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이야기

2014년 11월 12일 수요일

‘잔 윅’ 키아누 리브스


“색다른 범죄자들 이야기에 끌려 출연”


현재 상영 중인 유혈폭력이 난무하는 액션 스릴러‘잔 윅’(John Wick)에서 개인적 복수를 위해 은퇴에서 다시 범죄의 세계로 돌아온 무자비한 킬러로 나온 키아누 리브스(50)와의 인터뷰가 최근 LA의 할리웃 외신기자협회(HFPA) 사무실에서 있었다. 덥수룩한 검은 수염만 없었다면 50이라곤 믿어지지 않을 만큼 청년의 모습을 한 리브스는 단단한 체구의 늘씬한 미남으로 수줍음을 많아 타 질문에 자주 얼굴을 붉히면서 차분히 답했다. 처음에는 상당히 경직돼 무표정한 얼굴이었으나 시간이 가면서 긴장이 풀린 듯 잔잔한 미소와 함께 가끔 유머를 구사해 가면서 질문에 응했다. 인터뷰 후 기념사진을 찍을 때 기자가“당신이 50세라고, 내가 보기엔 소년 같다”고 말했더니 리브스는“오, 노 노”하면서 얼굴에 홍조를 띠었다. 리브스는 이 영화 홍보차 12월 둘째 주 한국을 방문한다.    

-어떻게 이 영화에 출연을 응했는가.
“각본이 마음에 들었다. 명예를 존중하는 범죄자들의 지하세계의 얘기로 유머와 인간적인 면이 있는 글이었다. 여태껏 나온 영화들과는 다른 특별나고 신선한 점이 있었다. 액션도 아주 다르다. 모든 것이 당신 앞에서 일어나는 듯이 사실적이다. 그 사실을 바짝 긴장도를 높인 것이다.”

-액션을 위해 어떤 훈련을 했는가.
“주지추와 유도를 짬뽕한 ‘건 후’라는 무술을 익히라고 해서 연습했는데 재미있었다. 그리고 여러 가지의 권총 다루는 방법을 연습했다.”

-당신은 영화에서 셀 수 없이 많은 악인들을 살해하는데 몇 명인지 아는가.
“감독이 나더러 70명 이상 죽였다고 하더라. 존 윅은 그래서 매우 바빴다.”

-이 영화는 배우인 에바 롱고리아가 제작을 했는데 에바는 영화제작에 얼마나 개입했는가.
“에바는 제작에 실제로 참여하진 않았다. 다만 영화가 만들어질 수 있도록 뒤에서 적극적으로 밀어줬다.”

-당신의 밴드는 지금 어떻게 됐는가.
“수년 동안 해산된 상태다. 몇 주 전에 즉흥 연습연주를 했다. 아주 오래간만인데 이상했지만 즐거웠다. 새로운 곡을 지어보려고 구상 중이나 어떻게 될지는 나도 모르겠다. 밴드가 다시 구성돼 연주하게 될 것인지에 대해서도 장담을 할 수가 없다.”

-영화에서 차가 중요한 구실을 하는데 당신은 어떤 차를 모는가.
“2013년도 포셰다. 아름다운 기계로 이 차는 내 친구다. 

-당신은 궁지에 몰릴 때 누구를 찾는가.
“상황에 따라 다르지만 가족이나 친구 그리고 변호사나 경찰도 찾는다.”

-쫓아다니는 파파라치들에게 어떻게 대처하는가. 그들을 쿵후로 때려누이고 싶지 않은가.
“그것은 내가 육체적으로 얼마나 준비가 돼 있느냐 하는데 달려 있다. 파파라치들이 갑자기 카메라를 들이댈 때면 겁이 난다. 결코 즐거운 일이 아니다. 그들이 다른 직업을 가지기를 바란다.”

-존 윅의 가까운 친구는 개와 자동차 그리고 총인데 당신의 가장 가까운 친구는 무엇인가.
“다른 사람과 마찬가지다. 특히 고르라면 모터사이클들이다. 그리고 영화를 찍을 때 얻은 물건들을 아끼는데 그런 것으로 두 개의 타이프라이터가 있다. 그리고 내가 제일 좋아하는 두 벌의 양복이 있고 친구들의 사진과 내 경험을 찍은 사진들 및 내가 나온 몇 편의 영화들이 내 친구들이다.”

-애완동물이 있는가.
“없다.”

-요즘도 모터사이클을 타는가.
“탄다. 나는 실제로 모터사이클 회사를 소유하고 있다. 이름은 아치 모터사이클로 동업인데 6주 전부터 물건을 팔기 시작했다. 우리가 직접 만드는 모터사이클들은 아주 멋있다. 전 세계적으로 판매할 예정이다.”

