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이야기

2019년 8월 8일 목요일

‘루스’(Luce)


피터(왼쪽부터)와 루스 그리고 에이미가 교장 선생님과 상담을 하고 있다.

비방 관련 교사와 모범생 ‘누구 말이 진실일까’


‘히 세드, 쉬 세드’의 틀을 갖춘 가족과 인종문제, 계급과 진실 그리고 지나친 기대와 고정관념에 관한 스릴러 스타일의 드라마다. 시종일관 과연 누구의 말이 진실인가를 놓고 궁금해 하게 만든 어둡고 터프하며 긴장감 감도는 튼튼한 작품이다. 
영화의 스릴과 긴장감은 교사로부터 비방을 받는 모범적인 고등학생과 교사간의 비방의 내용을 둘러싼 진실여부 공방에서 나오는데 문제는 누가 진실을 말하는지를 별로 어렵지 않게 짐작할 수 있는 점이다. 따라서 갈수록 긴장감과 스릴이 녹아내리게 마련이다. 
백인일색인 버지니아주 중상층이 사는 동네의 고등학교 3학년생인 루스(켈빈 해리슨 주니어)는 공부와 운동에서 모두 뛰어난 모범생. 루스는 일곱 살 때 백인 어머니 에이미(나오미 와츠)와 아버지 피터(팀 로스)에 의해 전쟁으로 찢어진 에리테리아에서 소년 군인으로 있을 때 입양된 아이. 그 후 심리치료와 재활을 거쳐 이제 흑인의 모델과도 같은 학생이 된 것. 친구가 그를 ‘새 오바마’라고 부른다. 루스는 자신에 대한 지나친 기대에 지칠대로 지쳐 숨이 막힐 지경이나 이를 상냥한 미소로 감춘다. 
어느 날 루스의 흑인 역사교사 해리엣(옥타비아 스펜서)이 의사인 에이미를 호출한다. 해리엣은 에이미에게 루스가 쓴 글을 보여준다. 역사적 인물에 관한 글을 쓰면서 루스가 고른 사람은 폭력을 써 억압적인 체제를 뒤집어 놓아야 한다고 주장하는 혁명적 심리학자 프란츠 패논. 해리엣은 이와 함께 루스의 락커에서 찾았다는 불법 폭죽도 건넨다. 해리엣과 루스는 글을 놓고 이미 심한 설전을 벌였다. 에이미는 집에 돌아와 남편에게 이런 사실을 알리면서도 루스에겐 모른 체 한다.
그러나 얼마 못가 에이미와 피터가 루스에게 글과 폭죽에 관해 묻자 루스는 글은 글일 뿐이며 폭죽은 자기와 함께 락커를 쓰는 급우의 것이라고 말한다. 이어 루스는 해리엣이 흑인 학생들에 대해 가혹하게 모범생이 될 것을 강조하는 문제가 있는 사람이라고 말한다. 에이미와 피터와 루스 그리고 교장과 해리엣이 대면하는 자리에서도 루스는 끝까지 해리엣이 거짓말을 한다고 주장한다. 그런데 에이미는 진실여부를 무시하고 루스를 옹호한다. 
과연 누가 진실을 말하는가. 혼자 사는 해리엣에게는 요양소에 들어간 정신질환자 여동생이 있어 시달리고 있는데 과연 해리엣은 이런 개인적 고통을 제자들을 괴롭힘으로써 해소하려고 하는 것인가. 아니면 루스는 자기에 대한 지나친 기대로 상자 속에 갇혀 질식할 것 같은 상황에 시달려 자기 주변 사람들을 해칠 악의를 품고 있는 것인가. 
한편 루스와 헤어진 여친 급우 스테파니 김(한국계 캐나다 배우 안드레아 방)이 해리엣을 찾아와 루스가 과거 자기를 성적으로 괴롭혔다고 고발한다. 과연 스테파니의 증언은 사실인가. 이와 함께 해리엣에게 불상사들이 일어나면서 해리엣은 궁지에 몰린다. 
경탄스러운 것은 해리스 주니어의 연기. 카리스마와 함께 섬세하고 미묘하며 또 민감한 연기를 하는데 압도적이다. 그리고 와츠와 스펜서도 매우 훌륭하다. 감독 줄리어스 오나의 연극이 원작. R 등급. Neon. ★★★½ (5개 만점) 
                                                             <한국일보 박흥진 편집위원/ hjpark1230@gmail.com>


‘불타는 텔 아비브’(Tel Aviv on Fire)


