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이야기

2014년 10월 20일 월요일

버드맨(Birdman)

리간(마이클 키튼·왼쪽)과 팬티바람의 마이크(에드워드 노턴)가 주먹대결을 벌이고 있다.

‘왕년의 스타’할리웃 컴백 시도 블랙 코미디 


속편을 계속해 만드는 할리웃 블락버스터 영화에 대한 조롱기 섞인 풍자이자 브로드웨이의 할리웃에 대한 위선적인 태도를 신랄하게 비판한 매우 심각하고 진지한 드라마이자 폭소를 자아내게 하는 블랙코미디다.
오래간만에 본격적인 배우로서 인정을 받고자 컴백을 시도하는 왕년의 수퍼스타의 필사적인 안간힘을 통해 명성과 창의성 그리고 힘의 대결과 유명세 및 외부의 압력 등 영화와 연극계의 각종 긍정적이요 부정적인 면을 밀도 있게 그렸다.
이와 함께 스타들의 이고와 배우로서 한 개인의 자기 구제를 초현실적인 장면들과 함께 일사불란하고 흥미진진하게 그린 독창적인 작품이다. 내용이 거의 시종일관 브로드웨이의 역시와 전통을 자랑하는 세인트 제임스 극장에서 전개돼 연극을 보는 듯한 느낌이 들기도 하지만 이런 협소감은 물 흐르듯 하는 카메라 동작과 위협적이요 박력 있는 재즈드럼의 배경음악 그리고 주인공의 하늘을 비상하는 상상에 의해 위무된다.
특히 영화 전부를 마치 단 한 번의 컷도 없이 찍은 것 같은 멕시코의 촬영감독 엠마누엘 루베즈키의 유려하고 과감한 촬영이 찬사를 받을 만하고 배경음악으로 쓴 말러와 차이코프스키 및 라흐마니노프의 로맨틱한 음악 그리고 배우들의 뛰어난 연기 등 여러 가지로 칭찬 받을 만한 예술적이요 흥미진진한 작품이다.
감독은 ‘바벨’과 ‘21그램’ 등을 만든 멕시코의 알레한드로 G. 이나리투(공동 각본)로 그는 늘 도전적인 주제를 즐겨 다루는데 영화를 보면서 자기 경험을 어느 정도 내용에 포함시키지 않았는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리간 톰슨(마이클 키튼)은 할리웃의 블락버스터 영화 ‘버드맨’으로 수퍼스타가 된 배우로 영화의 제4편에 나오기를 거부한 뒤로 인기가 시들해졌다. 이런 내용은 ‘배트맨’으로 나와 수퍼스타가 됐다가 시리즈 제3편에 나오기를 거절한 뒤로 인기가 시들해진 키튼의 사정을 똑 닮아 마치 그의 전기영화를 보는 느낌마저 든다.
리간이 ‘버드맨’ 이후 20여년만에 재기를 노리는 작품은 레이몬드 카버의 소설 ‘우리가 사랑에 관해 얘기할 때 얘기하는 것들’을 각색한 연극. 리간은 이 4인극을 각색하고 감독하고 공연도 하면서 브로드웨이에서 자신의 배우로서의 컴백과 함께 존경과 인정을 모두 추구하려고 시도한다. 그러니 스트레스가 얼마나 심할지 불문가지인데 이 스트레스는 “영화배우나 하라”면서 리간을 조롱하고 몰아붙이는 리간의 또 다른 자아인 자기 내부의 ‘버드맨’의 음성 때문에 곱으로 증가한다.
연극에는 리간 외에 콧대 높고 미끈미끈한 유명 영화배우 마이크 샤이너(에드워드 노턴이 팬티바람으로 얄밉도록 매끈한 연기를 잘 한다)와  역시 영화배우인 마이크의 과거 애인 레즐리(네이오미 와츠) 및 리간의 애인 로라(안드레아 라이스보로)가 나온다. 그런데 마이크가 연극을 혼자 말아먹으려 들면서 리간과 충돌이 일고 레즐리는 이것이 브로드웨이 데뷔여서 초조하기 짝이 없다.
여기에 할리웃 출신의 자기를 파멸시키려고 벼르는 막강한 연극 평론가 타비타(린지 던칸이 잠깐 나오지만 매우 인상적이다)에 신경을 써야 하는데 게다가 막 약물중독자 치료소에서 나온 딸 샘(엠마 스톤)이 블로거도 없고 트위터도 없는 아버지야 말로 완전히 한물간 공룡과도 같은 사람이라고 리간에게 악을 써댄다.
리간은 자기 사비를 털어 만드는 연극을 통해 어떻게 해서든지 재기하려고 하지만 회의에 시달리는데 그럴 때마다 ‘버드맨’이 되어 하늘을 나르며 시름을 달랜다. 후반에 들어 마이크와 로라와 레즐리의 역할이 약해지는 것이 흠이긴 하나 독창적이요 신랄하고 냉소적이면서 또한 정이 있는 영화다. 볼만한 것은 자신의 모든 것을 아낌없이 노출시키면서 맹렬하고도 연민의 감을 느끼게 하는 키튼의 연기로(오스카 후보상감이다) 그가 팬티바람으로 브로드웨이를 활보하는 장면은 압권이다. R. Fox Searchlight. 일부지역. ★★★★(5개 만점)
                                                      <한국일보  편집위원 / hjpark1230@gmail.com>


