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이야기

2014년 5월 12일 월요일

셰프 (Chef)

고급식당 셰프가 푸드트럭을 차리는데…


퍼시와 마틴과 셰프 칼과 그의 전처 이네스(왼쪽부터)가 음식주문을 받고 있다.

배우와 감독과 각본가를 겸한 재주꾼 코미디언 존 홰브로의 온순한 가족용 코미디 드라마로 시각과 후각과 미각을 자극하는 음식이 틈만 나면 화면을 장식해 영화 내내 군침을 삼키다가 영화가 끝나자마자 식당으로 달려가게 만드는 요리와 음식영화이기도 하다.
기자도 영화가 끝나자마자 함께 영화를 본 스웨덴 동료 기자와 함께 식당으로 직행, 맥주와 칼라마리를 시켜 먹었다. 선 보이는 음식 중에는 한국식 매운 오징어도 있고 디저트로는 고기 BBQ의 창업자인 로이 최가 개발한 ‘베리즈 앤 크림’도 있다.    
로드무비이기도 한 영화로 다채로운 요리만큼이나 대륙을 횡단하는 경치도 좋은데 가족관계 특히 부자지간의 관계를 강조했다. 영화에서 주인공 셰프가 음식 비평가를 저주하면서 강렬히 비판하는 장면이 있는데 이는 어쩌면 홰브로가 2011년에 감독한 해리슨 포드가 나온 ‘카우보이와 외계인’이 비평가들의 혹평을 받고 흥행서 망한 것에 대한 앙갚음인지도 모른다. 간혹 플롯에 구멍이 나고 너무 단맛이 나긴 하지만 온 가족이 즐길 수 있는 초호화 앙상블 캐스트가 나오는 알록달록한 영화다. 
LA의 고급식당의 셰프 칼(홰브로)은 창의적인 메뉴 개발에 매달리는 사람인데 이름난 음식비평가 램지(올리버 플랫)가 오는 날 주인(더스틴 호프만)의 지시로 구태의연한 음식을 제공했다가 악평을 받는다. 이에 화가 난 칼은 다시 식당을 찾아온 램지에게 온갖 상소리를 퍼붓는데 이 장면이 트위터를 타고 사방팔방으로 퍼지면서 칼은 일약 유명 인사가 되고 식당에서 해고당한다.
이런 칼에게 늘 자기 메뉴를 마음대로 선보일 수 있는 음식트럭을 운영하라고 조언하는 돈 많은 전처 이네스(소피아 베르가라)가 마이애미의 친정집에 10세난 아들 퍼시(엠제이 앤소니)와 함께 가는데 동행하자고 제의한다. 아들을 극진히 사랑하는 칼은 이에 마이애미로 가서 쿠바 샌드위치의 맛에 빠지고 이네스의 전 남편 마빈(로버트 다우니 주니어)의 호의로 구닥다리 음식트럭을 선물 받아 아들과 함께 이를 개조한다.
주 메뉴는 쿠바 샌드위치인데 주방에 동참하는 사람이 퍼시와 칼이 셰프로 있던 식당의 보조 마틴(존 레구이사모). 셋은 트럭을 몰고 뉴올리언스와 오스틴을 거쳐 LA로 향하는데 퍼시가 아버지의 메뉴를 트위터로 날리면서 이미 소셜네트웍으로 유명해진 칼의 트럭 앞은 손님들로 장사진을 친다. 끝이 너무 조작적으로 말끔히 매듭을 짓는데 스칼렛 조핸슨이 칼이 해고당하기 전의 식당 리셉셔니스트이자 칼의 애인으로, 앤디 가르시아가 마이애미의 경찰로 나와 웃긴다.
R. Open Road. 아크라이트, 센추리 15, 랜드마크. ★★★(5개 만점)
<한국일보  편집위원/hjpark1230@gmail.com>


이웃(Neighbors)

옆집 대학생들의 파티 소음으로 큰 싸움


맥과 켈리 부부가 테디(왼쪽)를 찾아와“좀 조용히 해달라’고 부탁한다.

