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이야기

2015년 9월 21일 월요일

시카리오(Sicario)


케이트(에밀리 블런트)가 마약 루트인 터널 속으로 들어가고 있다.

미-멕시코 마약거래 둘러싼 고급 스릴러


서스펜스와 스릴이 가득한 미 멕시코 간의 마약거래를 둘러싼 스릴러로 처음부터 끝까지 숨을 죽이며 작품 속으로 빨려 들도록 강력한 흡인력을 지녔다. 내용과 연출과 연기 그리고 촬영과 음악과 편집이 모두 훌륭한 튼튼한 구성을 한 지적인 마약스릴러다. 
액션과 감정이 풍부하고 법집행자들의 애매한 도덕성까지 회의하는 지적인 작품인데 액션 스릴러로서도 성공했을 뿐 아니라 주인공들의 인물과 성격 개발도 아주 충실하다. 끔찍하고 폭력적인 장면도 많지만 결코 도를 넘지 않는 강건한 스타일을 지닌 영화인데 플롯이 주도면밀하고 복잡하지만 이해 못할 정도는 아니다. 재미 만점의 강렬한 고급 스릴러다.
특히 배우들의 연기가 볼만한데 그 중에서도 순진한 FBI 요원으로 나오는 영국 배우 에밀리 블런트의 뜨겁게 달아오르는 맹렬하고 매서운 연기가 일품이다. 몸과 마음을 꽉 감아쥔 약간의 접촉에도 튕겨날 것 같은 용수철의 긴장을 보는 것 같은데 새파란 눈이 발산하는 비수 같은 총기가 ‘양들의 침묵’의 조디 포스터를 연상케 한다. 
이 영화도 ‘양들의 침묵’처럼 여자가 주인공으로 그녀의 눈을 통해 얘기가 서술된다. 작품을 비롯해 블런트의 연기가 오스카상 감이라는 말이 나돌고 있다. 감독은 뛰어난 스릴러들인 ‘인센디지’와 ‘죄수들’을 만든 프랑스계 캐나다인 드니 비에뇌부.
애리조나주 광야에 덩그러니 혼자 있는 강력한 멕시칸 드럭범죄 집단 소유의 집을 이상주의자인 케이트 메이서(블런트)를 비롯한 FBI 요원들이 포위해 들어가는 모습을 멀리서부터 찍은 첫 장면부터 긴장감이 감돈다(감독의 사람의 마음을 서서히 교살하는 듯한 긴장감 있는 연출력이 좋다). 요원들은 여기서 벽 뒤에 감춘 수십 구의 사체를 발견하고 곧 이어 외딴 채에서 폭탄이 터진다.
이어 케이트는 샌들을 신은 건달 같은 자칭 국방부 고용계약자라는 맷 그레이버(조쉬 브롤린)가 포함된 미 정부의 부처간 통합된 대마약전담반에 의해 수사요원으로 선발된다. 그러나 케이트는 맷이 CIA 요원이라고 의심한다. 여기에 가담하는 사람이 과묵하고 일촉즉발의 위험성이 느껴지는 전직 멕시코 검사 알레한드로(베네시오 델 토로-제목은 히트맨을 뜻하는 스페인어로 알레한드로가 히트맨인데 그의 연기가 압도적이다). 그런데 알레한드로는 정의 구현보다 개인적 복수에 집념한다.
순진한 케이트가 목적을 위해서는 수단방법을 가리지 않는 이들 범죄조직이나 별 다름없는 조직에 가입하면서 그녀가 생각하던 정의에 대한 관념이 깊은 의문에 빠진다. 이들의 목적은 미국과 멕시코를 들락날락하면서 멕시코 마약조직의 고위 보스를 이용해 이 자의 위에 있는 최고위 보스를 잡아내는 것.
영화에서 숨을 죽이게 만드는 두 장면 중 하나가 미 멕시코 국경검문소 앞에 장사진을 친 차량들의 밀림 속에서의 미국 수사팀과 멕시코 마약밀매단의 대치. 명 촬영감독 로저 디킨스의 화면 구성과 촬영이 강렬한 서스펜스를 조성한다. 이와 함께 조명을 이용하지 않은 마약밀매단의 마약운반 터널 속을 밤에 침투한 장면도 긴장감 있다. R. Lionsgate. 아크라이트, 센추리15, 랜드마크. ★★★★(5개 만점) <한국일보 박흥진 편집위원/ hjpark1230@gmail.com>

블랙 매스(Black Mass)


지미 벌저(자니 뎁)는 파리잡듯 사람을 죽인다.