아랍인 살람(왼쪽)과 유대인 장교 아시가 드라마의 각본을 놓고 토론을 하고 있다

적대관계 이스라엘-팔레스타인 드라마 함께 만들며 친해지는데… 풍자 속 공존 제시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간의 갈등을 마음 좋게 풍자한 이스라엘 영화로 가볍지만 재미있고 우습다. 그러나 코미디 속에 지속되는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의 대립관계를 보면서 다시 한 번 이 화약고와도 같은 지역의 종교적 정치적 및 인종적 상황들을 살펴보게 만든다.
영화나 TV프로 같은 예술적 매체는 서로 갈등 관계를 지닌 사람들마저도 하나로 만들어준다는 얘기를 다소 황당무계하게 다루고 있지만 이런 터무니없는 풍자 안에서 적대적 관계의 해결 실마리를 찾아보자는 의도가 감각된다. 결국 우린 다 감정을 지닌 사람들이라는 말이다.
팔레스타인의 싸구려 소프 오페라 ‘불타는 텔 아비브’는 중동의 6일 전쟁 발발 직전인 1967년을 시간대로 한 작품.
내용은 파리에 살던 매력적인 여자탈라(루브나 아자바이)가 예루살렘에 와서 이스라엘 장군(유셉 ‘조’ 스에이드)으로부터 기밀을 빼내는 스파이 드라마. 아랍인들뿐 아니라 이스라엘 사람들에게도 대단한 인기를 얻고 있다.
애인 마리암(마이사 아브드 엘하디)에게서 따돌림을 받은 인생 실패자인 살람(카이스 나쉬프)은 드라마 제작자인 삼촌 덕분에 세트에서 잡일을 한다. 그는 팔레스타인 사람이지만 이스라엘에 살고 있는데 어느 날 드라마의 배우들이 하는 히브리어 대사가 서툴다고 조언을 하면서 각본 집필에 끼어들게 된다.
그러나 글 실력이 없는 살람이 매일 아침 이스라엘 검문소를 통과하다가 초소 경비 장교 아시(야니브 비톤)를 만나면서 실력(?) 발휘를 하게 된다. 아시는 이 드라마의 열렬한 팬으로 자기를 드라마 각본가로 소개한 살람에게 드라마의 플롯과 대사까지 챙겨주면서 그대로 드라마를 만들라고 지시한다. 이로 인해 적 사이인 둘의 관계가 가까워진다.
물론 아시는 드라마를 이스라엘 사람들이 보기에 좋도록 만들려고 하는데 살람이 이를 세트에서 써먹으면서 얘기가 점점 더 재미있게 된다. 그러나 때론 살람이 아시로부터 받은 내용이 지나치게 이스라엘 측에 편향돼 거절당하기도 한다. 그래서 살람은 아시로부터 일장훈계와 함께 야단을 맞는다. 살람은 캐치-22 상황에 빠져 갈팡질팡한다.
결정적 문제는 피날레를 어떻게 장식하느냐 하는 것. 살람으로선 양측 비위에 다 맞도록 글을 써야 할텐데 그게 어디 그리 쉬운 일인가. 여하튼 드라마의 대미가 요란하게 장식되는데 억지가 좀 지나친 것 같다. 영화는 아시나 살람이나 다 마음 좋은 사람들로 묘사, 평화적 제스처를 쓰고 있는데 아자바이를 비롯해 나쉬프와 비톤이 어색한듯 하면서도 좋은 연기를 한다.
사메 조아비 감독(각본 겸). ★★★½ (5개 만점)
                                                                 <한국일보 박흥진 편집위원/ hjpark1230@gmail.com>


‘옛날 옛적 할리웃에’(Once Upon a Time in Hollywood)


TV 웨스턴 배우 릭과 그의 오랜 대역 클립(왼쪽)이 지금도 있는 할리웃의 유서 깊은 식당 ‘무소 앤 프랭크’의 바에 앉아 담소하고 있다.

