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이야기

2014년 10월 27일 월요일

불가항력(Force Majeure)

토머스(왼쪽)가 아내와 아이들을 내팽개치고 혼자 눈사태를 피해 달아나고 있다.

  위기 순간 혼자만 도망친 아빠, 당신 가족은?

제목 그대로 우리가 마음대로 다룰 수 없는 엄청나게 큰 사건이 일어나고 이 사건을 경험한 사람들에게 미치는 치명적인 후유증과 영향을 날카롭고 내밀하게 해부한 심리 드라마이자 블랙 코미디로 스웨덴의 내년도 오스카 외국어 영화상 후보 출품작이다.
우리는 남들이 보통 때 보는 것처럼 그렇게 결코 최선의 사람들만은 아니다 라는 명제와 함께 우리가 내면에 가지고 있는 최악의 모습과 전연 기대치 않았던 측면을 도전적으로 노출시킨 작품인데 우롱하다시피 인간의 생존본능을 천착하고 있다.
눈사태를 만난 남자가 자기 가족을 구하는 대신 순간적이요 본능적으로 자기만 살겠다고 “걸음아 나 살려라”하고 도망간 사실이 가족에게 미치는 다시는 복원할 수 없는 정신적이요 감정적인 관계의 균열을 고약할 정도로 집요하게 파고들고 있다.
전체적으로 느린 템포와 움직이지 않는 롱테이크 위주의 카메라 그리고 비발디의 매섭게 몰아치는 ‘사계’의 음악과 기하학적인 화면 구성 및 좋은 연기 등이 절대적 조화를 이룬 훌륭한 영화다. 밤의 인공 눈사태를 만드는 폭음소리와 함께 전체적으로 불안한 분위기가 거의 으스스한 공포영화 분위기마저 조성한다.
스웨덴의 부르주아 층인 직장인 토머스(요하네스 바 쿤케)와 그의 현모양처인 에바(리사 로벤 콩실) 그리고 이들의 두 어린 남매 하리(빈센트 베터그렌)와 베라(클라라 베터그렌)는 5일간(영화는 마치 5막의 연극 식으로 진행된다) 알프스의 스키장으로 휴가를 온다. 토머스의 가족은 모범 가족의 모델이다.
스키장에 도착한 이틀째 되는 날 토머스 가족은 식당의 야외 테라스에서 점심을 먹는데 갑자기 눈사태가 나면서 눈이 식당을 덮칠 것처럼 달려 내려온다. 이에 에바는 두 아이를 보호하려는 행동을 취한 반면 토머스는 자기 아이폰과 스키장갑을 들고 식탁에서 달아난다.
그러나 다행히 눈사태는 식당 앞에서 멈춰 인명피해는 없는데 뒤 늦게 다시 식탁으로 돌아온 토머스를 대하는 나머지 가족의 눈길과 태도가 매우 차갑고 경멸적이다. 여기서부터 토머스의 도주를 놓고 토머스와 에바는 계속해 말다툼을 하고 대립하게 되고 그동안 유지돼 오던 가족 간의 우애관계는 치명상을 입게 된다.
그런데 문제는 토머스가 자기 행동의 심각성을 제대로 깨닫고 있지 못하고 있다는 점이다. 설사 그가 자기 잘못을 알고 있다고 해도 그는 이를 대수롭지 않은 하나의 작은 실수로 취급하려고 든다.
남편을 사랑하는 에바는 어떻게 해서든지 남편을 이해하려고 애를 쓰나 별무효과. 그리고 토머스와 에바는 각기 그 사건을 각자의 견해로 보자는 관계 땜질용 합의까지 하나 에바는 남편이 이기적인 괴물이라는 생각에 분노와 치욕과 슬픔에서 빠져 나오질 못한다.    
이런 두 사람의 관계와 느낌과 생각은 토머스 부부가 자기들 방으로 초대한 스키장에서 만난 한 쌍의 즉석 애인과의 저녁식사 장면에서 거의 잔인토록 코믹하게 까밝혀진다. 잘 나가던 식사 중에 갑자기 에바가 남편의 비겁한 행동을 까발린다. 이에 처음에는 아내의 말을 웃어넘기려던 토머스는 급기야는 자기는 도망간 것이 아니라고 대어든다. 여기서 우리는 토머스와 에바의 진정한 화해는 물 건너갔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이어 토머스의 노르웨이 친구 마츠와 그의 20세난 애인 화니가 토머스 부부를 방문하는데 에바의 얘기를 들은 화니는 마츠에게 당신이라면 어떻게 행동했겠느냐고 따지면서 둘 간에 싸움질이 일어난다. 과연 당신 같으면 어떻게 했겠습니까. 영화가 다소 긴데 마지막의 사족 같은 토머스네를 비롯한 관광객들의 귀가장면은 잘랐어야 했다. 루벤 오스트룬드 감독(공동 각본). 성인용. Magnolia. 일부 지역. 31일 개봉. ★★★★(5개 만점)  <한국일보  편집위원 / hjpark1230@gmail.com>

잔 윅(John Wick)

복수의 화신 킬러 존(키아누 리브스)이 총을 난사하고 있다.