더럽고 음탕하고 추하고 시끄럽고 상스럽고 고약한 젊은이들 영화로 10대의 우상이었던 잭 에프론(툭하면 상체를 벗어 제치고 근육미를 자랑한다)이 비로소 성인 배우로 우뚝 선 코미디다. 이런 영화에 능통한 우유 살이 토실토실 찐 세스 로건이 에프론의 옆집 원수로 나와 둘이 욕설과 육박전을 하면서 난리법석을 떠는데 여기 합류하는 것이 남편 로건 못지않게 입이 건 아내로 나오는 로즈 번. 
처음부터 끝까지 F자 상소리와 남자의 성기와 여자의 퉁퉁 부은 유방과 섹스와 나체 그리고 콘돔과 대마초와 술과 파티와 소음으로 화면을 메우는 난장판 코미디로 영화 속 에프론 처럼 대학생 또래들이 쌍수를 들어 환영할 영화다. 얼굴을 찡그리며 봤지만 재미없다고 할 수는 없다. 빅히트할 것이다. 
갓난 여아를 둔 월급쟁이 맥(로건)과 그의 호주 태생 아내 켈리(번)는 있는 돈 다 털어 교외에 집을 사 이사한다. 그런데 이들의 옆집에 대학교 4학년생들이 집단 거주하려고 이사 오면서 파티 소음문제로 양가 사이에 전쟁이 일어난다.
이것이 얘기의 전부다. 이 영화는 무슨 플롯이 정연하게 서술되는 얘기가 있는 영화가 아니라 악을 쓰면서 욕질을 해대고 동네가 떠나갈 듯이 파티를 하면서 터무니없는 광란의 에피소드를 엮어 놓은 것이다. 
대학생 동아리 델타 사이의 리더로 놀자 판인 테디(에프론)와 그의 친구로 똑똑한 피트(데이브 프랭코-제임스 프랭코의 동생)와 일단의 그룹은 맥의 옆집으로 이사 오자마자 매일 같이 파티를 연다. 이에 죽어나는 것이 맥과 켈리.
그래서 둘은 조용히 해 줄 것을 요구하기 위해 테디를 찾아갔다가 테디의 초청으로 파티에 참석, 젊은 시절로 돌아가 대마초 태우고 술 마시고 춤추면서 신나게 즐긴다. 영화는 다시는 청춘으로 돌아갈 수 없는 어른이 돼버린 부부의 청춘 동경과 함께 얼마 안 있으면 이 둘처럼 되고 말 테디의 성장 공포를 다루었다. 그리고 맥 부부와 테디는 친구가 된다.
그러나 테디네 파티가 도저히 제어할 수 없을 정도로 소음 난장판이 되면서 맥은 견디다 못해 경찰을 부른다. 이로 인해 테디와 맥은 원수지간이 되고 서로 상대에게 해코지를 하기 시작한다. 맥의 테디에 대한 복수작전에 동참하는 것이 맥의 철딱서니 없는 친구(아이크 바린홀츠).
에프론이 사악하면서도 천진한 연기를 잘 하고 로건과 번의 콤비와 연기도 좋다. 리사 쿠드로가 테디의 대학 학장으로 나온다. 대학을 쫓겨난 테디가 벗은 상체를 자랑하며 애버크롬비 & 피치 가게 앞에서 호객행위를 하는 것을 발견한 맥이 자기 역시 상체를 벗은 뒤 비곗살을 드러낸 채 테디와 함께 호객행위를 하는 마지막 장면이 웃긴다. 
R. Universal. 전지역.   ★★★(5개 만점)  <한국일보  편집위원/hjpark1230@gmail.com>


“마”



