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이야기

2016년 2월 2일 화요일

화이니스트 아우어즈(The Finest Hours)


해양경비대 구조정으로 유조선 선원들이 뛰어내리고 있다.


좌초한 유조선 구출한 해양경비대원의 실화


1952년 2월 폭풍우가 치는 겨울밤 매서추세츠주 케이프카드의 앞바다에 좌초한 유조선을 구출한 4인조 해양경비대원들의 실화로 주인공은 사람이라기보다 특수효과로 만든 산더미만한 파도다. 전형적인 구식 스타일의 대재난영화로 스릴을 즐길 만은 하나 강력한 충격이 모자라다. 입체영화.
케이프카드 인근의 대서양을 항해하던 2척의 거대한 유조선이 엄청난 파괴력을 지닌 파도를 만나 완전히 두 쪽이 난다. 
해양경비대의 주요 구조요원들은 대부분 첫 번째로 파괴된 유조선을 구하기 위해 나갔는데 이어 33명이 탄 두 번째 유조선 펜들턴으로부터 조난신호가 날아들면서 경비대장 대니얼(에릭 바나)은 경험이 부족한 과묵하고 정의감이 있는 버니(크리스 파인)를 조장으로 한 4인조를 구조에 내보낸다. 소형정을 타고 출항하는 버니 일행은 자살이나 마찬가지인 임무에도 사명감을 가지고 떠난다. 
영화는 버니의 얘기와 본의 아니게 유조선의 선장 구실을 하게 된 과묵한 기술자 레이먼드(케이시 애플렉-벤 애플렉의 동생)의 얘기가 평행선을 그리면서 진행되고 중간 중간에 해양경비대 본부의 상황이 끼어든다.
버니가 조정하는 구조정의 파도와의 대결과 펜들턴 선원들의 생존을 위한 치열한 몸부림이 교차로 엮어지는데 레이먼드는 구조정을 기다리기 위한 시간을 벌기 위해 배를 고의로 좌초시킨다. 실제로 구조정의 정원보다 3배가 많은 유조선 선원들이 기적처럼 다 구조됐다. 
이런 음습하고 살벌한 분위기를 녹여주기 위해 버니와는 성격이 정반대인 버니의 애인 미리암(할러데이 그레인저)이 영화에 로맨스를 첨가한다. 
인간 대 자연의 대결을 그린 순전한 액션영화로 애플렉이 연기를 잘 한다. 크레이그 길레스피 감독. PG-13. Disney. 전지역. ★★★(5개 만점)
                                                              <한국일보 박흥진 편집위원/ hjpark1230@gmail.com>

레베카(Rebecca)


‘드 윈터부인’은 남편 막심의 사랑을 의심한다.

연출과 연기와 음악 모두 훌륭한 고전걸작


알프레드 히치콕이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를 제작한 데이빗 O. 셀즈닉과 계약을 맺고 영국에서 미국으로 건너와 1940년에 만든 첫 미국영화로 모두 11개 부문에서 오스카상 후보에 올라 작품과 촬영상(흑백)을 받았다. 원작은 영국의 여류 작가 다프니 뒤 모리에의 동명소설.
히치콕 특유의 서스펜스가 가득한 로맨스가 있는 심리 스릴러로 마치 귀신영화를 보는 듯한 으스스한 분위기가 감도는 명화로 내용과 연출과 연기와 음악(프란츠 왝스맨) 등이 모두 훌륭한 고전걸작이다.
몬테칼로에 놀러온 부잣집 마님으로부터 돈을 받고 여행 친구로 동반한 젊고 아름다운 여자(조운 폰테인-영화에서 여자의 이름은 없다)가 명문가정 태생의 침울한 홀아비 막심 드 윈터(로렌스 올리비에)를 만나 사랑에 빠지면서 만난지 2주 후에 막심의 구혼을 받아들인다.
‘드 윈터부인’으로 불리는 신부는 영국 콘월에 있는 막심의 대저택 만달레이에 남편과 함께 도착하는데 이런 신부를 죽은 막심의 첫 번째 ‘드 윈터부인’인 레베카의 충실한 하녀 댄버스부인(주디스 앤더슨이 소름 끼치도록 냉정한 연기를 한다)이 차갑게 맞이한다.
댄버스 부인은 죽은 레베카의 미와 지와 세련됨에 집착하면서 레베카의 침실을 마치 신전처럼 보존하고 있는데 따라서 레베카의 자리를 차지하고 들어온 ‘드 윈터부인’을 적대시하고 지배하려고 든다.
이에 ‘드 윈터부인’은 심한 좌절감을 느끼면서 아직도 집안에 가득한 레베카의 그림자로 인해 막심의 자신에 대한 사랑에마저 회의를 느낀다. 그리고 막심이 아직도 레베카를 사랑하고 있다고 믿는다. 과연 레베카의 정체는 무엇인가.
자기 영화에 캐미오로 나오는 히치콕의 모습은 영화 끝에 볼 수 있다.
2일 하오 1시 LA카운티 뮤지엄 내 레오 S. 빙극장. ★★★★★(5개 만점)
                                                              <한국일보 박흥진 편집위원/ hjpark1230@gmail.com>


