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이야기

2014년 1월 31일 금요일

불관용

한국 경제학회가 발표한 최근 논문에 따르면 한국사회의 관용도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31개 회원국 중 31위로 나타났다. 판단의 근거로 장애인 배려와 관용성 및 외국인 수용 3가지를 제시했는데 여기서 꼴찌를 한 것이다.
난 이 보도를 읽고 별로 놀라지도 않았다. 그리고 언뜻 최근 다시 한국 컴백설에 휩싸였던 가수 겸 배우 유승준(38)이 생각났다. 유승준은 2002년 입대를 앞두고 과거 군에 복무하겠다던 자신의 다짐을 버리고 미국 국적을 취득 복무를 면피, 국민감정을 건드린 괘씸죄로 지금까지 10여년간 반역자 취급을 받으며 ‘페르소나 논 그라타’로 살고 있다.
그는 대한민국 출입국관리법 제11조에 따라 입국이 금지되고 있는데 ‘경제 질서 또는 사회 질서를 해치거나 선량한 풍속을 해치는 행동을 할 염려가 있는 사람’이라는 항목에 걸린 것 같다. 참으로 애매모호한 이현령비현령식의 법조항이다.
그리고 유승준이 병역의무가 최종 면제되는 나이인 만 41세가 넘어 입국을 시도하더라도 법무부장관의 허가를 받아야 한다고 한다. 유승준이 무슨 솔제니친도 아닌데 한국은 그를 영원한 망명자로 만들려고 하는 것은 아니겠지. 내 짐작엔 정부가 그의 입국을 심사할 의도가 있더라도 국민감정이 무서워 망설이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공인인 유승준이 식언하고 입대를 회피한 행위는 기릴 만한 것은 아니나 한국의 또 다른 공인들인 국회의원과 고관대작 본인이나 그들의 아들들이 이 핑계 저 핑계로 병역을 면탈한 경우가 더러 있다는 것은 주지의 사실이다.
그러나 과문한 탓인지 법이 저들에 대해 어떤 조치를 취했다거나 유승준에 대한 격앙된 국민감정이 이들에 대해서도 발화했다는 얘기를 들은 바 없다. 법이나 국민감정이나 모두 차별적이다. 우리나라 사람들은 매사에 너무 감정적인 것이 탈이다.
한국의 관용도를 재는 기준의 하나인 외국인 수용에 인색한 것은 우리가 인종차별주의자라는 얘기다. 한국 사람들은 매우 폐쇄적인데 이 폐쇄성이 병세가 악화하면 극단적인 민족주의에로까지 이르게 마련이다.
한국에는 혼혈가정이 해가 갈수록 증가, 2020년이 되면 혼혈가정 수가 100만여명에 이르고 전체 청소년의 20%가 혼혈가정 출신으로 전망된다고 한다. 자기와 다른 피부 색깔과 사상과 믿음을 지닌 사람들도 자신과 같은 인격체로 받아들일 수 있는 평등과 공존의식에 대한 자각이 절실히 요구된다.
흑인을 ‘깜둥이’ 혼혈아를 ‘튀기’라고 멸시하지 않는 것이 관용이다. 관용이란 의식수준이 상향조정될 때 베풀어진다. 그런데 우리나라는 의식수준이 급격히 성장한 물질수준을 미처 못 따르는 것 같다. 저임금을 노리고 동남아에 진출한 한국 기업들이 임금을 착취하고 아동 노동을 시키는 것도 모두 타인종 멸시와 물질수준 위주의 사고방식 때문이다.
1958년 인기절정이던 엘비스 프레슬리가 군에 징집되자 팬들이 당시 대통령이던 아이젠하워를 암살하겠다고 협박을 했었다. 그런데 엘비스는 연예병 특과를 주겠다는 제의를 거절하고 2년간 독일서 보통 군인으로 복무한 뒤 제대했다. 난 유승준 논쟁이 일 때마다 왜 그가 내가 복무했을 때와는 달리 복무기간도 짧고 또 구타도 없는 민주화한 군 입대를 피했을까 하고 궁금해지곤 한다. 엘비스도 하고 나도 했는데.
인간의 끈질긴 불관용을 통렬하게 고발한 대하 서사적 영화가 D.W. 그리피스의 ‘불관용’(Intoleranceㆍ1916)이다. 영화사의 최고 걸작 중 하나인 이 3시간반짜리 무성영화는 바빌론시대부터 현대에 이르기까지 2,000년여를 지나오면서도 치유되지 않는 인간의 불관용을 병행하는 4편의 에피소드를 통해 보여준다.
페르시아의 바빌론 정복과 예수의 십자가상의 죽음 그리고 프랑스 구교도들의 신교도 대학살 및 범죄와 구제에 관한 20세기의 멜로드라마 등 4편의 얘기는 관용과 사랑의 상징인 영원한 어머니(릴리안 기쉬)가 아기가 담긴 요람을 흔드는 장면(사진)에 의해 연결된다.
유승준은 최근 자신의 트위터를 통해 ‘12년이 지난 지금까지 한국 땅을 밟지 못한다는 현실이 가장 가슴 아프다’면서 ‘나는 계속 한국을 사랑하고 그리워할 것’이라고 심정을 토로했다. 불관용의 제물인 예수는 자기를 십자가에 못 박은 자들마저 용서했다. 이제 그만하면 됐다. 유승준을 용서하라.                                  
<한국일보 편집위원 / hjpark1230@gmail.com>                      