히피시대 할리웃 배경 디카프리오- 피트 연기 대결


이탈리안 감독 세르지오 레오네의 ‘옛날 옛적 서부에’와 ‘옛날 옛적 미국에’를 연상케 하는 제목에서 알 수 있듯이 이 영화는 쿠엔틴 타란티노 감독(각본 겸)이 과거 할리웃에 바치는 헌사요 연서이다. 할리웃의 모든 것이 변화하는 히피시대인 1969년을 시간대로 설정, 지나간 할리웃을 그리워하고 있는데 연기와 과거 할리웃 거리를 재연한 프로덕션 디자인과 촬영 그리고 미니스커트와 고고 부츠와 히피 패션 등이 나무랄데 없이 훌륭하다. 
그러나 타란티노는 질서정연한 얘기 서술보다 장면 장면을 짜깁기하는데 더 능한 감독으로 이 영화도 플롯이 전무하다시피 하다. 과거 영화와 TV 장면 등을 흘러간 팝송과 함께 계속해 보여주면서 이리 왔다 저리 갔다 하면서 중구난방 식이다. 타란티노의 아홉 번째 영화로 마치 자신의 할리웃에 대한 백과사전식의 지식을 자랑하고 있는듯 하다. 과거 할리웃 영화와 TV프로에 대해 어느 정도 알고 있는 사람들에겐 어필하겠지만 이를 전연 모르는 젊은 사람들에게도 영화가 어필할지 의문이다. 
어색한 것은 영화에서 TV 웨스턴의 주연배우로 나오는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 그가 카우보이 모자에 부츠를 신고 권총을 뽑아 속사로 상대를 황천으로 보내는 모습이 마치 아이들 권총 장난하듯이 자연스럽지 못하다. 연기는 맹렬하면서도 민감하게 잘 하지만 미스 캐스팅 같다.
릭 달턴(디카프리오)은 TV 웨스턴 시리즈 ‘바운티 로’의 주연배우로 인기가 하락세로 접어든 채 모든 것이 급격히 변화하는 할리우드에 어떻게 적응해야 할지 몰라 전전긍긍한다. 이런 그와 동병상련하는 사람이 릭의 오랜 대역 클립 부스(브래드 피트). 클립은 릭의 운전사 노릇까지 하지만 둘은 절친한 친구로 서로에 대한 충성이 지극하다. 초조하고 불안해하면서 가끔 눈물을 짜는 디카프리오와 느긋하고 약간 으스대는 연기를 하는 피트의 화학작용이 좋긴 하나 아무리 봐도 디카프리오는 웨스턴 건맨으론 안 보인다.
영화는 릭과 클립의 촬영장과 둘의 집을 오락가락하며 보여주는데 트레일러에 사는 클립은 맹견 로트와일러 브랜디를 애지중지한다. 이들의 애기와 병행해 1969년 8월에 맨슨 일가에 의해 살해된 로만 폴란스키 감독의 영화배우 아내 샤론 테이트(마고 로비)의 얘기가 서술된다. 샤론은 릭의 바로 이웃에 살고 있다. 그런데 샤론의 얘기는 수박 겉핥기 식으로 로비는 소모품에 불과하다. 샤론이 플레이보이 맨션 파티에 참석한 장면에서 데이미언 루이스가 스티브 맥퀸으로 나와 기차게 잘 하는데 죽은 맥퀸이 환생한 줄 알았다.
릭은 자기 위치에 불안을 느껴 폭음을 하면서 촬영 때 대사마저 잊어버리는데 궁여지책으로 자기 에이전트(알 파치노)가 주선한 스파게티 웨스턴에 나오기 위해 이탈리아로 가 6개월 간 싸구려 스파게티 웨스턴과 제임스 본드 모조품에 나온다. 이 부분은 TV 웨스턴 ‘로하이드’에 나온 뒤 이탈리아에 가서 레오네의 스파게티 웨스턴 ‘황야의 무법자’에 나온 클린트 이스트우드를 생각나게 한다. 
타란티노의 영화이니 만큼 유혈 낭자한 폭력을 기다리고 있었는데 아니나 다를까 끝에 가서 사람과 개가 동원된 차마 눈 뜨고 못 볼 끔찍하고 잔인한 폭력이 자행된다. 불필요한 폭력의 과용이다. 파치노 외에도 커트 러셀을 비롯한 유명 배우들이 많이 카메오로 나오는데 촬영장에서 릭에게 연기와 인생철학을 일장 연설하는 여덟 살짜리 아역배우로 나온 줄리아 버터스가 경탄할 연기를 한다. 이와 함께 클립이 촬영장에서 만난 브루스 리와 한판 겨루는 장면도 웃기는게 브루스로 나오는 한국계 마이크 모도 재치와 맵시를 겸비한 연기를 한다. 타란티노는 ‘인글로리어스 배스터즈’에서도 역사를 자기 마음대로 바꿔 썼는데 여기서도 그런다. 상영시간 159분은 너무 긴데 타란티노가 여러 면에서 과욕을 부린 영화다. R등급. Sony. ★★★★ (5개 만점)
                                                               <한국일보 박흥진 편집위원/ hjpark1230@gmail.com>




‘스킨’(Skin)


네오-나치 브라이언은 한 여인을 사랑하게 되면서 집단을 탈출하기로 결심한다.