-과거를 돌아보건대 당신은 지금 당신이 원했던 배우가 됐다고 생각하는가.
“과거를 회상하자면 그 동안 배우로서 일할 수 있었고 내가 사랑하고 또 어떤 것은 팬들이 사랑하는 영화에 나왔다는 것은 참 행운이다. 나는 1985년 할리웃에서 일하기 위해 토론토를 떠났다. 그동안 목적이 이뤄졌고 또 현재도 나는 좋은 영화와 역을 찾고 있다. 많은 것이 변했지만 여러 가지의 다른 얘기를 하고자 하는 정열과 희망 및 이유는 늘 같다.”

-어느 장르의 영화를 좋아하는가.
“난 모든 장르를 좋아한다. 영화는 신문이나 잡지를 읽고 흥미 있는 감독이나 내용의 영화를 발견하면 구경 간다.”

-당신의 러시아어 구사 능력이 썩 괜찮던데.
“액센트가 너무 심하지 않고 약간 있는 러시아어를 구사하려고 노력했다.”

-당신은 스타일 있는 폭력을 구사하는 아시아적 주제를 지닌 영화에 여러 번 나왔는데 그런 영화들이 미국 영화에 영향을 주었다고 보는가.
“스타일 있는 영화 폭력이 어디서 시작되었는지는 모르겠으나 그것은 무성영화 때부터 있었던 것이라고 본다. 그러나 멋있는 죽이고 패는 폭력영화는 샘 페킨파에서부터 시작됐다고 생각한다. 그의 영화와 스타일 있는 유럽 폭력영화는 서로 영향을 주고받으면서 성장했다고 본다. 그리고 하나 분명한 것은 홍콩의 쿵푸영화로부터 큰 영향을 받았다는 점이다.”

-당신은 로맨틱한 사람인가.
“존 윅 역을 맡은 것은 그가 로맨틱하기 때문이었다. 나로 말하자면 로맨틱하다기보다 장난기가 있다고 하겠다.”

-모든 면에서 영화가 매우 과장돼 마치 비디오게임을 보는 것 같은데 어떻게 생각하는가.
“그렇다. 확실히 스타일 있는 폭력을 내포한 게임이자 현실을 한 단계 높인 영화라고 하겠다. 마치 자신이 하는 게임을 보는 것과도 같다.”

-영화의 프로 킬러들은 나름대로의 윤리강령이 있는데 영화사 고급 간부들과 비교해 볼 때 어떤가.
“내가 아는 킬러들이 없으니 그들의 윤리에 대해선 알 바 없지만 영화사 간부들 중에는 더러 그런 사람들이 있다.”

-영화사 간부들에 의해 데인 적이라도 있는가.
“그것에 대해 생각하고 싶지 않다. 없다고는 못할 것이다. 그것이 쇼 비즈니스다.”

-당신은 나이답지 않게 젊어 보이는데 무슨 비결이라도 있는가.
“액션영화를 만들 때 엄격하고 힘든 훈련을 받는다. 그리고 조상의 유전자 탓도 있으니 그들에게 감사한다.”

-당신은 70명밖에 안 죽였지만 실베스터 스탤론이 나온 ‘익스펜다블스’에선 그것의 두 배가 넘는 사람들이 죽는데 그 영화의 속편에 나올 뜻이라도 있는가.
“내게 빈자리가 주어진다면 서슴지 않고 뛰어들 것이다. 실베스터 스탤론은 배우와 감독과 제작자로서 큰 업적을 남긴 사람이다. 그는 사람들을 즐겁게 해주는 뛰어난 예술가이다. 그가 내게 그의 영화에 나올 것을 제의한다면 나로선 하나의 큰 영광이다.”

-이것은 당신의 무술영화인데 무술에 대해 늘 열정이 있었는가.
“난 어렸을 때부터 전쟁놀이와 가짜 싸움을 즐겼었다. 우리가 연극을 할 때면 늘 칼싸움이 있는 것을 했다. 내게 있어 그것은 카우보이와 인디언의 싸움이었다.”

-언제부터 모터사이클을 탔으며 그것을 타고 멋진 여행이라도 해 봤는가.
“처음에 독일서 배웠다. 미국에 와 처음 타고 간 곳은 선셋 블러버드와 퍼시픽코스트 하이웨이와 샌타모니카 산이었다. 그것을 반복했다. 프랑스와 호주에서 멋진 여행을 즐겼고 미 동부에서도 신나게 달렸다. 샌프란시스코 연안을 달린 것도 좋았다.”

-당신이 가장 좋아하는 모터사이클은 무엇이며 그것을 타고 여행을 할 때 혼자 하는가 여럿이 하는가.
“가장 좋아하는 것은 노턴 코맨도다. 프랑스와 호주 여행 땐 친구들과 같이 달렸다. 미국에서도 혼자 탈 때가 있고 여러 명이 함께 탈 때도 있다.”

-몇 대가 있는가.
“모두 4대다.”

-당신이 나온 ‘포인트 브레이크’의 신판이 만들어진다고 하는데 어떻게 생각하는가.
“그저 잘 만들고 만들면서 즐기기를 바랄 뿐이다.”  

