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이야기

2015년 7월 13일 월요일

매직 마이크 XXL (Magic Mike XXL)


마이크(오른쪽서 두 번째)와 ‘킹스 오브 탬파’팀이 춤을 추고 있다.

몸짱 남성들이 펼치는 로드무비


스티븐 소더버그(그는 이번에는 촬영과 편집만 맡았다)가 감독하고 매튜 매코너헤이와 채닝 테이텀이 나온 남성 스트리퍼들의 우정과 춤에 대한 열정을 그린 히트작 ‘매직 마이크’의 속편으로 얘기가 지극히 빈약해 도무지 드라마의 재미를 못 느끼겠다.
그냥 신체 건강한 남자들이 몸 자랑하면서 철딱서니 없는 애들처럼 장난하는 영화로 잘 생기고 육체미 좋은 남자들을 볼모로 여성 팬들에게 관람을 구걸하는 영화다. 그런데 사실 이 영화는 여성을 비하하고 모독하고 있다.
주인공들의 몸처럼 무지막지할 정도로 내용과 서술방식이 서툰데 그럴 줄 알았는지 전편에서 달라스로 나온 매튜 매코너헤이는 속편에 안 나온다. 천박한 영화로 보고 있자니 몸이 찌뿌드드해 질 정도로 지루하다.          
전편에서 친구들과 함께 스트리퍼 팀 ‘킹스 오브 탬파’를 만들어 빅 히트를 했으나 은퇴한 마이크(테이텀-이 영화는 실제로 댄서였던 그의 경험을 참고했다)는 애인과도 헤어지고 시작한 가구제조업도 잘 안 돼 실의에 빠져 있다. 그리고 옛 친구들과의 액션과 모험 또 춤에 대한 정열이 그리워 몸살이 날 지경이다.
친구들은 켄(맷 보머)과 빅 딕 리치(조 만자니엘로)와 타잔(케빈 내쉬)과 티토(애담 로드리게스) 그리고 팀의 MC인 토비아스(가브리엘 이글레시아스). 이들은 팀을 해체하기로 결정하고 해체 전 마지막으로 사우스캐롤라이나주의 머틀비치에서 열리는 남성 스트리퍼 챔피언전에 나가기로 한다. 그리고 여기에 마이크를 초청한다.
그래서 이들이 탬파에서부터 머틀비치까지 가는 로드무비로 가다가 여차여차해 잭슨빌과 사반나에 들르면서 과거의 지인과 관계를 새로 하고 또 새 사람들과 만난다. 팀이 가다가 들르는 곳은 마이크의 애인이었던 롬(제이다 핑켓 스미스-윌 스미스의 아내)이 경영하는 흑인여성 전용 남성 스트리퍼 클럽과 빅 딕 리치가 탬파에서 만났던 젊은 여자의 사반나에 있는 집.
그런데 팀이 사반나의 집에 들어서니 젊은 여자의 중년의 어머니 낸시(앤디 맥다월이 어쩌자고 이 지경인가)와 그녀의 친구 4명이 포도주를 마시면서 시간을 죽이다가 신체 건강한 남자들을 보고 너무 좋아 어쩔 줄을 모른다. 이들은 다 혼자 사는 여성들로 남자의 몸이 갈급해 몸을 비비 꼰다. 이어 팀은 목적지에 도착해 발가벗다시피 한 몸으로 원맨쇼를 과시한다. 그레고리 제이캅스 감독. R. WB. 전지역. ★★½(5개 만점)
                                                               <한국일보 박흥진 편집위원/ hjpark1230@gmail.com>

‘매드 맥스: 분노의 도로’ 샬리즈 테론




“남자보다 강한‘진짜 여자’보여주려 했죠”


넉달간 매일 14시간 촬영 배우생활 20년간 가장 힘들어
속편 위한 속편이 아닌 바른 이유 있는 속편엔 출연할 것


황폐화한 미래 세상에서 벌어지는 액션 모험영화 ‘매드 맥스: 분노의 도로’에서 흉악한 독재자의 생식을 위한 젊은 여자 노예들을 대형 트럭에 숨긴 채 이상향을 향해 도주하는 여전사 퓨리오사로 나온 샬리즈 테론(39)과의 인터뷰가 할리웃에 있는 사이렌 스튜디오에서 있었다. 이 영화는 멜 깁슨 주연으로 1979년에 개봉된‘매드 맥스’의 제4편 격으로 감독은 제1편을 만든 호주의 조지 밀러가 다시 맡았다. 주인공은 매드 맥스(탐 하디)라기보다 왼 팔이 금속 팔인 퓨리오사라고 해야 옳다. 따라서 여권신장의 영화이기도 하다. 뒤로 딴 금발에 하이힐을 신은 장신을 짧은 스커트로 더욱 강조한 테론은 얼음처럼 차가운 미를 뽐냈는데 자세가 아주 당당했다. 처음에는 다소 긴장한 듯이 뻣뻣한 태도를 보였으나 시간이 가면서 제스처와 함께 몸을 흔들면서 농담까지 섞어 질문에 차분하게 대답했다.  

- 당신은 첫 차는 무엇이었나.
“1980년제 갈색 닷선이다. 난 운전하기를 좋아하지만 신제품이나 멋진 차보다는 편한 차를 몰고 다닌다.”    
     