스킨헤드·집단생활·유혈폭력·문신… 네오-나치집단 탈출자의 치열한 삶


2006년 오랜 세월을 몸담아온 네오-나치 집단에서 탈출하기로 결심한 젊은 보수극단주의자 브라이언 와이드너의 삶을 다룬 실화로 보기가 힘들 정도로 치열하고 거칠고 사실적이다. 스킨헤드의 문화와 그들의 집단생활 그리고 이들이 자행하는 유혈폭력과 또 이들의 상징인 문신 등에 관한 강건한 탐구인데 주·조연배우들의 연기가 뛰어나다.
얼굴과 온 몸에 문신을 한 브라이언 와이드너(제이미 벨)는 “미국을 하얗게 지키자”라는 구호를 외치는 네오-나치 단체 ‘노르딕 소셜 클럽’의 골수분자. 그는 오도 갈데없는 자기를 받아준 클럽을 가족으로 여긴다. 이 단체의 리더는 본능대로 행동하는 증오에 가득 찬 프레드(빌 캠프)와 그의 아내 샤린(베라 화미가). 샤린은 신참에게 “날 엄마라 불러”라고 사근사근하니 대하나 무서운 여자다. 
바이런과 동료들은 시위에 나가 자기들에게 반대하는 사람들에게 무차별 폭력을 행사하고 회교사원에 방화하고 갈 곳 없는 젊은이들에게 집과 음식과 친구를 마련해 준다며 자기 집단 안으로 끌어들인다.
겉으로는 거치나 마음은 부드러운 바이런은 새로 집단에 들어온 자기처럼 오도 갈데없는 소년을 보고 자기 위치에 회의를 느끼면서 탈출을 마음먹는다. 이보다 더 큰 이유는 그가 세 아이를 키우는 홀어머니 줄리(대니얼맥도널드)를 만나 사랑에 빠지게 되면서다. 
바이런은 극단주의자들의 과거 청산을 평화적 방법으로 다루는 단체 ‘원 피플 프로젝트’의 지도자 대릴 젠킨스(마이크 콜터)의 도움을 받으며 본격적으로 탈출을 결심한다. 이와 함께 바이런은 얼굴과 몸의 문신을 제거하는 몇 달간의 작업에 들어가는데 계속해 보여주는 이 장면이 보기에 고통스럽다. 
프레드는 이런 바이런에게 “나는 아직도 너를 소유하고 있어”라며 졸개들을 풀어 바이런과 줄리와 세 아이들을 위협한다. 네오-나치들은 브라이언의 애견을 목매달아 죽이기까지 한다.  바이런과 줄리와 세 아이들은 네오-나치들을 피해 도주하기 시작하는데 여기서부터 생살 깍듯하던 영화가 다소 멜로드라마 식으로 변형된다. 
마음을 어지럽게 만드는 집요한 영화로 아역배우 출신의 벨이 뜨겁고 변화무쌍한 연기를 한다. 그리고 화미가의 연기도 간교하게 유혹적이다. 이스라엘 감독 가이 내티브의 첫 미국영화. R등급. ★★★★½ (5개 만점) 
                                                              <한국일보 박흥진 편집위원/ hjpark1230@gmail.com>


‘라이언 킹’ (The Lion King)


아버지 사자 무파사가 갓난 아들 사자 심바에게 앞으로 심바가 통치할 아프리카 초원을 소개시켜주고 있다.