2014년 1월 27일 월요일

글로리아 (Gloria)

50대 후반의 이혼녀 고독에 몸부림

글로리아가 카시노바에서 칵테일을 마시고 있다.

50대 후반의 이혼녀가 고독에 굴하지 않으려고 몸부림치면서 감정적 육체적으로 만족을 찾아 자신의 삶을 재확인하는 치열하게 감정적이요 육감적이며 또 도전적인 드라마로 칠레영화다.
인생 황혼의 초입에 들어선 여자가 자신의 감정의 내밀한 속살과 주름이 잡히고 흐늘흐늘하는 육체를 당당히 노골적으로 노출시키면서 대담하고 자연스러운 성적 욕망을 만족시키고 아울러  가족을 비롯해 자기와 가까운 사람들로부터 도외시 당하지 않으려고 애를 쓰는 자존과 욕망의 이야기다. 그리고 개인적 재생의 드라마다.
자칫하면 감상적이 될 수도 있는 내용을 세바스치안 레일로 감독은 냉철하고 또 뜨겁게 제3자의 관점에서 관찰하면서 이 여자를 깊이 이해하고 아울러 연민하고 있다. 매우 감각적이면서도 감수성 예민한 작품이다.
오래 전에 이혼한 글로리아(파울리나 가르시아)는 장성한 아들 페드로(디에고 폰테실라)와 딸 아나(화비올라 사모라)가 있으나 둘 다 자기 사느라 바빠 어머니와의 접촉이 거의 없다. 아직 직장을 다니는 커다란 안경을 낀 글로리아는 밤이면 자기 또래의 싱글들이 다니는 클럽을 찾아 춤을 추면서 고독을 떨쳐버리는데 어느 날 여기서 막 이혼한 상냥한 로돌포(세르지오 에르난데스)를 만난다.
글로리아가 큰 안경 속의 눈으로 로돌포에게 자신의 감정을 표현하는 모습이 가련토록 아름답다. 둘은 그 날로 글로리아의 집에 가 섹스를 하는데 나이 먹은 두 사람의 있는 그대로의 육체를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섹스신이 사실적이다.
유원지를 소유한 로돌포는 착하나 소심한 남자로 아직도 정신적으로나 금전적으로 자신에게 의지하는 전처와 장성한 두 딸을 돌보고 있다. 그리고 글로리아를 사랑하면서도 자기 개인적 일에 가족을 포함시키고 싶지 않다면서 기족에게 글로리아에 대해 언급을 하지 않는다.
글로리아는 이와 반대로 로돌포를 페드로의 생일파티에 데리고 가는데 중간에 로돌포가 아무 말도 없이 사라진다. 로돌포는 국외자로서의 위치를 견디지 못해 사라진 것인데 후에 글로리아에게 사죄한다며 며칠 함께 있기로 하고 묵는 호텔에서 또 아무 말 없이 사라진다.
가정이라는 함정에 대한 얘기이기도 한 영화로 카메라가 좀처럼 놓아주지 않는 가르시아가 다면한 얼굴과 자태로 표현하는 겁 없는 맹렬하고 당당한 연기가 훌륭하다. 고독하나 결코 그것에 굴복하지 않는 의연한 여자의 불패적이요 비타협적인 연기는 경탄을 금치 못할 것이다. 그리고 말러의 교향곡 제5번의 아다지에토와 마지막 장면에서 글로리아가 노래 ‘글로리아’에 맞춰 미친 듯이 춤을 추는 것을 비롯해 음악도 적재적소에 맞게 쓰고 있다.
성인용. Roadside Attractions. 랜드마크(웨스트우드와 피코).
<한국일보 박흥진 편집위원 hjpark@koreatimes.com>


