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이야기

2016년 2월 23일 화요일

부활(Risen)


클라비어스가 돌문이 열린 예수의 무덤을 응시하고 있다.


부활한 예수로 인해 신자가 된 로마 장군 


기독교 신자들은 물론이요 기독교를 믿지 않는 사람들도 즐길 수 있는 예수 부활의 영화인데 왜 부활절에 안 나오고 지금 개봉되는지는 모르겠으나 성경을 그대로 충실히 따른 전형적인 기독교 영화여서 기독교 신자들이 아주 좋아하겠다. 
이 영화는 최초의 시네마스코프 영화로 리처드 버튼, 진 시몬즈 및 빅터 마투어가 나온 ‘성의’(The Robe·1953)을 연상케 하는데 예수를 믿지 않던 로마 장군이 부활한 예수로 인해 신자가 된다는 점이 똑 닮았다.
일종의 개인의 자기 구제의 드라마이기도한데 너무 정석적으로 성경을 따라가 특별한 굴곡은 없지만 연기를 비롯해 촬영과 의상 그리고 음악 및 디자인 등이 좋은 수준급 영화다. 특히 영화에서 인상적인 것은 예수로 나오는 마오리족 배우 클리프 커티스의 모습으로 자비스런 예수의 자태를 자연스럽게 보여준다. 
첫 장면에서 로마 장군 클라비어스(조셉 화인즈-레이프 화인즈의 동생)가 부관 루시어스(탐 펠턴)와 부하들을 이끌고 유대인 반란군을 무찌르는 액션은 종교영화에 흥분감을 돋우기 위한 양념이다. 
이어 클라비어스는 유대 땅을 통치하는 로마 총독 빌라도(피터 퍼스)에게 불려가 유대인들 사이에 나도는 십자가에 못 박혀 죽은 예슈아(예수)의 부활을 둘러싼 소문을 해결하라는 지시를 받는다. 빌라도의 이 같은 지시에는 소문의 진위를 밝혀내 유대인들의 구세주에 대한 기대와 함께 유대인들의 로마에 대한 반감을 제압하려는 정치적 의도가 있다. 이어 예수가 십자가에 못 박히는 장면이 있지만 지나치게 끔찍하진 않다. 영화는 그보다는 예수 부활 이후의 얘기에 초점을 두고 있다.
예슈아의 처형을 목격한 클라비어스는 빌라도의 지시에 따라 굴속에 안장한 예슈아의 무덤을 찾아갔다가 그의 사체가 사라진 것을 발견한다. 클라비어스는 빌라도의 지시에 따라 유대인들이 예슈아의 사체를 훔쳐 어딘가에 감췄다고 생각하고 수색을 시작하다가 한 집에서 예슈아가 제자들과 있는 것을 목격한다. 그리고 클라비어스는 자기를 보고 인자한 미소를 짓는 예슈아를 보고 깊은 충격과 함께 신비감에 빠진다.
클라비어스는 여기서부터 자기 임무를 버리고 제자들과 함께 갈릴리로 가는 예슈아를 따라간다. 그리고 중간에 예슈아로부터 “무엇을 믿지 못하는가”라는 물음을 받는다. 영화는 약간 스릴러의 기운도 갖췄는데 제자들 역의 배우들과 함께 막달라 마리아로 나오는 마리아 보토의 모습과 연기도 좋다. 케빈 레널즈 감독. PG-13. Columbia. 전지역. ★★★(5개 만점)
                                                                <한국일보 박흥진 편집위원/ hjpark1230@gmail.com>


'육체의 문’과 ‘춘부전’




