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이야기

2014년 8월 11일 월요일

헌드레드-푸트 여행(The Hundred-Foot Journey)


마담 말로리(헬렌 미렌)가 하산(마니쉬 다얄)에게 요리법을 시범하고 있다.

맛있는 음식과 동화 같은 소재… 갈등 없이 잔잔

현재 상영 중인 ‘셰프’와 앙리 감독의 ‘맨 우먼 이트 드링크’ 및 ‘바벳의 잔치’ 같은 영화들을 생각나게 하는 음식에 관한 영화로 상은 잘 차려 놓았는데 막상 먹을 것이 없다. 우선 음식영화로선 제목이 마음에 안 든다.
음식에 관한 영화이자 프랑스와 인도의 문화 차이를 다룬 드라메디로 당분이 많은 알록달록한 랄리팝을 빨아 먹는 기분이 나는데 랄리팝에 무슨 자양분이 있겠는가. 이만 상하지. 나이 든 관객을 겨냥한 무해하게 편안하고 온건한 작품으로 얘기가 어떻게 나아갈지 빤히 들여다보이는데다가 극적 높낮이나 갈등을 비롯해 사실성이 부족해 동화를 보는 것 같다.
어디 한 군데를 딱 집어 나쁘다고 말할 수도 없는 전반적으로 보기 좋고 그럴싸하게 만든 영화에서 도드라지는 것은 베테런 헬렌 미렌과 인도의 명우 옴 푸리의 자태와 연기 그리고 콤비네이션이다. 너무 크게 기대만 하지 않는다면 그런대로 즐길 만은 하다.
아내를 잃고 20대의 아들 하산(마니쉬 다얄)과 두 딸을 데리고 영국으로 이민 온 카담 일가의 무뚝뚝한 가장 파파(푸리)는 곧 이어 고물차를 이끌고 프랑스로 이주한다. 남불의 한 작은 마을 입구에서 차가 고장이 나는데 이를 도와주는 여자가 동네 식당에서 요리사로 일하는 마음 착하고 예쁜 처녀 마게리트(샬롯 르 봉). 마게리트가 누구와 연애하게 될지는 삼척동자도 아는 일.
그림처럼 아름다운 동네에 정착키로 한 파파는 낡아빠진 집을 사 인도 식당 ‘메종 뭄바이’로 개조한다. 그런데 문제는 이 식당이 고집 세고 독불장군식인 마담 말로리가 경영하는 고급 프랑스 식당 바로 길 건너편에 있다는 점(두 식당 간의 거리가 100푸트). 
이어 두 식당의 두 고집쟁이 주인 간에 설전 및 성질 대결과 함께 프랑스 대 인도 식당 간에 치열한 경쟁이 일어나고 인종차별 사태도 발생하지만 이런 갈등이 수박 겉핥기식으로 묘사돼 맥 빠진다. 여기다 마담 말로리와 파파 간의 은근짜 로맨스까지 조성, 영화가 온통 행복한 분위기로 기득하다.
식당의 등급을 매기는 미슐린으로 부터 별 하나를 받은 말로리의 꿈은 별 두 개를 받는 것( 별 세 개 받기는 하늘의 별 따기). 그래서 말로리는 음식 조리에 뛰어난 솜씨를 지닌 하산을 자기 품 안에 받아들인다. 
본래는 마음이 착한 말로리는 하산을 고용해 별 두 개를 받는 것과 동시에 이로써 젊은 하산을 파리 요리계에 진출시키겠다는 의도다.   
이어 하산과 마게리트 간에 요리를 둘러싼 갈등이 일어나지만 이 것 역시 맹물 처리됐다. 그리고 하산 덕분에 말로리의 식당은 미슐린으로부터 별 두 개를 받고 하산은 파리로 진출한다. 과연 얘기는 여기서 끝날 것인가. 
남불의 작은 마을에서 현지 촬영한 영상미가 꼭 그림엽서처럼 곱고 음악도 분위기에 맞게 달콤하다. 감독은 스웨덴 태생의 라세 할스트롬인데 그는 처음의 솜씨를 잃고 갈수록 할리웃화 하고 있다. PG. DreamWorks. 전지역. ★★★(5개 만점)  <한국일보  편집위원/hjpark1230@gmail.com>




거울(The Mirrorㆍ1975), 향수(Nostalghiaㆍ1983)

‘영화의 시인’  타르코프스키 감독 작품들

스웨덴의 명장 잉그마르 베리만이 ‘가장 위대한 감독’이라 찬양한 러시아의 안드레이 타르코프스키(1932~1986)의 영화 2편이 13일과 14일 이틀간 뉴베벌리 시네마(7165 Beverly Blvd.)에서 동시 상영된다. ‘영화의 시인’이라 불린 타르코프스키의 영화는 지극히 영적이요 형이상학적이며 통상적인 극적 구조를 무시해 난해하지만 보는 사람의 정신과 영혼을 사로잡는 마력이 있다. 그의 영화는 특히 롱테이크를 이용한 촬영이 몽환적이다시피 아름답다. 예술적 도전의식을 지닌 사람들에게 필히 관람을 권한다.
거울(The Mirrorㆍ1975)

