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이야기

2015년 3월 9일 월요일

The Second Best Exotic Marigold Hotel


쿠퍼 부인과 가이(리처드 기어)가 로맨스 무드에 젖어 있다.

이국적 풍광 속 결말 뻔한 ‘실버 로맨스’


2011년에 나와 히트한 은퇴한 영국 남녀 노인들의 인도 자이푸르에서의 삶과 티격대격과 로맨스를 그린 코미디 드라마의 속편인데 나태하고 당분이 너무 많은 소프 오페라다. 전편에 나온 영국의 연기파들이 다시 나오는데 이번에는 국제적으로 돈을 벌 목적으로 미국 배우 리처드 기어를 영국 노인들 사이에 편입시켰다.
‘물 떠난 물고기’ 얘기인 전편은 감상적이요 플롯도 크게 놀랄 것 없었지만 그런대로 재미있었는데 속편은 같은 인물들 모아놓고 아이디어가 달려 옛 애기를 반복하다시피 하고 있다. 이렇게 얘기가 궁하다 보니 공연히 노인네들의 사랑의 줄다리기를 억지로 엮어 뻔한 결말에 장애물을 놓아 서술이 덜컹거린다. 
아무 생각 없이 그저 내로라하는 고참 배우들과 자이푸르의 풍족과 가난이 범벅을 이룬 이국적이요 다양한 풍경을 보고 즐길 만은 하지만 영화 너무 사탕발림 식인데다가 모든 것이 다 말끔하고 행복하게 마무리 지어지는 지극히 비현실적인 처리 때문에 노인용 동화를 보는 것 같다. 
전편에서 구닥다리 호텔을 개수해 거주를 겸한 호텔로 만들어 크게 성공한 매리골드 호텔에는 전편에서 남은 여섯 명의 영국인 노인 거주자들이 그대로 살고 있다. 주인은 아름다운 미망인 어머니 쿠퍼 부인(릴리엣 더비)과 함께 호텔을 운영하는 활기찬 청년 소니(데브 파텔이 호들갑을 떤다). 소니가 호텔 직원으로 고용한 영국인 할머니는 산성 혀를 지닌 뮤리엘 도넬리(매기 스미스). 
파텔은 호텔을 프랜차이즈로 만들려고 샌디에고에 와서 투자회사 사장 타이 벌리(데이빗 스트레테언)에게 융자를 요구한다. 자이푸르로 돌아온 소니는 벌리가 보낼 신분을 숨긴 호텔 평가자를 대비해 만반의 준비를 한다. 이 때 달랑 가방 하나를 들고 나타난 남자가 미국인 가이 체임버스(리처드 기어). 그와 같은 시간에 영국인 여자 라비니아 비치(탐신 그레이그)가 어머니를 위해 호텔을 둘러보러 왔다며 투숙한다.
한편 소니는 호텔 확장에 온 신경을 집중하면서 결혼식을 앞둔 약혼녀 수나이나(티나 데사이)를 소홀히 하면서도 수나이나가 자기 오빠의 번지르르한 친구 쿠샬(샤자드 라티프)과 시간을 보내자 질투를 부린다.
노인들이라고 연애 못하라는 법 있느냐는 듯이 두 쌍의 노인들의 애정문제가 서브플롯으로 나선다. 전편에서 서로에게 호감을 표시한 이블린(주디 덴치)과 더글러스(빌 나이)는 공연히 아직도 사랑의 줄다리기를 하고 부부인 노만(로널드 피컵)과 캐롤(다이애나 하드캐슬)은 서로 사랑하면서도 바람을 피워댄다. 그리고 노인 섹스덩어리인 매지(셀리아 임리)는 두 명의 동네 부자로부터 구애를 받는다. 
여기에 가이가 쿠퍼 부인과 로맨스를 엮으면서 노인들의 사랑에 반주를 넣는데 둘의 로맨스는 아주 어색하고 기어도 내가 왜 이 영화에 나왔지 하며 어리둥절해 하는 표정이다. 끝은 요란하고 화려한 춤이 있는 소니의 결혼식으로 장식된다. 뒤는 빈민촌인데 겉만 다색으로 페인트칠한 건물과도 같은 영화다. 존 매든 감독. PG. Fox Searchlight. 일부 지역.  ★★★(5개 만점)  
                                                             <한국일보 박흥진 편집위원/ hjpark1230@gmail.com>

채피 (Chappie)


좋은 로봇 채피(오른쪽)가 나쁜 로봇을 공격하고 있다.