아이 러브 몬티



지금 생각하니 홀어머니의 내성적인 외아들로 약골인데다 수줍음 많은 외톨이었던 내가 세상의 모든 고독을 혼자 다 짊어지고 다니는 듯한 몬고메리 클리프트(사진)에게 매료됐던 것은 너무나 당연한 일이었다.
자학하는 듯한 내적 고뇌가 오히려 매력적이었던 몬티는 실재와 허구에서 모두 국외자였다. 현실과 타협하려 들지 않는 고집불통인 데다가 보기만 해도 소슬한 기운을 느끼게 하는 아름다운 쓸쓸함의 소유자여서 꼬마 때부터 그는 나의 우상이 되었다. 그래서 나는 내 생활과 거울 앞에서 몬티의 흉내를 내기도 했었다.
17일은 몬티의 생일로 그가 살았으면 올해로 94세가 된다. 몬티는 차사고 후 약물과 알콜 남용 끝에 1966년 45세로 요절했다. 그런데 나는 지금도 몬티의 아름다운 얼굴을 볼 때마다 그가 일찍 죽길 잘 했다는 생각이 든다.
중학교 2학년 때 ‘지상에서 영원으로’에 나온 몬티를 보고 완전히 넋을 잃은 나는 그 뒤로 그를 거의 여자처럼 사랑했었다. 뒤늦게 한국일보 김포공항 출입기자 시절 읽은 몬티의 영문 전기는 지금까지 내가 아끼며 간직하고 있는 책이다.
나는 몬티가 조소하며 수줍어하듯이 입의 한쪽으로 짓는 미소가 좋다. 몬티가 죽을 때까지 서로 깊은 우정을 나누었던 엘리자베스 테일러가 말했듯이 악동 기가 있는 미소다. 그리고 몬티의 눈은 청명한 늦가을 하늘이 내려와 몸을 씻는 호수처럼 맑고 푸르러 춥다. 그래서 몬티에겐 열렬한 여성 팬들이 많았다. 그런데 몬티는 남자와 여자 모두와 데이트한 양성애자였다.
13세 때부터 브로드웨이 무대에서 연기를 닦은 몬티는 메소드 액터로 내면 성찰과 고뇌하는 역을 찾아 거기에 심리적 깊이를 부여했다. 안으로 끙끙 앓는 듯한 연기다.
특히 몬티는 내면 감정을 손의 제스처로 절묘하게 표현해냈다. 그의 연기는 불안정한 매력이 있는데 이런 불안정감을 살짝 장식해 주는 것이 이 손의 연기다. 이 손의 제스처가 보여주는 내면 표현은 몬티가 방년 19세의 리즈 테일러와 첫 공연한 ‘젊은이의 양지’와 몬티의 라이벌이었던 말론 브랜도(몬티와 말론은 모두 고향이 네브래스카주 오마하다)가 독일군 장교로 나온 ‘젊은 사자들’ 및 나치 전범의 재판을 그린 ‘뉴렘버그의 재판’에서 뚜렷이 나타난다.
몬티의 할리웃 데뷔작은 2차 대전 후 유럽에 주둔한 미군과 소년의 관계를 그린 ‘수색’으로 몬티는 이 역으로 대뜸 오스카 주연상 후보에 올랐다. 이어 같은 해에 찍은 존 웨인이 주연한 웨스턴 ‘레드 리버’로 몬티는 할리웃의 총아가 된다. 몬티의 또 다른 웨스턴으로는 클라크 게이블과 마릴린 몬로의 유작으로 이색적인 ‘미스피츠’가 있다. 몬로는 몬티가 유머감각이 특출했던 배우였다고 회상한 바 있다.
나는 2007년에 ‘지상에서 영원으로’에서 악질 군영창장으로 나와 몬티에게 칼침 맞고 죽은 어네스트 보그나인을 만났었는데 그는 그 때 내게 “몬티는 매우 조용하고 해박한 지식을 지닌 사람이었다”며 몬티를 그리워했다.
지적이요 세련됐고 민감한 무드파였던 몬티는 ‘수색자’ ‘젊은이의 양지’ 및 ‘지상에서 영원으로’ 등으로 오스카 주연상 후보에 그리고 ‘뉴렘버그의 재판’으로 조연상 후보에 올랐으나 상은 못 탔다. 할리웃의 분위기를 피해 그 테두리밖에 있던 몬티를 할리웃의 주류들이 달가워하지 않았기 때문이라는 설이 있다.              
개인과 배우로서의 몬티의 삶은 1956년 5월12일에 일어난 자동차 사고로 내리막길로 접어든다. 당시 촬영 중이던 ‘레인트리 카운티’(한국명 ‘애정이 꽃피는 나무’)에서 공연하는 엘리자베스 테일러의 베벌리힐스 자택서 열린 파티 후 귀가 길에 몬티가 몰던 차가 전주를 들이받으면서 그의 턱과 코를 비롯해 오른쪽 얼굴이 완전히 망가졌다. 사고소식을 듣고 현장에 제일 먼저 달려간 테일러는 피투성이가 된 몬티의 얼굴을 자기 무릎 위에 올려놓은 뒤 그의 혀에 박힌 이빨들을 뽑아냈다고 한다. 테일러는 TCM의 몬티를 소개하는 프로에서 그 때를 회상하면서 “나는 몬티를 사랑했고 지금도 사랑한다”고 울먹였다.
그 후 몬티는 성형수술을 하고 영화를 끝냈지만 그의 섬세하도록 아름다운 얼굴은 다시 볼 수 없게 됐다. ‘레인트리 카운티’를 보면 영화 전반과 후반의 몬티의 얼굴이 다른 것을 알 수 있다. 사고 후 몬티는 테일러와 공연한 ‘지난여름 갑자기’와 ‘와일드 리버’ ‘프로이드’ 및 유작인 ‘도망자’ 등에 나왔지만 육체적으로나 감정적으로 회복되지 못한 채 고통에 시달리면서 약물과 술에 절어 살다가 1966년 7월23일 뉴욕에서 심장마비로 사망했다. 사고 후 그의 이 10년은 긴 자살기간이나 마찬가지였다.
TCM은 17일 몬티의 영화들을 방영한다. *‘빅 리프트’(오전 8시) *‘나는 고백한다’(오전 10시) *‘레인트리 카운티’(오전 11시45분) *‘젊은 사자들’(오후 2시45분) *‘도망자’(오후 5시45분).  
                                  <한국일보  편집위원 / hjpark1230@gmail.com>