자니 뎁의 잔인하고 교활한 연기 눈길


1970년대 보스턴 남부의 서민층 동네를 말아먹던 악명 높은 ‘윈터힐 갱’의 두목인 아일랜드계 킬러 갱스터 지미 ‘와이티’ 벌저의 실화로 연기가 좋고 기능적으로도 우수하고 재미도 있지만 보통 갱영화의 범주를 뛰어넘지는 못한다. 피 끓는 열기와 심연 같은 어둠이 존재하는 대신 얘기를 너무 말끔하고 1차원적으로 끌고 가 흥분이 안 된다.
제프 브리지스가 오스카 주연상을 탄 ‘크레이지 하트’를 만든 스카 쿠퍼 감독은 마치 내 영화는 갱영화라기보다 인물과 성격 위주의 드라마라는 듯이 연출하고 있는데 따라서 긴박감이나 스릴이 미약하다. 과거 많이 본 또 하나의 갱영화라는 기시감을 떨쳐버릴 수가 없다.
볼만한 것은 지미 역의 자니 뎁의 꿈에 볼까 겁나는 사악하고 잔인하며 또 뱀 같이 교활한 연기. 오스카상을 노린 연기인 듯 한데 최근 잇달아 흥행에 실패한 오점을 회복시켜 줄 만한 영화로 그의 연기만으로도 가 볼만하다  
영화는 지미를 배반한 그의 측근 졸개들이 경찰에게 지미의 비행을 까발리는 식으로 진행된다. 1975년. 지미는 보스턴 남부를 완전히 장악하고 온갖 범죄를 저지른다. 그러나 동네사람들은 자신들에게 친절하고 또 때론 도와주는 지미를 마치 로빈 후드로 여기고 지미 자신도 그렇게 생각한다.
이런 지미에게 그의 어릴 적 친구로 FBI 요원이 된 존 카널리(조엘 에저튼이 잘 한다)가 찾아와 이탈리안 마피아를 제거하기 위한 밀고자가 되어 달라고 요청한다. 그 대신 FBI가 지미의 범죄행각을 못 본 척하면서 사실 존은 지미의 공범이 되다시피 한다. 지미의 일당과 동네사람들은 똘똘 뭉쳐 서로 간의 충성이 삶의 신조이다시피 한데 존도 이 때문에 더 지미의 범죄를 묵인한다.
제3의 인물로 등장하는 것이 주 상원의원인 지미의 동생 빌리(베네딕 컴버배치). 그러나 형제간의 드라마는 충분히 개발되지 못했다. 범죄왕국의 왕 노릇을 하던 지미(현재 86세)는 결국 자기 졸개들의 배신으로 도주해 15년간을 숨어 살다가 2011년 캘리포니아의 샌타모니카에서 체포돼 현재 옥에서 두 번의 종신형을 살고 있다.   
가운데 머리털이 다 빠진 채로 검은 안경에 점퍼를 입고 썩은 이빨을 보이면서 잔혹하고 뻔뻔한 모습을 과시하는 뎁의 연기가 일품이다. 안경을 벗으면 마치 송장의 죽은 눈동자로 응시하는데 소름 끼친다. R. WB. 전지역. ★★★½(5개 만점).
                                                                <한국일보 박흥진 편집위원/ hjpark1230@gmail.com>


‘오! 캐롤’




