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이야기

2014년 8월 19일 화요일

‘신 시티: 데임 투 킬 포' 제시카 알바


섹시함의 비결은‘자아 사랑’… 엄마가 된 뒤 몰입연기


22일 개봉되는 범죄 액션 스릴러이자 느와르 드라마인 흑백 입체영화‘신 시티: 데임 투 킬 포’(Sin City: A Dame to Kill For)에서 복수심에 불타는 싸구려 술집의 스트립댄서 낸시로 나오는 섹시스타 제시카 알바(33)와의 인터뷰가 2일 베벌리힐스의 포시즌스 호텔서 있었다. 이 영화는 프랭크 밀러의 그래픽 노블이 원작으로 2005년에 나온‘신 시티’의 속편이다. 브루스 윌리스, 조쉬 브롤린, 미키 로크, 에바 그린 및 데니스 헤이스버트 등 호화 캐스트의 폭력과 유혈이 난무하는 작품인데 한국계 배우 제이미 정이 긴 칼을 휘두르면서 나쁜 놈 여러 명의 목을 잘라 버린다. 감독은 전편을 연출한 로버트 로드리게스와 프랭크 밀러. 아버지가 멕시코계이어서 가무잡잡해 더 섹시한 알바는 갈색 긴 머리의 소녀처럼 동안이었는데 생글생글 웃는 모습이 귀엽기 짝이 없었다. 매우 명랑하고 솔직했는데 33세에 두 아이를 가진 여자가 어떻게 그렇게 날씬한 몸매를 지닐 수 있는 것인지 불가사의라 하겠다.                                
-당신은 복수심에 불타는 여자로 나오는데 실제로도 그런 성격인가.
“앙심을 품을 것이 아니라 때가 되면 그것을 풀어놓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것이 정신건강에도 좋다. 나는 나의 잘못으로부터 무언가를 배우려고 노력하는 사람이다.”

-댄스를 기막히게 잘 추던데 어떻게 배웠는가.
“춤이 몸에 편안하게 느껴지는데 두 달이 걸렸다. 그 다음으로는 춤으로써 낸시와 감정적으로 연결이 되도록 노력했다.”

-돈과 남자 중 어느 것이 더 유혹적인가.
“그것들보다 가장 유혹적인 것은 힘이다. 힘은 모든 약한 것을 분쇄한다. 그래서 우리는 전쟁을 하는 것이다.”       

-당신뿐 아니라 액션마저 섹시한데 그 이유가 무엇이라고 생각하는가.     
“로버트와 프랭크가 영화를 상스럽지 않고 아름답고 섬세하며 예술적으로 처리했기 때문이다. 이 영화는 마치 음악처럼 물 흐르듯 하고 있다. 피마저 하얀 색이니 멋있지 않은가.”

-섹시하다고 느끼려면 무엇이 필요한가.
“자아 사랑이다.”

-아이를 둘이나 둔 당신은 어떻게 그렇게 완벽한 몸매를 유지할 수 있는가.
“난 꽤 건강한 삶을 살고 있다. 가급적 가공식품을 피하고 신선한 음식을 먹으려고 한다. 그러나 난 운동은 별로 안 좋아한다. 그것은 지루하기 때문이다. 요즘은 내 자신의 회사 운영에 따른 스트레스 때문에 요가를 한다.”

-당신이 설립한 회사 어네스트 컴퍼니는 어떤 회사인가.
“유해물질 없는 가정 및 아동용품을 만든다. 내 첫 딸 아이를 가졌을 때 아기용 세탁제로부터 앨러지 반응을 일으켰다. 그래서 연구를 했더니 세탁제는 물론이요 아기용 샴푸와 기저귀에도 유해물질이 가득하다는 것을 알게 됐다. 그래서 유해물질이 없는 세척제와 기저귀와 샴푸와 비타민 등을 만드는 회사를 설립한 것이다. 제품에 대한 수요가 높아 곧 세계적으로 회사를 넓혀갈 예정이다.”

-사랑하는 사람을 위해 어디까지 갈 것인가.
“갈 데까지 갈 것이다. 난 어미 곰으로 내 가족에게 해로운 일이 생기지 않도록 무슨 일이라도 할 것이다. 그게 내가 지금 매일 하고 있는 일이다.”  

-당신은 21세에 영화계에 들어온 뒤로 섹스 심벌이라는 타이틀이 붙었는데 그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가.
“그 딱지는 그냥 남들이 내게 붙여준 것이다. 그 때 난 어려서 그것에 어떻게 대처해야 할지를 몰랐다. 그러나 지금은 나 자신에 대해 확실한 신념이 있으며 여자로서의 내 몸과   성적인 것과 나 자신의 주인이 되었다. 따라서 이렇게 새로 찾은 확신을 가지고 연기와 창의성에 접근하는 것은 날 자유롭게 한다. 이제 내게 있어 연기란 내가 완전히 자유롭고 창의적이며 또 공개적이 되기 위한 공간에 지나지 않는다.”                       

-당신이 신 시티에 산다면 잘 살 수가 있겠는가.
“잘 지낼 것이다. 난 사기꾼적 기질이 있어 매사를 이리저리 빠져 다니면서 처리하는 기술이 있다.”         

-어머니라는 것이 연기에 어떤 변화라도 일으켰는가.
“물론이다. 그 전과 완전히 달라졌다. 자의식에 사로 잡혔던 과거와 달리 어머니가 된 뒤로 나는 역에 완전히 나를 몰입시키고 있다. 내가 맡은 역에 충실치 못하면 아이들에게도 충실할 수가 없다고 생각한다.”