거울(The Mirrorㆍ1975)
모스크바로부터 시골에로의 피난 등 타르코프스키의 전시 어렸을 때의 기억에 의존한 자전적 영화로 시간(전시와 1940년대와 전후 1960~70년대)을 자유롭게 옮겨 다니는 구조와 명백지 않은 플롯 그리고 기억과 꿈과 뉴스필름 등을 현대의 장면들과 섞은 영화로 타르코프스키의 영화 중 가장 난해한 작품으로 꼽힌다. 
주인공은 알로샤로 그의 어린 시절과 청춘기 그리고 성인시절의 생각과 감정과 기억을 통해 알로샤와 그의 주변 세상 얘기를 그렸다. 타르코프스키의 부인과 어머니도 나온다. 깊고 감동적이요 아름답다. 하오 7시30분.


향수(Nostalghiaㆍ1983)
향수(Nostalghiaㆍ1983)
이탈리아에서 활동하다가 귀국 후 자살한 러시아 작곡가에 관해 연구하기 위해 이탈리아의터스카니 지방을 방문한 러시아 시인과 그의 아름다운 여자 통역사를 주인공으로 한 타르코프스키의 지극히 개인적인 작품. 
시인은 여행 중 정신병원에 있다가 나온 남자를 만나면서 그로부터 세계 종말을 막아달라는 임무를 부여 받는다. 
베토벤 교향곡 제9번의 제4악장과 분신자살과 소외 그리고 인류애를 다룬 심오하고 신비롭도록 아름다운 영화다. 
하오 9시40분.

‘기합’