-당신과 존 윅은 닮은 데라도 있는가.
“거의 없다. 그래서 존 윅 역을 하는 것이 좋았는지도 모른다. 그는 어떤 강한 힘을 지녔는데  나는 그렇지 못하다.”

-요새 당신을 행복하게 해주는 사람이 누구인가.
“영화 나오느라 바빠서 사랑할 시간이 별로 없다. 그저 가족과 친구와 함께 있기를 즐긴다. 현재 애인은 없다. 슬픈 일이다. 친구들이 나를 여자와 연결시켜 주려고 몇 차례 시도했지만 포기했다.” 

인터스텔라 (Interstellar)

쿠퍼(매튜 매코너헤이)가 우주여행 끝에 빙하가 된 혹성에 도착했다.


인류의 새 정착지 찾아서… 눈부신 우주탐험


두뇌를 요구하는 영화를 만드는 영국의 크리스 놀란 감독(‘배트맨’ ‘인셉션’)의 사랑과 희생의 주제를 곁들인 대규모 스펙태클 공상과학 우주탐험 드라마로 놀란의 ‘2001: 우주 오디세이’다. 대단한 야심작으로 아찔한 시각효과와 아름다운 촬영 그리고 고상한 아이디어와 스타일 및 주인공의 좋은 연기를 비롯해 칭찬 받을만한 점이 많긴 하나 문제는 이야기 서술과 터무니없이 복잡한 플롯(놀란이 동생 조나산과 함께 각본을 썼다) 그리고 궁극적 연출 결과가 야심과 아이디어를 못 따라 가고 있다는 점이다.
온갖 이론 물리학을 잘 알아도 이해할까 말까 할 지나치게 많은 천문과학적 용어와 함께 마치 관객의 지능을 시험하기라도 하겠다는 듯이 쓸데없이 혼란스럽게 늘어놓은 플롯 그리고 감독의 부푼 이고 때문에 작품에 몰입하려다가도 주춤하고 물러서게 된다.
무슨 요설을 듣는 것 같기도 하고 또 속임수에 당하는 기분이기도 한데 놀란은 ‘2001’을 능가하기라도 하겠다는 듯이 암호로 만든 듯한 장광설을 늘어놓아 짜증마저 난다. 그는 기자회견에서 “이 영화는 이해하려 하지 말고 그저 느껴라”면서 잘 모르겠으면 두 번, 세 번이라도 보라고 영화사 홍보인 같은 소리를 했다. 그리고 영화에 우주인으로 나온 앤 헤사웨이도 “나도 영화를 완전히 이해 못하겠다”고 말했다.
지구가 흙모래 폭풍으로 황폐해가면서 식량이 모자라는 가까운 미래. 전직 우주비행사로 홀아비인 쿠퍼(매튜 매코너헤이)는 시골에서 옥수수 농사를 지으면서 장인(존 리트고우)과 두 남매 탐(어릴 때는 티모데 샬라메, 성인 역은 케이시 애플렉)과 머피(어릴 때는 맥켄지 포이, 성인 역은 제시카 채스테인)와 함께 살고 있다.
쿠퍼가 우연히 위치를 숨긴 마지막 남은 미 국립우주항공국(NASA-식량 조달이 우선이어서 모든 NASA 기지는 폐쇄됐다)을 발견하면서 거기서 자신의 옛 스승인 우주공학자 브랜드(마이클 케인)를 만난다. 브랜드는 쿠퍼에게 인류가 살 수 있는 다른 행성이 있는지를 탐험해 달라고 부탁한다.
쿠퍼는 한 번 떠나면 다시는 돌아오지 못할지도 모르는 우주여행을 앞두고 깊은 고민에 빠진다. 인류를 위해 자기희생을 할 것이냐 아니면 떠나지 말라고 우는 딸이 있는 가정을 지킬 것이냐. 영화는 흥분되고 선험적인 우주모험에 사랑의 감정을 듬뿍 담고 있다.
그리고 쿠퍼는 브랜드의 딸 아멜리아(해사웨이)와 다른 2명의 우주인들과 함께 우주탐험을 떠난다. 우주선에는 냉소적인 걸어 다니는 검은 고체상자와 같은 로봇이 동승하는데 이 로봇은 ‘2001’의 비석 모양의 검은 물체를 연상케 한다. 
우주선은 한 우주에서 다른 우주로 통하는 관문인 웜호울을 빛의 속도를 초월해 비행하면서 토성 인근의 빙하가 된 혹성(이 부분이 인상적이다)에 도착한다. 눈부신 시각효과를 사용해 보여주는 이 우주여행이 장관인데 70mm 대형화면을 가득 메운 방대한 우주 속의 모험이 스릴 만점이다. 
감탄할 부분도 적지 않고 작품제작 의도도 가상한 영화이긴 하나 결점도 많은 일종의 미완성대작이다. 그리고 매코너헤이를 제외한 다른 배우들은 매코너헤이의 들러리 노릇을 하고 있다. 좀 과다하긴 하나 오르간을 주로 사용한 한스 짐머의 음악이 효과적이다.
PG-13. Paramount. 전지역. ★★★(5개 만점)  <한국일보 편집위원/hjpark1230@gmail.com>

모든 것의 이론 (Theory of Everything)

제인(왼쪽)과 호킹이 서로 사랑의 눈길을 즐기고 있다.