오스카는 온통 백색이다




지금 할리웃은 얼마 전에 발표된 아카데미 남녀 주조연상 후보자 20명이 몽땅 백인이라고 해서 불난리가 났다. 지난해에 이어 2년 연속으로 20명의 후보가 다 백인이어서 ‘오스카는 온통 백색이다’라는 소리가 후렴처럼 되뇌어지고 있다.
이에 올해의 오스카 명예상을 받은 스파이크 리 감독과 수퍼스타 윌 스미스와 그의 배우인 아내 제이다 핑켓 스미스가 오는 오스카 시상식 불참을 밝혔다. 그리고 일부에서 오스카 보이콧 움직임까지 일면서 매스컴의 집중포화를 받자 아카데미는 부랴부랴 긴급 이사회를 열고 오는 2020년까지 흑인과 여성 등 소수계 회원을 현재보다 두 배로 늘리고 회원들의 영구투표권을 제한하는 내용의 조치를 발표했다.
영화에 대한 평가란 주관적인 것이어서 산수문제 풀듯이 할 수 없다. 아카데미 회원의 절대다수가 나이 먹은 백인 남자인 것은 사실이나 이들을 전부 인종차별주의자라고 도매금으로 매도할 수는 없다.
오스카 연기상 후보는 6,200여명 전체 아카데미 회원 중 1,100여명으로 구성된 연기분과위원들만이 뽑는다. 나머지 회원들은 각기 자기들 전문분야에 관해서만 후보를 고른다. 감독분과위는 감독상 후보 그리고 촬영분과위는 촬영상 후보를 뽑는다. 작품상 후보만 전 회원이 다 고른다.
골든 글로브상을 주는 할리웃 외신기자협회(HFPA) 회원인 나는 이번 ‘오스카 백색소동’을 보면서 동료회원들의 의견을 물어보았다. 이스라엘 태생의 고참 여회원은 “실력대로 하는 것이지 무슨 인종차별이냐”는 대답이고 방글라데시 태생의 회원은 “인종차별이 분명하다”며 열을 올렸다. 그러나 나는 이번 발표가 반드시 인종차별의 결과라고만은 생각하지 않는다.
이번 ‘오스카 백색소동’의 원인은 연기상 후보에 오를 만한 흑인배우들인 마이클 B. 조단(크리드), 윌 스미스(컨커션), 새뮤얼 L. 잭슨(헤이트풀 에잇) 및 이드리스 엘바(나라 없는 짐승) 등이 다 탈락됐기 때문이다. 여기에 비평가들의 호평과 함께 흥행도 잘된 ‘크리드’와 ‘스트레이트 아우타 캄튼’이 작품과 감독상 후보에서 탈락됐다.
그런데 나도 지난 10일에 열린 골든글로브 시상식의 각종 후보를 고를 때 이들을 전부 제외시켰다. 내가 보기엔 좋은 영화요 연기였지만 수상 후보로는 여겨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나도 인종차별주의자란 말인가.              
다른 예술형태와 마찬가지로 영화예술도 작품의 질과 예술성에 의해 평가돼야 한다. 그런 면에서 아카데미가 ‘오스카 백색소동’에 본능적인 반사작용을 하듯이 만든 이번 긴급조치는 소수계 우대정책인 ‘어퍼머티브 액션’의 색채가 짙다. 물론 아카데미가 소수계를 보다 많이 영입하긴 해야겠지만 그들의 숫자를 늘려 소수계 작품과 배우들의 수상 기회를 늘려 보겠다는 생각은 ‘최고’에게 상을 주는 아카데미의 본의를 저해할 수도 있다.
흑인인 셰릴 분 아이잭스(사진)가 회장인 아카데미는 그동안 구조개혁을 위해 꾸준한 노력을 해왔다. 지난해에 한국 영화인들로서는 처음으로 임권택, 박찬욱, 최민식 및 송강호 등이 아카데미 회원이 된 것도 이런 개혁 시도의 결과다. 그리고 이병헌이 오는 오스카 시상식에 한국 영화인으로서는 처음으로 시상자로 초대 받은 것도 내가 보기엔 ‘오스카 백색소동’의 진화작업의 한 수단으로 보인다.
흑백차별 문제가 거론될 때마다 생각나는 사람이 오스카상을 탄 덴젤 워싱턴이다. 나는 수년 전 인터뷰에서 그에게 “당신은 인종차별이 고쳐질 수 있는 질병이라고 생각하느냐”고 물었다. “백년이 가도 안 고쳐져질 것”이라는 것이 그의 대답이었다.
그런데 이번 ‘오스카 백색소동’은 장님 코끼리 만지기 식의 단면적인 판단에서 나온 것으로 볼 수 있다. 수상 후보의 흑인 고갈현상의 진짜 원인은 아카데미에 있다기보다 영화를 만드는 영화사에 있다고 해야 맞다.
메이저의 사장을 비롯해 영화제작에 청신호를 보내는 사람들은 백인 일색이다. 이들은 자연 자기들의 입맛에 맞는 영화를 선호하게 마련이다. ‘투표할 때 소수계 영화에 찍으려고 해도 찍을 게 있어야 찍지’라는 말이다. 따라서 보다 많은 소수계가 영화사의 고급 간부로 활동할 때 비로소 소수계 영화도 많이 제작될 것이라는 것이 전문가들의 견해다.
제88회 아카데미 시상식은 오는 2월28일 할리웃과 하일랜드에 있는 돌비극장에서 ABC-TV 중계로 흑인 코미디언 크리스 락의 사회로 열린다. 독설가인 락의 입에서 ‘할리웃은 온통 백색이다’에 대해 어떤 말이 쏟아져 나올지 자못 기대된다.
                                                              <한국일보 박흥진 편집위원/ hjpark1230@gmail.com>