어머니는 공기다. 늘 사방에 가득해 있는지 없는지 잘 모르고 살지만 없으면 못 사는 대기다. 11일이 어머니날인데 그가 곁에 없으니 산소가 모자라는 듯이 가슴이 막힌다. 4일 예배시간에 찬송가 ‘나의 사랑하는 책’을 부르면서 독실한 기독교 신자였던 어머니가 생각나 눈시울이 붉어졌었다.
‘나의 사랑하는 책 비록 헤어졌으나 어머님의 무릎 위에 앉아서 재미있게 듣던 말 그 때 일을 지금도 내가 잊지 않고 기억합니다.’ 나의 어머니도 나를 어릴 적에 자기 무릎 위에 앉혀놓고 쓰다듬어 주셨다. 그 모습은 성모 마리아가 아기 예수를 자기 무릎 위에 앉혀놓고 포옹하듯이 성스러운 것이다. 모든 어머니는 성모다.
육체적으로 여자는 남자보다 연약할지 모르나 내성이 강하기론 남자가 여자를 쉽게 못 따른다. 난 늘 여자가 남자보다 한 수 위라고 생각하는데 그것은 아마도 여자의 근본인 모성 때문일 것이다.
어머니는 구태여 이름이 없어도 좋다. 어머니는 그냥 어머니이기 때문이다. 존 스타인벡이 퓰리처상을 받은 ‘분노의 포도’의 조드 일가의 기둥인 어머니도 이름이 없다. 그냥 ‘마’(Ma)다. 글에서 마는 덩지가 크고 뚱뚱한 여자로 묘사되는데 마는 그 몸집만큼이나 결단력이 강하고 어떤 역경 속에서도 희망을 잃지 않는 여자다.
경제공황시대 오클라호마의 농토를 잃고 젖과 꿀이 흐르는 ‘약속의 땅’인 캘리포니아로 고물차를 타고 온 가족이 남부여대해 이주하는 과정에서 일어나는 드라마의 주인공은 이상주의자인 탐이다. 그러나 온갖 난관 하에서도 막상 이 ‘오키즈’ 대가족을 결집시키는 초석이자 뿌리는 마다.
마의 모습은 존 포드가 감독한 동명영화에서 제인 다웰에 의해 강하면서도 인자한 구원의 어머니상으로 성스럽게 묘사된다. 정든 땅을 떠나기 전 회한이 가득한 표정의 마가 때가 잔뜩 묻은 거울을 보면서 고이 간직해 두었던 귀고리를 양쪽 귀에 대어보는 장면(사진)에서 미국 민요 ‘홍하의 골짜기’가 흘러나온다. 강렬한 장면으로 다웰이 마역으로 오스카 조연상을 탔다. 포드는 감독상을 받았다.
마는 불굴의 인간 혼을 지닌 여자로 그의 삶에 대한 지칠 줄 모르는 내성이야말로 모성의 또 다른 형상이다. 마는 마지막에 이렇게 말한다. “그러나 우리는 계속해 올 거야. 우리가 살아가고 있는 사람들이지. 누구도 우리를 쓸어버릴 수 없어. 누구도 우리를 굴복시킬 수 없어. 우리는 영원히 나아갈 거야. 우리가 사람들이지.” 이런 말은 9개월간 체내에 생명을 잉태했다가 고통 끝에 피붙이를 토해낸 어머니만이 할 수 있는 말이다.
어머니의 무조건적 사랑은 멜로드라마 영화의 좋은 소재가 되고 있다. 딸의 행복을 위해 자신의 모든 것을 희생하는 어머니의 드라마 ‘스텔라 달라스’가 그 대표작이다. 바바라 스탠윅이 열연하는 이 신파극의 마지막 장면은 눈물 없이는 못 본다. 우리 어머니도 스텔라 달라스 못지 않으셨다.
조운 크로포드가 오스카 주연상을 탄 ‘밀드레드 피어스’도 가정주부에서 웨이트리스를 거쳐 식당 주인으로 성공하기까지 죽을 고생을 하면서 딸(앤 블라이스)을 키우는 어머니의 악착같은 생활력과 모성애를 그린 영화다. 그런데 배은망덕한 딸이 어머니의 애인을 가로채면서 비극이 일어난다.
이 밖에도 라나 터나가 주연하는 ‘인생의 모방’과 셜리 매클레인이 나오는 ‘애정의 조건’ 및 ‘조이 럭 클럽’ 등도 좋은 모정에 관한 영화들이다. 한국 어머니들도 외국 어머니 못지않게 모성애가 강해 김혜자는 ‘마더’에서 살인범인 외아들의 죄를 감추려고 별의별 수단을 다 쓴다. 김혜자의 연기가 뛰어나 LA영화 비평가협회(LAFCA)에 의해 최우수여우로 뽑혀 본인이 상 받으러 LA까지 왔었다. 홀어머니의 외아들 사랑이 꼭 역시 혼자이셨던 우리 어머니의 외아들인 나에 대한 사랑 같아서 난 영화를 보면서 남 다른 감회에 젖었었다.
죽어가는 늙은 어머니와 젊은 아들의 얘기를 감정 가득히 그린 알렉산더 소쿠로프의 ‘어머니와 아들’은 영적이요 심오한 모자관계의 드라마로 촬영이 몽환적이다. 어머니로부터 받은 사랑을 되돌려주는 아들의 아름다운 작품이다.
나쁜 엄마도 있다. 그 중에서도 악명 높은 것이 페이 더나웨이가 나온 ‘마미 디어리스트.’ 할리웃 황금기 수퍼스타였던 조운 크로포드와 그의 양녀 크리스티나의 실화로 크로포드가 어린 딸을 철사 옷걸이로 패는 장면이 유명하다.
11일에는 제리 베일이 부르는 ‘포 마마’(For Mama)라도 들어야겠다. “시간이 지나도 나의 눈은 젖어요. 우리가 ‘아베 마리아’를 부르는 것을 듣기 좋아하시던 어머니를 기억하렵니다.  그러나 어머니가 날 위해 해주신 것에 비하면 그것은 여전히 너무 작은 것 같아요”라며 죽은 어머니를 그리워한다. 해피 마더스 데이!   <한국일보  편집위원/hjpark1230@gmail.com>


