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이야기

2015년 6월 29일 월요일

옛날 옛적 서부에 (Once Upon a Time in the West·1968)


기차역에 내린 찰스 브론슨과 3인의 건맨이 마주보고 서 있다.


역대 서부영화 최고의 걸작 중 하나


‘황야의 무법자’를 만든 이탈리아의 명장 세르지오 레오네가 미 서부에 바치는 헌사로 서정적이며 센티멘털하고 또 터프한 대하서사 웨스턴이다. 헨리 폰다가 보기 드물게 검은 모자에 검은 옷과 구두를 신은 악한으로 나와 마지막에 복수심에 불타는 과묵한 찰스 브론슨의 총에 맞아 죽는다. 
이 영화는 첫 장면이 기막히게 멋있다. 허허 벌판에 달랑 서 있는 기차역에 내리는 수수께끼의 사나이의 브론슨과 그를 처치하려고 역에서 기다리는 3인의 악당을 카메라가 가물가물하게 롱샷으로 찍은 다음 갑자기 4인의 얼굴을 극대적으로 클로스업해 보여준다.
대형 시네마스코프 화면을 가득히 점령한 브론슨의 가느다랗게 뜬 두 눈이 마치 산사자의 그 것처럼 매섭다. 이 때 흐르는 엔니오 모리코네가 작곡한 하모니카가 주도하는 비감하고 다소 진혼곡과도 같은 음악이 황량한 서부의 무드를 향수감 짙은 음으로 스크린에 채색한다. 폰다와 브론슨 외에도 클라우디아 카르디나레와 제인슨 로바즈가 공연하는 165분짜리 걸작이다. 이 영화로 브론슨은 미국을 벗어나 유럽에서도 탑스타의 자리에 오르게 된다.    
서부의 허구의 땅 플랙스톤과 인근의 유일한 수원지가 있는 스윗워터를 무대로 벌어지는 철도 건설과 땅을 둘러싼 갈등 그리고 복수심에 불타는 정체불명의 건맨의 얘기로 폰다는 프랭크라는 이름으로 철도 건설업자 모턴의 고용된 킬러로 나온다. 프랭크가 수원지가 있는 땅을 소유한 브렛을 사살한 직후 뉴올리언스의 전직 창녀로 브렛의 신부인 질(카르디나레)이 마을에 도착해 남편의 땅을 관리한다.
프랭크와 그의 일당 그리고 모턴과 그의 졸개들간에 음모와 배신에 말려들어 살육이 벌어지고 이 난장판에 끼어드는 것이 강도 샤이엔(로바즈). 여기에 무명씨로 하모니카를 부는 브론슨이 나타나는데 이 하모니카 때문에 샤이엔은 무명씨 건맨을 ‘하모니카’라고 명명한다.
그런데 하모니카는 처음에 질의 땅을 차지하려는 프랭크를 돕는데 그가 이 킬러를 돕는 데는 이유가 있다. 프랭크는 옛날에 ‘하모니카’의 동생의 죽음에 책임이 있는 자로 ‘하모니카’는 오랜 세월 뒤 프랭크에게 복수하기 위해 나타난 것. 마침내 프랭크와 ‘하모니카’ 간에 필사의 대결이 벌어지는데 이 때 마주 선 둘을 놓고 카메라가 회전촬영을 한다. 그리고 프랭크는 ‘하모니카’에게 “도대체 너는 누구냐”고 물으나 ‘하모니카’는 묵묵부답. 총성이 나고 쓰러진 프랭크의 입에 ‘하모니카’가 하모니카를 물린다. 
역대 서부영화 중 최고 걸작품의 하나로 새 프린트로 28일부터 7월4일까지 뉴베벌리 시네마(7165 베벌리 블러버드·323-938-4038)에서 상영한다.  ★★★★½(5개만점)
                                                              <한국일보 박흥진 편집위원/ hjpark1230@gmail.com>


