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이야기

2014년 12월 5일 금요일

와일드 (Wild)

배낭을 진 쉐릴(리스 위더스푼)이 1,100마일의 산행길에 나서고 있다.

1,100마일 산행을 통해 육체와 영혼의 힐링…


산행은 육체적 건강에 좋을 뿐만 아니라 쇠약한 영혼의 건강마저 회복시켜 준다. 방탕하고 방향감각을 잃은 젊은 여자가 무작정 길고 긴 산행에 나서면서 자신의 영혼을 구제하는 인간승리의 아찔한 이야기다.
생전 산행이라곤 해 본적이 없는 쉐릴 스트레이드가 26세에 매우 가깝던 어머니를 잃은 뒤 멕시코 국경지대서부터 오리건에 이르기까지 1,100마일의 퍼시픽 크레스트 트레일을 달랑 배낭 하나 지고 혼자 걸은 사실을 적은 베스트셀러가 원작이다.
자연을 배경으로 한 모험영화이자 개인의 영혼 구제 얘기이면서 아울러 가족 드라마이기도 한데 가슴을 에이 듯 사실적이자 거칠고 고통스러우면서도 험난한 역경에 도전하면서 자신을 재발견하려는 한 인간의 강인한 정신력에 희망과 환희를 느끼게 만든다.
그리고 영화 간간이 유머가 곁들여져 힘든 여정에 쉼표 구실을 하는데 특히 영육을 완전히 탈바꿈한 리스 위더스푼의 연기가 압도적이다.
영화는 쉐릴(위더스푼)이 산행의 중간쯤에 이르렀을 때부터 시작되면서 중간 중간 플래시백으로 그의 개인생활과 어머니 바비(로라 던)와의 관계가 묘사된다. 첫 장면부터 쉐릴이 겪어야 하는 좌절감이 사실 그대로 발톱 빠지듯이 아프게 그려지면서 쉐릴이 내뱉는 “Xuck you”가 산중에 메아리친다.
이어 플래시백으로 쉐릴과 바비와의 가까웠던 관계와 함께 쉐릴의 방종한 개인생활과 자기를 극진히 사랑하는 남편(토머스 새도스키)과의 평탄치 못한 결혼생활이 묘사되면서 쉐릴의 산행 선택의 배경 설명을 한다.
바비는 어려운 여건 속에서 혼자 딸을 키우면서도 삶의 희열에 가득 찬 여자인데 이렇게 자기를 사랑하던 바비가 갑자기 병으로 사망하면서 쉐릴은 완전히 삶의 방향타를 잃는다. 그리고 쉐릴은 탈출구가 없는 따분한 일상을 견디지 못해 헤로인과 난잡한 섹스로 날을 보낸다.
쉐릴은 바비가 숨진 뒤 거의 즉흥적으로 산행을 결심하는데 등산이라곤 해 본적이 없는 그가 모텔 방에서 산행준비를 하는 과정이 웃긴다. 그리고 이윽고 바비는 자신의 삶을 되찾기 위한 도전으로 산행에 나선다.
그런 결정을 후회하기가 한두 번이 아니지만 쉐릴은 걷고 또 걷는데 그 모습이 마치 여자 예수 같다. 산행 중에 갖가지 짐승과 악천후 또 짐승처럼 겁나는 인간도 만나면서 위험한 지경에도 빠지지만 쉐릴은 이를 악물고 목적지를 향해 간다.
그가 겪는 악조건과 고행이 절실하게 느껴지는데 이는 위더스푼의 모든 것을 벗어던진 도전적이자 통절한 연기 탓이다(뉴욕에서 검문하는 경찰에게 “내가 누군지 알아”라고 말한 경박함을 뉘우치려는 듯이).
쉐릴의 인간성 회복의 갈망이 남의 것처럼 여겨지지 않아 가슴에 훈기가 감도는데 위더스푼의 연기(오스카상 후보감이다)와 함께 던의 생기발랄하면서도 천진난만한 연기도 아주 좋다. 뜨거운 사막과 장엄한 산을 비롯해 다양한 경치를 찍은 촬영도 좋다. 다소 에피소드 식이어서 맥이 끊어지고 조금만 더 거칠었으면 하는 아쉬움이 있지만 훌륭한 영화다. 감독은 올해 오스카 남자 주·조연상을 탄 ‘달라스 바이어즈 클럽’을 만든 캐나다인 장-마르크 발레. R. Fox Searchlight. 아크라이트(선셋과 바인)와 랜드마크(피코와 웨스트우드). ★★★★(5개 만점)   <한국일보 편집위원/hjpark1230@gmail.com>

스틸 앨리스 (Still Alice)

앨리스(줄리안 모어)가 기억상실에 망연자실하고 있다.

