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이야기

2015년 2월 10일 화요일

47명의 로닌 (The 47 Ronin·1941)


쇼군의 궁정 복도에서 주군 아사노(오른쪽)가 칼을 뽑아 키라를 살해 하려다 제지당한다.

주군 잃은 47인의 사무라이들 '복수극'


일본의 명장 켄지 미조구치의 대하 사무라이 복수극으로 1부와 2부로 구성된 상영시간 241분짜리 흑백 걸작이다. 일본어 제목은 ‘겐로쿠 추신구라’(Genroku Chushingura)로 이 내용은 그동안 여러 차례 영화로 만들어졌다. 지난해에는 키아누 리브스 주연으로 역시 ‘47명의 로닌’이라는 제목으로 만들어져 개봉됐으나 비평가들의 혹평과 함께 흥행에서도 참패했다.
영화의 내용은 실화로 억울한 죽음을 당한 주인의 복수를 하는 47명의 주인 없는 사무라이인 낭인(로닌)의 피비린내 나는 활극으로 이 얘기는 일본의 전설이 되다시피 했다. 체면과 명예를 생명보다 더 중시하는 일본 사람들의 구미에 딱 맞는 내용이다.
미조구치는 1941년 일-중 전쟁 때 군부에 의해 충성과 희생을 강조하는 선전용으로 이 영화를 만들었으나 인간성을 중시하는 그의 솜씨가 역연하다.
1701년 에도(옛 도쿄)시대. 쇼군의 궁정 복도에서 라이벌 주군들인 타쿠미노카미 아사노와 교활한 키라 간에 싸움이 일어나면서 아사노가 키라를 죽이려고 하다 주위의 만류로 싸움이 끝난다. 이에 노한 쇼군은 칼을 빼어든 아사노에게 할복자살을 선고한다. 그리고 아사노의 땅과 저택도 몰수당한다. 그러나 쇼군은 키라는 처벌 받지 않는다.
이에 아사노의 종들은 모두 뿔뿔이 떠나고 그의 47명의 사무라이들은 낭인이 된다. 이들은 억울하고 명예롭지 못한 죽음을 당한 주군의 복수를 위해 키라의 집을 공격한 뒤 그를 살해하기로 다짐한다.
그런데 낭인들의 리더인 쿠라노수케 오이시는 처음에는 복수보다 아사노 가문의 명예를 되살리기 위해 쇼군에게 아사노의 동생 다이가쿠를 주군으로 아사노 가문을 부활시켜 달라고 탄원한다.
그러나 이 같은 탄원이 1년 후 쇼군으로부터 거절당하면서 오이시와 그의 46명의 사무라이들은 키라의 집을 공격, 키라를 살해하고 주인의 복수를 한다. 그리고 이들은 쇼군의 명에 따라 모두 할복자살한다. 체면과 명예를 위해서는 죽음도 불사하는 사무라이의 불문율인 부시도를 따른 집단자살이다. 초주로 카와라사키, 요시자부로 아라시, 우타에몬 이치가와 공연. 15일 하오 7시 해머뮤지엄 내 빌리 와일더극장(윌셔와 웨스트우드 310-206-8013).  ★★★★½(5개 만점)
                                                              <한국일보 박흥진 편집위원/ hjpark1230@gmail.com>