‘돌아온 킬러’ 키아누 리브스의 유혈낭자 복수극


유혈폭력이 난무하고 액션이 달아오른 프라이팬 위에서 콩 튀듯 하는 킬러영화로 마치 살아 있는 그래픽 노블이나 비디오 게임 또는 만화를 보는 것 같다. 눈알이 돌아가는 스타일 좋고 잔인한 액션 속에 셀 수 없을 정도로 많은 악인들이 죽어 다소 터무니가 없지만 액션 팬들에겐 그야 말로 연말 선물 같은 영화다.
요즘 많이 나오는 은퇴한 킬러가 어쩔 수 없이 다시 총칼을 집어 드는 얘기로 키아누 리브스(50세라곤 믿어지지 않을 만큼 젊어 보인다)가 착 가라앉은 연기를 하는데 그는 온갖 무기와 육신의 모든 부분을 동원해 마치 춤을 추듯이 아름다운 동작으로 사람을 죽인다.
지하세계에서 가장 두려운 킬러인 존 윅(리브스)은 헬렌(브리젯 모내핸)을 사랑해 살인에서 손을 씻고 헬렌과 결혼해 조용한 삶을 즐긴다. 그러나 헬렌이 병으로 죽고 존은 헬렌이 죽기 전에 자기에게 보낸 선물인 애견과 단 둘이 고독과 슬픔을 달랜다.
그런데 브룩클린을 말아먹는 러시안 마피아(요즘 액션영화의 나쁜 놈들은 다 러시안이다) 두목 비고(미카엘 니크비스트)의 철딱서니 없는 아들 이오세프(알피 알렌)가 두 명의 졸개와 함께 존의 스포츠카를 탈취하고 애견을 죽이면서 존은 이를 갈면서 복수에 나선다.
영화에서 액션 외에 볼만한 것은 약간 환상적일 정도로 이색적인 범죄세계의 모습. 존은 킬러들만 묵는 호텔에 짐을 풀고 살인에 나서는데 이 호텔과 함께 킬러 전문의 나이트클럽을 디자인한 세트가 스타일 좋다. 그리고 윈스턴(이안 맥셰인)이 일종의 대부로 군림하는 이 킬러들의 세계에는 반드시 지켜야 하는 규칙이 있어 이를 어기면 잔인한 보복이 따른다.
존이 이오세프를 죽이려고 집요하게 그를 추적하면서 러시안 마피아들이 수 없이 황천으로 가는데 비고는 섹시한 여자 킬러 퍼킨스(아드리앤 팔렉키)를 비롯해 수십명의 졸개들을 풀어 존을 처치하려고 하나 상대가 안 된다. 존이 죽인 사체들은 사체처리 업자가 말끔히 청소해 준다. 
간단한 내용의 영화로 영화의 후반부는 완전히 살육의 액션으로 이어진다. 이 액션이 장관인데 무기와 인체를 총 동원한 유혈의 발레이자 치명적으로 날렵한 쿵푸액션 그리고 스턴트가 눈부시다. 윌렘 다포가 존의 옛 동지 킬러로 나온다. 이것이 히트하면 속편이 나올 가능성이 있다. 기자가 얼마 전에 리브스를 만나 “영화를 보면서 사체를 세기 시작하다 포기했는데 도대체 몇 명이나 죽였느냐”고 물었다. 대답은 “70여명은 족히 된다.” 데이빗 레이치 감독. R. Lionsgate. 전지역. ★★★(5개 만점)   <한국일보  편집위원 / hjpark1230@gmail.com>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