‘오! 캐롤 아임 벗 어 풀/달링 아이 러브 유 도우 유 트릿 미 크루얼/유 허트 미 앤드 유 메이크 미 크라이/벗 이프 유 리브 미 아일 슈어리 다이/’
참 옛날이다. 뛰어난 피아노 연주자로 수많은 히트 팝송을 작곡하고 노래 부른 닐 세다카(76·사진)가 1959년에 불러 전 세계적으로 빅히트한 이 노래를 내가 처음 들은 것이 고등학교 1학년 때였다. 그 때 나는 서울 명동에 있던 지하 음악감상실 ‘돌체’를 내 집 드나들다시피 해 감상실의 표를 받는 여자로부터 “이 학생 여기서 개근상을 주어야겠네”라는 칭찬(?)을 받기도 했다.
나는 ‘오! 캐롤’의 가사를 선배 감상실 단골로부터 적어 받아 달달 외워 혼자 흥얼대곤 했는데 이 노래는 당시 동네 꼬마들까지 ‘오! 캐롤 아임 벗 어 풀’하며 노래할 정도로 장안의 인기를 독차지 했었다.
그 때 ‘돌체’에서 들은 또 다른 빅히트곡이 폴 앵카가 부른 ‘다이애나’와 ‘크레이지 러브’다. 그 뒤로 ‘올디즈 벗 구디즈’ 팬이 된 나는 음반으로만 듣던 세다카와 앵카의 노래를 세리토스 공연센터(12700 Center Court Drive)에서 들었는데 그야 말로 감개무량이었다.
세리토스 공연센터는 내가 가장 좋아하는 공연장으로 클래시컬 뮤직에서부터 팝과 연극과 발레를 비롯해 서커스까지 다양한 프로를 공연한다. 핼 홀브룩이 주연하는 연극 ‘세일즈맨의 죽음’도 여기서 봤고 탐 존스와 태미 위넷과 글렌 캠벨 그리고 앤디 윌리엄스와 자니 마티스, 고기 그랜트, 패티 페이지 및 팻 분 등의 노래와 로저 윌리엄스 피아노 연주도 다 여기서 들었다.
내가 세다카의 공연을 관람한 것은 근 20년 전이다. 거의 여자 음성 같은 맑은 고음에 예쁘장하게 생긴 그의 히트송들인 ‘오! 캐롤’ ‘런 샘슨 런’ ‘유 민 에브리싱 투 미’ 및 ‘캘린더 걸’ 등을 들으며 흥에 겨워 박수를 치면서 즐거워했던 기억이 삼삼하다.
‘인 더 바이블, 1,000 이여즈 BC/데어즈 어 스토리 오브 에인션트 히스토리’하면서 시작되는 ‘런 샘슨 런’은 천하의 요부 딜라일라에게 빠진 샘슨에게 그 변장한 악마를 피해 빨리 달아나라고 조언하는 노래다. 이 노래에 비하면 탐 존스는 빅히트곡 ‘딜라일라’에서 배신녀 딜라일라를 칼로 찔러 죽였으니 세다카와 존스는 서로 국적과 생김새와 체구와 창법도 다를 뿐 아니라 요부에 대한 대처 수단도 다르다.
‘캘린더 걸’은 1월부터 12월까지 달력 속에 있는 달콤한 여자들의 사진을 보면서 1년 내내 매일 같이 그들을 사랑한다고 고백하는 경쾌한 노래다. 세다카는 달력의 9월 여자를 보면서는 ‘아이 라이트 더 캔들즈 앳 유어 스윗 식스틴’하며 이 달에 16세가 된 애인의 생일을 축하하고 있다. 나는 이 노래를 들을 때마다 고등학생 때 플레이보이 달력에 스케치로 그린 섹시한 여자들을 탐하던 생각이 난다.            
‘해피 버스데이 스윗 식스틴’은 세다카의 또 다른 히트곡이다. 그는 여기서 ‘해피 버스데이 스윗 식스틴/투나이츠 더 나잇 아이브 웨이티드 포/비커즈 유어 낫 베이비 에니모어’하며 소녀티를 막 벗어난 애인을 찬미하고 있다.
그런데 난 ‘캘린더 걸’이나 ‘해피 버스데이 스윗 식스틴’ 같은 즐거운 노래들보다는 ‘원웨이 티켓’이나 ‘브레이킹 업 이즈 하드 투 두’ 같은 실연과 상심의 노래가 더 좋다. 두 노래 다 애인에게서 버림받은 사내가 속 아프다며 울고 부는 노래들이다.
브루클린에서 태어난 세다카는 9세 때부터 줄리아드에서 피아노를 공부한 귀재로 13세 때 아르투르 루빈스타인에 의해 뉴욕의 클래시컬 뮤직 방송쇼 연주자로 선택될 만큼 실력이 훌륭했으나 팝에 강렬한 매력을 느껴 클래시컬 뮤직을 포기했다.
그가 먼저 팝송 작곡가로 대뜸 이름을 날리게 된 곡이 줄리아드 장학생 시절인 18세 때 카니 프랜시스를 위해 쓴 ‘스튜피드 큐피드’다. 역시 프랜시스가 나오고 노래도 부른 영화 ‘웨어 더 보이즈 아’의 주제가도 세다카가 작곡했다. 세다카는 프랜시스 외에도 다른 많은 팝가수들을 위해서 작곡을 했는데 탐 존스의 ‘퍼핏 맨’과 시내트라의 ‘더 헝그리 이여즈’ 및 캡튼 앤 터닐의 그래미상 수상작 ‘러브 윌 킵 어스 투게더’ 등이 그 대표곡들이다.
세다카가 처음 직접 불러 히트한 노래들은 1959년에 나온 ‘다이어리’와 ‘아이 고 에이프’ 및 ‘오! 캐롤’ 등인데 그의 음반은 이 때부터 생애 가장 인기가 높았던 1960년대 초까지 무려 2,500만여장이나 팔렸다. 세다카는 1963년부터 가수로서의 인기가 느슨해지자 작곡에만 전념하다가 1970년대 초 엘튼 존의 도움을 받아 출반한 두 음반 ‘세다카즈 백’과 ‘더 헝그리 이여즈’가 빅히트를 하면서 재기에 성공, 지금까지 60여년 간을 노래하며 살고 있다.
7순 중반의 나이에도 꾸준히 순회공연을 하고 있는 세다카가 오는 20일 하오 3시 세리토스 공연센터(562-467-8818)에서 노래 부른다. 나도 20년 만에 그를 다시 만나 ‘오! 캐롤’을 들으면서 추억과 동무를 하려고 내려갈 예정이다. 그동안 나도 늙었지만 세다카도 이젠 많이 늙었겠다.    
                                                <한국일보 박흥진 편집위원/ hjpark1230@gmail.com>

2015년 9월 15일 화요일

귀래(Coming Home)


루(왼쪽)는 자기를 기억 못하는 아내의 기억을 되살리기 위해 갖은 방법을 쓴다.