아카데미 단편상 후보작들

긴 여운 남기는 다채로운 삶의 순간순간들…


#라이브 액션상 후보작

*‘아야'(Aya·이스라엘·40분)-공항에서 사람을 기다리던 젊은 여인이 우연히 피아노경연 대회에 참석차 이스라엘을 찾아온 덴마크 남자 피아니스트를 차에 태우고 예루살렘까지 가면서 대회를 나누는 2인극. 은밀한 스릴마저 느끼게 되는 작품으로 끝이 아련한 분위기를 자아낸다.
*‘파르바네'(Parvaneh)
*‘부갈루와 그래암'(Boogaloo and Graham·영국·14분)-에이레공화군이 영국군에 대해 테러를 감행하던 어두운 시기 아일랜드의 벨파스트. 사람 좋은 아버지가 두 어린 아들에게 병아리를 애완용 선물로 준다. 두 아이는 이 병아리들을 정성껏 돌보며 키우고 사랑하는데 병아리가 커서 닭이 되자 아빠와 엄마가 이 닭들을 잡아먹으려고 하면서 형제의 강력한 반발을 받는다. 따스하며 약간 감상적이다.
 *‘버터 램프'(Butter Lamp·프랑스와 중국·16분)-티베트의 시골 사람들이 떠돌이 사진사가 마련한 디즈니랜드와 베이징 올림픽 등 갖가지 배경사진 앞에서 가족촬영을 한다. 배경사진 중에는 금성(Gold Star)사 로고도 보인다. 단순하고 약간 황당한 코미디.
 *‘파르바네'(Parvaneh·스위스·25분)-스위스의 먼 시골에서 일을 하면서 돈을 모은 아프가니스탄 난민소녀가 고향에 있는 가족에게 송금을 하기 위해 취리히에 오나 나이가 어려 송금을 못하게 되자 길에서 만난 말괄량이 스위스 소녀에게 부탁한다. 스위스 소녀는 송금액의 10%를 수수료로 받고 송금을 대행하기로 하나 환전소가 문을 닫는 바람에 둘이 클럽 등을 돌면서 밤의 취리히를 즐긴다. 고운 작품이다.
 *‘생명의 전화'(Phone Call·영국·21분)-생명의 전화에서 일하는 여자(샐리 호킨스)가 아내를 잃고 슬픔에 빠져 자살을 시도하려는 나이 먹은 남자(짐 브로드벤트)의 전화를 받고 그와 대화를 나누면서 남자의 아픔을 위로하고 그에게 삶의 희망을 불어 넣어주려고 애쓴다. 
12일까지 뉴아트(11272 샌타모니카) 310-473-8530.

#만화상 후보작

*‘비거 픽처'(The Bigger Picture·영국·7분30초)-자기를 잘 보살피라고 보채는 병상의 나이 먹은 어머니를 돌보는 성격과 차림이 판이한 장성한 두 형제 간에 긴장감이 비등한다. 거의 조야한 그림이 영화의 심리상태를 잘 보여준다. 
*‘댐 키퍼'(The Dam Keeper·미국·18분)-붓과 연필로 그린 만화로 마을의 댐을 지키는 외로운 어린 돼지가 학교의 다른 동물들로부터 왕따를 당하면서 시달린다. 환경문제와 함께 아동기의 두려움과 후회 그리고 고독과 우정을 다룬 우화. 
*‘잔치'(Feast·미국·7분)-젊은 남자가 길에서 주워 기르는 항상 배가 고픈 귀여운 강아지의 눈으로 본 인간 세상의 이야기. 일종의 ‘개의 일생’이라고 하겠는데 강아지의 주인에 대한 사랑이 주인의 웨이트리스에 대한 사랑을 결혼으로 이끈다. 디즈니 작품으로 재치 있고 귀엽다.
‘나와 나의 물턴'(Me and My Moulton)
*‘나와 나의 물턴'(Me and My Moulton·캐나다·13분)-1960년대. 건축가인 괴짜 아빠와 역시 별난 엄마를 둔 노르웨이의 세 자매가 엄마 아빠에게 자전거를 사 달라고 조른다. 파격적인 가정에서 사는 어린 세 자매의 평범한 삶에 대한 소원을 그린 영화로 선으로 그린 그림과 알록달록한 색깔이 신선하다. 
*‘단순한 삶'(A Single Life·네덜란드·2분18초)-영화 제목의 노래 한 곡이 담긴 바이닐 싱글 레코드를 받은 젊은 여인의 삶이 노래에 따라 과거와 미래를 오락가락하면서 여인의 일생을 엮는다. 인간의 유한한 삶을 악의 없이 놀려댄 기발 난 영화. 12일까지 뉴아트 극장.