2014년 5월 6일 화요일

오손 웰즈의 대표작 감상

6월 7일까지 매주 토요일 LACMA 빙극장
분실된 줄 알았던 `투 머치 잔슨' 포함 걸작 `시민 케인' 도


‘상하이에서 온 숙녀’

아카데미는 3일부터 6월7일까지 매주 토요일 LA카운티 뮤지엄의 빙극장(윌셔와 페어팩스)에서‘이센셜 오손 웰즈’라는 제목 하에 이 천재 영화인이 감독한 대표작들을 상영한다. 이번 시리즈에서 특이한 것은 그동안 분실된 줄 알았던‘투 머치 잔슨’(Too Much Johnsonㆍ1938)의 66분짜리 필름이 상영되는 것. 웰즈가 영화스타일에 혁신을 일으킨‘시민 케인’을 감독하기 3년 전인 23세 때 찍은 이 필름은 그가 속했던 극단 머큐리 디어터가 공연할 윌리엄 질렛의 3막짜리 동명 소극을 위해 찍은 것이다. 웰즈는 매 막이 시작되기 전 서막식으로 상영하기 위해 4시간 분량의 필름을 찍었고 그 중 66분만이 남아 이번에 복원판으로 처음 일반에게 공개된다. 내용은 바람둥이 남자(조셉 카튼)가 자기 애인의 남편에게 쫓겨 로우어 맨해턴을 사방팔방으로 뛰어 도망 다니는 슬랩스틱 코미디식의 얘기로 사운드트랙이 없어 3일 상영 때 라이브 피아노 연주로 내용을 반주한다. 이 날 상영 때 웰즈의 협조자로 배우인 노만 로이드가 참석한다.

*3일(하오 7시30분)
▲ ‘하츠 오브 에이지’(The Hearts of Age)-웰즈의 첫 영화로 그가 10대 때인 1934년에 찍은 6분짜리 단편영화. ▲ ‘투 머치 잔슨’

*10일(하오 7시30분)
▲ ‘시민 케인’(Citizen Kaneㆍ1941)-웰즈가 25세 때 각본을 쓰고(공동) 주연하고 감독한 영화사상 최고의 걸작. 윌리엄 랜돌프 허스트를 닮은 미 언론계 재벌 케인의 흥망성쇠. 

*17일(하오 7시30분)
▲ ‘위대한 앰버슨 가족’(The Magnificent Ambersonsㆍ1942)-세월의 흐름에 순응하기를 거부하는 한 가족의 드라마. ▲ ‘이방인’(The Strangerㆍ1946)-코네티컷주의 한 작은 마을에 숨어 사는 나치 전범(웰즈)과 이를 쫓는 연방 수사관(에드워드 G. 로빈슨)의 드라마.