공리, 사랑과 상실의 깊은 슬픔 절절히…


두 사람 모두의 데뷔작인 ‘홍고량’으로부터 시작해 ‘홍등’ 등 여러 편의 영화를 함께 만든 장이모 감독과 그의 연인이었고 뮤즈인 연기파이자 감각적인 스타 공리가 다시 손잡고 만든 사랑과 상실과 그리움에 관한 멜로드라마다.
문화혁명과 그로 인한 비극 그리고 그런 과거와의 화해라는 정치적 색채도 지닌 영화인데 기억상실증의 남편(로널드 콜만)의 기억을 되살리려고 애쓰는 부인(그리어 가슨)의 아름다운 드라마인 ‘마음의 행로’(Random Harvest)의 거꾸로 판이라고 하겠다.
배우들의 뛰어난 연기와 아름답고 가슴을 도려내는 듯한 슬픈 내용 그리고 인물 개발과 촬영 등이 모두 좋은 변치 않는 사랑의 영화로 특히 공리가 거의 자기를 감추는 듯한 착 가라앉은 연기를 뛰어나게 한다. 
문화혁명의 혼란스런 말기 아름답고 헌신적인 아내 펭(공리)과 발레리나가 꿈인 딸 단단(신인 장 후이웬)과 살던 지식인 루(첸 다오밍)는 당에 찍혀 강제노동 수용소로 보내진다. 루는 수용소 탈출을 시도했다가 붙잡힌 뒤 사상교육 끝에 근 20년 만에 풀려난다.
이 긴 기간 펭은 변치 않는 가슴으로 남편이 돌아올 날만을 기다리면서 돌아올 남편을 맞기 위해 종종 기차역에 나가 기다린다. 한편 단단은 당에 의해 세뇌교육을 받은 뒤 지식인인 자기 아버지에 대해 반감을 갖는다.
그런데 루가 돌아와 보니 펭은 육체적 정신적으로 큰 타격을 입고 기억상실증자가 돼 자기를 알아보질 못한다. 그러나 펭은 기억만 못할 뿐이지 정신적으로는 이상이 없다. 
펭은 어떻게 해서든지 남편에 대한 기억을 간직하려고 남편이 쓴 편지를 뒤적이고 계속해 기차역에 나가 남편을 기다린다. 그리고 단단은 발레리나의 꿈을 빼앗긴 채 공장의 근로자로 일한다. 
루는 아내가 전연 자기를 못 알아보자 그녀의 기억을 되살리려고 여러 가지 수단을 쓰나 백약이 무효. 그래서 루는 펭과 가까이 있기 위해 그녀의 집 근처에 거처를 마련하고 친절한 타인으로서 아내에게 접근한다. 루가 이렇게 친절한 이웃으로서 펭에게 접근하는 모습이 심금을 울린다.
마지막 기차역에서의 장면은 목이 막히고 가슴이 메어질 듯이 슬픈데 장이모는 이런 슬픔을 아주 상냥하고 또 아름답게 처리해 눈물을 흘리게 된다. 첸 다오밍의 조용하면서도 힘이 있는 연기가 훌륭하고 장 후이웬도 잘 하나 공리의 포착하기 힘들 정도로 민감하고 깊이 있는 연기가 감탄스럽다. 감정적으로 모질게 매질을 당하는 것 같은 사랑의 이야기다. 
PG-13. 로열극장(11523 샌타모니카) 310-478-3836. ★★★½(5개 만점)
                                                         <한국일보 박흥진 편집위원/ hjpark1230@gmail.com>

울프 토템(Wolf Totem)


첸젠은 늑대새끼를 몰래 애완용으로 키운다.