#기록영화상 후보작

*‘위기 핫라인: 재향군인은 1번을 누르세요'(Crisis Hotline: Veterans Press 1·미국·41분)-뉴욕주 북부에 있는 재향군인을 위한 위기센터에서 일하는 사람들과 이들에게 전화를 걸어온 재향군인들과의 대화를 다룬 감정적으로 충격적인 작품. 전쟁 후유증에 시달리면서 자살이나 폭력을 행사하려는 사람들이 마지막으로 구원을 호소하는 음성과 이들의 극단적인 행동을 저지하려는 상담자 간의 대화가 다시 한 번 전쟁의 값비싼 대가를 상기시킨다. 오스카상을 탈 가능성이 많다. (사진)
‘위기 핫라인: 재향군인은 1번을 누르세요'(Crisis Hotline: Veterans Press 1)
 *‘조안나'(Joanna·폴란드·45분)-불치의 병을 앓는 젊은 어머니가 자기가 죽은 뒤 어린 아들이 배울 것을 남기기 위해 블로그를 쓴다.  
*‘우리의 저주'(Our Curse·폴란드·27분)-치명적인 호흡불규칙 증세에 시달리는 갓난 아들을 키우는 젊은 부부의 양육기.
 *‘백정'(The Reaper·멕시코·29분)-멕시코의 도살장에서 가족을 먹여 살리기 위해 25년간 일하면서 하루에 500여마리의 소를 도살하는 백정의 일상기. 어둡게 아름답다
. *‘와잇 어스'(White Earth·미국·20분)-노스다코타의 작은 마을 와잇 어스에 오일 붐이 일자 각양각색의 사람들이 돈을 벌기 위해 이 곳으로 몰려들면서 새 커뮤니티를 구성한다. 이들의 삶 특히 아이들의 삶을 조명하면서 아울러 사회와 환경문제도 다뤘다.  
                                                           <한국일보 박흥진 편집위원/ hjpark1230@gmail.com>

크리스‘듀크’카일




8순의 클린트 이스트우드가 감독한 전쟁영화 ‘아메리칸 스나이퍼’(American Sniper·사진)가 3주 전 캐나다를 포함한 전 북미에서 확대 개봉된 이래 지금까지 연속 흥행 1위를 달리고 있다. 1일 현재 총수입은 2억4,890만달러로 이 영화는 작품과 남우주연상 등 총 6개 부문에서 올해 아카데미상(시상식은 2월 22일에 있다) 후보에 올랐다.
영화는 9.11테러가 일어나자 ‘하느님과 조국과 가족을 지키기 위해’ 해군특공대(SEAL)에 자원입대해 이라크 전선에서 무려 160여명(공식 집계)의 적을 사살, ‘전설’이라 불린 저격수 크리스 카일의 실화다.
흠잡을 데 없이 말끔한 장인적 연출과 체중을 늘린 카일 역의 브래들리 쿠퍼의 연기가 좋은 작품으로 재미도 있다. 그러나 나는 영화를 보면서 그 호전성과 함께 살인과 총기를 예찬한 내용에 아연실색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자칭 반전주의자인 ‘더티 해리’ 이스트우드의 취향에 딱 맞는 영화다.  
영화가 여러 개의 흥행기록을 깨면서 공전의 빅 히트를 하자 연예인들과 정치인들이 편을 갈라 영화에 대한 치열한 찬반론을 펼친 것도 바로 이런 영화의 내용 탓이다. 김정은 암살을 다룬 ‘인터뷰’에 나온 세스 로건과 마이클 모어 같은 진보파 영화인들은 영화를 전쟁 찬미라 비판한 반면 새라 페일린과 뉴트 깅그리치 같은 보수파 정치인들은 카일을 영웅이라고 찬양했다.
모어는 소셜 미디어를 통해 “저격수는 영웅이 아니다. 그리고 침략자들이 더 나쁘다”라고 미국의 이라크 침략을 비판하자 페일린은 “너 같은 자는 크리스 카일의 군화도 닦을 자격도 없다”고 대응했고 깅그리치도 “마이크 모어는 몇 주간 이슬람국가와 보코하람과 함께 있어 봐야 한다. 그제야 ‘아메리칸 스나이퍼’의 참 뜻을 제대로 알 수 있을 것이다”라고 말했다.    