자기 몸속에서 생명을 잉태해서 그럴까. 여자는 남자보다 생명력이 강하다. 나는 이런 사실을  혼자서 우리 두 남매를 키운 나의 어머니를 통해 잘 알고 있다. 전후 도쿄의 창녀 마야와 중일전쟁 때 만주의 이름 없는 한국인 위안부도 생명력이 억척스럽게 강한 여자들이다.
마야와 한국인 위안부는 각기 일본의 스즈키 세이준 감독(92)의 ‘육체의 문’(Gate of Flesh·1964)과 ‘춘부전’(Story of a Prostitute·1965)에 나오는 인물들이다. 나는 며칠 전 이 두 영화를 웨스트LA의 해머뮤지엄 내 빌리 와일더극장에서 보면서 다시 한 번 고난 속 여인들의 강인한 생명력에 혀를 내 휘둘렀다.
마야는 미군에게 겁탈을 당한 뒤 전후 난장판이 된 도쿄로 올라와 창녀가 된다. 배가 고파 거리에서 삶은 고구마를 훔쳤다가 야쿠자에게 붙잡힌 것이 계기가 된다. 마야를 한동아리 안으로 받아주는 4명의 창녀들은 폭탄을 맞아 뼈만 남은 건물을 주거지로 몸을 파는데 자매들처럼 똘똘 뭉친 이들의 규율은 ‘공짜 섹스는 없다!’이다.
마야가 활동하는 세상은 그야말로 ‘개가 개를 잡아먹는’ 살벌한 전쟁터로 G.I.와 M.P.와 창녀와 야쿠자가 삶은 고구마장수와 호떡장수가 요란하게 호객행위를 하는 거리를 누비고 다닌다. 내가 꼬마 때 경험한 부산 피난시절이 떠올랐는데 이런 모습은 한국영화 ‘국제시장’에서도 더러 볼 수 있다.
우리가 양공주라 부른 마야(노가와 유미코)와 동료 창녀들의 삶은 미군의 총격에 부상당한 전직 군인 이부키 신타로(조 시시도)가 마야네 건물로 들어와 이들의 식객이 되면서 큰 물결이 친다. 마야는 이부키를 보르네오에서 전사한 자기 오빠의 대체물로 삼고 그를 연모하는데 마야뿐 아니라 동료 창녀들도 뻔뻔하나 신체건강하고 사나이다운 이부키를 탐내면서 이들 사이에 욕정의 불길이 타오른다.
스즈키 감독은 섹스와 음식이 존재의 이유인 이부키의 미군 증오를 통해 동물적인 생존본능과 함께 노골적인 반미감정을 토해내고 있는데 이런 감정의 또 다른 표시로 공중에서 펄럭이는 성조기를 클로스업해 보여준다. 이와 함께 스즈키는 갑자기 이식된 민주주의도 ‘개뿔 같은 소리’라면서 야유한다.    
마야와 다른 창녀들은 몸을 팔아 번 돈으로 미군부대에서 흘러나온 깡통 파인애플을 사 이부키에게 바치는데 이야말로 창녀의 순정이다. 나는 이런 깡통 파인애플뿐 아니라 영화에서 “이 맛이야 말로 최고”라고 찬미한 부대찌개도 먹어봐 영화가 남의 소리 같질 않았다. 그리고 이부키가 같은 패들과 미군부대에서 페니실린과 럭키 스트라익을 훔쳐 달아나는 모습과 거리의 암시장 등도 다 우리가 잘 아는 역사의 지스러기들이다.
이부키는 마야의 순정에 가슴이 녹아 둘이 함께 도쿄를 떠나기로 약속하나 비극으로 끝난다. 혼자 남은 마야가 “나는 여기 남겠다”며 그런 비극에 결코 굴하지 않으리라고 다짐한다. 매우 야하면서도 나신을 보듯 적나라하게 노골적인 생존기로 나는 이 영화로 부산 피난살이를 한 번 더 한 셈이다.
전쟁에 나갔던 스즈키 감독은 ‘춘부전’(사진)에서는 일본의 군국주의를 맹렬히 비판하면서 아울러 전쟁의 광기를 우스갯거리로 삼고 있다. 매우 사실적인 이 영화는 또 다른 일본의 반전영화인 ‘인간의 조건’을 연상케 한다. 만주전선에 투입된 일본군 부대의 포악한 지휘관 나리타소위(다마가와 이사오)의 당번병인 도도한 미카미 신기치(카와지 다미오)와 나리타의 총애를 받는 창녀로 미카미를 사랑하는 하루미(노가와 유미코)는 각기 ‘인간의 조건’의 가지와 미치코를 생각나게 한다. 미카미가 툭하면 나리타로부터 귀싸대기를 얻어맞는 것도 가지를 연상시킨다.
하루미 등 서너 명의 일본 창녀들과 한 명의 한국인 위안부는 줄줄이 자기 차례를 기다리는 수백명의 일본군인들을 상대한다. 나이 먹은 한국인 위안부는 영화에서 두 번 한복을 입는데 스즈키 감독은 이 여자를 매우 동정적으로 묘사하고 있다.
한국 여자를 찾아오는 일본 군인이 불순분자로 찍혀 장교에서 하사관으로 강등된 아키야마(오자와 쇼이치)다. 아키야마는 육체적 욕망을 풀기 위해서가 아니라 여자의 방에서 조용히 ‘철학단상’을 읽기 위해 찾아온다. 책을 읽은 뒤 방을 떠나면서 아키야마는 여자에게 화대를 지불하는데 이를 세던 여자가 “일본 여자와 같은 화대를 주네. 고맙기도 하지”라며 감사한다. 일본 창녀와 한국인 위안부는 화대에도 차별이 있었던 것 같다.    
미카미와 하루미는 사로 사랑하게 되나 동반자살의 비극으로 끝난다. 이를 본 하얀 한복을 곱게 차려 입은 한국인 위안부가 “죽는 것은 비겁해. 사는 것이 더 힘들어”라면서 멀리 사라진다. 마야와 백의의 한국 여인이야말로 생존의 불기둥과도 같은 여인들이다. 스즈키 세이준 시리즈는 오는 3월13일까지 계속된다. (310)206-8013  
                                                             <한국일보 박흥진 편집위원/ hjpark1230@gmail.com>