스티븐 호킹의 업적과 25년에 걸친 사랑과 이별 


블랙홀과 우주의 기원에 관해 연구하고 베스트셀러 ‘시간의 짧은 역사“를 쓴 이론물리학자 스티븐 호킹 박사에 관한 드라마로 말끔하고 확실하게 잘 만들었으나 특별히 뛰어난 점은 없는 전형적인 전기 드라마다. 호킹의 업적과 25년간에 걸친 그와 아내 제인의 사랑과 결혼 그리고 이혼을 고루 다루고 있는데 두 주연 배우의 연기가 매우 훌륭하다.
이와 함께 역경을 극복한 인간 승리의 재미있는 내용과 영국 현지에서 찍은 촬영 그리고 음악 등이 다 좋아 권하고 볼만한 영화이긴 하지만 작품이 현존하는 사람에 관한 것이어서 그런지 얘기를 너무 조심해서 다뤄 극적인 높낮이를 충분히 즐기기는 힘들다.
시간대를 따라 진행되는 영화는 1963년 호킹(에디 레드메인)이 캠브리지 대학에서 박사과정을 밟을 때부터 시작된다. 그는 대학의 한 파티에서 문학을 전공하는 제인(펠리시티 존스)을 만나고 둘은 사랑에 빠진다.
둘은 순진한 아이들처럼 사랑에 빠지는데 이와 함께 호킹의 연구생활이 교차로 묘사된다. 그리고 호킹은 수학에 남다른 이해력과 통찰력을 지녀 담당교수 데니스(데이빗 튤리스)를 놀라게 한다.
그러나 호킹은 근위축증(루게릭병)에 걸리고 의사로부터 2년밖에 더 못 산다는 말을 듣고 절망에 빠진다. 호킹은 제인마저 외면하나 호킹을 진실로 사랑하고 강단이 있는 제인은 호킹을 떠나지 않는다. 그리고 둘은 결혼해 아이들을 낳고 행복한 생활을 즐긴다.
호킹의 병세가 악화하면서 제인의 슬픔과 고통 그리고 남편을 돌봐야 하는 부담도 따라서 증가하나 제인은 굳세게 남편을 지킨다. 영화는 이런 제인의 처지를 상당히 강조하고 있다. 그리고 제인은 교회의 합창단 지휘자 조나산(찰리 칵스)을 사랑하게 된다. 이와 함께 둘의 결혼생활은 호킹이 자기를 돌보는 특별 간호사를 사랑하게 되면서 끝이 난다.
호킹의 과학적 업적과 결혼생활 그리고 이 결혼의 해체를 균형 있게 다루려고 무척 애를 쓴 흔적이 역력한데 좀 과감했더라면 영화가 훨씬 더 힘 있고 극적인 것이 되었을 것이다.
영화에서 가장 볼만한 것은 레드메인의 연기다. 몸의 연기라기보다 얼굴의 연기로 눈동자와 입술과 안면근육을 사용해 매우 우아하고 완벽하게 호킹을 재현하고 있다. 총명하고 또렷한 연기로 레드메인의 ‘나의 왼발’이라고 하겠다. 이와 함께 존스의 연기도 단단하면서도 고상하다. 제임스 마쉬 감독. PG-13. Focus. 일부지역. ★★★½(5개 만점) <한국일보 편집위원/hjpark1230@gmail.com>

‘황야의 결투’