과연 카일은 영웅인가. 유명 방송인 빌 마어는 그를 ‘사이코’라고 지칭했는데 내게는 카일이 전쟁과 살인 중독자로 보인다. 카일은 한 차례 이라크전 복무가 끝나고 아내와 자식이 있는 집에 돌아와서도 가정에 적응 못하고 전선의 전우들을 생각하다가 다시 참전하는데 그에겐 전장이 가정인 셈이다.
나는 카일을 존 웨인이라고 본다. 별명이 ‘듀크’(자기 집 개 이름)였던 웨인은 많은 웨스턴에서 아메리칸 인디언들을 ‘야만인’이라 부르면서 살육했는데 카일도 이라크인들을 ‘야만인’이라 부르면서 사살했다. 웨인이 인디언들을 살육하면서 그들의 땅을 빼앗은 것이나 카일이 ‘그 곳에는 악이 있어 우리는 그 것을 제거해야 한다’면서 이라크를 침략한 것이나 다른 점이 과연 무엇인가. 슈펭글러의 말처럼 역사는 반복한다.
카일의 옹호론자들은 이라크전을 침략이 아닌 민주주의와 자유를 위한 정의의 전쟁이라고 주장하는데 이는 십자군식 사고방식이다. 그러나 MIT 교수인 석학 놈 촘스키의 의견은 이와 다르다. 9.11 사태가 일어났을 때 “거 봐, 내가 뭐라고 했어”라고 촌평한 촘스키는 최근 파리의 주간지 샤를리 에브도에 대한 테러 후 유럽에서 번진 반무슬림 정서에 대해 “이는 서방의 위선”이라고 평했다.
그는 서방을 겨냥한 공격은 테러로 규정돼 비난 받지만 비슷한 인명피해를 낸 서방에 의한 공격은 비난 받지 않고 있다고 지적했다. 역사는 늘 강자가 쓰는 것이어서 사실 서방의 이런 논리는 별로 놀랄 것도 못 된다. 
미국 사람들은 영웅과 애국심을 신봉한다. 10여년이 넘게 계속되고 있는 이라크전과 함께 아프가니스탄전에 시달리고 있는 요즘 미국인들에게 필요한 것이야 말로 카일과 같은 영웅이다. 이것이 영화가 빅 히트하고 있는 이유 중 하나다.
이 세상에서 가장 자유롭고 또 최고의 민주주의 국가인 미국은 아이러니컬하게도 호전적인 국가다. 1일 열려 무려 1억1,400여만명이 TV로 시청한 수퍼보울의 풋볼경기야 말로 미국인들의 이런 호전성을 잘 보여주는 운동이다. 서로 편을 갈라 치고받으면서 땅을 빼앗고 이를 지키려는 이 경기는 옛날에 서부 개척자들과 인디언들의 싸움을 그대로 재연한 것이다. 
이스트우드의 말대로 인류가 끊임없이 서로 싸우고 죽이는 것은 우리의 유전인자 탓인지는 모르겠지만 미국은 민주주의와 자유 수호라는 명목 하에 계속해 해외에서 전쟁을 치르고 있다. 이스트우드의 말처럼 역사는 평화의 편이 아님에 분명하다.
‘아메리칸 스나이퍼’는 카일의 전쟁에 관한 회의와 그와 아내와의 갈등을 비롯한 가정문제 그리고 살인이 인간 영혼과 정신에 미치는 값비싼 대가에 대해서도 언급은 하고 있으나 그것은 킬러영화의 이미지를 무마시키기 위한 양념에 지나지 않는다.
나는 이 영화를 본 사람들에게 올해 아카데미 단편 기록영화상 후보작인 ‘위기 핫라인: 재향군인은 1번을 누르세요’(Crisis Hotline: Veterans Press 1)의 관람을 권한다. 뉴욕주 북부에 있는 재향군인 상담센터의 상담원들과 전쟁 후유증에 시달리면서 자살과 폭력행위를 생각하는 재향군인들과의 전화상담을 다룬 작품이다. 살육을 구사하는 전쟁이 인간의 내면에 남긴 깊은 상처에 전율하게 되는 작품으로 감정적으로 강펀치를 맞는 느낌이다. 
                                                               <한국일보 박흥진 편집위원/ hjpark1230@gmail.com>