인간과 동물의 충돌… 공존…


동물과 인간관계를 그린 ‘베어즈’(곰)와 ‘두 형제’(호랑이)에서 자연대 문명 그리고 동물로부터 배우는 인간의 드라마를 연출한 프랑스의 장-자크 아노 감독이 이번에는 늑대와 인간의 관계를 그린 서사극으로 보기엔 좋은데 깊이나 감정적 충격이 약하다.
프랑스-중국 합작 입체영화로 장엄하고 아름다운 자연과 몇 차례의 심장을 뛰게 만드는 액션이 있는 자연환경에 관한 다소 설교적인 작품인데 좋은 소재가 1차원적으로 다뤄졌다. 훈련을 받은 늑대의 사람 뺨칠 연기와 컴퓨터 특수효과 및 음악(제임스 호너)과 찬탄을 금치 못할 촬영 등 볼 것이 적지 않지만 인물들의 성격개발은 아주 미약하다. 좀 더 추진력이 있고 도전적이었어야 했다.
1989년 6월의 학생운동으로 3년간 옥살이를 한 루 지아민이 문화혁명 절정기인 1967년 내몽고로 이주해 11년간 유목민과 함께 산 경험을 쓴 베스트셀러가 원작이다.
베이징의 젊은 지식들인 첸 젠(윌리엄 펭 샤오펭)과 양 케(션 도우-이 역은 저개발된 것이다)는 내몽고의 유목민들의 삶을 향상시킨다는 뜻으로 그들과 살기 위해 자원해 초원에 도착한다. 당이 이들을 하방시킨 데는 앞으로 있을 한족들의 이주를 위한 사전 터 닦기의 일환이기도 하다.
첸은 아들 바타르와 며느리 바오 슌구위 그리고 어린 손자와 사는 유목민 족장 빌릭(바센 자부)의 집에 기거하면서 빌릭으로부터 초원을 배회하는 늑대들의 행동과 자연 생태계의 균형을 배운다. 그리고 첸은 어느 날 혼자 말을 타고 계곡으로 들어갔다가 늑대들에게 포위당한다. 이 경험 이후 첸은 늑대에 대해 깊은 관심을 갖게 된다.
한편 당이 유목민들에게 인민군용 말들을 키울 것을 지시하면서 바타르는 말들을 늑대들로부터 보호하기 위해 늑대사냥에 나선다. 이 사냥에 함께 나간 첸은 늑대 새끼를 구출해 몰래 키운다. 
영화에서 경탄을 금치 못할 장면은 밤에 눈 덮인 초원을 질주하며 도주하는 말들을 공격하는 늑대들의 속도감 있는 추격. 눈부신 촬영이다. 이와 함께 이주해 온 한족들이 초원을 불태우면서 먹을 것을 잃게 된 늑대들이 높은 울타리 속의 양떼들을 습격하는 장면도 장관이다.
그러나 이런 몇 가지의 흥분되는 장면에도 불구하고 영화는 인간사회와 동물왕국 간의 마찰을 무덤덤하게 다뤄 마치 디즈니의 동물왕국을 보는 것 같다. 아쉬움이 큰 영화이나 볼만은 하다  중국어에 영어자막. PG-13 일부지역. ★★★(5개 만점)
                                                         <한국일보 박흥진 편집위원/ hjpark1230@gmail.com>