*24일(하오 7시30분)
▲ ‘상하이에서 온 숙녀’(The Lady from Shanghaiㆍ1948)-태평양을 항해하는 유람선에 탄 아일랜드인 모험가(웰즈)와 유혹녀(리타 헤이워스) 그리고 이 여자의 남편이 엮는 이색 살인 미스터리로 마지막의 거울의 방의 총격장면이 아찔하게 멋있다. ▲ ‘미스터 아카딘’(Mr. Arkadinㆍ1955)-어두운 과거를 지닌 백만장자(웰즈)가 딸의 구혼자로부터 협박을 받는다. 

*31일(하오 5시)
▲ ‘심판’(The Trialㆍ1962)-이름 없는 나라의 한 남자가 설명되지 않은 범죄의 혐의자로 체포돼 재판을 받는다. 웰즈와 앤소니 퍼킨스, 잔느 모로, 로미 슈나이더 공연. 카프카의 소설이 원작.
▲ ‘악의 손길’(Touch of Evilㆍ1958)-후진 미 멕시코 접경 마을에서 일어난 살인사건을 놓고 멕시코 마약전담 형사(찰턴 헤스턴)와 부패한 미국 형사(웰즈)가 충돌한다. 재넷 리, 마를렌 디트릭, 자 자 가보 공연. 흑백촬영이 뛰어난 걸작 필름 느와르.        

*6월7일(하오 5시)
▲ ‘자정의 차임’(Chimes at Midnightㆍ1965)-셰익스피어의 연극 5개를 엮은 드라마로 웰즈는 팔스탑으로 나온다. 존 길거드, 마리나 블라디, 잔느 모로 공연. ▲ ‘F 포 페이크’(F for Fakeㆍ1974)-가짜에 관한 자유로운 형식의 보고서.
                                                  <한국일보 박흥진 편집위원/hjpark1230@gmail.com>

어메이징 스파이더-맨 2(The Amazing Spider-Man 2)

전기 빨아들이는 괴물과 `타임스퀘어 결투' 


스파이더-맨(왼쪽)이 공중을 비상하며 일렉트로와 격투를 하고 있다.