내가 “스칼렛 오하라는 미인은 아니었다”로 시작해 “결국 내일은 또 다른 날이니까”로 끝나는 마가렛 미첼의 영문 페이퍼백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Gone with the Wind)를 읽은 것은 서울의 한국일보 사회부 기자 시절이었다.      
방대하면서도 거센 물결처럼 굽이치는 흐름과 개성이 뚜렷한 인물들 그리고 미 남부를 불사르는 전쟁의 화염 속에 타오르는 뜨거운 사랑과 갈등 등 극적인 얘기를 흥미진진하게 이끌어가는 글 솜씨에 휘말려들어 단숨에 읽어 내려갔던 기억이 난다. 미첼이 35세 때 쓴 이 책은 그의 유일한 글로 퓰리처상을 받았는데 현재도 매년 전 세계서 5만여권이 팔리는 성경 바로 다음의 베스트셀러다.
나는 물론 소설을 비탕으로 만들어 1939년에 나온 영화는 책보다 훨씬 먼저 봤는데 지금까지 모두 열댓 번은 봤을 것이다. 미국 영화는 단 2편뿐으로 하나는 ‘GWTW’요 다른 하나는 나머지 모든 다른 영화들이라는 말이 있다. ’GWTW‘의 뛰어난 장엄성을 가리키는 말이다.  
이 영화는 빅터 플레밍이 감독했지만 진짜 창조자는 제작자 데이빗 O. 셀즈닉이다. 그의 원 맨 쇼와도 같은 것으로 셀즈닉은 엑스트라에서 감독과 주연배우들에 이르기까지 총 1만2,000여명의 인원을 마치 신이 인간을 부리듯 일사불란하게 조종, 위대한 작품을 완성했다. 작품과 감독 및 여우주연상(비비언 리)과 조연상(스칼렛의 하녀 매미 역의 해티 맥대니얼이 흑인 사상 최초로 오스카 수상) 그리고 각본과 촬영 등 총 10개의 오스카상을 탔다.
호걸형의 사업가 렛 버틀러(클라크 게이블)와 농장 ‘트웰브 옥스’의 주인으로 골샌님형의 이상주의자 애슐리 윌크스(레즐리 하워드) 그리고 애슐리의 인간 천사와도 같은 아내 멜라니(올리비아 디 해빌랜드-현재 98세로 파리 거주) 및 목화농장 타라의 주인 제럴드 오하라(토머스 미첼)의 딸로 애슐리를 짝사랑하는 요부형인 스칼렛(비비언 리)이 주인공들.
그러나 ‘GWTW’는 어디까지나 실로 당찬 여인 스칼렛의 얘기다. 스칼렛이야말로 시대를 앞서 가는 여성으로 철딱서니가 없는 것 같으면서도 생존의 교본과도 같은 여자다. 고집불통에 오만하고 독선적이며 불같은 정열적인 성질을 지닌 여자로 어떤 난관과 패배에도 다시 발딱 일어서는 오뚝이와도 같다.
참 사랑이 어디에 있는지도 모르고 애슐리에게 집념하는 자기를 버리고 떠나가는 남편 렛을 향해 스칼렛은 처음에는 “난 어떻게 살란 말이에요”라며 징징 울어댄다. 이에 렛은 영화사에 길이 남는 한 마디 “솔직히 말해 이 사람아, 난 당신 일에 전연 관심 없어”(Frankly, my dear, I don’t give a damn)를 남기고 스칼렛에게 등을 돌린다.
이렇게 렛으로부터 치욕적인 한방을 얻어맞고도 스칼렛은 결코 굴하지 않는다. 스칼렛은 “전부 다 타라에서 내일 생각할 거야. 그땐 견딜 수 있을 거야. 내일 그를 되찾을 어떤 방안을 생각해야지. 결국 내일은 또 다른 날이니까”라며 앙칼지게 다짐한다. 가공스럽기까지 한 억척스런 낙관론이다. 그런데 당시에는 영화에 ‘댐’이라는 말을 쓸 수 없어 셀즈닉이 검열기관에 500달러의 벌금을 내고 이 단어를 썼고 가톨릭으로부터 금지딱지를 받았다.
영화의 무대는 조지아주 애틀랜타이나 전부 LA 인근 컬버시티에 있던 셀즈닉 스튜디오(이름만 바뀐채 현재도 있다)에서 찍었다. 나는 1987년 12월 이 영화를 취재하기 위해 애틀랜타를 방문, 도착하자마자 관광안내소에 들렀었다. 여직원이 나를 보고 대뜸 “타라가 어디에 있느냐고 물으러 왔지요”라며 웃었다. 이곳을 찾는 관광객들은 모두 제일 먼저 타라의 소재지를 묻는다는 것.
그 때 애틀랜타 도서관의 ‘마가렛 미첼 기념관’을 둘러봤다. 4인치11피트의 단구에 단아한  모습의 미첼의 초상화를 보면서 멜라니가 연상됐다. 어떻게 저렇게 조그마한 여자가 밀물치 듯 힘차고 거대하며 또 정열적인 글을 쓸 수가 있었을까 하고 의아해 했었다. 그런데 미첼은 매우 내성적이요 수줍음을 타는 성격의 소유자였다고 한다.  
인플레를 감안하면 현재의 액수로 국내 총수입 16억달러라는 할리웃 사상 최고의 흥행수입을 보유하고 있는 ‘GWTW’의 스칼렛 역에는 당대 모두 내로라하는 32명의 할리웃 스타들이 참가했었다.
캐서린 헵번, 수전 헤이워드, 폴렛 고다드, 진 아서 및 베티 데이비스 등이 스크린 테스트를 했지만 역은 비교적 신인인 비비언 리에게 돌아갔다. 스칼렛이야 말로 표독스러울 정도로 아름답고 개성 있는 얼굴과 작지만 탄력 있는 체구에서 풍겨 나오는 도전성을 지닌 리를 위해 만들어진 역이라고 해도 되겠다. 디 해빌랜드는 리가 지극히 자기 직업에 충실했던 노력파라고 칭찬했었다.  
그런데 미첼은 스칼렛 역에 미리암 합킨스를 그리고 렛 역에는 프랑스 배우 찰스 보이에를 원했다고 한다. 미첼은 클라크 게이블이 렛 역에는 결코 어울리지 않는다고 생각했었다. 영화에서 또 하나 잊지 못할 것이 맥스 스타이너의 음악. 감상적일 만큼 서정적이면서도 모든 것을 휩쓸고 가는 바람처럼 도도한데 음악의 주제는 ‘마이 오운 트루 러브’라는 노래로 만들어졌다.  
올해로 ‘GWTW’ 개봉 75주년을 맞아 워너 홈 비디오는 영화와 함께 각종 부록을 담은 4장의 디스크와 36쪽의 책자 및 뮤직박스와 손수건 등 기념품이 담긴 블루-레이 박스셋(사진 50달러)을 출시했다.    <한국일보  편집위원 / hjpark1230@gmail.com>

2014년 10월 20일 월요일

퓨리(Fury)

탱크‘퓨리’ 대원들 보이드(왼쪽부터), 노만, 트리니와 그래디. 맨앞이 단(브래드 핏).