부전 자전 (Like Father, Like Son)

바뀐 신생아… 두 소년과 가족 이야기


노노미야 부부와 케이타(왼쪽 3명) 그리고
사이키 부부와 류세이가 기념 촬영을 하고 있다.
일본의 코레-에다 히로카주 감독은 사람의 심장이 어디에 있는지를 잘 아는 사람이다. 그는 흥분하지 않고 또 무리하지 않으면서 우리의 기쁘고 아프고 또 동정하고 연민할 줄 아는 심장의 좌표를 정확히 파악하고 있는 사람이다.
특히 그는 가족영화 그 중에서도 ‘노바디 노즈’와 ‘아이 위시’에서 볼 수 있듯이 아이들의 부모와의 결별과 고독 그리고 어리지만 자립하고 독립할 줄 아는 지혜와 조숙함을 아주 자연스럽고 또 사실적이면서 아울러 감정 가득히 묘사하는데 이 영화도 아이들을 주제로 한 가족 드라마다.
신생아 때 부모가 바뀐 두 소년의 얘기를 통해 과연 부모란 무엇인가, 피가 더 중요한가 아니면 키운 것이 더 중요한 가를 묻고 있는데 서술형태가 아주 조용하고 차분하며 경쾌하고 맑고 신선하다. 어둡고 비극적일 수도 있는 얘기를 센티멘탈리티를 배제하고 짓궂은 유머와 위트 그리고 소박한 삶의 진실을 섞어 매력적으로 그렸는데 순진한 아이들을 통한 어른의 궁극적 구제의 얘기이기도 하다. 아름다운 영화다.
도쿄에 사는 젊은 건축가 노노미야 료타(후쿠야마 마사하루)는 사람은 착하나 성공에 집착하는 전형적인 부르좌로 똑똑한 여섯 살짜리 아들 케이타(케이타 니노미야)와 고분고분한 아내 미도리(오노 마치코)가 있지만 일 때문에 가정을 거의 방치하다시피 한다.
그런데 어느 날 이들 부부에게 미도리가 아들을 출산한 미도리의 친정 동네병원에서 호출통지가 날아든다. 둘은 병원 측으로부터 케이타가 남의 집 아이라는 청천벽력과도 같은 통보를 받는다.
케이타의 친 아버지와 엄마는 동네에서 전구상을 하는 털털한 소시민 유다이(릴리 프랭키)와 유카리(마키 요코) 사이키로 이들이 키운 아들 류세이(황 쇼-젠)가 노노미야네 진짜 아들이다. 그런데 사이키네는 류세이 외에도 어린 남매가 있다.
가족회의 열리고 두 집은 일단 주말마다 두 아이를 바꿔서 같이 지내면서 서로 얼굴을 익히기로 한다. 그런데 뜻밖에도 두 아이가 새 환경에 잘 적응하면서도 궁극적으로는 자기들을 키워준 부모를 그리워한다. 주말마다 아이들을 교환하는 과정에서 여러 가지 우습고 재미있으면서 아울러 인간의 본심을 드러내는 일들이 일어난다.
돈이면 매사가 다인 줄 아는 료타는 유다이에게 돈을 줄 테니 류세이를 자기에게 주면 자기가 류세이와 케이타를 함께 키우겠다고 제안해 유다이에게 뺨을 맞는다.
류다이네는 사람들이 진솔하고 소박해 이런 어려운 처지를 씁쓸한 유머와 지혜로서 받아들이나 특히 가슴을 아파하는 사람은 미도리. 진짜 자기 아들인 류세이가 도쿄의 아파트에서 답답해 하면서 개천이 흐르는 시골집을 그리워하는 모습을 보면서 눈물을 흘린다.
영화는 보는 사람이 자유롭게 해석하도록 끝이 난다. 촬영과 연기가 좋은데 꼬마들과 후쿠야마 마사하루가 잘 하고 특히 릴리 프랭키가 어술한 연기를 자연스럽게 해낸다. 반면 여자들은 역이 약하다. 가족용. Sundance. 일부지역.
<한국일보 박흥진 편집위원 hjpark@koreatimes.com>