내가 딱히 앤젤리노가 돼서 그런 것은 아니지만 난 곤경에 처한 뉴요커만 도와주는 스파이더-맨 영화가 이젠 보면서 졸릴 정도로 지루하다. ‘X-멘’ ‘수퍼맨’ ‘아이언 맨’ ‘뱃맨’ 그리고 ‘어벤저스’와 ‘스파이더-맨’ 등 특수효과가 난장판을 이루는 이들 주인공이나 내용 등이 서로 비슷비슷한 영화들을 너무 많이 보다 보니 그게 그것 같은 기시감에 빠진다.
신선하고 독창적이요 새로운 점을 찾아보기가 힘들고 사람만 바꿔가면서 한 얘기 또 하는 식으로 계속해 속편이 나오니 영화평 쓰는 사람으로선 안 볼 수도 없고 참 딱한 노릇이다. 그러나 이 영화에 대해 결론부터 말하자면 스파이더-맨의 팬들은 충분히 즐겁게 볼 수 있는 액션과 모험과 드라마와 로맨스 등을 총망라한 오락작품이다. 121분 상영시간이 좀 길고 너무 많은 내용을 쏟아 넣어 과식한 것 같은 느낌이 들기는 하나 마천루 사이를 훨훨 날면서 정의를 구현하는 마블만화 속의 인물 수퍼맨의 활약을 즐길 만하다. 입체영화다. 
제작비가 무려 2억달러가 들었는데 앞으로 제3편과 4편이 나올 예정. 이 속편이 흥행서 소니가 기대하는 흥행성적을 못 내면 최근 일련의 직원 해고조치를 취한 회사가 다시 해고조치를 내릴 것이라고 익명의 소니 직원이 귀띔해 줬다.
어수룩하고 수줍음을 타는 피터 파커(앤드루 가필드)와 그의 애인 그웬 스테이시(엠마 스톤)의 고교 졸업식으로 시작된다. 둘 다 고등학생이라기엔 너무 늙었는데 특히 나이 30세인 가필드가 원래 틴에이저인 스파이더-맨 역을 하기엔 너무 늙어 10대처럼 찧고 까부는 모양이 어색하다. 그리고 가필드는 늘 울상이어서 비극적 영웅처럼 보이는데다가 카리스마도 부족하다. 여하 간에 그에게 소득이 있다면 전편에서도 공연한 스톤과 실제 애인이 됐다는 점. 그래서인지 둘 간의 콤비는 찰떡궁합이다.
대규모 생명공학연구소인 오스코프의 고급 연구원인 아버지와 어머니의 의문의 죽음 이후 백모(샐리 필드)에 의해 자란 피터는 늘 아버지의 죽음에 대해 의문을 품고 있다. 그밖에는 피터는 스파이더 맨 옷을 입고 뉴욕 하늘을 날아다니면서 악인들을 때려누이고 위기에 처한 뉴요커들을 구해 주면서 시민들로부터 영웅 취급 받는 것을 즐긴다(스파이더-맨이 성격이 상당히 복잡하면서도 코믹하게 그려졌다). 
피터의 또 다른 기쁨은 애인 그웬과의 데이트. 그러나 피터는 자신의 활약에 위험이 너무 많이 뒤따라 그웬을 자꾸 멀리하려 하면서 그웬은 옥스포드대에 들어가기로 작정한다. 그리고도 둘은 다시 만났다 또 다시 헤어졌다 하는데 제3막에 가서 뜻밖의 일이 일어난다.
스파이디가 맞서는 첫 천하대적은 오스코프의 소심한 전기공 맥스로 작업을 하다가 실족해 실험용 전기뱀장어들이 우글거리는 물통에 빠진 뒤 뉴욕시 전체의 전기를 자기 몸에 빨아들일 수 있는 능력을 지니게 된 푸른색의 빛나는 괴물이 된 일렉트로(제이미 팍스). 스파이디와 일렉트로가 밤의 타임스퀘어에서 장시간 벌이는 액션신이 볼만하다.
그런데 스파이디의 적은 하나가 아니라 둘이다. 두 번째 적은 불치병을 앓는 오스코프의 상속자이자 피터의 어릴 적 친구인 해리 아즈본(데인 드핸). 그런데 해리는 스파이더-맨 전편에서 나온 악인 그린 가블린이 입고 공중을 날던 비행 옷을 입고 스파이디와 맞선다.
물론 속편을 예고하고 끝나는데 소니는 기자들에게 제발 영화의 중요한 내용을 누설하지 말아 달라고 신신당부했다. 마크 웹 감독. PG-13. 전지역. ★★★(5개 만점)
                                                <한국일보 박흥진 편집위원/hjpark1230@gmail.com>


벨(Belle)

18세기 영국 노예제 폐지하던 시절 이야기


디도(오른쪽)와 엘리자베스가 함께 피아노를 치고 있다.