정이 넘치는 사내들의 ‘쇠맛’나는 전쟁액션


오래간만에 보는 튼튼한 근육질의 2차 대전 영화로 마치 옛날에 할리웃이 많이 만든 전쟁영화를 보는 느낌이다. 군더더기 없이 사납고 거칠고 잔인하며 폭력적이면서도 인간성과 감정이 있는 남자들의 영화로 브래드 핏을 비롯해 배우들의 연기도 좋다.
극적으로 강렬한 쇠 맛이 나는 작품인데 결점이라면 마지막 램보 식의 전투장면. 자살이나 마찬 가지인 전투를 반드시 고집해야 하는 이유를 알다가도 모르겠다. 그러나 이에 불구하고 힘찬 흥분감과 전쟁 액션을 즐길 수 있는 잘 만든 영화다.
1945년 4월 독일전선. 산전수전 다 겪은 고참상사 단(핏)이 이끄는 탱크(포신에 분노를 뜻하는 ‘퓨리’라고 써 있다)에는 타이프병 출신의 신참 보조운전사 노만(로간 러만)과 포수로 신심이 깊은 보이드(샤이아 라부프)와 인간짐승 같은 포탄장전수 그래디(존 번달) 및 멕시칸 아메리칸 운전수 트리니(마이클 폐냐)가 타고 있다.
영화는 이들이 투입된 전투장면과 개개인의 성격묘사와 전투와 전투 사이의 휴지기간에 있는 짧은 드라마를 고루 섞어 진행된다. 겉으로는 사납지만 안으로는 깊고 인간적인 단(이런 군인은 전쟁영화의 상투적인 인간이다)은 훈련 받은 지 두 달밖에 안 되는 노만을 호되게 단련시킨다.
영화에서 가장 아름답고 감정적이면서 또 비극적이요 가슴 깊이 파고드는 부분은 ‘퓨리’가 맹활약해 점령한 작은 도시의 아파트 내 장면. 독일 말을 잘 하는 단이 노만을 데리고 들어간 아파트에는 독일 부인과 그의 질녀 엠마(알리시아 본 리트버그가 감동적인 연기를 한다)가 겁에 질려 있는데 이들 4명의 인간적 이해와 미소가 마치 한편의 독립된 평화롭고 정감 넘치는 단편처럼 그려졌다.
‘퓨리’와 다른 3대의 탱크가 지휘관의 명령에 따라 적의 배후로 진입했다가 ‘퓨리’만 남기고 나머지는 다 파괴된다. 그리고 ‘퓨리’는 혼자서 수백명의 독일군과 대결한다. 이 부분은 너무 비현실적인 할리웃식 과장이다. 핏이 내면을 지닌 묵직한 연기를 잘 하고 나머지 배우들도 각기 개성이 뚜렷한 연기를 한다. 데이빗 에이어 감독. R. Sony. 전지역. ★★★★(5개 만점)
                                                   <한국일보  편집위원 / hjpark1230@gmail.com>


버드맨(Birdman)

리간(마이클 키튼·왼쪽)과 팬티바람의 마이크(에드워드 노턴)가 주먹대결을 벌이고 있다.