2014년 1월 26일 일요일

물 먹은 탐과 로버트

탐 행스
16일 발표된 2014년도 오스카상 각 부문 후보명단에서 탈락된 사람들 중 가장 심한 충격을 받은 둘은 아마도 탐 행스와 로버트 레드포드일 것이다.
행스는 ‘필립스 선장’에서 소말리아 해적들에게 납치된 화물선 선장으로 나와 비평가들의 격찬을 받았으나 주연상 후보에서 탈락됐다. 레드포드는 1인극 ‘올 이즈 로스트’에서 침몰하는 범선을 탄 채 바다를 표류하는 남자로 77세 생애최고의 연기라는 평을 받았으나 역시 주연상 후보에서 밀려났다.
로버트 레드포드
행스는 과거 주연상을 두 번이나 타 덜 섭섭할지 모르겠으나 인생 황혼기에 들어선 레드포드는 아직 연기상을 한 번도 타지 못해(‘오디나리 피플’로 감독상 수상) 이번 탈락이 매우 서운했던 것 같다. 그는 기자회견에서 자신의 탈락은 ‘올 이즈 로스트’가 너무 소수의 극장에서만 상영됐기 때문이라며 배급사인 라이언스게이트의 홍보부족을 나무랐다.
행스는 이번에 여러모로 수모를 당했다. 그가 월트 디즈니로 나온 ‘세이빙 미스터 뱅스’는 오스카 회원들이 좋아할 만한 영화인데도 작품상을 비롯해 호평을 받은 행스 역시 조연상 후보에서 탈락했다. 소설 ‘메리 파핀스’의 영화화를 놓고 디즈니와 저자 P.L. 트래버스 간의 실랑이를 그린 이 영화에서 트래버스 역을 호연한 엠마 탐슨도 주연상 후보에 오르지 못했다.    
또 작품상 등 총 6개 부문에서 수상 후보에 오른 ‘필립스 선장’의 감독 폴 그린그래스와 역시 작품상 등 총 5개 부문에서 수상 후보에 오른 ‘허’의 감독 스파이크 존즈가 모두 감독상 후보에서 탈락된 것도 뜻밖이다. ‘허’에서 컴퓨터의 인공지능 여자와 음성으로 사랑을 나누는 남자 역을 민감하게 연기한 와킨 피닉스가 주연상 후보에서 탈락된 것도 작은 이변 중 하나다.
지난해 칸영화제서 심사위원 대상을 타고 비평가들의 격찬을 받은 포크송 영화 ‘인사이드 르윈 데이비스’가 달랑 촬영과 음향믹스상 후보에만 오르고 다른 모든 주요 부문에서 탈락된 것이야말로 가히 충격적인 사건이라고 하겠다.
훌륭한 흑인영화들이 여러 편 나온 지난해에 백악관에서 모두 8명의 대통령의 시중을 든 흑인집사의 실화인 ‘버틀러’에서 주연한 포레스트 위타커와 그의 부인으로 나온 오프리 윈프리의 남녀 주·조연상 후보 탈락도 화제거리다.
영화의 내용을 놓고 비평가들과 팬들이 모두 극단적인 찬반론을 벌인 ‘월스트릿의 늑대’가 작품을 비롯해 남우주·조연과 감독 및 각색상 등 모든 주요 부문에서 후보에 오른 것도 주지할 만한 일이다. 1980년대 말 월스트릿을 무대로 활약한 젊은 사기꾼 조단 벨포트의 실화인 이 영화는 섹스와 드럭과 알콜이 난장판을 이뤄 극단적인 것을 꺼려하는 오스카 회원들의 호응을 못 받을 것이라는 예진을 받았었다.
벨포트 역의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가 주연상 후보에 오르면서 탐 행스와 로버트 레드포드가 수상 후보에서 밀려났고 이 영화로 감독상 후보에 오른 마틴 스코르세지는 이번으로 모두 8번째 오스카상 후보에 오르는 기록을 냈다.
특히 벨포트의 하수인으로 나온 조나 힐이 남우조연상 후보에 오른 것은 매우 뜻밖이다. 그는 2년 전에도 ‘모니 볼’로 조연상 후보에 올랐었다. 또 해마다 오스카 만화영화상을 독식하다시피 해온 픽사의 ‘몬스터 대학’이 후보서 탈락하는 수모를 당했다.
이번에 여러 부문에서 수상 후보에 오른 영화들 중 대부분이 독립영화들이다. 메이저 영화는 ‘그래비티’와 ‘네브래스카’와 ‘필립스 선장’ 3편뿐이다. 또 지난해와 달리 각 부문에서 치열한 선두 다툼을 벌이고 있는 영화들 중 여러 편이 흥행서 크게 성공했다.
둘 다 작품상 등 총 10개 부문에서 수상 후보에 올라 최다 부문 후보작들이 된 ‘그래비티’와 ‘아메리칸 허슬’의 지금까지 국내 총수입은 각기 2억5,700만달러와 1억1,700만달러. ‘필립스 선장’은 총 1억500만달러 그리고 ‘월스트릿의 늑대’는 총 9,100만달러의 수입을 올렸다.
3월2일 할리웃의 돌비극장에서 열릴 2014년도 오스카 시상식에서 가장 확실한 것은 케이트 블랜쳇이 ‘푸른 재스민’으로 그리고 재렛 레토가 ‘달라스 바이어즈 클럽’으로 각기 여우주연상과 남우조연상을 탄다는 것이다.
남우주연상은 ‘달라스 바이어즈 클럽’의 매튜 매코너헤이 그리고 감독상은 ‘그래비티’의 알폰소 쿠아론이 받을 것이 유력하다. 가장 점치기 어려운 것이 과거 그 어느 때보다도 치열한 경쟁을 벌이고 있는 작품상 부문. ‘12년간 노예’와 ‘그래비티’ 그리고 ‘아메리칸 허슬’의 3파전인데 현재로선 어느 작품이 상을 탈지 예측불허다. 나의 2013년도 베스트 무비는 ‘그래비티’였다.    
한국일보 편집위원/hjpark1230@gmail.com  <01.24.2014 한국일보>


