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이야기

2016년 2월 9일 화요일

‘액션의 사나이’




영화인이라기보다 대쪽 같은 선비 스타일인 한국 영화계의 대부 정창화 감독(사진)을 내가 존경하고 좋아하는 이유는 우리 둘이 다 영화를 정열적으로 사랑하는 만년 ‘영화청년’이기 때문이다. 정 감독의 이런 영화에 대한 정열은 그가 최근 펴낸 자신의 영화인생 회고록이자 한국 영화의 증언인 책 ‘액션의 사나이’(The Man of Action)의 부제 ‘내 영화인생은 아직 치열하다’에서 잘 나타나 있다.
‘액션’은 정 감독의 이름표와도 같다. 그는 대사위주의 느린 속도의 멜로드라마인 ‘신파영화’  위주의 초창기 한국 영화에 속도와 리드미컬한 템포를 동원한 액션영화의 장르를 구축한 개척자다. 정 감독이 액션영화를 만들기로 결심하게 된 것은 조지 스티븐스가 감독한 웨스턴 ‘셰인’을 보고나서였다.
그는 이 영화의 빠른 템포와 속도를 배우기 위해 영화를 상영하는 단성사의 사장을 몇 차례나 찾아가 사정사정해 필름의 일부를 빌려다 밤을 새우며 수없이 보면서 공부했다. 정 감독은 노력파다. 그래서 만든 영화가 ‘햇빛 쏟아지는 벌판’(1960)으로 이 영화는 한국 최초의 본격적인 액션영화다.
‘자유만세’를 만든 최인규 감독의 밑에서 처음에는 깡통에 담은 설렁탕을 배달하면서 영화수업을 한 정 감독은 홍성기와 신상옥과 함께 초기 한국 영화계의 삼총사로 활약했는데 그의 문하생들로는 임권택, 유현목, 강대진 감독 등이 있다. 정 감독의 또 다른 초기 액션영화들로는 ‘노다지’ ‘지평선’ ‘사르빈강에 노을이 지다’ 등이 있다. 그의 모토는 늘 대중에게 재미있는 영화를 보여주겠다는 것이었는데 이 같은 뜻을 제대로 이해 못하던 평단에 대해 아쉬움을 표하고 있다.
‘창의성’이 화두인 정 감독은 액션에만 매달리지는 않았다. 늘 새로운 것을 추구하던 그는 현대물, 청춘물, 사극, 검객영화 및 멜로드라마 등 다양한 장르의 영화를 만들면서 1960년대 한국 영화에 활기를 불어 넣었었다.
그러나 역시 그의 장기가 액션이니 만큼 정 감독의 솜씨를 눈여겨보던 홍콩의 쇼 브라더스의 란란 쇼 사장의 초청으로 1976년 홍콩으로 진출한다. 쇼 브라더스에 입성한 정 감독은 승부욕이 강해 자기를 ‘외인부대’ 취급하는 영화사의 토박이 감독들보다 나은 영화를 만들기 위해 쇼 브라더스의 작품을 무려 100여편을 보면서 숙지했다. 그가 홍콩에서 만든 첫 영화가 액션이 멋진 ‘천면마녀’(1969)로 빅 히트를 했는데 홍콩 영화로서는 처음으로 유럽으로 수출되는 기록을 남겼다.
이어 정 감독은 홍콩 최초의 무협영화인 ‘여협매인두’와 ‘아랑곡’ 및 ‘래여풍’ 등을 만들면서 홍콩 영화계에 발판을 굳혔다. ‘여협매인두’(1970)에는 당시 19세였던 성룡이 엑스트라로 나왔는데 그 때부터 성룡은 장난기가 심했다고 한다.
정 감독의 이름을 세계적으로 알려주게 된 영화가 로레이와 남석훈이 나온 무술영화 ‘죽음의 다섯 손가락’(Five Fingers of Death·1972)이다. 이 영화는 홍콩 영화 최초로 워너 브라더스에 의해 미국에 수입돼 개봉 첫 주말 흥행 1위를 차지했다. 같은 주말에 개봉된 기라성 같은 할리웃 스타들이 나온 해양 재난영화 ‘포세이돈 어드벤처’를 제치고 흥행 1위를 했다는 것이야말로 쾌거라고 하겠다. ‘죽음의 다섯 손가락’은 쿠엔틴 타란티노 감독의 올타임 베스트 텐 중의 하나로 그는 자신의 액션영화 ‘킬 빌’에서 이 영화의 장면을 빌려다 오마지 형식으로 쓰기도 했다.
정 감독은 다시 새로운 것을 찾아 쇼 브라더스에서 자기와 함께 일한 제작자 레이먼드 차우가 새로 만든 영화사 골든 하베스트로 몸을 옮겼다. 골든 하베스트는 이소룡이 나온 ‘당산대형’과 ‘정무문’을 만든 회사다. 정 감독은 당시 이소룡이 자기를 찾아와 영화를 함께 만들자고 제의, 기획단계에 들어갔었는데 갑자기 이소룡이 사망했다고 회고했다.
정 감독이 10년간의 홍콩생활을 마감하고 귀국한 것은 당시 군사정권의 권유에 의해서였다. 귀국 후 화풍흥업이라는 영화사를 설립, 작품활동을 해보려고 했으나 창작의 자유가 제한돼 심한 좌절감에 빠졌다. 특히 당시 이영희 공연윤리위원장의 전횡에 시달려야 했다고 한다.
심신이 피로해진 자신을 안타깝게 여기던 아내의 권유에 따라 정 감독은 1996년 미국으로 이주, 남가주 샌디에고 인근의 라호야에 자리를 잡고 은둔생활에 들어갔다. 정 감독의 영화인으로서의 삶이 뒤 늦게 부활하게 된 것은 지난 2003년 부산국제영화제 때 그의 회고전이 열리면서였다. 이어 칸과 홍콩 및 런던 등지에서 정 감독의 회고전과 함께 그의 영화인생이 재조명되면서 그는 지금 ‘제2의 영화인생’을 살고 있다. 정 감독은 현재 샌디에고 한국영화제 집행위원장으로서 꺼질줄 모르는 영화에 대한 열정을 불사르고 있다.                
                                                     <한국일보 박흥진 편집위원/ hjpark1230@gmail.com>