2016년 2월 16일 화요일

데드풀(Deadpool)


가면을 쓴 데드풀이 고속도로 상에서 쌍칼을 휘두르고 있다.

상스럽고 야하고 거친 마블만화의 새로운 수퍼히로


웃어야 할지 울어야 할지 좋아해야 할지 말아야 할지 모를 상스럽고 야하고 거칠고 음탕하고 폭력적이고 잔인무도하며 시끄럽기 짝이 없는 액션영화인데 아이언 맨 등 많은 수퍼히로들을 창조해낸 마블만화가 원전이다. 보통 이런 영화는 등급 PG-13(13세 미만 관람 때 부모의 적극적 안내가 필요함)인데 이 영화는 도가 지나치게 폭력적인 데다가 나체와 섹스 농담과 대사가 눈과 귀를 씻어내야 할 정도로 노골적이고 저급해 R등급(17세 미만 관람 때 부모나 성인의 동반이 필요함)을 받았다.
절대적으로 젊은 마블만화 팬들의 영화이긴 하지만 섹스와 폭력과 야한 농담을 즐기는 어른들이 봐도 궁극적으로는 재미있을 영화다. 시종일관 자기비하적인 유머가 많아 피가 철철 넘쳐흐르는 폭력에 눈살을 찌푸리다가도 깔깔대고 웃게 되는데 이와 함께 대사와 영화 흐름의 속도가 총알처럼 빨라 보는 사람의 혼을 홀딱 뺏어간다. 
특히 이 영화는 ‘X-멘: 오리진’(2009)에서 이미 암살자인 데드풀 노릇을 한 라이언 레널즈의 교활하고 정력적인 연기가 볼만하다. 레널즈는 이 영화를 만들려고 지난 11년간을 벼르다가 이제야 목표를 이뤘는데 자신은 물론이요 마블만화의 모든 주인공 그리고 팝문화 등을 닥치는 대로 조소하고 야유하면서 반 영웅노릇을 신나게 즐기고 있다. 
영화의 내용이라야 그동안 듣고 보고 또 보고 듣고 한 구태의연한 것이다. 오프닝 크레딧부터 얄궂고 장난치듯이 시작하는 영화는 처음부터 눈알이 돌아가는 고속도로 위에서의 액션장면으로 시작된다. 몸에 꼭 끼는 적과 흑색의 스판덱스 복장에 가면을 쓴 데드풀이 쌍칼과 쌍권총 그리고 자신의 육체를 총동원해 자기를 습격하는 괴한들과 싸우는 이 장면이 가히 장관이다. 계속해 농담을 지껄이는 무모하고 뻔뻔스런 데드풀이 하늘을 펄펄 날며 공중제비를 하면서 괴한들을 때려잡는데 데드풀은 총을 맞아도 안 죽는 수퍼히로다.
여기서 영화는 2년 전으로 돌아간다. 웨이드 윌슨(레널즈)은 전직 특공대 출신의 건달로 단골 싸구려 바에서 만난 자기 신세를 비탄해 하는 창녀 바네사(브라질 태생의 모레나 바카린)와 눈이 맞아 그 즉시로 격렬한 섹스를 하는데 변태적인 섹스 신을 몽타주 한 장면이 또한 가관이다. 웨이드와 바네사는 그 후 죽고 못 사는 연인 사이가 되는데 웨이드가 바네사에게 구혼을 한지 얼마 안 돼 웨이드가 치명적인 암에 걸린다. 의사가 얼마 못 산다고 통고한다.
이 때 웨이드 앞에 미친 과학자 스타일의 에이잭스(에드 스크레인)가 나타나 자신이 개발한 특수기계로 그를 불사의 싸우는 기계로 만들어주겠다고 제의한다. 그래서 윌슨은 바네사도 버리고 에이잭스를 찾아가는데 변신의 과정에서 불상사가 일어 웨이드는 불사의 싸우는 기계가 되긴 하나 얼굴이 완전히 맷돌로 갈아놓은 빈대떡처럼 된다. 그래서 가면을 쓴 것이다.
그리고 자기를 데드풀로 명명한 윌슨은 자기를 이 꼴로 만들어놓은 에이잭스에게 복수를 하려고 이를 간다. 이런 데드풀을 돕는 두 명의 동지가 금속 거인 콜로서스와 반항적인 10대 소녀 네가소닉 틴에이지 워헤드(브리아나 힐데브랜드). 그리고 이들의 적수는 에이잭스의 졸개인 여전사 에인절 더스트(실제 종합무술 챔피언인 지나 카라노). 시작된 지 좀 지나서야 영화 안으로 몰입할 수가 있다. 히트할 것 같은데 그렇게 되면 물론 속편이 나올 것이다. 팀 밀러 감독. Fox. 전지역. ★★★(5개 만점)  <한국일보 박흥진 편집위원/ hjpark1230@gmail.com>

전쟁(A War)


클라우스가 재판정에서 아내와 딸과 포옹하고 있다.