       

2014년 1월 23일 목요일

경멸(Contempt)

부부관계·영화제작 다룬 고다르 작품


전직 타이피스트인 카미유(브리짓 바르도)는 신념없는 남편 폴(미셸 피콜리)을 경멸한다.

전형적 영화제작의 틀을 뒤집어엎는 프랑스 감독 장-뤽 고다르의 1963년 작으로 개봉 반세기를 기념해 복원된 작품이 재개봉 된다. 무너져 내리는 부부관계와 스튜디오 체제가 붕괴된 후의 국제 합작영화 제작 그리고 소설을 영화로 만들 때 오는 여러 가지 문제점들을 다룬 이색적 흥미를 유발시키는 영화다. 원작은 이탈리아 작가 알베르토 모라비아의 소설 ‘정오의 귀신’.
영화 제목은 여주인공 카미유가 남편인 영화 각본가 폴에게 품고 있는 감정을 나타낸다. 고다르의 영화여서 쉬운 오락영화는 아니지만 예술영화 팬들에겐 큰 만족감을 줄 영화로 브리짓 바르도의 맨살 엉덩이가 탐스럽고 독일 감독 프리츠 랭이 영화 속에서 감독으로 그리고 고다르가 랭의 조감독으로 나온다.
로마·프랑스의 영화 각본가 폴(미셸 피콜리-중절모를 쓰고 시가를 입에 문채 목욕을 한다)은 연극작품을 쓰는 것이 꿈이다. 그의 무르익은 육체를 지닌 아내로 전직 타이피스트인 카미유(바르도)는 낭비벽증자.
폴에게 미국인 영화제작자 제레미(잭 팰랜스)가 호머의 ‘오디세이’를 영화화할 예정이라며 각본을 써 줄 것을 제의한다. ‘오디세이’는 독일감독 프리츠 랭이 연출하는데 영화 속의 영화 장면과 함께 영화제작 과정이 자세히 묘사된다.
폴이 각본을 쓰는 것을 알고 카미유는 쉽게 팔려 다니는 신념 없는 남편을 더욱 경멸한다. 그리고 카미유는 제레미에게 접근한다. 제레미와 카미유는 컨버터블 스포츠카를 몰고 달리다 대형 트럭과 충돌, 둘 다 트럭 타이어 밑에 깔려 죽는다.
국제 합작영화 제작의 여러 가지 함정과 시네마스코프(랭은 이 형태를 싫어했다) 그리고 고전적 주제에 관한 심리적 해석 및 바르도의 엉덩이에 관한 영화로 지적으로 자극적인 영화다. 진공상태와도 같이 장식 없는 폴의 아파트에서 폴과 카미유가 장시간 말싸움을 하는 장면이 있는데 카메라가 한 번도 아파트 밖으로 떠나지 않는 실시간처럼 느껴지는 이 장면은 고다르의 영화를 여러 편 찍은 라울 쿠타르 촬영감독의 솜씨가 역연한 장면이다.
배우들의 연기가 좋고 외눈 안경을 쓴 랭의 냉소적인 모습도 재미있다. 조르지 들르뤼의 음악과 뜨거운 태양 아래 펼쳐진 푸른 바다 등 경치도 아름답다. 성인용. Rialto. 로열과 플레이하우스 7(310-478-3836).  