- 일을 안 할 때는 어디서 무엇을 하는가.
“난 여러 다른 것들을 좋아한다. 사막과 해변을 좋아하고 산과 정글도 좋아한다. 등짐을 지고 하이킹과 산길을 따라 걷는 것도 좋아한다. 여러 곳을 찾아가 탐험하기를 좋아한다.”

- 이 영화는 정신적으로나 육체적으로나 강력한 여자를 찬양하고 있는데 그것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가.
“조지 밀러는 현 세상이 어떻게 돌아가고 있는지를 잘 알고 있다. 그리고 영화는 세상 종말 후의 얘기지만 사실 우리의 현재 얘기라고 해도 좋다. 조지는 여자들은 어려운 환경과 재앙 속에서 남자만큼 잘 견뎌내지 못한다는 통념을 이 영화로 지워버렸다. 난 영화에서 사회적으로 쓸모없는 여자로 나오지만 결국 장한 여자임이 드러난다. 조지는 그런 나를 통해 어느 것이 진짜 여자인지를 보여주려고 했다고 본다.”

- 퓨리오사 역을 하면서 무슨 생각을 했는가.
“조지는 영화를 매우 통렬한 것으로 만들고자 했다. 아울러 그는 영화를 몰고 가는 동력을 감정에 두고자 했다. 따라서 우린 대사를 별로 많이 필요로 하지 않았다. 이 영화에 감정이 없었다면 단순한 자동차 추격영화로 끝나고 말았을 것이다. 그래서 나는 퓨리오사를 단순히 여전사로만 표현하지 않으려고 애썼다. 감정적으로 갈등을 겪는 살아 있는 여자로 만들려고 노력했다.”

- 부모와의 관계는 어떠한가.
“우리 가족은 어머니날이나 아버지날 또는 생일과 같은 어느 하루에 특별히 가깝게 지낸다는 것은 일년의 나머지 날들은 소홀히 하는 것이나 마찬가지라는 생활철학을 가지고 있다. 물론 그 날들도 지켜야겠지만 어머니는 내가 자랄 때 내게 매일이 다 귀중하다는 것을 가르쳐 주셨다.”

- 퓨리오사는 여자 모세라고 봐도 좋겠는데 그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지.
“일리가 있다. 퓨리오사가 하는 일을 보면 모세의 행동과 일맥상통하는 점이 있다.”

- 왜 퓨리오사는 목숨을 내걸고 핍박 받는 젊은 여자들을 구한다고 생각하는가.
“나는 그것이 퓨리오사가 자신을 구하고자 하는 행동이라고 생각한다. 세상 종말 후의 지구는 지극히 혹독한 지경으로 생존만이 중요한데 그런 환경에서 자신을 돌본다는 일은 참으로 잔혹한 일이다. 내가 맥스와 퓨리오사를 좋아하는 이유는 그들은 그 누구도 상관 않고 자기의 생존법칙에만 따라 행동하는 이단적인 전사들이라는 점 때문이다.”

- 당신은 남아프리카공화국 태생으로 그 곳에선 여자들이 강하고 그들이 생활의 근본이라고 아는데 그 점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가.
“우리는 삶에 있어 유연성을 지니고 스스로 모든 일을 하도록 배우며 자랐다. 그러나 때론 가족이나 친구들이 자신들이 남에 의해 필요한 사람들이라고 느끼게 하는 것도 중요하다고 본다. 난 한 동안 이것에 대해 달가워하지 않았는데 이젠 그것을 즐길 줄 알게 됐다.”

- 당신의 유머감각에 대해 말해 달라.
“나 아주 이상한 유머감각을 갖고 있다. 긴장을 하면 터무니없는 소리를 하고 크게 후회를 하곤 한다. 몇 주 전에 오바마 대통령을 만났을 때도 그랬는데 대통령에게 너무나 터무니없는 소리를 해 이 기회를 통해 사과를 하는 바이다. 그러나 내가 무슨 말을 했는지는 밝힐 수가 없다.”
왼팔이 금속 팔인 퓨리오사가 총을 들고 적과 맞서고 있다.

- 당신은 퓨리오사가 쉽게 남을 믿으려 하지 않는 사람이라고 말했는데 실제로는 어떤가. 
“아까도 말했지만 남아공에선 어렸을 때부터 자립하고 독립하도록 교육을 받아 나도 남의 도움을 요구하지 않는 편이다. 누군가에게 도움을 요청하려면 우선 그 사람을 믿어야 한다. 타인에 대한 진정한 믿음이란 자신을 완전히 무방비상태로 두었을 때에서야 가능하다. 그런데 그런 것이 내겐 자연스럽지가 못하다. 그래서 난 요즘 그런 나를 고쳐 보려고 노력중이다.”

- 아이의 어머니로서 당신은 인류의 미래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가.
“일단 아이를 갖게 되면 책임감이 강해진다. 난 내 아이에게 이 세상을 보다 나은 곳으로 남겨주고 싶다. 자식은 부모에게 삶의 추진력과 영감을 고취시켜 준다. 내 아이는 내가 하고 있는 에이즈퇴치 운동에 큰 활력소가 되고 있다.”