-아이들이 당신 직업을 어떻게 생각하는가.   
낸시가 무대에서 요염한 자세로 춤을 추고 있다.
“아이들은 배우라는 것에 대해 잘 알지 못한다. 그저 멋있는 일이라고 생각하는 것 같다.”

-당신은 영화를 찍을 때 나체로 계약에 나오지 않는다는 조항을 반드시 넣는다는 것이 사실인가.
“많은 배우들이 서슴지 않고 옷을 벗는데 그것은 그들 자신이 결정하기 나름이다. 난 나대로 결정하는 것이다.”

-어떤 디자이너를 좋아하며 어떤 배우가 당신에게 영향을 주었는가.
“베르사체, 켄조, 이브 생 로랑 등 한두 사람이 아니다. 난 언제나 자신이 하는 일에서 예외적인 것을 할 줄 아는 사람으로부터 영향을 받았다. 따라서 이 영화를 만든 로버트와 프랭크로부터 큰 영향을 받았다고 할 수 있다.”

-아이들 다음으론 무엇이 가장 중요한가.
“난 연기를 좋아한다. 사람들을 즐겁게 만들어주는 것을 좋아한다. 평생 그 일을 하기를 희망한다. 연기 외에는 내가 사랑하는 사람들을 위해 보다 안전하고 건강한 장소를 마련해 주는 것을 좋아한다. 둘 다 할 수 있으니 난 감사하며 운이 좋다고 생각한다.”

-당신은 언젠가 다시 TV에 출연할 뜻이 있는가.
“내 회사 경영 일이 너무 바빠서 당분간 TV에 나올 일은 없을 것 같다.”

-파파라치에 어떻게 대처하는가.
“그것에 대해 너무 에너지를 소비하지 않고 그냥 내 할 일만 하기로 했다.”

-타블로이드가 당신에 관해 쓴 터무니없는 글을 읽을 때 느낌은 어떤가.
“난 그것들을 안 읽는다. 종종 다른 사람들을 통해 내 얘기를 듣곤 하는데 하도 터무니가 없어 아예 신경을 안 쓰기로 했다.”

-앞으로 어떤 영화들에 나올 작정인가.
“내 회사가 날로 발전해 나는 이제 경제적 기반이 단단해졌다. 따라서 내가 마음에 끌리는 작품을 만들고 또 출연하기가 과거보다 쉬워졌다. 어떤 것은 대규모 예산이 소요되는 것일 수도 있고 또 어떤 것은 오락위주이며 그리고 저예산의 독립영화에도 나올 것이다.”

-당신 회사의 직원들이 당신에 어떻게 접근하는가. 스타로 보는가, 사장으로 보는가.
“난 한 사람이다. 다르게 행동하지 않는다. 그들은 나를 제시카로 본다. 우린 같이 점심을 먹고 남들처럼 서로 가족과 일에 대해 얘기를 나눈다.”

-당신이 생각하는 가장 글래머러스한 사람은 누구인가.
“장소로는 파리이고 사람은 다이앤 본 퍼스텐버그다. 그는 정말로 우아하고 아르답고 글래머러스한 여자다.”

-당신의 약점은 무엇인가.
“나의 아이들이다.”

-미란 때로 그것을 지닌 사람에게 저주로서 작용할 수도 있는데 당신의 미에 대한 정의는 무엇인가.
“그것 하나만이 당신의 전부라고 생각한다면 미는 저주가 될 수 있다. 당신이 그것과 완전히 연결되지 않을 때야 비로소 그것은 저주가 되지 못한다.”

-어떤 팬레터를 받는가.
“내가 20대 초반 때 너무나 괴상망측한 팬레터들을 받아서 그 뒤로 나의 경호원들이 팬레터를 내게 주지 않는다. 그러나 요즘에는 트위터니 페이스북 등이 있어 이런 매체를 통해 팬들과 서로 소통하고 있다. 서로 대화를 주고받으니 재미있다.”

-아침에 일어나 거울을 보기가 좋은가.
“별로 안 좋다. 얼굴 여기저기에 주름이 생겨 화장을 해야 하기 때문이다. 점심때가 지나갈 무렵에야 내 얼굴이 내가 바라는 얼굴이 되곤 한다. 때론 예쁘기도 하고 또 때론 그렇지 않기도 하다.”

-좋아하는 음식은 무엇인가.
“계절에 달렸다. 여름에는 신선한 샐러드요 겨울에는 구운 것을 좋아한다. 그러나 난 조리법만 준다면 무엇이든지 만들 수 있다.” 
                                        <한국일보 편집위원 / hjpark1230@gmail.com>



왓 이프(What If)

청춘남녀의 새콤달콤 감정흐름 코믹터치


월래스(래드클리프·왼쪽)와 샨트리(조이 카잔)가 식당에서 대화를 나누고 있다.