알츠하이머 걸린 언어학자의 의연한 삶


50세에 알츠하이머병에 걸린 언어학자 앨리스는 비록 자기가 사랑하는 언어들을 급속히 잃어버리지만 여전히 앨리스다. 불치의 병에 시달리면서도 이를 용감하게 수용하는 앨리스를 보면서 가슴이 메어지는 아픔을 그와 함께 느끼게 되는데 영화가 결코 감상적이거나 심적 자세가 흐트러지지 않는 것은 순전히 앨리스 역의 줄리안 모어의 감지할 수 없을 정도로 민감하고 아름다운 연기 때문이다. 절대적 통제력을 행사하는 감탄할 연기로 오스카상 후보감이다.
알츠하이머병에 걸린 여자가 이 질병의 공포와 막강한 파괴력에 가족과 함께 대응하는 이 드라마의 주인공은 50세의 뉴요커로 컬럼비아 대학에서 언어학을 가르치는 뛰어난 지능의 소유자 앨리스 하울랜드(모어). 앨리스는 자기를 존경하고 사랑하는 남편 존(알렉 볼드윈)과 장성한 세 남매 애나(케이트 보스워드)와 탐(헌터 패리쉬)과 LA에 사는 배우 지망생인 리디아(크리스튼 스튜어트)를 둔 남부러울 것이 없는 사람이다.
그런데 앨리스가 갑자기 강의를 하면서 단어를 잊어버리고 또 방향감각을 잃어버린다. 앨리스는 처음에는 이를 숨기다가 상태가 악화하자 남편과 함께 의사를 찾아 간다. 진단은 50세의 사람에게는 극히 드문 경우인 알츠하이머병. 의사는 이 병이 유전된 것이라며 세 자녀가 이 병에 걸릴 확률이 50%라고 폭탄선언을 한다. 그리고 검사 결과 셋 중 하나가 양성반응으로 나타난다.
영화는 앨리스가 급속도로 악화하는 병에 대해 두려워하고 절망하고 고통하면서도 결코 자신의 존엄성을 잃지 않고 의연히 이에 대처하면서 삶을 진행해 가는 과정과 그의 가족의 단결된  사랑을 차분하고 감동적으로 서술하고 있다.
질병에 관한 영화인데도 전연 감상적이거나 볼썽사납지가 않은 것은 두 감독 리처드 글래처와 워쉬 웨스트모어랜드(베스트셀러를 공동 각색)의 신중하고 착 가라 앉은 연출과 모어의 확실하면서도 빈 틈 없는 연기 탓이다. 그의 얼굴 표정과 자기 처지와 상황에 대한 반응을 보여주는 동작 그리고 내면의 지도를 섬세하게 그려 표현한 연기는 경이로울 정도다.
참담하고 어두운 내용이나 절망을 허락지 않으면서 유머마저 곁들였다. 자살하려는 사람의 행동을 이렇게 처연히 아름다우면서도 유머가 있게 그린 영화는 처음 봤다. 앨리스가 만약의 경우를 위해 컴퓨터에 남겨 놓은 자살지침을 이행하려는 장면이다. 그리고 앨리스가 알츠하이머 회의에 연사로 참석해 하는 연설도 심금을 울린다. PG-13. Sony Classics. 아크라이트와 랜드마크. ★★★1/2(5개 만점) <한국일보 편집위원/hjpark1230@gmail.com>