- 당신은 곧 40세가 되는데 느낌이 어떤가.
“기분 좋다. 여자들이 40세가 되면 피부의 탄력성을 비롯해 잃어버리는 것들만 생각하고 얻는 것은 생각하지를 않는다. 나이를 먹으면서 보다 차분한 이해력을 갖게 되고 아울러 자신을 보다 잘 이해하게 됐다. 20대엔 느껴보지 못한 자신에 대한 편안함을 감지하게 되더라. 건강하게 살아 있다는 것에 감사할 뿐이다.” 

- 이 영화 속편에 안 나오겠다고 했다는데 사실인가.
“그것은 과장된 보도다. 난 단지 속편을 위한 속편이 아니라 바른 이유가 있어야 나오겠다고 말했을 뿐이다.”

- 션 펜이 당신에게 주는 기쁨에 대해 말해줄 수가 있는가.
“션이 나를 사랑하게 된 이유는 내가 삶을 사랑하고 행복하며 또 충족된 인생을 살고 있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나는 우리가 서로의 삶을 보다 나은 것으로 만들어주고 있어 션을 사랑하고 또 그와의 관계를 사랑한다. 그렇다고 우리가 서로 상대방의 공허를 메워주고 있는 것은 아니다. 우리는 둘 다 아주 건전한 사람으로 둘이 함께 아주 멋있는 삶을 누리고 있다. 이 나이에 아름다운 아들의 어머니가 되고 그리고 내 인생의 사랑을 만나고 또 영화를 만들 수 있는 나는 참으로 운이 좋은 사람이다.”

- 맡은 역을 위해 신체단련을 얼마나 했는가.
“영화의 스틸을 보고나서야 내 목이 풋볼선수의 것처럼 굵어졌다는 것을 알았다. 팔 굽혔다 펴기와 역기를 들었는데 따라서 상체는 튼튼해진 반면 하체는 게을리해 꼭 포파이처럼 몸이 변했다. 신체훈련과 영화촬영 모두가 너무나 힘들었다. 130여일간을 매일 14시간씩 촬영을 했는데 매일 힘을 유지하기 위해 45분간 훈련을 받았다. 배우생활 20여년간 이렇게 힘들어 보긴 처음이다. 특히 무게가 10파운드가 넘는 금속 팔을 영화 내내 목과 어깨와 몸에 달고 액션을 하느라 기진맥진 했었다.”           

- 퓨리오사는 수퍼우먼이라고 보는데 수퍼우먼 영화에 나올 생각이 있는지.
“난 퓨리오사가 수퍼우먼이라고 보질 않는다. 난 그런 아이들 영화에는 관심이 없고 의사 역이 하고 싶다.”

- 탐 하디와 육박전을 벌이는 장면은 얼마나 힘들었나.
“그는 인정사정없더라. 그 앞에선 결코 약골이 될 수가 없었다. 매우 힘들었는데 스턴트 책임자의 도움을 많이 받았다.”

- 당신이 하고 있는 자선사업에 관해 말해 달라.
“아프리카와 아시아에서의 에이즈 예방이다. 그 곳에 사는 아이들이 사춘기가 돼 첫 성경험을 할 경우 50%가 에이즈균에 감염될 수 있다는 사실은 끔찍한 일이다. 그들을 돕기 위해선 국제적으로 보다 많은 시간과 에너지와 자금이 필요하다. 유엔도 이같은 사실을 마침내 인식하고 올해부터 우릴 적극적으로 돕기로 했다. 특히 위험한 것은 15~22세 여자들이다. 우리의 계몽과 노력으로 아프리카 지역에서는 모유를 통해 아기가 에이즈균에 감염되는 경우가 거의 없어졌다.”    
                                                            <한국일보 박흥진 편집위원/ hjpark1230@gmail.com>

‘킬러즈’