2016년 2월 2일 화요일

‘시민 대 O.J. 심슨: 미국의 범죄이야기’ 잔 트라볼타




“남의 평가보다 스스로가 진짜 자신을 보여줄 때 승리”


오는 2월2일(하오 10시)부터 케이블 TV FX를 통해 방영되는 O.J. 심슨의 재판을 다룬 10부작 드라마 시리즈‘시민 대 O.J. 심슨: 미국의 범죄이야기’(The People v. O.J. Simpson: American Crime Story)에서 O.J.를 변호한 변호사 중 한 사람인 로버트 샤피로로 나오는 잔 트라볼타(60)와의 인터뷰가 지난 15일 베벌리힐스의 포시즌스 호텔에서 있었다. O.J.로는 쿠바 구딩 주니어가 나온다. 나이보다 훨씬 젊어 보이는 트라볼타는 시종일관 미소를 지어가면서 농담을 섞어 질문에 달변으로 대답을 했다. 쾌활하고 명랑한 호인 스타일로 눈웃음을 살살 치면서 우리(할리웃 외신기자협회원)들을 마치 이웃처럼 친근하게 대해 인터뷰가 편하고 즐거웠다. 그런데 트라볼타는 샤피로 역을 마치 오페라를 하듯이 과장된 제스처와 표정을 써 가면서 신나게 한다.       

-역을 맡으면서 망설이기라도 했는가.
“우선 TV 작품의 역을 맡은 지가 40년이 넘어 망설인 것은 사실이다. 그리고 드라마가 확실하고 튼튼한지에 대해서도 염려를 했다. 내용을 듣고 나서야 염려가 가셨다. 작품의 예술성이 높다는 것과 얘기가 다양한 층을 이루고 있다는 것을 알고서 이것이야 말로 한 번 해볼 만한 것이라고 생각했다.”

-역을 어떻게 준비했는가.
“난 변호사들을 잘 알고 있다. 재판에 관한 책 3권을 읽으면서 샤피로를 충실히 정확하게 해내려고 노력했다. 책 외에도 비디오를 보고 신문기사를 통독했다. 큰 도움이 됐다.”

-당신은 자가용 비행기를 조종하는데 몇 대나 가지고 있는가.
“두 대다.”