2014년 10월 15일 수요일

‘곤 걸’벤 애플렉



“연기자로서 성취, 이젠 다양한 영화 제작의 꿈”


현재 상영 중인‘곤 걸’(Gone Girl)에서 아내 에이미(로자먼드 파이크)가 실종되자 이 사건의 가장 유력한 용의자로 몰리는 남편 닉으로 나온 벤 애플렉(42)과의 인터뷰가 9월27일 뉴욕의 리츠 칼튼 호텔에서 있었다. 감기가 걸려 쉰 목소리로 질문에 대답하던 애플렉은 잇단 인터뷰에 지친 듯이 처음엔 하품을 하면서 피곤한 표정을 지었으나 시간이 지나면서 활기를 되찾아 F자 상소리를 섞어가면서 마치 신이 난 아이처럼 떠들어댔다. 숱 많은 머리에 잔 수염을 한 미남인 애플렉은 체중이 다소 비대해 보였는데 요란한 제스처에 연기를 하듯이 얼굴 표정을 지었지만 대답만은 위트와 유머를 섞어 매우 신중하고 진지하게 했다. 아주 실팍한 인터뷰로 시상시즌에 접어들었음을 깨우쳐 주듯이 은근히 영화의 골든 글로브상 후보를 위한 캠페인을 벌였다.                                                

―배우이자 감독인 당신이 다른 감독에 의해 연기 지시를 받는 기분이 어땠는가.
“믿는 사람으로부터 연기 지시를 받는 것은 아주 쉬운 일이다. 데이빗 핀처(감독)는 좋은 영화만 만든다. 그래서 난 장인의 휘하에 있음을 느꼈다. 나는 내가 좋아하고 존경하는 감독을 골라 함께 일한다.”

―데이빗 핀처 감독과는 어떻게 보조를 맞췄는가.
“그는 매우 애매모호한 사람이다. 그리고 한 장면을 여러 번 찍는 주도면밀한 시계 제조자 같은 사람이다. 그래서 나와 그는 많은 논의를 했다. 가장 중요한 것은 허구의 얘기 속에서 사실성을 최대한으로 살리기 위해 매우 자연스런 연기를 하는 것이었다.”

―아내 실종사건의 용의자로 몰린 닉은 매스컴의 총아가 되는데 역시 매스컴의 초점을 받는 당신은 이를 어떻게 보는가.
“영화는 미디어에 대한 기소이기도 하다. 요즘의 케이블 TV들은 비극이나 끔찍한 사건을 자극적으로 보도하고 시청자들은 이런 뉴스를 포식하며 즐긴다. 보도라는 명목 하에 사건의 주인공들은 추악한 인물들로 낙인이 찍히고 마는데 데이빗도 영화에서 미디어의 이런 위선을 맹렬히 비난하고 있다.”

―결혼에 관한 분석이기도 한 영화를 찍으면서 당신의 결혼에 대해 생각했는가.
“난 영화와 달리 사랑스런 아내(배우인 제니퍼 가너)가 있어 다행이다. 그래서 내 결혼에 대해 별로 생각 안 했다. 그러나 영화가 너무 어두워 촬영 후 귀가해도 그 흔적이 몸에 남아 있었다. 그러나 다행히 핀처는 유머가 많고 따스한 사람이어서 세트에서 웃으며 재미있게 보냈다.”
닉(벤 애플렉)은 아내 에이미(로자문드 파이크)가 실종되자 아내살인자로 몰린다.

―속편을 만들 것인가.
“다시 이렇게 어두운 영화를 내가 소화해낼 수 있을지 의문이다. 데이빗도 속편을 만들 것 같지 않다.”

―영화는 상당히 무서운 얘기인데 당신이 살면서 가장 무서웠던 경험은 무엇인가.
“내 아이들에게 어떤 나쁜 일이 벌어질 것을 생각하는 일이 가장 두렵다. 지금 나의 아이들이  앓고 있는데 제니퍼가 여기 없는 것도 그 때문이다. 지금 내가 가장 걱정하는 것도 아이들의 건강이다.”

―미디어의 끈질긴 추적에서 어떻게 살아남을 수가 있는가.
“태블로이드 잡지나 신문을 팔아먹기 위해 굶주린 야수처럼 달려드는 미디어에 걸리면 상처 받기가 십상이다. 그들은 식인종이자 잔인하다. 다행히 난 견고한 환경에서 자라 자신감을 가지고 있어서 미디어의 허위와 과장보도를 ‘시간이 약이다’라는 심정으로 견딜 수가 있다. 그러나 역설적으로 유명해지려고 악행을 저지르는 사람들이 있다. 악명과 유명의 구분이 애매모호한 것이 요즘 미국의 현실이다.”

―다음 영화에서 배트맨으로 나오는데 역을 제의 받고 어떤 생각을 했는가.
“앞으로 2년 뒤에나 나올 영화여서 별로 할 말이 없다. 단지 각본이 훌륭하고 재주 있는 감독(잭 스나이더)이 연출하며 든든한 스튜디오(워너 브라더스)가 만들어 매우 흥분하고 있다는 말만하겠다.”

