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이야기

2015년 1월 26일 월요일

겨울 잠 (Winter Sleep)


아이딘(왼쪽)이 자기에 등을 돌린 아내 니할에게 독선적인 말을 보내고 있다.

빈자와 부자의 세상에 대한 엄숙한 탐구


독선적이요 지적으로 오만한 남편과 그의 편견과 냉정한 가슴으로 인해 영육이 피폐해진 젊은 부인과의 부식해 가는 결혼관계를 해부하고 또 사소한 사건으로 말미암아 여러 겹으로 파장을 일으키는 가진 자와 못 가진 자의 관계를 탐구한 터키 영화로 궁극적으로 영혼 탐구의 엄숙한 걸작이다. 
지난해 칸영화제서 대상인 황금종려상을 받았는데 알다가도 모를 일은 15일에 발표한 오스카 외국어 영화상 후보에서 탈락했다는 사실. 기자가 지난해에 본 외국어 영화 중 가장 훌륭한 영화다. 머리를 질끈 싸매고 입시 공부하는 마음으로 봐야 할 대사가 많고 느린 상영시간 196분짜리의 진지한 영화다. 체홉의 작품을 바탕으로 만들었다. 
심오하고 사색적이며 영혼을 압도하는 영화로 칸영화제서 이미 상을 두 번이나 탄 터키의 명장 누리 빌지 세일란(‘기후’ ‘옛날 옛적 아나톨리아에’)이 연출했는데 롱샷으로 찍은 촬영과 암석과 말 달리는 초원 등 황홀한 정경 그리고 배우들의 뛰어난 연기가 절묘하게 조화를 이룬   감동적인 작품이다.
때로는 대사가 너무 길어 부담감을 느끼게도 되지만 그 대사 안에서 인물들의 성격이 표현되고 또 그것으로 인해 작품이 서술되기에 인내심을 갖고 보면 큰 기쁨을 맞보게 될 것이다. 특히 중간 부분에 이르기까지가 인내심이 필요한데 후반으로 가면서 유머마저 곁들여 극적 재미를 주면서 끝에 이르러선 충분한 보상을 받는 기분이 든다.
터키 중부 아나톨리아 지방의 동쪽에 있는 카파도시아의 작은 시골마을이 무대. 수염을 덥수룩하게 기른 중년의 은퇴한 배우 아이딘(할룩 빌지너)은 대지주. 그에게는 젊고 아름답고 총명한 아내 니할(멜리사 소젠)이 있으나 니할은 남편의 천상천하 유아독존식 지식인의 오만과 편견에 내몰리다시피 해 남편과 거의 대화나 관계가 없다. 
카파도시아는 기암괴석과 함께 푸른 초원이 공존하는 풍광이 수려한 곳으로 아이딘은 암석에 난 동굴들을 개조해 관광객을 상대로 한 호텔을 만들고 이름을 오텔로라고 지었다. 그리고 자기는 거실에 죽치고 앉아 동네 신문용 칼럼을 쓴다. 아이딘과 니할을 비롯해 아이딘의 집에 묵고 있는 그의 이혼한 도시 누나 네클라(데멧 크박) 등이 자아내는 을씨년스런 고독의 분위기가 으스스하다.
어느 날 아이딘이 충실한 하인 히다옛(아이베르크 펙칸)이 모는 지프를 타고 마을로 가던 중 아이딘의 소유인 집에 세든 가족의 어린 소년이 지프에 돌팔매질을 하면서 큰 사고가 날 뻔한다. 소년의 아버지는 얼마 전에 출소한 전과자로 실의에 빠져 술만 마신다. 그런데 아이딘은 자기 땅에 사는 여러 못 사는 사람들의 실상을 잘 알면서도 이를 못 본 체한다. 
이에 반해 니할은 동정심이 많은 여자로 동네 학교를 위한 기부금을 걷는데 열심인데 이를 안 아이딘이 니할을 윽박질러 그녀의 좋은 뜻을 뭉개버린다. 
길긴 해도 영화의 중요한 부분은 아이딘과 니할의 상호 충돌하는 대화와 네클라와 아이딘의 대화. 네클라와의 대화에서 부자의 가난한 사람들에 대한 냉소주의가 스며나온다. 아이딘이 오랫동안 도시에 가 있겠다고 나갔다가 샛길로 빠져 들른 친구 집에서 벌어지는 음주장면 등 몇 개의 이색적인 에피소드가 엄숙한 분위기를 다소 녹여줘 보는 마음도 쉬게 한다. 그리고 끝에 일말의 희망이 엿보인다. 
경직되다시피 듬직한 빌지너의 연기를 비롯해 배우들의 연기와 멀리 대자연 안에 하나의 점처럼 있는 인간과 장엄하고 아름다운 정경을 길게 잡은 촬영이 출중하다. 
성인용. 로열(310-478-3836) 등 일부극장.  ★★★★½(5개 만점)  
                                                      <한국일보 박흥진 편집위원/hjpark1230@gmail.com>

흑해 (Black Sea)


로빈슨(주드 로)이 해저에서 건져 낸 금괴를 만져보고 있다.