최근 한국에서 선임병들의 지속적인 가혹행위로 윤모 일병이 숨지면서 지금 나라가 발칵 뒤집히다시피 했다. 나도 옛날 군시절 모진 시련을 겪긴 했지만 요즘에 비하면 원시시대나 다름없던 그 당시에도 졸병이 기합 받고 죽었다는 말은 듣지 못했다. 
한국 군대는 완전히 시대를 거꾸로 가고 있는 것 같다. 뒤 늦게 병영문화를 개선한다고 부산을 떨고 있지만 제도가 문제가 아니라 의식이 문제다.      
군대란 한 마디로 말해 유사시 사용할 살상무기를 양성하는 곳이다. 따라서 엄격한 통제가 불가피한데 이 통제의 수단으로 잘 못 쓰여지고 있는 것이 소위 기합이다. 기합을 주는 이유는 군기를 잡아 정신통일을 시킨다는 것. 그러나 내 경험에 따르면 그것은 인간의 잠재의식 속에 있는 가학적 폭력욕구의 발로일 뿐이다. 기합이라는 말의 어원이 일본어 이듯이 한국 군대의 기합도 일제 잔재의 하나다.             
제1차 세계대전을 다룬 영화 ‘서부전선 이상 없다’에는 가혹한 훈련교관이 신병들에게 “너희들이 아는 것을 다 잊어버려. 너희들은 군인이 되는 거야”라고 훈시하는 장면이 있다. 이 훈시는 인간성을 획일화하려는 구령으로 항상 자유를 요구하는 개체들은 이 같은 구령에 반동하게 마련이다.
고다르의 영화 ‘남성 여성’의 폴도 군생활을 자유를 찾기 위한 투쟁이었다고 말한다. 그는 파리의 카페에서 만난 마들렌에게 자기가 막 16개월간의 군생활을 마치고 나왔다며 말을 건다. 이에 마들렌이 폴에게 “군생활 재미있었어요”라고 묻자 폴은 “그것은 권위주의와 복종으로부터 상대적 자유를 찾으려는 투쟁이었다”고 대답한다.
윤 일병의 뉴스를 읽다보니 자연 내 군시절이 떠오른다. 나는 대학을 나온 뒤 학교 선생을 하다가 뒤늦게 군에 징집됐다. ‘영감’소리를 들어가며 34개월간 복무를 했는데 그 때만해도 군에 갈 때면 ‘3년간 죽었다고 생각하라’는 조언을 들었었다.
손목이 빠져 나갈 것 같은 사역을 하면서 8파운드 곡괭이 자루로 ‘빠따’를 맞고 말뚝하사의 워커발로 정강이를 채이다가 밤에는 동해안 보초를 섰다. 서러워 눈물까지 흘렸다. 군대는 그야말로 창살 없는 감옥으로 이를 악물고 참았다.
그러나 나의 고생은 아로운과 가지 그리고 프루의 그것에 비하면 말캉한 것이다. 방송작가 한운사의 라디오 드라마가 원전인 김기영 감독의 영화 ‘현해탄은 알고 있다’(사진)의 주인공 아로운(김운하)은 일제강점기 때 학병으로 군에 끌려가 일본인 고참 하사관들에 의해 매일 같이 초죽음이 되도록 기합을 받는다. 그러나 아로운이 이에 굴하지 않자 최고 악질 하사관(이예춘)은 아로운에게 자기 군화바닥에 묻은 똥을 핥아 먹으라고 지시한다.
그런데 오래 전에 한국의 논산훈련소 중대장이 변소청소가 불량하다는 이유로 훈병들에게 변기의 똥을 찍어 먹도록 시켜 그 때도 나라가 떠들썩했었다. 이 중대장은 아마도 이예춘의 흉내를 냈던 것 같다.
코미카와 준페이가 쓴 반전소설이 원작인 영화 ‘인간의 조건’의 주인공 가지(타추야 나카다이)도 만주전선에 투입돼 단지 ‘인간적’이라는 이유 하나로 고참 하사관들에 의해 온갖 가혹한 기합을 받는다. 가지는 비인간지대의 군에서 인간성을 지키다가 그 벌의 하나로 똥지게를 나른다.   
영화 ‘지상에서 영원으로’의 졸병 프루(몬고메리 클리프트)도 고집불통이어서 말뚝 하사관들로부터 별의별 기합을 다 받는다. 완전무장 구보에 체육관 바닥 물걸레질 그리고 접시 닦기에 주말 외출금지 처분을 받지만 미국이어서 구타는 안 당한다.
윤 일병의 사망 외에도 최근 선임병들의 기혹행위에 못 견뎌 2명의 젊은이들이 자살을 했고 그 전에는 임모 병장이 집단 왕따에 대한 화풀이로 동료들을 사살한 사건도 있었다. 이들 중 많은 병사가 소위 군생활 적응에 문제가 있는 A급 관심병사들이어서 징병제 대신 자원입대제를 도입해야 한다는 의견도 있다. 
나는 젊은 병사들의 자살 뉴스를 읽으면서 그들의 이른 죽음이 안타까우면서도 한편으로는 젊은이들의 생명 경시에 충격을 느꼈다. 최근 통계에 의하면 지난 5년 사이 자살이 군대 전체 사망의 64%를 차지했다. 그리고 자살이 한국 청년층의 최대 사망원인이라고 한다. 요즘 젊은이들이 물질적 풍요로 내적 심지가 약해진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마저 든다.  
나는 군생활을 하면서 탈영을 생각해 본 적은 있지만 자존심 하나로 버텼다. 내가 가장 좋아하는 영화 속 인물인 프루의 고집도 어느 정도 도움이 됐다. 
우리가 중학교에 다닐 때는 월요일마다 운동장에서 조회가 있었다. 어느 날 조회에서 영어선생님이 우리에게 “너희들은 프라이드를 가져라”라고 한 말씀 하셨던 기억이 난다. 자존이란 생명을 아끼면서 그것과 투쟁하는 것이다. <한국일보 편집위원/hjpark1230@gmail.com>



2014년 8월 5일 화요일

‘겟 온 업' 제작자 믹 재거

“노래하고 싶어 대학 중퇴… 영화제작은 또다른 기쁨”



제임스 브라운과 첫 만남 50여년 훌쩍 지났지만 당시 공연 생생히 기억해

1일 미국서 개봉되는‘소울의 대부’ 제임스 브라운의 삶을 다룬‘겟 온 업’의 제작자인 영국의 락그룹 롤링스톤즈의 리드 싱어 믹 재거(71)와의 인터뷰가 7월21일 뉴욕의 맨다린 오리엔탈 호텔서 있었다. 반세기가 넘도록 계속하는 정열적인 공연 탓인지 재거는 갈비씨라고 할 만큼 날씬한 몸매에 건강해 보였는데 비록 얼굴에 주름은 갔지만 70세(7월26일로 71세)라곤 믿어지지 않을 정도로 젊어 보였다. 재거는 액센트가 있는 다소 굵은 음성으로 위트와 유머를 구사해 가면서 질문에 답했다. 그는 신이 나면 가성과 함께 연기를 하듯 커다란 제스처를 써가면서 거침없이 질문에 답했는데 자신의 사생활에 대해선 함구했다. 사람이 아주 명랑했는데 자신의 농담에 자기도 우습다는 듯이 눈을 가늘게 뜨고 그의 트레이드마크인 큰 입을 활짝 벌리고“하 하”하면서 웃었다. 재거는 최근에 본 영화 중 봉준호의‘설국열차’를 감동 깊게 봤다고 찬양했다.  