―한국에는 이런 농담이 있다. ‘한 남자의 아내가 죽으면 그 남자는 사람들 앞에서는 울지만 화장실에 혼자 있으면 웃는다.’ 이에 대한 당신의 생각은 어떤가.
“그것 참 재미있는 농담인데 내가 말했다고는 쓰지 말라. 이 영화는 당신의 농담이 지적하듯이 부부 간의 긴장을 다루고 있다. 남녀가 연애를 할 때는 서로 자신들의 좋은 점만 보여주지만 일단 결혼을 하면 상대방의 가면이 벗겨지면서 당신이 잘 몰랐던 면이 드러나게 마련이다. 이건 남자나 여자나 마찬가지다. 닉도 아내가 실종되면서 어느 순간에는 아주 행복하다고 느낀다. 관계에서 벗어나고 싶어도 용기가 없어서 머물러 있었기 때문이다. 데이빗도 당신의 농담에 담겨 있는 혹독한 진실을 얘기하려고 한 것이다. 관계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난 다행히 제니퍼가 있어 복이 많다. 관계나 직업이나 친구를 돌보고자 한다면 그 것에 투자를 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그것은 사라지고 만다. 나와 아내는 우리의 관계를 유지하기 위해 매우 열심히 노력하고 있다.‘

―아주 복잡한 성격을 지닌 닉 역을 하기가 쉬웠는가.
“사실은 아주 자유로웠다. 보통 주역은 늘 옳고 똑똑하고 매사에 답을 가지고 있게 마련이다. 그런데 그것은 참 지루한 노릇이다. 데이빗은 그것을 원치 않았다. 그는 관객이 좋아하지 않을 사실적이요 결함이 있는 닉을 원했다. 데이빗은 내게 한 치의 꾸밈도 없는 결함이 있는 닉을 원했다. 내 장점과 함께 가장 추한 단점을 보여줘야 했다. 닉의 역을 하는 데는 어떤 규칙도 없어 자유로웠다.”

―영화 출연에 응한 첫째 이유는 무엇인가.
“존경할 수 있는 감독인 데이빗과 일하는 것이었다.”

―당신은 나이 42세에 남들이 다 부러워할 성취를 했는데 앞으로의 계획은 무엇인가.
“과거 10년간 나는 상당히 순조로운 길을 걸어 왔다. 난 이제 얘기꾼으로서의 정상에 올랐다고 생각한다. 따라서 나는 연기보다 감독에 더 힘쓰려고 한다. 작은 영화와 대하 서사적인 영화를 고루 만들려고 한다. 다양성을 추구하고자 한다. 물론 그러다 보면 실패도 할 수 있고 그 책임을 내가 져야 한다. 그러나 그것이 할리우드다. 야구선수도 삼진을 먹을 때가 있지 않은가. 실수에도 불구하고 앞으로 나아가는 것이 중요하다. 또 한 가지 나의 세 아이가 성격 형성기인 8세와 5세와 2세이기 때문에 일을 하면서도 아이들 주변에서 멀리 있지 않으려고 노력하겠다. 다음에 아이들이 커서 자서전을 쓸 때 ‘우리 아버지는 단 한 번도 우리 곁에 있지 않았다’고 쓰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

―아이들은 주로 누가 돌보는가.
“제니퍼다. 제니퍼는 영화 출연과 양육을 아주 현명히 조화시키고 있다. 역의 선정도 신중하고 현명하게 한다. 제니퍼는 멋진 엉덩이를 갖고 있지만 공연히 엉덩이나 흔들어대는 롬콤에는 안 나온다. 나는 아이를 갖기 전만해도 직업여성인 배우가 양육과 일을 함께 해야 한다는 것이 얼마나 힘든 것인 줄 몰랐다. 그런 뜻에서 나는 제니퍼를 존경하고 또 그에게 감사한다.”

―닉은 어린 어린 여대생의 유혹에 넘어 가는데 그 이유가 무엇인가.
“영화가 하고자 하는 얘기는 빗나가는 결혼이다. 따라서 여자나 남자나 다른 데서 인간관계를 통한 행복을 찾으려고 한다. 누군가 이런 말을 했다. 부부가 서로 상대방을 경멸한다면 그 결혼은 끝장이 난 것이라고. 닉도 에이미가 더 이상 자신을 존경하지 않는다고 느낀다. 그래서 자기를 가치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을 찾은 것이다. 그 결정은 물론 비도덕적인 것이지만 결혼 얘기를 할 때 온갖 유혹을 제외하고 어떻게 얘기할 수가 있는가.”

―당신과 로자먼드가 나체로 나온 샤워장면에 대해서 말해 달라.
“영화를 보고 나서야 내 나체를 인식했다. 그래서 데이빗에게 이렇게까지 할 필요가 있겠느냐고 물었다. 이에 대해 데이빗은 부부가 실제로 침대에 있을 때 여자가 쉬트로 젖꼭지를 가리지 않듯이 노골적이요 솔직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사실성을 살리기 위해 머리 손질도 화장도 못하게 했다. 우리 자신을 숨기지 말라는 것이다.
                                                                      <한국일보 편집위원/hjpark1230@gmail.com>


세인트 빈센트(St. Vincent)


빈센트(빌 머리)가 올리버(제이든 리버허)에게먼지 마당의 제초작업을 시키고 있다.