‘왕년의 스타’할리웃 컴백 시도 블랙 코미디 


속편을 계속해 만드는 할리웃 블락버스터 영화에 대한 조롱기 섞인 풍자이자 브로드웨이의 할리웃에 대한 위선적인 태도를 신랄하게 비판한 매우 심각하고 진지한 드라마이자 폭소를 자아내게 하는 블랙코미디다.
오래간만에 본격적인 배우로서 인정을 받고자 컴백을 시도하는 왕년의 수퍼스타의 필사적인 안간힘을 통해 명성과 창의성 그리고 힘의 대결과 유명세 및 외부의 압력 등 영화와 연극계의 각종 긍정적이요 부정적인 면을 밀도 있게 그렸다.
이와 함께 스타들의 이고와 배우로서 한 개인의 자기 구제를 초현실적인 장면들과 함께 일사불란하고 흥미진진하게 그린 독창적인 작품이다. 내용이 거의 시종일관 브로드웨이의 역시와 전통을 자랑하는 세인트 제임스 극장에서 전개돼 연극을 보는 듯한 느낌이 들기도 하지만 이런 협소감은 물 흐르듯 하는 카메라 동작과 위협적이요 박력 있는 재즈드럼의 배경음악 그리고 주인공의 하늘을 비상하는 상상에 의해 위무된다.
특히 영화 전부를 마치 단 한 번의 컷도 없이 찍은 것 같은 멕시코의 촬영감독 엠마누엘 루베즈키의 유려하고 과감한 촬영이 찬사를 받을 만하고 배경음악으로 쓴 말러와 차이코프스키 및 라흐마니노프의 로맨틱한 음악 그리고 배우들의 뛰어난 연기 등 여러 가지로 칭찬 받을 만한 예술적이요 흥미진진한 작품이다.
감독은 ‘바벨’과 ‘21그램’ 등을 만든 멕시코의 알레한드로 G. 이나리투(공동 각본)로 그는 늘 도전적인 주제를 즐겨 다루는데 영화를 보면서 자기 경험을 어느 정도 내용에 포함시키지 않았는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리간 톰슨(마이클 키튼)은 할리웃의 블락버스터 영화 ‘버드맨’으로 수퍼스타가 된 배우로 영화의 제4편에 나오기를 거부한 뒤로 인기가 시들해졌다. 이런 내용은 ‘배트맨’으로 나와 수퍼스타가 됐다가 시리즈 제3편에 나오기를 거절한 뒤로 인기가 시들해진 키튼의 사정을 똑 닮아 마치 그의 전기영화를 보는 느낌마저 든다.
리간이 ‘버드맨’ 이후 20여년만에 재기를 노리는 작품은 레이몬드 카버의 소설 ‘우리가 사랑에 관해 얘기할 때 얘기하는 것들’을 각색한 연극. 리간은 이 4인극을 각색하고 감독하고 공연도 하면서 브로드웨이에서 자신의 배우로서의 컴백과 함께 존경과 인정을 모두 추구하려고 시도한다. 그러니 스트레스가 얼마나 심할지 불문가지인데 이 스트레스는 “영화배우나 하라”면서 리간을 조롱하고 몰아붙이는 리간의 또 다른 자아인 자기 내부의 ‘버드맨’의 음성 때문에 곱으로 증가한다.
연극에는 리간 외에 콧대 높고 미끈미끈한 유명 영화배우 마이크 샤이너(에드워드 노턴이 팬티바람으로 얄밉도록 매끈한 연기를 잘 한다)와  역시 영화배우인 마이크의 과거 애인 레즐리(네이오미 와츠) 및 리간의 애인 로라(안드레아 라이스보로)가 나온다. 그런데 마이크가 연극을 혼자 말아먹으려 들면서 리간과 충돌이 일고 레즐리는 이것이 브로드웨이 데뷔여서 초조하기 짝이 없다.
여기에 할리웃 출신의 자기를 파멸시키려고 벼르는 막강한 연극 평론가 타비타(린지 던칸이 잠깐 나오지만 매우 인상적이다)에 신경을 써야 하는데 게다가 막 약물중독자 치료소에서 나온 딸 샘(엠마 스톤)이 블로거도 없고 트위터도 없는 아버지야 말로 완전히 한물간 공룡과도 같은 사람이라고 리간에게 악을 써댄다.
리간은 자기 사비를 털어 만드는 연극을 통해 어떻게 해서든지 재기하려고 하지만 회의에 시달리는데 그럴 때마다 ‘버드맨’이 되어 하늘을 나르며 시름을 달랜다. 후반에 들어 마이크와 로라와 레즐리의 역할이 약해지는 것이 흠이긴 하나 독창적이요 신랄하고 냉소적이면서 또한 정이 있는 영화다. 볼만한 것은 자신의 모든 것을 아낌없이 노출시키면서 맹렬하고도 연민의 감을 느끼게 하는 키튼의 연기로(오스카 후보상감이다) 그가 팬티바람으로 브로드웨이를 활보하는 장면은 압권이다. R. Fox Searchlight. 일부지역. ★★★★(5개 만점)
                                                      <한국일보  편집위원 / hjpark1230@gmail.com>