아프간 전쟁 다룬 덴마크 영화


아프간 전쟁을 다룬 덴마크 영화로 이번 오스카 외국어 영화상 후보작이다. 전장과 고향의 집을 오락가락하면서 진행되는 이 영화는 ‘우리의 목숨과 그들의 목숨의 가치’를 묻는 도덕적 얘기로 전쟁의 혼돈과 후유증을 사려 깊고 긴장감 가득하게 그린 준수한 작품이다. 
전장에서 내린 결정과 그것의 치명적인 효과에 관한 내용인데 죄의식과 책임감과 함께 짙은 가족애를 매우 사실적이자 강력하게 그린 작품으로 손으로 들고 찍은 촬영과 배우들의 꾸밈없는 연기가 좋다. 기록영화 스타일의 영화로 감독 토비아스 린트홀름(각본 겸)은 리얼리즘을 위해 실제 덴마크 군인들과 탈리반 전사들 그리고 난민들을 배우로 썼다. 
아프간 전선에 투입된 덴마크군 소대장 클라우스 M. 페더센(필루 아스백)의 부대는 지역 주민들의 안전을 키기는 것이 임무다. 처음에 이 부대가 겪는 충격적인 상실과 함께 클라우스가 고향에 있는 아내 마리아(투바 노보트니)에게 전화를 거는 장면으로 시작된다. 그리고 영화는 후반에 들어가기 전까지 전선과 고향을 왕래하면서 클라우스만이 아니라 집에서 혼자 세 아이를 키워야 하는 마리아의 ‘투쟁’을 교차해 보여준다.
어느 날 클라우스와 대원들이 평상적인 순찰을 나갔다가 적의 맹렬한 집중사격을 받는다. 그리고 여기서 클라우스의 부대원이 부상을 당한다. 적의 공격으로 부상자를 이송할 수가 없게 된 클라우스는 부하를 살리기 위해 공습을 요청한다. 그런데 문제가 여기서 생긴다.
아군의 공습이 끝나면서 적과 함께 무고한 인명이 희생을 당한 것이다. 클라우스는 민간인이 피해를 입을 것 같으면 절대로 공습을 요청해서는 안 되는데도 성급히 공습을 요청해 민간인이 피해를 입은 것에 대한 책임추궁을 당할 입장이 된 것이다.
여기서부터 영화는 고국으로 송환돼 재판에 회부된 클라우스의 재판과 함께 그와 가족 간의 드라마로 연결된다. 클라우스의 전우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진행되는 이 재판과정이 전투 신보다 더 긴장감 있고 마음을 초조하게 만든다.
최근에 개봉돼 흥해서 실패한 마이클 베이 감독의 ‘13시간’이나 벤 애플렉이 나와 빅히트를 한 ‘스나이퍼’가 전쟁을 감각적으로 윤색한 것과 달리 철저히 사실적으로 전장에서의 결정과 그것의 후유증 그리고 생명의 가치를 물은 훌륭한 영화다. R. Magnolia. 로열극장과 선댄스 선셋 시네마. ★★★★(5개 만점)  <한국일보 박흥진 편집위원/ hjpark1230@gmail.com>