괴팍한 늙은이와 이웃소년의 만남과 힐링


심술첨지 중늙은이가 맑고 총명한 어린 소년을 베이비시팅하게 되면서 소년의 순진한 마음에 의해 꽁꽁 얼어붙었던 마음이 녹아내리고 아울러 자기 가슴 속 깊이 잠자고 있던 아름다운 인간성이 모습을 드러내는 걸맞지 않는 한 쌍의 인간관계의 이야기이자 자기 구제의 코미디 드라마다.
전연 새로운 얘기는 아니지만 주인공인 베테런 코미디언 빌 머리의 누워서 떡먹기 식으로 해내는 천연덕스럽고 다채로운 연기와 그와 소년 역의 제이든 리버허의 찰떡궁합 콤비네이션 그리고 주변 인물들로 나오는 조연진의 조화를 이룬 협찬 등으로 인해 남녀노소가 함께 즐길 만한 영화다.
빌 머리에게 너무 의존하고 후반에 들어 ‘아이가 어른의 스승’이라는 많이 듣던 얘기가 제자리를 맴돌면서 신선감을 잃고 있으며 또 다소 감상적이긴 하나 달콤 쌉싸래하고 훈훈한 정이 있어 흐뭇한 감정에 젖게 된다.
브루클린 교외에 혼자 사는 6순의 베트남전 베테런 빈센트(머리)는 술꾼에 골초요 입만 열었다 하면 상소리가 튀어나오는 대인기피증자. 친구라곤 007시리즈에서 본드의 천적 블로펠드가 껴안고 쓰다듬던 페르시아산 백고양이 필릭스 하나다.
인간 친구라곤 자기가 자주 이용하는 임신한 러시안 창녀 다카(네이오미 와츠가 심한 러시안 액센트를 쓰면서 파격적인 연기를 한다). 그런데 빈센트는 매주 요양원에 있는 정체가 안 밝혀진 샌디(다나 미첼)를 찾아가 대화를 나눈다.
빈센트의 옆집에 이혼수속 중인 매기(멜리사 매카시)가 12세난 갈비씨 아들 올리버(리버허)와 함께 이사를 온다. 이사 오는 날 이삿짐 차가 빈센트의 앞마당 나뭇가지를 부러뜨리면서 빈센트와 매기는 반갑지 못한 이웃이 된다.
병원의 의료담당 기술자인 매기는 올리버를 방과 후에 돌봐줄 사람이 없어 돈이 궁한 빈센트에게 시간당 12달러를 주고 아들을 맡긴다. 자기를 퉁명스럽게 대하는 빈센트를 너그럽게 받아들이는 올리버. 이런 중에 둘은 대화를 나누고 함께 시간을 보내면서 서서히 둘 간의 감정의 물꼬가 트인다.
빈센트는 자기가 자주 찾아다니는 바와 경마장에 올리버를 데리고 다니면서 조기 어른 훈련을 시키는데 올리버가 새로 전학한 가톨릭 학교에서 급우에게 시달리자 상대방의 코피를 터지게 하는 쌈질방법까지 가르쳐 준다. 둘은 이제 없으면 못사는 친구가 된다.
그리고 올리버의 선생(크리스 오다우드가 재미있는 연기를 한다)이 아이들에게 너희들 주위에서 성인을 찾아 그에 관한 글을 쓰라는 숙제를 내주면서 올리버는 빈센트를 아는 몇 안 되는 사람들을 만나 빈센트에 관해 조사를 한다.
얘기의 단조로움을 피하기 위해 빈센트와 올리버 간에 불화를 조성하고 불상사를 일으키나 결국 둘은 화해하면서 사랑이 더욱 공고해지고 모두들 한 가족처럼 되어 내내 행복하게 살았노라 하는 얘기.
잘 찾아보면 우리들 주위에 ‘인간 성인’들이 있다는 얘기이기도 한데 이 인간 성인 역을 머리가 기차게 잘해 낸다. 단순한 것 같지만 실은 복잡한 성격의 소유자요 겉으로는 밉상이나 속은 착한 밉지 않은 심술단지 노릇을 속옷 갈아입듯 쉽고 자연스럽게 한다. 실제의 자신을 베껴 먹은 연기다. 시오도어 멜피가 각본을 쓰고 감독으로 데뷔했다.
PG-13. Weistein. 전지역.   ★★★½(5개 만점)  <한국일보 편집위원/hjpark1230@gmail.com>

판사(The Judge)


행크(로버트 다우니 주니어·왼쪽)가 아버지 조셉(로버트 두발)과 피고석에 앉아 있다.

법정드라마 속 가족간의 갈등과 화해 그려


판에 박은 법정 드라마이자 뜻밖의 사건으로 소원했던 부자간의 관계가 재 연결되는 가족 드라마인데 로버트 다우니 주니어와 로버트 두발이라는 두 거물급의 영화치곤 너무 상투적이다. 상영시간도 쓸데없이 긴 140여분으로 뻔한 결말을 가져오기까지 괜히 얘기를 질질 끌고 간다.
올 토론토영화제 개막작으로 기대가 컸던 영화로 두 배우의 맹렬한 연기는 볼만하나 이런 내용의 영화가 지닌 온갖 구태의연한 요소는 다 갖다 쑤셔 넣은 어디서 많이 보고 들은 천편일률적인 드라마여서 식상한 감이 있다.
시카고의 변호사 행크(다우니 주니어)는 ‘돈 많고 유죄’인 의뢰인만 맡는 잘 나가는 변호사. 행크는 자기 아내가 바람을 피운 것을 알게 되는데 이와 함께 인디애나의 작은 마을에 사는 어머니가 사망하면서 오래간만에 고향에 돌아온다.
고향에는 수십 년간 동네판사로 지내 모두들 ‘판사’라 부르는 행크의 아버지 조셉(두발)과 한때 프로야구 유망주였으나 꿈이 무산된 형 글렌(빈센트 도노프리오)과 정신박약자인 동생 데일(제레미 스트롱)이 살고 있다. 그런데 행크와 독선적이자 권력형인 조셉과는 앙숙지간.
오래간만에 가족이 함께 모이면서 이런 영화가 잘 써먹는 여러 가지 자질구레한 가족문제들이  나열된다. 후회와 회한과 갈등과 애증의 편린들이 옷장에서 쏟아져 나오면서 별로 듣고 싶지 않은 얘기가 많다.
그리고 행크는 동네 바에서 바텐더로 일하는 고교시절 애인 새만사(베라 화미가)를 만나 옛정을 되살리는데 새만사가 마치 옛날에 못 이룬 사랑의 결실을 이제야 맺어보겠다는 듯이 적극적이다. 20여년은 헤어졌다 만나는 둘이 금방 옛사랑을 재 점화한다는 것이 믿어지질 않는다.
얘기는 아내의 장례를 치른 조셉이 28년 만에 처음 마신 술에 취한 상태에서 사람을 차로 치어죽인 혐의로 기소되면서 가족 얘기가 법정 드라마로 변전한다. 조셉의 차에 치여 죽은 사람은 조셉이 과거 20년형을 선고한 동네 쓰레기 같은 인간. 그런데 과연 조셉은 이 사람을 고의로 치어 죽였는가 아니면 실수였는가. 그런데 조셉은 사고에 대해 전연 기억을 못한다.
조셉을 기소한 검사는 베테런 드와잇(빌리밥 손턴)이고 변호사는 신출내기 C.P.(댁스 쉐파드). 그래서 행크가 마지못해 C.P.를 도와 아버지 변호에 나선다. 두발과 다우니 주니어가 부자간의 치열한 갈등 끝의 화해를 이루는 과정에서 뿜어져 나오는 감정적이자 극적인 연기를 가슴 뭉클하니 보여준다. 그러나 얘기가 사전에 그어놓은 줄을 따라 가듯이 너무 작위적이고 또 잘 깎은 잔디처럼 매끄러워 사실감이 안 난다. 데이빗 다브킨 감독.
R. WB. 전지역.  ★★★(5개 만점)         <한국일보 편집위원/hjpark1230@gmail.com>