2015년 2월 2일 월요일

흑이냐 백이냐 (Black or White)

엘리옷(오른쪽)이 손녀 엘로이즈의 공부를 도와주고 있다.

7세 혼혈소녀 양육권 둘러싼‘흑백 갈등’


자녀 양육과 가족애 그리고 흑백문제를 다룬 감상적인 드라메디로 옛날 영화 분위기가 물씬 풍긴다. 매우 선의적인 온 가족용 영화로 각본을 쓰고 감독한 마이크 빈더의 가족에서 실제로 있었던 일을 바탕으로 만들었다.
아주 온화한 작품으로 흑백문제를 비록 충돌과 갈등이라는 관점에서 다루긴 했으나 결국 흑이냐 백이냐 하는 문제는 우리가 모두 착한 인간성을 지닌 한 인간이라는 것을 깨닫는다면 충분히 해결될 수 있다고 얘기하고 있다.
어떻게 보면 이런 얘기는 누이 좋고 매부 좋고 식의 결론인데 그래서 영화가 재미도 있고 구겨진 데가 없이 잘 만들긴 했으나 극적 충격이나 추진력이 다소 모자라고 또 드라마의 파고도 잔잔하다. 그러나 어린 손녀를 놓고 흑백 맞대결을 하는 두 주인공 옥타비아 스펜서와 케빈 코스너의 강렬한 연기 대결이 볼만하고 언제나 시의에 맞는 얘기여서 관람을 적극 권한다.
LA의 부유한 변호사인 엘리옷 앤더슨(코스너)은 최근에 사랑하는 아내 캐롤(제니퍼 엘)을 자동차 사고로 잃고 슬픔과 실의를 스카치로 달랜다. 그에게 유일한 삶의 기쁨이 남았다면 아내와 함께 갓 나았을 때부터 키운 7세난 흑백혼혈의 손녀 엘로이즈(질리안 에스텔-신인인데 깜찍하게 연기를 잘 한다).
엘로이즈는 엘리옷의 딸이 17세에 출산한 딸로 엄마는 아기를 낳다가 사망했다. 엘로이즈의 흑인 아버지 레지(안드레 홀랜드)는 마약중독자로 감옥에 수감 중이다. 엘리옷은 온 정성을 다해 엘로이즈를 키우는데 그는 겉으로는 무뚝뚝한 할아버지이지만 가슴은 손녀에 대한 사랑으로 가득하다. 이런 모습을 코스너가 눈물겹도록 아름답게 표현한다.
이 집에 엘리옷이 손녀의 수학 가정교사로 남의 집 가정교사 겸 일종의 집안 비서로 실력이 넘치고 재치 있는 흑인 두반(엠포 코아호)을 고용하면서 심각한 가정 분위기에 코믹 터치가 스며든다.
그런데 느닷없이 엘로이즈의 친 할머니 로웨나(스펜서)가 엘리옷을 찾아와 남자 혼자서 어린 손녀 키울 수가 없으니 엘로이즈를 내놓으라고 선언한다. 엘리옷에겐 청천벽력이나 다름없는데 그가 로웨나의 말을 들을 리가 없다. 
LA의 캄튼 흑인 동네에 사는 강철 같은 의지와 불같은 성격을 지닌 황소 눈알을 한 로웨나는 이어 LA 다운타운에서 잘 나가는 조카 변호사 제레마이아(앤소니 맥키)를 시켜 엘리오즈에 대한 양육권 소송을 제기한다. 
여기서부터 엘로이즈를 둘러싼 엘리옷과 로웨나의 감정싸움을 곁들인 치열한 대결이 일어나는데 여기에 한 수 더 떠 엘리옷이 사갈시하는 레지가 나타나 뒤늦게 딸과 관계를 연결하겠다는 바람에 엘리옷은 속을 팍팍 썩이며 스카치를 벌컥벌컥 들이마신다. 
그리고 영화는 법정 드라마 모양을 갖추는데 엘리옷이 홧김에 어쩌다 ‘N’(깜둥이) 단어를 내뱉는 바람에 이 말이 법정에서 엘리옷에게 크게 불리하게 작용한다. 클라이맥스에 엘리옷이 자기 발언에 대해 사과하면서 오랫동안 엘로이즈에 대한 사랑과 흑백문제에 대해 말하는 장면이 가슴을 뭉클하게 만든다. 
코스너와 함께 볼만한 것은 ‘헬프’에서 하녀 역으로 오스카 조연상을 탄 스펜서의 뚝심 좋은 연기다. 그의 큰 눈은 천군만마도 물리칠 수 있는 강함 힘을 발산하는데 단단한 모습과 표정으로 강직하면서도 이해심 있고 선한 근성을 지닌 훌륭한 여인의 연기를 감탄스럽게 해낸다. PG-13. Relativity. 전지역. ★★★½(5개 만점) <한국일보 박흥진 편집위원/hjpark1230@gmail.com>

팀북투 (Timbuktu)

사티마와 키다네와 토야가 텐트집에서 단란한 한 때를 보내고 있다.