-당신은 O.J.가 무죄라고 생각하는가 아니면 유죄라고 생각하는가.
“그것은 각자의 의견에 달렸다. 사건현장에 있지 않는 한 결론을 내리기가 힘들다. 다수의 느낌에 따를 수밖에 없다고 본다. 그러나 이 작품을 만드는 데는 나의 개인적 의견은 아무 상관이 없다. 각본대로 따라 할 뿐이다. O.J.를 변호한 사람들은 사법체제를 존중하면서 그대로 따라했을 것이라고 본다.”

-어떻게 해서 아직도 옛날 그대로의 모습을 유지할 수 있는가.
“난 꽤 깨끗한 삶을 살고 있다. 운동을 하고 잘 먹는다. 모든 것을 도가 넘치지 않게 한다. 우리 직업은 스트레스가 심한 것인데 난 그것을 내 종교(사이언톨로지)로 다스린다.”

-실제로 재판이 열리고 있을 때 TV로 시청을 했는가.
“나보다 풋볼선수였던 나의 아버지가 더 관심이 있었다. 아버지는 매일 TV 앞에 붙어살다시피 했다.”   
샤피로(오른쪽)가 또 다른 변호사인 로버트 카다시안(데이빗 슈위머)과 논의하고 있다.

-요즘의 할리웃은 과거와 얼마나 달라졌다고 보는가.
“우선 옛날에는 배우가 되려고 하는 사람들이 요즘에 비해 훨씬 적었다. 역을 위한 오디션에 가도 경쟁자는 6~7명에 불과했다. 그 중 한 명은 리처드 기어였다. 그러나 이 사업이 진화해 세분화하면서 많은 다른 국면이 개입되고 아울러 수백명의 배우들에게 기회가 주어지고 있다. 그것은 좋은 일이다. 심하게 달라진 것은 유명세다. 지금은 1975년보다 유명해진다는 것이 너무 힘든 일이 됐다. 스타들의 일거수일투족이 샅샅이 기록되고 보도되고 또 멋대로 판단되고 있다. 그래서 요즘 스타들은 스트레스가 과거보다 훨씬 더 심하다. 그들은 집밖엘 나가고 싶어 하지 않을 정도다. 밖엘 나가면 보는 눈들 탓에 완벽한 사람이 돼야 하기 때문이다. 그것이 지난 40년간에 달라진 점이다.”

-당신은 역을 어떻게 고르는가.
“난 재미없거나 도전적이 아니면 역을 맡지 않는다. 요즘은 그런 면에서 내겐 더 활동하기가 좋다. 과거보다 더 좋은 각본이 많고 역도 다양한 것이 많기 때문이다. 때론 나이를 먹을수록 더 다양한 역이 주어지기도 한다. 그런 면에서 난 행복하다.”

-이 역을 맡은 후로 사람들에게 좋은 법적 자문을 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가.
“지금보다 오히려 과거에 더 좋은 법적 자문을 줄 수가 있었다. 내가 22세 때 내 변호사 중 한 명이 나보고 넌 법적인 면에 매우 똑똑하니 쉽게 변호사가 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었다. 내가 자기보다 낫다고 했다. 내가 그런 말을 들은 것은 내 개인적 필요와 생존본능이 작용한 탓으로 때론 그런 것이 변호사의 지식을 능가할 수가 있다고 본다.”

-이 역을 맡고 나서 앞으로 당신의 변호사를 상대로 보다 나은 협상을 할 수가 있다고 생각하는가.
“역을 하고 나서 내가 배운 것은 법적 또는 사법적 체계가 반드시 공정하지만은 않다는 것이다. 왜냐하면 그것들의 공정성은 법적 테두리 안의 것이지 인간성의 테두리 안에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시리즈 끝에 나오는 ‘우리는 인간이 아니라 비인간적인 변호사들이다’라는 말이 이 사실을 대변한다.”

-당신이 젊은 사람들에게 줄 조언은 어떤 것인가.               
“남으로 하여금 너를 네가 아닌 사람으로 만드는 것을 허락하지 말라는 것이다. 남이 당신에 대해 말하는 대로가 아니라 스스로가 진짜 자신을 보여줄 때에만 승리할 수가 있다. 당신에 대한 적대의식과 맞서야 할 때는 스스로를 안정되게 하려고 최선을 다해야 한다. 당신에 대한 적대감과 진짜 당신과의 사이에 차이를 둘 수가 있다면 당신이 한 발 앞서 가는 것이다. 그러나 이것은 그리 쉽지는 않다.”