행진은 계속된다




역사는 반복되는가. 1965년 3월21일 마틴 루터 킹 주니어가 흑인 투표권 확보를 위해 민권운동가들 및 지지자들과 함께 닷새에 걸쳐 앨라배마주 셀마에서부터 몬고메리까지 행진한 지 반세기가 지났다.
그로부터 50년 뒤인 2014년 11월29일 전미 유색인지위향상협회(NAACP) 회원들과 지지자들이 미주리주 퍼거슨에서부터 제퍼슨시티 주지사 관저까지 7일간의 120마일에 걸친 ‘정의를 위한 행진’을 시작했다.
이 행진은 퍼거슨의 백인경관 대럴 윌슨의 흑인 청년 마이클 브라운 총기 살해사건을 계기로 백인 경관들의 흑인들에 대한 공권력 남용을 항의하는 걸음이다. NAACP의 행진은 마틴 루터 킹 주니어의 행진에서 아이디어를 얻은 것 같은데 이야 말로 역사의 반추라고 하겠다.
흑인이 대통령이 됐지만 미국에서는 아직도 흑백 차별이 횡행하고 있다. 특히 백인 경찰의 흑인에 대한 공권력 남용이 문제인데 최근 유엔 고문방지위원회가 미국 경찰의 흑인 등 소수 인종 민족을 상대로 한 과잉대응 등을 지적하는 공식 보고서를 채택했을 정도다.
오바마는 최근 퍼거슨 사태를 계기로 경찰의 과잉대응 논란이 빚어진 가운데 경찰 구조를 획기적으로 개선하겠다고 밝혔지만 이 사태에 대해 직접적인 논평은 삼가고 있다. 오는 크리스마스에 개봉될 셀마-몬고메리 행진에 관한 드라마 ‘셀마’(Selma)에서 린든 존슨 대통령이 마틴 루터 킹 주니어에게  말했듯이 “당신은 민권운동가이지만 나는 정치가”이기 때문이다.
‘셀마’는 절묘하게 현실과 타이밍을 맞춰 나온다. 난 얼마 전에 이 영화를 보면서 “야 반세기가 지났는데도 똑같은 일이 벌어지고 있구나”하면서 참담한 기운에 젖었었다. 그리고 도대체 인종차별 문제는 그동안 과연 얼마나 또 무엇이 달라졌는가 하고 궁금해 했다.
퍼거슨시는 뒤늦게 흑인 경관을 더 많이 고용하겠다고 발표했지만 미 남부에 뿌리 깊이 박힌 흑백차별 관념이 그것으로 해결될지 의문이다. 이 번 퍼거슨-제퍼슨시티 행진에 관한 반응을 보니 많은 백인들이 행진자들을 ‘깡패들’이라고 비난하고 있다.
미국은 총으로 세운 나라여서 웨스턴에서 잘 볼 수 있듯이 총 잘 쏘는 사람이 영웅이다. 존 웨인이 그 대표적 인물로 보통 이들은 정의 구현자들이다. 대럴 윌슨도 자신을 정의 구현자라고 생각했음직한 데 웨스턴의 영웅들은 윌슨과는 달리 총 없는 사람은 쏴 죽이지 않았다.
나는 이번 퍼거슨 사건을 보면서 미국의 정의가 총구에서 나오는 것이 아닌가 하는 의구심마저 품었다. 결국 정의란 힘 센 자들에 의해 정의되는 것인지도 모른다. 이러니 늘 골탕을 먹는 것이 소위 소수계들이다.