실사영화로 만든‘라이언 킹’ 감동은 그대로


디즈니의 돈과 기술이 있는 대로 힘을 다 낸 잘 만들고 재미있는 온 가족용 영화다. 특히 방학을 맞은 아이들이 박수를 치며 즐겁게 볼 백수의 왕 사자의 액션과 모험 그리고 가족의 끈질긴 유대관계를 다룬 교훈적인 내용마저 간직한 영화다.
이 영화는 1994년 디즈니가 만들어 빅히트를 하고 무대 뮤지컬로까지 만들어져 역시 크게 성공한 동명의 만화영화의 라이브 액션 판이다. 라이브 액션영화라곤 하지만 사자를 비롯한 동물들과 자연경관이 모두 컴퓨터로 만들어져 만화영화나 진배없다고 하겠다.
컴퓨터로 만들어진 동물들과 광대한 아프리카의 초원을 비롯한 자연의 모습이 사실보다 더 사실적이어서 보기에 황홀무아지경이지만 이런 기술적인 완벽성이 오히려 영화의 영혼을 빼앗고 있다. 지나치게 인위적인 점으로 인해 작품에 여유와 감정이 결여된 것이 흠이지만 음성연기와 노래와 음악(한스 짐머)과 촬영(케일렙 데샤넬) 등이 다 훌륭한데 특히 시각효과가 경탄을 금치 못하게 한다. 감독은 디즈니의 히트작 ‘정글 북’을 만든 존 패브로.
내용은 처음부터 끝까지 만화영화의 그 것을 그대로 답습했다. 아프리카 초원의 백수의 왕인 사자 무파사(만화영화에서도 음성연기를 한 제임스 얼 존스)가 갓난 아들 심바(JD 맥크래리)를 온 동물들에게 소개하는 장면으로 시작된다. 장난꾸러기 심바는 무럭무럭 잘 큰다.
무파사를 시기 질시하는 것이 무파사에 의해 후진 곳으로 추방돼 하이에나들을 졸개로 데리고 사는 무파사의 동생 스카(치웨텔 에지오포-만화영화에선 제레미 아이언스). 어느 날 심바가 집을 멀리 떠나 골짜기로 나들이를 나갔다가 들소 떼의 질주에 깔려죽기 직전에 무파사에 의해 구출되나 무파사는 이를 지켜보던 스카에 의해 살해된다. 그리고 심바는 아버지의 죽음이 자기 탓이라고 여기고 스카의 명령에 따라 고향을 떠난다. 이어 스카는 형의 자리를 차지한다.
집과 멀리 떨어진 곳에 도착한 어린 심바가 만나는 것이 걸맞지 않는 단짝으로 방구를 뀌는 흑멧돼지 품바(세스 로건)와 재잘대는 몽구스 타이먼(빌리 아이크너). 품바와 몽구스가 영화에 유머와 웃음을 듬뿍 쏟아 붓는다. 셋은 떨어질 수 없는 친구가 되고 심바는 여기서 아버지를 똑 닮은 우람찬 사자(도널드 글로버)로 성장한다.
집을 잊고 사는 심바를 찾아온 것이 어릴 때부터 친하게 지낸 암사자 날라(비욘세). 심바는 처음에 날라의 집으로 돌아가 스카를 몰아내고 마을에 평화를 되찾아달라는 부탁을 거절하다가 각성, 날라와 같이 고향으로 돌아간다. 심바와 날라 사이에 로맨스도 꽃 피고. 둘을 뒤따르는 품바와 타이먼. 귀향한 심바와 스카 간에 최후의 결전이 벌어지고 누가 이길지는 이미 다 아는 사실.
중요한 역을 맡은 동물들의 음성(때론 노래도 부른다) 연기가 즐거운데 무파사의 심복인 코뿔새 자주(존 올리버)도 재미있다. 만화영화의 내용을 그대로 옮겨 신선감이 모자란다. 이렇게 기시감이 느껴지는 것이 이 영화의 결점이다. PG 등급.  ★★★★(5개 만점)
                                                               <한국일보 박흥진 편집위원/ hjpark1230@gmail.com>


‘전쟁과 평화’