회교 근본주의 횡포-가족애 대비


사막에서 유목민처럼 자유롭게 살고 있는 가정의 평화를 가차 없이 유린하는 회교 근본주의의 횡포와 공포 그리고 우행을 신랄하게 비판하면서 아울러 가족애와 단결을 찬양한 아프리카국가 모리타니아의 작품으로 올 해 오스카 외국어 영화상 후보작이다.
영화의 톤이 고르지 못하고 서술도 다소 일관성이 없어 감정적 충격이 약하긴 하나 우리가 잘 모르고 있는 회교 근본주의의 현상을 생생하게 보여주고 있어 시의에도 맞고 또 그것에 대해  배우는 바도 있는 매우 재미있는 드라마다.   
다소 단점은 있지만 인물들의 성격 개발과 묘사가 뚜렷하고 연기도 좋고 또 태양이 작열하는 뜨거운 사막과 원주민들의 삶과 새빨간 진흙집을 비롯해 밝고 다채로운 의상 등 화면을 시적으로 가꾸어놓는 촬영이 아주 훌륭하다.
아프리카 말리의 팀북투는 최근에 회교 근본주의자들이 점령했다. 총을 멘 근본주의자들은 동네를 돌아다니면서 스피커로 각종 금기사항을 발표한다. 흡연과 축구와 음악이 금지되고 여자들은 뜨거운 낮에도 양말과 장갑을 껴야 한다. 
영화는 이렇게 심각하고 어두운 부분을 자주 유머로 다독이고 있는데 금기사항을 발표하는 사람의 언어가 지역 언어가 아니어서 불어와 영어로 통역해야 한다. 그리고 시장에서 생선을 파는 여자가 근본주의자들의 장갑을 끼라는 지시에 “아니 어떻게 장갑을 끼고 생선을 팔라는 말이냐”고 대어든다. 영화는 근본주의자들을 무기 좋아하는 꼭두각시처럼 그렸다. 
마을 밖의 사막에서 텐트를 치고 소 몇 마리를 키우면서 평화롭게 살고 있는 키다네(이브라힘 아메드)는 아내 사티마(툴루 키키)와 12세난 총명하고 독립심 강한 딸 토야(레일라 월랫 모하메드가 예쁘고 연기도 똘똘하게 잘 한다)와 함께 근본주의자들의 직접적인 지배 밖에서       기타도 치고 머리를 가리지도 않고 다소 자유롭게 산다. 이 집의 마지막 식구는 소떼를 돌보는 고아 소년 이사. 키다네 집의 이런 행동은 동네에서 했다가는 공개 매질감으로 영화는 셀폰을 쓰는 현대의 암흑기를 고발하고도 있다.  
그런데 키다네의 소가 동네 어부가 쳐놓은 그물 안으로 걸어 들어가면서 키다네와 어부 사이에 싸움이 일어나고 이 하찮은 분쟁 때문에 키다네 가족은 비극을 맞으면서 전연 기대치 않던 결말에 다다른다.  
보면 볼수록 피부로 직감하게 되는 감각적인 촬영과 아름다운 열사의 사막 그리고 토속적인 음악을 비롯해 월랫 모하메드의 연기 등이 좋은 볼만한 영화다. 아데라마네 시사코 감독. 
PG-13 정도. Cohen Media. 일부지역. <한국일보 박흥진 편집위원/hjpark1230@gmail.com>

켄지 미조구치의 흑백명작 2편

오하루의 인생 (Life of Oharu·1952)
마지막 국화 이야기 (The Story of the Last Chrysanthemum·1939)

오하루의 인생
(Life of Oharu·1952)


17세기 에도시대 자기 집 하인(토시로 미후네)과 사랑을 하다가 집에서 쫓겨난 뒤 귀족의 후처와 창녀와 시녀 노릇을 하면서 당시 남성위주의 일본사회의 계급과 신분의 엄격한 차별의 틀에 갇혀 평생을 불행하게 산 오하루(키누요 타나카)의 한 많은 일생을 그린 심오하고 아름답고 비극적인 드라마. 롱 테이크를 잘 쓰는 미조구치의 촬영이 눈부신 흑백명작.
얼굴과 몸이 모두 고운 오하루는 집에서 쫓겨나 군주의 씨받이로 팔려가 아들을 낳으나 다시 쫓겨나 집으로 돌아온다. 오하루의 아버지는 딸을 다시 창녀로 팔아먹으나 오하루는 여기서도 실패, 이번에는 남의 집 하녀로 팔려간다. 그러나 여기서도 쫓겨난 오하루는 부채 만드는 사람과 결혼하나 남편은 결혼 직후 강도에 피살된다.   
오하루는 절에 들어가 승려가 되려고 하나 여기서도 남자문제 때문에 쫓겨난다. 이어 자기가 아들을 낳아준 군주로부터 다시 부름을 받고 집안의 비밀유지를 위해 연금 상태에 처해진다. 오하루는 아들을 찾아 탈출하나 거지가 되고 만다. 148분. 30일 하오 7시30분. 해머 뮤지엄 내 빌리 와일더 극장(윌셔와 웨스트우드 310-206-8013)) ★★★★½(5개 만점)