“평화를 지켜라” 착한 로봇의 분투


액션이 요란한 로봇과 인공지능의 얘기로 공상과학 영화들인 ‘디스트릭 9’과 ‘엘리지움’을 감독한 남아공의 닐 블롬캠프가 연출하고 각본을 썼다. 무대는 남아공의 요하네스버그로 블롬캠프는 자기 영화에서 늘 사회경제적 문제도 다루고 있는데 여기서도 마찬가지다.
보통 인공지능을 지닌 로봇 영화는 초능력을 지닌 사악한 로봇이 인간세상을 풍비박산 내기가 일수인데 이번에는 채피라는 이름을 지닌 로봇이 범죄가 판을 치고 싸움질을 하는 세상을 평화롭게 만들려고 애를 쓴다. 못난 인간을 계도하는 로봇인데 괜히 하는 소리다.  
휴 잭맨과 시고니 위버 같은 빅스타가 나오고 요즘 매우 분주한 인도 청년 데브 파텔(위 영화 참조)이 나오긴 하지만 영화는 평범한 공상과학 액션영화의 수준을 못 벗어나고 있다. 과거   의 여러 로봇영화들을 얘기를 짬뽕한 것처럼 신선미가 부족한데 마치 비디오게임을 보는 것 같다. 그리고 너무나 많은 프로덕트 플레이스먼트(상품을 장면에 내놓는 것)도 눈에 거슬린다. 컴퓨터와 액션 좋아하는 젊은 층을 위한 영화다.
멀지 않은 미래. 요하네스버그는 범죄가 판을 치는 험악한 도시로 전락했고 치안을 담당하는 것은 로봇들. 경찰서장 미셸(시고니 위버)이 관리하는 로봇 조종실의 프로그래머 디온(데브 파텔)은 로봇에 인공지능 칩을 넣어 사람과 또 같이 생각하고 느끼도록 하는 연구에 몰두한다.
이런 디온에 적수로 등장하는 사람이 역시 같은 경찰서에서 일하는 엔지니어 빈센트 모어(휴 잭맨). 그는 자기 나름대로 자기 지시대로 행동하는 거대한 로봇 무스를 고안, 디온에 한 발 앞서 가려고 한다. 둘이 치열한 경쟁을 하는 과정에서 일단 디온이 먼저 인공지능 칩을 개발해 로봇에 집어넣고 이를 채피라 명명한다.
채피(‘디스트릭 9’의 주연 샬토 코플리의 음성)의 인공지능은 아직 어린 아이의 수준이어서 아기 같이 군다. 이런 채피를 남녀 3인조 갱이 훔쳐다 자기들 졸개를 만드는 과정이 우습고 재미있다. 닌자와 요-란디 및 양카라는 이름을 지닌 3인조는 아이 같은 지능의 채피에게 도둑질하는 방법과 총 쏘는 기술을 가르쳐주면서 범죄로봇으로 교육시킨다. 이를 막는 것이 채피의 창조자인 디온.
한편 빈센트는 마치 ‘로보캅’처럼 자기가 기계 안에 들어가 자의대로 조종할 수 있는 무스를 동원해 채피를 처치하려고 나선다. 그리고 보통 체격의 채피와 덩지가 산 만한 무스 간에 생사결단의 격투가 벌어진다. 여기에 채피를 위험분자로 간주한 당국마저 채피 처리에 나서면서 채피의 위험은 배가한다.
고철처럼 덜렁거리는 고장난 장난감 같은 영화로 나오는 인물들이 한 결 같이 1차원적인데다가 플롯이 씨도 안 먹히는 소리를 하고 있어 관심이 안 간다. 연기도 볼 것 없다. 
PG-13. Sony. 전지역. ★★★(5개 만점) <한국일보 박흥진 편집위원/ hjpark1230@gmail.com>

‘다운턴 애비’