우리가 읽지 않고도 읽은 것처럼 생각되는 책 중의 하나가 레오 톨스토이가 쓴 ‘전쟁과 평화’(War and Peace). 특히 이 책은 내용에서 나폴레옹의 1812년 모스크바 침공을 다뤄 차이코프스키가 작곡하고 할리웃 보울에서도 불꽃놀이와 함께 자주 연주되는 ‘1812년’ 서곡과 연결되면서 더 가깝게 느껴진다.
내가 이 책을 원작으로 1956년에 미국과 이탈리아가 공동 제작한 동명의 영화를 본 것은 고등학생 때였다. 헨리 킹이 감독하고 오드리 헵번과 헨리 폰다와 멜 퍼러(당시 헵번의 남편이었다)가 주연한 상영시간 208분짜리 영화에는 비토리오 가스만, 아니타 에크버그, 허버트 롬 및 오스카 호몰카 등 기라성 같은 국제적 배우들이 앙상블 캐스트로 나온다.
이 대하 서사극은 이탈리아의 두 거물급 제작자들인 디노 데 라우렌티스와 칼로 폰티(소피아로렌의 남편)가 만들고 음악과 촬영 역시 그 부문의 최고들인 이탈리아의 니노 로타(‘길’ ‘대부’)와 영국의 잭 카르디프(‘흑수선’ ‘분홍신’)가 맡았으나 겉으로 보기엔 화려하지만 내용이나 인물의 성격 묘사에 있어서는 깊이가 모자란다. 특히 다소 우유부단하고 어리숭하나 선한 마음을 지닌 피에르 베주코프(피에르는 난봉꾼 도박사에서 사회개혁자요 인본주의자로 변신한 톨스토이 자신이 모델이라고 한다)  역의 폰다와 완고하나 영웅적인 안드레이 볼콘스키 역의 퍼러가 역에 어울리지가 않아 보기에 어색했다. 미국에서 평과 흥행이 다 신통치 못했다.
그런데 이 영화는 미^소간 냉전이 치열하던 당시 문화교류 프로그램의 일환으로 소련에서 상영되면서 수백만 명이 관람하는 인기를 모았는데 특히 관객들은 정열적이요 자유혼을 지닌 나타샤 로스토바 역의 헵번을 사랑했다고 한다.
이에 뿔이 난 것이 소련정부. 조국의 국보급인 작가의 소설을 적국에서 영화로 만들어 소련시민들의 큰 호응을 받은 것에 자존심을 상한 소련정부가 미국 판 보다 훨씬 더 크고 훌륭한 영화를 만들기로 작심하고 만든 것이 소련의 유서 깊은 모스필름이 1966년-67년에 걸쳐 제작한 상영시간 422분짜리 ‘전쟁과 평화’(사진)다.
얼마 전에 이 영화를 봤다. 보기 전에 전투에 임하는 것처럼 마음준비를 했다. 결점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대단한 작품이다. 베테런 배우로 이 영화 전에 단 한편의 작품을 연출한 세르게이 본다르추크가 감독했는데 역사적 사실에 집념하면서 준비기간만 톨스토이가 소설을 쓰는데 걸린 시간과 같은 6년이 걸렸다. 배우 선정에 걸린 시간만 1년이며 대사를 구사하는 배우들이 300여명에 이르는 거대한 작품이다. 
소련의 자존심이 걸린 영화이니만큼 정부의 전폭적인 지원을 받았다. 제한 없는 제작비와 전쟁장면을 찍는 공중촬영을 위한 군용기와 헬기들 그리고 15,000여명의 군인들이 엑스트라로 동원됐으며 국내 유명 미술관들의 귀중한 소장품들이 소품으로 사용됐다.         
영화에서 비극적 영웅인 피에르로 나오기도 하는 본다르추크는 포화가 불을 뿜는 장렬한 전투장면과 세인트 피터스버그의 전쟁에 무관심한 귀족들의 화려한 모습과 세 주인공 피에르와 안드레이(비야체슬라프 티코노프)와 나타샤(19세의 발레리나 류드밀라 사벨리에바가 헵번을 쏙 빼 닮았다)의 사랑과 삶을 교차해 보여주면서 드라마를 이끌어간다. 주인공들의 연기와 함께 이들의 인물과 성격묘사도 매우 훌륭하다.
특히 눈부시게 유려하고 화사한 것은 롤러스케이트를 탄 카메라맨들이 카메라를 손에 들고 찍은 나타샤가 소개되는 대무도회장면. 경탄을 금치 못할 유려하고 아름다운 장면이다. 추하고 쓰라린 전쟁의 장면들이 압도적으로 사실적이며 이와 함께 귀족들의 위풍당당한 모습 그리고 세 주인공들의 삼각관계가 교차해 파노라마를 일으키면서 보는 사람에게 드라마의 심리적 감정적 진동을 느끼게 만든다. 복잡한 부 주제들인 정치와 종교와 철학 등을 얘기할 때에는 영화가 다소 처지긴 하지만 아찔하니 거대한 느낌을 겪게 된다.
영화는 *안드레이와 피에르의 소개와 함께 전쟁이 벌어지는 ‘안드레이 볼콘스키’(Andrei Bolkonsky) *나타샤가 소개되는 ‘나타샤 로스토바’(Natasha Rostova) *나폴레옹의 모스크바 침공을 다룬 ‘1812년’ 및 * 전쟁에서 부상을 입은 안드레이의 사망과 피에르와 나타샤의 결합을 다룬 ‘피에르 베주코프’(Pierre Bezukhov) 등 모두 4부로 진행된다.
‘전쟁과 평화’는 소련서 개봉되면서 관객들의 뜨거운 반응을 받았다. 그러나 본다르추크의 동료 영화인들이 시기로 감독과 영화를 따돌리면서 영화가 점차 관객들로 부터도 외면을 받고 그 후 수 십 년 간 잊혀 지다 시피 했다.
그러나 시간이 흐르면서 영화는 신화적 자리에 오르게 되고 마침내 2000년대에 들어 모스필름의 지도자들에 의해 복원돼 재생하게 된다. 이 복원사업을 적극적으로 지원한 사람 중의 하나가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다. 그는 “조국의 타당한 애국적 문화회복을 원 한다”면서 ‘전쟁과 평화’의 복원사업을 밀었다.
영화는 아카데미와 골든 글로브 외국어 영화상을 받았다. ‘전쟁과 평화’가 크라이티리언(Criterion)에 의해 디지털로 복원돼 최근 DVD와 블루-레이로 나왔다. 한번 볼만한 방대하고 장려한 역사적 걸작이다.         
                                                              <한국일보 박흥진 편집위원/ hjpark1230@gmail.com>


‘칸피덴셜 칸피덴셜’