주말의 엘리베이터




6월 초 로마를 찾았던 2명의 수녀가 사흘간이나 정전된 엘리베이터에 갇혔다가 구출된 사건이 있었다. 각기 58세와 68세인 아일랜드와 뉴질랜드 출신의 두 수녀는 지난 5일 바티칸 근처의 한 수녀원 기숙사 4층에서 엘리베이터에 타고 아래로 내려가던 중 정전이 발생, 층과 층 사이에 갇히고 말았다.
공교롭게도 사고 당시가 금요일 오후여서 기숙사에는 두 수녀 외에 아무도 없었고 휴대폰도 기숙사 방에 두고 와 구조를 청할 길이 없었다고 한다. 설상가상으로 사고가 난 주말 로마는 무더운 여름 날씨로 기온과 습도가 높아 두 수녀는 좁은 엘리베이터 안에서 더위 및 어둠의 공포와 싸워야 했다. 두 수녀는 심한 갈증과 탈수증을 이겨내기 위해 자신들의 소변을 마시면서 폐쇄된 공간에서 사투를 벌인 것으로 밝혀졌다.
이들이 발견된 것은 사고 후 사흘이 지난 월요일(8일) 오전으로 여성 청소부에 의해서였다. 구출된 두 수녀를 돌본 의사는 “살아 있는 것이 기적”이라고 말했다고 한다. 두 수녀가 믿는 성모 마리아가 그들을 구해줬을 것이다.
나는 이 뉴스를 읽으면서 실제 사고를 똑 닮은 프랑스 영화가 생각이나 혀를 찼다. 24세의 루이 말르가 감독으로 데뷔한 필름느와르 스타일의 흑백 치정 살인극 ‘사형대의 엘리베이터’(Elevator to the Gallows·1957)이다.
콱 씹으면 짙은 초컬릿 맛이 날 것 같은 나태한 모습의 잔느 모로와 모리스 로네(‘태양은 가득히’)가 공연하는 이 영화는 누벨 바그의 기초가 된 것으로 특히 영화에서 이미지와 음악의 관계를 독특하고 완벽하게 새로 정립한 작품으로 평가 받고 있다.
음악은 마침 영화촬영 당시 파리를 방문 중이던 미국의 재즈 트럼피터 마일스 데이비스가 말르의 부탁을 받고 즉흥적으로 작곡했다. 한 재즈 평론가는 마일스의 음악을 듣고 “당신이 들을 수 있는 가장 고독한 트럼핏 소리이니 듣고 울어라”고 찬양했다.
여름철 파리. 흐린 토요일 오후 7시. 공중전화 부스 안의 모로의 감은 두 눈을 화면 가득히 클로스업하던 카메라가 서서히 모로의 헤픈 듯 두툼한 입술을 핥고 내려가면서 모로의 심한 안개처럼 가라앉은 음성이 들린다. “나는 더 이상 못 참겠어요. 주 템므(사랑해요). 해야 해요. 난 당신을 안 떠날 거예요. 쥘리앙.” 이 때 트럼핏 소리가 비가조로 흐르면서 불길하고 로맨틱한 영화의 분위기를 전조한다.
나는 이 영화를 어렸을 때 보면서 단숨에 모로에게 빠져 들었었다. 컬을 한 금발에 하이힐을 신은 그녀가 투피스 상의의 깃을 올린 채 정부 쥘리앙을 찾아 밤새 비 오는 샹젤리제 거리를 마치 유령처럼 헤매는 모습을 보면서 나는 저런 여자를 갖기 위해서 살인마저 저지르는 쥘리앙의 심정을 이해할 것 같았다.
모로는 피곤해 보여 더욱 유혹적이다. 그늘진 얼굴, 미소 잃은 눈동자, 양끝이 아래로 처진 농염한 윗입술 그리고 약간 거슬리는 듯한 나른한 음성. 그녀는 마치 세상을 다 산 여자처럼 나태해 보여 보는 남자를 녹작지근하게 만든다. 권태와 피로가 선정적이라는 것을 느끼게 해주는 여자로 얼굴 안에 연기가 담겨 있는 배우다.
어두운 분위기와 심리적 깊이를 지닌 영화는 모로를 세계적 스타로 만들어준 작품으로 그녀는 후에 말르의 애인이 됐다. 플로랑스(모로)는 공중전화로 쥘리앙에게 군수품 제조회사 사장인 나이 먹은 남편 시몽을 죽이라고 조른다. 시몽의 부하직원으로 알제리와 인도차이나에서 싸운 외인부대 출신인 쥘리앙은 밧줄을 타고 자기 사무실 위층에 있는 사장실에 침입, 권총으로 시몽을 살해한다. 이 때 창밖으로 검은 고양이가 지나간다.
이어 쥘리앙이 회사 앞에 세워둔 신형 컨버터블에 타 시동을 걸고 둘의 단골카페에서 자기를 기다리는 플로랑스에게 가려는 순간 자기 사무실 창밖에 걸린 밧줄이 눈에 띈다. 쥘리앙이 밧줄을 회수하려고 다시 회사 건물로 들어가 엘리베이터에 타고 올라가는 순간 경비원이 건물의 전원을 끄고 퇴근한다. 꼼짝 없이 엘리베이터에 갇힌 쥘리앙(사진.)
이 때부터 쥘리앙이 엘리베이터에서 탈출하려고 안간힘을 쓰는 긴장감 가득한 장면과 약속장소에 나타나지 않은 쥘리앙을 찾아 텅 빈 파리 시내를 밤새 헤매고 다니는 플로랑스의 허탈한 모습이 교차된다. 트럼핏 소리가 연무처럼 무드를 뿜어내는 가운데 앙리 드카에가 찍은 거의 안 보일 정도로 어두운 파리의 밤이 몽환적이다.  
매우 절제된 영화로 플로랑스의 하이힐 발자국 소리와 경찰차의 사이렌 소리 같은 실제 음을 빼고 영화는 거의 침묵 속에 진행된다. 이 침묵을 깨고 플로랑스가 자기 내면의 언어를 독백으로 토해 낸다. “밤새 미친 여자처럼 찾아 다녔어요. 발이 차가워요”라며 자신의 피로와 절망감을 고백한다. 쥘리앙은 로마의 두 수녀처럼 월요일 아침이 돼서야 엘리베이터에서 빠져 나오나 악인은 지옥으로 간다. 주말 엘리베이터 조심하세요!
                                                          <한국일보 박흥진 편집위원/ hjpark1230@gmail.com>


2015년 6월 22일 월요일

인피니틀리 폴라 베어 (Infinitely Polar Bear)

샘(왼쪽)과 매기가 두 딸과 함께 즐거운 시간을 보내고 있다.