일반에게 잘 알려지지 않은 18~ 19세기를 통해 펼쳐지는 영국의 노예제 폐지와 이를 주도한 대법원장 윌리엄 머리 백작과 그가 키운 흑백혼혈의 증손녀 디도의 매우 특별나고 흥미 있는 실화에 허구를 섞어 다룬 의상극으로 귀티가 나는 고급 지적영화다.
내용도 재미있고 앙상블 캐스트의 연기도 훌륭하고 현지 촬영과 의상과 디자인 등 모든 것이 잘 만들어진 준수한 작품이다. 흑인 여류감독 암마 아산테의 두 번째 영화인데 연출력이 차분하고 튼튼하다. 전형적인 시대극이나 주인공 벨처럼 현대 감각이 다소 가미된 좋은 작품이다.
영화는 스코틀랜드의 퍼드셔 스콘 미술관에 소장된 1779년에 그린 벨과 그의 사촌 엘리자베스의 초상화에서 영감을 얻었다. 얘기는 디도 엘리자베스 벨이 소녀 때인 1769년부터 시작돼 결혼 적령기가 될 때까지를 다루고 있다.
디도의 아버지는 영국 해군 제독인 존 린지(매튜 굿)로 디도는 그와 카리브해 국가의 여자 사이에서 출생했다. 존은 딸을 대법원장인 아저씨 머리 백작(탐 윌킨슨)에게 맡기고 떠난다. 머리 백작과 아내(에밀리 왓슨)는 아이가 없어 이미 둘의 친척의 딸 엘리자베스를 딸처럼 키우고 있다. 머리 부부는 처음에는 이 혼혈녀를 어찌 다룰지 몰라 당황하나 곧 디도를 자기들의 친딸처럼 대한다.
디도는 커서 매우 총명하고 독립적이며 할 말 다하는 훌륭한 숙녀(혼혈인 구구 엠바타 로)가 된다. 디도와 엘리자베스(새라 개돈)는 자매처럼 지내지만 디도는 혼혈이어서 외부 손님을 대접하는 식사에는 참석을 못한다. 식사가 끝나고 나서야 손님에게 소개된다. 
이 같은 디도의 역동적인 가족 드라마와 함께 머리가 다루는 노예선 종에 대한 재판이 중요한 플롯을 이루면서 노예해방 문제가 거론된다. 종의 선장과 선원들은 화물 취급하는 아프리카의 노예를 싣고 오다가 142명의 노예를 수장시킨 뒤 귀국해 상품에 대한 보험금을 요구하면서 재판이 열린 것. 머리는 과연 이들 노예들이 인간인가 아니면 화물인가를 결정해야 한다.
한편 시대를 앞서 가는 신여성인 디도는 가난한 목사의 아들로 노예제 폐지에 앞장서고 있는 존 대비니어(샘 리드)를 알게 되면서 둘이 함께 노예제 폐지운동에 심혈을 기울인다. 그리고 둘은 서로를 사랑하게 된다. 
한편 디도는 사망한 아버지로부터 매년 2,000파운드의 유산을 받게 되면서 젊고 아름답고 부유한 이 혼혈녀에게 돈 없는 여러 귀족들이 구혼을 한다. 그 중 한 남자가 인종차별주의자인 어머니(미란다 리처드슨)로부터 등을 떠밀리다시피 하는 올리버(제임스 노턴). 
종의 재판 결과 머리는 노예제의 불법을 판결하는데(이는 사실과 다르다) 어쨌든 영국은  미국보다 30년 앞선 1833년 노예제를 폐지한다. 신인 엠바타 로와 윌킨슨의 연기가 돋보인다. 
PG. Fox Searchlight. 아크라이트(선셋과 바인), 랜드마크(피코와 웨스트우드)  
★★★★(5개 만점)   <한국일보 박흥진 편집위원/hjpark1230@gmail.com>