어네스트 헤밍웨이가 1927년에 쓴 살벌할 정도로 직설적인 단편소설 ‘킬러즈’(The Killers)는 삶을 포기한 남자가 묵묵히 체념적으로 죽음을 맞는 운명적인 이야기다. 이 소설은 도대체 왜 이 사나이가 자기를 죽이러 온 살인자들을 환영하다시피 맞았는지를 캐어 들어가는 연역법적인 내용이다.      
이 글을 더욱 유명하게 만든 것이 독일서 나치를 피해 미국으로 이주한 로버트 시오드마크 감독의 동명영화(1946)다. 살인과 강도와 남자를 유혹해 죽음으로 유인하는 여자의 이야기로 필름 느와르의 장르를 정립해준 작품이다. 잔뜩 잡아당긴 활시위처럼 간장감이 팽팽하고 거칠면서도 시적인 감수성을 지닌 멋있는 영화다.
영화는 당시 무명씨였던 곡마단 곡예사 출신의 버트 랭카스터(32)의 스크린 데뷔작으로 그는 여기서 실존주의적 짐승과도 같은 역량을 과시, 대뜸 스타가 되었다. 랭카스터는 이 암담한 분위기의 영화에서 내면에 잠복한 힘을 지닌 어두운 남성미를 보여주는데 신선할 정도로 아름다운 모습이다. 
랭카스터는 헤밍웨이의 팬으로 그의 소설은 다 읽어 더욱 주인공 스위드의 내면 연기를 묵직하면서도 차분하게 해낼 수 있었다고 후에 술회했다. 둘 다 터프 가이의 이미지를 지녔던 헤밍웨이와 랭카스터가 화면에서 호흡을 함께 한 작품이라고 하겠다.
두 킬러가 간이식당에서 스위드의 숙소를 묻는 빛과 그림자의 대조가 강렬한 첫 장면부터 보는 사람을 영화 안으로 깊이 잡아끈다. 후에 ‘벤-허’의 음악을 작곡한 헝가리 출신의 미클로스 로자의 음악이 시종일관 운명을 재촉하는데 싸구려 호텔방에 드러누워 있던 스위드는 체념한 상태로 방문을 박차고 들어온 킬러들의 총알을 빗발처럼 맞으며 숨진다.
여기서 이야기는 스위드의 생명보험 금액을 지불해야 하는 보험회사 수사관(에드몬드 오브라이언)이 스위드의 과거의 삶을 재구성하면서 과거로 돌아간다. 전직 권투선수였던 스위드는 손을 다쳐 링에서 일찍 은퇴한 뒤 범죄세계 속에 발을 디디면서 현금수송차 강탈에 참여한다. 그를 범행 속으로 끌고 들어가는 치명적인 여자(femme fatale)가 범죄단 두목의 요염한 정부 키티(에이바 가드너).
스위드는 검은 긴 머리를 늘어뜨리고 담배연기를 자욱이 내뿜으면서 피아노 반주에 맞춰 허스키한 음성으로 ‘사랑을 더욱 알게 될수록’(The More I Know of Love)이라는 노래를 부르는 키티를 보고 첫 눈에 마음을 빼앗긴다(사진). 키티는 스위드에게 현금수송차를 턴 뒤 현금을 챙겨 둘이 함께 먼 곳으로 튀자고 제의, 봉 같은 남자는 요부의 간계에 넘어간다. 그러나 돈과 보석에 눈이 먼 키티는 스위드를 배신하는데 결국 악인들은 다 지옥으로 간다.   
이 영화는 그 때까지 섹스 심벌로만 알려졌던 가드너가 처음으로 극적인 역을 맡아 연기력을 과시한 작품이기도 하다. 매우 육감적인 작품으로 각본은 모두 감독인 리처드 브룩스와 존 휴스턴이 썼으나 크레딧에는 앤소니 베일러가 올랐다.
‘킬러즈’는 1964년 단 시겔 감독(그는 원래 1946년도 영화의 감독으로 선정됐었으나 계약문제로 불발됐다)에 의해 새디스틱한 총천연색 영화로 리메이크 됐다. 두 영화는 20년의 사회변화를 뚜렷이 반영하듯 완전히 다른 모습인데 모든 면에서 흑백판이 낫지만 신판도 속도감 있고 날카롭고 흥미 있다.
당초 이 영화는 NBC-TV에 의해 네트웍 사상 최초의 TV 영화로 제작됐으나 매우 폭력적인 데다가 케네디 암살 이후여서 극장용으로 나왔다. 나는 이 영화를 중앙극장에서 봤는데 리 마빈, 존 캐사베티즈, 로널드 레이건 및 앤지 디킨슨 등 호화 캐스팅과 긴장감 있고 빠른 진행 그리고 음모와 배신과 죽음의 얘기가 화려한 신파극 못지않아 재미있게 봤던 기억이 난다.
영화는 전직 자동차 경주선수 자니를 총으로 살해한 찰리(마빈)와 그의 동료 킬러 리(클루 구래거)가 태연히 죽음을 맞은 자니의 태도가 궁금해 그 까닭을 캐들어 가면서 자니의 과거를 재구성하는 식으로 진행된다. 신판은 레이건의 할리웃과의 고별작품으로 그가 냉정한 범죄단 두목이라는 최초의 악역을 맡은 영화다. 그런데 레이건은 후에 악역을 맡은 것에 대해 후회했다고 하는데 영화 개봉 2년 후 가주 지사로 당선됐다. 
레이건은 범죄 후 도주용 운전사로 쓰려고 자니(캐사베티즈)를 유혹해 범죄에 끌어들이는 요부 쉴라(디킨슨)의 남편 잭으로 나오는데 디킨슨은 자기 혼자 살아남으려다가 레이건에게 귀싸대기를 얻어맞는다. 레이건은 끝에 자기가 고용한 킬러 찰리의 총알을 맞고 황천으로 간다.
마빈의 위풍당당한 자태와 냉소적인 대사가 일품인데 총에 맞아 피를 흘리며 죽어가는 그가 잭을 총으로 쏴 죽인 뒤 “살려 달라”고 애걸하는 쉴라에게 내뱉는 “숙녀씨, 나 시간 없어요”라는 대사가 기차게 멋있다. 크라이티리언(Criterion)이 두 영화를 함께 묶은 Blu-ray와 DVD를 출시했다.       
                                                         <한국일보 박흥진 편집위원/ hjpark1230@gmail.com>