다소 장밋빛으로 채색되긴 했으나 질병에 관한 영화치곤 상당히 활기차고 긍정적이며 또 우습기까지 하다. 두 딸을 혼자 돌보게 된 정신질환에 시달리는 아버지와 딸들 그리고 그의 아내와의 관계를 그린 드라마로 순식간에 감정이 변하는 아버지 때문에 딸들이 겪어야 하는 두려움과 그런 아버지의 행동이 저지르는 엉뚱한 행복한 순간을 균형을 맞춰 정겹게 그렸다.
영화를 연출한 여류감독 마야 포브스의 자전적 얘기로 포브스는 두 딸들이 아버지 때문에 겪어야 하는 당혹감과 좌절감 그리고 위험을 솔직하게 표현하고 있는데 아버지의 과격한 행동 때문에 보면서 마음을 졸이다가도 모든 것을 밝게 처리해 안심하게 된다. 그러나 이런 너무 낙관적인 처리는 영화가 가지고 있는 본래의 모습에 다소 어긋나긴 한다.
포브스가 자기 가족에게 보내는 사랑이 가득한 추억으로 기분을 좋게 만들어주는 재미있는 영화다. 4명의 성인과 아동 배우들이 꾸밈없고 생명력 넘치는 연기를 기차게 잘해 영화의 사실감을 잘 살리고 있다.
1960년대 말. 굉장히 재주가 많은 캠(마크 러팔로)은 감정의 높낮이가 순식간에 변하는 바이 폴라(제목은 이 이름을 우습게 표현한 것이다) 환자여서 무슨 일을 해도 제대로 끝내지 못하고 직장도 오래 못 다닌다. 그러나 그는 아주 낙천적이다.
캠과 자신의 정신질환을 알고도 자기를 사랑하는 매기(조이 샐다나)는 결혼해 매서추세츠주의 캠브리지에 단란한 가정을 꾸린다. 그리고 두 딸 아멜리아(감독의 딸인 이모진 월로다스키)와 페이스(애슐리 아우프더하이드)를 낳는다. 그런데 딸들이 초등학교에 다닐 때쯤 캠의 행동이 지나치게 과격해지는 바람에 캠은 정신병원에 잠시 수감됐다 나온다.
딸들이 다니는 학교가 충분히 도전적이지 못한데 불만이 많은 매기가 컬럼비아대의 경영과정에 18개월 만에 학위를 딸 수 있는 조건으로 합격이 된다. 매기는 졸업해 직장을 잡아 딸들을 사립학교에 보내기 위해 캠에게 두 딸을 맡기고 뉴욕으로 간다. 그리고 주말마다 딸들을 방문한다. 캠이 두 딸을 무척 사랑하는 것은 분명하나 정신상태가 불안한 그에게 딸들을 맡기고 뉴욕으로 떠나는 매기의 결정에 고개를 갸우뚱하게 된다.
매기가 뉴욕에 사는 동안 두 딸을 혼자 돌보는 캠과 딸들 간에 일어나는 잡다한 에피소드가 자잘하니 재미있게 나열된다. 캠은 딸들을 아끼고 사랑하면서도 기분 나는 대로 딸들이 잠든 밤에 나가 술을 마시고 새로 옮긴 아파트를 안 치워 딸들로부터 “똥통”이라는 핀잔을 받는가 하면 아파트 이웃들에게 지나치게 친절해 오히려 따돌림을 받는다.
이로 인해 고통당하는 두 딸은 어머니 보고 어서 돌아오라고 사정을 하면서도 둘 다 원체 총명하고 또 긍정적인 데다가 아버지를 사랑해 가족이 똘똘 뭉친다. 4명이 연기를 다 잘하지만 특히 훌륭한 것은 러팔로다. 기분 상태가 극과 극을 이루는 정신질환자의 모습을 과장되지 않고 동정심이 일도록 하고 있다. 그와 함께 두 소녀 배우들이 아주 귀엽고 사실적이다. 음악은 좀 지나치게 달콤하거나 감상적이다.
성인용. Sony Classics. 일부지역. ★★★★(5개 만점)
                                                          <한국일보 박흥진 편집위원/ hjpark1230@gmail.com>



글렌 포드 주연 걸작 웨스턴 2편

 '패스티스트 건 얼라이브에서'  조지(왼쪽)와 무법자 비니가 필사의 결투에서 맞서 있다. 

글렌 포드가 주연하는 왕년의 걸작 흑백 웨스턴 2편이 24일과 25일 뉴베벌리 시네마(7165 Beverly Blvd.)에서 동시 상영된다. 필견의 명작이니 놓치지 마시도록.

‘패스티스트 건 얼라이브’
(The Fastest Gun Alive·1956)
★★★★1/2
사살된 속사의 명수였던 셰리프를 아버지로 둔 조지 켈비 주니어(포드) 역시 속사의 명수. 그러나 그는 끊임없이 도전해 오는 건맨들을 피하기 위해 아내(진 크레인)와 함께 성도 템플로 바꾸고 한 작은 마을에서 잡화상을 경영하며 조용히 살고 있다. 그런데 악명 높은 은행강도 비니(브로데릭 크로포드)가 ‘살아 있는 최고의 속사의 명수’를 죽였다는 소문을 들은 마을 사람들이 조지를 남자답지 못하다고 놀리자 자존심을 상한 조지가 숨겨둔 총을 꺼내 찬 뒤 마을 사람들 앞에서 귀신이 곡할 총 솜씨를 과시한다. 그리고 조지는 내가 ‘살아 있는 최고의 속사의 명수’라고 말한다.
한편 졸개들과 추격하는 법집행자들을 피해 조지의 마을에 찾아온 비니는 마을의 아이로부터 조지의 총 솜씨를 듣고 그와 대결하기 위해 법을 피해 달아난 졸개들과 달리 마을에 남는다. 그리고 조지가 나타나지 않으면 마을을 몽땅 불태우겠다고 위협하는 비니와 맞서기 위해 조지가 거리로 나선다. 총소리가 나고 마을 사람들이 조지와 비니의 사체가 든 관을 매장한다.