아이 러브 몬티



지금 생각하니 홀어머니의 내성적인 외아들로 약골인데다 수줍음 많은 외톨이었던 내가 세상의 모든 고독을 혼자 다 짊어지고 다니는 듯한 몬고메리 클리프트(사진)에게 매료됐던 것은 너무나 당연한 일이었다.
자학하는 듯한 내적 고뇌가 오히려 매력적이었던 몬티는 실재와 허구에서 모두 국외자였다. 현실과 타협하려 들지 않는 고집불통인 데다가 보기만 해도 소슬한 기운을 느끼게 하는 아름다운 쓸쓸함의 소유자여서 꼬마 때부터 그는 나의 우상이 되었다. 그래서 나는 내 생활과 거울 앞에서 몬티의 흉내를 내기도 했었다.
17일은 몬티의 생일로 그가 살았으면 올해로 94세가 된다. 몬티는 차사고 후 약물과 알콜 남용 끝에 1966년 45세로 요절했다. 그런데 나는 지금도 몬티의 아름다운 얼굴을 볼 때마다 그가 일찍 죽길 잘 했다는 생각이 든다.
중학교 2학년 때 ‘지상에서 영원으로’에 나온 몬티를 보고 완전히 넋을 잃은 나는 그 뒤로 그를 거의 여자처럼 사랑했었다. 뒤늦게 한국일보 김포공항 출입기자 시절 읽은 몬티의 영문 전기는 지금까지 내가 아끼며 간직하고 있는 책이다.
나는 몬티가 조소하며 수줍어하듯이 입의 한쪽으로 짓는 미소가 좋다. 몬티가 죽을 때까지 서로 깊은 우정을 나누었던 엘리자베스 테일러가 말했듯이 악동 기가 있는 미소다. 그리고 몬티의 눈은 청명한 늦가을 하늘이 내려와 몸을 씻는 호수처럼 맑고 푸르러 춥다. 그래서 몬티에겐 열렬한 여성 팬들이 많았다. 그런데 몬티는 남자와 여자 모두와 데이트한 양성애자였다.
13세 때부터 브로드웨이 무대에서 연기를 닦은 몬티는 메소드 액터로 내면 성찰과 고뇌하는 역을 찾아 거기에 심리적 깊이를 부여했다. 안으로 끙끙 앓는 듯한 연기다.
특히 몬티는 내면 감정을 손의 제스처로 절묘하게 표현해냈다. 그의 연기는 불안정한 매력이 있는데 이런 불안정감을 살짝 장식해 주는 것이 이 손의 연기다. 이 손의 제스처가 보여주는 내면 표현은 몬티가 방년 19세의 리즈 테일러와 첫 공연한 ‘젊은이의 양지’와 몬티의 라이벌이었던 말론 브랜도(몬티와 말론은 모두 고향이 네브래스카주 오마하다)가 독일군 장교로 나온 ‘젊은 사자들’ 및 나치 전범의 재판을 그린 ‘뉴렘버그의 재판’에서 뚜렷이 나타난다.
몬티의 할리웃 데뷔작은 2차 대전 후 유럽에 주둔한 미군과 소년의 관계를 그린 ‘수색’으로 몬티는 이 역으로 대뜸 오스카 주연상 후보에 올랐다. 이어 같은 해에 찍은 존 웨인이 주연한 웨스턴 ‘레드 리버’로 몬티는 할리웃의 총아가 된다. 몬티의 또 다른 웨스턴으로는 클라크 게이블과 마릴린 몬로의 유작으로 이색적인 ‘미스피츠’가 있다. 몬로는 몬티가 유머감각이 특출했던 배우였다고 회상한 바 있다.
나는 2007년에 ‘지상에서 영원으로’에서 악질 군영창장으로 나와 몬티에게 칼침 맞고 죽은 어네스트 보그나인을 만났었는데 그는 그 때 내게 “몬티는 매우 조용하고 해박한 지식을 지닌 사람이었다”며 몬티를 그리워했다.
지적이요 세련됐고 민감한 무드파였던 몬티는 ‘수색자’ ‘젊은이의 양지’ 및 ‘지상에서 영원으로’ 등으로 오스카 주연상 후보에 그리고 ‘뉴렘버그의 재판’으로 조연상 후보에 올랐으나 상은 못 탔다. 할리웃의 분위기를 피해 그 테두리밖에 있던 몬티를 할리웃의 주류들이 달가워하지 않았기 때문이라는 설이 있다.              
개인과 배우로서의 몬티의 삶은 1956년 5월12일에 일어난 자동차 사고로 내리막길로 접어든다. 당시 촬영 중이던 ‘레인트리 카운티’(한국명 ‘애정이 꽃피는 나무’)에서 공연하는 엘리자베스 테일러의 베벌리힐스 자택서 열린 파티 후 귀가 길에 몬티가 몰던 차가 전주를 들이받으면서 그의 턱과 코를 비롯해 오른쪽 얼굴이 완전히 망가졌다. 사고소식을 듣고 현장에 제일 먼저 달려간 테일러는 피투성이가 된 몬티의 얼굴을 자기 무릎 위에 올려놓은 뒤 그의 혀에 박힌 이빨들을 뽑아냈다고 한다. 테일러는 TCM의 몬티를 소개하는 프로에서 그 때를 회상하면서 “나는 몬티를 사랑했고 지금도 사랑한다”고 울먹였다.
그 후 몬티는 성형수술을 하고 영화를 끝냈지만 그의 섬세하도록 아름다운 얼굴은 다시 볼 수 없게 됐다. ‘레인트리 카운티’를 보면 영화 전반과 후반의 몬티의 얼굴이 다른 것을 알 수 있다. 사고 후 몬티는 테일러와 공연한 ‘지난여름 갑자기’와 ‘와일드 리버’ ‘프로이드’ 및 유작인 ‘도망자’ 등에 나왔지만 육체적으로나 감정적으로 회복되지 못한 채 고통에 시달리면서 약물과 술에 절어 살다가 1966년 7월23일 뉴욕에서 심장마비로 사망했다. 사고 후 그의 이 10년은 긴 자살기간이나 마찬가지였다.
TCM은 17일 몬티의 영화들을 방영한다. *‘빅 리프트’(오전 8시) *‘나는 고백한다’(오전 10시) *‘레인트리 카운티’(오전 11시45분) *‘젊은 사자들’(오후 2시45분) *‘도망자’(오후 5시45분).  
                                  <한국일보  편집위원 / hjpark1230@gmail.com>