두 번 죽은 사나이



영국 작가 그래엄 그린이 각본을 쓰고 영국 감독 캐롤 리드가 연출한 범죄와 우정과 배신의 드라마 ‘제3의 사나이’(The Third Man·1949)는 모든 것이 완벽한 불길한 분위기의 필름느와르다. 수수께끼 같고 유령과도 같은 주인공 사나이 해리 라임과 비엔나 지하 하수구 안에서의 음습하고 드러매틱한 도주와 추격, 사람의 마음을 불안하게 만드는 명암을 뚜렷이 이용한 삐딱한 각도의 흑백촬영 및 부추기듯 몰아대다가 때로 비탄조로 숨을 죽이는 지터음악 등이 절대적 조화를 이룬 빼어난 영화다. 
흥미진진한 내용과 플롯과 화면의 완벽한 구성과 멋있는 연기 그리고 인물들만큼이나 중요한 전쟁의 상처가 그대로 남아 있는 전후 비엔나의 모습(6.25 후의 서울이 생각난다)과 함께 영화의 수면 아래에 잠겨 있는 못 이룰 사랑이 있는 작품으로 한 번을 보나 열 번을 보나 감탄을 금치 못하게 하는 명화다.
나는 최근에 이 영화의 각본을 읽었는데 냉소적인 대사가 많은 글이 마치 하드보일드 형사소설처럼 간결 명확하면서도 강건하다. 어둡고 운명적인 로맨틱한 분위기가 작품의 때인 으스스하고 흐린 2월의 날씨처럼 몸 안으로 스며드는 영화는 캐롤 리드의 해설로 시작된다. 이와 함께 안톤 카라스가 작곡하고 연주하는 지터음악이 마치 이야기의 등을 떠밀듯이 맹렬하게 현을 뜯는다.
‘오클라호마 키드’와 ‘샌타페의 외로운 기수’ 같은 싸구려 웨스턴 소설작가로 무일푼의 술꾼이요 백수건달 스타일의 할리 마틴스(조셉 카튼)가 죽마고우인 해리 라임(오손 웰스-해리는 그린이 알고 지내던 영국인 소련 첩자 킴 필비를 모델로 했다-사진)의 초청을 받고 비엔나에 도착한다. 비엔나는 전승국들인 미·영·불 및 소련이 4개 지구로 분할해 관리하고 있다. 
할리는 도착 당일 해리의 아파트 관리인으로부터 해리가 며칠 전 교통사고로 사망했는데 오늘이 장례일이라는 말을 듣고 장례식이 열리는 중앙묘지로 간다. 그는 여기서 모자를 쓰고 코트를 입은 해리의 애인으로 신비감이 감도는 체코 태생의 연극배우 안나(알리다 발리)의 옆모습을 훔쳐본다.           
그리고 할리는 역시 장례식에 온 영국군 경찰 캘로웨이 소령(트레버 하워드)으로부터 해리가 군수물자 암거래상으로 희석한 페니실린을 팔아 이를 사용한 병든 아이들이 죽거나 불구가 되게 한 사악한 범죄자라고 알려준다. 이에 할리는 친구의 누명을 벗기기로 결심하고 해리의 사고사를 파 들어가다가 교통사고 직후 쓰러진 해리를 옮긴 세 명의 남자 중 신원이 불분명한 제3의 사나이가 누구인지를 찾아내기 위해 생전 해리를 알던 사람들을 일일이 찾아 심문한다.
그 중의 한 사람이 안나로 할리는 안나와의 만남을 이어가면서 서서히 그녀를 사랑하게 된다. 이 영화는 필름느와르의 특징 중 하나인 그늘진 사랑의 흔적이 역연한데 가망 없는 사랑을 막연한 그리움의 눈길과 텅 빈 얼굴 표정으로 표현하는 할리의 측은한 러브스토리라고 해도 되겠다. 결국 할리는 악에 대한 응징과 함께 안나에 대한 사랑 때문에 친구를 배신한다.
영화의 주인공인 해리는 영화가 시작된 지 1시간 후에야 나타난다. 모자를 쓴 채 두꺼운 외투의 깃을 올리고 장난기 있는 음모자의 미소를 띠며 남의 집 문간에 불쑥 나타난 해리를 빛과 어두움을 교차해 가며 찍은 촬영이 아찔하다.
영화사에 길이 남을 클라이맥스는 비엔나의 지하 미로 같은 하수구에서 벌어지는 연합군 경찰과 해리 간의 쫓고 쫓기는 긴박한 추격전. 첨벙첨벙 소리를 내면서 하수를 밟고 뛰어 달아나는 해리의 실물보다 훨씬 큰 그림자와 땀 흘리듯 물이 흘러내리는 하수구 벽을 급작하게 비추는 플래시라이트 그리고 무거운 코트를 입은 채 이리 뛰고 저리 뛰어 도주하는 해리의 불안한 눈동자와 안면근육 및 맨홀 뚜껑을 필사적으로 들어 올리려는 해리의 손가락 등을 찍은 로버트 크래스커의 표현주의적 촬영은 조명을 신의 솜씨로 다룬 시각적 경이다. 그는 이 영화로 오스카상을 탔다. 그런데 비엔나에서는 현재 이 영화를 본 딴 ‘제3의 사나이’ 하수구 관광이 인기라고 한다. 
영화의 라스트 신은 영화사상 가장 멋 있고 아름다운 장면이다. 두 번 죽은 사나이 해리의 두 번째 장례 후 수레에 기대 선 할리를 본 척도 안 하고 나신의 떡갈나무가 길 양옆으로 늘어선 중앙묘지의 길을 안나가 말없이 무표정한 얼굴로 뚜벅뚜벅 걸어 지나 간다. 카메라가 안나를 멀리서부터 가까이까지 따라가면서 찍은 이 장면은 우수가 가득히 배인 로맨틱한 라스트 신이다.  원래 그린이 쓴 각본의 마지막은 할리와 안나가 결합되는 해피 엔딩이었으나 영화의 미국측 제작자인 데이빗 O. 셀즈닉이 우겨 행복과 거리가 멀게 고쳤다. 그런데 중앙 묘지에는 해리와 함께 베토벤과 브람스와 슈베르트도 묻혀 있다.
나더러 무인도에 표류할 경우 영화 딱 한 편을 가지고 간다면 어느 것을 고르겠냐고 물으면 서슴없이 ‘제3의 사나이’를 고르겠다. ‘제3의 사나이’가 웰스의 출생(5월6일) 100주년을 기념해 4K로 복원돼 9일 까지 뉴아트극장(11272 샌타모니카)에서 상영된다. (310-473-8530) 
                                          <한국일보 박흥진 편집위원/ hjpark1230@gmail.com>