과연 남자와 여자는 친구가 될 수 있는가. 이 영화는 20대 두 청춘남녀를 주인공으로 이 문제를 던진 로맨틱 코미디로 다소 얘기를 끌어가고 또 억지를 쓴 점이 있긴 하지만 두 주인공들처럼 귀염성 있고 새콤달콤한 맛이 난다.
청춘판 ‘해리가 샐리를 만났을 때’라 하겠는데 해리 포터로 성장한 대니얼 래드클리프의 본격적인 첫 성인 역 영화이다. 성공한 편인데 래드클리프는 로맨틱 배우로선 썩 잘 어울리지가 않는데도 역을 무난히 잘 소화해 내고 있다.
다소 지나치게 달짝지근한 기분이 나면서도 청춘남녀의 마음과 감정을 상당히 진지하게 다뤄 호감이 간다. 위트와 약간의 변덕이 있는 말이 좀 많은 영화로 데이트용으로 아주 좋다.
토론토의 의대 중퇴생인 월래스(래드클리프)는 같은 의대생인 애인으로부터 버림을 받은 지 1년이 넘도록 가슴앓이를 한다. 월래스는 아주 순진한 구식 스타일의 청년이다.
그가 어느 날 단짝친구로 말이 많고 요란한 앨란(애담 드라이버가 영화를 훔칠 정도로 탁월한 연기를 한다)과 함께 파티에 갔다가 앨란의 사촌으로 영리하고 귀엽게 생긴 애니메이션 미술가 샨트리(조이 카잔-명장 엘리아 카잔의 손녀)를 만나 첫 눈에 쏙 빠져든다. 샨트리도 이 약간 어수룩한 데가 있는 월래스가 마음에 든다. 한편 앨란은 파티에서 만난 니콜(맥켄지 데이비스)과 서로 첫 눈에 화끈하게 반해 육박전을 치르듯이 끌어안고 애무하고 키스를 한다. 
파티 후 집에 돌아가는 샨트리를 동반한 월래스는 자기에게 전화번호를 적어 주는 샨트리로 부터 “우리 친구로 지내요”라는 말과 함께 “나 보이 프렌드가 있어요”라는 말을 듣는다. 샨트리의 애인 벤(레이프 스팔)은 유엔 직원으로 둘은 동거생활한지 5년이 된다.    
좌우간 월래스와 샨트리는 그 뒤로 계속해 만나면서 영화 보고 밥 먹고 대화를 나누는데 동거 애인 있는 여자가 어쩌자고 외간 남자를 그렇게 자주 만나는지 알다가도 모르겠다. 그러다 보면 둘 사이에 애정의 감정이 솟아난다는 것을 모른다는 말인지.
슬픈 표정의 강아지 같은 모습을 한 월래스는 처음 만났을 때부터 샨트리를 사랑하고 있지만 이를 억제하느라 죽을 맛이다. 그런데 둘을 더 가깝게 하려고 영화는 갑자기 벤을 6개월간 더블린에서 일하게 만든다. 
샨트리와 월래스는 이 사이에 더 자주 만나면서 월래스는 이제 완전히 자기감정을 주체하지 못할 정도가 된다. 그리고 친구를 고집하는 샨트리도 월래스에게 빠져든다. 사실 샨트리도 처음부터 월래스가 좋았는데도 벤 때문에 그 감정을 감춘 것인 줄 다 안다.
샨트리가 월래스의 마음을 떠 보고 또 한편으로는 월래스를 떼어 버리려고 자기 여동생 달리아(메이간 파크)와 만나게 하는 것을 비롯해 군더더기 같은 부분이 더러 있어 조금 길게 느껴진다.
 촬영과 음악 등이 다 로맨틱한 영화 분위기에 잘 어울리는 영화의 큰 매력은 래드클리프와 카잔의 기차게 어울리는 화학작용. 
특히 카잔이 연기를 잘하는데 다소 공격적인 그와 수동적인 래드클리프의 밀고 끄는 감정의 줄다리기가 긴장감마저 자아낸다. 마이클 다우스 감독. 
PG-13. CBS Film. 아크라이트(선셋+바인), 랜드마크(피코+웨스트우드), 센추리15. ★★★½(5개 만점)  <한국일보 편집위원 / hjpark1230@gmail.com>


‘이름 없는 사나이’