―영화에서 묘사됐듯이 당신이 21세 때 샌타모니카의 시빅센터에서 TV 쇼에 나왔을 때 제임스 브라운이 당신에 앞서 노래를 불렀는데 그 일을 기억하는가.
“물론이다. 그러나 난 이미 그 전에 브라운을 만났다. 그가 뉴욕의 아폴로 극장에서 공연했을 때 만나 시간을 함께 보냈다. 난 샌타모니카에서의 공연 내용을 생생히 기억한다. 그 때 난 21세여서 무서울 것이 없었다.”

―제임스 브라운이 당신의 삶에 어떤 영감을 주었는가.
“그는 위대한 가수였다. 작곡과 노래 해석에도 재주가 뛰어났지만 그가 내게 큰 영향을 준 것은 공연자로서였다. 그는 무대 공연자로서 엄청난 에너지를 지녔었는데 나는 그가 자신의 100%를 주면서 춤을 추고 청중을 희롱하고 사로잡는 무대 매너에 늘 경탄했었다. 그리고 그는 늘 새로운 것을 추구했다. 난 여러 면에서 그에게 감탄했었다.”

―영화의 제작자로서 브라운의 본질을 제대로 표현하기 위해 어떤 노력을 했는가.
“우선 중요한 것은 좋은 각본이었다. 우리의 각본은 훌륭했지만 난 몇 군데를 수정했다. 진행속도를 빨리하고 또 여러 인물들을 한 사람으로 융합시키기 위해서다. 내가 가장 원했던 것은 사람들이 비록 결함은 있지만 브라운이라는 인물에게 어떻게 하면 빨려들 수가 있는가하는 것이었다. 그리고 연기와 영화에 쓸 노래와 공연장면의 편집과 브라운의 주변인물 등에도 무척 신경을 썼다.”

―제임스 브라운이 가수로서 좌절감을 느꼈듯이 당신도 그런 경험을 했는가.
“아니다. 난 그런 과정을 거치진 않았다.”

―실제 삶에서 누군가를 필요로 하는가.
1964년 샌타모니카 시빅센터 공연 때의 제임스 브라운(왼쪽)과 믹 재거.
“내 개인 얘기는 하고 싶지 않다.”

―당신도 브라운처럼 전설적 인물인데 누군가 당신에 관한 영화를 만든다면 당신의 어떤 점을 다루지 않기를 바라는가.
“이 영화는 기록영화가 아니어서 브라운의 삶의 중요한 부분과 흥미 있는 부분을 부각시키려고 했다. 부정적인 면도 다뤘지만 그것을 너무 강조하려고 하지는 않았다. 누군가 나에 관한 영화를 만든다면 지나치게 부정적인 점을 강조하지 않기를 바란다. 너무 부정적인 면을 부각시키면 고약한 영화가 되고 말 것이다.” 

―제임스 브라운은 부모에게서 버림을 받았는데 아버지로서 당신은 당신의 아이들의 삶에 어떻게 개입하는가.
“브라운은 부모로부터 버림받고 색주가 포주인 아주머니 밑에서 자랐다. 흥미 있는 경험이지만 내 아이들과 손자들에게 권할 일은 아니다. 난 브라운과는 약간 다른 어린 시절을 보냈다. 그것에 감사한다. 받침이 든든한 어린 시절은 매우 중요한 것이다. 부모로서는 늘 자기 아이들을 돌보고 또 함께 있는 것이 중요한 일이다. 브라운은 그런 사랑을 못 받았지만 그는 이것을 극복했다. 그는 생존을 위한 진취성을 지닌 사람으로 자신의 재능을 꽃 피움으로써 어두운 과거를 극복한 사람이다.”

―제임스 브라운의 영화는 먼저 제작자 브라이안 그레이저(‘아폴로’ ‘뷰티풀 마인드’)가 10여년간 만들려고 벼르다가 영화화 판권을 잃고 당신에 판권이 넘어갔는데 그 과정에 대해서 말해 달라.
“브라이안이 제임스 브라운이 살았을 때 영화를 만들려고 시도했지만 브라운이 하도 요구하는 사항이 많고 변덕이 심해서 성공하지 못했다. 브라운이 죽고 나서도 그의 자식을 비롯한 유가족이 너무 많아서 서로들 다투는 바람에 역시 만들지를 못했다. 그런 차에 내 친구이자 사업 동료로 브라운의 열렬한 팬이자 그에 관한 백과사전식 지식을 지닌 피터 애프터만이 브라운 유족을 찾아가 믹 재거가 브라운의 영화를 만들면 어떻겠느냐고 제의, 허락을 받았다. 그리고 피터는 내게 찾아와 제임스 브라운의 기록영화를 만들 의향이 있느냐고 물었다. 그래서 내가 극영화로 만들겠다고 대답했다. 그리고 난 브라이안이 오랜 전부터 브라운에 관한 영화를 만들려고 했다는 것을 잘 알아 그에게 가서 함께 만들자고 말했다.”