PBS-TV에서 매주 일요일 오후 9시에 방영하는 영국 드라마 ‘다운턴 애비’(Downton Abbey)는 TV 드라마 사상 전 세계적으로 가장 많은 시청자들이 관람하는 의상 드라마다. 영국 TV의 자랑거리인 ‘매스터피스 클래식’의 한 작품인 이 드라마는 영화 ‘고스포드 팍’으로 오스카 각본상을 탄 줄리안 펠로즈의 역작으로 한 번 보기 시작하면 TV에서 눈을 뗄 수가 없을 정도로 흥미진진하다.    
나도 이 드라마의 중독자로 얼마 전 본 극중 주인공 백작 로버트 크롤리의 대저택 다운턴 애비에서 그의 온 가족과 하인들이 모인 가운데 열린 크리스마스 파티로 말미를 장식한 시즌 5가 끝나는 것이 아쉽기만 했다. 콧등이 시큰해지는 피날레였다. 현재 시즌 6를 촬영 중이다.
역시 ‘매스터피스’ 시리즈의 하나인 ‘업스테어즈, 다운스테어즈’를 연상시키는 ‘다운턴 애비’는 1910년에 즉위한 국왕 조지 5세의 통치기간에 요크셔 카운티의 다운턴 애비에서 벌어지는 로드 그랜담(로버트 크롤리를 이렇게 부른다)의 가족과 친척과 친지와 하인들의 얘기로 시즌 5는 영국 사회가 서서히 현대화하면서 귀족계급이 신분의 변화를 느끼게 되는 1924년에 끝났다.
수많은 인물들이 나왔다 사라지고 또 새 인물이 등장하면서 드라마가 엮어지는데 주요 인물만 해도 수십명에 이른다. 이들이 각자 사연과 비밀이 있고 또 사랑하고 이별하니 그 사정이 얼마나 구구각색이겠는가.
다운턴 애비의 주인은 권위 있고 인자한 로드 그랜담(휴 본느빌)과 그의 돈 많은 현모양처 미국인 아내 레이디 코라(엘리자베스 맥거번). 과거 한 때 돈 많은 미국 여인들이 거액의 지참금을 싸들고 와 영국의 돈이 궁한 귀족 남자들과 결혼했는데 코라도 그 중 하나다.
이들 부부의 장녀로 차가운 젊은 미망인 메리(미셸 도커리)를 비롯한 딸들과(로드 그랜담의 사촌남자 상속자는 타이태닉호의 희생자다) 친척과 친지들이 위층 사람들이요, 우두머리 하인인 미스터 카슨(짐 카터)과 우두머리 하녀 미시즈 휴즈(필리스 로간)를 비롯한 하녀와 발레와 후트맨과 쿡들이 아래층 사람들.
그런데 하인층에서도 계급의식이 위층만큼이나 철저해 미스터 카슨이 식당엘 들어오면 모두들 기립한다. 어깨에 힘 들어간 위층 사람들의 얘기도 재미있지만 이에 못지않게 흥미 있는 것이 아래층 사람들의 시시콜콜한 얘기다.
위층 사람들 중에(다운턴 애비에서 떨어진 곳에 살긴 하지만) 톡톡 튀는 사람이 로드 그랜담의 어머니인 백작 미망인 바이올렛(매기 스미스-시즌 6로 드라마에서 퇴장할 예정이라고 한다). ‘앙시앙 레짐’의 전형적인 인물인 이 냉소적인 독설가가 “주말, 주말이 뭐야”라며 평민들을 깔보는 발언을 할 때면 웃으면서도 심기가 뒤틀린다. 놀고 먹는 그에겐 매일이 주말이니까 나온 말이다.
아래층 사람들 중에서 내가 가장 관심 있고 흥미롭게 보는 사람은 미스터 카슨이다. 그는 하인을 천직으로 여기는 사람으로 로드 그랜담보다 더 권위적이요 구식이다. 그래서 얼마 전 ‘다운턴 애비’의 세트 방문차 런던에 갔을 때도 나는 저녁식사 자리에서 미스터 카슨의 옆에 바짝 붙어 앉아 그동안 궁금했던 것들을 물어보았다.  
내가 “카슨씨, 당신은 로드 그랜담보다 더 보수적이요 귀족적이네요”라고 말을 건네자 그는 “아무렴 그렇지요”라며 진지한 표정을 지었다. 큰 코와 검고 굵은 눈썹에 묵직한 마스크를  한 그의 육중한 저음이 오페라에 나왔으면 딱 맞겠는데 그래서 내가 “카슨씨, 오페라 출연 제의 받은 적 있나요”하고 물었더니 “나 음치입니다”라며 껄껄대고 웃었다.
2월의 런던답게 런던서 차로 1시간 반쯤 떨어진 다운턴 애비의 실제 모델인 촬영장소 하이클레어 캐슬에 찾아간 날은 하루 종일 비가 내렸다. 뿌연 연무 속에 저 멀리 다운턴 애비(사진)가 보인다. 아는 집이나 방문하듯 반가웠다. 이 캐슬은 1749년에 지은 것으로 현 주인 레이디 카나본이 할리웃 외신기자협회(HFPA)의 우리들을 반갑게 맞았다.
로드 그랜담과 레이디 메리가 도서실에서 리허설을 하는 모습을 구경하고 저택 안팎을 둘러 본(무지무지하게 넓고 크다) 뒤 출연진들과의 기자회견에 이어 점심을 그들과 함께 했다. 줄리안 펠로즈와 매기 스미스를 비롯해 자리에 함께한 배우들이 초면인데도 TV로 자주 봐 구면 같다. 식사 장소에는 귀족들이 사냥할 때 입는 빨간 코트와 검은 모자 등 드라마의 의상이 진열돼 있어 나도 코트 입고 모자를 쓰고 사진을 찍었는데 후에 보니 아주 어색하다. 귀족이 될 팔자가 아닌가 보다.
런던에 돌아와 상류층 프라이빗 클럽인 새빌 클럽에서 미스터 카슨의 “레이디즈 앤 젠틀멘 디너 이즈 서브드”라는 통보에 따라 로드 그랜담과 레이디 코라 등 극중 인물들과 함께 포도주를 겸한 저녁을 들면서 훈훈한 기운 속에 얘기를 나눴다. 제일 궁금한 것이 시리즈가 언제 끝날까 하는 점. 그러나 이에 대해 펠로즈를 비롯해 출연진 모두가 “그 건 나도 몰라요”라고 오리발을 내밀었다. 하긴 미리 알면 재미가 없긴 하지. 시즌 6가 학수고대 된다.    
                                                        <한국일보 박흥진 편집위원/ hjpark1230@gmail.com>

2015년 3월 3일 화요일

‘버드맨’마이클 키튼




“내게‘버드맨’은 큰 축복… 세번이나 다시 봐”