“우리 모두 그 주간지 읽어요. 내용이 좋아서가 아니라 우리 이름이 거기에 났는지 알아보기 위해서지요.” 왕년의 할리웃의 수퍼스타 말렌 디트릭이 말한 이 격주간지는 1950년대 할리웃스타들의 스캔들 폭로로 악명을 떨친 ‘칸피덴셜’(Confidential)을 일컫는 말이다.
여자들의 야한 사진 잡지로 돈을 번 로버트 해리슨이 1952년 뉴욕에서 창간한 ‘칸피덴셜’은 할리웃 스튜디오들이 로맨틱한 가짜 이미지로 미화한 스타들의 문란한 섹스와 비행과 죄를 적나라하게 폭로해 스타들을 공포에 떨게 만들었던 잡지다.
잡지는 인기절정에 이른 1956년 가판판매부수가 무려 500여만 부를 기록하면서 타임과 라이프 같은 잡지들을 앞서갔었다. ‘칸피덴셜’은 요즘의 가십전문지들인 ‘스타’ ‘인콰이어러’ ‘어스’ 및 TV프로 TMZ의 선구자인 셈이다.
이 잡지의 내막을 파헤친 책 ‘칸피덴셜 칸피덴셜’(사진)을 재미있게 읽었다. 법학교수이자 할리웃에 관한 여러 권의 책을 낸 새만사 바바스가 쓴 책은 잡지의 내막을 해부하듯이 심층 분석하면서 아울러 할리웃 황금기 스타들의 비사를 상세히 적어 흥미만점이다.
해리슨은 기사 취재를 위해 할리웃에 해리슨 리서치사 까지 차려놓고 스타들의 스캔들을 수집했다. 해리슨은 후한 대가를 지불하면서 사립탐정, 창녀, 발레, 바텐더, 웨이터, 미용사, 하녀, 영화계 종사자 그리고 경찰과 스타들의 전처와 전남편 등으로부터 스타들의 비행을 수집한 뒤 야단스런 수식어를 가미해 대서특필, 많은 스타들을 벌벌 떨게 하면서 할리웃을 군림했었다. 
이 잡지에 의해 망신과 해를 입은 스타들은 한 두 명이 아니다. 프랭크 시내트라, 에이바 가드너, 라나 터너, 록 허드슨, 탭 헌터, 로버트 미첨, 밴 잔슨, 루실 볼과 남편 데지 아네스, 버트 랭카스터, 마릴린 몬로와 야구선수 남편 조 디매지오, 앨란 래드, 메이 웨스트, 클라크 게이블, 게리 쿠퍼, 말렌 디트릭, 에롤 플린, 킴 노백 및 리베라치 등 외에도 많은 스타들이 곤욕을 치렀다.
일반인들이 우상처럼 여기는 스타들의 뒷사정을 엿보는 것처럼 짜릿한 흥분 감을 겪는 일도 흔치 않아 ‘칸피덴셜’의 인기가 천정부지로 치솟자 해리슨은 런던에 까지 지사를 설립했을 정도다.
당시만 해도 스타들을 자기 회사 직원들처럼 고용했던 스튜디오들에게 ‘칸피덴셜’은 눈엣 가시였으나 이들은 잡지를 모른 척 하면서 오히려 때론 잡지에 자사 스타들의 비리에 대한 정보까지 제공했다. 수퍼 스타들의 비밀 폭로를 막으려고 B급 스타들의 어두운 과거를 흘리는 야비한 짓을 자행했다. ‘칸피덴셜’이 록 허드슨의 동성애사실을 폭로하려고 하자 스튜디오는 이를 잘 나가던 B급 스타 로리 칼훈의 전과기록과 교환, 허드슨을 살려냈다.
‘칸피덴셜’의 기사에 시달리다 못한 할리웃의 6개 스튜디오들은 공동으로 자금까지 모아 잡지의 침몰을 시도하기도 했지만 상호 이해관계로 인해 실패했다. 두 스타 로버트 미첨과 에롤 플린도 용감히 ‘칸피덴셜’을 상대로 소송을 제기했으나 별무소득으로 끝났다.
마침내 1957년 캘리포니아주 검찰은 스튜디오와 스타 그리고 일부 여론의 압박에 몰려 ‘칸피덴셜’을 허위보도와 명예훼손 등 혐의로 기소를 했다. 검찰 측 증인들은 게리 쿠퍼, 빨강머리 모린 오하라, 동성애자인 탭 헌터 및 라나 터너였는데 결과는 재판무효.
검찰 측은 ‘칸피덴셜’에 당한 스타들을 증인으로 소환하려고 했으나 많은 스타들이 멕시코로 휴가를 간다는 등 이 핑계 저 핑계를 대면서 이를 회피했다. 법정에 나가봤자 자신들의 아름답지 못한 과거들만 다시 한 번 광고하는 셈 이였기 때문이다.
‘칸피덴셜’은 동성애를 혐오하고 인종차별적이며 또 여성비하를 마다 않았지만 해리슨은 자신의 잡지가 로맨틱한 허위로 치장한 스타들의 실체를 궁금해 하는 팬들의 갈증을 심층보도로 해갈시켜 주는 미디아의 개척자라는 자부심을 느꼈다. 비록 잡지가 옐로 저널리즘이긴 했으나 공인인 스타들의 성적 위선을 비롯한 온갖 비리를 폭로함으로써 스튜디오가 쓴 이들의 ‘신화’를 여지없이 파괴, 나름대로 어느 정도 언론의 사명을 한 셈이다.
그러나 스튜디오들이 공들여 쌓은 스타들의 이미지를 파괴하면서 미디아왕국의 첨병이 된 ‘칸피덴셜’은 1956년 중반 들어 인기 하락의 길로 접어든다. 잡지의 무리한 확장과 보수파들의 집요한 반발 그리고 잡지를 본 받아 우후죽순 격으로 생겨난 30여개의 스캔들 전문지 범람에 독자들이 실증을 느꼈기 때문이다. 해리슨은 재판무효 판결 후 1958년 가십전문의 내용을 완전히 바꿔 새 체제로 잡지를 발행했지만 독자들의 외면을 받아 세 차례 발행 후 문을 닫았다
‘칸피덴셜’의 얘기는 1997년 커티스 핸슨이 감독하고 러셀 크로우, 가이 피어스, 케빈 스페이시 및 킴 베이신저(오스카 조연상 수상) 등이 공연한 뛰어난 필름 느와르 ‘L.A. 칸피덴셜’에서  상세히 묘사됐다. 이중성과 비행의 도시 LA와 옐로 저널리즘의 어두운 이면을 아름답고 폭력적으로 가차 없이 파헤친 영화에서 ‘칸피덴셜’은 ‘허쉬-허쉬’로 그리고 해리슨은 대니 드비토가 연기한 시드 허젠스로 대체됐다. 책과 함께 영화를 보면 배로 재미가 있을 것이다.                                                                                                <한국일보 박흥진 편집위원/ hjpark1230@gmail.com>