‘3시10분 발 유마행 열차’
 (3:10 to Yuma·1957)
 ★★★★★
애리조나의 한 작은 마을 비스비는 3년째 가뭄에 시달리고 있어 아내와 어린 아들과 함께 양을 치며 사는 댄(밴 헤플린)은 심한 경제난에 시달린다. 그런데 이 마을에 악명 높은 역마차 강도 벤(포드)이 졸개들에 앞서 들렀다가 마을 보안관에게 체포된다. 문제는 벤을 재판할 법정이 있는 유마로 가는 열차가 서는 컨벤션시티까지 누가 벤을 호송하는가 하는 점.
역마차 노선 사장이 개인 당 200달러를 주겠다는 데도 벤을 충실히 따르는 졸개들이 무서워 나서는 자가 없자 돈이 필요한 총이라곤 쏴본 적도 없는 댄이 아내의 간청에도 불구하고 호송을 자원한다. 댄은 일단 벤을 컨벤션시티까지 호송, 아침에 도착해 기차가 올 때까지 호텔에서 기다린다. 마을에 벤의 졸개들이 나타난다. 그리고 얼마 있다 기적이 울린다. 이제 댄의 문제는 어떻게 졸개들을 피해 벤을 호텔로부터 역까지 호송해 기차에 태우는가 하는 점. 멋있는 심리 웨스턴으로 프랭키 레인의 주제가가 유명하다. 이 영화는 러셀 크로(벤 역)와 크리스천 베일 공연으로 리메이크 됐다.    
                                       <한국일보 박흥진 편집위원/ hjpark1230@gmail.com>

            

24년만에 다시 찾아 온‘보바리 부인’