흑해에 가라앉은 황금을 찾아라


해저에 갈아 앉은 황금을 건지러 가는 현대판 해적 스릴러로 황당무계하지만 재미있는 얘기를 제대로 살리지 못해 산소부족으로 질식사하고 말았다. 당연히 액션 모험 스릴러인데도 케빈 맥도널드 감독(스코틀랜드의 마지막 왕)은 영화 속 인물들의 충돌과 후회와 갈등 묘사에 더 주력, 공연히 심각한 영화가 됐다. 
따라서 잠수함이라는 협소한 공간 안에서 일어나는 말 많은 연극 같은데 주드 로가 육체를 단단히 단련시킨 모습으로 잠수함 선장으로 나와 다부지고 엄격한 연기를 보여주지만 혼자서 영화를 살려낼 재간이 없겠다. 그리고 결말이 어떻게 끝날지도 뻔한 일로 ‘액션, 액션’하고 기다리다 지치겠다.                
난파선 화물구조 작업회사에서 일하던 전직 베테런 잠수함 선장 로빈슨(주드 로)은 회사에서 해고를 당한 뒤 함께 해고된 동료들을 모아 보물찾기에 나선다. 2차 대전 때 소련이 히틀러에게 보내는 금괴를 실은 독일 잠수함이 흑해 해저에 침몰했다는 얘기를 듣고 이를 건져내자는 것이다. 물주는 미국인으로 로빈슨은 소련제 고물 잠수함을 사서 개조한다.
승무원은 영국인 6명과 러시아인 6명 등 총 12명인데 일종의 감시책으로 미국인 물주가 보낸 하수인 대니얼스가 탔다. 영국 선원 중 한 명은 아직 어린 토빈으로 로빈슨은 토빈을 실직 후 자살한 동료 대신 배에 태웠다. 영화는 플래시백으로 로빈슨이 아내와 어린 아들과 헤어졌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로빈슨은 선원들에게 금괴를 건지면 모두에게 똑같이 배분하겠다고 약속하고 잠수함을 흑해로 몰고나간다. 그런데 좁은 배안에 서로를 별로 탐탁지 않게 여기는 거친 두 나라의 뱃사람들이 탔으니 충돌이 일어나지 않을 수가 없다. 이들의 다툼과 함께(말리는 것은 물론 로빈슨) 기계가 고장을 일으키면서 잠수함 영화의 상투적인 것들을 그대로 모방하고 있다.
그런데 황금에 눈이 먼 일부가 사람 수가 줄면 줄수록 자기에게 돌아올 몫이 많아진다는 것을 잘 알고 탐욕에 눈이 멀어 사람까지 잡는다. 마치 해저의 ‘시에라 마드레의 황금’을 연상시킨다. 액션이 가끔 있지만 신통치가 못한데 스릴러가 스릴과 긴장감이 결여돼 맥이 빠진다.
로의 연기가 볼만하고(때론 너무 굳은 표정이긴 하지만) 협소한 공간 안에서 벌어지는 상황을 찍은 촬영과 프로덕션 디자인 등은 좋다. 그러나 해저의 잠수함을 만든 컴퓨터 그래픽은 아주미숙하다. R. 전지역. ★★★(5개 만점)  <한국일보 박흥진 편집위원/hjpark1230@gmail.com>