1960년대 초 서부변경 마을을 무대로 선과 악이 뚜렷이 구별되는 카우보이와 보안관과 무법자 간의(와이트 해트 대 블랙 해트) 권선징악의 구태의연한 얘기로 일관하던 미 웨스턴에 혁명을 일으킨 영화가 1964년에 나온 ‘황야의 무법자’(A Fistful of Dollars)다.
이탈리안 감독 세르지오 레오네가 당시 스크린의 조연급으로 TV 웨스턴 시리즈 ‘로하이드’에 나오던 클린트 이스트우드(사진ㆍ당시 34세)를 기용해 만든 이 돌연변이와도 같은 웨스턴은 잔인한 폭력과 인물들의 비도덕성 그리고 땀과 냄새와 먼지가 뒤범벅이 된 영화로 이로써 ‘스파게티 웨스턴’(한국에선 마카로니 웨스턴이라 했다)이 탄생했다.
나는 대학생 때 이 영화를 명보극장에서 봤는데 엔니오 모리코네의 휘파람과 채찍질 소리가 섞인 획기적인 음악과 함께 애니메이션으로 처리된 오프닝 크레딧 장면부터 화면에 확 빨려 들어갔었다. 그래서 비싼 입장료를 내고 두 번이나 봤다.
이스트우드를 수퍼스타로 만들어주고 레오네와 모리코네의 이름을 세계적으로 알리게 해준 영화의 주인공은 정의한이 아니라 선과 악을 구별하기가 힘든 자로 반 영웅의 모델과도 같은 인물이었다. 레오네는 이런 주인공과 함께 사악하고 탐욕스런 인물들을 동원해 거의 괴이할 정도로 야단스런 웨스턴을 창조했다.
가히 오페라적이라 할 영화로 특히 레오네가 즐겨 쓰는 과장된 롱 샷과 클로스업은 서부의 무한한 경지와 인간들의 내면을 극적으로 묘사하는데 효과적이었다.
‘황야의 무법자’는 라이벌 양 도당이 말아먹는 미 멕시코 접경마을(스페인에서 찍었다)에 나타난 총잡이가 양쪽을 오가며 서로 싸움을 시킨 뒤 자신의 이득을 취하면서 벌어지는 액션영화다. 과묵하고 냉소적인 이스트우드가 여송연을 입 한쪽 끝에 물고 가늘게 뜬 눈을 깜박이면서 악인들을 가차 없이 쏴 죽이는데 어깨에 멕시칸 담요를 걸친 모습이 상거지나 다름없다.
이 영화는 아키라 쿠로사와가 감독하고 토시로 미후네가 주연한 사무라이 영화 ‘요짐보’의 서양판. 그래서 쿠로사와는 판권침해로 소를 제기, 미국에서는 1967년에야 개봉됐다. 그런데 사실 ‘요짐보’도 미국 탐정소설 작가 대쉬엘 해멧의 소설 ‘붉은 수확’과 앨란 래드가 나온 웨스턴 ‘셰인’에서 아이디어를 빌려다 쓴 것이다.    
이탈리안 원제가 ‘당당한 이방인’이었던 영화가 전 세계서 빅히트하면서 곧 이어 ‘황야의 무법자 속편’(For a Few Dollars Moreㆍ1965)과 ‘착한 사람, 나쁜 놈 그리고 추악한 놈’(The Good, the Bad and the Uglyㆍ1966)이 만들어져 둘 다 빅히트 했다.
시리즈를 배급한 미국의 UA사는 이들을 ‘이름 없는 사나이’(Man with No Name) 시리즈로 선전했지만 이스트우드는 3편에서 모두 이름이 있다. 조와 만코와 블론디가 그것이다.
‘황야의 무법자 속편’은 둘 다 바운티헌터인 만코(이스트우드)와 모티머(리 밴 클리프)가 각기 다른 목적으로 잔인하고 간악한 무법자를 쫓는다. 제1편과 2편의 악인으로는 모두 이탈리아의 명우 지안 마리아 볼론테가 나온다. 또 제2편에서는 나스타샤 킨스키(‘테스’)의 아버지로 독일의 명우인 클라우스 킨스키가 곱사등이 악인으로 나와 모티머의 총에 맞아 죽는다.
레오네의 거의 자아도취적인 작품인 제3편은 미 남북전쟁 당시 남군의 숨겨진 금괴의 장소에 관해 서로 정보의 일부만 소유한 자들이 목적지에서 만나 대결을 벌이는 3시간짜리 대하 서사극. 물론 이스트우드가 착한(?) 사람이고 나쁜 놈과 추악한 놈으로 각기 밴 클리프와 일라이 월랙(6월24일 98세로 사망)이 나온다.
시리즈 3편 모두 대부분의 웨스턴처럼 건맨들의 대결로 마지막이 장식되는데 특히 제3편의 라스트신은 정말 멋있다. 3명의 주인공이 원을 그리고 맞서 서로를 째려보는데 이 모습을 롱 샷과 클로스업을 번갈아 써 잡은 촬영과 함께 모리코네의 일촉즉발의 긴장감을 고조시키는 음악이(‘무법자’시리즈와 함께 그의 다른 영화음악이 담긴 CD가 있다)  아슬아슬한 쾌감을 자아낸다. ‘황야의 무법자’ 개봉 50주년을 맞아 ‘이름 없는 사나이’ 시리즈가 블루-레이로 나왔다.
레오네는 이 시리즈 후속 편으로 서부영화의 기념비적인 작품인 ‘옛날 옛적 서부에’(Once Upon a Time in the Westㆍ1968)를 만들었다. 조운 크로포드가 주연한 이색적인 웨스턴 ‘자니 기타’에서 영감을 받은 이 영화는 서부 개척시대 철도가 들어서기를 기다리는 여 지주(클라우디아 카르디나레)를 둘러싸고 선한 자와 악인의 대결을 큰 화폭에 그린 먼지가 일고 흙냄새가 나는 거칠면서도 서정적인 풍경화다
이색적으로 찰스 브론슨이 복수심에 불타는 정의한으로 나오고 헨리 폰다가 검은 모자에 검은 조끼 그리고 검은 옷에 검은 부츠를 신은 악인으로 나와 차갑도록 인상적인 연기를 보여준다. 광야에 달랑 혼자 자리 잡은 기차역에서 누군가를 기다리는 건맨들의 얼굴을 극단적으로 포착한 오프닝 신의 클로스업과 브론슨과 폰다의 대결을 둘러싼 회전촬영 등 카메라 작업이 탁월한 께느른한 분위기의 오페라 웨스턴으로 모리코네의 쓸쓸한 음악이 아름답다.
                                <한국일보 편집위원 / hjpark1230@gmail.com>


2014년 8월 11일 월요일

헌드레드-푸트 여행(The Hundred-Foot Journey)


마담 말로리(헬렌 미렌)가 하산(마니쉬 다얄)에게 요리법을 시범하고 있다.