두 여성감독 작품 연달아 개봉


간통소설의 대표작 중의 하나인 프랑스의 문호 귀스타브 플로베르가 쓴 ‘보바리 부인’(Madame Bovary)을 원작으로 만든 두 편의 영화가 현재 상영 중이다.
먼저 개봉된 것은 프랑스의 여류감독 안 폰텐이 연출한 코믹터치의 ‘젬마 보바리’(Gemma Bovery). 영국에서 남편 찰리와 함께 프랑스의 노르망디 시골로 이사 온 아름다운 육체파 젬마(젬마 아터튼)가 따분한 남편과 시골생활에 권태를 느껴 바람을 피우다가 비극적 종말을 맞는다. 그 종말이 황당무계하게시리 희극적이다.
이 영화는 젬마의 옆집에 사는 빵가게 주인으로 고전문학 애독자인 마르탱(화브리스 뤼시니)의 관점으로 진행된다. 역시 지루하고 따분한 시골생활에 좀이 쑤시는 마르탱은 소설 ‘보바리 부인’의 주인공 엠마 보바리와 이름이 비슷한 젬마를 보자마자 그녀의 일거수일투족을 감시하면서 탐을 낸다. 경량급으로 즐길 만한데 아터튼이 감각적으로 아름답고 프랑스의 베테런 배우 뤼시니가 호연한다.
이 영화와 달리 12일에 개봉된 역시 여류감독 소피 바르테가 연출한 ‘보바리 부인’(Madame Bovary)은 매우 심각하다. 보바리 부인으로 미아 와시코우스카가 나오는데 영화는 기능적으로 뛰어나고 여성적 터치가 느껴지나 과거의 보바리 부인 영화들과 별로 다른 것이 없는 재탕에 지나지 않는다.
다분히 학구적이요 여권 주창의 뜻을 내포하고 있긴 하나 보바리 부인이 권태로운 남편과 시골생활을 벗어나려고 몸부림치는 내면적 욕구와 갈망이 절실히 묘사되질 못한 채 정열과 감정이 결여됐다. 보바리 부인의 욕정과 열정 그리고 사회적으로 신분을 향상시키고자 하는 야망 및 시골생활로부터 탈출해 도시로 가고자 하는 열망 그리고 돈과 사치에 대한 그녀의 태도를 통찰력 있게 탐구하지 못하고 피상적으로 다뤄 감동을 느낄 수가 없다.
촬영은 아름답지만 와시코우스키와 그녀의 정부들로 나오는 후작 역의 로간 마샬-그린과 젊은 서기 레옹 역의 에즈라 밀러와 화학작용도 전무해 도무지 정열을 느낄 수가 없고 로맨틱하지도 못하다. 와시코우스카가 열심히 연기를 하나 차가운 연출로 인해 영화의 고동과 맥박이 느껴지지 않는다.
소설 ‘보바리 부인’은 과거에도 여러 차례 영화로 만들어졌었다. 1934년에 프랑스의 명장 장 르놔르가 만들었고 1949년에는 빈센트 미넬리(라이자 미넬리의 아버지)가 그리고 1991년에는 프랑스의 스릴러 장인 클로드 샤브롤이 이자벨 위페르를 주연으로 발탁해 연출했다.
이 중에서 가장 유명한 것이 MGM작인 미넬리의 ‘보바리 부인’이다. 보바리 부인으로 제니퍼 존스가 그의 시골의사 남편 찰스로는 밴 헤플린 그리고 보바리 부인의 멋쟁이 정부로는 루이 주르단이 각기 나온다. 내용과 연기와 세트와 음악(‘벤-허’의 미클로스 로자)과 흑백촬영 등이 다 좋은데 특히 무도회 장면이 화려하다.  
그러면 왜 19세기의 한 여자의 방종과 멸망에 관한 이 소설은 이렇게 세월을 타지 않고 계속해 영화로 만들어지고 있는 것일까. 그것은 보바리 부인의 손에 잡을 수 없는 것에 대한 욕구와 자기가 처한 곤경에 대한 불만은 시공을 초월한 보편적인 것이기 때문이라고 폰텐은 한 인터뷰에서 말했다.
보바리 부인의 무언가 보다 깊고 강렬한 것에 대한 기대는 시대를 막론하고 모든 사람이 공감할 수 있는 것으로 특히 여전히 남성위주의 사회에 속한 여자들에게는 보바리 부인의 얘기가 결코 남의 것만은 아니라는 것이다.
보바리 부인은 19세기 당시의 사회적 환경의 희생물이라고 할 수 있다. 그녀는 고등교육을 받았지만 그것을 유용하게 사용하지 못하고 자기를 사랑하나 무미건조한 찰스와 결혼하는데 이 때부터 그녀는 영원한 함정에 갇히게 된다. 당시 여자들은 직업도 가질 수가 없고 또 이혼도 못하는 사회적 제한의 수인과도 같은 삶을 살아야 했다. 똑똑하고 야심만만하며 또 정열적인 보바리 부인은 결국 이런 사회적 조건에 반기를 들었다가 자살하고 만다. 소설 ‘보바리 부인’은 도덕론이기도 하지만 그보다는 사회 비평이자 여성 해방과 여권 옹호의 글이라고 하겠다.
소설은 단조로운 결혼생활과 시골환경에 싫증이 난 아름답고 정신적으로 방황하는 엠마 보바리가 자신의 낭만적 동경과 정열을 좇아 외도를 하다가 비극적 종말을 맞는 얘기를 심리적으로 분석한 뛰어난 사실주의 작품이다.
맹물 같은 시골의사인 엠마의 남편 찰스는 아내를 사랑하나 그녀를 진실로 이해하지도 위로하지도 못하고 또 엠마의 절실한 필요를 충족시켜 주지도 못하는 무기력한 남자다. 이런 남편을 둔 감수성이 예민한 엠마는 자존마저 내팽개치고 죄악적인 사랑처럼 로맨틱하고 아름다운 것은 없다는 환상에 빠져 두 남자와 절망적인 사랑을 나누다 결국 모두에게 배신당하고 극약을 먹고 자살한다.    
전문가들에 의하면 이혼율이 가장 높은 때는 결혼 3년째다. 뜨겁던 사랑 대신 뜨뜻미지근한 무료함이 찾아드는 시기가 됐다는 것이다. 이렇게 일단 심한 권태증에 빠지게 되면 상대가 밥을 먹는 모습도 미워지게 마련이다. 엠마의 눈에는 찰스의 밥을 먹는 모습이 소의 반추처럼 보였을 정도다. 이 같은 상황은 ‘보바리 부인’에서 미아 와시코우스카가 식탁 건너편에 앉아 열심히 음식을 먹는 찰스를 바라보는 시선에서 잘 나타난다.  모든 엠마에게는 찰스가 있게 마련이다. 엠마를 죽인 비극의 절반 책임은 찰스에게도 있다.
                                                          <한국일보 박흥진 편집위원/ hjpark1230@gmail.com>