웨스턴의 장인 존 포드는 영화 ‘리버티 밸런스를 쏜 사나이’에서 “여기는 서부야. 전설이 사실이 되면 전설을 인쇄하지”라고 말했다. 이렇게 사실과 전설이 뒤엉켜 사실이 전설이 되다시피 한  미 서부의 총격전의 대표적 사건이 1881년 10월26일 이른 아침 애리조나주 툼스톤에서 일어난 O.K. 목장의 결투다.
연방 보안관 와이엇 어프와 그의 형제들 그리고 와이엇의 친구로 전직 치과의사인 폐병환자 킬러 닥 할러데이 대 소도둑 일가 클랜턴 가족 간에 벌어졌던 총격전으로 단 30여초 만에 끝났다,
미 서부사의 마지막 대결이라 불리는 이 전설적인 사건은 하도 유명해 수많은 책과 TV 작품과 영화로 만들어졌다. 그 중에서도 가장 화려하고 대중적인 것이 버트 랭카스터와 커크 더글러스가 나온 ‘O.K. 목장의 결투’(1957)다.
이 밖에도 이 결투는 제임스 가너와 제이슨 로바즈가 공연한 ‘총의 시간’과 커트 러셀과 발 킬머가 나온 ‘툼스톤’ 그리고 케빈 코스너와 데니스 퀘이드가 공연한 ‘와이엇 어프’ 등 여러 편의 영화로 만들어졌다.
그러나 나와 내 친구 C가 가장 좋아는 웨스턴이자 O.K. 목장의 결투 얘기는 존 포드가 감독한 흑백 서정시와도 같은 ‘황야의 결투’(My Darling Clementineㆍ1946ㆍ사진)이다. 이 영화는 와이엇 어프를 개인적으로 알았던 포드가 그에게 바치는 헌사다.
내용과 연기와 액션과 함께 포드가 여러 편의 웨스턴을 찍은 애리조나와 유타주 경계에 있는 모뉴먼트 밸리에서 찍은 촬영 등 모든 것이 준수한 작품이다. 물론 극적 재미를 위해 사실을 다소 전설화 했지만 가급적 사실에 충실한 영화로 느린 템포로 서술되고 있다.
많은 포드의 웨스턴에서 볼 수 있는 활짝 트인 하늘과 떠 있는 뭉게구름 그리고 광활한 황야를 무대로 펼쳐지는 극적인 얘기로 우수와 노스탤지어가 촉촉이 배어 있다. 특히 인상에 깊이 남는 것은 침울한 흑백 명암을 뛰어나게 처리한 촬영이다. 치밀하게 구성된 화면 안에 마치 서부 전체를 떠다 옮겨 놓은 듯한 무한광대하고 흙먼지 일어나는 사실적인 촬영으로 영상시의 극치라고 할만하다.
툼스톤은 모뉴먼트 밸리와는 거리가 있지만 포드가 매우 좋아한 곳이어서 영화를 여기서 찍었는데 그는 자신의 다른 웨스턴인 ‘역마차’와 ‘황색 리번’ 및 ‘수색자’ 등도 역시 이 곳에서 찍었다. 그래서 모뉴먼트 밸리에는 포드를 기리는 ‘존 포드 포인트’가 있다.
나는 오래 전에 ‘역마차’의 현장 취재차 모뉴먼트 밸리를 방문했었다. 황토의 언덕 위에서 아래로 가없이 물러선 광야를 바라보면서 영혼이 산산이 부서져 허공중에 떠도는 듯한 신비한 감동을 느꼈었다. 왜 포드가 모뉴먼트 밸리를 좋아했는지 알 것 같았다.
영화에서 참 보기 좋은 것은 ‘신사 건맨’ 와이엇 어프 역의 헨리 폰다의 과묵한 모습과 절제된 연기다. 콧수염을 한 폰다의 침착하고 평온한 연기는 거의 단조로울 지경인데 대사의 억양 역시 높낮이가 거의 없다. 완벽한 연기로 수필과도 같은 것이라는 평을 들었다.
그 못지않게 멋진 인물이 닥 할러데이로 나온 빅터 마추어다. 폐병으로 심한 기침을 할 때마다 목에 감은 스카프로 입을 틀어막는 닥은 이 기침을 위스키로 진정시키곤 한다. 그런데 사실과 달리 닥은 영화에서 이 기침 때문에 클랜턴 일가의 총에 맞아 죽는다.
마추어는 쓴맛 다시는 표정으로 시한부 인생의 건맨 모습을 윤곽이 뚜렷하게 표현하는데 “투 비 오어 낫 투 비”와 함께 셰익스피어의 ‘햄릿’의 구절을 줄줄이 외워 살육의 영화에 문학적 기운마저 부여한다.
제목의 클레멘타인(캐시 다운즈)은 닥의 전 애인으로 그녀는 자기를 피해 서부로 달아난 닥을 찾아 툼스톤에 도착한다. 그런데 어수룩할 정도로 순진한 와이엇이 이 참한 색시를 보고 첫 눈에 반한다. 영화에서 간간이 하모니카로 불어대는 미국 민요 ‘마이 달링 클레멘타인’의 선율이 차마 자기 사랑을 제대로 고백 못하는 와이엇의 마음을 감상적으로 대변하고 있다.
클레멘타인과는 정반대로 정열적인 여인이 닥을 사랑하는 술집가수인 멕시칸 치와와(린다 다넬)다. 눈이 큰 다넬이 닥을 사랑하는 여인의 역을 뜨겁게 보여주고 있다. 멕시칸고추처럼 입안이 화끈해지는 연기다.
영화는 포드의 많은 다른 웨스턴들처럼 주인공이 먼 지평선 속으로 사라지는 장면으로 끝난다. 와이엇은 마을에 학교 선생으로 남는 클레멘타인의 볼에 입을 맞춘 뒤 “맴, 나는 클레멘타인이라는 이름이 참으로 좋습니다”라는 말로 작별을 고한다. 이어 카메라가 말을 타고 떠나가는 폰다의 뒷모습을 작은 점이 될 때까지 따라간다. 과연 와이엇은 클레멘타인을 찾아 다시 툼스톤으로 돌아올 것인가.
와이엇 어프는 생애 모두 100여회의 결투를 했는데 건맨으로는 보기 드물게 장수하다가 1929년 81세로 LA에서 사망했다. 닥 할러데이(본명 존 H. 할러데이)는 조지아주 명문 태생으로 폐병으로 치과를 문 닫고 서부로 방랑길에 올랐다. 총과 칼에 능했는데 1887년 35세로 숨지기까지 모두 30명을 황천으로 보냈다. ‘황야의 결투’가 새로 프린트돼 Criterion에 의해 블루-레이로 나왔다.   <한국일보 편집위원/hjpark1230@gmail.com>