‘베테랑’토론토에 가다




북미 최대의 국제영화제요 권위 있는 세계 영화제의 하나인 제40회 토론토 국제영화제(TIFF)가 오는 10일부터 20일까지 캐나다의 토론토에서 열린다. TIFF는 가을과 연말시즌 흥행을 위한 상업적으로도 중요한 영화제일 뿐 아니라 오스카상을 노리는 영화들이 대거 상영돼 어떤 영화가 여기서 주목을 받는가 하는 점이 주요 관심사가 되고 있다.
작년에 이 영화제서 첫 선을 보인 ‘모든 것의 이론’(The Theory of Everything)의 에디 레드메인과 ‘스틸 앨리스’(Still Alice)의 줄리안 모어가 각기 오스카 남녀주연상을 탄 바 있다.
TIFF가 할리웃 영화들과 오스카상을 노린 작품들에 초점을 맞추고 있는 것이 사실이긴 하나 영화제는 프로그램의 많은 부분을 아시아영화에 할애하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그 일례로 TIFF의 프로그램 중 하나인 ‘도시에서 도시로’(City to City)의 대상 도시로 작년에 선정된 도시가 서울이었다. 이 프로그램을 통해 부지영 감독의 ‘카트’(Cart) 등 총 8편의 한국영화가 상영됐었다.
올 해 TIFF에 선을 보일 한국영화는 액션영화를 잘 만드는 류승완 감독의 ‘베테랑’(Veteran 사진)과 세계적인 예술영화 감독 홍상수의 17번째 영화 ‘지금은 맞고 그때는 틀리다’(Right Now, Wrong Then) 및 제66회 칸영화제서 단편영화 대상을 탄 ‘세이프’(Safe)의 각본을 쓴 권오강의 감독 데뷔작 ‘돌연변이’(Collective Invention) 등 3편.
황정민과 유아인이 나오는 ‘베테랑’은 트럭 운전사의 의문의 죽음을 수사하는 고참 형사(황정민)와 오만하고 잔인한 재벌 상속자의 대결을 다룬 얘기로 한국에서 1,000만 관객이 관람, 역대 흥행사상 10위를 차지한 영화다. 제작비 불과 340만달러를 들여 지금까지 총 7,400만달러를 번 이 영화는 오는 18일부터 LA의 코리아타운의 CGV 극장에서 상영한다.
‘베테랑’은 TIFF의 ‘뱅가드’ 부문에 출품돼 북미 최초로 상영되는데 TIFF의 프로그래머 지오반나 훌비는 “‘베테랑’은 독특한 카메라 기술과 어리석은 농담이 있는 류 감독 특유의 영화로 재미 만점”이라고 칭찬했다. 훌비는 이어 “한국의 명장 류승완은 이 영화에서 그의 빅히트 액션영화 ‘부당거래’에서 보여준 권력층의 부패한 세력결집에 관한 어두운 탐구에 뻔뻔한 유머를 잘 배합시켰다”고 덧붙였다.
홍상수 감독의 영화는 과거 TIFF에서 8편이나 상영된 바 있다. ‘매스터즈’ 부문에 소개되면서 북미 최초로 상영되는 ‘지금은 맞고 그때는 틀리다’는 지난 8월에 열린 스위스의 로카르노 국제영화제서 대상인 황금표범상과 함께 출연한 정재영이 남우주연상을 탄 작품이다.  
홍상수 특유의 소주 마시면서 대화 나누는 미니멀리스트 영화로 관계에 관한 드라메디인데 이 것 역시 홍 감독의 특유의 서술형태인 같은 상황이 각기 주인공들인 남자와 여자의 입장으로 전개된다.
영화감독 함춘수(정재영)는 실수로 하루 먼저 특강 차 수원에 내려갔다가 화가 윤희정(김민희)을 만난다. 둘은 윤의 작업실에 가 그림을 구경하고 저녁에는 회에다 소주를 마시며 대화를 나눈다. 이렇게 가까워진 둘은 이어 다른 카페로 옮겨 술을 더 마신다.
그러나 윤희정은 함춘수가 마지못해 자신이 기혼자임을 밝히자 그에게 실망한다. 이런 만남과 헤어짐의 얘기가 남녀의 입장에서 변용을 이루면서 반복된다. 이 영화는 한국에서 오는 24일에 개봉되고 25일부터 열리는 뉴욕영화제(NYFF)에서도 선을 보인다.
훌비 프로그래머는 이 영화에 대해 “영화감독과 화가의 운명적 만남에 대한 2개의 변용인 이 영화는 영화적 경험을 풍부케 해주는 것으로 홍 감독의 전 영화들과 유사하면사도 놀랍게도 다르다”고 평했다.
‘베테랑’과 함께 ‘뱅가드’ 부문에 출품돼 세계 최초로 상영되는 ‘돌연변이’는 훌비에 의해 사회적 문화적인 통상 관념에 도전하는 혁신적인 영화로 꼽혀 선정됐다. 젊은 실직자(이광수)가 제약회사의 신약제조 실험대상이 되었다가 부작용으로 서서히 물고기로 변하면서 일약 한국의 수퍼스타로 변신한다. 그러나 그는 갑자기 유명인사가 된 것 만큼이나 급속히 몰락하고 만다.
훌비는 “이 영화는 포복절도할 사회풍자로 대중문화의 변덕스런 동향을 탐구한 매우 독창적인 데뷔작”이라면서 “권오강은 앞으로 한국 영화계가 눈 여겨 봐야 할 재능인”이라고 칭찬했다.
제40회 TIFF 개막작은 장-마크 발레가 감독하고 제이크 질렌할과 네이오미 와츠가 공연하는 드라마 ‘파괴’(Demolition)이고 폐막작은 파코 카베자스가 감독하고 샘 록크웰과 앤나 캔드릭이 나오는 액션 코미디 로맨스영화 ‘미스터 라이트’(Mr. Right)이다.
나도 토론토에 가 영화도 보고 파티에도 참석할 예정이나 맷 데이먼, 자니 뎁, 에디 레드메인, 네이오미 와츠, 줄리안 모어 및 리들리 스캇 등 자그마치 모두 29명의 배우와 감독을 인터뷰할 생각을 하니 가기 전부터 피곤이 몰려 온다.                            
                                                      <한국일보 박흥진 편집위원/ hjpark1230@gmail.com>

2015년 9월 4일 금요일

‘미스터 홈즈’ 이안 홈즈




“죽음도 삶의 한 얼굴… 피할 대화소재 아냐”


  많은 배우들이 셜록 홈즈 연기했지만 93세역은 처음
  동성결혼 합헌판결 환영하지만 난 결혼할 생각 없어


현재 상영 중인‘미스터 홈즈’(Mr. Holmes)에서 시골에 은퇴해 어린 아들을 둔 가정부(로라 린니)의 돌봄을 받으면서 살면서 쇠약해가는 기억에 시달리며 자신의 과거를 정리하는 9순의 명탐정 셜록 홈즈로 나온 영국의 무대와 스크린의 베테런 배우 이안 홈즈 경(76)과의 인터뷰가 최근 포시즌스 호텔에서 있었다. 잿빛 머리에 머플러를 목에 감은 인자한 노신사 모습의 홈즈는 시종일관 미소를 지으며 노래까지 불러가면서 인터뷰를 즐겼는데 그러면서도 대답은 아주 신중하고 조심스럽게 했다. 장난 끼 짙은 소년 같으면서도 그는 지혜롭고 날카로운 통찰력을 지녔는데 자신의 동성애에 대해서도 솔직하게 말했다. 다정하고 인자한 인상과 언사 그리고 태도에 고개가 절로 숙여졌다. 홈즈는‘해리 포터’ 시리즈의 도사 갠달프로 아이들에게도 잘 알려져 있다.    