‘배트맨’성공이 짐 된 적 없어, 그냥 꾸준히 일할뿐
 진취적 사고·다양한 인종의 캘리포니아 너무 좋아


제87회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작품, 감독, 각본 및 촬영상을 받은‘버드맨’(Birdman)에 주연한 마이클 키튼(63)과의 인터뷰가 뉴욕의 팰리스 호텔에서 있었다. 키튼은 오스카 남우주연상 후보에 올랐으나 상은‘사랑에 대한 모든 것’에서 스티븐 호킹 박사로 나온 영국의 젊은 배우 에디 레드메인이 탔다.‘버드맨’은 한물간 할리웃 스타 리간이 브로드웨이 무대에서의 재기를 시도하는 블랙 코미디다. 영화에서 열연을 한 키튼은 지난 1월 기자가 속한 할리웃 외신기자협회(HFPA)가 주는 골든 글로브 남우주연상(코미디/뮤지컬 부문)을 받았다.  간편한 차림에 머리를 짧게 깎은 대머리인 키튼은 나이보다 젊어 보였는데 처음에는 긴장한 태도로 질문에 대답했으나 시간이 가면서 긴장을 풀고“헤 헤”하며 웃고 농담도 섞어가면서 매우 진지하게 대답했다. 눈초리가 강렬하고 탄탄한 에너지가 넘쳐흘렀는데 다소 냉소적인 사람이라는 인상을 받았다.

―영화에는 대사가 많고 또 말하는 속도도 빠른데 사전에 충분한 리허설을 했는가.
“알레한드로의 뜻대로 만들기 위해선 리허설이 꼭 필요했다. 그래서 한 달간 리허설을 했다. 마치 실제 연기하듯이 모든 배우가 참가해 단어 하나도 빼지 않고 또 동작도 실연과 똑같이 했다.”

―당신은 히트작 ‘배트맨’으로 빅스타가 됐다가 그 후 활동이 뜸했는데 마치 그 상황이 이 영화와 비슷하다. 이 영화의 주인공이 ‘버드맨’의 망령에 시달린 것처럼 당신도 ‘배트맨’의 망령에 시달렸는가.
“난 그런 망령에 시달리는 사람이 아니다. ‘배트맨’에 나온 것은 행운이었지만 이 영화에 나온 것은 그보다 훨씬 더 큰 행운이다. 이 영화는 그 누구도 만들어본 적이 없고 또 나도 해본 적이 없는 아주 독특한 영화다. 매우 하기 어려운 영화요 순수예술인데 나는 어려운 것과 순수예술을 좋아한다.”

―영화는 명성과 자만에 관한 얘기인데 당신은 명성에 의해 어떤 영향을 받았나.
“명성에 대해 고맙게 생각해야 된다. 난 명성이 주는 부담에 대해 불평하지 않는다. 그런데 보통 젊은 여배우들이 명성의 압박에 시달리는 것 같다. 그들은 잡지 표지를 장식하기 때문인 것 같다. 또 사람들이 그들에게 집착하고 따라다니기 때문이기도 한데 그와 반면에 난 아주 따분한 삶을 살고 있다.”

―리간은 영화배우인데 왜 연극으로 재기를 시도하는가.
리간(마이클 키튼)의 뒤를 그의 망령과도 같은 버드맨이 따르고 있다.
“일반인이나 배우들 중 진짜 연기는 무대 위에서 하는 것이라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연극은 철저한 훈련과 나름대로의 엄격한 규율이 있어서 모두가 다 쉽게 할 수가 없다. 그래서 사람들은 그것을 보다 높이 평가하는 것 같다. 리간이 무대를 선택한 까닭에도 그런 이유가 조금은 있다. 그는 자신의 불안한 처지를 무대를 통해 보상받고자 한 것이다. ‘제발 날 사랑해 주세요’라고 말하고 싶었던 것이다.”       

―영화에서 팬티바람으로 타임스퀘어를 걸은 기분은 어땠는지.
“내가 진짜 돈 사람이라는 것을 증명했다. 그러나 배우란 무언가를 저지르고자 하는 사람들이어서 어떤 일이라도 하게 된다. 아마 수영을 못하는 배우에게 영불해협을 수영해 건너라고 해도 할 것이다. 난 그 장면에 대해 너무 심각히 생각 안 하고 일상사 하듯이 했다.”

―감독은 영화를 의식의 흐름의 영화라고 했는데 당신은 영화를 찍을 때 어떤 의식이었는가.
“그에 관해 우리는 리허설과 함께 실연을 할 때도 계속해 얘기했다. 근본적으로 말하자면 난 내게 주어진 일을 했을 뿐으로 각본 속 인물의 마음상태에 어떻게 감정적으로 다다를 것인가에 대해 생각했다. 리간은 깊은 어둠에 빠졌다가 삽시간에 우스워지는가 하면 또 진지하다가 곧 이어 불안한 상태가 되는 역이어서 촬영 내내 정신을 바짝 차려야 했다. 그래서 때론 집에 와서도 그를 떠나지 못했다.”

―당신은 그동안 활동이 뜸했다고 생각하지 않는가.
“꼭 그렇지도 않다. 아무도 보진 않았으나 한 일들이 꽤 많다. 그리고 그동안 내가 별로 신통치 못한 영화에 나왔던 것도 사실이다.”