2016년 1월 26일 화요일

북북서로 진로를 돌려라(North by Northwest)


로저(왼쪽)와 이브가 대통령 바위 얼굴을 타고 도주하고 있다.


여러 번 봐도 새로운 재미느끼는 상쾌한 명화


서스펜스의 장인 알프렛 히치콕이 자신의 미국 영화 중 최고의 것이라고 말한 다채롭고 장난기 짙은 멋진 스타일의 1958년 작 스파이 스릴러다. 잘 생기고 멋진 배우들의 매력과 연기, 대가다운 기술과 성적 의미가 내포된 대사와 성숙한 남녀의 은근한 로맨스 그리고 넉넉한 유머와 우여곡절이 심한 플롯 등으로 여러 번 봐도 새로운 재미를 느끼게 되는 미풍과도 같은 상쾌한 명화다.
히치콕 특유의 멀쩡한 사람이 신원이 오인돼 계속해 도주하는 혼란과 악몽의 도주와 추격의 작품으로 영리하나 다소 경박한 삶을 살고 있는 광고회사의 고급 간부로 나오는 케리 그랜트의 냉소적이며 꿋꿋하면서도 멋있는 신사풍 매력이 만점이다.         히치콕이 각본가 어네스트 레만과 이 영화를 구상했을 때의 제목은 ‘링컨 코 위의 남자’로 히치콕은 늘 사우스다코타주의 명물인 링컨 등 4명의 미 대통령들의 얼굴들이 조각된 마운트 러시모어에서 영화를 찍고 싶어 했다고 한다. 
음악은 ‘사이코’ 등 히치콕의 여러 편의 영화음악을 작곡한 버나드 허만이 맡았고 히치콕은 늘 하던 버릇대로 여기서도 영화 첫 부분에 잠깐 나온다. 버스를 타려다가 문이 닫히는 바람에 못 탄 사람이 히치콕이다.              
멋쟁이이긴 하나 바람둥이에다 자기밖에 믿는 사람이 없는 이혼경력이 화려하고 내면이 얇은 광고회사 고급 간부 로저 손힐(그랜트)이 대낮에 뉴욕의 플라자호텔 내 오크룸 바에서 고객들과 사업논의를 하던중 공산국 스파이 두목 필립 밴댐(제임스 메이슨)의 졸개들에 의해 납치된다. 이들은 로저를 CIA 요원 조지로 오인, 납치한 것인데 필립은 뒤늦게 실수를 깨닫고 버본을 병째로 로저의 입안에 부어넣은 뒤 만취한 그를 차 운전석에 앉혀 내쫓는다.
여기서 살아난 로저는 플라자호텔의 조지의 방을 뒤져 단서를 얻은 뒤 자기 납치사건의 의문을 풀어줄 외교관 타운센드를 찾아 유엔 빌딩으로 간다. 로저가 타운센드와 대화를 나누고 있는 중에 타운센드가 등에 칼을 맞고 쓰러지면서 로저는 살인범으로 몰려 이 때부터 영화가 끝날 때까지 계속해 도주한다. 
로저는 조지의 행방을 찾아 시카고행 열차에 오르는데 열차 안에서 아름답고 우아한 이브(에바 마리 세인트)를 만나 그의 도움으로 경찰을 따돌린다. 그리고 이브의 주선으로 시카고 교외의 옥수수밭이 있는 들판에 가 여기서 만나기로 된 조지를 기다린다. 그러나 로저는 조지 대신 나타난 살충제 살포 비행기의 기총소사 세례를 받아 죽다 살아난다.
이에 로저는 이브의 뒤를 추적, 미술품 경매장에서 이브가 필립과 함께 있는 것을 발견, 눈물을 머금는 이브에게 냉소적인 모멸의 말을 쏟아 붓는다. 그리고 로저는 여기서 일부러 벌인 소란으로 경찰에게 체포되는데 그 후 CIA 고위 책임자가 로저 앞에 나타나 조지와 필립과 이브의 정체를 알려준다.