독일 표현주의 영화




내가 한국일보 서울본사에서 LA 미주본사 3년 근무를 자원한 이유 중 하나가 할리웃이 있는 이 도시에서 영화나 실컷 보겠다는 것이었다. LA로 옮긴지 얼마 안 돼 영화에 대해 공부하고 싶어 LACC 야간부 영화사 강좌를 듣기 시작했다. 오랜만의 캠퍼스 생활 재경험이 참 흐뭇했었다.
그때 처음 보고 배운 영화들이 D.W. 그리피스의 ‘국가의 탄생’과 ‘불관용’ 그리고 루이스 부누엘의 충격적인 ‘안달루시아의 개’와 함께 독일 감독 로버트 뷔네가 만든 해괴한 무성영화 ‘칼리가리 박사의 관’(The Cabinet of Dr. Caligariㆍ1919ㆍ사진) 등이었다.
‘칼리가리 박사’는 1차 대전 후 독일의 바이마르 공화국 시절 잠깐 만개했던 표현주의 영화의 대표작 중 하나다. 표현주의 영화들은 심신을 죄어들면서 협소감을 느끼게 하는 삐딱하고 비현실적적인 세트 디자인과 무대극과 같은 화면 구성 그리고 흑백명암이 극적인 대조를 이루는 촬영과 조명 및 도발적인 카메라 테크닉을 이용해 복잡하고 변태적이며 심리적인 주제를 다룬 악몽과도 같은 영화들이 대종을 이루고 있는데 스타일이 아주 고급이다.
나는 강의시간에 이 영화를 보면서 “아, 이런 영화도 있었구나”하고 영화의 신경지를 깨닫는 기쁨에 젖었었다.
대부분 무성영화들인 독일 표현주의 영화들은 전후 천문학적으로 상승하는 인플레와 온갖 악조건에 시달리던 불안하고 혼란스럽고 또 어둡던 당시 독일의 시대상황의 산물로 1933년 히틀러의 득세와 함께 소멸됐다.
그러나 히틀러가 득세하면서 또 다른 표현주의 영화의 걸작 중 하나인 ‘M’(1931: 24일 하오 7시 LA카운티 뮤지엄 내 빙극장에서 1956년작 필름 느와르 ’도시가 잠 잘 때‘와 동시상영)을  감독한 프리츠 랭 등 많은 표현주의 영화인들이 할리웃으로 이주하면서 할리웃 영화에 커다란 족적을 남겼다.
그 대표적 장르가 필름 느와르로 표현주의는 지금까지도 할리웃이 만드는 범죄영화와 공상과학영화 및 공포영화에서 자주 감지할 수 있다.
독일 표현주의에 관한 전시회 ‘사로잡는 스크린: 1920년대 독일 영화’(Haunted Screens: German Cinema in the 1920’s)가 2015년 4월26일까지 LA카운티 뮤지엄에서 열린다.
14명의 감독과 20명의 미술가 및 25편의 영화들과 관련된 250점의 영화 클립과 각본, 사진과 스케치와 포스터 그리고 문서와 카메라 등이 선을 보인다.    
전시회는 4개의 주제로 구분됐는데 표현주의의 태동을 보여주는 첫 번째 ‘광기와 마법’ 전시실에 들어서니 ‘칼리가리 박사’와 파울 베게너 감독의 ‘골렘’(The Golemㆍ1920) 및 로버트 뷔네가 연출한 ‘죄와 벌’(Crime and Punishmentㆍ1923) 등의 정교한 세트 디자인 등이 눈길을 끈다.
둘째 전시실은 ‘신화와 전설’로 랭 감독의 ‘니벨룽겐’(Die Nibelungenㆍ1924)과 F.W. 무르나우의 ‘파우스트‘(Faustㆍ1926: 17일 하오 7시 빙극장에서 1994년작 ’파우스트‘와 동시상영) 등 독일 낭만주의의 영향을 받은 영화들의 각본과 스케치들이 전시된다.
이어 ‘도시와 거리’ 전시실로 들어가면 바이마르 공화국 당시 급팽창한 베를린 및 여러 도시들의 성장과 관련된 작품들의 각종 자료가 진열됐다. 무르나우의 걸작으로 에밀 야닝스가 주연하는 ‘마지막 웃음’(The Last Laughㆍ1924)과 역시 야닝스와 토실토실 살이 찐 마를렌 디트릭이 공연한 ‘푸른 천사’(The Blue Angelㆍ1930) 및 제1회 오스카 여우주연상(재넷 게이너)과 촬영상 등을 받은 무르나우의 ‘해돋이’(Sunriseㆍ1927) 그리고 G.W. 팝스트의 ‘기쁨 없는 거리’(The Joyless Streetㆍ1925) 등의 세트사진과 스케치들이 급성장하는 도시로부터 소외된 인간의 모습을 황량하게 보여주고 있다.
마지막 전시실은 특수효과와 프로덕션 디자인에 의존하면서도 사실주의적인 영화들에 관한 ‘기계와 살인자들.’ 이를 대표하는 영화는 두말 할 것 없이 랭 감독의 ‘메트로폴리스’(Metropolisㆍ1927). 이와 함께 ‘M’과 역시 랭 감독의 ’마부제 박사의 유언‘(The Testament of Dr. Mabuseㆍ1933) 등에 관한 여러 자료들이 보인다.
전시회에는 이들 외에 따로 ‘계단’이라는 주제로 표현주의 영화에 나오는 각양각색의 계단 스케치와 세트디자인 사진들을 따로 마련했다. 이들 계단은 시각적으로나 심리적으로 뒤틀리고 불안하며 또 소외당하는 감정을 갖게 만든다. ‘마지막 웃음’과 ‘죄와 벌’ ‘메트로폴리스’와 ‘기쁨 없는 거리’ 등의 계단들이 불길하고 위태로운 기운을 잘 나타내고 있다.
대형 포스터들도 구경거리다. ‘푸른 천사’와 ‘M’ 그리고 ‘메트로폴리스’와 요염한 단발머리 루이즈 브룩스가 주연한 ‘판도라의 상자’(Pandora’s Boxㆍ1929) 등의 포스터가 전시실 한쪽 벽을 가득 채우고 있다.
이와 함께 전시실 내 어두운 두 터널에서는 전시된 영화들의 발췌 필름이 상영된다. 지크프리트가 입에서 불을 뿜는 용을 죽이는 장면(‘니벨룽겐’)과 아동살인자인 M(피터 로레)이 거지와 도둑들에 의해 인민재판을 받는 모습 그리고 ‘해돋이’와 ‘마지막 웃음’의 장면들을 보면서 잠시 현재를 잊고 과거가 소용돌이치는 화면 안으로 걸어 들어갔다. 한편 뮤지엄(5905 Wilshire Blvd.)내 빙극장에서는 전시회에 선보인 표현주의 영화들을 상영한다. lacma.org
                                        <한국일보 편집위원/hjpark1230@gmail.com>