―당신은 스탠드업 코미디를 비롯해 다양한 활동을 하면서 오랜 연예계 생활을 해왔는데 그 동안 영화산업이 어떻게 변화했다고 생각하는가.
“내가 그에 대해 말할 올바른 사람인 줄 모르겠다. 그러나 난 리간처럼 할리웃의 사사건건에 집착하는 사람이 아니다. 나는 대부분의 경우 내 본능을 믿는다. 나는 내가 보지 못했던 것들에 대해 매력을 느낀다. 나는 독창적이요 흥미 있고 또 흥분되는 것을 늘 찾고 있다. 난 적기에 적소에 있는 행운을 누렸는데 특히 ‘비틀주스’와 ‘배트맨’을 감독한 팀 버튼과 함께 일한 것은 큰 행운이었다. 팀이야 말로 진정한 예술가다.”

―‘배트맨’의 성공 이후의 당신의 여정에 관해 말해 달라. 편했나 아니면 힘들었나.
“그것은 큰 결실로 난 정말로 고마워하고 있다. 그로 인해 내가 반드시 하지 않아도 될 것에 대해선 거부권을 행사할 수가 있게 됐다. 그러나 그것이 반드시 좋은 것만은 아니다. 내가 ‘배트맨’으로 국제적으로 성공하는 축복을 받은 이후 더러 영화에 나오긴 했지만 활동이 뜸했던 것은 아내와 헤어진 뒤 혼자 어린 아들을 돌봐야 했기 때문이기도 하다. 그리고 제공되는 영화들이 엉터리가 많은 것도 또 다른 이유다. 나는 영화에 나오려고 찾아다니는 사람은 아니지만 먹고 살아야 한다는 것도 잘 알고 있다. 또 나는 내가 하는 일을 좋아한다. 그러나 나는 리간처럼 자신의 과거 성공의 그림자를 등에 짊어지고 다니지는 않는다.”

―당신은 목장에서 사는 것으로 아는데.
“연중 일부분은 거기서 산다. 난 어렸을 때 펜실베니아주 서부의 시골에서 자라 우리 7남매가 모두 숲과 들을 뛰어다니면서 살았다. 변소도 집 밖에 있었다. 그래도 난 우리 집이 세상에서 제일 멋있는 집이라며 좋아했다. 나는 그래서 방 안에 오래 있지 못한다. 늘 신체적 공간을 유지하기 위해 걷는다. 그렇게 동부에서 자란 나는 늘 영화를 보면서 서부를 그리워했다. 언제나 서부에 가고 싶어서 20세 때 쯤에는 애리조나주의 인디언 거주지역에서 일도 했다. 그래서 시골에 사는 것은 나의 어릴 적부터의 꿈이었다. 내가 사는 목장은 작가와 화가와 사진작가들이 모여 사는 동네다. 아침에 일어나 커피 끓여 마시고 이메일 보고 개와 산책을 하고 이웃과 할 일을 얘기하다 보면 어느 새 저녁이 된다.”

―LA에서의 삶과 목장에서의 삶을 어떻게 균형을 맞추는가.
“나는 목장 없이는 못 살지만 LA와 캘리포니아도 매우 좋아한다. 캘리포니아는 훌륭한 곳이다. 사람들이 이 곳을 비판하는 것은 질투 때문이다. 캘리포니아는 앞서 생각하는 곳으로 그 생각이 처음에는 미친 것처럼 여겨지다가도 결국은 세계가 그것을 따르게 마련이다. 그리고 또 이곳은 인종적으로도 온갖 인종이 모여 살아 아주 흥미 있다. 차로 5시간만  달리면  완전히 다른 세상에 도착하게 되는 것이 캘리포니아다.”

―이 영화에서처럼 왜 영화배우들이 연극 무대에 서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하는가.
“사람마다 차이는 있겠지만 그것은 중요하다. 영화와 연극은 완전히 다른 근육을 지녔다. 연극의 이점은 오랜 리허설이다. 3~4주씩 연습하다 보면 극중 인물이 완전히 자기 것이 된다. 그리고 연극은 매일 같이 달리 연기할 수 있지만 영화는 단 한 번의 연기가 필름에 담겨지게 마련이다. 나는 대학 때 연극을 잠깐 한 뒤로는 별 경험이 없는데 아주 즐거웠다. 최근에 와서 나는 연극 대본을 많이 읽고 있다. 그러나 한 가지 말할 것은 연극배우가 영화배우보다 반드시 나은 배우라고는 할 수 없다는 것이다.”  

―당신의 연기가 격찬을 받고 있는데 기분이 어떤지. 이 영화가 당신 생애의 새로운 전기가 되리라고 생각하는가.
“정말로 기분이 좋다. 새 전기라는 면에서는 그럴 수도 또 아닐 수도 있다. 근본적으로 나는 같은 일을 하고 있다. 나는 꾸준히 같은 일을 하는 스타일이다. 이 영화에 나오게 된 것은 정말로 축복이다. 난 벌써 영화를 세 번이나 봤는데 앞으로도 얼마를 더 볼지 모르겠다. 어떤 때는 영화에 너무 몰입해 내가 나온 것도 잊을 정도다.”