2014년 11월 4일 화요일

나이트크럴러(Nightcrawler)

루(제이크 길렌할)가 사전현장에 도착, 현장을 엿보고 있다.

도덕성? 양심? 웃기지들 마, 대중은 피를 원해!


태블로이드 저널리즘 특히 시청률에 매어달려 센세이셔널한 사건에만 집착하는 TV 저널리즘과 이런 뉴스를 즐기는 시청자들을 싸잡아 비판하고 조롱한 어둡고 폭력적이며 고약하도록 우스운 스릴러다.
 TV방송국의 이면을 파헤친 영화‘네트웍’의 시궁창 냄새가 나는 새카만 풍자판이라고도 할 수 있는 영화로 생존을 위해선 무슨 짓이든지 마다하지 않는 비도덕적인 한 야행성 들쥐 같은 인간을 통해 빗나간 아메리칸 드림을 조소하고도 있다.
영화가 다소 과장되고 야단스럽긴 하지만 흡혈귀 노스페라투 같은 모습으로 필사적인 연기를 하는 주인공 제이크 길렌할과 조연진의 좋은 연기 그리고 LA(여러 장면을 코리아타운에서 찍었다)의 밤을 치명적인 아름다움으로 찍은 촬영과 함께 흥미진진한 내용 등 대중에게 어필할 흥분되는 영화다.
루 블룸(길렌할)은 LA의 밤을 헤매는 도둑이자 날치기요 사기꾼으로 시궁창 쥐와도 같은 영혼에서 도덕성이 빠져나간 자다. 살기 위해선 어떤 짓이라도 하는 루는 어느 날 처참한 교통사고 현장에서 프리랜서 비디오 카메라맨들이 현장을 찍어 TV 방송국에 팔아먹는다는 것을 배운다.
루는 이어 베니스비치에서 비싼 자전거를 훔쳐 전당포에 가 자전거를 비디오카메라와 경찰 호출 스캐너와 바꾼 뒤 야간 사고현장에 들이닥친다. 앰뷸런스 뒤를 쫓는 프리랜서다.
루가 처음 찍은 것은 카재킹 피해자 모습. 그는 이것을 시청률 꼴찌인 TV 방송국의 심야 뉴스제작자로 시청률 상승에 혈안이 된 니나(르네 루소가 오래간 만에 영화에 나와 섹시하면서도 절박한 연기를 잘 한다)에게 팔아먹는다.
‘대중은 피를 원한다’는 것이 자신의 좌우명인 니나는 루에게 더 화끈한 필름을 가져오라고 요구하면서 루는 밤새 LA의 사건과 사고현장을 쫓아다니면서 카메라를 들이댄다. 그리고 루는 장래를 보장한다는 온갖 감언이설과 요설을 늘어놓으면서 싼 값으로 릭(리즈 아메드도 잘 한다)을 조수로 고용한다.
둘은 밤의 LA를 헤매고 다니면서 피투성이의 교통사고나 총격사건 따위를 카메라에 담는데 루는 사고를 보다 드러매틱하게 찍기 위해 시체를 조명 밝은 곳으로 옮기기까지 한다. 그리고 경찰보다 먼저 삼중 살인사건 현장에 도착, 참혹한 현장을 찍어 니나에게 판다. 이 때문에 루와 니나는 경찰의 심문을 받는다.
내면이 심각하게 썩어 문드러진 루는 보다 충격적인 필름을 요구하는 니나에게 자기와 데이트를 안 하면 필름을 다른데 팔겠다고 공갈을 한다. 돈 독이 오르고 아울러 끔찍한 사고와 사건을 찍으면서 흥분감을 즐기게 된 루는 충격적인 물품을 내놓기 위해 현장 훼손을 밥 먹듯이 하는데 급기야는 준 살인행위마저 저지른다.
길렌할은 영화를 위해 체중을 많이 줄였는데 피골이 상접한 얼굴에 뚫린 두 눈이 마치 해골을 보는 것 같다. 필사적인 연기인데 대단한 배우라고 감탄하게 된다. 좀 도가 넘었지만 그런대로 사실감마저 있는 사납고 재미있는 영화다. 댄 길로이 감독(각본 겸). R. Open Road. 전지역. ★★★½(5개 만점) <한국일보 편집위원/hjpark1230@gmail.com>

뿔(Horns)


이마에 뿔 난 이그는 자기 애인 살해자를 찾는다.