잭 라이언: 그림자 신병 (Jack Ryan: Shadow Recruit)

맨해턴 폭파 음모 테러리스트를 잡아라



라이언(크리스 파인)이 모터사이클을 타고 테러리스트를 쫓아 맨해턴을 질주하고 있다.

어디서 많이 본 듯한 기시감 많고 독창성 없는 스파이 액션 서스펜스 스릴러로 얼마 전 작고한 스파이소설 작가 탐 클랜시의 잭 라이언 연작 시리즈가 원작이다. 이 시리즈는 이미 여러 차례 영화로 만들어져 주인공인 CIA 스파이 잭 라이언역은 해리슨 포드와 알렉 볼드윈 그리고 벤 애플렉 등이 차례로 맡았었다.
이번에 라이언 역은 젊은 크리스 파인(스타 트렉)이 맡아 이 시리즈에 젊은 층들을 끌어들여 새로운 프랜차이즈를 만들려고 시도했으나 깎다 만 듯한 헤어스타일을 한 파인이 영 카리스마가 없는데다가 연기도 신통치 못해 영화가 배급사인 패라마운트 뜻대로 빅히트를 해 속편을 만들게 될지 지극히 의문이다.
아일랜드 태생의 셰익스피어 전문 무대 및 영화와 TV 배우이자 감독인 케네스 브라나가 감독 공연하고 케빈 코스너와 키라 나이틀리 등 거물 스타들이 나온 영화로선 기대치에 못 이르는 타작에 불과하다. 볼 것이 있다면 겨울 모스크바에서 찍은 현지 촬영.
런던의 경제학 전공 대학원에서 공부하고 있는 잭 라이언(파인)은 9.11 테러를 TV로 목격하고 박사학위 따기를 중단하고 해병에 입대, 소위로서 아프가니스탄 전투에 투입된다. 그리고 헬기가 탈레반의 로켓에 맞아 추락하면서 중상을 입는다. 라이언은 얼굴에도 큰 상처를 입었는데 퇴원 후 보니 말짱하다. 하기야 얼굴에 흉한 상처가 있는 스파이를 누가 보러 오겠는가.
라이언은 오랜 물리치료소 생활 끝에 퇴원하는데 여기서 자기를 치료해 준 여자 캐시(나이틀리는 완전히 소모품)와 애인이 된다. 
그리고 그는 CIA 소속 신참 스파이 발굴자인 해군장교 토머스 하퍼(코스너)에 의해 발탁된 뒤, 정부 돈으로 런던서 중단했던 공부를 마친다. 
이어 라이언은 월가의 국제적 거래를 하는 대규모 투자회사에 분석가로 위장하고 취직한다. 라이언은 재정에 바탕을 둔 테러리즘을 분석하는 것이 임무로 동거하는 캐시에게조차 자신의 진짜 신원을 감춘다.
라이언은 자료 분석을 하다가 러시아의 거부 빅터 체레빈(브라나가 심한 액센트를 구사하는 영어를 쓴다)의 구좌에서 미국의 경제를 붕괴시키고도 남을 심각한 이상을 발견하고 빅터를 만나기 위해 모스크바에 도착한다. 
호텔에 도착하자마자 라이언은 거구 흑인 킬러의 공격을 받는데 이 장면은 007시리즈 ‘골드핑거’의 격투 신을 연상시킨다. 여기서 부터 데스크 잡을 보던 라이언은 이리 뛰고 저리 뛰면서 육체노동을 해야 하는 일선 스파이가 된다.  
매력과 잔인함을 겸비한 빅터는 개인적으로 미국에 대해 깊은 원한을 품었을 뿐만 아니라 미국은 러시아의 적이라고 생각하는 테러리스트로 그는 미국 내 잠복해 있는 재정과 폭파전문 스파이들을 동원해 맨해턴 다운타운을 폭파하는 것과 동시에 미국의 경제를 붕괴시킬 준비를 다 해놓았다.
이를 막을 자가 물론 라이언인데 느닷없이 캐시가 모스크바에 도착, 빅터에게 납치되면서 라이언은 조국과 애인을 구하기 위해 동분서주하면서 고군분투한다. 
클라이맥스는 맨해턴에서 벌어지는데 스릴러인 만큼 붐비는 모스크바와 맨해턴에서 요란한 차량(모터사이클 포함) 추격신이 일어난다. 그렇게 모진 액션을 겪고 나서도 살아남으니 라이언은 과연 수퍼맨이다. PG-13. 전지역. 