오스카는 백색이다




해도 너무 했다. 15일 발표된 오스카 각 부문 후보 발표에서 연기상 후보 총 20명 중 흑인은 단 1명도 없었다. 흑인이 이런 처지니 라티노나 아시안은 말할 것도 없다. 연기상 후보 20명이 모두 백인인 것은 1998년 이후 두 번째 있는 일이다.
LA타임스도 사설을 통해 아카데미 회원들의 소수계 푸대접을 강력히 비판하면서 연기와 감독 및 각본 부문에서 수상 후보에 오른 35명 중 소수계는 멕시칸 감독 알레한드로 곤잘레스 이나리투(버드맨) 단 1명뿐이라고 개탄했다.
6,000명에 이르는 회원들 중 94%가 백인이요 72%가 남자 그리고 중간 연령이 62세(2012년 통계)인 아카데미 회원들의 소수계 푸대접은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다. 아카데미는 그동안 여성을 비롯한 소수계를 보다 많이 수용하고 또 현 회장인 셰릴 분 아이잭스도 흑인 여성이긴 하지만 이 수치에서 볼 수 있듯이 아카데미는 은퇴한 백인 남자 세상이다.
이번에 다시 아카데미의 흑색에 대한 색맹증세가 논란이 된 까닭은 비평가의 격찬과 함께 관객의 큰 호응을 받고 있는 흑인영화 ‘셀마’(Selma·사진) 때문이다. 1965년 마틴 루터 킹 주니어의 앨라배마주 셀마에서부터 몬고메리에 이르기까지의 민권운동 행진을 그린 이 영화는 작품과 주제가상 부문에서 후보에 올랐으나 흑인 여류감독 에이바 뒤버네이와 킹 박사 역의 데이빗 오이엘로는 각기 해당부문에서 탈락했다.
15일은 킹 박사의 생일이고 19일은 이를 기리는 공휴일인데 아이러니컬하게도 킹 박사는 자기 영화가 푸대접을 받는 생일선물을 받은 셈이다. 아카데미가 여전히 흑인을 차별한다는 비판을 받을 만한데 후보 발표가 있은 뒤 다넬 헌트 UCLA 아프리칸 아메리칸 연구센터 소장은 “이는 할리웃과 미국과의 불통을 여실히 드러낸 것”이라고 말했다. 또 흑인 민권운동가인 알 샤프턴은 할리웃 지도자들과의 비상회의를 요구하고 나섰다.
그런데 공교롭게도 지난해에는 흑인 노예문제를 다룬 ‘12년간 노예생활’이 오스카 작품과 각색 및 노예 역의 루피타 니온고가 여우조연상을 각기 탔다. 또 2011년에는 역시 흑인인 옥타비아 스펜서가 ‘헬프’에서의 하녀 역으로 조연상을 탔는데 일부 냉소적인 사람들은 1939년 ‘비람과 함께 사라지다’에서의 하녀 역으로 흑인 최초의 오스카상 수상자가 된 해티 맥대니얼처럼 흑인은 하녀나 노예로 나와야 상을 탄다고 비아냥거렸다.
아카데미가 흑인을 차별한다는 것은 1963년에 가서야 시드니 포이티에가 ‘들에 핀 백합’으로 흑인으로선 최초로 남우주연상을 탔다는 것만 봐도 안다. 그 후 무려 38년이 지난 2001년에  가서야 덴젤 워싱턴이 ‘트레이닝 데이’로 흑인으로선 두 번째로 주연상을 받았다.
흑인 여배우의 경우는 이보다 더 심하다. 2001년 할리 배리가 ‘몬스터즈 볼’로 흑인으로서는 최초의 주연상을 탔으니 해티 맥대니얼이 흑인으로서는 첫 오스카상을 탄지 무려 62년만의 경사였다.  
영화계 일부에서는 ‘셀마’가 오스카 회원들로부터 물을 먹은 까닭이 제작사인 파라마운트가 영화의 제작마감이 늦어져 회원들에게 스크리너(영화 DVD)를 못 보내 많은 회원들이 후보 선정 마감일 안에 영화를 못 봤기 때문이라고 분석하고 있다. 한편 기자가 속한 할리웃 외신기자협회(HFPA)는 ‘셀마’를 작품(드라마 부문), 감독, 남우주연 및 주제가상 부문에서 후보로 지명, 주제가 ‘글로리’에 상을 주었다.      
LA타임스는 아카데미 회원들이 수상 후보들을 고르는 것은 회원 각자에게 달린 일이라면서 이들의 소수계 푸대접보다 진짜로 중요한 문제는 할리웃 연예산업계에서의 소수계 종사자 부족이라고 지적했다.            
통계에 따르면 2013년 100편의 흥행 탑 영화감독 중 흑인 감독은 단 5명뿐이고 흑인 여류감독은 단 1명도 없다. 이번 오스카 후보 발표에서도 감독·각본가 및 촬영감독 중에서 여성은 단 1명도 없었다.
흑인과 여성뿐 아니라 할리웃에 종사하는 라티노 영화인들도 태부족이다. 통계에 의하면 라티노는 미 전체인구의 16%를 차지하는데도 2013년 흥행 탑 영화들 중에서 말하는 역을 맡은 라티노 배우는 불과 4.9%에 지나지 않았다.
LA타임스는 이어 유색인종이 오스카 경쟁에서 매번 불리한 입장에 빠지는 것은 할리웃에서 일하는 유색인종이 부족하기 때문이라고 매듭지었다. 그러고 보니 오스카는 황금색이 아니라 백색이다.
얼마 전에 미국인 친구 마이크와 바에서 와인을 마시면서 이에 관한 얘기를 나눴다. 마이크는 마침 TV에서 중계하는 농구경기를 가리키면서 “농구선수의 절대다수가 흑인이라고 해서 백인들이 불공평하다고 하는 말 들어본 적 있느냐”면서 “오스카 후보 발표 때마다 인종차별을 들먹이는 것은 터무니없는 소리다. 배우도 운동선수처럼 실력에 따라 상을 주는 것 아니겠느냐”며 흥분했다. 물론 마이크는 백인이다.     <한국일보 박흥진 편집위원/hjpark1230@gmail.com>