브래드 핏과 오프라 윈프리(출연 검) 등이 제작한 ‘셀마’(사진)는 마틴 루터 킹 주니어가 동지들과 함께 셀마-몬고메리 행진을 준비하는 과정과 실제 행진 그리고 그의 사적 생활을 고루 균형 있게 그린 감동적인 영화다. 우리가 다 알고 있는 역사적 사실인데도 가슴이 뭉클해지고 영혼이 고양되는 스릴과 감격을 느끼게 된다.
미국은 1964년에 남부의 흑백 차별을 철폐하는 법을 통과시켰지만 앨라배마 같은 주에서는 흑인들이 백인들의 온갖 방해공작과 탄압으로 유권자 등록을 못해 투표를 할 수가 없었다. ‘셀마’는 마틴 루터 킹 주니어가 이런 불평등을 해결하고 흑인들의 투표권을 확보하기 위해 투쟁하는 과정을 매우 지적이요 날카롭고 민감하게 서술한 훌륭한 작품이다.
특히 아름답고 감동적인 것은 마틴 루터 킹 주니어 역의 영국 배우 데이빗 오이엘로의 연기다. 그는 생긴 것도 마틴 루터 킹 주니어를 많이 닮았는데 엄숙하고 무게 있는 민권운동가이자 개인적 문제와 자아 회의에 고뇌하는 사적 인물의 서로 다른 면을 빼어나게 보여준다.
흑인 여류 에이바 뒤버네이가 유연한 솜씨로 연출한 영화에서 충격적이요 참혹한 장면은 셀마-몬고메리 행진의 첫 번째 시도를 저지하는 경찰의 공권력 남용. 행진자들이 셀마의 에드먼드 피터스 다리에 이르렀을 때 기마경관을 비롯한 경찰의 행진자들에 대한 무차별 폭력행사를 보면서 가슴에 통증을 느꼈다. 이를 ‘블러디 선데이’라고 부른다.
이 진압과정이 TV로 생중계 되면서 행진에 성직자들을 비롯한 많은 백인들이 동참하게 되고 결국 행렬은 몬고메리에 도착한다. 그리고 존슨 대통령은 그 해 흑인 투표권 법안에 서명한다.
마틴 루터 킹이 주 청사 앞에서 하는 연설 “하우 롱, 낫 롱”(‘우리들의 하나님은 행군한다!’ 라고도 부른다)이 세월이 지났음에도 귀에 생생하게 들리는 까닭은 아직도 이 땅에 인종차별이 생존하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내게 마틴 루터 킹 주니어는 홍해를 가르고 유대인들을 이집트 땅에서 가나안으로 인도한 모세처럼 보였다. 오이엘로 외에도 존슨 역의 탐 윌킨슨, 조지 월래스 앨라배마 주지사 역의 팀 로스 그리고 코레타 스캇 킹 역의 카르멘 에조그 등 조연진의 연기도 훌륭하다.
미국의 인종차별 문제는 반세기 전보다는 많이 나아진 것은 사실이나 아직도 갈 길이 멀었다. “그들은 도대체 언제나 배울 것인가.”  <한국일보 편집위원/hjpark1230@gmail.com>