말러의 아다지에토



사랑을 하면 모두 시인이 된다고 하더니 폴과 에스테르가 각기 대학생과 여고생 때 만나 사랑에 빠진 10년간 서로 나눈 연애편지의 내용이 구구절절이 시다. 폴이 에스테르에게 ‘너의 존재는 내게 너무 크다. 마치 산처럼’이라고 고백했을 때 폴에게 에스테르의 존재는 무중력의 무게였을 것이다. 
폴과 에스테르는 오는 3월18일에 개봉될 프랑스의 아르노 데스플르샹 감독의 ‘나의 황금시절’(My Golden Years)의 주인공들로 둘을 보고 있자니 이젠 내게서 멀리 떠난 청춘의 탐스러움에 가슴이 터질 것 같다. 아, 청춘은 아름다워라!
오는 14일은 그동안 게을리 하던 고백성사를 하듯이 사랑하는 사람에게 편지를 쓰는 밸런타인스 데이다. 초컬릿보다 더 달콤한 것이 러브 레터다. 매시브 어택이 ‘패라다이스 서커스’에서 노래했듯이 ‘사랑은 그것을 가장 크게 느끼는 사람에겐 죄와도 같아서’ 사랑은 고백을 해야 속이 풀리게 마련이다. 
요즘은 인터넷 세상이어서 아마 이번 밸런타인스 데이에도 많은 사람들이 컴퓨터로 러브 레터를 주고받을 것이 뻔하다. 그러나 러브 레터는 잉크에 펜을 찍어 종이에 적어야 감정이 제대로 호흡한다. 
빅토리아(제니퍼 존스)가 얼굴도 모르는 알란(조셉 카튼)에게 사랑에 빠진 것도 알란이 이렇게 써서 보낸 편지 탓이다. 영화 ‘러브 레터스’(Love Letters·1945)의 주인공 알란은 2차 대전 때 이탈리아 전선에서 전우인 로저를 대신해 로저의 여자 빅토리아에게 연애편지를 보낸다. 빅토리아는 순전히 이 편지 때문에 로저와 결혼하는데 그러니까 빅토리아가 사랑한 남자는 로저가 아니라 알란이다.
‘러브 레터스’는 통속적인 여성 취향의 신파극으로 내용보다 아름다운 것은 빅터 영이 작곡해 오스카상을 탄 주제가다. ‘나는 줄마다 다 외우고 있어요/나는 당신이 사인한 이름에 키스를 하지요/달링, 그리고 난 다시 처음부터 읽어요/바로 당신의 마음으로부터 온 사랑의 편지들을’. 이 노래는 엘비스 프레슬리와 에타 제임스 그리고 딕 헤임스와 냇 킹 코울 등 많은 가수들이 불렀다.
‘러브 레터스’는 프랑스의 에드몽 로스탕이 쓴 희곡 ‘시라노 드 벨즈락’이 원전이다. 코가 너무 큰 검객시인 시라노는 눌변의 크리스티앙을 위해 그가 사랑하는 록산에게 뜨거운 연서를 보내고 어둠 속 록산의 발코니 아래서 사랑의 고백을 유수처럼 쏟아놓는다. 록산은 나중에 가서야 자기가 사랑한 남자가 시라노였음을 깨닫지만 때는 이미 늦었다. 연극은 비극인데 미국영화는 해피엔딩이다. 시라노 얘기는 여러 번 영화로 만들어졌는데 그 중에서 좋은 것은 각기 호세 퍼러(시라노로 오스카 주연상 수상)와 제라르 드파르디외가 주연한 것과 스티브 마틴이 나온 현대판 시라노 ‘록산’이다.