2015년 1월 20일 화요일

패딩턴 (Paddington)

패딩턴이 양손에 치솔을 들고 용도를 생각하고 있다.

“난 말하는 곰… 귀여운 사고뭉치죠”


진짜로 재미있고 훈훈한 정이 넘쳐흐르는 온 가족용 영국 영화다. 장난이 심한 사고뭉치의 말하는 곰과 이 곰을 집안에 수용한 런던의 한 가족 간의 관계를 그린 영화로 속도 빠르고 우습고 유연하며 또 재치 넘치고 다정다감하다.
가족의 사랑을 강조한 물 떠난 물고기의 얘기인데 액션과 스턴트가 콩 튀듯 하고 냉소적인 유머와 위트가 촘촘히 담겨 있는가 하면 곰의 표정과 동작을 아주 자연스럽게 만들어낸 기술 그리고 곰의 음성 연기와 인간 배우들의 연기가 만점이다. 
탐정영화 티를 내면서 액션과 스릴을 마음껏 활용했는데 의상과 프로덕션 디자인 및 밝고 알록달록한 색깔과 시각효과 등 나무랄 데 없이 잘 만든 매력적인 작품이다.
영화는 처음에 주인공인 말하는 곰 패딩턴(벤 위셔의 음성)의 페루 정글에서의 삶에 대해 얘기한다. 1930년대 이곳으로 온 친절한 탐험가 부부가 찍은 필름에 의해 설명되는데 이들 부부 때문에 패딩턴과 그를 키우는 삼촌 곰 파스투조(마이클 갬본 음성)와 아줌마 곰 루시(이멜다 스턴튼 음성)는 완전히 영국통이 된다.
그런데 정글에 지진이 나면서 삼촌은 죽고 아줌마는 양로원에 들어가게 되자 패딩턴은 모자를 쓰고 코트를 입고 보다 나은 삶을 찾아 런던으로 밀항한다. 도착한 곳이 런던의 패딩턴 기차역. 여기서 패딩턴은 보험회사 중역인 엄격한 헨리 브라운(휴 본느빌)과 그의 생기발랄한 아내 메리(샐리 호킨스) 그리고 이들의 두 남매 주디(마들렌 해리스)와 조나산(새뮤얼 조슬린)에 의해 발견된다.
헨리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메리가 우겨서 패딩턴을 곱게 단장한 정리정돈이 잘된 집에 데려와 묵게 한다. 정글에 살던 곰이 도시 인간의 집에 살면서 자행하는 온갖 시행착오로 인해 헨리의 인형 집과도 같은 집은 난장판이 된다. 
그러나 패딩턴이 원래 귀엽고 또 속은 착한 곰이어서 곧 이어 브라운네 온 가족과 끈끈한 정으로 연결되면서 한 가족처럼 산다. 
이렇게 곰과 인간들이 행복하게 살고 있는데 희귀종인 패딩턴을 잡아 박제를 해서 자기 수집품으로 만들려는 예쁘게 생긴 독한 여자 박제사 밀리센트(니콜 키드만)가 등장하면서 패딩턴과 브라운네는 뜻하지 않은 액션과 음모와 모험에 휘말려든다.
브라운네 가정부 역의 줄리 월터스를 포함해 모든 배우들의 연기가 다 훌륭한데 그 중에서도 빼어난 것은 호킨스다. 철저히 꾸밈이 없는 아름답고 편한 연기다. 이와 함께 사파리 복장을 한 키드만의 요부 닮은 차가운 모습과 연기도 일품인데 키드만은 디즈니의 만화영화 ‘101마리의 달마시안’의 나쁜 여자 크루엘라 드 빌을 연상시킨다. 그러나 이들 인간보다 훨씬 더 매력적인 것은 패딩턴이다. 패딩턴 곰 인형께나 팔려나가게 생겼다. 100% 귀엽고 즐겁고 신나며 가슴을 따스하게 만들어주는 영화다. 폴 킹 감독. PG. TWC. 전지역. ★★★★½(5개 만점)
                                                              <한국일보 박흥진 편집위원/hjpark1230@gmail.com>

휴먼 캐피털(Human Capital)

투자전문가 지오반니(오른쪽)와 그의 아내 칼라가 집에서 연 파티에서 축배를 들고 있다.