2014년 11월 28일 금요일

타계한 마이크 니콜스 감독은



지상의 삶 졸업하고‘전설이 된 예술가’

 오스카·에미·토니·그래미 모두 수상 기록
‘졸업’‘버드케이지’등 무수한 명작들 남겨


니콜스는 독일서 유대계 러시안 아버지와 유대계 독일인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나 7세 때 나치를 피해 뉴욕으로 이주했다. 어릴 때 학교에서는 따돌림을 받고 자랐다.
니콜스는 16세 때 데이트 상대와 함께 브로드웨이에서 테네시 윌리엄스의 연극 ‘욕망이라는 이름의 전차’를 보고 의대를 가기로 했던 생각을 바꿨다. 그 뒤로 다니던 시카고의 대학교 연극에 나왔고 뉴욕의 리 스트라스버그 연기학원에서 메소드 연기를 배웠다.
니콜스의 이름이 연예계에 널리 알려지게 된 것은 그가 1950년대 말부터 여류 코미디언 일레인 메이와 팀을 이뤄 스케치 코미디를 공연하면서였다. 둘의 공연은 무대와 TV를 통해 선풍적인 인기를 모았으나 둘은 1960년대 초 해산했다. 둘은 이 쇼로 그래미상을 탔다. 
이어 니콜스는 연극계에 데뷔 첫 작품으로 로버트 레드포드가 주연한 ‘맨발로 공원을’을 연출했다. 닐 사이먼이 쓴 이 연극은 비평가들의 호평과 함께 빅히트를 했고 니콜스는 1964년 첫 토니상을 탔다.
니콜스의 첫 영화는 에드워드 앨비의 연극이 원작인 흑백 ‘누가 버지니아 울프를 두려워하는가’(1966). 엘리자베스 테일러와 리처드 버튼이 악다구니를 쓰면서 싸움을 하는 중년부부로 나온 이 영화는 테일러의 오스카 주연상과 샌디 데니스의 여우조연상을 비롯해 모두 5개의 오스카상을 탔다.             
이어 만든 영화가 찰스 웹의 소설이 원작으로 더스틴 호프만이 주연한 ‘졸업’(1967). 원래 호프만 역은 로버트 레드포드가 맡을 예정이었으나 니콜스가 과감히 당시만 해도 무명씨였던 호프만을 기용해 호평과 함께 빅히트를 했다.
영화 ‘졸업’의 한 장면.
성격파 배우인 호프만의 기용은 그 후 알 파치노와 로버트 드 니로와 같은 성격파 배우들이 할리웃의 빅 무비에 나오는 계기가 되었다. 
‘졸업’은 대학을 졸업하고도 방향을 못 찾고 빈둥거리는 캘리포니아의 중상층 청년이 자기 아버지의 사업 파트너의 아내인 로빈슨 부인(앤 밴크로프트)의 섹스놀이개로 지내다가 로빈슨의 대학생 딸(캐서린 로스)을 사랑하게 되는 내용으로 ‘플래스틱이라는 말을 미 대중문화의 사전에 올린 영화다. 
영화에서는 사이먼과 가펑클이 노래한 ‘미시즈 로빈슨’과 ‘스카보로 페어’ 및 ‘사운드 오브 사일런스’ 등이 효과적으로 사용돼 음반도 베스트셀러가 됐다. 니콜스는 이 영화로 오스카 감독상을 받았다.
니콜스는 영화를 만들면서도 자주 브로드웨이로 돌아가 많은 명작들을 감독했다. 모두 닐 사이먼의 대본이 원작인 ‘아드 커플’(1965)과 ‘플라자 스위트’(1968) 및 ‘2번가의 포로’(1972)로 토니상을 탔다. 이밖에도 ‘리얼 싱’(1984)과 뮤지컬 ‘스패마랏’(2005)으로 역시 토니상을 받았다. 니콜스가 마지막으로 토니상을 탄 연극은 올해 마약 과다복용으로 사망한 필립 시모어 호프만이 나온 ‘세일즈맨의 죽음’(2012)이다.  
니콜스는 많은 TV 명작도 남겼는데 2001년에는 HBO 영화 ‘위트’와 역시 HBO의 미니 시리즈 ‘미국의 천사들’로 에미상을 탔다. 
생애 모두 22편의 영화를 만든 니콜스의 대표작들로는 ‘카날 날리지’ ‘실크우드’ ‘워킹 걸’ 및 ‘버드케이지’ 등이 있다. 그의 흥행 실패작으로는 오손 웰즈가 나온 ‘캐치-22’와 ‘포천’ 및 ‘어느 혹성서 왔소?’ 등이 있다. 그의 마지막 영화는 탐 행스가 나온 ‘찰리 윌슨의 전쟁’(2007)이다. 
나는 이 영화가 나왔을 때 니콜스를 인터뷰 했었다. 그 때 나는 그에게 “당신의 어렸을 때의 어려운 경험이 당신을 이토록 성공시킨 창조적 과정에 어떤 영향을 주었는가”라고 물었었다. 
이에 대해 니콜스는 “어려운 환경 속의 어린 피난민이었던 나는 새 나라 미국의 모든 것으로부터 나오는 말에 귀를 기울일 줄 아는 호기심과 능력을 가졌던 같다”면서 “심지어 나는 사람들의 생각마저 들을 줄 아는 강력한 예술 감각을 지녔었던 것으로 안다”고 대답했다.
                                        <한국일보 편집위원/hjpark1230@gmail.com>

‘이미테이션 게임’ (The Imitation Game)

알란 튜링(베네딕 컴버배치)이 자기가 고안한 암호해독기 앞에 서 있다.