암흑의 왕자



어두운 것은 밝은 것보다 훨씬 더 유혹적이다. 필름 느와르(film noir) 영화에서 봉 같은 남자들이 파멸에 이를 줄 알면서도 팜므 파탈(femme fatale-치명적 여인)들에게 빠져드는 것도 이 요부들이 발산하는 검은 매력 때문이다.
어두운 매력은 남자들뿐만이 아니라 여자들에게도 효력을 발휘한다. 범죄자들을 사랑하는 여자들이 그 좋은 보기다. 최근 뉴욕주 교도소에서 탈출한 두 명의 살인범에게 탈출도구를 준 수감자 재활교육 여직원 조이스 미첼(51)도 범죄자들 특유의 암흑성에 매료됐을 가능성이 있다. 이런 남자들을 옴므 파탈(homme fatal-치명적인 남자)이라고 부르면 될까.
살인죄로 수감 중인 악명 높은 무기수 찰스 맨슨(80)에 반해 그와 약혼까지 하고 결혼을 원하는 애프턴 버튼(26)도 마찬가지라고 하겠다. 맨슨은 지난 1969년 8월 자기를 추종하는 맨슨 패밀리를 이끌고 베벌리힐스에 있는 영화감독 로만 폴란스키의 집에 침입, 폴란스키의 아내이자 배우로 임신 8개월째인 샤론 테이트 등 5명을 잔인하게 살인했다.
여러 어두운 남자들 중에서도 여자들의 오금을 짜릿짜릿하게 저리도록 만드는 유혹적인 남자는 단연 드라큘라일 것이다. 호색한인 드라큘라는 남녀노소를 불문하고 흡혈하지만 특히 아름다운 여자들을 좋아한다. 아름다운 여자 좋아하기는 산 자나 죽은 자나 마찬가지다. 드라큘라가 시뻘겋게 충혈된 눈으로 응시하면 여자들은 최면상태에 빠져 자기 목을 스스로 바치면서 산 자와 죽은 자의 정사가 이뤄진다.
이처럼 드라큘라를 여성의 섹스 심벌로 격상시킨 장본인이 지난 11일 93세로 런던에서 사망한 크리스토퍼 리다. 준수하고 긴 얼굴에 낭랑한 음성을 지닌 그는 자신의 첫 드라큘라 영화 ‘드라큘라의 공포’(1958·사진)에서 6피트4인치의 장신에 마치 박쥐가 날개를 접은 모습처럼 몸을 꼭 감싸는 망토를 입고 야음을 타고 나타나 여인들을 유혹했다.
젠틀맨 죽음의 사자인 드라큘라의 응시를 마주하는 여인들의 눈길과 얼굴표정에서 ‘날 잡아 잡수세요’라는 간청을 읽을 수가 있다. 드라큘라의 암흑적 매력을 한층 더 짙게 채색해 주는 것이 그가 지닌 위험성이다. 배냇 쌍둥이 같은 어두움과 위험을 한 몸에 지닌 드라큘라의 섹스어필을 거부하기란 그리 쉽지 않은 일이다. 그래서 드라큘라를 암흑의 왕자라고 부른다.
나는 ‘드라큘라의 공포’를 어렸을 때 중앙극장에서 봤는데 시뻘건 눈에 송곳니를 내보이면서 피를 빨아 먹겠다고 다가오는 클로스업된 드라큘라의 모습이 섹스어필하기는커녕 너무 무서워 두 손으로 얼굴을 가리고 손가락 사이로 본 기억이 난다.
이 영화로 대뜸 세계적 스타가 된 리는 그 후 여러 편의 드라큘라 속편에 나왔고 또 생전 수많은 영화에 나왔지만 크리스토퍼 리 하면 대뜸 떠오르는 것이 드라큘라다. 드라큘라는 리의 대명사이다. 리는 드라큘라 외에도 많은 공포영화에 나왔는데 ‘드라큘라의 공포’ 전에 나온 ‘프랑켄스타인의 저주’에서 프랑켄스타인이 창조한 괴물로 나와 대사 한 마디 없이 얼굴 표정으로 자신의 저주 받은 운명을 동정심이 일도록 비감하게 보여줬다.
리의 또 다른 유명한 영화는 007 시리즈 ‘황금 총을 가진 사나이’. 그는 여기서 제임스 본드의 악한인 프란치스코 스카라만가로 나와 ‘골드핑거’의 오릭 골드핑거 다음으로 가장 위험한 본드의 적이라는 평을 받았다. 그런데 리는 본드소설의 작가 이안 플레밍의 의붓 사촌이다. 리의 최근작으로는 그가 마술사 사루만으로 나온 ‘반지의 제왕’이 있다.
리 이전에 스크린에서 드라큘라 역을 멋지게 해낸 배우는 헝가리 태생의 벨라 루고시로 그는 지금까지 드라큘라의 원조로 추앙되고 있다. 드라큘라는 이렇게 치명적인 매력을 지녔는데다가 초능력을 지닌 불사의 인물이어서 내로라하는 많은 배우들이 앞 다투어 역을 맡았다. 잭 팰랜스, 프랭크 란젤라, 게리 올드맨, 러트거 하우어, 제라드 버틀러, 조나산 리스 마이어스, 조지 해밀턴, 애담 샌들러 및 레슬리 닐슨 등이 다 드라큘라들이다. ‘흡혈귀와의 인터뷰’에서 탐 크루즈가 연기한 흡혈귀도 드라큘라의 사돈의 팔촌 격이다.
드라큘라는 허구와 전설이 뒤엉킨 실제 인물이다. 그는 15세기 현 루마니아 땅인 트랜실베니아의 통치자였던 드라큘의 아들로 본명은 블라드. 드라큘은 루마니아어로 ‘용’과 ‘악마’를 뜻하고 드라큘라는 ‘악마의 아들’이라는 뜻으로 블라드의 별명이다. 그의 이름에는 ‘공’(prince)이라는 작위가 붙어 ‘프린스 블라드’라 불렸다.
당시 가톨릭 국가였던 트랜실베니아는 무슬림 오토만제국과 끊임없이 종교전쟁을 치렀는데 이 때 용맹무쌍한 블라드가 적들을 잡아 적에 대한 경고로 산채로 뾰족한 나무장대에 꽂아 죽을 때까지 전시했다고 한다. 그래서 그를 ‘블라드 디 임페일러’(찔러 꽂는 사람)라고 불렀다. 블라드가 이렇게 잔인한데다가 죽은 사람들의 피에 빵을 찍어 먹었다는 설이 있어 생사람 피 빨아 먹는 드라큘라의 전설이 생겼다고 한다.    
비록 크리스토퍼 리는 죽었지만 스크린을 통해 영원히 살아남을 것일진대 과연 그를 불사의 드라큘라라고 불러도 좋겠다. TCM 채널에서는 리를 기념하기 위해 22일 그의 영화들을 방영한다.  
                                                           <한국일보 박흥진 편집위원/ hjpark1230@gmail.com>