갑자기 뿔이 나면서 독심술 능력 생기는데… 


초현실적인 공포 우화이자 로맨스 이야기요 또 블랙 코미디로 성경을 빗댄 내용이 담긴 괴이한 영화다. 그림처럼 아름다운 장면과 지옥 같은 어둡고 두려운 장면을 뒤섞어 환상적인 분위기를 만드는데 동명소설이 원작이다.
‘해리 포터’ 대니얼 래드클리프가 주연하는데 그는 ‘킬 유어 달링스’와 ‘왓 이프’ 그리고 이 영화로 세 번째 해리 포터의 이미지를 벗어버리려고 시도하고 있다. 걱정되는 것은 그의 ‘해리 포터’ 후의 영화들이 흥행이 부진한 점. 이 영화도 크게 흥행이 잘 될 것 같지 않다.
미 북태평양 연안의 작은 동네에 사는 이그 페리쉬(래드클리프)는 어렸을 때부터 서로 사랑해 온 애인 메린(주노 템플)이 살해되면서 애인 살해자로 몰려 동네에서 왕따를 당한다. 영화는 이그와 메린이 마치 애담과 이브처럼 따뜻한 태양빛 아래 초원에 누워 사랑에 잠긴 플래시백 장면으로 시작된다.
경찰도 이그가 범인이라고 단정하나 증거가 없어 체포하지 못한다. 그의 부모는 아들을 감싸지만 아버지는 아들이 범인이라고 생각한다. 유일하게 이그의 편을 드는 사람이 그의 어릴 때부터 친구로 공익 변호사인 리(맥스 밍겔라).
어느 날 이그가 아침에 잠에서 깨어나면서 이마 양쪽에 작은 뿔이 난 것을 발견한다. 병원에서도 뿔난 이유를 모르는 것은 물론이요 제거하지도 못한다. 그리고 뿔은 자꾸 자라 이그는 동안의 마귀 모습이 된다.
뿔을 제거하려고 애를 쓰던 이그는 뿔이 다른 사람들의 어두운 비밀과 충동을 간파하게 만드는 능력을 지닌 것을 깨닫는다. 이그는 남의 마음을 읽을 줄 아는 사람이 된 것. 그래서 이그는 이 신통력을 이용해 메린을 죽인 범인을 찾아 나선다.       
괴상하지만 악의 없는 동화 같은 얘기는 시간이 흐를수록 어두워지면서 마지막 부분에 이르러서는 본격적인 공포영화로 발전한다. 특히 이그가 수많은 뱀들을 풀어 자기를 괴롭히는 사람들에게 보복을 하는 장면은 겁난다. 래드클리프가 이 장면을 즐기면서 해낸다. 
마침내 이그는 메린을 죽인 자를 찾아내는데 여기서 특수효과가 이용되고 이어 다시 영화의 평화로운 첫 장면으로 돌아간다. 대단한 영화는 아니지만 호기심을 자아내게 하는 얄궂은 작품이다. 알렉산더 아자 감독. R. Dimension. 일부 지역. ★★★(5개 만점)
                                                            <한국일보 편집위원/hjpark1230@gmail.com>

‘바그너의 유대인들’