2015년 6월 29일 월요일

테드 2 (Ted 2)


테드(왼쪽)와 잔이 공원에서 테드의 인간화에 관해 논의 중이다.

“나 인간 맞단말야”저질 장난감의 생떼


입 걸고 상스럽고 음란하고 또 나오는 말마다 욕설인 살아 있는 장난감 곰 테드의 천방지축형 터무니없는 속편 코미디다. 대마초를 태우고 맥주를 병나발 불면서 F자 상소리를 계속해 내뱉는 성욕이 넘쳐흐르는 이 장난감 곰이 나온 전편 ‘테드’(2012)는 R등급 영화사상 최고의 흥행수입을 냈다.  
전편과 마찬가지로 감독과 각본 그리고 테드의 음성연기는 코미디언 세스 맥팔레인이, 테드의 인간 친구로는 역시 마크 왈버그가 나온다. 장난감 곰이 인간처럼 말하고 느끼는 전편은 귀를 씻어야 할 정도로 음담과 상소리가 심했지만 그런대로 순진하고 귀여웠다. 
그러나 속편은 전편만큼 아이디어가 참신하지 못하다. 테드가 정식으로 인간이라는 법정 판결을 받겠다고 소송을 벌이는 얘기가 무리가 심했다. 그리고 상스러운 면에서 전편을 능가해야겠다는 강박관념에 매달려 욕설과 음란한 제스처가 난무하는데 때론 구역질이 나도록 더럽다. 테드가 완전히 순수를 상실한 영화다. 그러나 흥행이 잘될 것이다.
영화는 유명 영화배우이자 연극배우인 패트릭 스튜어트의 아름다운 바리톤 음성의 해설로 진행된다. 장소는 보스턴. 마켓 캐시어인 테드가 역시 같은 마켓에서 일하는 육체파 태미-린(제시카 바스)과 결혼하는 장면으로 시작된다. 전편에서 결혼한 테드의 친구 잔(왈버그)은 이혼했다. 그런데 테드와 태미-린은 결혼생활 1년 만에 권태기에 빠져 저녁마다 상소리와 함께 기물을 파괴하면서 싸운다.
둘은 마켓의 다른 종업원의 권고에 따라 관계의 회복을 위해 아기를 낳기로 한다. 그러나 테드가 생식능력이 없는 만큼(그런데도 어쩌자고 태미-린이 테드와 결혼했는지 알다가도 모를 일) 남의 정자를 빌려 인공수정으로 아기를 낳기로 작정한다. 그리고 테드와 잔은 왕년의 인기만화 ‘플래시 고든’의 주인공 샘 J. 존스와 수퍼보울 우승 풋볼팀 뉴잉글랜드 패트리어츠의 쿼터백 탐 브레이디를 찾아가 정자를 빌려달라고 했다가 혼쭐이 난다. 한편 이와 함께 태미-린이 산부인과 의사로부터 과거의 문란한 약물남용으로 인해 자궁이 완전히 결딴 나 임신이 불가능하다는 선언을 받는다.        
영화에는 J. 존스와 브레이디 외에도 유명 연예인들이 캐미오로 나온다. 제이 레노가 화장실 동성애자로 리암 니슨이 과대망상에 시달리는 마켓 손님으로 그리고 데니스 헤이스버트가 산부인과 의사로 각기 나온다.
그래서 테드와 태미-린은 이번에는 아기를 입양하기로 한다. 그런데 이 과정에서 매서추세츠주가 테드가 인간이 아니고 물건이라고 공식 선언을 하면서 테드는 아기 입양은커녕 태미-린과의 결혼도 무효가 되고 또 직장에서도 쫓겨난다. 
이에 뿔이 난 테드는 주를 상대로 자신이 인간임을 밝힐 소송을 하기로 하고 잔에게 도움을 요청한다. 잔이 고용한 변호사는 이제 대학을 막 나온 예쁜 새만사 L. 잭슨(애만다 사이프리드)인데 새만사 역시 대마초를 즐겨 피운다. 
그러나 소송에서 테드가 지면서 이번에는 테드와 잔과 새만사가 함께 뉴욕에 있는 전설적인 민권변호사 패트릭(모간 프리맨)을 찾아가 변호를 부탁하나 과거 테드가 잔과 함께 저지른  온갖 방종한 생활 때문에 거절당한다. 
이 와중에 잔이 한 가지 얻은 것은 새만사와의 로맨스.  낙심한 테드와 잔 간에 갈등이 생기면서 테드는 잔과 새만사를 버리고 뉴욕 시내를 방황하다가 마침 열리고 있는 만화 주인공들의 박람회인 카미칸 전시장에 들어선다. 그리고 여기서 나태하고 무의미한 액션이 일어나는데 이 부분은 순전히 상영시간을 꿰어 맞추려는 지연작전에 지나지 않는다. 
R. Universal. 전지역. ★★★(5개 만점)  <한국일보 박흥진 편집위원/ hjpark1230@gmail.com>


옛날 옛적 서부에 (Once Upon a Time in the West·1968)


기차역에 내린 찰스 브론슨과 3인의 건맨이 마주보고 서 있다.