2015년 6월 15일 월요일

‘비치 보이즈’리더 브라이언 윌슨




“배우들이 나를 너무 잘 묘사해 깜짝 놀라”


브라이언 윌슨의 삶과 음악 다룬‘러브 & 머시’개봉

1960년대‘서핀 USA’‘굿 바이브레이션즈’‘슬룹 잔 B’‘우든 잇 비 나이스’‘헬프 미, 론다’ 및‘아이 겟 어라운드’ 등 수많은 히트 곡을 내면서 전 세계적으로 선풍적인 인기를 모았던 캘리포니아 서프뮤직의 창조자들인 5인조 보컬 락그룹‘비치 보이즈’(Beach Boys)의 리더 브라이언 윌슨(72)과의 인터뷰가 3일 베벌리힐스의 포시즌스 호텔에서 있었다.  인터뷰는 그의 삶을 다룬 영화‘러브 & 머시’(Love & Mercy-영화평 참조)의 개봉에 맞춰 있었는데 셔츠 차림의 윌슨은 인터뷰장에 들어오자마자 실내에 있는 피아노 앞에 앉아 짧은 즉흥연주를 한 뒤“할로”하고 인사를 했다. 거동이 다소 불편한 윌슨은 입안에서 중얼대는 소리로 질문에 아주 짤막한 대답을 했는데 한 쪽 귀가 안 들려 질문을 큰 소리로 해야 했다. 무표정했지만 시치미 뚝 떼고 웃기기도 했는데 가끔 가다 질문에 피아노를 치면서 대답했다. 인터뷰장 뒤에는 그의 두 번째 아내로 그의 음악적 활동에 큰 공헌을 한 멜린다가 남편을 지켜보며 앉아 있었다.  

-어떻게 해서 음악을 사랑하는지 알게 됐는가.
“어렸을 때 할머니 집에서 ‘랩소디 인 블루’(거쉬인 곡)를 듣고 그 곡을 무척 사랑하게 되면서 부터다.”

-영화를 본 소감은.
“너무 잘 만들어 놀랐다. 각기 젊었을 때와 나이 먹었을 때의 나로 나온 폴 데이노와 존 큐색이 정말로 나를 잘 묘사했다.”

-음악가로서 자기가 하고 싶은 대로 작곡이 안 될 때 그에 대해 어떻게 대처했는가.
“그냥 꾸준히 음악에 매달리는 수밖에 없었다.”

-영화를 보고 가장 놀란 것은 무엇인가.
“멜린다와의 관계를 그린 부분이었다. 그런데 엘리자베스 뱅스가 내 아내 역을 참 잘 해냈다.”

-영화를 보면서 기뻤는가 아니면 슬펐는가.
“기쁨과 슬픔을 함께 느꼈다.”

-어떤 점이 슬펐는가.
“존 큐색이 내 아내 역의 엘리자베스에게 보여준 민감한 감정 표시 때문이었다.”

-비치 보이즈와 또 다른 서프뮤직의 대표 보컬이었던 잰 앤 딘은 동시대에 활동했는데 두 그룹의 관계는 어땠는가.
“우리 멤버 중의 한 사람인 마이크 러브가 그들을 위해 작곡했다. 그리고 그들은 그 뒤로 우리로부터 배웠다.” (윌슨은 이 때 피아노를 치고 노래를 부르면서 대답했다.)

-잰 앤 딘의 음악을 어떻게 생각하는가.
“아주 흥미 있고 흥분되고 또 행복한 음악이다.”    

-누가 당신에게 음악을 가르쳐 주었는가.
“나의 삼촌이 내가 12세 때 피아노 치는 법을 가르쳐 줬다. 그리고 나서 얼마 있다가 ‘서퍼 걸’을 작곡했다. 난 스스로 작곡을 배웠다.”

-작곡하기 전에 음악적 영감을 어떻게 얻는가.
“난 오른 쪽 귀가 안 들려 스튜디오에 들어가기 전 들리는 소리에 집중한다. 그러니까 머리로 음악을 듣고 앉아 연주하는 것이다.” (그는 이 때 다시 피아노를 쳤다.)   

-음악이 당신의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것인가.
“그렇다.”
해변 복장을 한 비치 보이즈가 노래를 부르고 있다. 오른쪽서 두 번째가 브라이언 윌슨.

-음악이 없었다면 무엇을 했겠는가.
“메이저리그 야구선수가 됐을 것이다. 그런데 한 때 풋볼 쿼터백이었다.”

-어떻게 해서 당신의 개인 얘기의 영화화를 허락했는가.
“영화를 통해 내가 겪은 삶의 얘기를 나누고 싶었다.”

-당신의 아내는 당신에게 어떤 의미가 있는가.
“무척 많은 것을 뜻한다. 그녀는 17년 전에 내가 솔로로 활동하도록 만들어주었다. 그 뒤로 나는 지금까지 많은 순회공연을 아내와 함께 하고 있다.”

-아내에게 바친 노래라도 있는가.
“‘원 카인드 오브 러브’다.”

-영화 제목은 당신의 노래 제목인데 어떻게 해서 그런 제목을 생각했는가.
“어느 날 피아노 앞에 앉아 있는데 갑자기 내 머리 속에 떠올랐다. 좋은 제목이라고 생각했다. 노래는 비치 보이즈 노래가 아닌 나 개인의 노래다.”