―이 영화 이후 당신에게 출연 제의가 쇄도할 것이 뻔한데 그것을 원하는가.
“난 일하는 것을 즐긴다. 사람에겐 일이 매우 중요한 것이다. 난 지금 ‘스팟라이트’라는 영화에 출연 중이다. 보스턴 글로브가 폭로한 보스턴 가톨릭교구 신부들의 아동 성추행에 관한 실화인데 각본과 감독(탐 맥카시)과 배우들이(마크 러팔로와 레이철 맥애담스) 다 좋다. 그러니 난 2연타 히트를 하게 되리라고 믿는다. 그러나 나는 흥분하지 않고 내 갈 길로 서서히 가고 있다. 한 가지 신통한 일은 이 영화 후 그 동안 몇 년간 한 마디 없던 영화계 사람들이 갑자기 내게 전화를 걸어와 ‘아이 러브 유 마이클’이라고 축하했다는 사실이다.”
                                                          <한국일보 박흥진 편집위원/ hjpark1230@gmail.com>


포커스 (Focus)


닉키(윌 스미스·왼쪽)와 제스(마고 로비)가 첫 대면을 하고 있다.

사기·소매치기로 도배, 로맨스까지 뒤범벅


로맨스와 코믹 터치를 곁들인 사기꾼들과 소매치기들의 한탕 영화로 겉만 번드르르하지 흡인력이 모자라는 쇼윈도의 장식용 고급 드레스 같은 작품이다. 처음부터 끝까지 사기를 치고 소매치기를 하고 내기를 하는데 마치 사기 치기 교본을 보는 것 같다.
수퍼스타 윌 스미스와 ‘월스트릿의 늑대’에서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의 애인으로 나온 호주산 섹시한 신성 마고 로비가 사기꾼 선생과 제자로 나와 만났다 헤어졌다 하면서 로맨스를 엮지만 스미스가 공연히 심각한 표정을 지으면서 생기를 잃어 둘 간의 화학작용도 미적지근하고 또 러브 신도 어색하다. 스미스보다는 로비가 더 화끈하다.
모든 것이 사기여서 또 사기 당하는구나 하는 느낌 때문에 내용에 빠져들기가 어려운데 플롯이 너무나 황당무계하고 터무니가 없어 혀를 내휘두르게 된다. 뉴욕과 뉴올리언스 그리고 부에노스아이레스에서 찍은 화려한 촬영과 부와 사치와 로비가 수시로 바꿔 입는 드레스 같은 눈요깃거리를 즐기면서 속빈 강정 같은 영화의 허구를 즐길 사람도 있겠으나 세련미란 전연 없는 영화다. 진짜로 잘 만든 사기영화를 보려면 ‘게임의 집’과 ‘그리프터즈’와 ‘스팅’을 보기를 권한다. 
영화에서 눈알이 돌아갈 정도로 재빠른 몽타주로 이어지는 소매치기 장면은 무려 25만명을 털었다는 소매치기 아폴로 로빈스의 자문을 받은 것이다. 
이 세상에 사기 치지 못할 것이 없다며 자신만만한 소매치기요 사기꾼인 닉키(스미스)가 자신의 수제자가 될 섹시한 제스(로비)를 처음에 만나는 곳은 뉴욕의 고급 호텔 식당. 물론 이 만남부터가 사기행각의 하나다.  
닉키는 제스를 제자 겸 애인으로 삼고 수십명에 달하는 졸개들과 함께 풋볼경기가 있는 뉴올리언스로 소매치기 원정을 간다. 주말 인파로 붐비는 프렌치쿼터에서 잽싸게 행해지는 소매치기 장면이 영화에서 가장 볼만한 것. 여기서 얻은 수확이 무려 100여만달러. 
닉키와 제스는 이 돈을 가지고 풋볼경기가 열리는 수퍼돔의 귀빈실로 들어간다. 여기서 닉키는 거부의 중국인 도박꾼 리유안(BD 웡이 꼭두각시처럼 논다)과 내기를 하나 계속해서 진다. 내기의 액수는 200만달러까지 오른다. 믿거나 말거나인데 과연 최후의 승자는 누구일까요. 그리고 닉키는 느닷없이 제스를 내버린다. 
그로부터 3년 후 자동차 경주 포뮬라 1이 열리는 부에노스아이레스. 닉키는 오만한 거부로 경주팀을 소유한 가리가(로드리고 산토로)에 고용돼 가리가의 라이벌인 호주인 매큐언을 사기 치기로 계약한다. 매큐언에게 가리가의 비밀 연료첨가제 성분 공식을 판다는 것이다. 여기서도 수백만달러가 오가는데 도대체 믿어지지가 않는다.  
그런데 아뿔사 가리가의 애인이 나타나는데 그 여자가 제스가 아닌가. 우연이 판을 치는 영화다. 닉키와 제스 간의 애정 고백과 사랑의 줄다리기가 지루하게 곁가지를 치면서 닉키의 과거가 설명된다.
한편 의심 많은 가리가는 닉키를 철저히 믿지 못해 자기의 나이 먹은 킬러 하수인 오웬스(제럴드 맥레이니가 잘 한다)로 하여금 닉키의 행동을 감시하도록 시킨다. 클라이맥스에 가서 또 한 번 사기가 벌어지는데 이 부분은 ‘스팅’의 장면을 도용했다. 글렌 피카라와 존 레콰 공동감독(각본 겸).R. WB. 전지역. ★★★(5개 만점)  <한국일보 박흥진 편집위원/ hjpark1230@gmail.com> 

에벌리 (Everly)


에벌리가 암살자들을 향해 총을 난사하고 있다.