―당신은 칠순에도 공연을 계속하고 있는 부지런한 사람인데 앞으로도 계속할 것인가.
“나는 이 여름과 오는 가을에도 공연을 한다. 언제 중단할지 나도 모른다. 여하튼 나는 아직도 앞으로 나아가고 있는 중이다,”

―지금의 당신이 있도록 만든 젊었을 때의 결정적 계기는 무엇인가.
“나의 부모는 내가 쇼 업계에 종사하는 것을 원치 않았다. 왜냐하면 그것은 직업이 아니기 때문이다. 결정적 계기라 한다면 내가 대학을 중퇴한 것이다. 나는 주말만 로큰롤을 노래하는 대신 일주 내내 노래하고 싶어서 대학을 중퇴했는데 그것이 매우 성공했고 또 음반도 냈다. 대학 중퇴가 내겐 인생의 큰 전환점인 된 것이다.”

―예술가의 정치참여를 어떻게 생각하는가.
“아주 좋은 일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그러자면 먼저 예술가들은 자기가 말하는 것이 확실히 무엇인지를 알아야 한다. 예술가들은 늘 자기가 사는 세상을 반영해 왔다. 그것은 그들의 직무이다.”

―당신도 제임스 브라운처럼 공연할 때 전신을 움직이면서 노래 부르는데 브라운에게서 영향이라도 받았는가.
“그가 내게 큰 영감을 준 것이 사실이다. 내게 있어 전신을 움직이면서 노래한다는 것은 매우 중요하다. 그러나 난 브라운처럼 두 다리를 완전히 벌려 주저앉는 동작은 할 수가 없다. 육체적 활동은 공연의 한 부분이다. 내가 할 수 있는 한은 계속할 것이다.”

―당신의 섹스어필은 어디서 오는가.
“그것은 타고난 것이라고 본다. 그러나 배울 수도 있다. 난 많은 가수들로부터 그들이 어떻게 청중의 분위기를 감 잡아 거기에 부응하는 공연을 하는가를 보고 배웠다. 청중과의 좋은 상호교류가 중요한데 제임스 브라운은 이에 능한 사람이었다.”

―곧 다가오는 생일을 어떻게 보낼 것인가.
“현재 파티를 준비 중이다. 규모가 어떨지는 모르겠으나 춤추고 재미있게 노는 파티가 될 것이다.”

―당신이 최근 공연한 쇼 중 가장 인상에 남는 것은 어느 것인가.
“2,000여년 전에 지은 이탈리아의 서커스 막시머스 야외극장에서 가진 공연이다. 진짜 흥분되는 멋있는 쇼였다. 그리고 오래 전에 가진 리우데자네이루 공연도 즐거웠다.”

―앞으로 하고 싶은 일이 무엇인가.
“그것은 있어도 여기서 밝힐 수가 없다. 단 하나 말하고 싶은 것은 나는 이 영화를 만든 것이 기쁘고 또 좋은 경험이었다. 난 현재 마틴 스코르세지와 함께 뉴욕에서 HBO-TV 시리즈를 찍고 있다.”    

―미국의 어떤 음악 장르로부터 영향을 받았는가.
“컨트리/블루스다. 내가 아주 어렸을 때 나는 TV로 공연차 영국에 온 가수들의 가스펠에 탐닉했었다. 10대가 돼서는 극장에서 노래를 들었는데 대부분 포크송이었다. 나는 리틀 리처드에게서 많은 것을 배웠다. 그는 내 무대공연 스타일에 많은 영향을 준 가수다.”

―인상 깊게 본 영화들은 무엇인가.
“10대 땐 쿠로사와의 영화를 즐겼다. 난 자신을 지적으로 생각해 이런 영화들을 봤는데 내가 처음 본 외국어 영화 중 하나가 폴란스키의 ‘물속의 칼’이다. 우린 그 때 학교에 영화클럽이 있어 거기서 그런 영화들을 봤다. 이들 외국어 영화와 함께 그 당시 인기 있던 영국 영화들로부터도 많은 영향을 받았다. 광적인 팬은 아니었지만 어릴 때 꽤 많은 영화를 봤다.”

―최근에 본 영화 중 가장 깊은 감동을 받은 영화가 무엇인가.
“대중적 영화로는 리들리 스캇의 영화를 좋아한다. 가장 최근 본 영화 중 정말 훌륭하다고 느낀 것은 ‘설국열차’다. 난 보통 이런 종류의 영화를 안 좋아하는데 ‘설국열차’는 정말로 재미있게 봤다.”                                                     <한국일보  편집위원/hjpark1230@gmail.com>


겟 온 업(Get on Up)

천재 음악가 제임스 브라운의 삶 포괄적 조명


제임스 브라운(채드윅 보즈만)이 무대에서 열창하고 있다.