클라이맥스는 한밤 마운트 러시모어의 대통령 얼굴 위에서 일어난다. 대통령 얼굴을 타고 넘으며 도주하는 로저와 이브를 뒤쫓는 필립 일당 간의 추격전이 손에 땀을 쥐게 하는데 이 장면이 급격한 컷에 의해 열차 침대칸으로 넘어간다. 그리고 열차는 기적소리를 내면서 터널 안으로 들어간다. 26일 하오 1시 LA카운티 뮤지엄(윌셔와 페어팩스)내 빙극장에서 상영한다.   ★★★★★(5개 만점)
                                                               <한국일보 박흥진 편집위원/ hjpark1230@gmail.com>

입맨 3(Ip Man 3)


입맨(오른쪽)과 갱스터 프랭크(마이크 타이슨)가 싸우고 있다.


 브루스 리 쿵푸 스승 실제 인물 ‘엽문’영화


1950년대 홍콩에서 윙춘이라는 스타일의 쿵푸를 지도한 실제인물인 입맨(엽문)의 눈부신 쿵푸액션이 있는 영화로 1편과 2편에 이어 돌의 표정을 지닌 조용하고 침착한 다니 옌이 다시 주연을 맡았다. 입맨의 제자 중 하나가 브루스 리다.
선과 악의 대결이라는 간단한 내용을 지닌 작품으로 군더더기 없이 간결한데 눈알이 돌아가는 액션에 코미디와 감상적인 것을 고루 섞어 오락영화로 즐기기엔 안성맞춤이다.           
브루스 리가 거의 은퇴하다시피 한 채 아름다운 아내 윙-싱(린 훙)과 어린 아들과 함께 조용히 살면서 쿵푸도장을 운영하는 입맨을 찾아와 제자로 써 달라고 부탁하는 장면으로 시작한다. 브루스 리 역의 대니 챈이 코믹한 연기를 잘 한다.  
그런데 동네 깡패들이 입맨의 아들이 다니는 학교 부지를 교장에게 강제로 팔라고 윽박지르면서 입맨이 자기 제자들과 함께 이들과 겨룬다. 영화는 액션과 드라마를 강약박자 식으로 조합했다. 깡패들의 두목 프랭크는 과연 누구일까. 다름 아닌 ‘서양 악마’로 왕년의 프로권투 헤비급 챔피언인 마이크 타이슨. 영화는 타이슨을 밑천으로 흥행성공을 노리고 있다.
타이슨과 함께 경찰서장인 영국인도 ‘서양 악마’로 묘사하면서 제국주의적인 외국인  배척운동을 겸했는데 이 같은 반서양인 감정은 영국인 경찰서장을 심히 못마땅하게 여기는 중국인 형사반장 포(켄트 쳉)의 불만을 통해 노출된다.
여기에 자기가 진짜 윙춘 스타일의 대가라고 주장하는 청 틴-치(장 진)가 입맨에게 도전을 하면서 입맨은 프랭크와 청 틴-치 양측의 협공에 시달린다. 그리고 윙-싱이 암에 걸리면서 입맨은 슬픔과 고뇌에 빠진다.
입맨은 먼저 프랭크를 찾아가 한판 붙는데 권투선수 타이슨과 실제로 윙춘 스타일에 능한 다니 옌 간의 주먹과 발을 이용한 액션이 볼만하다. 아내의 병을 돌보느라 청 틴-치의 도전에 불응하던 입맨은 아내의 권유로 청 틴-치의 도장을 찾아가 그와 과연 누가 윙춘 스타일의 매스터인지를 가름할 대결을 벌인다. 
빠르고 사뿐하고 리드미컬하면서도 치명적인 액션은 ‘와호장룡’의 무술을 지도한 전설적인 무술안무가인 유엔 우-핑이 맡았다. 윌슨 입 감독. PG-13. 일부 지역. ★★★(5개 만점)
                                                               <한국일보 박흥진 편집위원/ hjpark1230@gmail.com>