-그렇다면 당신은 어떻게 그 방법을 터득했는가.
“내 부모는 내가 어렸을 때부터 내게 자의식과 자신감을 심어주었다. 그리고 보다 더 큰 것을 찾고자 했을 때 사이언톨로지를 발견했다. 난 거기서 찾은 것을 사랑한다. 그것은 내 자의식을 한층 더 강하게 만들어주었다.”

-당신이 올리비아 뉴턴 존과 나온 뮤지컬 영화 ‘그리스’(Grease·1978)가 지금도 인기가 있는 것은 무슨 까닭인가.
“영화의 마법이다. 세월이 가도 매 세대가 각기 자기들의 관점대로 영화를 해석하고 또 그것에 기여하는 탓인 것 같다. 나도 이 질문에 대한 확실한 대답이 있었으면 좋겠다. 그러나 난 영원보다 더 오래갈 영화에 나왔다는 것이 참 행복하다. 38년 전에 어려서 본 사람들이나 요즘의 어린 아이들이나 똑같이 이 영화를 사랑한다는 것은 정말로 멋있는 알이다.”

-당신은 어떤 피를 지녔는가.
“반은 이탈리아요 반은 아일랜드다. 우리 이탈리아 조상은 시실리와 나폴리 태생이다. 난 식욕도 이탈리아 사람 닮았다.”

-당신하면 디스코인데 요즘에도 춤을 추는가.
“내 몸이 분명히 따라갈 수 있다고 느끼는 리듬 있다면 난 춤을 춘다. 주로 라틴 리듬이다. 시대에 관계없이 나의 춤추고자 하는 영감을 움직이는 음악이 있으면 무대에 오른다. 랩도 다소 춘다.”

-당신의 연기 매너리즘이 매우 흥미 있는데 하기가 힘들었는가.
“감독인 라이언 머피가 내게 역을 자의대로 해석할 수 있는 자유를 주었다. 난 진실하려고 샤피로의 특별한 행동과 제스처를 보고 연구했다. 흉내 내기가 재미있었다. 내 해석이 큰 몫을 했지만 결코 샤피로의 행동이나 제스처를 완전히 무시한 것은 아니다. 그랬으면 작품을 망쳤을 것이다.”

-어떻게 해서 당신은 비행기에 열중하게 됐는가.
“내가 뉴저지주에 살 때 라과디아 공항 근처에 살았는데 매 5분마다 비행기들이 우리 집 지붕 위로 날아가곤 했다. 그 때부터 비행기에 관심을 갖게 됐다. 그리고 연예인들이었던 내 누나들이 전국 순회공연을 떠나고 돌아올 때마다 난 아버지와 함께 공항에 나가 그들을 보내고 맞이했다. 여기서 나의 비행과 쇼비즈니스에 대한 관심이 함께 영글었다. 1950년대와 60년대에는 쇼비즈니스와 비행산업이 매우 밀접한 관계를 맺고 있었다. 내가 알던 옛날 배우들인 말론 브랜도와 로렌 바콜 그리고 진 켈리에게 ‘당신은 어떤 비행기를 좋아하느냐’고 물으면 그들은 즉각 비행기의 이름을 대곤 했다. 이런 것들이 내 비행기에 대한 관심을 고취시켜 준 것 같다.”

-그 동안 얼마나 비행을 했는가.
“9,000시간을 날았다. 대부분 제트비행기다.”               
                                                              <한국일보 박흥진 편집위원/ hjpark1230@gmail.com>


쿵푸 판다 3(Kung Fu Panda 3)


포가 동료 맹렬 5인조 앞에서 쿵푸폼을 재고 있다.