옛날에 한국의 한 여류작가는 바그너의 음악을 ‘도도히 흐르는 강’에 비유했지만 난 바그너의 음악을 들을 때면 늘 첩첩산중으로 들어가는 느낌이다. 압도적이요 장엄하고 신비하고 아름다우며 또 깊고 두렵다. 그의 음악을 듣노라면 마치 막중한 문제를 풀듯이 신열마저 나는데 이런 고난 끝에 깨닫게 되는 선험적이요 지고한 아름다움과 거의 여성적인 음의 몸매를 경험한다는 것은 하나의 큰 희열이다.
바그너의 음악을 얘기할 때면 항상 논란되는 것이 그의 반유대주의다. 바그너의 악명 높은 반유대주의에 관한 글은 히틀러와 나치즘에 의해 수용돼 유대인 박해의 교본처럼 이용됐다.
바그너가 “유대인들은 음악을 창작할 능력이 없으며 그들은 모방자이자 기생충이고 또 안 보이는 독”이라면서 “유대인들을 독일의 삶에서 제거해야 된다”고 유대인들을 증오한 이유는 바그너가 오랫동안 자신을 유대인의 후손이라고 믿었기 때문이라고 한다. 그래서 그의 오페라 ‘로엔그린’에서 로엔그린은 “내 이름과 나의 민족에 관해 묻지를 말라”고 노래 부르고 있다. 바그너의 심정을 나타낸 노래다.
그러나 바그너가 반유대주의자라는 사실은 잘 알려진 반면 그에 가까운 많은 음악인들이 유대인들이었다는 것은 잘 알려져 있지 않다. 많은 유대인 음악인들이 바그너에 헌신하며 그의 작품활동을 도왔고 바그너 역시 젊고 재능 있는 음악인들을 받아들이고 키웠다.
이런 사실은 최근 나온 1시간짜리 DVD ‘바그너의 유대인들’(Wagner’s Jewsㆍ사진)에서 상세히 다루고 있다. 바이얼리니스트인 힐란 와쇼가 감독한 이 기록영화는 바그너와 유대인들과의 복잡한 개인적 관계와 이스라엘에서의 바그너 음악에 관한 작품이다.
과연 숭고한 음악은 편견과 편협 그리고 역사의 무게를 초월할 수 있는가를 묻고 있는데 바그너를 반대하는 이스라엘 사람들과 그를 옹호하는 이스라엘 및 비유대인 음악인들의 의견을 공평히 다룬 사려 깊고 흥미 있는 영화다.        
영화는 처음에 텔아비브에 사는 홀로코스트 생존자가 “내가 살아 있는 한 바그너가 결코 이스라엘에서 연주되지 못하도록 할 것이다”라고 말하는 장면으로 시작된다. 그러나 이와 반대로 예루살렘 심포니 오케스트라의 영구 객원지휘자인 레온 보트슈타인은 바그너의 음악은 이스라엘에서 연주돼야 할 필요가 있다고 역설한다.
“나는 바그너를 결코 인간으로서는 존경하지 않지만 그의 음악을 떠나 있을 수는 없다”고 말한 주빈 메이타와 다른 이스라엘 지휘자와 작곡가들도 바그너의 반유대주의를 강조하면서도 그의 음악은 그들 자신들을 위해서라도 구원돼야 한다고 역설하고 있다.
독일과 스위스 그리고 이탈리아에서 현지 촬영한 영화는 바그너와 그의 첫째 부인 미나(역시 유대인을 증오했다)와 둘째 부인 코지마 및 리스트 등의 편지와 함께 문헌과 인터뷰와 과거 사실의 재현 그리고 바그너의 음악연주 등을 통해 이야기를 진행한다. 그런데 리스트와 쇼팽도 모두 반유대주의자들이었다.  
영화를 보면서 이스라엘에도 바그너 음악 애호가 단체인 바그너 소사이어티가 있다는 것을 알았다. 흥미로운 사실은 바그너는 실패한 독일혁명 후 도주해 살고 있던 스위스에 있을 때 유대인인 폴란드 태생의 젊고 유능한 피아니스트로 후에 자신의 많은 오페라를 피아노곡으로 편곡한 칼 타우직과 부자지간과도 같은 우정의 관계를 맺었다는 사실이다.
그는 또 역시 유대인이자 피아니스트인 요젭 루빈슈타인은 자기 집에 묵게 하면서 돌봤는데 둘은 모두 바그너에게 헌신했고 루빈슈타인은 바그너가 1883년 베니스에서 사망하자 그 다음 해 총으로 자살했다. 루빈슈타인은 바그너의 ‘니벨룽겐의 반지’를 피아노곡으로 만들어 연주한 사람이다.
특히 진기한 내용은 바그너와 유대인으로 뮤닉 로열오페라의 지휘자였던 헤르만 레비와의 관계. 바그너는 레비에게 자신의 오페라 ‘파르지팔’의 초연 지휘를 맡기기로 한 다음 그가 세례를 받고 개종하도록 온갖 시도를 했지만 실패했다. 기독교 얘기인 이 오페라를 유대인에게 맡길 수가 없었기 때문이다. 레비는 후에 바그너의 성지가 된 바이로이트의 페스트슈필하우스에서 초연된 이 오페라를 지휘했는데 바그너는 이 공연 후 1년이 채 못돼 사망했다.
나는 이 영화를 본 뒤 바그너를 사랑하는 내 친구 C에게 예술가의 인성과 그의 작품과의 관계에 대해 물었다. 다음은 친구의 대답이다.
“창작자와 그의 작품은 별개의 것이다. 동양과는 달리 서양에서는 ‘예술을 위한 예술’이라는 전통이 보다 쉽게 받아들여지고 있는데 나도 이에 동의한다. 예술가와 그의 작품의 분리는 삶의 모든 분야에서 적용되는 것이다. 우리는 나쁜 정치가라도 그의 업적이 그의 좋지 못한 성품을 초월할 경우 그를 받아들이듯이 예술가의 경우에도 바그너처럼 성품에 단점이 있다 할지라도 그의 작품이 우리의 기대를 넘어설 경우 그 같은 단점마저 용서할 수 있는 것이다. 히틀러가 바그너를 좋아했고 바그너가 반유대주의자라는 사실이 사람들이 바그너의 오페라를 즐겨하는 것을 막을 수는 없는 것이다.”  <한국일보 편집위원/hjpark1230@gma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