맛있는 음식과 동화 같은 소재… 갈등 없이 잔잔

현재 상영 중인 ‘셰프’와 앙리 감독의 ‘맨 우먼 이트 드링크’ 및 ‘바벳의 잔치’ 같은 영화들을 생각나게 하는 음식에 관한 영화로 상은 잘 차려 놓았는데 막상 먹을 것이 없다. 우선 음식영화로선 제목이 마음에 안 든다.
음식에 관한 영화이자 프랑스와 인도의 문화 차이를 다룬 드라메디로 당분이 많은 알록달록한 랄리팝을 빨아 먹는 기분이 나는데 랄리팝에 무슨 자양분이 있겠는가. 이만 상하지. 나이 든 관객을 겨냥한 무해하게 편안하고 온건한 작품으로 얘기가 어떻게 나아갈지 빤히 들여다보이는데다가 극적 높낮이나 갈등을 비롯해 사실성이 부족해 동화를 보는 것 같다.
어디 한 군데를 딱 집어 나쁘다고 말할 수도 없는 전반적으로 보기 좋고 그럴싸하게 만든 영화에서 도드라지는 것은 베테런 헬렌 미렌과 인도의 명우 옴 푸리의 자태와 연기 그리고 콤비네이션이다. 너무 크게 기대만 하지 않는다면 그런대로 즐길 만은 하다.
아내를 잃고 20대의 아들 하산(마니쉬 다얄)과 두 딸을 데리고 영국으로 이민 온 카담 일가의 무뚝뚝한 가장 파파(푸리)는 곧 이어 고물차를 이끌고 프랑스로 이주한다. 남불의 한 작은 마을 입구에서 차가 고장이 나는데 이를 도와주는 여자가 동네 식당에서 요리사로 일하는 마음 착하고 예쁜 처녀 마게리트(샬롯 르 봉). 마게리트가 누구와 연애하게 될지는 삼척동자도 아는 일.
그림처럼 아름다운 동네에 정착키로 한 파파는 낡아빠진 집을 사 인도 식당 ‘메종 뭄바이’로 개조한다. 그런데 문제는 이 식당이 고집 세고 독불장군식인 마담 말로리가 경영하는 고급 프랑스 식당 바로 길 건너편에 있다는 점(두 식당 간의 거리가 100푸트). 
이어 두 식당의 두 고집쟁이 주인 간에 설전 및 성질 대결과 함께 프랑스 대 인도 식당 간에 치열한 경쟁이 일어나고 인종차별 사태도 발생하지만 이런 갈등이 수박 겉핥기식으로 묘사돼 맥 빠진다. 여기다 마담 말로리와 파파 간의 은근짜 로맨스까지 조성, 영화가 온통 행복한 분위기로 기득하다.
식당의 등급을 매기는 미슐린으로 부터 별 하나를 받은 말로리의 꿈은 별 두 개를 받는 것( 별 세 개 받기는 하늘의 별 따기). 그래서 말로리는 음식 조리에 뛰어난 솜씨를 지닌 하산을 자기 품 안에 받아들인다. 
본래는 마음이 착한 말로리는 하산을 고용해 별 두 개를 받는 것과 동시에 이로써 젊은 하산을 파리 요리계에 진출시키겠다는 의도다.   
이어 하산과 마게리트 간에 요리를 둘러싼 갈등이 일어나지만 이 것 역시 맹물 처리됐다. 그리고 하산 덕분에 말로리의 식당은 미슐린으로부터 별 두 개를 받고 하산은 파리로 진출한다. 과연 얘기는 여기서 끝날 것인가. 
남불의 작은 마을에서 현지 촬영한 영상미가 꼭 그림엽서처럼 곱고 음악도 분위기에 맞게 달콤하다. 감독은 스웨덴 태생의 라세 할스트롬인데 그는 처음의 솜씨를 잃고 갈수록 할리웃화 하고 있다. PG. DreamWorks. 전지역. ★★★(5개 만점)  <한국일보  편집위원/hjpark1230@gmail.com>




거울(The Mirrorㆍ1975), 향수(Nostalghiaㆍ1983)

‘영화의 시인’  타르코프스키 감독 작품들

스웨덴의 명장 잉그마르 베리만이 ‘가장 위대한 감독’이라 찬양한 러시아의 안드레이 타르코프스키(1932~1986)의 영화 2편이 13일과 14일 이틀간 뉴베벌리 시네마(7165 Beverly Blvd.)에서 동시 상영된다. ‘영화의 시인’이라 불린 타르코프스키의 영화는 지극히 영적이요 형이상학적이며 통상적인 극적 구조를 무시해 난해하지만 보는 사람의 정신과 영혼을 사로잡는 마력이 있다. 그의 영화는 특히 롱테이크를 이용한 촬영이 몽환적이다시피 아름답다. 예술적 도전의식을 지닌 사람들에게 필히 관람을 권한다.
거울(The Mirrorㆍ1975)

거울(The Mirrorㆍ1975)
모스크바로부터 시골에로의 피난 등 타르코프스키의 전시 어렸을 때의 기억에 의존한 자전적 영화로 시간(전시와 1940년대와 전후 1960~70년대)을 자유롭게 옮겨 다니는 구조와 명백지 않은 플롯 그리고 기억과 꿈과 뉴스필름 등을 현대의 장면들과 섞은 영화로 타르코프스키의 영화 중 가장 난해한 작품으로 꼽힌다. 
주인공은 알로샤로 그의 어린 시절과 청춘기 그리고 성인시절의 생각과 감정과 기억을 통해 알로샤와 그의 주변 세상 얘기를 그렸다. 타르코프스키의 부인과 어머니도 나온다. 깊고 감동적이요 아름답다. 하오 7시30분.


향수(Nostalghiaㆍ1983)
향수(Nostalghiaㆍ1983)
이탈리아에서 활동하다가 귀국 후 자살한 러시아 작곡가에 관해 연구하기 위해 이탈리아의터스카니 지방을 방문한 러시아 시인과 그의 아름다운 여자 통역사를 주인공으로 한 타르코프스키의 지극히 개인적인 작품. 
시인은 여행 중 정신병원에 있다가 나온 남자를 만나면서 그로부터 세계 종말을 막아달라는 임무를 부여 받는다. 
베토벤 교향곡 제9번의 제4악장과 분신자살과 소외 그리고 인류애를 다룬 심오하고 신비롭도록 아름다운 영화다. 
하오 9시40분.