러브 레터라기보다 회한과 미련과 그리움의 자기 고백이라고 해야 할 편지를 쓴 여자가 리사다. 리사(조운 폰테인)는 비극적으로 아름다운 ‘모르는 여인의 편지’(Letter from an Unknown Woman·1948)의 주인공이디. 슈테판 즈바이크의 중편소설이 원작으로 틴에이저인 리사는 비엔나의 같은 아파트에 이사 온 핸섬한 콘서트 피아니스트 슈테판(루이 주르단)을 본 뒤 평생 그를 사랑하게 된다. 
리사는 성장해서도 슈테판을 사랑해 그의 아들까지 낳지만 슈테판은 오랜 세월 동안 몇 차례 리사와 관계를 맺으면서도 리사를 전연 기억 못한다. 그리고 리사는 죽음의 병상에서 자신의 변치 않는 슈테판에 대한 사랑을 적는다. 편지는 리사가 죽은 뒤 슈테판에게 전달된다.
그리고 유부녀 레즐리(베티 데이비스)가 윌리엄 와일러가 감독한 ‘편지’(The Letter 1940-서머셋 모음의 연극이 원전)에서 질투에 눈이 멀어 총으로 쏴 죽인 자기 정부 제프에게 보낸 편지도 러브 레터라고 하겠다.   
연애편지를 모래 속에 손가락으로 쓴 것도 있다. 팻 분은 ‘러브 레터스 인 더 샌드’에서 ‘우리가 함께 모래 속에 쓴 러브 레터를 물결이 쓸어갈 때마다 난 울었는데 당신은 웃었다’면서 ‘지금은 파도가 모래 속에 쓴 편지 위로 부서질 때마다 내 찢어진 가슴이 고통한다’고 징징 우는 소리를 한다. 그런데 분의 음성이 너무 달콤하고 고와서 나는 이 상심의 노래를 들어도 별로 가슴이 안 아프다.
그러나 뭐니 뭐니 해도 이 세상에서 가장 로맨틱한 러브 레터는 구스타프 말러가 자기 아내가 된 알마(사진)에게 보낸 음악편지일 것이다. 말러는 교향곡 제5번의 제4악장 아다지에토를 알마에게 보내는 연서로 작곡했다. 10분 정도 계속되는 이 악장은 매우 느린데 말러의 비탄에 가까운 동경과 사랑이 천상의 것처럼 고결하고 아름답게 음표로 쓰여졌다. 이 음악은 루키노 비스콘티의 ‘베니스에서의 죽음’(Death in Venice·1971)에서 스산할 정도로 아름답게 사용됐다. 해피 밸런타인스 데이!  
                                                              <한국일보 박흥진 편집위원/ hjpark1230@gmail.com>


2016년 2월 9일 화요일

시저 만세(Hail, Caeser)


로마 장군역을 맡은 약간 멍청한 빅스타 베어드(조지 클루니).