한밤 빗속 교통사고, 그리고 두 가족 운명은


심야 우중에 일어난 교통사고로 운명이 연결되는 이탈리아 북부 도시 브리안자에 사는 두 가족에 관한 가족 드라마이자 성격탐구 영화이며 스릴러로 블랙 코미디의 기운도 갖춘 이탈리아영화. 화려함 속에 초조와 불안을 감춘 흥미진진한 작품이다.
이탈리아의 경기침체와 함께 계급과 신분의 차이를 파헤친 사회 드라마이기도 한데 인간의 가치를 유로로 재려는 황금만능주의를 신랄하게 비판하고 있다. 제목은 법률용어로 사고의 희생자에게 보상금을 지불할 때 계산하는 희생자의 순 가치를 말한다.
영화는 매 에피소드마다 다른 인물을 중심으로 얘기되는 4막극 형식으로 에피소드가 바뀔 때마다 심야의 비극적 교통사고가 재연되면서 조금씩 조금씩 이 사고에 관한 정보가 확대 제공된다.   
투자전문가인 지오반니(화브리지오 지후네)와 그의 배우 지망생이었던 ‘트로피 부인’ 칼라(발레리아 브루니 타데스키)는 백만장자로 둘 사이에는 고교생 아들 마시밀리아노(구그리엘모 피넬리)가 있다.
지오반니네의 부와 신분을 동경하면서 어떻게 해서든지 상류층에 이르는 사다리를 타고 올라가려는 중류층 부동산 업자 디노(회브리지오 벤티볼리오)는 쌍둥이를 임신한 착한 아내 로베르타(발레리아 골리노)와 전처 사이에서 본 여고생 세레나(마틸데 베르나스키)가 있는데 둘 다 고급 사립학교에 다니는 마시밀리아노와 세레나는 애인사이다.
그런데 디노가 자기 집을 저당으로 융자를 해 지오반니에게 투자를 부탁한다. 그러나 경기침체로 디노의 돈이 몽땅 날아가면서 디노는 지오반니에게 본전이라도 달라고 부탁하나 거절당한다. 
이와 함께 두 가족의 아이들이 다니는 고등학교에서 학생 표창식이 열리고 있는 밤에 치명적인 교통사고가 나면서 이 사고를 둘러싸고 두 집이 운명적으로 연결된다. 
과연 누가 사고차를 운전했는가. 챕터가 바뀔 때마다 이 의문에 대한 답을 향해 이야기가 조금씩 조금씩 진전한다. 
이탈리아의 초호화 캐스트의 연기가 볼만한데 특히 자신의 꿈을 접고 상류층 부인 행세하느라고 속이 다 썩어 문드러져 가는 칼라 역의 브루니 타데스키의 연기가 조용하니 압도적이다. 프로덕션 디자인과 현지에서 찍은 촬영 그리고 서스펜스 기운이 있는 음악도 좋다. 영화는 미국 작가 스티븐 아미돈의 소설이 원작으로 미 코네티컷주가 무대인 것을 이탈리아의 브리안자로 옮겼다. 파올로 비르지 감독. 성인용. 일부지역. ★★★★(5개 만점) <한국일보 박흥진 편집위원/hjpark1230@gmail.com>

제72회 골든글로브 시상식 결산

작품상부터 연기상까지‘독립영화들 잔치’


텍사스에 사는 한 소년의 삶과 그의 부모와의 관계를 12년 간에 걸쳐 만든 ‘보이후드’는 리처드 링크레이터가 감독상을 그리고 소년의 어머니로 나온 패트리샤 아켓이 여우조연상을 타 3관왕이 됐다. 이로써 LA와 뉴욕 영화비평가협회에 의해서도 2014년도 최우수 영화로 뽑힌 이 영화는 2월에 있을 오스카 시상식에서도 작품상을 탈 가능성이 매우 높아졌다.  
드라마 부문 작품상‘보이후드’
드라마 부문 남우주연상 에디 레드메인
      