              

2014년 10월 9일 목요일

‘왓 이프’대니얼 래드클리프



“해리 포터 떠나 성인역… 언젠가는 감독이 꿈”


로맨틱 드라마‘왓 이프’(What If)에서 동거애인이 있는 샨트리(조이 카잔-‘워터프론트’와‘에덴의 동쪽을 감독한 엘리아 카잔의 손녀)를 사랑하면서도 이 여자와 친구 사이로 있겠다고 한 약속 때문에 속을 태우는 의대 중퇴생 월래스로 나온 대니얼 래드클리프(25)와의 인터뷰가 베벌리힐스의 포시즌스 호텔에서 있었다. 월래스 역은‘해리 포터’ 시리즈로 성장하고 또 이로 인해 수퍼스타가 된 래드클리프의 본격적인 첫 성인 역이다. 소매가 짧은 짙은 회색 셔츠 차림에 얼굴에 잔 수염을 기른 래드클리프는 동안이었는데 질문자에게“서”라고 깍듯이 존칭을 써가면서 액센트가 있는 어투로 속사포식으로 대답했다.                                                              
―당신은 남자와 여자가 친구가 될 수 있다고 생각하는가.
“난 남자와 여자가 친구가 될 수 있다고 확신한다. 거기서 그 관계가 연인 사이로 발전할 수도 있고 또는 친구 사이로 남아 있을 수도 있다. 나의 아버지와 어머니도 2년 정도 친구로 지내다가 연인이 돼 결혼해 지금까지 30여년 간을 잘 살고 계신다. 그러나 영화의 주제는 남자와 여자가 친구가 될 수가 있느냐는 것보다는 자신이 느끼는 감정을 부인하는 것이 과연 현명한 일이냐 하는 것이다.”

―영화에서 월래스는 누나의 아이를 돌봐 주는데 당신도 아이들을 돌볼 줄 아는가.
“난 아이들을 좋아해 잘 돌볼 줄도 안다. 나는 두 명의 대자도 있다. 아이들은 어른들보다 훨씬 더 함께 있기가 즐거운데 왜냐하면 그들은 아무 거리낌 없이 자기가 생각하는 대로 얘기를 하기 때문이다.”         

―월래스처럼 실연해 고통해 본 적이 있나.
“월래스처럼 애인에게서 배신을 당해 고통해 본 적은 없다. 따라서 내가 겪은 상심이나 상사병은 남에 의한 것이라기보다 순전히 자해와도 같은 것이라고 하겠다.”    

―당신에게 사랑이란 무엇인가.
“특별한 누군가와 함께 있을 때 느낄 수 있는 행복한 감정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사랑이란 각자가 다 다른 것이어서 하나의 정의로는 말할 수가 없다. 사랑이란 멋있고 혼란스러운 것이 아닐까.”

―작년에 당신은 ‘킬 유어 달링스’에선 남자를 사랑했고 이번에는 여자를 사랑하는데 두 역이 다른 점이 무엇인가.
“다를 게 뭐가 있는가. 남자이건 여자이건 간에 매력적인 사람에게 사랑에 빠진다는 것은 다 같은 일이다. 남자와 어떻게 사랑하지, 아니면 여자와 어떻게 사랑하지 하고 생각하는 것이 아니다. 남자냐 여자냐가 문제가 아니다. 배우는 모든 장면에 똑 같이 접근한다.”

―길에서 아이들이 당신을 보고 ‘해리 포터네’하고 말하는 것을 들으면 기분이 어떤가.
“나이를 불문하고 사람들이 내게 다가 와 해리 포터에 대해 흥분해서 얘기를 할 때면 그들을 충분히 이해한다. 그들은 나를 그 영화로 인해 알게 됐으니까. 그런데 사람들이 요즘에는 내게 다가와 해리 포터라기보다 내 본명을 부른다. 대니얼 래드클리프라고 부르는 소리를 듣는 것은 기분 좋은 일이다. 내가 뉴욕에서 연극에 나왔을 때 팬들이 매일 밤 무대로 통하는 문에서 기다리다가 날 만나면 ‘해리 포터’가 자기들 인생에 있어서 얼마나 중요한 의미를 지녔는지에 대해 얘기를 했다. 그것을 듣는 것은 참으로 환상적인 일이었다. 그러나 이와 반대로 주정꾼들이 날 보고 ‘해리 포터’하고 소리를 질러대는 것을 듣는 일은 짜증나고 힘든 일이다. 좌우지간 그 이름을 들을 때마다 깊은 향수감에 젖곤 한다.”