유쾌 통쾌한 웃음폭탄 고루 섞은 화려한 작품



쿵푸 파이팅하는 배불뚝이 판다 포의 액션과 모험을 그린 입체만화 영화로 제2편이 만들어진지 5년 만에 나온 속편이다. 감독은 한국계 제니퍼 여 넬슨과 알레산드로 칼로니가 공동으로 했다. 액션과 유머를 고루 섞은 보고 즐길 만한 영화이지만 얘기에 참신성이나 극적인 요소가 모자라 어른들보다는 아이들이 훨씬 더 즐길 영화. 그러나 알록달록한 색깔이 눈부신 시각적으로는 역동적이요 화려한 작품이다.
포(잭 블랙의 음성)의 쿵푸 스승 쉬푸(더스틴 호프만)가 갑자기 은퇴를 발표하면서 후계자로 포를 지명한다. 이에 “난 못해요”라며 펄쩍 뛰는 것이 포. 그러나 스승의 명령이 명령인지라 포는 자기의 맹렬한 5인조 친구들인 타이거리스(앤젤리나 졸리), 몽키(재키 챈), 맨티스(세스 로건), 크레인(데이빗 크로스) 및 바이퍼(루시 리우)에게 쿵푸를 가르친다고 폼을 잡지만 실수연발의 해프닝이요 넌센스다.
그런데 갑자기 포의 생부 리(브라이언 크랜스턴)가 나타나 “내가 네 진짜 아버지다”라고 달려들면서 포를 주어다 키운 거위 아버지 핑(제임스 홍)의 가슴을 아프게 만든다. 그러나 영화가 영화이니 만큼 리와 핑은 화해를 하면서 포에겐 아버지가 두 명이나 생긴 셈이 된다. 이제 본격적인 액션을 펼치기 위해 영혼의 세계에 있던 포의 맞수로 황소 모양의 카이(J.K. 시몬스)가 모든 쿵푸도사들의 기를 훔치기 위해 포의 마을을 공격하면서 포와 그의 맹렬한 5인조 그리고 마을의 판다들이 힘을 합쳐 막강한 힘을 지닌 카이를 상대로 격전을 벌인다. 누가 이길까요.
얘기가 부족한 것이 흠이긴 하나 가족이 보고 즐길 만한 영화로 블랙을 비롯해 배우들의 음성연기가 일품이다. PG. DreamWorks. 전지역. ★★★(5개 만점)
                                                               <한국일보 박흥진 편집위원/ hjpark1230@gmail.com>

화이니스트 아우어즈(The Finest Hours)


해양경비대 구조정으로 유조선 선원들이 뛰어내리고 있다.


좌초한 유조선 구출한 해양경비대원의 실화


1952년 2월 폭풍우가 치는 겨울밤 매서추세츠주 케이프카드의 앞바다에 좌초한 유조선을 구출한 4인조 해양경비대원들의 실화로 주인공은 사람이라기보다 특수효과로 만든 산더미만한 파도다. 전형적인 구식 스타일의 대재난영화로 스릴을 즐길 만은 하나 강력한 충격이 모자라다. 입체영화.
케이프카드 인근의 대서양을 항해하던 2척의 거대한 유조선이 엄청난 파괴력을 지닌 파도를 만나 완전히 두 쪽이 난다. 
해양경비대의 주요 구조요원들은 대부분 첫 번째로 파괴된 유조선을 구하기 위해 나갔는데 이어 33명이 탄 두 번째 유조선 펜들턴으로부터 조난신호가 날아들면서 경비대장 대니얼(에릭 바나)은 경험이 부족한 과묵하고 정의감이 있는 버니(크리스 파인)를 조장으로 한 4인조를 구조에 내보낸다. 소형정을 타고 출항하는 버니 일행은 자살이나 마찬가지인 임무에도 사명감을 가지고 떠난다. 
영화는 버니의 얘기와 본의 아니게 유조선의 선장 구실을 하게 된 과묵한 기술자 레이먼드(케이시 애플렉-벤 애플렉의 동생)의 얘기가 평행선을 그리면서 진행되고 중간 중간에 해양경비대 본부의 상황이 끼어든다.
버니가 조정하는 구조정의 파도와의 대결과 펜들턴 선원들의 생존을 위한 치열한 몸부림이 교차로 엮어지는데 레이먼드는 구조정을 기다리기 위한 시간을 벌기 위해 배를 고의로 좌초시킨다. 실제로 구조정의 정원보다 3배가 많은 유조선 선원들이 기적처럼 다 구조됐다. 
이런 음습하고 살벌한 분위기를 녹여주기 위해 버니와는 성격이 정반대인 버니의 애인 미리암(할러데이 그레인저)이 영화에 로맨스를 첨가한다. 
인간 대 자연의 대결을 그린 순전한 액션영화로 애플렉이 연기를 잘 한다. 크레이그 길레스피 감독. PG-13. Disney. 전지역. ★★★(5개 만점)
                                                              <한국일보 박흥진 편집위원/ hjpark1230@gmail.com>

레베카(Rebecca)


‘드 윈터부인’은 남편 막심의 사랑을 의심한다.