‘일당백’여전사의 만화같은 액션극


기가 막히는 영화다. 보면서도 믿을 수가 없는 잔인하고 끔찍하고 유혈 폭력이 난무하는 액션 스릴러 복수극으로 퀜틴 타란티노의 ‘킬 빌’의 싸구려 판이다. 너무 잔인하고 피가 철철 넘쳐흘러 보다가 포기했다가 다시 나머지 부분을 보니 역시 끔찍하고 역겹긴 하나 코믹하고 어처구니없는 내용의 만화를 보는 재미마저 있다. 철저한 액션장르의 팬들 용이다.
볼만한 것은 영화를 혼자 걸머진 히스패닉 섹시스타 셀마 하이엑의 혼신의 연기. 등에 화려한 문신을 한 하이엑이 주먹과 발과 함께 수류탄, 기관총, 단검, 장검 그리고 권총과 청산가리 등 온갖 흉기를 동원해 자기를 죽이려고 물밀 듯이 몰려오는 암살자들을 처치하는 모습이 가히 성난 암사자 같다. 브라바!
피가 흥건히 흐르는 가운데서도 낄낄대고 웃게 되는 다크 코미디이기도 한 영화의 내용은 별 것 없다. 잔인한 일본인 애인 타이코(히로유키 오타나베)를 배신하고 아파트에 진을 친 에벌리(하이엑)를 처리하기 위해 타이코가 파견한 온갖 유형의 암살자들을 에벌리가 혼자서 맞아 싸우는 것이 전부다. 
무대는 아파트의 한 방과 이 방 건너의 다른 방 그리고 복도와 엘리베이터로 대부분의 액션은 에벌리의 방에서 일어난다. 파견된 킬러들 중에서 가관인 것은 새디스트(토고 타가와)와 마조키스트(마사시 후지모토). 만화 속에서 걸어 나온 것 같은 이들이 싸구려로 웃기는 대사와 인상을 쓰면서 에벌리와 난투극을 벌이는데 그 결과가 끔찍해 차마 눈 뜨고 보기 힘들 정도다. 이 중 하나는 청산가리 등 각종 치명적인 화학제를 살상무기로 쓴다. 
에벌리는 한 아파트에 4년간이나 갇혀 타이코로부터 강간을 당하며 살다가 탈출을 결심한 것인데 문제는 타이코가 에벌리의 어머니와 어린 딸의 소재지를 알고 있는 것. 그래서 에벌리는 이 둘을 자기 아파트로 불러들인 뒤 이들을 보호하면서 암살자들과 대결하느라 죽을 고생을 한다.
시뻘건 물감으로 그린 살아 있는 만화 같은 영화는 잔인무도함을 달래느라 새카만 유머를 자주 사용하는데 그 중 하나가 에벌리의 총을 맞고 소파에 앉아 죽어가는 안경을 낀 샌님 스타일의 일본인 암살자(아키에 코타미)와 에벌리의 대사. 
한편 타이코는 개별 암살자들 외에도 검은 정장차림의 졸개들을 떼거리로 파견하는데 이 중 그 누구 하나도 살아남는 자가 없다. 이를 악물고 암살자들을 황천으로 보내는 에벌리의 결의가 가공한데 그러자니 그가 온 몸에 입는 총상이 한둘이 아니다. 
과연 에벌리는 살아남을 것인지. 마침내 에벌리를 사랑한다는 타이코가 정장을 하고 아파트에 들어선다. 그리고 둘 간에 애증이 얽힌 대격전이 벌어진다. 때는 크리스마스로 영화 간간이 ‘고요한 밤 거룩한 밤’이 흐르면서 아기 예수의 탄생을 찬양하는데 이것이 영화의 살육과 묘한 대조를 이룬다. 조 린치 감독. R. Radius. 전지역. ★★1/2(5개 만점)
                                                         <한국일보 박흥진 편집위원/ hjpark1230@gmail.com>