별이 빛나는 밤에



야무지게 생긴 데보라 보다는 큰 누나 같았고 동안에 수줍어하는 구스타보 두다멜은 남동생 같았다(사진). 4월29일 할리웃 보울에서 있은 시즌개막 축하파티에 먼저 등장한 데보라 보다 LA필 사장은 “오늘은 여름밤을 즐기는 날”이라고 참석자들의 흥을 돋우었다.
뉴욕 필의 사장을 오래 지낸 보다는 뛰어난 사업가로 LA필을 미 굴지의 오케스트라로 올려놓는데 큰 공헌을 했다. 파티에는 칵테일과 함께 일식ㆍ미국식 진수성찬이 제공됐는데 난 한국 소주와 맛이 비슷한 일본 쇼추 칵테일을 즐겼다.
시즌 내용 소개는 보다가 질문하고 LA필 상임지휘자인 두다멜이 대답하는 식으로 진행됐다. 보다는 두다멜의 어깨에 팔을 올려놓고 얘기를 나눴는데 두다멜의 영어가 아직 완전치 못해서 그런지 두다멜의 발언에 바짝 신경을 쓰면서 틀린 말은 즉시 수정하곤 했다. 두다멜이 좀 부담스러워 하는 기색이 느껴졌다.
두다멜은 두 이탈리아 오페라 ‘팔리아치’와 ‘카발레리아 루스티카나’의 오케스트라 공연(7월 27일)에 관해 설명하면서 할리웃 인근 정경이 이탈리아와 비슷해 이들 오페라 연주가 잘 어울린다고 말하면서 다음과 같은 에피소드를 들려줬다.
이탈리아의 저명한 지휘자 칼로 마리아 줄리니가 LA필의 지휘자 직을 수락했을 때 사람들이 “아니 어쩌자고 LA필을 맡느냐고” 의아해 하자 줄리니는 “LA의 정경이 이탈리아와 비슷하지 않느냐”고 대답했다고 한다.
두다멜은 이어 자신의 첫 영화음악도 연주된다고 말했다. 두다멜은 스페인으로부터 남미를 해방시킨 영웅 시몬 볼리바(에드가 라미레스)의 삶을 그린 영화 ‘해방자’(The Liberator-8월22일 개봉)의 음악을 작곡했는데 이 곡은 7월 31일에 연주된다.
조국 베네수엘라의 시몬 볼리바 심포니 오케스트라의 지휘자이기도 한 두다멜은 “할리웃에 살면서 영화음악을 작곡하는 것은 있을 만한 일”이라면서도 “그러나 큰 기대는 하지 말아 주길 바란다. 단지 소량의 음표를 지었을 뿐”이라고 겸손해 했다. 그는 이어 영화음악의 거장 존 윌리엄스(8월29일과 30일 공연)를 찬양하면서 “내가 영화음악을 또 작곡할지는 모르겠다”고 덧붙였다.
두다멜은 과거 몸에 꼭 끼는 새빨간 짧은 드레스를 입고 무대에 등장, 센세이션을 일으킨 중국의 젊은 여류 피아니스트 유자 왕(7월17일 연주)의 출연을 얘기할 때는 눈알을 굴려가면서 “뷰티풀”이라고 능청을 떨기도 했다.
난 이날 내가 늘 벼르던 두다멜에 대한 질문을 할 기회를 노렸으나 놓치고 말았다. “당신은 해리 벨라폰테가 부른 ‘베네수엘라’라는 노래를 들어본 적이 있습니까.” 그래서 꿩 대신 닭이라고 칵테일 바에 있는 보다에게 다가가 우선 날 소개했더니 보다가 내게  “당신 뭐 마시느냐”고 묻는다. 내가 “쇼추 칵테일인데 맛있다”고 했더니 보다도 “그렇다”고 동의했다.
이어 내가 그에게 “누군가 두다멜에게 내가 묻고자 하는 이 질문을 한 적이 있느냐”고 물었더니 보다는 “난 그 노래 모르지만 두다멜은 아마 알지도 모르겠다”고 답했다.
보울의 흰 조가비 지붕 아래 무대에 서니 고교생 때 할리웃 보울 오케스트라의 사진이 찍힌 해적판 LP의 재킷을 보면서 현실이 아니라 마치 영화 속의 장소와도 같았던 할리웃과 음악을 동경했던 기억이 난다.
할리웃 보울은 세계적 명소여서 영화와 TV에도 자주 나온다. 휴가 받은 수병인 프랭크 시내트라와 진 켈리가 춤추고 노래하는 즐거운 뮤지컬 ‘닻을 올려라’(Anchors Aweighㆍ1945)가 그 대표적인 영화다. 여기서 둘은 보울 무대에서 리스트의 ‘헝가리 광시곡 제2번’을 연습하는 저명한 피아니스트 호세 이투르비와 반갑게 인사를 나눈다.
보울이 등장하는 또 다른 영화들로는 프레데릭 마치와 재넷 게이너가 공연한 ‘스타 탄생’( A Star Is Bornㆍ1937)과 프레드 맥머리와 바바라 스탠윅이 나온 걸작 필름 느와르 ‘이중 배상’(Double Indemnityㆍ1944)이 있다. ‘이중 배상’에서는 슈베르트의 ‘미완성’ 교향곡이 보울에서 연주된다.
보울이 나오는 TV 드라마로 멋있는 것은 콜롬보 시리즈 ‘에튀드 인 블랙’(Etude in Black). 탁월한 지휘자인 존 캐사베티스가 보울 연주 중간 휴게시간에 장소를 떠나 자신과의 혼외정사 관계를 폭로하겠다고 협박하는 여류 피아니스트를 살해하고 다시 무대로 돌아와 지휘봉을 잡는다.
보울은 현재 1981년에 개수한 벤치를 새 것으로 교체 중에 있다. 보울시즌은 6월21일 불꽃놀이로 말미가 장식되는 ‘홀 오브 페임’ 콘서트로 시작된다. 3일에는 제12회 할리웃 보울 한국일보 음악대축제가 열린다.    <한국일보 박흥진 편집위원/hjpark1230@gma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