제71회 골든 글로브 시상식


작품상‘12년간의 노예생활’.

`아메리칸 허슬' 3개부문 수상 최다 상복


12일 베벌리힐스의 베벌리 힐튼 호텔에서 두 여자 코미디언 티나 페이와 에이미 폴러의 사회로 열린 제71회 골든 글로브 시상식은 상이 영화사들에게 골고루 주어지는 인심 좋은 행사였다.
여기서 유독 제외된 영화사가 유니버설과 선전의 귀재 하비 와인스틴의 와인스틴사다.
특히 와인스틴은 골든 글로브와 오스카상의 단골 수상자로 이번에 작품상과 여우주연상 등에서 후보에 오른‘필로메나’와‘8월: 오세이지 카운티’가 완전히 무시당해 심술첨지 와인스틴의 심기가 지금까지도 몹시 불편할 것임에 틀림없다. 그런데‘필로메나’로 여우주연상(드라마) 후보에 오른 영국 배우 주디 덴치는 최근에 받은 무릎수술로 인해 이날 식에 참석하지 못했다.
기라성 같은 영화와 TV 스타들이 참석한 가운데 열린 시상식에는‘아메리칸 허슬’로 남우주연상(코미디/ 뮤지컬) 후보에 오른 크리스천 베일도 참석을 못했는데 그는 지금 스페인에서 찍고 있는‘엑소더스’에서 모세 역을 맡아 불참했다.
상(골든 글로브는 작품과 남녀 주연상에 한해 드라마와 코미디/뮤지컬 두 부문으로 나누어 시상한다)이 골고루 주어진 가운데에서도 3개 부문에서 상을 타 가장 좋은 성적을 올린 영화가 ‘아메리칸 허슬’(American Hustle).
1970년대 말 정치인들을 상대로 사기를 친 뉴저지주의 날사기꾼들의 실화를 다룬 영화로 작품(코미디/뮤지컬)과 여자주연(에이미 애담스) 및 여자조연상(제니퍼 로렌스)을 받았다. 방년 23세의 로렌스는 지난해에는 ‘실버 라이닝스 플레이북’으로 골든 글로브 주연상을 수상, 2년 계속해 상을 받은 실력파다.
감독상 알폰소 쿠아론.
드라마 부문 작품상은 남북전쟁 이전 미 북부의 해방된 노예가 노예장수들에게 납치돼 남부농장에 팔려 12년간 노예생활을 하다가 다시 자유를 찾은 솔로몬 노덥의 실화를 다룬 ‘12년간의 노예생활’(12 Years a Slave)이 탔다.
그런데 ‘아메리칸 허슬’과 함께 모두 7개 부문에서 수상후보에 올라 최다 부문 수상 후보작이었던 이 영화는 각본, 감독(스티브 매퀸), 남우주연(치웨텔 에지오포) 및 여우조연(루피타 니옹고)상 부문에서도 수상이 유력시 됐었으나 작품상 하나로 만족해야 했다.
남우주연상(코미디/뮤지컬)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
‘아메리칸 허슬’에 이어 유일하게 복수로 상을 탄 영화는 ‘달라스 바이어즈 클럽’(Dallas Buyers Club). 멕시코에서 에이즈 사제 약을 밀반입해 환자들에게 판 에이즈 환자 론 우드러프의 실화에서 론으로 나온 매튜 매코너헤이가 남우주연상(드라마)을 그리고 그의 파트너로 역시 에이즈 환자인 성전환자 역을 맡은 재레드 레토가 남우조연상을 탔다.      
코미디/뮤지컬 부문 남우주연상은 1980년대 말 월가의 젊은 날사기꾼 조단 벨포트의 실화를 다룬 다크 코미디 ‘월스트릿의 늑대’(The Wolf of Wall Street)에서 조단으로 나온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가 받았다.