부다페스트 호텔에서 일어난 살인사건을 둘러싼 과격하고 파격적으로 상상력이 무성한 ‘그랜드 부다페스트 호텔’의 작품상 수상은 깜짝 놀랄 일이었다. 코미디/뮤지컬 부문 작품상은 멕시코 감독 알레한드로 곤잘레스 이나리투가 연출한 ‘버드맨'(Birdman)이 탈 것으로 예상됐었기 때문이다. ‘그랜드 부다페스트 호텔’을 감독한 웨스 앤더슨은 수상소
코미디/뮤지컬 부문 작품상‘그랜드 부다페스트 호텔’,
감에서 골든 글로브를 주는 할리웃 외신기자협회의 일부 회원들의 이름을 거명하며 감사의 뜻을 전했다.
3년 연속 두 여류 코미디언 티나 페이와 에이미 폴러(이번으로 마지막 사회)의 재치 있는 사회로 진행된 시상식에서는 사회자를 비롯해 수상자들이 언론의 자유에 대해 강한 지지발언들을 했는데 이는 지난해에 발생한 소니사에 대한 북한 측(미 정부의 주장)의 해킹과 얼마 전 파리에서 발생한 풍자잡지 샤를리 에브도에 대한 무슬림 테러 때문이다. 
이날 뜻밖의 손님은 북한군 복장을 한 한국계 여류 코미디언 마가렛 조. 마가렛은 시종 엄격한 표정을 지으면서 김정은의 표지사진이 있는 북한 영화잡지 ‘무비즈 워우’의 기자로 나와 잡지를 들고 무대 아래로 내려가 메릴 스트립과 셀피를 찍겠다고 요구했다. 이어 마가렛은 무대로 올라가 나치군인처럼 거위걸음으로 퇴장해 만장의 폭소와 함께 박수갈채를 받았다. 이전에 두 사회자는 인사말에서 “오늘 우리는 북한이 O.K.하는 모든 영화들에 시상할 것을 기대한다”고 이죽거렸다.           
드라마 부문 남자주연상은 ‘모든 것의 이론’(The Theory of Everything)에서 근육위축증을 앓는 이론 물리학자 스티븐 호킹으로 나온 에디 레드메인이 그리고 코미디/뮤지컬 부문에서는 ‘버드맨’에서 브로드웨이에서 재기를 노리는 한물 간 영화배우로 나온 마이클 키튼이 각기 받았다. 그리고 ‘모든 것의 이론’은 음악상을 ‘버드맨’은 각본상을 추가로 받았다. 
코미디/뮤지컬 부문 여우주연상 에이미 애담스.
드라마 부문 여자주연상은 ‘스틸 앨리스'(Still Alice)에서 알츠하이머를 앓는 대학 교수로 나온 줄리앤 모어가 코미디/뮤지컬 부문에서는 ‘빅 아이즈'(Big Eyes)에서 날사기꾼 남편의 감언이설에 속아 자기가 그린 그림들을 남편이 그린 것처럼 묵인한 실존하는 여류화가 마가렛 킨 역을 맡은 에이미 애담스가 각기 받았다.
드라마 부문 남녀주연상에서 볼 수 있듯이 ‘상은 주인공이 아프거나 죽어야 탄다’는 말이 또 한 번 여실히 증명됐는데 레드메인과 모어는 이로써 오스카상도 탈 확률이 높아졌다. 그러나 모어는 떼 놓은 당상이나 레드메인은 키튼과 치열한 접전을 벌일 것이다.   
남자조연상은 재즈드라마 ‘윕래시'(Whiplash)에서 제자를 독재자처럼 다루는 선생으로 나온 베테런 J.K. 시몬스가 탔다.
주제가상은 마틴 루터 킹 주니어가 지지자들과 함께 흑인 투표권 확보를 위해 앨라배마주의 셀마에서부터 몬고메리까지 행진한 역사를 다룬 ‘셀마'(Selma)의 ‘영광'(Glory)이, 만화영화상은 속편 ‘용 훈련법 2'(How to Train Your Dragon 2)가 받았다. 만화영화상은 ‘레고영화’(The Lego Movie)가 그동안 죽 상승세를 타왔으나 이번에 밀려나면서 오스카상 수상에도 다소 먹구름이 드리우게 됐다. 
외국어 영화상은 러시아의 한 작은 마을을 무대로 부패관리에 저항하는 소시민의 얘기를 그린 ‘리바이아탄'(Leviathan)이 받았다. ‘리바이아탄’은 성경의 욥기를 현대화한 것이다. ‘리바이아탄’의 수상도 다소 이변으로 이 부문 수상작으로 가장 유력시됐던 것은 예비수녀의 얘기를 그린 폴랜드영화 ‘이다'(Ida)였다.
생애업적상인 세실 B. 드밀상을 탄 사람은 국제 인권변호사인 레바논 태생의 아말 알라무딘과 갓 결혼한 조지 클루니. 옷에 프랑스어로 쓴 찰리 에브도의 희생자들을 추모하는 ‘나는 샤를리’라는 배지를 단 클루니는 자리에 앉은 아내를 내려다보면서 “53세에 당신을 만나게 된 것이 어떤 연금술의 작용인지는 모르겠으나 나는 당신의 남편이 된 것이 자랑스럽다”고 아내에 대한 사랑을 표시했다. 
그는 이어 샤를리 에브도 사건에 대해서 언급, 시상식 날 파리에서 열린 세계 정치 지도자들과 시민들의 행진을 상기시면서 “그들은 항의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우리는 공포 속에서 걷지 않을 것이라는 이념을 지지하기 위해 걸었다. 우리는 그러지 않을 것이다. 그러니 나는 샤를리다”고 말해 기립박수를 받았다. 
골든 글로브는 TV 부문에 대해서도 시상한다. 이날 이 부문 수상작을 보면 여러 작품이 신작들로 TV가 아닌 아마존이나 넷플릭스 같은 인터넷을 통해 관람이 가능한 것들이 포함돼 있다. 그런데 HFPA는 통상 사기진작을 위해 좋은 신작에 대해 시상하는 경향이 있다.
다음은 각부문 수상작들이다.
*시리즈(드라마)-‘정사'(The Affair 신작) *드라마(코미디)-‘트랜스페어런트'(Transparent 신작) *영화/미니 시리즈-‘파고'(Fargo) *여자주연(드라마 시리즈)-루스 윌슨(정사) *남자주연(드라마 시리즈)-케빈 스페이시(‘하우스 오브 카즈’ House of Cards) *여자주연(코미디 시리즈)-지나 로드리게스(처녀 제인 Jane the Virgin-신작) *남자주연(코미디 시리즈)-제프리 탬보(트랜스페어런트) *여자주연(미니시리즈/영화)-매기 질렌할(‘명예로운 여인’ The Honorable Woman) *남자주연(미니시리즈/영화)-빌리 밥 손턴(파고) *여자조연(미니시리즈/영화)-조앤 프로갯(‘다운턴 애비’ Downton Abbey) *남자조연(미니시리즈/영화)-맷 보머(‘노말 하트’ The Normal Heart)     