‘소울의 대부’ 제임스 브라운의 가수와 개인으로서의 파란만장한 삶을 힘차게 다룬 전기영화로 엉덩이가 절로 들썩거려지는 흥겨운 음악과 노래 그리고 브라운 역의 채드윅 보즈만의 기고만장한 연기로 인해 마치 열기를 내뿜는 공연장에 서 있는 듯한 흥분감을 느끼게 된다.
1930년대 조지아주 산속에서 가난하게 자란 어린 시절부터 민권운동 기간에(그는 백악관에서 린든 존슨을 만난다)의 생애 절정기를 거쳐 브라운이 60대가 될 때까지의 삶을 과거와 현재를 오가며(약간 혼란스럽다) 포괄적으로 다뤘다.
케이프를 걸친 요란한 의상과 하늘 높이 치솟은 헤어스타일 그리고 양 다리를 벌려 주저앉는 동작으로 유명한 브라운은 굉장히 복잡한 성격의 완벽주의자로 철두철미한 일벌레였는데 이로 인해 그와 가까운 주위사람들마저 그를 멀리했다.
브라운은 실제 자신보다 훨씬 큰 인물로 아내를(세번의 결혼과 혼외정사로 후손이 굉장히 많다) 구타하고 약물을 남용했는데 이 영화는 이 부분을 위생 처리한 듯이 생략하고 있다. 영화의 제작자 중 한 사람이 락그룹 롤링 스톤즈의 리드싱어 믹 재거다.
브라운은 어렸을 때 어머니(바이올라 데이비스)로부터 버림받은 뒤 아버지마저 그를 버려 사창가 포주인 아주머니(옥테이비아 스펜서) 밑에서 자란다. 브라운의 내면에 있는 음악적 특질을 일깨워 준 것은 그가 어렸을 때 교회에서 들은 가스펠 음악이다.
천재적 음악가였던 브라운은 처음에 아마추어 가수인 리틀 리처드가 노래하는 싸구려 술집에서 노래솜씨를 뽐내 리처드로부터 본격적인 가수가 되라는 조언을 받는다. 그리고 페이머스 플레임이라는 그룹을 조직해 부른 노래가 팬들의 반응을 받으면서 브라운의 인기도 서서히 상승한다.
브라운은 음악적 직관력과 해석에 뛰어났을 뿐 아니라 그룹경영과 상술에도 능했는데 페이머스 플레임의 음반을 낸 회사가 브라운을 그룹의 리드싱어로 부각시키면서 그룹은 해체되고 브라운은 이후 솔로가수가 된다.
에너지가 넘쳐흐르는 무대매너와 청중을 사로잡을 줄 아는 카리스마 그리고 뛰어난 가창력으로 인해 브라운은 당대 최고의 가수가 된다. 브라운의 주변인물 가운데 중요한 두 사람이 백인 매니저 벤 바트(댄 애크로이드가 잘 한다)와 그의 백업싱어이자 친구요 조언자인 바비 버드(넬산 엘리스가 길길이 날뛰는 보즈만의 연기와 대조적인 차분한 연기를 뛰어나게 한다). 그러나 브라운의 독불장군식 성격 때문에 바비마저 브라운의 파리 공연 후 브라운을 떠난다.  
이런 브라운의 가수로서의 삶과 함께 민권운동과 백인들의 차별 등이 묘사되는데 마틴 루터 킹이 암살된 당일 저녁 시장의 만류 권고에도 불구하고 보스턴가든에서 브라운이 감행한 쇼 장면이 감동적이다. 
음악이 영화를 추진력 있게 밀고 가는 이 영화는 보즈만(‘42’에서 재키 로빈슨 역)의 대담무쌍하고 으스대는 듯한 연기가 찬탄스럽다. 그는 브라운과 생김새가 닮은 데라곤 없는데도 쇼맨십과 카리스마를 구사해 노래하고(영화에 나오는 노래는 그와 브라운의 노래를 섞었다) 춤추고 마치 기계체조 하듯이 전신을 움직여가면서 보는 사람의 혼을 빼놓는다. 상감이다. 
브라운의 두 번째 아내 디디로 나오는 질 스캇을 비롯해 많은 배우들이 다 잘한다. 테이트 테일러(‘헬프’) 감독. PG-13. Universal. 전지역.  ★★★★(5개 만점) 
<한국일보  편집위원/hjpark1230@gmail.com>


칼바리(Calvary)

다크 코미디로 풀어가는 종교적 메시지 감동적


제임스 신부와 딸 휘오나가 해변 언덕 위에서 사랑으로 화해를 하고 있다.