더블린 사람들




잔 비가 내리는 가운데 더블린 공항에서 숙소인 쉘번 호텔까지 가는 차 안에서 안내원이 “2월에 더블린에 오면서 우산을 안 가져 오다니”하면서 핀잔을 준다. 그는 이어 “이런 날은 펍에서 기네스 마시기 딱 좋은 날”이라고 권주사를 건넸다.
차창 밖으로 새뮤엘 베켓다리가 걸린 리피강이 도심을 가로지르는 아담한 더블린을 바라보자니 학생 때 읽은 제임스 조이스의 ‘더블린 사람들’이 생각난다. 그 때 나는 이 15편의 단편들로 구성된 소설과 함께 조이스의 성장소설 ‘젊은 예술가의 초상’을 읽으면서 더블린에 대한 막연한 동경을 품었던 기억이 난다.
아일랜드 헌법이 여기서 초안됐다는 1824년에 지은 쉘번에 여장을 풀자마자 나는 안내원의 권유대로 할리웃 외신기자협회(HFPA) 독일인 동료기자 엘마와 함께 호텔 인근의 80년된 오도노휴즈 펍엘 들렀다. 평일인데도 펍은 술꾼들로 입추의 여지가 없었다. 기네스를 시키면서 바텐더에게 “늘 이렇게 초만원이냐”고 물었더니 그는 “그렇다”며 고개를 끄덕였다.
이 펍은 유명한 포크그룹 ‘더블리너즈’가 활동을 시작한 곳으로 이 날도 펍 한구석에 대여섯명의 음악인들이 앉아 맥주를 거푸 마시면서 기타와 밴조와 아코디언과 플룻을 치고 켜고 불면서 아이리시 음악을 연주했다. 손님들 들으라기보다 자기들이 더 즐기는 것 같았다. 나도 기네스와 아이리시 위스키 재미슨을 번갈아 마시면서 신나는 리듬에 발장단을 맞추다가 아이리시 음악의 특유한 멜랑콜리 기운이 감도는 서정적인 곡이 연주될 때면 감상에 푹 젖어 들었다. 기네스와 재미슨의 완벽한 화학작용 탓이려니.
아이리시들 정말로 술 좋아한다. 꼭 한국 사람들 닮았다. 누가 누구를 먼저 닮았는지는 모르겠지만 아이리시와 한국 사람은 닮은 데가 많다. 우선 문학적이다. 조이스와 베켓, 오스카 와일드와 예이츠 그리고 조지 버나드 쇼와 브람 스토커 등이 다 아이리시 문학인들이다. 그리고 두 나라는 다 피점령국의 압박과 설움을 겪어야 했다.
아이리시들은 또 감정적이요 울기를 잘 하고 술 마시면서 떠들고 노래하고 춤추다가 싸움박질 까지 하는 것도 서로 닮았다. 그래서 한국을 동양의 애란이라고도 했다. 이런 아이리시들의 특징은 존 포드가 감독하고 존 웨인과 모린 오하라가 나온 ‘아일랜드의 연풍’(The Quiet Man)에서 잘 그려졌다.
아이리시 술꾼 중에서 유명한 사람이 배우 스펜서 트레이시다. 그는 평소 술을 한꺼번에 몰아 마시고 대취하곤 했는데 그래서 영화사에서 그의 촬영현장에 구급차를 따라 보내기까지 했다는 설이 있다.  
아이리시 영어는 영국 영어보다 액센트가 훨씬 더 심해 무슨 소리를 하는지 알아듣기가 힘들 때가 많다. 그런데 그들의 말은 매우 운율적이어서 듣기가 좋다. 아이리시 노래가 아름다운 것이 이해가 간다.    
아일랜드하면 궁금한 것이 영국이 점령한 북아일랜드의 아일랜드 귀속문제다. 그래서 안내원에게 “아일랜드 사람들은 아직도 북아일랜드를 되찾기를 원하느냐”고 물었더니 그는 “그것은 아주 미묘한 문제여서 대답하기가 어렵다”고 말했다.
이번에 클로버 색깔 초록의 나라 아일랜드를 찾아간 것은 케이블 TV 쇼타임의 시리즈 ‘페니 드레드풀’의 세트방문(사진)과 출연진 인터뷰 때문이었다. 이 시리즈 제목은 19세기 영국에서 나온 선정적이요 무서운 주제를 다룬 싸구려 출판물을 말한다.
시리즈는 오스카 와일드의 ‘도리안 그레이의 초상’의 주인공과 브람 스토커의 ‘드라큘라’의 인물들 그리고 메리 쉘리의 프랑켄스타인과 그가 창조한 괴물 등과 함께 온갖 잡귀들이 나와 난리법석을 떠는 공포물이다.
우리는 프랑켄스타인의 실험실과 초상화로 사방 벽을 가득 메운 도리안 그레이의 리빙룸 그리고 해골 샹들리에로 가꿔진 저택 및 시리즈용 의상실 등을 둘러본 뒤 그레이의 접견실에서 출연진과 인터뷰를 했다. 먼저 납치당한 딸을 찾으려고 몸부림치는 탐험가 말콤 머리경 역의 영국 배우 티머시 달턴을 만났다.
그는 ‘리빙 데이라이츠’와 ‘라이센스 투 킬’ 등 2편의 007시리즈에서 제임스 본드로 나왔다. 6순의 나이에도 늠름하고 섹시했는데 유머가 많은 호인이다. 달턴에 이어 미국 배우 조시 하트넷과 귀신을 자기 몸 안에 불러들일 수 있는 수수께끼 같은 여인 바네사 아이브스 역의 프랑스 배우 에바 그린을 인터뷰했다. 그린은 유럽 여인답게 젖가슴 노출을 대수롭지 않게 여기는 배우로 산성이 있는 어둡게 아름다운 여자다. 그린은 007시리즈 ‘카지노 로열’에서 본드 걸로 나왔다.        
비는 하루 종일 쉬었다 내렸다 했다. 이러니 아이리시들이 술 안 마시고 배겨낼 재간이 없겠다. 호텔로 돌아와 몸과 마음에까지 묻은 물기를 털어내려고 바에 들렀다. 아일랜드 특산물인 우울을 선물로 받아들고 다음 목적지인 런던으로 떠났다.
                                                      <한국일보 박흥진 편집위원/ hjpark1230@gma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