11일 베벌리힐스의 베벌리 힐튼호텔에서 열린 제72회 골든 글로브 시상식은 독립영화들의 잔치였다. 이날 드라마 부문과 코미디/뮤지컬 부문(골든 글로브는 작품과 남녀 주연상 부문에 한해 드라마와 코미디/뮤지컬 부문으로 나눠 시상한다)에서 각기 작품상을 받은‘보이후드’(Boyhood)와‘그랜드 부다페스트 호텔’(The Grand Budapest Hotel)은 모두 독립영화사나 메이저에 속한 독립영화 전문 배급사들의 작품이다. 이 밖에도 각본과 여우주연과 남우주연 및 조연상 등을 받은 작품도 모두 메이저의 영화들이 아니다. <한국일보 박흥진 편집위원>

북한 HFPA 기자



나는 내가 속한 할리웃 외신기자협회(HFPA)에 북한 여기자 조영자가 새 회원이 된 것을 11일에 열린 제72회 골든 글로브 시상식 때야 비로소 알았다. 조영자가 HFPA의 회원이 되려면 먼저 회원이 된 같은 한국 사람인 내게 그가 예의상 절차상으로 먼저 회원가입 의사를 밝히는 것이 우리 협회의 관례인데 내가 조영자의 가입을 몰랐으니 이야말로 경악할 지경으로 파격적인 이변이다.
HFPA의 회원이 되려면 2명의 기존 회원의 추천이 있어야 되는데 난 누가 조영자를 추천했는지 알바도 없지만 내가 그를 추천한 것이 아닌 것만은 분명하다.     
시상식의 두 사회자인 티나 페이와 에이미 폴러가 서 있는 무대에 북한 장군 군복 차림의 조영자가 등단(사진)한 뒤 두 사회자가 그를 HFPA의 새 회원이라고 소개했을 때 나는 벌린 입을 다물지 못했다. 
‘야 이거 강력한 새 경쟁자가 생겼구나’하는 경계심과 함께 ‘아니 이럴 수가’하고 당황했는데 마치 6.25 때처럼 북한의 기습공격을 받은 느낌이었다. 식이 끝난 후 만난 HFPA의 이탈리아 동료회원 루카가 나보고 “너 북한 기자 들어와도 상관없니”라며 약을 올렸다. 
기자란 유독 경쟁심이 심한 직업이어서 나는 조영자가 시종일관 방귀 참는 얼굴을 해가지고 무대에서 익살을 떨어대며 만장의 폭소를 받는 것이 부럽고 속상했다.
HFPA 회원 된지 8년 만에 이제야 비로소 할리웃 스타들과 얼굴을 익혀 서로 “하이”하는 사이인 나와 달리 풋내기인 조영자는 시상식 무대에까지 서고 또 순식간에 자기 이름이 할리웃에 파다하게 알려졌으니 내 속이 상할 것은 당연지사다.
조영자의 매체는 잡지 ‘무비즈 워우!’(Movies Wow!)로 그는 이날 이 잡지를 들고 나와 김정은의 사진이 박힌 표지를 시상식 중계 TV 카메라 앞에다 대고 내휘둘렀으니 앞으로 이 잡지가 불티나게 팔릴 것이라는 생각에 라이벌 의식이 속에서 강하게 요동을 쳤다.
그런데 한 가지 궁금한 것은 이 잡지의 부장인 조영자는 인민군 장군으로 밝혀졌는데 그렇다면 북한에서는 장군이 연예지 기자 노릇도 한다는 말인가.
그러나 조영자에 대한 이런 착잡한 감정과 함께 ‘야 이젠 우리 한국에서 남북한 기자가 함께 HFPA 회원이 됐구나’하는 뿌듯한 자긍심 또한 느꼈다, 이런 식으로 해서 결국 우리나라가 통일도 되겠구나 하는 가는 희망마저 가져봤다.