2014년 10월 15일 수요일

‘곤 걸’벤 애플렉



“연기자로서 성취, 이젠 다양한 영화 제작의 꿈”


현재 상영 중인‘곤 걸’(Gone Girl)에서 아내 에이미(로자먼드 파이크)가 실종되자 이 사건의 가장 유력한 용의자로 몰리는 남편 닉으로 나온 벤 애플렉(42)과의 인터뷰가 9월27일 뉴욕의 리츠 칼튼 호텔에서 있었다. 감기가 걸려 쉰 목소리로 질문에 대답하던 애플렉은 잇단 인터뷰에 지친 듯이 처음엔 하품을 하면서 피곤한 표정을 지었으나 시간이 지나면서 활기를 되찾아 F자 상소리를 섞어가면서 마치 신이 난 아이처럼 떠들어댔다. 숱 많은 머리에 잔 수염을 한 미남인 애플렉은 체중이 다소 비대해 보였는데 요란한 제스처에 연기를 하듯이 얼굴 표정을 지었지만 대답만은 위트와 유머를 섞어 매우 신중하고 진지하게 했다. 아주 실팍한 인터뷰로 시상시즌에 접어들었음을 깨우쳐 주듯이 은근히 영화의 골든 글로브상 후보를 위한 캠페인을 벌였다.                                                

―배우이자 감독인 당신이 다른 감독에 의해 연기 지시를 받는 기분이 어땠는가.
“믿는 사람으로부터 연기 지시를 받는 것은 아주 쉬운 일이다. 데이빗 핀처(감독)는 좋은 영화만 만든다. 그래서 난 장인의 휘하에 있음을 느꼈다. 나는 내가 좋아하고 존경하는 감독을 골라 함께 일한다.”

―데이빗 핀처 감독과는 어떻게 보조를 맞췄는가.
“그는 매우 애매모호한 사람이다. 그리고 한 장면을 여러 번 찍는 주도면밀한 시계 제조자 같은 사람이다. 그래서 나와 그는 많은 논의를 했다. 가장 중요한 것은 허구의 얘기 속에서 사실성을 최대한으로 살리기 위해 매우 자연스런 연기를 하는 것이었다.”

―아내 실종사건의 용의자로 몰린 닉은 매스컴의 총아가 되는데 역시 매스컴의 초점을 받는 당신은 이를 어떻게 보는가.
“영화는 미디어에 대한 기소이기도 하다. 요즘의 케이블 TV들은 비극이나 끔찍한 사건을 자극적으로 보도하고 시청자들은 이런 뉴스를 포식하며 즐긴다. 보도라는 명목 하에 사건의 주인공들은 추악한 인물들로 낙인이 찍히고 마는데 데이빗도 영화에서 미디어의 이런 위선을 맹렬히 비난하고 있다.”

―결혼에 관한 분석이기도 한 영화를 찍으면서 당신의 결혼에 대해 생각했는가.
“난 영화와 달리 사랑스런 아내(배우인 제니퍼 가너)가 있어 다행이다. 그래서 내 결혼에 대해 별로 생각 안 했다. 그러나 영화가 너무 어두워 촬영 후 귀가해도 그 흔적이 몸에 남아 있었다. 그러나 다행히 핀처는 유머가 많고 따스한 사람이어서 세트에서 웃으며 재미있게 보냈다.”
닉(벤 애플렉)은 아내 에이미(로자문드 파이크)가 실종되자 아내살인자로 몰린다.

―속편을 만들 것인가.
“다시 이렇게 어두운 영화를 내가 소화해낼 수 있을지 의문이다. 데이빗도 속편을 만들 것 같지 않다.”

―영화는 상당히 무서운 얘기인데 당신이 살면서 가장 무서웠던 경험은 무엇인가.
“내 아이들에게 어떤 나쁜 일이 벌어질 것을 생각하는 일이 가장 두렵다. 지금 나의 아이들이  앓고 있는데 제니퍼가 여기 없는 것도 그 때문이다. 지금 내가 가장 걱정하는 것도 아이들의 건강이다.”

―미디어의 끈질긴 추적에서 어떻게 살아남을 수가 있는가.
“태블로이드 잡지나 신문을 팔아먹기 위해 굶주린 야수처럼 달려드는 미디어에 걸리면 상처 받기가 십상이다. 그들은 식인종이자 잔인하다. 다행히 난 견고한 환경에서 자라 자신감을 가지고 있어서 미디어의 허위와 과장보도를 ‘시간이 약이다’라는 심정으로 견딜 수가 있다. 그러나 역설적으로 유명해지려고 악행을 저지르는 사람들이 있다. 악명과 유명의 구분이 애매모호한 것이 요즘 미국의 현실이다.”

―다음 영화에서 배트맨으로 나오는데 역을 제의 받고 어떤 생각을 했는가.
“앞으로 2년 뒤에나 나올 영화여서 별로 할 말이 없다. 단지 각본이 훌륭하고 재주 있는 감독(잭 스나이더)이 연출하며 든든한 스튜디오(워너 브라더스)가 만들어 매우 흥분하고 있다는 말만하겠다.”