오스카상 각 부문 후보작


캐나다 촬영장의 알레한드로 G. 이나리투(왼쪽부터) 감독과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

‘레버넌트’작품·감독 및 남우주연상 등 총 12개 부문 올라


*이 영화는 지난 10일 열린 제73회 골든 글로브 시상식에서 작품과 남우주연상(각기 드라마 부문) 및 감독상을 받아 3관왕이 됐다. 또 지난 14일에 발표된 오스카상 각 부문 후보에서 작품, 감독 및 남우주연상 등 총 12개 부문에 올랐다. ‘레버넌트’가 전 지역으로 확대 상영되는 것을 계기로 이 영화를 다시 한 번 소개한다.   
이것이야 말로 위대한 영화제작이다. 방대한 스케일과 내장을 끄집어내 씹고 생살을 깎아내는 것 같은 쓰고 고통스런 생존의 몸부림과 복수, 폭과 깊이가 대하 서사적으로 장엄하고 아름다운 영상미 그리고 불길하고 우울한 음악(사카모토 류이치와 알바 노토) 및 처절한 연기 등이 마치 명필가의 거대한 붓이 일필휘지로 쓴 것 같은 연출력에 의해 극단적으로 생생하게 표현된 걸작이다.
지난해에 ‘버드맨’으로 오스카 감독상을 탄 알레한드로 G. 이나리투(공동 각본)의 영화로 실제 있었던 모피사냥꾼의 사건을 바탕으로 캐나다의 캘거리와 아르헨티나에서 찍었는데 마치 영화 속의 복수심에 불타는 주인공처럼 이를 득득 갈면서 죽기를 각오하고 만든 것 같은 절박감과 치열한 작품 욕심이 느껴져 고개가 숙여진다. 
가차 없고 잔혹한 실존적 웨스턴이기도 한데 눈 덮인 광활한 동토에서 살아남기 위해 대장정을 하면서 겪는 주인공이 겪는 견디어내기 힘든 조건과 상황 그리고 폭력이 너무나 노골적으로 참혹하고 끔찍해 영화를 보다가 중간에 나가는 사람들이 있을 정도다.     
1823년 록키산 지역에서 캡튼 앤드루 헨리(돔날 글리슨)의 지휘 하에 모피사냥을 하던 휴 글래스(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 등 사냥꾼 일행이 포니 인디언들에 의해 기습을 당하는 장면으로 시작되는데 장시간 진행되는 이 기습장면의 속도감과 공포와 잔인성 및 혼란이 감관을 유린하는 것 같은 카메라에 의해 박진감 있게 포착된다. 그런데 휴는 한 때 포니들과 함께 살면서 원주민과 결혼하고 아들까지 낳은 사냥꾼으로 지역 지리에 대해 정통하다.
겨울이 다가오면서 사냥꾼들은 철수를 시작하는데 숲 속에서 혼자 휴식을 취하던 휴가 거대한 어미 곰에 의해 습격을 받아 빈사의 지경에 이른다. 특수효과로 처리된 이 곰의 습격장면은 영화사에 길이 남을 것으로 너무 생생해 진짜로 곰에게 물리고 발톱에 찢기고 밟히는 것 같은 현실감을 느끼게 된다(감독은 어떻게 찍었는지 밝히질 않는다).
들것에 실려 운반되던 휴를 날씨와 험한 지형 때문에 더 이상 운반할 수 없게 되자 앤드루는 사이코 같은 성질을 지닌 탐욕스런 존(탐 하디)과 양심적인 젊은 짐(윌 풀터)에게 휴를 잘 돌봐주다가 혹시라도 죽으면 제대로 매장을 하라고 당부하고 나머지 대원들을 이끌고 요새를 향해 떠난다. 그러나 얼마 후 존은 짐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휴를 거의 생매장하다시피 한 뒤 버리고 떠난다.
여기서 살아남은 휴가 처음에는 벌벌 기어 다니면서 먹고 마실 것을 찾아다니다가 기운을 차리고 나무 지팡이에 의존한 채 존에게 복수를 하기 위해 설원과 산을 걷고 타고 넘고 급류에 휩쓸려 떠내려가면서 집요하게 목적지를 향해 간다. 이 과정에서 휴는 거의 초인적 인내와  생존본능으로 온갖 위험과 고통을 극복한다. 특히 경악할 장면은 그가 얼어 죽지 않으려고 죽은 말의 내장을 손으로 꺼낸 뒤 말 속에 드러누워 혹한을 피하는 모습.
마침내 휴는 요새에 도착, 존의 행위를 폭로하나 존이 도주하면서 휴는 이번에는 달아난 존을 잡기 위해 다시 혼자 설원으로 떠난다. 자연광을 이용한 에마누엘 루베즈키의 촬영이 물 흐르듯 하고 급박한데 휴가 말을 탄 채 절벽 아래로 떨어지는 장면을 비롯해 경탄을 금치 못할 장면들이 많다. 내용이 간단한 영화에서 디카프리오는 별로 말을 많이 안 하는데 두꺼운 동물털가죽을 입고 텁수룩한 수염에 장발을 한 채 입안으로 웅얼대면서 강렬한 눈매와 사로잡힌 얼굴 표정으로 필사적인 연기를 한다. 디카프리오가 골든 글로브상에 이어 오스카상을 탈 가능성이 매우 높다. 상영시간 2시간36분. R. Fox. 전지역.  
                                                              <한국일보 박흥진 편집위원/ hjpark1230@gmail.com>