마지막 국화 이야기 (The Story of the Last Chrysanthemum·1939) 

남편의 출세와 성공을 위해 자기를 희생하는 여인의 감동적인 드라마. 1885년 도쿄. 유명한 카부키 배우의 양자인 키쿠노수케 오노에(연극배우 쇼타로 하나야기)는 아버지의 대를 이어 배우로서 성공하려고 노력한다. 아직 실력이 모자라는 오노에에게 솔직하게 사실을 말해주는 사람은 오노에 가문의 갓난아기의 유모 오토쿠(카쿠코 모리).
그러나 키쿠노수케의 아버지가 아들과 유모 간의 스캔들을 염려해 오토쿠를 해고하면서 분노한 키쿠노수케는 혼자 연기 수업을 하려고 도쿄를 떠난다. 그리고 오노에를 내연의 처로 맞는다. 키쿠노수케는 아내의 격려를 받으며 연기를 연마, 마침내 도쿄의 유명한 카부키 단체에 입단할 기회를 맞는다. 이에 오노에는 남편을 위해 내연의 처 관계를 단절한다. 
그리고 마침내 키쿠노수케의 아버지도 오토쿠를 아들의 처로 인정하나 오토쿠는 폐병으로 죽음에 이른 처지다. 마치 늦가을 국화처럼 시든 오토쿠는 남편이 무대에서 명연기로 배우로서 승리하는 순간 숨을 거둔다. 흑백. 142분. 2월6일 하오 7시30분. 빌리 와일더 극장. ★★★★½(5개 만점)        <한국일보 박흥진 편집위원/hjpark1230@gmail.com>