연출과 연기와 음악 모두 훌륭한 고전걸작


알프레드 히치콕이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를 제작한 데이빗 O. 셀즈닉과 계약을 맺고 영국에서 미국으로 건너와 1940년에 만든 첫 미국영화로 모두 11개 부문에서 오스카상 후보에 올라 작품과 촬영상(흑백)을 받았다. 원작은 영국의 여류 작가 다프니 뒤 모리에의 동명소설.
히치콕 특유의 서스펜스가 가득한 로맨스가 있는 심리 스릴러로 마치 귀신영화를 보는 듯한 으스스한 분위기가 감도는 명화로 내용과 연출과 연기와 음악(프란츠 왝스맨) 등이 모두 훌륭한 고전걸작이다.
몬테칼로에 놀러온 부잣집 마님으로부터 돈을 받고 여행 친구로 동반한 젊고 아름다운 여자(조운 폰테인-영화에서 여자의 이름은 없다)가 명문가정 태생의 침울한 홀아비 막심 드 윈터(로렌스 올리비에)를 만나 사랑에 빠지면서 만난지 2주 후에 막심의 구혼을 받아들인다.
‘드 윈터부인’으로 불리는 신부는 영국 콘월에 있는 막심의 대저택 만달레이에 남편과 함께 도착하는데 이런 신부를 죽은 막심의 첫 번째 ‘드 윈터부인’인 레베카의 충실한 하녀 댄버스부인(주디스 앤더슨이 소름 끼치도록 냉정한 연기를 한다)이 차갑게 맞이한다.
댄버스 부인은 죽은 레베카의 미와 지와 세련됨에 집착하면서 레베카의 침실을 마치 신전처럼 보존하고 있는데 따라서 레베카의 자리를 차지하고 들어온 ‘드 윈터부인’을 적대시하고 지배하려고 든다.
이에 ‘드 윈터부인’은 심한 좌절감을 느끼면서 아직도 집안에 가득한 레베카의 그림자로 인해 막심의 자신에 대한 사랑에마저 회의를 느낀다. 그리고 막심이 아직도 레베카를 사랑하고 있다고 믿는다. 과연 레베카의 정체는 무엇인가.
자기 영화에 캐미오로 나오는 히치콕의 모습은 영화 끝에 볼 수 있다.
2일 하오 1시 LA카운티 뮤지엄 내 레오 S. 빙극장. ★★★★★(5개 만점)
                                                              <한국일보 박흥진 편집위원/ hjpark1230@gmail.com>