기차게 잘 만든 심오하고 우습고 종교적이며 또 세속적인 다크 코미디이자 탐정물로 궁극적으로 엄격하고 사색에 잠기게 만드는 종교영화다. 
‘갈보리’라는 제목에서 알 수 있듯이 주인공인 가톨릭신부는 남이 저지른 죄를 대속하는 예수라고 하겠는데 이 역을 덩지가 크고 고목의 등걸 같은 얼굴을 한 브렌단 글리슨이 완벽하게 해낸다. 상감이다.
믿음의 영화이자 가톨릭 신부들의 아동에 대한 성적학대에 관한 고발이며 작은 마을 사람들의 편협과 부정과 죄에 대한 신랄하게 우스운 고찰이기도하다. 이 작은 마을은 믿음을 일찌감치 잃어버린 타락한 이 세상의 축도라고 하겠다.
아일랜드의 한 작은 마을의 신부 제임스(글리슨)에게 고백성사를 하는 남자가 “내가 어렸을 때 신부로부터 당한 성적학대에 대한 복수로 죽은 그 신부 대신 당신을 오늘부터 1주일 후인 다음 일요일에 죽이겠다”고 말한 뒤 떠난다. 여기서부터 미스터리와 함께 믿음과 용서의 이야기가 시작된다.
제임스는 신부가 되기 전 결혼을 해 장성한 딸 휘오나(켈리 라일리)를 둔 과거 알콜중독자로 박식하고 믿음이 강하나 상소리도 서슴없이 내뱉는 세속적인 신부다. 그는 이제 성당에 나오면서도 믿음에 대해선 무관심한 마을 사람들을 하나씩 만나 그들과 믿음과 일상사에 관해 대화를 나누면서 자기에게 살인예고를 한 사람을 찾는다. 이 과정이 아주 상세하고 재미있게 묘사되는데(물론 말이 많다) 앙상블 캐스트가 호연한다.
아내(올라 오루크)가 동네 흑인 미캐닉(아이작 디 방콜레)과 바람을 피우는 정육점 주인 잭(크리스 오다우드), 냉소적이요 논쟁적인 의사 프랭크(에이단 질렌), 철저한 무신론자인 형사반장 스탠턴(게리 라이던), 가족을 비롯해 희망을 잃은 백만장자 마이클(딜란 모란), 자살로 삶을 마치려는 노 미국인 작가(M. 에멧 월쉬) 및 폭력성을 억제치 못해 군에 입대하겠다는 마일로(킬리안 스캇) 등이 그들이다.
여기에 자살시도를 한 휘오나가 아버지를 찾아오면서 제임스 신부의 과거가 드러나고 그의 회한과 후회와 함께 딸과의 화해가 절경인 해안 마을을 배경으로 이야기 된다. 그리고 날짜는 일요일을 향해 하루하루 넘어간다. 일요일 제임스 신부는 해변으로 내려간다.  
운명적인 기운이 가득한 영혼에 관한 얘기로 서두르지 않고 천천히 진행되는데 유머와 연민과 절망과 희망과 함께 희생과 용서로 매듭을 짓는다. 글리슨의 묵직한 체구가 풍기는 육중감과 깊이 패어진 인상과 함께 영적인 심오한 연기가 감동적이다. 바다와 파도 그리고 거칠게 아름다운 내륙의 경치를 명암을 잘 살려 찍은 촬영과 음악도 훌륭하다. 
성인용. 일부극장.  ★★★★(5개 만점)       <한국일보  편집위원/hjpark1230@gmail.com>



‘위대한 환상’