‘기합’



최근 한국에서 선임병들의 지속적인 가혹행위로 윤모 일병이 숨지면서 지금 나라가 발칵 뒤집히다시피 했다. 나도 옛날 군시절 모진 시련을 겪긴 했지만 요즘에 비하면 원시시대나 다름없던 그 당시에도 졸병이 기합 받고 죽었다는 말은 듣지 못했다. 
한국 군대는 완전히 시대를 거꾸로 가고 있는 것 같다. 뒤 늦게 병영문화를 개선한다고 부산을 떨고 있지만 제도가 문제가 아니라 의식이 문제다.      
군대란 한 마디로 말해 유사시 사용할 살상무기를 양성하는 곳이다. 따라서 엄격한 통제가 불가피한데 이 통제의 수단으로 잘 못 쓰여지고 있는 것이 소위 기합이다. 기합을 주는 이유는 군기를 잡아 정신통일을 시킨다는 것. 그러나 내 경험에 따르면 그것은 인간의 잠재의식 속에 있는 가학적 폭력욕구의 발로일 뿐이다. 기합이라는 말의 어원이 일본어 이듯이 한국 군대의 기합도 일제 잔재의 하나다.             
제1차 세계대전을 다룬 영화 ‘서부전선 이상 없다’에는 가혹한 훈련교관이 신병들에게 “너희들이 아는 것을 다 잊어버려. 너희들은 군인이 되는 거야”라고 훈시하는 장면이 있다. 이 훈시는 인간성을 획일화하려는 구령으로 항상 자유를 요구하는 개체들은 이 같은 구령에 반동하게 마련이다.
고다르의 영화 ‘남성 여성’의 폴도 군생활을 자유를 찾기 위한 투쟁이었다고 말한다. 그는 파리의 카페에서 만난 마들렌에게 자기가 막 16개월간의 군생활을 마치고 나왔다며 말을 건다. 이에 마들렌이 폴에게 “군생활 재미있었어요”라고 묻자 폴은 “그것은 권위주의와 복종으로부터 상대적 자유를 찾으려는 투쟁이었다”고 대답한다.
윤 일병의 뉴스를 읽다보니 자연 내 군시절이 떠오른다. 나는 대학을 나온 뒤 학교 선생을 하다가 뒤늦게 군에 징집됐다. ‘영감’소리를 들어가며 34개월간 복무를 했는데 그 때만해도 군에 갈 때면 ‘3년간 죽었다고 생각하라’는 조언을 들었었다.
손목이 빠져 나갈 것 같은 사역을 하면서 8파운드 곡괭이 자루로 ‘빠따’를 맞고 말뚝하사의 워커발로 정강이를 채이다가 밤에는 동해안 보초를 섰다. 서러워 눈물까지 흘렸다. 군대는 그야말로 창살 없는 감옥으로 이를 악물고 참았다.
그러나 나의 고생은 아로운과 가지 그리고 프루의 그것에 비하면 말캉한 것이다. 방송작가 한운사의 라디오 드라마가 원전인 김기영 감독의 영화 ‘현해탄은 알고 있다’(사진)의 주인공 아로운(김운하)은 일제강점기 때 학병으로 군에 끌려가 일본인 고참 하사관들에 의해 매일 같이 초죽음이 되도록 기합을 받는다. 그러나 아로운이 이에 굴하지 않자 최고 악질 하사관(이예춘)은 아로운에게 자기 군화바닥에 묻은 똥을 핥아 먹으라고 지시한다.
그런데 오래 전에 한국의 논산훈련소 중대장이 변소청소가 불량하다는 이유로 훈병들에게 변기의 똥을 찍어 먹도록 시켜 그 때도 나라가 떠들썩했었다. 이 중대장은 아마도 이예춘의 흉내를 냈던 것 같다.
코미카와 준페이가 쓴 반전소설이 원작인 영화 ‘인간의 조건’의 주인공 가지(타추야 나카다이)도 만주전선에 투입돼 단지 ‘인간적’이라는 이유 하나로 고참 하사관들에 의해 온갖 가혹한 기합을 받는다. 가지는 비인간지대의 군에서 인간성을 지키다가 그 벌의 하나로 똥지게를 나른다.   
영화 ‘지상에서 영원으로’의 졸병 프루(몬고메리 클리프트)도 고집불통이어서 말뚝 하사관들로부터 별의별 기합을 다 받는다. 완전무장 구보에 체육관 바닥 물걸레질 그리고 접시 닦기에 주말 외출금지 처분을 받지만 미국이어서 구타는 안 당한다.
윤 일병의 사망 외에도 최근 선임병들의 기혹행위에 못 견뎌 2명의 젊은이들이 자살을 했고 그 전에는 임모 병장이 집단 왕따에 대한 화풀이로 동료들을 사살한 사건도 있었다. 이들 중 많은 병사가 소위 군생활 적응에 문제가 있는 A급 관심병사들이어서 징병제 대신 자원입대제를 도입해야 한다는 의견도 있다. 
나는 젊은 병사들의 자살 뉴스를 읽으면서 그들의 이른 죽음이 안타까우면서도 한편으로는 젊은이들의 생명 경시에 충격을 느꼈다. 최근 통계에 의하면 지난 5년 사이 자살이 군대 전체 사망의 64%를 차지했다. 그리고 자살이 한국 청년층의 최대 사망원인이라고 한다. 요즘 젊은이들이 물질적 풍요로 내적 심지가 약해진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마저 든다.  
나는 군생활을 하면서 탈영을 생각해 본 적은 있지만 자존심 하나로 버텼다. 내가 가장 좋아하는 영화 속 인물인 프루의 고집도 어느 정도 도움이 됐다. 
우리가 중학교에 다닐 때는 월요일마다 운동장에서 조회가 있었다. 어느 날 조회에서 영어선생님이 우리에게 “너희들은 프라이드를 가져라”라고 한 말씀 하셨던 기억이 난다. 자존이란 생명을 아끼면서 그것과 투쟁하는 것이다. <한국일보 편집위원/hjpark1230@gmail.com>