-왜 셜록 홈즈는 세월과 무관하게 인기가 있다고 보는가.
“미스터리를 푸는 탐정은 늘 인기가 있게 마련이다. 우리에겐 숨겨진 것들을 볼 수 있는 사람의 안내를 받으며 여행을 한다는 것은 즐거운 일이다. 그러나 그를 표현한 많은 배우들이 아니었더라면 그의 명성은 그다지 빛나지 못했을 것이다. 홈즈의 또 다른 매력은 그가 상당히 어두운 사람이라는 것이다. 그는 결코 행복한 사람이 아니며 비록 총명하나 내면적으로는 보통 사람들처럼 연약한 사람이다. 내게 역이 주어졌을 때 난 ‘아이구 맙소사. 내 전에 홈즈를 연기한 사람이 무수히 많은데 또 필요하단 말인가’하고 걱정했다. 그러나 이 영화는 그가 93세라는 점이 매력적이었다. 그렇게 늙은 홈즈는 누구도 안 했기 때문에 괜찮겠다고 생각했다.”

-홈즈는 기억력 상실에 고민하는데 당신의 기억력은 얼마나 분명한가.
“옛날과 달리 요즘에 기억이 필요한 사람들은 대사를 외워야 하는 배우들뿐인 것 같다. 배우가 대사를 기억 못하면 그의 인생은 끝이다. 난 그런 문제는 없다. 과거에는 대사 외우기가 연기의 가장 쉬운 것이었는데 이젠 그렇지 못하다. 내 나이가 되면 주위에 알츠하이머병을 앓는 사람을 많이 보게 되는데 그저 그렇게 안 되기를 빌 뿐이다. 달리 묘안이 없지 않은가. 

-이 영화는 죽음에 관한 영화이기도 한데 당신은 가끔 죽음의 얼굴을 들여다보며 그렇다면 거기서 무엇을 보는가.
“촤근에 죽음의 침상에 누운 친구를 방문했고 또 다른 가까운 친구의 죽음도 봤다. 가슴이 아프다. 죽음의 얼굴은 삶의 한 사실이라고 생각한다. 죽음에 관한 존 돈의 시 ‘종은 모든 죽음 하나 하나를 위해 울린다. 누구를 위하여 종은 울리나를 알려고 하지 말라. 그것은 너를 위하여 울리니 모든 사람의 죽음은 너 자신의 죽음이다’가 생각난다. 그것은 피할 수 없는 것이다. 따라서 죽음에 대한 얘기를 회피할 필요가 없다. 그 같은 대화는 건전한 것이다. 그것은 매일의 가치를 깨닫게 만든다. 30, 40, 50대에는 죽음에 대해 생각하지 않지만 70대가 되면 생각하지 않을 수가 없다.”

-얼마 전에 연방 대법원이 동성결혼에 대해 합헌판결을 내렸는데 그에 대해 당신의 의견은.
“과거에는 군대에도 갈 필요가 없고 또 결혼도 할 필요가 없어 동성애자라는 것에 감사했다. 결혼하고 싶은 사람들은 하라고 해라. 난 그들을 축복하겠다. 이번 판결은 모두가 평등하다는 아주 좋은 것이나 난 결혼할 생각이 없다.”

-당신은 훌륭한 탐정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하는가.
셜록 홈즈는 쇠퇴홰 가는 기억력을 되살려가며 과거를 정리한다.
“아니다. 내가 학교에 다닐 때 반장을 했는데 우리 반의 누군가가 남의 차를 파괴한 일이 있었다. 그 때 내게 사건의 당사자를 찾아내라는 임무가 주어졌었다. 내가 맨 처음에 인터뷰한 아이는 차 주인의 아들로 난 즉시 그 아이가 무죄라고 판단을 내렸다. 그런데 그 아이가 바로 당사자였다. 셜록 홈즈 같았으면 금방 알아냈을 것이다. 난 너무 순진하다. 나는 남의 말을 그대로 믿는다. 난 거짓말을 파악하는데 아주 서툴다.”

-당신은 ‘신들과 괴물들’ 그리고 이 영화와 막 촬영을 끝낸 뮤지컬 ‘미녀와 야수’ 3편에서 다 빌 콘돈 감독과 일했는데 그 경험에 대해 말해 달라.
“‘신들과 괴물들’ 이후 그와 나는 절친한 사이가 됐다. 이 영화를 마친 뒤 그가 내게 ‘당신 디즈니의 뮤지컬에 나올 생각이 없느냐’고 물어 오케이 했다. 우린 아주 친한 사이로 빌을 안 좋아할 사람은 없을 것이다. 그는 아주 겸손한 사람이다. 약간 말을 더듬어 더 매력적이다. 그리고 아주 진지하다. 그래서 그의 영화에 나오는 배우들은 모두 훌륭한 연기를 할 수밖에 없다. 그의 영화들은 큰돈을 벌지는 못해도 좋은 연기들로 가득 차 있다. 그것이 훌륭한 감독의 일이다.”