구약시대부터 싸움이 끊이지 않고 이어져온 이스라엘 땅에서 지금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무장단체인 하마스 간에 치열한 교전이 계속되고 있다. 꼬마 때부터 전쟁놀이를 즐기듯이 인류의 역사는 전쟁의 역사라고 해도 되겠다. 7월이 소위 ‘위대한 전쟁’이라 일컫는 제1차 세계대전 발발 100주년의 달이라는 점을 생각하면 이런 정의는 매우 타당하게 여겨진다.
나는 현 교전이 있기 직전 긴장감이 감도는 이스라엘을 다녀왔다. 한 저녁식사 자리에서 팔레스타인계 이스라엘 시민 청년과 대화를 나눌 기회가 있었는데 그 때 이 청년으로부터 국가 없는 민족의 허무감과 점령자에 대한 공포를 느낄 수 있었다. 그는 지금 과연 어떤 심정일까.
이번 전쟁의 근인은 하마스가 이스라엘인 10대 3명을 납치, 살해한데 있지만 원인은 땅 싸움이다. 2차 대전 후 오랫동안 살아오던 땅에서 쫓겨난 팔레스타인인들은 현재 이스라엘 점령지인 웨스트뱅크와 가자지구에서 난민으로 살고 있다. 이스라엘의 통치를 받는 이 두 지역은 콘크리트벽과 철조망으로 둘러싸인 지구 최대의 야외감옥으로 팔레스타인인들은 그 안의 무기수들이나 마찬가지다.
이스라엘인들은 이 땅이 아브라함 때부터 자기들의 것이라고 주장하는 반면 팔레스타인인들은 이스라엘인들이 남이 살던 안방에 무단 침입해 주인을 몰아내고 자기들이 주인 행세하고 있다고 주장한다.
양자 간 대결은 솔로몬의 지혜로도 풀기가 어려운데 가장 합리적인 해결책인 ‘두 국가체제’.에 대해 나의 할리웃 외신기자협회 동료회원으로 팔레스타인계 이스라엘 시민인 샘은 “내 생전에는 턱도 없는 일”이라고 말했다.
쌍방교전에서 막대한 피해를 입고 있는 측은 하마스의 본거지인 가자지구 주민들. 벌써 사망자가 1,000여명이 넘는데 그 중에 어린 아이들이 많다. 이것은 전쟁이 아니라 살육이다. 
기사도 정신이 살아 있는 전쟁이란 아마도 영화에서나 찾아볼 수 있을 것이다. 그 대표적 영화가 반전영화의 금자탑인 프랑스 영화 ‘위대한 환상’(Grand Illusionㆍ1937ㆍ사진)이다. 
나치 선전상 요젭 괴벨스가 ‘시네마의 적 제1호’로 지목한 작품으로 감독 장 르놔르(화가 오귀스트 르놔르의 아들)는 “이 영화는 정치적 경계를 초월한 인류 형제애의 선언”이라고 말했다. 1차 대전 때 독일군 라우펜슈타인 대위(에리히 폰 슈트로하임)의 전투기에 의해 격추돼 포로가 된 프랑스군 봐디에 대위와 마르샬 소위(장 가방)를 중심으로한 적과 아군 간의 인간관계와 성격묘사에 치중한 전투장면 없는 아름다운 전쟁영화다. 
전쟁에 대한 강력한 기소로 르놔르는 독불 중 어느 한편을 들지 않고 인간애를 얘기하는데  우아한 귀족풍의 영화로 영화가 깊은 영혼을 지녀 크게 감동하게 된다. 볼만한 것은 오스트리아인 배우이자 감독이요 제작자인 폰 슈트로하임의 자태와 연기. 적마저 인간으로서 깍듯이 예의를 갖춰 대접하는 그의 모습에서 기사도 정신이 풍겨 나온다.
반전영화의 또 다른 걸작은 루이스 마일스톤이 감독한(오스카상 수상) ‘서부전선 이상 없다’(All Quiet on the Western Frontㆍ1930)이다. 독일의 반전작가 에리히 마리아 레마르크가 1차 대전에 참전, 부상을 입었던 자기 경험을 바탕으로 쓴 동명소설이 원작으로 전쟁의 공포와 참상을 뼈마디가 쑤시도록 사실적으로 그렸다. 
교사의 열변하는 ‘군복무의 영광과 조국 구원’에 감동한 대입 예비교생들이 자원입대해 서부전선에 투입되면서 겪는 전쟁의 단말마적인 참혹함을 통해 전쟁의 무자비성을 통렬히 고발하고 있다.
레마르크는 또 다른 반전소설 ‘살 때와 죽을 때’를 쓰기도 했다. 이 책은 후에 주멕시코 미국대사를 지낸 존 개빈 주연으로 ‘사랑할 때와 죽을 때’라는 제목의 영화로 만들어졌다.
‘위대한 환상’과 ‘서부전선 이상 없다’ 못지않은 반전영화가 스탠리 큐브릭이 감독한 ‘영광의 길’(Paths of Gloryㆍ1957)이다. 제1차 세계대전을 배경으로 전쟁의 광기를 웅변적으로 고발한 작품으로 냉소적인 인간성 고찰의 영화이기도 하다. 전쟁 미치광이인 프랑스 장군의 자살임무나 다름없는 명령을 어겨 군재에 회부된 3명의 병사를 변호하는 커크 더글러스의 치열한 연기가 눈부신 명작이다.
게리 쿠퍼가 오스카 주연상을 탄 ‘사전트 요크’도 제1차 세계대전을 다룬 명화다. 테네시주 촌뜨기로 신심이 돈독한 평화주의자 알빈 요크가 마지못해 군에 입대해 혁혁한 전공을 세운 실화다.  
나는 얼마 전 현재 상영 중인 전쟁 액션영화 ‘허큘리스’에 주연한 레슬러 출신의 드웨인 잔슨과의 인터뷰에서 그에게 “당신이 만약 허큘리스처럼 반신반인이라면 이 세상에서 전쟁을 없애기 위해 무슨 일을 하겠느냐”고 물었다.
잔슨은 이에 대해 “먼저 미소와 악수이나 그래도 안 통하면 주먹”이라며 크게 웃었다. 말 안 듣는 놈에겐 주먹밖에 없다는 말인데 이러니 세상에 전쟁이 끊일 날이 있겠는가.  
                                                      <한국일보  편집위원/hjpark1230@gma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