그는 나의 동경의 대상이다. 칼프로 가는 기차는 마치 내 고향으로 가는 기차 같았다. 생전 처음 찾아가는 내 문학의 고향을 향해 달리는 기차의 규칙적인 바퀴소리와 진동이 나의 기대와 의문과 흥분을 거의 불안하리만치 쿡쿡 찔러댔다.
내가 헤세를 좋아하는 까닭은 그가 늘 내 만성 통증이기도한 영육 간의 갈등에 시달리면서 그들의 숭고한 결합을 추구했기 때문이다. 헤세 자신이 개인적으로 결함과 문제가 적지 않은 사람이었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나르치스와 골트문트’의 둘은 이성과 감성이며 헤세의 자전적 소설 ‘수레바퀴 아래서’의 한스 기벤라트와 헤르만 하일러도 마찬가지다. 그래서 나는 나와는 성격이 정반대인 C를 나르치스로 나를 골트문트로 여기고 있다. 그리고 헤세는 자연의 문인인데 나 같은 도시인으로서는 그의 자연 또한 막연한 이상향과도 같다.
헤세의 글은 토마스 만도 말했듯이 산문도 시다. 섬섬옥수로 그린 세밀화처럼 자세해 현미경으로 들여다봐야 깨달을 것 같으면서 또 한편으로는 화가이기도 했던 그가 자유롭게 그린 풍경화처럼 너그럽다. 단어 하나 하나가 보석처럼 반짝이는 그의 글은 심오하고 아름답다.
비가 오는 칼프의 작은 역에 내려 헤세도 말했듯이 자그마한 마을을 걷다가 친절한 동네사람의 소개로 점심을 먹으러 17세기에 지었다는 뢰슬레 호텔의 식당엘 들렀다. 영어를 나보다 잘하는 자그마한 주인아주머니 키어스텐이 남편 칼 바이델릭과 6대째 경영하는 호텔 식당에 헤세도 들렀었다고 들려준다. 요리접시에도 헤세의 사진과 글이 박혀 있다.
마을의 중심인 마르크트광장을 둘러싸고 헤세의 아담한 목조생가(사진 왼쪽서 두 번째)와 기념관 그리고 교회와 시청이 옹기종기 모여 있다. 소년 한스와 헤세가 이 광장과 골목을 걸어 다니면서 자신들의 이상을 가꾸었겠지. 헤세기념관의 실물 크기 사진 속 헤세의 얼굴이 엄격하고 차갑다. 진열장에 한국어로 번역된 ‘데미안’도 있고 내가 좋아하는 ‘페터 카멘진트’와 ‘크눌프’의 초판과 그가 사용한 타자기도 있다. C가 독어판 ‘나르치스와 골트문트’를 사줬다.
한스가 멱을 감고 낚시를 하던 강 위로 놓인 니콜라우스 다리 중간에 나이 먹은 헤세의 동상을 보니 산 헤세 보듯이 반갑다. 어린 헤세를 세워 놓았다면 어땠을까 하는 생각이 났다. 칼프소요는 내게 마치 갑자기 받은 선물처럼 벅차게까지 느껴졌다. 그래서 차라리 그리움이 현실보다 고운지도 모른다. 칼프를 떠나는데 아쉬움이 발목을 잡는다. 언제 다시 찾아오나 하는 생각에 마음을 잡아 추슬렀다.
하이델베르크와 쾰른과 본을 거쳐 북독 뤼벡에 오니 매우 춥다. 바닷바람이 독일 병정처럼 매섭다. 독일로 떠나기 전 친구가 유튜브로 보낸 하이네의 시에 슈만이 곡을 붙인 ‘임 분더쉐네 모나트 마이’(화사하게 아름다운 5월에)라고 노래하기엔 너무 춥다.
한자동맹의 본산인 뤼벡은 작가 토마스 만의 고향이요 귄터 그라스의 집이 있는 곳이다. 젊은 바흐가 작곡가요 오르가니스트인 디트릭 북스테후데의 오르간 연주를 들으러 아른슈타트로부터 장장 250마일을 걸어 찾아왔다는 세인트 메리교회도 있다. 그러고 보니 독일에는 참 교회와 성당도 많다. 우리가 매일 먹다시피 한 소시지와 맥주만큼이나 많다.  
토마스 만과 그의 형으로 역시 작가인 하인리히가 태어나고 자란 백색 건물은 이들의 기념관. 토마스 만의 자전적 소설인 ‘붓덴부르크 가족’이 살았던 집처럼 대가족의 훈기가 느껴졌다. 이 대하소설은 거상이었던 만 가족을 모델로 한 4대에 걸친 한 가족의 흥망성쇠를 다룬 걸작이다. 튼튼한 문체와 방대하고 대담한 서술방식 그리고 자세한 인물과 사물 묘사로 꽉 짜여진 작품이다. 헤세와 만은 모두 노벨상을 탔다. 만의 집에 들르기 전 역시 노벨상을 탄 ‘양철북’의 작가 그라스의 집에서 그의 자서전 ‘양파껍질을 벗기며’를 샀다.              
                                                 <한국일보 박흥진 편집위원/ hjpark1230@gma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