-작곡하기에 가장 쉬웠던 것과 어려웠던 것은 무엇인가.
“가장 쉬웠던 곡은 ‘409’이고 어려웠던 것은 ‘갓 온리 노우즈’다.”(그는 이 때 ‘갓 온리 노우즈’를 짤막하게 피아노로 쳤다.) 

-가장 좋아하는 악기는 무엇인가.
“피아노와 베이스다. 난 혼과 바이얼린 같은 악기는 연주할 줄 모른다.”

-그렇다면 당신의 음악적 영감은 피아노로부터 오는가.
“그렇다.” 

-가장 빨리 작곡한 곡은 무엇인가.
“‘서핀 사파리’다.”

-연주자로서 피아노는 언제부터 치기 시작했는가.
“24세 때부터다.”

-당신은 한동안 매우 어두운 삶을 살았는데 그것을 어떻게 극복했는가.
“내 가슴과 피아노와 친구들에 의해서다. 내게 찾아와 ‘브라이언 너는 이겨낼 수 있어’라고 격려해 준 친구들이 많다.”

-그런 어두운 과거를 생각할 때 화나지 않는가.
“아니다.”

-요즘 어떤 음악을 듣는가.
“70년대와 80년대 음악을 듣는다.” 

-가수 중 누구를 좋아하는가.
“폴 매카트니다.”

-낮에 무엇을 하는가.
“운동한다.”

-작곡과정에 대해 알려 달라.
“머릿속에서 음표들이 떠오르긴 하지만 직접 소리는 스튜디오에 들어가서야 듣는다. 그리고 곡을 제작할 때 비로소 스피커를 통해 소리를 듣게 된다.”

-작사도 직접 하는가.
“혼자도 하고 도움 받을 때도 있다.”

-당신은 서프뮤직을 만들고도 서핑을 할 줄 모르는 것으로 아는데.
“서핑을 못 배웠다. 늘 겁이 나서 그랬다. 그런데 비치 보이즈의 멤버이기도 한 내 동생 데니스가 내게 서핑이 굉장히 인기이니 그에 관한 음악을 지어보라고 해서 우리 둘이 같이 작곡했다.”

-폴 데이노와 존 큐색과 함께 시간을 많이 보냈는가.
“1주일 정도 함께 지냈는데 그 과정에서 둘은 내 매너리즘과 나의 다른 것들을 배웠다.”

-당신의 촤근 앨범 ‘노 피어 프레셔’는 어떻게 해서 나왔는가.
“내 자신의 영감에 의해서다. 비치 보이즈의 음악처럼 달콤한 멜로디가 많은 앨범을 만들고 싶었다. 4명의 게스트 싱어들이 노래 부른다.” 

-당신은 지금 비치 보이즈의 오랜 멤버 중 하나인 알 자딘과 순회공연을 하는데 무대에 서는 기분이 어떤가.
“자딘은 훌륭한 가수다. 우린 오랜 역사를 함께 공유하고 있다. 무대에 다시 서니 참 좋다.”   
-당신의 많은 자녀들로부터 무엇을 취하는가.
“나이가 먹어 모자라는 에너지다.”

-당신의 나이 먹은 딸들이 음악사업을 하는데 그들에게 무엇을 가르쳐 주는가.
“먼저 노래부터 할 줄 알아야 사업에 대해 가르쳐 주겠다.”

-당신의 아이들과 음악계에 발을 들여놓고자 하는 젊은 사람들에게 해 줄 충고는.
“드럭을 하지 말라는 것과 자연스럽게 작곡하라는 것이다.”

-이 영화는 사랑의 영화이기도 한데 당신은 사랑이 무엇이라고 보는가.
“그 것은 아주 자연스런 것이다. (피아노를 치며)사랑은 ‘랩소디 인 블루’요 음악이다.

-당신은 음악이 가슴으로부터 온다고 했는데 구체적으로 말해 달라.
“그 것은 먼저 느낀 다음에 듣게 된다.”

-밴드와 솔로의 차이점은 무엇인가.
“솔로보다 밴드가 나은 점은 무대에서 연주한다는 것이다.”

-요가나 명상을 하는가.
“선험적 명상을 했지만 이젠 더 이상 못하겠다.”

-하루를 어떻게 보내는가.
“TV 보고 공원에 가서 걷고 피아노를 친다.”

-비치 보이즈 때와 지금 하는 순회공연의 차이라도 있는가.
“지금이 더 재미있고 신난다. 그 때와 달리 지금은 진짜로 나의 밴드라는 느낌이다.”       

-아침에 일어나 제일 먼저 하는 일과 저녁에 자기 전 제일 마지막으로 하는 일은 무엇인가.
“일어나면 먼저 ‘또 다른 날을 주셔서 하나님 감사합니다. 저녁에는 ’바라건대 또 다른 날을 주소서’하고 기도한다. 

-첫 눈에 반한다는 것을 믿는가.
“믿는다.”

-마이클 잭슨이 죽었다는 소식을 듣고 기분이 어땠는가.
“매우 우울해 피아노에 가서 ‘갓 온리 노우즈’를 작곡했다.”

-당신의 앨범 ‘펫 사운즈’는 음반사상 가장 훌륭한 것 중의 하나로 꼽히는데 무엇이 그렇게 만들었다고 보는가.
“하모니다. 비틀즈의 ‘사전트 페퍼’는 우리 음반을 아주 가깝게 따라 온 것이다.”
                                                <한국일보 박흥진 편집위원/ hjpark1230@gma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