아니타의 분수



로마에 가면 동전 몇닢은 꼭 준비해야 한다. 레스피기와 포 에이시즈가 교향시와 노래로 찬미한 트레비 분수에 던지기 위해서다. 던질 땐 분수에 등을 대고 뒤로 던지면서 로마에 다시 올 것을 기원하면 그 소원이 이뤄진다고 한다. 
나도 몇 년 전에 로마에 갔을 때 트레비 분수에 두 번에 걸쳐 매번 1유로짜리 동전을 던졌으면서도 도떼기시장을 방불케 하는 인파에 밀려 소원을 깜빡 잊었었다. 생각하면 지금도 아쉽기 짝이 없다.
콜러시엄과 스패니시 계단만큼이나 유명한 트레비 분수는 영화에도 많이 나온다. ‘로마의 휴일’에서는 로마 주재 미 신문기자 그레고리 펙이 평상복 차림으로 숙소를 빠져나온 공주 오드리 헵번의 사진을 찍으려고 이 분수에 견학차 온 어린 여학생이 목에 건 카메라의 끈을 손가락으로 잡아당기면서 빌려달라고 하다가 수행 여선생의 눈총을 받았다.
그리고 애천(Three Coins in the Fountain)에서는 로마에 사는 세 미국인 처녀들이 분수에 동전을 던지면서 로맨스를 기원, 정말로 꿈이 이뤄진다. 오스카상을 받은 이 영화의 주제가는 프랭크 시내트라와 카니 프랜시스 및 포 에이시즈 등 유명 가수와 보컬그룹 등이 노래해 빅 히트를 했다.
그러나 트레비 분수 하면 대뜸 눈앞에 선하게 떠오르는 영화는 이탈리아의 명장 페데리코 펠리니가 감독한 흑백영화 ‘달콤한 인생’(La Dolce Vita·1960)이다. 마치 그리스 신화에서 걸어 나온 여전사 아마존과 같은 풍만한 육체의 아니타 에크버그가 옷을 입은 채로 분수 안으로 첨벙첨벙 걸어 들어가 슬로 댄스를 추는 모습이야말로 저 세상의 것처럼 몽환적이다. 나도 영화를 보면서 아니타의 경악할 지경으로 거대하고 탐스러운 육체가 휘저어대는 율동에 압도당했던 기억이 난다.
어깨 밑으로 내려오는 치렁치렁한 금발에 젖무덤의 절반이 훤히 드러나고 옆이 길게 찢어진 검은 이브닝드레스를 입은 아니타가 폭포처럼 쏟아져 내리는 분수 속에서 긴 두 팔을 각기 아래위로 쭉 뻗은 채 눈을 감고 천천히 춤을 추는 모습(사진)은 몸 둘바를 모르게시리 유혹적인 제스처다. 이 장면 때문에 사람들은 트레비 분수를 지금도 아니타의 분수로 생각하고 있다.
옆에 있다간 다칠 것 같은 위험감을 느끼게 하는 폭발 직전의 힘차게 솟아 오른 거대한 두 개의 활화산과도 같은 젖가슴을 지녔던 스웨덴 태생의 배우 아니타 에크버그가 이달 11일 로마에서 83세로 타계했다.
39-22-37의 몸매를 지녔던 아니타는 20세에 미스 스웨덴에 뽑혀 부상으로 미국에 왔다가 할리웃에 들어섰다. 그러나 존 웨인이 나온 ‘블러드 앨리’와 딘 마틴과 제리 루이스가 나온 ‘화가와 모델’ 및 프랭크 시내트라와 딘 마틴이 공연한 ‘텍사스의 4인’ 등 아니타의 할리웃 영화들은 대부분 그의 육체미를 내세운 것들이었다. 그 중 그래도 나은 것이 ‘전쟁과 평화’에서의 헨리 폰다의 부정한 아내 역이지만 영화가 외화내빈이다.        
바이킹의 유전인자를 그대로 물려받은 아니타는 영화의 질과는 무관하게 1950년대 할리웃의 섹스심벌로 군림했는데 이런 그를 대뜸 국제적 스타로 만들어준 감독이 펠리니다. 펠리니는 아니타의 강력한 아름다움과 가득한 육체와 함께 그의 위풍당당한 태도와 귀족적 자세에서 프리 마돈나의 자질을 포착하고 아니타를 ‘달콤한 인생’에 전격 발탁했다.
마르첼로 마스트로이안니가 가십기자로 나온 ‘달콤한 인생’은 당시 로마의 옐로 저널리즘과 사회적 도덕적 타락을 비판하고 풍자한 작품으로 ‘파파라치’라는 말이 여기서 나왔다. 아니타는 이 영화 이후로도 ‘보카치오 70’과 ‘광대들’을 비롯해 ‘인터비스타’ 등 펠리니의 영화에  나오면서 1993년 그가 죽을 때까지 서로를 사랑하고 이해하는 친구관계를 유지했었다.
뭇 남성들을 왜소하게 만들었던 아니타를 놓고 밥 호프는 “스칸디나비아식 전채 이후 스웨덴에서 나온 가장 훌륭한 산물”이라면서 “아니타의 부모는 이로 인해 노벨 건축상을 받았다”고 농담을 했다. 이 보다 한 수 더 뜬 농담은 유명 가수이자 배우였던 에셀 머맨의 것. 머맨은 “아니타는 생각하는 남자의 던스 캡(공부 못하는 아이에게 벌로 씌우는 원추형 모자)이다-합이 두 개”라고 아니타의 벅찬 가슴을 찬양했다.     
그런데 아니타는 할리웃 활동 때 별명이 ‘아이스버그’(빙산)였다. 아니타가 할리웃의 절대군주들과 같았던 제작자와 감독들에게 대놓고 할 말을 했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아니타는 섹스심벌답게 할리웃의 숱한 빅 스타들과 로맨스를 불태웠는데 타이론 파워, 게리 쿠퍼, 에롤 플린, 율 브리너 및 프랭크 시내트라 등이 아니타의 연인들이었다.     
아니타는 결혼을 두 번 했지만 모두 실패하고 사망할 때까지 로마 교외에 있는 집에서 혼자 살았다. 이 집은 ‘인터비스타’에서 나온다. 
나는 아니타의 사망 소식을 듣고 할리웃 외신기자협회(HFPA)의 스웨덴 동료기자 마그너스에게 소감을 물었다. 그는 “내가 어렸을 때 내 엄마와 아빠가 스웨덴을 벗어나 국제적으로 명성을 날린 아니타를 크게 칭찬하는 것을 여러 번 들었다”면서 “그러나 어린 나에겐 아니타는 겁나게 생긴 괴이하고 나이 먹은 여자였다”고 회답했다. 활화산 아니타는 이제 사화산이 됐지만 늘 검은 드레스를 입고 트레비 분수 안에서 우리를 유혹하는 슬로 댄스를 추고 있을 것이다. 
                                                  <한국일보 박흥진 편집위원/hjpark1230@gma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