역대 서부영화 최고의 걸작 중 하나


‘황야의 무법자’를 만든 이탈리아의 명장 세르지오 레오네가 미 서부에 바치는 헌사로 서정적이며 센티멘털하고 또 터프한 대하서사 웨스턴이다. 헨리 폰다가 보기 드물게 검은 모자에 검은 옷과 구두를 신은 악한으로 나와 마지막에 복수심에 불타는 과묵한 찰스 브론슨의 총에 맞아 죽는다. 
이 영화는 첫 장면이 기막히게 멋있다. 허허 벌판에 달랑 서 있는 기차역에 내리는 수수께끼의 사나이의 브론슨과 그를 처치하려고 역에서 기다리는 3인의 악당을 카메라가 가물가물하게 롱샷으로 찍은 다음 갑자기 4인의 얼굴을 극대적으로 클로스업해 보여준다.
대형 시네마스코프 화면을 가득히 점령한 브론슨의 가느다랗게 뜬 두 눈이 마치 산사자의 그 것처럼 매섭다. 이 때 흐르는 엔니오 모리코네가 작곡한 하모니카가 주도하는 비감하고 다소 진혼곡과도 같은 음악이 황량한 서부의 무드를 향수감 짙은 음으로 스크린에 채색한다. 폰다와 브론슨 외에도 클라우디아 카르디나레와 제인슨 로바즈가 공연하는 165분짜리 걸작이다. 이 영화로 브론슨은 미국을 벗어나 유럽에서도 탑스타의 자리에 오르게 된다.    
서부의 허구의 땅 플랙스톤과 인근의 유일한 수원지가 있는 스윗워터를 무대로 벌어지는 철도 건설과 땅을 둘러싼 갈등 그리고 복수심에 불타는 정체불명의 건맨의 얘기로 폰다는 프랭크라는 이름으로 철도 건설업자 모턴의 고용된 킬러로 나온다. 프랭크가 수원지가 있는 땅을 소유한 브렛을 사살한 직후 뉴올리언스의 전직 창녀로 브렛의 신부인 질(카르디나레)이 마을에 도착해 남편의 땅을 관리한다.
프랭크와 그의 일당 그리고 모턴과 그의 졸개들간에 음모와 배신에 말려들어 살육이 벌어지고 이 난장판에 끼어드는 것이 강도 샤이엔(로바즈). 여기에 무명씨로 하모니카를 부는 브론슨이 나타나는데 이 하모니카 때문에 샤이엔은 무명씨 건맨을 ‘하모니카’라고 명명한다.
그런데 하모니카는 처음에 질의 땅을 차지하려는 프랭크를 돕는데 그가 이 킬러를 돕는 데는 이유가 있다. 프랭크는 옛날에 ‘하모니카’의 동생의 죽음에 책임이 있는 자로 ‘하모니카’는 오랜 세월 뒤 프랭크에게 복수하기 위해 나타난 것. 마침내 프랭크와 ‘하모니카’ 간에 필사의 대결이 벌어지는데 이 때 마주 선 둘을 놓고 카메라가 회전촬영을 한다. 그리고 프랭크는 ‘하모니카’에게 “도대체 너는 누구냐”고 물으나 ‘하모니카’는 묵묵부답. 총성이 나고 쓰러진 프랭크의 입에 ‘하모니카’가 하모니카를 물린다. 
역대 서부영화 중 최고 걸작품의 하나로 새 프린트로 28일부터 7월4일까지 뉴베벌리 시네마(7165 베벌리 블러버드·323-938-4038)에서 상영한다.  ★★★★½(5개만점)
                                                              <한국일보 박흥진 편집위원/ hjpark1230@gmail.com>