1950년대 할리웃 배우들의 스캔들 해결사 이야기


1950년대의 할리웃에 대한 그리움과 함께 스튜디오의 이면을 풍자한 조엘과 이산 코엔 형제 감독(각본 겸)의 코미디인데 ‘화고’와 ‘노 컨트리 포 올드 멘’ 같은 수작을 만든 둘의 영화치곤 지극히 펑퍼짐한 오발탄과도 같은 영화다.
드문드문 우습긴 하지만 중구난방 식인데 주제와 함께 너무 많은 서브플롯을 이것저것 마구 섞어 잡탕이 됐다. 할리웃의 옛날 영화에 대한 지식이 없는 사람들 특히 외국인들에겐 낯설기 짝이 없을 것이다.
과거 코엔 형제와 함께 3편의 영화를 만든 조지 클루니가 조연으로 나오는데 그가 나왔던 역시 황당무계한 코미디 ‘오 형제여, 당신은 어디에 있는가’와 같은 스타일의 영화다. 클루니 외에도 조시 브롤린, 스칼렛 조핸슨, 채닝 테이텀, 레이프 화인즈, 프랜시스 맥도먼, 틸다 스윈튼 및 조나 힐 등 기라성 같은 배우들이 소모된 셈이다.
주인공은 영화사 캐피톨 픽처스에서 영화제작과 스타들의 문제들을 해결해 주는 에디 매닉스(브롤린). 그는 미혼 여배우의 임신에서부터 배우들의 온갖 스캔들을 가십지에 보도(가십 칼럼니스트로 스윈튼이 라이벌 쌍둥이 자매로 나와 재미있는 연기를 한다)가 안 되도록 하는 해결사다. 그런데 그는 열렬한 가톨릭 신자여서 1주일이 멀다하고 성당엘 찾아가 고백성사를 드리는 바람에 신부로부터 너무 자주 온다고 핀잔을 받는다.
캐피톨이 촬영 중인 예수영화 ‘시저 만세! 그리스도 이야기’에서 로마 장군으로 나오는 약간 멍청한 빅스타 베어드 위틀락(클루니-베어드는 ‘쿼바디스’의 로버트 테일러와 ‘성의’의 리처드 버튼을 짬뽕한 인상이다)이 공산주의자들인 각본가들에 의해 납치되면서 10만달러의 몸값 청구서가 영화사로 날아든다. 그리고 베어드는 납치범들의 교육에 의해 세뇌가 되는데 이들 각본가들의 얘기는 과거 할리웃에 몰아닥친 미 연방 의회의 공산당 때려잡기 광풍을 묘사한 것이다.
그리고 에디가 영화의 흥행성공을 위해 기독교 신교와 구교 및 유대교 대표들을 소집해 각본에 하자가 없는지를 알기 위해 회의를 하는 것도 옛 할리웃에서 있었던 일이다.  
이와 함께 서브플롯으로 왕년의 ‘수영복의 미녀’ 에스터 윌리엄스를 재현한 입 건 여배우 디애나 모란(조핸슨)이 남편도 없이 임신하는 바람에 에디는 이 문제를 해결하느라 골치를 썩인다. 또 다른 얘기는 ‘싱잉 카우보이’(로이 로저스라고 생각하면 된다)로 스턴트는 잘 하나 진짜 연기는 못하는 젊은 배우 호비 도일(앨든 에렌라익)을 도도한 감독 로렌스 로렌츠(화인즈)가 연출하는 응접실 코미디 ‘메릴리 위 댄스’에 주연으로 잘못 발탁해 코미디가 일어난다.  
마지막 다른 얘기는 탭댄스를 추고 노래 부르는 배우 버트 거니(진짜로 춤을 잘 추는 채닝이 잘한다)가 해군복을 입고 노래 ‘노 데임즈’를 부르면서 동료들과 함께 신나게 탭댄스를 추는 모습. 이 장면은 진 켈리가 나온 뮤지컬 ‘온 더 타운’에 대한 찬미다.
그리고 영화는 흐지부지 식으로 끝이 나는데 세트와 촬영과 의상은 보기 좋다. 클루니의 자기비하적인 연기와 에린라익의 엉성한 연기가 볼만하다. PG-13. Universal. 전지역. ★★★(5개 만점)
                                               <한국일보 박흥진 편집위원/ hjpark1230@gmail.com>