디카프리오는 수상 소감에서 “내가 코미디로 상을 받을 줄은 몰랐다”고 농담을 했다. 그런데 그의 수상은 다소 뜻밖으로 디카프리오보다는 크리스천 베일(아메리칸 허슬)이나 브루스 던(네브래스카)이 더 유력한 수상 후보들이었다.
드라마 부문 여우주연상은 ‘푸른 재스민’(Blue Jasmine)에서 샌프란시스코의 가난한 여동생 집에 얹혀살려고 짐을 싸들고
여우주연상(드라마) 케이트 블랜쳇.
온 호화와 사치를 누리며 살다가 알거지가 된 월가의
미망인으로 나온 케이트 블랜쳇이 탔다.
이 영화를 감독한 우디 알렌은 이 날 시상식의 생애 업적상인 세실 B. 드밀상의 수상자로 그는 예상했던 대로 시상식에 불참했다. 알렌 대신 수상 소감을 말한 사람은 그의 영화에 여러 편 나온 알렌의 전 애인 다이앤 키튼. 키튼은 “알렌은 지금까지 자기 영화에서 모두 179명의 여배우들을 기용했으며 스크린에 개성이 강한 여자들을 창조한 여배우들의 친구”라고 칭찬한 뒤 ‘메이크 뉴 프렌즈’라는 동요를 부르면서 소감을 마쳤다.
이 날 시상식에는 알렌의 영화에 나온 여배우들인 메릴 스트립(‘8월: 오세이지 카운티’로 코미디/뮤지컬 부문 주연상 후보)과 다이앤 위스트 그리고 매리엘 헤밍웨이(헤밍웨이의 손녀)  등이 참석했다. 그런데 알렌은 이 날 시상식이 열리고 있을 때
브로드웨이에서 뮤지컬을 관람하고 있었다고 한다.
여우주·조연상 에이미
애담스(오른쪽)와 제니퍼 로렌스.
감독상은 우주 스릴러 ‘그래비티’(Gravity)를 연출한 멕시코의 알폰소 쿠아론이 탔다. 각본상은 젊은 남자와 컴퓨터의 인공지능인 여자와의 사랑을 그린 ‘허’(Her)를 쓴 스파이크 존즈(감독 겸)가 받았다. 감독상과 각본상 역시 ‘12년간의 노예생활’이 탈 것이 유력시 됐었기 때문에 존즈의 수상은 깜짝 상감이다.
또 다른 기대와 예상을 너머 상을 탄 영화가 외국어 영화상을 탄 이탈리아의 ‘그레이트 뷰티’(Great Beauty). 이 상은 모두들 지난해 칸영화제 대상 수상작인 프랑스영화 ‘푸른색이 가장 따뜻한 색’(Blue Is the Warmest Color)이 탄다고 예측했었다.
남우주·조연상
매튜 매코너헤이(왼쪽)와 재렛 레토.
음악상은 로버트 레드포드가 나온 바다의 생존 투쟁기인 ‘올 이즈 로스트’(All Is Lost)가, 만화영화상은 디즈니의 ‘프로즌’(Frozen)이 탔다. 주제가상은 ‘만델라: 자유에로의 긴 걸음’(Mandela:,Long Walk to Freedom)의 주제가 ‘오디나리 러브’를 부른 U2가 받았다.
그런데 U2의 프론트맨인 보노는 이 날 뜻밖에도 사회자인 에이미 폴러로부터 뜨거운 키스세례를 받아 참석자들의 폭소와 함께 박수갈채를 받았다. 폴러가 TV 시리즈 ‘파크스 앤 리크리에션’으로 여주연상(코미디/뮤지컬) 수상자로 발표되자 보노 옆에 앉았던 폴러가 상을 받으러 일어나면서 그의 무릎에 올라 앉아 보노에게 키스를 쏟아 부은 것. 물론 이 키스는 가짜다.      
이 날 여러 부문에서 수상 후보로 올랐으나 빈손으로 돌아간 영화들은 ‘필립스 선장’ ‘인사이드 르윈 데이비스’ ‘8월: 오세이지 카운티’ 및 ‘네브래스카’ 등이다.
                                                                     
<한국일보 박흥진 편집위원 - 1.17.201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