나치 패망에 공헌한 천재 동성애자 이야기


2차 대전 때 나치의 도저히 해독할 수 없는 군사용 암호 ‘에니그마’를 해독하는 기계를 발명해 종전을 앞당기는데 지대한 공로를 남긴 영국의 천재 알란 튜링(베네딕 컴버배치)의 삶을 다룬 준수한 전기 드라마다. 
오만한 천재 튜링은 동성애자였는데 (그리고 장거리 달리기 선수였다) 나치 패망의 원동력이 된 ‘에니그마’ 해독기를 발명했음에도 불구하고 이 같은 성적 기호 때문에 경찰에 체포됐고 그 후 자살했다. 2009년 당시 영국 수상이던 고든 브라운은 이에 대해 공식 사과했고 엘리자베스 여왕은 지난해에 튜링을 사면했다.
영화는 튜링이 극비로 구성된 동료들과 함께 암호를 풀 기계를 고안하는 과정과 그의 개인적 문제를 함께 다루고 있다. 매우 짜임새가 좋고 내용도 재미있고 연기도 좋으며 모양새도 반듯하나 영화가 일종의 전쟁영화 치고는 너무 말끔해 보통 잘 만든 영화의 범주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또 영화가 너무 현대적인 것도 결점이긴 하지만 매우 지적이며 오락적이요 흥미 있는 작품으로 볼만하다.
오만불손하고 천상천하 유아독존 스타일의 튜링은 남이 못 보는 것을 볼 줄 아는 탁월한 두뇌를 지닌 천재. 그는 나치가 매일 새로 바꿔 자국 해군에 보낸 암호에 따라 공격을 받고 영국과 연합군의 선박들이 무참하게 수장되는 것을 막기 위해 극비리에 조직된 암호 해독팀에 합류한다. 6명으로 구성된 팀은 모두 수학과 체스의 천재들.
고전 스타일의 지휘관 데니스턴(찰스 댄스)이 총괄하고 체스 챔피언 휴 알렉잰더(매투 굿)가 리드하는 팀은 처음부터 무례하고 자기들을 무시하는 튜링을 달가워하지 않는다. 이런 튜링이 지나치게 독단적인 행동을 하자 데니스턴은 그를 해고하나 튜링은 처칠에게 편지를 써 물질적 재정적 지원의 약속을 받아낸다.
팀의 리더가 된 튜링은 통상적인 수단으로 해독하려면 수십년이 걸리는 ‘에니그마’를 해독하기 위해 여러 개의 디스크와 손잡이들이 있는 기계를 조립하는데 이것이 컴퓨터의 원조다. 
이 팀에 유일한 여자인 조운 클라크(키라 나이틀리)가 참여하면서 영화에 감정적 깊이를 주는데 튜링은 유독 조운과만 다정하게 지낸다. 그리고 튜링은 자신의 성적 기호를 아는 조운의 종용에 따라 이 여자와 형식적인 결혼을 한다. 
영화는 많은 시간을 보통 사람은 알아들을 수가 없는 전문용어들을 사용하면서 팀이 암호 해독기를 고안하는 과정에 할애하는데 일반 관객이 좀 이해하기 쉽게 이 부분을 다뤘어야 했다. 여하튼 팀은 2년이 훨씬 지나서야 마침내 해독기를 완성하는데 런던의 정보부 MI6의 국장 스튜어트 멘지시(마크 스트롱)의 지시에 따라 이를 극비에 부친다. 
그리고 나치가 눈치 못 채도록 독일 함정에 대한 공격도 선발적으로 한다. 이에 따라 튜링이 고안한 인공두뇌인 기계는 나치의 공격을 받는 연합국 선박의 생사여탈권을 행사하는 신적인 구실을 하게 된다. 
영화에서 가장 뛰어난 것은 카리스마 있는 컴버배치의 연기다. 그는 BBC의 TV 시리즈 ‘셜록 홈즈’에서도 천재적인 현대판 탐정 역을 멋있게 해내는데 여기서도 지와 감정을 겸비한 사람의 내적·외적 면모를 아주 자연스럽게 보여준다. 그가 동성애자로서 고뇌하고 갈등하며 또 아파하는 모습은 보는 사람의 가슴을 뭉클하게 만든다. 오스카상 후보감이다. 감독은 노르웨이 태생의 모르텐 틸둠.
PG-13. Weinstein. 아크라이트와 랜드마크.  ★★★★(5개 만점)  
                                                           < 한국일보 편집위원/hjpark1230@gmail.com>


호러블 보스 2 (Horrible Bosses 2)

사장 아들 렉스(오른쪽)가 데일(왼쪽부터), 커트, 닉에게 가짜 납치극을 설명하고 있다.