‘이키루’




나는 신문을 볼 때면 꼭 부음을 읽는다. 우선 내가 어느덧 나이를 먹어 죽음을 낯설어하지 말아야 할 때가 다가오기 때문이다. 그리고 내 나이 또래의 어느 지인이 별세했는지도 궁금해서이다. 그런데 부음을 읽다보면 씁쓸한 심정이 들곤 한다. 부음란에 난 고인들은 다 살았을 때 ‘장’자리 하나 정도는 한 사람들이기 때문이다. 사람은 죽어서도 신분에 층이 있는가 하는 생각에 입맛이 써지곤 한다.
그런데 당신은 앞으로 6개월 시한부 삶을 선고 받는다면 그 기간에 무엇을 하겠는가. 도쿄 달동네 구청의 시민과장 와타나베 간지는 모기가 들끓는 동네 시궁창을 덮고 그 위에 아이들을 위한 놀이터를 짓는다. 와타나베는 일본의 명장 쿠로사와 아키라의 죽음을 통한 삶의 확인을 연민의 마음으로 그린 ‘이키루’(Ikiru·1952)의 주인공이다.
인간은 미련해서 죽음을 맞아서야 삶을 추스르는데 평생을 공무원 생활을 한 와타나베도 의사로부터 위암으로 앞으로 6개월밖에 못 산다는 통고를 받고나서야 사람다운 삶을 시작한다. ‘이키루’(산다는 뜻)는 와타나베의 숨 막힐 것 같은 무기력한 삶으로부터 역동적 인간에로의 변신을 우수와 비감 속에 생명 찬가한 작품이다. 이 영화는 내가 가장 좋아하는 쿠로사와의 영화이기도 하다.
홀아비로 불효자식 아들과 며느리와 함께 사는 와타나베(시무라 타카시)는 30년간을 서류더미 속에 파묻혀 산 공무원. 국화빵 찍어내듯이 서류에 도장을 찍으면서 퇴근시간 확인하느라 회중시계를 들여다보는 그의 무표정한 얼굴이 미라의 모습이나 진배없다.
이런 와타나베가 사망선고를 받으면서 비로소 자기가 지난 30년간을 헛살았다는 것을 깨닫는다. 그리고 그는 그 헛것과 함께 다가올 죽음에 대한 갚음으로 동네 아주머니들의 숙원인 아이들을 위한 놀이터 건설에 집념하면서 행동의 인간이 되고 실존적 인물로 변용된다.
그러나 와타나베는 놀이터 건설에 앞서 생전 처음으로 우선 세상환락을 경험한다. 와타나베는 허름한 사케 집에서 만난 2류 작가(이토 유노스케)의 안내로 밤의 유흥가를 섭렵한다. 클럽과 바와 홍등가로 와타나베를 안내하는 작가가 마치 파우스트를 유혹하는 메피스토 같은데 와타나베가 들른 클럽에서 눈물을 흘리면서 부르는 “인생은 짧은 것”을 듣노라면 가슴에 멍울이 생긴다. 이 와타나베의 환락가 구경은 독일 표현주의 영화 기법으로 촬영한 눈부신 부분이다.