2014년 8월 5일 화요일

‘겟 온 업' 제작자 믹 재거

“노래하고 싶어 대학 중퇴… 영화제작은 또다른 기쁨”



제임스 브라운과 첫 만남 50여년 훌쩍 지났지만 당시 공연 생생히 기억해

1일 미국서 개봉되는‘소울의 대부’ 제임스 브라운의 삶을 다룬‘겟 온 업’의 제작자인 영국의 락그룹 롤링스톤즈의 리드 싱어 믹 재거(71)와의 인터뷰가 7월21일 뉴욕의 맨다린 오리엔탈 호텔서 있었다. 반세기가 넘도록 계속하는 정열적인 공연 탓인지 재거는 갈비씨라고 할 만큼 날씬한 몸매에 건강해 보였는데 비록 얼굴에 주름은 갔지만 70세(7월26일로 71세)라곤 믿어지지 않을 정도로 젊어 보였다. 재거는 액센트가 있는 다소 굵은 음성으로 위트와 유머를 구사해 가면서 질문에 답했다. 그는 신이 나면 가성과 함께 연기를 하듯 커다란 제스처를 써가면서 거침없이 질문에 답했는데 자신의 사생활에 대해선 함구했다. 사람이 아주 명랑했는데 자신의 농담에 자기도 우습다는 듯이 눈을 가늘게 뜨고 그의 트레이드마크인 큰 입을 활짝 벌리고“하 하”하면서 웃었다. 재거는 최근에 본 영화 중 봉준호의‘설국열차’를 감동 깊게 봤다고 찬양했다.  

―영화에서 묘사됐듯이 당신이 21세 때 샌타모니카의 시빅센터에서 TV 쇼에 나왔을 때 제임스 브라운이 당신에 앞서 노래를 불렀는데 그 일을 기억하는가.
“물론이다. 그러나 난 이미 그 전에 브라운을 만났다. 그가 뉴욕의 아폴로 극장에서 공연했을 때 만나 시간을 함께 보냈다. 난 샌타모니카에서의 공연 내용을 생생히 기억한다. 그 때 난 21세여서 무서울 것이 없었다.”

―제임스 브라운이 당신의 삶에 어떤 영감을 주었는가.
“그는 위대한 가수였다. 작곡과 노래 해석에도 재주가 뛰어났지만 그가 내게 큰 영향을 준 것은 공연자로서였다. 그는 무대 공연자로서 엄청난 에너지를 지녔었는데 나는 그가 자신의 100%를 주면서 춤을 추고 청중을 희롱하고 사로잡는 무대 매너에 늘 경탄했었다. 그리고 그는 늘 새로운 것을 추구했다. 난 여러 면에서 그에게 감탄했었다.”

―영화의 제작자로서 브라운의 본질을 제대로 표현하기 위해 어떤 노력을 했는가.
“우선 중요한 것은 좋은 각본이었다. 우리의 각본은 훌륭했지만 난 몇 군데를 수정했다. 진행속도를 빨리하고 또 여러 인물들을 한 사람으로 융합시키기 위해서다. 내가 가장 원했던 것은 사람들이 비록 결함은 있지만 브라운이라는 인물에게 어떻게 하면 빨려들 수가 있는가하는 것이었다. 그리고 연기와 영화에 쓸 노래와 공연장면의 편집과 브라운의 주변인물 등에도 무척 신경을 썼다.”

―제임스 브라운이 가수로서 좌절감을 느꼈듯이 당신도 그런 경험을 했는가.
“아니다. 난 그런 과정을 거치진 않았다.”

―실제 삶에서 누군가를 필요로 하는가.
1964년 샌타모니카 시빅센터 공연 때의 제임스 브라운(왼쪽)과 믹 재거.
“내 개인 얘기는 하고 싶지 않다.”

―당신도 브라운처럼 전설적 인물인데 누군가 당신에 관한 영화를 만든다면 당신의 어떤 점을 다루지 않기를 바라는가.
“이 영화는 기록영화가 아니어서 브라운의 삶의 중요한 부분과 흥미 있는 부분을 부각시키려고 했다. 부정적인 면도 다뤘지만 그것을 너무 강조하려고 하지는 않았다. 누군가 나에 관한 영화를 만든다면 지나치게 부정적인 점을 강조하지 않기를 바란다. 너무 부정적인 면을 부각시키면 고약한 영화가 되고 말 것이다.” 

―제임스 브라운은 부모에게서 버림을 받았는데 아버지로서 당신은 당신의 아이들의 삶에 어떻게 개입하는가.
“브라운은 부모로부터 버림받고 색주가 포주인 아주머니 밑에서 자랐다. 흥미 있는 경험이지만 내 아이들과 손자들에게 권할 일은 아니다. 난 브라운과는 약간 다른 어린 시절을 보냈다. 그것에 감사한다. 받침이 든든한 어린 시절은 매우 중요한 것이다. 부모로서는 늘 자기 아이들을 돌보고 또 함께 있는 것이 중요한 일이다. 브라운은 그런 사랑을 못 받았지만 그는 이것을 극복했다. 그는 생존을 위한 진취성을 지닌 사람으로 자신의 재능을 꽃 피움으로써 어두운 과거를 극복한 사람이다.”