램스(Rams)


동네 수양치기들이 우수수양 선발대회에 나왔다


아이슬란드 시골서 수양들을 키우는 앙숙지간 형제


 눈보라가 몰아치는 삭막한 아이슬란드 시골에서 수양들을 치는 앙숙지간인 나이 먹은 형제의 갈등과 궁극적 화해 그리고 이들의 자부심인 수양들을 기르고 다듬으면서 한 가족처럼 사랑하는 단순한 이야기를 매우 소박하면서도 정감 가득하게 그린 아이슬란드 드라마다.
심술궂은 유머와 함께 고립된 시골 사람들의 힘든 하루하루를 사실적으로 그렸는데 드라마와 코미디 그리고 비극(클라이맥스 부분으로 애매모호하게 끝난다)을 고루 잘 섞어 흥미 있다. 특히 이 영화는 겨울눈으로 덮인 정경이 살벌하게 아름다운데 이와 함께 수양들도 사람 못지않은 몫을 한다. 
아이슬란드 깡촌에서 수양들을 키우면서 사는 둘 다 결혼을 안 한 형 키디(테오도어 율리우손)와 동생 굼미(시구르두르 시구르욘슨)는 바로 이웃에 살면서도 지난 40년간을 말을 안 하고 지낸 사이다. 이들의 통신수단은 키디의 개로 서로 할 말이 있으면 종이에 그 내용을 적어 개를 통해 전달한다.
키디는 술꾼이요 무뚝뚝하고 사나운 반면 굼미는 술 안 마시는 이성적이요 부지런한 사람인데 이들은 자기들이 키우고 다듬는 수양들을 자기 자식처럼 사랑한다. 그런데 연례 우수 수양선발대회에서 뜻밖에도 키디가 우승하면서 굼미는 크게 실망한다.
이어 마을에 수양들에게 치명적인 전염병이 창궐하면서 보건 당국은 온 동네의 수양들을 다 살육하라고 지시한다. 그리고 이로 인해 내용에 극적 기폭이 일어난다. 이에 굼미는 자기 수양들을 다 살육하나 키디는 못한다고 아우성을 친다. 그러나 그도 당국의 지시를 따를 수밖에 없다.
그러나 굼미는 자기가 가장 아끼는 수양 몇 마리를 죽이지 않고 자기 집 지하실에 우리를 만들어 놓고 키운다. 굼미가 조사 나온 보건소 직원에게 이를 들키지 않으려고 애쓰는 모습이 안쓰럽게 우습다. 그러나 키디가 동생의 비밀을 알아낸다. 그리고 둘은 이 때부터 서로 간의 앙심을 조금씩 풀고 공동으로 쿰미의 양들을 보호하기 위해 총력을 기울인다.
둘은 수양들을 더 이상 집안에 가둘 수가 없게 되자 이들을 몰고 심한 눈보라가 몰아치는 산꼭대기로 수양들의 은신처를 구해 간다. 지척을 분간할 수 없도록 폭설이 몰아치는 가운데 밤이 되면서 형제는 생존의 위협을 받는다. 마지막 장면이 가슴을 울컥하게 만든다.
나이 먹은 두 주인공들이 별로 말도 많이 하지 않고 눈과 얼굴 표정으로 흙냄새가 나는 연기를 뛰어나게 한다. 촬영과 음악도 좋다. 성인용. 일부 지역. ★★★½(5개만점)
                                                  <한국일보 박흥진 편집위원/ hjpark1230@gma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