억지 웃음 강요하는 낡고 엉성한 코미디


2011년에 나와 빅 히트를 한 고약한 사장들에게 시달리는 세 명의 어수룩한 봉급쟁이의 시련과 역습을 다룬 코미디의 속편으로 옛 얘기를 반복하는 것처럼 신선감이 모자란다. 웃기긴 하지만 자연스런 웃음이라기보다 강제된 웃음이라고 해야 옳겠는데 반복되는 플롯을 에피소드 식으로 늘어놓았다.
재미있는 것은 초호화 조연진의 모습과 연기. 갱스터 지망생의 제이미 팍스, 상소리를 내뱉는 투옥 중인 케빈 스페이시, 섹스광 치과의사 제니퍼 로렌스 그리고 간악한 사장과 그의 겉멋 들린 아들로 나오는 크리스토프 월츠 및 크리스 파인 등이 엉성한 영화를 빛내준다.
멍청이라 부를 만한 3인조 닉(제이슨 베이트맨)과 셋 중에 제일 멍청한 데일(찰리 데이) 및 커트(제이슨 서디키스)는 비누와 샴푸와 컨디셔너를 동시에 분사하는 ‘샤워 버디’를 발명한 뒤 물주를 찾는다.
이들이 찾아간 사람이 우편주문 캐털로그사의 간교한 사장 버트(월츠). 버트는 이들에게 샤워버디 10만개를 살 테니 만들라고 제안한다. 그래서 3인은 은행서 50만달러를 융자하고 오합지졸 같은 직원들을 뽑아 주문량을 완성한다.
그런데 교활한 버트가 이들을 파산시키기 위해 주문을 취소하면서 닉과 그의 동지는 큰 일이 났다. 이들이 궁여지책으로 고안해낸 아이디어가 버트의 으스대는 아들 렉스(파인)을 납치해 몸값을 받자는 것.
그래서 납치 아닌 납치를 하는데 렉스가 오히려 자기 아버지를 사기 칠 계획을 마련한 뒤 닉 일행에게 협조해 돈을 나눠 먹자고 꼬득인다. 이에 세 멍청이가 마지못해 범행에 참여하면서 온갖 해프닝이 일어난다. 그런데 렉스는 진짜 나쁜 놈이다.    
닉과 그의 친구들은 렉스를 납치하기 전에 흑인 동네의 딘(팍스)과 살인죄로 복역중인 닉의 전직 사장 데이브(스페이시)를 찾아가 범행에 쓸 물건을 구하고 또 자문을 구하는데 이 부분이 웃긴다. 터무니없는 내용으로 부분 부분은 웃기기도 하지만 전체적으로는 짜임새가 전연 없는 넌센스다. 션 앤더스 감독. R. New Line. 전지역. ★★½(5개 만점)
                                                                    < 한국일보 편집위원/hjpark1230@gmail.com>