-‘미녀와 야수’에서 노래를 부르는가.
“부른다. 나는 영화에서 시계 칵스워스로 나오는데 ‘내 이름은 칵스워스, 나는 시계다 틱 톡 틱 톡”하고 노래 부른다. 그랬더니 작곡자인 알란 멘켄이 웃고 고개를 끄덕이면서 엄지손가락을 들어 올리더라. 영화는 대규모의 걸작이 될 것을 확신한다. 오드라 맥도널드, 이완 맥그레고, 스탠리 투치, 엠마 탐슨, 에밀리 왓슨 등 초호화 캐스팅으로 영국의 쉐퍼튼 스튜디오에서 찍었다. 빌 콘돈은 작은 것에서부터 큰 것에 이르기까지 완벽히 그려낼 수 있는 감독이다.“

-일이 당신의 전 생애인가 아니면 다른 것에도 관심이 있는가.
“기본적으로는 일이 내 삶으로 그것은 내가 제일 잘하는 것이다. 다른 것도 하려고 노력한다. 좋은 친구와 이웃이 되려고 하지만 내가 제일 잘 하는 것은 역시 연기다. 난 처음부터 좋은 배우는 아니었지만 이젠 그렇다고 보겠다. 점점 더 나아지고 있는데 나는 그 점을 즐긴다. 완벽한 의자를 만들려고 노력하는 목수와도 같다. 힘들지만 가치 있는 일이다. 특히 영화를 만드는 기쁨은 서로를 ‘달링’이라며 부르면서 일할 수 있는 배우 친구들과 일한다는 점이다. 연기가 내 생애의 전부는 아니지만 그것은 내 삶의 매우 중요한 부분이다.”

-로버트 다우니 주니어가 나오는 신판 셜록 홈즈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가. 그의 홈즈는 머리 대신 주먹을 휘두르는 액션 탐정이라고 보는데.  
“로버트에게 내가 그의 영화들을 안 봤다는 말 전하지 말기를 바란다. 따라서 영화에 대해 말 할 수는 없지만 당신의 말에 일리가 있다. 그러나 난 로버트 식의 해석에 반대하진 않는다. 하고 싶은 대로 만들라고 내버려둬라. 원작은 언제나 제 자리에 있으니까 걱정할 필요 없다. 원작을 마음대로 해석한다고 해서 그것을 파괴한다고 볼 수는 없다. 오히려 무언가를 원작에 보탠다고 볼 수도 있다.”

-로라 린니와 일한 경험은 어땠는가.
“로라 린니는 메릴 스트립과 같은 수준에 있는 배우다. 헌신적이며 안팎으로 아름다운 사람이다. 그녀는 또 철저히 직업적이며 주도면밀한 기술자다. 마음을 열어 놓는 사람이어서 함께 일 하기가 아주 쉽다. 정말 사랑스런 사람이다.”

-이성과 가졌던 아름다운 추억이라도 있는가.
“내가 9세 때 웬디라는 소녀와 사랑의 편지를 서로 교환했었다. 연애편지 쓸 때의 기쁨과 기다리는 편지가 안 올 때 느끼는 고통이 지금도 생생하다. 그런데 얼마 전 런던의 한 극장에서 연극을 보려고 로비에 서 있는데 한 작은 노파가 내게 다가오더니 ‘헬로 이안 내가 웬디야’라고 소개를 하더라. 이에 난 처음엔 ‘당신은 웬디가 아니야’라고 말했으나 그것이 사실임을 확인하고 어떻게 지내느냐고 물었더니 ‘난 할머니가 됐어’라고 대답했다. 난 이어 ‘우린 정말 서로 잘 지냈지’ 하고 물었더니 웬디는 ‘그럼’이라고 말했다. 난 편지 생각이 나서 내 회고록 쓸 때 이용하려고 웬디에게 편지를 가지고 있느냐고 물었더니 결혼하는 날 아침에 불태웠다고 답하더라. 그것이 내가 이성과 가진 로맨틱한 경험이다.”               

-직업배우가 되겠다고 결심한 순간이 언제인가.
“난 대학생 때 연극을 많이 봤다. 나는 많은 대학 연극에 나오면서도 직업배우가 되기엔 역부족이라고 생각했다. 존 길거드와 로렌스 올리비에가 연기하는 것을 보면서 나도 저렇게 할 수가 있다고 생각할 수가 없었다. 그런데 대학생 때 연극 ‘헨리 4세 제2부’에 나오면서 전국지에서 격찬을 받았다. 그 날 밤 내가 기쁨과 당황감에 사로잡혀 대학 극장에 들어서자 친구들이 ‘넌 이제 에이전트가 필요해’라고 말했다. 그 때가 바로 내가 배우가 되기로 결심한 순간이었다. 그 전에는 난 그저 남의 연기를 보고 매료돼 어떻게 하면 나도 저렇게 할 수 있을까 하고 고심했을 뿐이다.

-대학서 무엇을 공부했는가.
“케임브리지서 영문학을 전공했는데 21편의 연극에 나오는 바람에 학점은 엉망이었다.”
                                                            <한국일보 박흥진 편집위원/ hjpark1230@gma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