―한국에는 이런 농담이 있다. ‘한 남자의 아내가 죽으면 그 남자는 사람들 앞에서는 울지만 화장실에 혼자 있으면 웃는다.’ 이에 대한 당신의 생각은 어떤가.
“그것 참 재미있는 농담인데 내가 말했다고는 쓰지 말라. 이 영화는 당신의 농담이 지적하듯이 부부 간의 긴장을 다루고 있다. 남녀가 연애를 할 때는 서로 자신들의 좋은 점만 보여주지만 일단 결혼을 하면 상대방의 가면이 벗겨지면서 당신이 잘 몰랐던 면이 드러나게 마련이다. 이건 남자나 여자나 마찬가지다. 닉도 아내가 실종되면서 어느 순간에는 아주 행복하다고 느낀다. 관계에서 벗어나고 싶어도 용기가 없어서 머물러 있었기 때문이다. 데이빗도 당신의 농담에 담겨 있는 혹독한 진실을 얘기하려고 한 것이다. 관계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난 다행히 제니퍼가 있어 복이 많다. 관계나 직업이나 친구를 돌보고자 한다면 그 것에 투자를 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그것은 사라지고 만다. 나와 아내는 우리의 관계를 유지하기 위해 매우 열심히 노력하고 있다.‘

―아주 복잡한 성격을 지닌 닉 역을 하기가 쉬웠는가.
“사실은 아주 자유로웠다. 보통 주역은 늘 옳고 똑똑하고 매사에 답을 가지고 있게 마련이다. 그런데 그것은 참 지루한 노릇이다. 데이빗은 그것을 원치 않았다. 그는 관객이 좋아하지 않을 사실적이요 결함이 있는 닉을 원했다. 데이빗은 내게 한 치의 꾸밈도 없는 결함이 있는 닉을 원했다. 내 장점과 함께 가장 추한 단점을 보여줘야 했다. 닉의 역을 하는 데는 어떤 규칙도 없어 자유로웠다.”

―영화 출연에 응한 첫째 이유는 무엇인가.
“존경할 수 있는 감독인 데이빗과 일하는 것이었다.”

―당신은 나이 42세에 남들이 다 부러워할 성취를 했는데 앞으로의 계획은 무엇인가.
“과거 10년간 나는 상당히 순조로운 길을 걸어 왔다. 난 이제 얘기꾼으로서의 정상에 올랐다고 생각한다. 따라서 나는 연기보다 감독에 더 힘쓰려고 한다. 작은 영화와 대하 서사적인 영화를 고루 만들려고 한다. 다양성을 추구하고자 한다. 물론 그러다 보면 실패도 할 수 있고 그 책임을 내가 져야 한다. 그러나 그것이 할리우드다. 야구선수도 삼진을 먹을 때가 있지 않은가. 실수에도 불구하고 앞으로 나아가는 것이 중요하다. 또 한 가지 나의 세 아이가 성격 형성기인 8세와 5세와 2세이기 때문에 일을 하면서도 아이들 주변에서 멀리 있지 않으려고 노력하겠다. 다음에 아이들이 커서 자서전을 쓸 때 ‘우리 아버지는 단 한 번도 우리 곁에 있지 않았다’고 쓰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

―아이들은 주로 누가 돌보는가.
“제니퍼다. 제니퍼는 영화 출연과 양육을 아주 현명히 조화시키고 있다. 역의 선정도 신중하고 현명하게 한다. 제니퍼는 멋진 엉덩이를 갖고 있지만 공연히 엉덩이나 흔들어대는 롬콤에는 안 나온다. 나는 아이를 갖기 전만해도 직업여성인 배우가 양육과 일을 함께 해야 한다는 것이 얼마나 힘든 것인 줄 몰랐다. 그런 뜻에서 나는 제니퍼를 존경하고 또 그에게 감사한다.”

―닉은 어린 어린 여대생의 유혹에 넘어 가는데 그 이유가 무엇인가.
“영화가 하고자 하는 얘기는 빗나가는 결혼이다. 따라서 여자나 남자나 다른 데서 인간관계를 통한 행복을 찾으려고 한다. 누군가 이런 말을 했다. 부부가 서로 상대방을 경멸한다면 그 결혼은 끝장이 난 것이라고. 닉도 에이미가 더 이상 자신을 존경하지 않는다고 느낀다. 그래서 자기를 가치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을 찾은 것이다. 그 결정은 물론 비도덕적인 것이지만 결혼 얘기를 할 때 온갖 유혹을 제외하고 어떻게 얘기할 수가 있는가.”

―당신과 로자먼드가 나체로 나온 샤워장면에 대해서 말해 달라.
“영화를 보고 나서야 내 나체를 인식했다. 그래서 데이빗에게 이렇게까지 할 필요가 있겠느냐고 물었다. 이에 대해 데이빗은 부부가 실제로 침대에 있을 때 여자가 쉬트로 젖꼭지를 가리지 않듯이 노골적이요 솔직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사실성을 살리기 위해 머리 손질도 화장도 못하게 했다. 우리 자신을 숨기지 말라는 것이다.
                                                                      <한국일보 편집위원/hjpark1230@gma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