주말의 엘리베이터




6월 초 로마를 찾았던 2명의 수녀가 사흘간이나 정전된 엘리베이터에 갇혔다가 구출된 사건이 있었다. 각기 58세와 68세인 아일랜드와 뉴질랜드 출신의 두 수녀는 지난 5일 바티칸 근처의 한 수녀원 기숙사 4층에서 엘리베이터에 타고 아래로 내려가던 중 정전이 발생, 층과 층 사이에 갇히고 말았다.
공교롭게도 사고 당시가 금요일 오후여서 기숙사에는 두 수녀 외에 아무도 없었고 휴대폰도 기숙사 방에 두고 와 구조를 청할 길이 없었다고 한다. 설상가상으로 사고가 난 주말 로마는 무더운 여름 날씨로 기온과 습도가 높아 두 수녀는 좁은 엘리베이터 안에서 더위 및 어둠의 공포와 싸워야 했다. 두 수녀는 심한 갈증과 탈수증을 이겨내기 위해 자신들의 소변을 마시면서 폐쇄된 공간에서 사투를 벌인 것으로 밝혀졌다.
이들이 발견된 것은 사고 후 사흘이 지난 월요일(8일) 오전으로 여성 청소부에 의해서였다. 구출된 두 수녀를 돌본 의사는 “살아 있는 것이 기적”이라고 말했다고 한다. 두 수녀가 믿는 성모 마리아가 그들을 구해줬을 것이다.
나는 이 뉴스를 읽으면서 실제 사고를 똑 닮은 프랑스 영화가 생각이나 혀를 찼다. 24세의 루이 말르가 감독으로 데뷔한 필름느와르 스타일의 흑백 치정 살인극 ‘사형대의 엘리베이터’(Elevator to the Gallows·1957)이다.
콱 씹으면 짙은 초컬릿 맛이 날 것 같은 나태한 모습의 잔느 모로와 모리스 로네(‘태양은 가득히’)가 공연하는 이 영화는 누벨 바그의 기초가 된 것으로 특히 영화에서 이미지와 음악의 관계를 독특하고 완벽하게 새로 정립한 작품으로 평가 받고 있다.
음악은 마침 영화촬영 당시 파리를 방문 중이던 미국의 재즈 트럼피터 마일스 데이비스가 말르의 부탁을 받고 즉흥적으로 작곡했다. 한 재즈 평론가는 마일스의 음악을 듣고 “당신이 들을 수 있는 가장 고독한 트럼핏 소리이니 듣고 울어라”고 찬양했다.
여름철 파리. 흐린 토요일 오후 7시. 공중전화 부스 안의 모로의 감은 두 눈을 화면 가득히 클로스업하던 카메라가 서서히 모로의 헤픈 듯 두툼한 입술을 핥고 내려가면서 모로의 심한 안개처럼 가라앉은 음성이 들린다. “나는 더 이상 못 참겠어요. 주 템므(사랑해요). 해야 해요. 난 당신을 안 떠날 거예요. 쥘리앙.” 이 때 트럼핏 소리가 비가조로 흐르면서 불길하고 로맨틱한 영화의 분위기를 전조한다.
나는 이 영화를 어렸을 때 보면서 단숨에 모로에게 빠져 들었었다. 컬을 한 금발에 하이힐을 신은 그녀가 투피스 상의의 깃을 올린 채 정부 쥘리앙을 찾아 밤새 비 오는 샹젤리제 거리를 마치 유령처럼 헤매는 모습을 보면서 나는 저런 여자를 갖기 위해서 살인마저 저지르는 쥘리앙의 심정을 이해할 것 같았다.
모로는 피곤해 보여 더욱 유혹적이다. 그늘진 얼굴, 미소 잃은 눈동자, 양끝이 아래로 처진 농염한 윗입술 그리고 약간 거슬리는 듯한 나른한 음성. 그녀는 마치 세상을 다 산 여자처럼 나태해 보여 보는 남자를 녹작지근하게 만든다. 권태와 피로가 선정적이라는 것을 느끼게 해주는 여자로 얼굴 안에 연기가 담겨 있는 배우다.
어두운 분위기와 심리적 깊이를 지닌 영화는 모로를 세계적 스타로 만들어준 작품으로 그녀는 후에 말르의 애인이 됐다. 플로랑스(모로)는 공중전화로 쥘리앙에게 군수품 제조회사 사장인 나이 먹은 남편 시몽을 죽이라고 조른다. 시몽의 부하직원으로 알제리와 인도차이나에서 싸운 외인부대 출신인 쥘리앙은 밧줄을 타고 자기 사무실 위층에 있는 사장실에 침입, 권총으로 시몽을 살해한다. 이 때 창밖으로 검은 고양이가 지나간다.
이어 쥘리앙이 회사 앞에 세워둔 신형 컨버터블에 타 시동을 걸고 둘의 단골카페에서 자기를 기다리는 플로랑스에게 가려는 순간 자기 사무실 창밖에 걸린 밧줄이 눈에 띈다. 쥘리앙이 밧줄을 회수하려고 다시 회사 건물로 들어가 엘리베이터에 타고 올라가는 순간 경비원이 건물의 전원을 끄고 퇴근한다. 꼼짝 없이 엘리베이터에 갇힌 쥘리앙(사진.)
이 때부터 쥘리앙이 엘리베이터에서 탈출하려고 안간힘을 쓰는 긴장감 가득한 장면과 약속장소에 나타나지 않은 쥘리앙을 찾아 텅 빈 파리 시내를 밤새 헤매고 다니는 플로랑스의 허탈한 모습이 교차된다. 트럼핏 소리가 연무처럼 무드를 뿜어내는 가운데 앙리 드카에가 찍은 거의 안 보일 정도로 어두운 파리의 밤이 몽환적이다.  
매우 절제된 영화로 플로랑스의 하이힐 발자국 소리와 경찰차의 사이렌 소리 같은 실제 음을 빼고 영화는 거의 침묵 속에 진행된다. 이 침묵을 깨고 플로랑스가 자기 내면의 언어를 독백으로 토해 낸다. “밤새 미친 여자처럼 찾아 다녔어요. 발이 차가워요”라며 자신의 피로와 절망감을 고백한다. 쥘리앙은 로마의 두 수녀처럼 월요일 아침이 돼서야 엘리베이터에서 빠져 나오나 악인은 지옥으로 간다. 주말 엘리베이터 조심하세요!
                                                          <한국일보 박흥진 편집위원/ hjpark1230@gma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