―제임스 브라운의 영화는 먼저 제작자 브라이안 그레이저(‘아폴로’ ‘뷰티풀 마인드’)가 10여년간 만들려고 벼르다가 영화화 판권을 잃고 당신에 판권이 넘어갔는데 그 과정에 대해서 말해 달라.
“브라이안이 제임스 브라운이 살았을 때 영화를 만들려고 시도했지만 브라운이 하도 요구하는 사항이 많고 변덕이 심해서 성공하지 못했다. 브라운이 죽고 나서도 그의 자식을 비롯한 유가족이 너무 많아서 서로들 다투는 바람에 역시 만들지를 못했다. 그런 차에 내 친구이자 사업 동료로 브라운의 열렬한 팬이자 그에 관한 백과사전식 지식을 지닌 피터 애프터만이 브라운 유족을 찾아가 믹 재거가 브라운의 영화를 만들면 어떻겠느냐고 제의, 허락을 받았다. 그리고 피터는 내게 찾아와 제임스 브라운의 기록영화를 만들 의향이 있느냐고 물었다. 그래서 내가 극영화로 만들겠다고 대답했다. 그리고 난 브라이안이 오랜 전부터 브라운에 관한 영화를 만들려고 했다는 것을 잘 알아 그에게 가서 함께 만들자고 말했다.”

―당신은 칠순에도 공연을 계속하고 있는 부지런한 사람인데 앞으로도 계속할 것인가.
“나는 이 여름과 오는 가을에도 공연을 한다. 언제 중단할지 나도 모른다. 여하튼 나는 아직도 앞으로 나아가고 있는 중이다,”

―지금의 당신이 있도록 만든 젊었을 때의 결정적 계기는 무엇인가.
“나의 부모는 내가 쇼 업계에 종사하는 것을 원치 않았다. 왜냐하면 그것은 직업이 아니기 때문이다. 결정적 계기라 한다면 내가 대학을 중퇴한 것이다. 나는 주말만 로큰롤을 노래하는 대신 일주 내내 노래하고 싶어서 대학을 중퇴했는데 그것이 매우 성공했고 또 음반도 냈다. 대학 중퇴가 내겐 인생의 큰 전환점인 된 것이다.”

―예술가의 정치참여를 어떻게 생각하는가.
“아주 좋은 일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그러자면 먼저 예술가들은 자기가 말하는 것이 확실히 무엇인지를 알아야 한다. 예술가들은 늘 자기가 사는 세상을 반영해 왔다. 그것은 그들의 직무이다.”

―당신도 제임스 브라운처럼 공연할 때 전신을 움직이면서 노래 부르는데 브라운에게서 영향이라도 받았는가.
“그가 내게 큰 영감을 준 것이 사실이다. 내게 있어 전신을 움직이면서 노래한다는 것은 매우 중요하다. 그러나 난 브라운처럼 두 다리를 완전히 벌려 주저앉는 동작은 할 수가 없다. 육체적 활동은 공연의 한 부분이다. 내가 할 수 있는 한은 계속할 것이다.”

―당신의 섹스어필은 어디서 오는가.
“그것은 타고난 것이라고 본다. 그러나 배울 수도 있다. 난 많은 가수들로부터 그들이 어떻게 청중의 분위기를 감 잡아 거기에 부응하는 공연을 하는가를 보고 배웠다. 청중과의 좋은 상호교류가 중요한데 제임스 브라운은 이에 능한 사람이었다.”

―곧 다가오는 생일을 어떻게 보낼 것인가.
“현재 파티를 준비 중이다. 규모가 어떨지는 모르겠으나 춤추고 재미있게 노는 파티가 될 것이다.”

―당신이 최근 공연한 쇼 중 가장 인상에 남는 것은 어느 것인가.
“2,000여년 전에 지은 이탈리아의 서커스 막시머스 야외극장에서 가진 공연이다. 진짜 흥분되는 멋있는 쇼였다. 그리고 오래 전에 가진 리우데자네이루 공연도 즐거웠다.”

―앞으로 하고 싶은 일이 무엇인가.
“그것은 있어도 여기서 밝힐 수가 없다. 단 하나 말하고 싶은 것은 나는 이 영화를 만든 것이 기쁘고 또 좋은 경험이었다. 난 현재 마틴 스코르세지와 함께 뉴욕에서 HBO-TV 시리즈를 찍고 있다.”    

―미국의 어떤 음악 장르로부터 영향을 받았는가.
“컨트리/블루스다. 내가 아주 어렸을 때 나는 TV로 공연차 영국에 온 가수들의 가스펠에 탐닉했었다. 10대가 돼서는 극장에서 노래를 들었는데 대부분 포크송이었다. 나는 리틀 리처드에게서 많은 것을 배웠다. 그는 내 무대공연 스타일에 많은 영향을 준 가수다.”

―인상 깊게 본 영화들은 무엇인가.
“10대 땐 쿠로사와의 영화를 즐겼다. 난 자신을 지적으로 생각해 이런 영화들을 봤는데 내가 처음 본 외국어 영화 중 하나가 폴란스키의 ‘물속의 칼’이다. 우린 그 때 학교에 영화클럽이 있어 거기서 그런 영화들을 봤다. 이들 외국어 영화와 함께 그 당시 인기 있던 영국 영화들로부터도 많은 영향을 받았다. 광적인 팬은 아니었지만 어릴 때 꽤 많은 영화를 봤다.”

―최근에 본 영화 중 가장 깊은 감동을 받은 영화가 무엇인가.
“대중적 영화로는 리들리 스캇의 영화를 좋아한다. 가장 최근 본 영화 중 정말 훌륭하다고 느낀 것은 ‘설국열차’다. 난 보통 이런 종류의 영화를 안 좋아하는데 ‘설국열차’는 정말로 재미있게 봤다.”                                                     <한국일보  편집위원/hjpark1230@gma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