오스카는 온통 백색이다




지금 할리웃은 얼마 전에 발표된 아카데미 남녀 주조연상 후보자 20명이 몽땅 백인이라고 해서 불난리가 났다. 지난해에 이어 2년 연속으로 20명의 후보가 다 백인이어서 ‘오스카는 온통 백색이다’라는 소리가 후렴처럼 되뇌어지고 있다.
이에 올해의 오스카 명예상을 받은 스파이크 리 감독과 수퍼스타 윌 스미스와 그의 배우인 아내 제이다 핑켓 스미스가 오는 오스카 시상식 불참을 밝혔다. 그리고 일부에서 오스카 보이콧 움직임까지 일면서 매스컴의 집중포화를 받자 아카데미는 부랴부랴 긴급 이사회를 열고 오는 2020년까지 흑인과 여성 등 소수계 회원을 현재보다 두 배로 늘리고 회원들의 영구투표권을 제한하는 내용의 조치를 발표했다.
영화에 대한 평가란 주관적인 것이어서 산수문제 풀듯이 할 수 없다. 아카데미 회원의 절대다수가 나이 먹은 백인 남자인 것은 사실이나 이들을 전부 인종차별주의자라고 도매금으로 매도할 수는 없다.
오스카 연기상 후보는 6,200여명 전체 아카데미 회원 중 1,100여명으로 구성된 연기분과위원들만이 뽑는다. 나머지 회원들은 각기 자기들 전문분야에 관해서만 후보를 고른다. 감독분과위는 감독상 후보 그리고 촬영분과위는 촬영상 후보를 뽑는다. 작품상 후보만 전 회원이 다 고른다.
골든 글로브상을 주는 할리웃 외신기자협회(HFPA) 회원인 나는 이번 ‘오스카 백색소동’을 보면서 동료회원들의 의견을 물어보았다. 이스라엘 태생의 고참 여회원은 “실력대로 하는 것이지 무슨 인종차별이냐”는 대답이고 방글라데시 태생의 회원은 “인종차별이 분명하다”며 열을 올렸다. 그러나 나는 이번 발표가 반드시 인종차별의 결과라고만은 생각하지 않는다.
이번 ‘오스카 백색소동’의 원인은 연기상 후보에 오를 만한 흑인배우들인 마이클 B. 조단(크리드), 윌 스미스(컨커션), 새뮤얼 L. 잭슨(헤이트풀 에잇) 및 이드리스 엘바(나라 없는 짐승) 등이 다 탈락됐기 때문이다. 여기에 비평가들의 호평과 함께 흥행도 잘된 ‘크리드’와 ‘스트레이트 아우타 캄튼’이 작품과 감독상 후보에서 탈락됐다.
그런데 나도 지난 10일에 열린 골든글로브 시상식의 각종 후보를 고를 때 이들을 전부 제외시켰다. 내가 보기엔 좋은 영화요 연기였지만 수상 후보로는 여겨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나도 인종차별주의자란 말인가.              
다른 예술형태와 마찬가지로 영화예술도 작품의 질과 예술성에 의해 평가돼야 한다. 그런 면에서 아카데미가 ‘오스카 백색소동’에 본능적인 반사작용을 하듯이 만든 이번 긴급조치는 소수계 우대정책인 ‘어퍼머티브 액션’의 색채가 짙다. 물론 아카데미가 소수계를 보다 많이 영입하긴 해야겠지만 그들의 숫자를 늘려 소수계 작품과 배우들의 수상 기회를 늘려 보겠다는 생각은 ‘최고’에게 상을 주는 아카데미의 본의를 저해할 수도 있다.
흑인인 셰릴 분 아이잭스(사진)가 회장인 아카데미는 그동안 구조개혁을 위해 꾸준한 노력을 해왔다. 지난해에 한국 영화인들로서는 처음으로 임권택, 박찬욱, 최민식 및 송강호 등이 아카데미 회원이 된 것도 이런 개혁 시도의 결과다. 그리고 이병헌이 오는 오스카 시상식에 한국 영화인으로서는 처음으로 시상자로 초대 받은 것도 내가 보기엔 ‘오스카 백색소동’의 진화작업의 한 수단으로 보인다.
흑백차별 문제가 거론될 때마다 생각나는 사람이 오스카상을 탄 덴젤 워싱턴이다. 나는 수년 전 인터뷰에서 그에게 “당신은 인종차별이 고쳐질 수 있는 질병이라고 생각하느냐”고 물었다. “백년이 가도 안 고쳐져질 것”이라는 것이 그의 대답이었다.
그런데 이번 ‘오스카 백색소동’은 장님 코끼리 만지기 식의 단면적인 판단에서 나온 것으로 볼 수 있다. 수상 후보의 흑인 고갈현상의 진짜 원인은 아카데미에 있다기보다 영화를 만드는 영화사에 있다고 해야 맞다.
메이저의 사장을 비롯해 영화제작에 청신호를 보내는 사람들은 백인 일색이다. 이들은 자연 자기들의 입맛에 맞는 영화를 선호하게 마련이다. ‘투표할 때 소수계 영화에 찍으려고 해도 찍을 게 있어야 찍지’라는 말이다. 따라서 보다 많은 소수계가 영화사의 고급 간부로 활동할 때 비로소 소수계 영화도 많이 제작될 것이라는 것이 전문가들의 견해다.
제88회 아카데미 시상식은 오는 2월28일 할리웃과 하일랜드에 있는 돌비극장에서 ABC-TV 중계로 흑인 코미디언 크리스 락의 사회로 열린다. 독설가인 락의 입에서 ‘할리웃은 온통 백색이다’에 대해 어떤 말이 쏟아져 나올지 자못 기대된다.
                                                              <한국일보 박흥진 편집위원/ hjpark1230@gmail.com>


2016년 1월 26일 화요일

북북서로 진로를 돌려라(North by Northwest)


로저(왼쪽)와 이브가 대통령 바위 얼굴을 타고 도주하고 있다.