이 때까지만 해도 자신의 미래(?)에 대한 확실한 조치를 취하지 못하던 와타나베는 자신의 젊은 부하 여직원 오다기리 토요(오다기리 미키)를 만나면서 비로소 생명력의 원천을 발견하게 된다. 와타나베는 오다기리에게 부탁해 둘이 함께 빠찡꼬장과 아이스스케이트장 그리고 요리 집과 극장엘 다니면서 여인의 젊음을 동경하고 또 희열한다. 그리고 와타나베는 경직된 관료체제에 막혀 손도 채 대지 못했던 놀이터 건설에 집요하게 매달린다.
이렇게 삶의 목표를 찾은 와타나베는 그제야 평소 느끼지 못했던 자연의 아름다움마저 깨닫는다. 와타나베는 어느 날 석양을 바라보면서 “아, 참 아름답구나. 난 30년간 황혼을 보지 못 했어”라고 찬탄한다. 그리고 와타나베는 짧은 6개월의 삶을 충분하고 평화롭게 마감한다. 그가 죽기 얼마 전 눈 내리는 겨울밤 완공이 가까운 놀이터의 그네를 타면서(사진) “인생은 짧은 것”을 부르는 모습에서 후회 없이 만족하게 산 사람의 아름다움이 어둠 속의 촛불같이 빛난다.
‘이키루’는 2부작 형식으로 구성됐다. 전반부는 와타나베의 고리타분한 일상을 그렸고 후반부는 와타나베의 장례식. 장례식의 조문객들이 와타나베의 과거를 회상하면서 그의 변신의 원인을 자기들 마음대로 추측한다. 그리고 술에 취한 구청직원들은 “앞으로 잘 해보자”고 다짐하나 이튿날 출근해서 변한 것은 하나도 없다. 영화는 일본의 고여 있는 관료체제에 대한 강력한 비판이기도 하다.
죽음에 맞선 삶의 긍정에 관한 이 영화는 동양철학이기도 한 어떻게 죽는가 하는 것이 사는 방법을 배우는 길이라는 것을 단순하고 조용하게 말하고 있다. 부정 속의 긍정이라고 하겠다.
이런 와타나베의 변신을 시무라는 감지하기 어렵도록 심오하게 표현한다. 그의 소박하고 꾸밈없는 무표정한 얼굴이야 말로 진짜 사람의 얼굴이다. 시무라는 ‘7인의 사무라이’를 비롯해 쿠로사와의 여러 편의 영화에 나온 쿠로사와의 단골배우다.
‘이키루’가 23일(하오 7시30분) 쿠로사와의 1950년도 베니스영화제 대상 수상작인 ‘라쇼몬’(Rashomon)과 함께 이집션극장(6712 할리웃)에서 상영된다. 한편 ‘이키루’의 블루-레이판이 크라이티리언(Criterion)에 의해 출반됐다.
나는 얼마 전 이 영화를 다시 보면서 이런 생각을 했다. ‘과연 나는 생의 마감 앞에서 와타나베가 될 수 있는가.’  
                                              <한국일보 박흥진 편집위원/ hjpark1230@gma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