―아침에 혼자 일어나면서 자의식이라도 하는가.
월래스(대니얼 래드클리프·왼쪽)와 샨트리(조이 카잔)가 식당서 대화하고 있다.
“오 노. 그런 생각하면서 일어나지 않는다.”

―해리 포터의 작가 J.K. 롤링이 새로운 작품을 쓴다면 거기에 나올 생각이 있는가.
“그것에 대해서는 우리들 간에 어떤 논의도 없었다. 롤링은 최근에 신작 단편을 냈는데 아마도 이 때문에 영화 얘기가 나온 것 같다. 그러나 내게 영화 제의가 온 적은 없다.”

―당신은 최근에 마법의 세계 속의 어른에 관한 영화에 나올 용의가 있다고 말한 것으로 아는데 사실인가.
“아니다. 각본은커녕 아무 것도 아는 것이 없는 일에 관심을 가질 수가 없다. 나는 곧 다리 건설에 관한 영화 ‘무너진 다리’의 촬영을 시작하는데 이것도 각본을 읽고서야 출연에 응했다. 내가 할 말은 나는 다양한 역을 찾아서 부지런히 일하겠다는 것이다. 그냥 과거와 다르다고 해서 각본을 선택한다기보다는 내가 즐길 수 있는 역을 찾을 것이다. 모든 가능성에 대해 저는 문을 열어놓고 있다.”

―당신의 애인에 대해 말해 줄 수 있는가.
“그럴 수가 없다.”

―조이 카잔과의 관계는 어땠고 그에게서 무엇을 배웠는가.
“우린 사실 같이 자란 사이다. 그리고 우리의 부모들도 서로 비슷하다. 조이와 나는 서로 아주 어렸을 때부터 영화계에서 자라 관계가 더 돈독한 것 같다. 그리고 우린 서로 비슷한 점이 많다. 그래서 영화에서 우리의 화학작용이 대단히 좋았던 같다. 우린 책벌레들인 데다가 유머감각도 비슷하다.”  
        
―영화에서 당신은 샨트리를 놀라게 하려고 예고도 없이 비행기를 타고 토론토에서 더블린으로 날아갔는데 실제로도 그런 적이 있는가.
“내가 과거 아일랜드 태생의 애인이 있었을 때 영국에서 아일랜드로 예고 없이 찾아간 적이 있는데 비행시간은 달랑 45분밖에 안 걸려 별 스릴이 없었던 것 같다.”

―사랑에 빠지려면 서로 반대되는 성격을 지녀야 하나 아니면 비슷한 사람들이 돼야 하나.
“어딘가 서로 공통되는 바탕은 있어야겠지만 보통은 서로 상반되는 사람들이 사랑에 빠지기가 쉽다고 본다. 그래서 서로가 상대의 균형을 맞춰줄 수 있으면 좋을 것이다. 나는 매우 다혈질이어서 자연 나보다 침착한 사람에게 마음이 간다.”

―남녀 간 친구지간에도 정열이 타오를 수가 있다고 생각하나.
“친구로 지내면서 서로 함께 성장하고 사귀다 보면 경우에 따라 정열이 서서히 솟아날 수도 있다고 본다.”

―요즘 많은 영화배우들이 TV 작품에 나오고 있는데 당신도 그럴 생각이 있는가.
“언젠가 한 번 흥미 있는 TV 작품의 각본을 읽고 관심이 있었는데 한 번 계약하면 7년은 매어달려야 한다는 바람에 포기했다. 그러나 언젠가는 TV 작품에 나오고 싶다. 단 7년씩은 못하겠다.”

―당신은 얼마 전에 25세가 됐다. 이제 진짜 어른이 된 것인데 앞으로의 계획은 무엇인가.
“계속 글을 쓰고 언젠가는 감독을 하고 싶다. 먼저 뮤직 비디오를 감독한 뒤에 보다 큰 작품을 연출하고 싶다. 내가 과거에 한 일들을 보다 공고히 하면서 새 것을 찾을 것이다. 계속해 연기를 하고 연극에 나오고자 한다. 궁극적으로는 가정을 꾸리겠지만 아직은 생각이 없다.”

―남자와 여자 중에 어느 쪽이 더 당신의 마음 문을 열고 대화가기가 쉽다고 여기나.
“남자들은 친구지간에도 서로 약점을 안 보이려고 심각한 얘기를 하기를 꺼려한다. 그러나 여자들은 안 그래서 그들과 대화하기가 더 편하다.”

―요즘 남자배우들이 수염을 기르는 경향이 있는데 그렇다면 나처럼 말끔히 면도한 남자는 이제 더 이상 핸섬하지 않다는 것인가.
“전연 그렇지 않다. 당신 아주 핸섬한데 어리석은 소리 하지 마라. 난 단지 너무 동안이어서 좀 어른스럽게 보이려고 수염을 기르는 것이다. 당신은 면도한 얼굴이 멋있으니 절대로 수염 기르지 말라.”

―이 역이 앞으로 당신의 성인 역의 디딤돌이 될 것이라고 생각하나.
“그렇다. 해리 포터와 나를 쉽게 떼어 놓을 수야 없겠지만 나는 이 역이 광범위한 관객에게 어필할 수 있다고 믿는다. 하여튼 나는 나를 흥분시키고 또 정열적으로 만드는 일을 계속할 것이다.”
                                                                          <한국일보 편집위원/hjpark1230@gma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