여러 번 봐도 새로운 재미느끼는 상쾌한 명화


서스펜스의 장인 알프렛 히치콕이 자신의 미국 영화 중 최고의 것이라고 말한 다채롭고 장난기 짙은 멋진 스타일의 1958년 작 스파이 스릴러다. 잘 생기고 멋진 배우들의 매력과 연기, 대가다운 기술과 성적 의미가 내포된 대사와 성숙한 남녀의 은근한 로맨스 그리고 넉넉한 유머와 우여곡절이 심한 플롯 등으로 여러 번 봐도 새로운 재미를 느끼게 되는 미풍과도 같은 상쾌한 명화다.
히치콕 특유의 멀쩡한 사람이 신원이 오인돼 계속해 도주하는 혼란과 악몽의 도주와 추격의 작품으로 영리하나 다소 경박한 삶을 살고 있는 광고회사의 고급 간부로 나오는 케리 그랜트의 냉소적이며 꿋꿋하면서도 멋있는 신사풍 매력이 만점이다.         히치콕이 각본가 어네스트 레만과 이 영화를 구상했을 때의 제목은 ‘링컨 코 위의 남자’로 히치콕은 늘 사우스다코타주의 명물인 링컨 등 4명의 미 대통령들의 얼굴들이 조각된 마운트 러시모어에서 영화를 찍고 싶어 했다고 한다. 
음악은 ‘사이코’ 등 히치콕의 여러 편의 영화음악을 작곡한 버나드 허만이 맡았고 히치콕은 늘 하던 버릇대로 여기서도 영화 첫 부분에 잠깐 나온다. 버스를 타려다가 문이 닫히는 바람에 못 탄 사람이 히치콕이다.              
멋쟁이이긴 하나 바람둥이에다 자기밖에 믿는 사람이 없는 이혼경력이 화려하고 내면이 얇은 광고회사 고급 간부 로저 손힐(그랜트)이 대낮에 뉴욕의 플라자호텔 내 오크룸 바에서 고객들과 사업논의를 하던중 공산국 스파이 두목 필립 밴댐(제임스 메이슨)의 졸개들에 의해 납치된다. 이들은 로저를 CIA 요원 조지로 오인, 납치한 것인데 필립은 뒤늦게 실수를 깨닫고 버본을 병째로 로저의 입안에 부어넣은 뒤 만취한 그를 차 운전석에 앉혀 내쫓는다.
여기서 살아난 로저는 플라자호텔의 조지의 방을 뒤져 단서를 얻은 뒤 자기 납치사건의 의문을 풀어줄 외교관 타운센드를 찾아 유엔 빌딩으로 간다. 로저가 타운센드와 대화를 나누고 있는 중에 타운센드가 등에 칼을 맞고 쓰러지면서 로저는 살인범으로 몰려 이 때부터 영화가 끝날 때까지 계속해 도주한다. 
로저는 조지의 행방을 찾아 시카고행 열차에 오르는데 열차 안에서 아름답고 우아한 이브(에바 마리 세인트)를 만나 그의 도움으로 경찰을 따돌린다. 그리고 이브의 주선으로 시카고 교외의 옥수수밭이 있는 들판에 가 여기서 만나기로 된 조지를 기다린다. 그러나 로저는 조지 대신 나타난 살충제 살포 비행기의 기총소사 세례를 받아 죽다 살아난다.
이에 로저는 이브의 뒤를 추적, 미술품 경매장에서 이브가 필립과 함께 있는 것을 발견, 눈물을 머금는 이브에게 냉소적인 모멸의 말을 쏟아 붓는다. 그리고 로저는 여기서 일부러 벌인 소란으로 경찰에게 체포되는데 그 후 CIA 고위 책임자가 로저 앞에 나타나 조지와 필립과 이브의 정체를 알려준다.
클라이맥스는 한밤 마운트 러시모어의 대통령 얼굴 위에서 일어난다. 대통령 얼굴을 타고 넘으며 도주하는 로저와 이브를 뒤쫓는 필립 일당 간의 추격전이 손에 땀을 쥐게 하는데 이 장면이 급격한 컷에 의해 열차 침대칸으로 넘어간다. 그리고 열차는 기적소리를 내면서 터널 안으로 들어간다. 26일 하오 1시 LA카운티 뮤지엄(윌셔와 페어팩스)내 빙극장에서 상영한다.   ★★★★★(5개 만점)
                                                               <한국일보 박흥진 편집위원/ hjpark1230@gma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