그러나 알고 보니 꿈에서 깨어난 듯이 조영자는 북한 기자가 아니라 유명한 한국계 코미디언 마가렛 조였다. 나는 1994년 TV 시리즈 ‘올-아메리칸 걸’에서 주인공으로 나온 마가렛을 단독 인터뷰해 그와는 구면이다. 
마가렛은 이날 시상식의 큰 흐름인 표현의 자유를 위트와 농담으로 강조하기 위해 나온 것이다. 시상식에서는 소니의 해킹과 파리의 풍자잡지 샤를리 에브도에 대한 테러를 규탄하고 아울러 어떤 위협과 압력에도 불구하고 표현의 자유를 지키겠다는 의지가 강력히 표현됐다.
미 정부가 소니 해킹의 주범으로 밝힌 북한은 이날 여러 차례 야유와 농담의 대상이 되는 수모를 당해야 했다. 먼저 페이와 폴로가 서두에서 “오늘 우리는 북한이 O.K.하는 영화들을 축하하게 될 것”이라고 북한의 소니사 영화 ‘인터뷰’에 대한 강력한 불만의 표현을 비웃었다. 
이어 등단한 조영자는 “너희들 쇼에는 1,000명의 아이들이 동시에 기타도 치지 않고 큰 그림을 만들기 위해 많은 카드를 든 사람들도 없으며 데니스 로드맨도 없다”면서 서툰 영어로 북한과 김정은을 조롱했다.
조영자는 무대 아래로 내려가서는 메릴 스트립을 향해 삿대질을 해가면서 함께 셀피를 찍겠다고 강력히 요구, 자리에 앉았던 마이클 키튼(그는 이날 ‘버드맨’으로 코미디/뮤지컬 부문 남우주연상을 탔다)이 조영자의 셀폰으로 둘을 함께 찍어줬다.
이어 단상에 오른 조영자는 나치 병정식의 거위걸음으로 퇴장했는데 이날 일부에서는 마가렛의 북한 조롱에 대해 ‘인종차별적’이라고 비판하는 트위터가 날아들었다. 이에 대해 마가렛은 “나는 북한과 남한의 부모를 가진 후손이다. 너희들이 나의 사람들을 투옥하고 굶기고 세뇌하니 나에 의해 조롱거리가 될 수밖에 없다”고 대응했다. 나도 동감이다.
이어 마가렛은 “내 농담보다는 이날 시상식에 무대에 선 아시아계 연예인은 오직 나 하나뿐이라는 사실에 대해 언급해야 할 것”이라고 할리웃의 소수민족에 대한 푸대접을 비판했다.
이 날 표현의 자유에 대해 언급한 여러 사람들 중에서도 가장 뜨거운 반응을 받은 사람은 HFPA 회장 테오 킹마(네덜란드 사진기자). 그는 인사말에서 “우리는 북한으로부터 파리에 이르기까지 그 어느 곳에서나 자유로운 표현을 억압하는 그 누구에 대해서도 단결해 맞설 것”이라고 말해 참석자들의 기립박수를 받았다. 
참석자들이 먹고 마시면서 진행되는 골든 글로브 시상식은 식후 각 영화사들이 마련하는 파티와 함께 통상 샴페인이 넘쳐흐르는 주신 바커스의 야단스런 잔치로 알려졌다. 이날도 샴페인과 캐비아가 모자란 것은 아니었지만 예년의 쇼와는 달리 재미와 엄숙함이 겸비된 매우 성숙한 시상식이었다. 
                                                           <한국일보 박흥진 편집위원/hjpark1230@gma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