흑과 백



둘 다 흑인인 덴젤 워싱턴과 오프라 윈프리를 인터뷰 한 적이 있었다. 나는 워싱턴에게 “당신은 인종차별을 불치의 병으로 생각하느냐”고 물었다. 그는 이에 “그렇다”면서 “아마 앞으로 100년이 지나도 그 병은 고쳐지지 않을 것이다”며 심각한 표정을 지었었다.
나는 윈프리에게는 “당신은 흑백차별이 인간의 본성에서 나오는 것으로 여기느냐”고 물었다. 그랬더니 윈프리는 정색을 하면서 “아니다. 그것은 교육에 달린 문제다”고 대답했었다.
그러나 나는 윈프리와는 생각이 다르다. 나는 인종차별이 인간의 원초적 본능에 기인한 것으로 생각한다. 자기와 다른 것에 대한 동물적인 반응이다. 따라서 우리는 모두 인종차별주의자들이다.
자기와 다른 것에 대한 인간의 타고난 거부반응은 관용과 인내와 인간성 그리고 사랑과 연민 또 윈프리의 말처럼 교육으로 휴면시키는 수밖에 없다.
미주리주 세인트루이스 카운티 대배심이 퍼거슨시의 비무장 흑인 청년 마이클 브라운을 총격 사망케 한 백인 경관 대런 윌슨에 대해 불기소 결정을 내리자 퍼거슨을 비롯해 전미 대도시에서 격렬한 시위가 벌어지면서 약탈행위도 자행되고 있다. TV로 이를 보면서 4.29폭동이 생각났다.
그 때 사우스LA의 한인 가게들이 흑인들에 의해 큰 피해를 입었는데 흑인 동네에서 장사하다가 애꿎게 흑인들의 분풀이 상대가 된 한인 가게가 나오는 영화가 스파이크 리가 감독하고 주연도 한 ‘똑바로 살아’(Do the Right Thing·1989)이다.
뜨거운 여름 브룩클린의 흑인 동네에서 일어나는 인종갈등을 그린 화끈한 영화로 난동 흑인이 한인 가게에 들어가 마구 기물을 파괴한다. 난 언젠가 리를 인터뷰했을 때 그에게 이 장면에 대해 물었더니 리는 “어, 그 거 특별히 한국 사람들에 대한 거부반응을 보인 것은 아니다”면서 “어쨌든 미안하다”고 어물쩍 넘어갔다.
미국의 흑인에 대한 차별과 멸시는 현실에서 뿐만 아니라 할리웃에서도 무성영화 때부터 있어 왔다. D.W. 그리피스의 걸작으로 우드로 윌슨 대통령이 “번개로 쓴 역사”라고 찬양한 무성영화 ‘국가의 탄생’(Birth of a Nation·1915)도 흑인 박해 단체인 KKK를 찬양해 지금까지도 논란거리가 되고 있다.
또 할리웃 최초의 유성영화 ‘재즈 가수’(Jazz Singer·1927)에서는 백인 알 졸슨이 얼굴에 검은 칠을 하고 노래를 불러 구설수에 올랐고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에서는 스칼렛의 흑인 하녀들인 매미와 프리시가 하잘 것 없거나 맹하게 묘사돼 흑인차별 영화라는 오명을 뒤집어썼다.
이렇게 미 백인들의 흑인에 대한 차별과 멸시 때문에 라나 터너가 주연한 영화 ‘인생의 모방’(Imitation of Life·1959)에서는 흑인 가정부의 백색 피부를 지닌 딸(수전 코너)이 어머니를 외면했다가 뒤늦게 후회하고 대성통곡을 한다. 또 ‘핑키’(Pinky·1949)에서도 하얀 피부 때문에 백인 행세를 하던 젊은 여인 핑키(진 크레인)가 고향인 남부에 돌아왔다가 자신의 정체를 인식하고 고향에 봉사하기 위해 정착한다.
내가 어렸을 때 본 영화로 백인의 흑인에 대한 혐오에 혀를 찬 것이 한국전 영화 ‘모든 젊은 남자들’(All the Young Men·1960)이다. 인종차별주의자인 미군 하사관 킨케이드(앨란 래드)가 적의 탱크에 팔이 깔려 절단되면서 수술을 받는다.
이 때 킨케이드에게 수혈을 해주는 전우가 킨케이드가 증오하는 흑인 하사관 에디(시드니 포이티에)다. 에디의 피가 킨케이드의 혈관 내로 들어가면서 흑백통합이 이뤄진다.
영화 ‘흑과 백’(The Defiant Ones· 1958)에서는 흑인을 사갈시 하던 탈옥수 존(토니 커티스)이 쇠사슬에 매인 수갑으로 서로 연결된 흑인 노아(시드니 포이티에)와 같이 숨이 턱에 차도록 도주를 하다가 노아의 인간성에 감복, 흑인에 대한 증오감을 저버리게 된다. 사회문제에 관심이 깊었던 스탠리 크레이머 감독의 긴장감 있고 훌륭한 연기를 볼 수 있는 드라마다.
포이티에는 흑인 최초로 오스카상을 탄 배우로 여러 편의 흑백문제를 다룬 영화에 나왔다. 그 중에서도 역시 크레이머가 감독하고 스펜서 트레이시와 캐서린 헵번이 공연한 ‘초대 받지 않은 손님’(Guess Who’s Coming to Dinner·1967)은 흑백문제를 다룬 명화들 중의 하나다.
백인 처녀(캐서린 휴턴-헵번의 실제 질녀)가 약혼자인 흑인 변호사(포이티에)를 처음으로 부모에게 소개시키는 드라마로 당시만 해도 미국의 많은 주에서는 흑백 결혼이 불법이어서 큰 화제가 됐었다. 트레이시의 유작으로 그의 마지막 인간성에 대한 긴 대사는 눈시울을 적시게 만든다.
2015년 1월에 나올 ‘흑이냐 백이냐’(Black or White·사진)도 흑백문제를 솔직하게 다룬 준수하고 재미있는 드라마다. 태어났을 때부터 흑인 손녀를 혼자 키워온 외조부(케빈 코스너)가 갑자기 손녀의 흑인 친할머니(옥테이비아 스펜서)로부터 손녀 양육권에 대해 소송을 당하면서 흑백문제가 야기되는 좋은 얘기다. < 한국일보 편집위원/hjpark1230@gma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