2019년 7월 19일 금요일

‘작별’(Farewell)


한국계 코미디언 아콰피나가 주연을 맡은 빌리(앞줄 가운데)와 할머니(빌리 옆 오른쪽)를 둘러싸고 25년 만에 재회한 가족들이 앉아 있다.

할머니 죽음 앞두고 모인 이민 중국인 가족이야기


미국과 일본으로 이민 온 중국인 가족들이 집안의 기둥이나 다름없는 할머니의 사망을 앞두고 오래간 만에 함께 모여 먹고 마시고 떠들면서 가족 간의 유대와 사랑을 확인하는 달콤하면서도 신맛이 나는 가족 코미디 드라마다. 역시 중국인 가족들의 얘기인 ‘결혼 피로연’과 ‘조이 럭 클럽’ 및 ‘크레이지 리치 아시안’ 등을 연상케 하는데 ‘크레이지 리치 아시안’에서 코믹한 연기를 뛰어나게 한 한국계 코미디언 아콰피나(본명은 노라 럼으로 중국계 아버지와 한국계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났다)가 주연을 맡아 앙상블 캐스트의 영화를 이끌어간다.         
아콰피나의 어머니는 딸이 6세 때 사망해 그 후 아콰피나는 친할머니가 키웠는데 영화의 중심 내용이 할머니를 극진히 사랑하는 손녀와 역시 손녀에 대한 사랑이 지극한 친할머니와의 관계를 다뤄 아콰피나의 연기가 더 사실적인 것 같다. 감독하고 각본을 쓴 사람은 중국계 룰루 왕으로 그의 경험을 다룬 반 자전적 작품이다. 
중국 사람들이어서 잘들도 먹는데 이렇게 먹고 마시고 왁자지껄하니 떠들어대는 장면이 계속돼 다소 극적 추진력이 미흡하고 단조롭기는 하지만 매우 감정적이요 민감하게 가족관계와 문화와 세대갈등 그리고 전통과 현대화의 불균형 같은 내용을 다루고 있다. 우습고도 감상적인데 한국인들에게는 특별히 어필할 작품이다.          
빌리(아콰피나)는 6세 때 중국 장춘에서 부모와 함께 미국으로 이민 와 뉴욕의 브루클린에서 성장한 작가지망생. 빌리의 어머니 지안(다이애나 린)은 생활에 헌신하다보니 감정이 무뎌졌고 애주가인 아버지 하이안(치 마)은 천하태평형. 영화는 빌리가 장춘에 사는 친할머니 나이 나이(자오 슈젠)와 셀폰으로 통화하는 장면으로 시작된다. 빌리와 나이 나이는 못 본 지가 오래 됐지만 이렇게 끈질기게 관계를 유지하고 있다.
나이 나이가 기침이 심해 여동생 리틀 나이 나이(루 홍)과 함께 병원에 가 CT촬영을 한다. 의사는 리틀 나이 나이에게 언니가 폐암으로 앞으로 3개월 밖에 못 산다고 통보한다. 리틀 나이 나이는 이를 언니에겐 알리지 않고 빌리 네와 일본으로 이민 간 하이안의 형 하이빈(지앙 용보) 가족에게 통보한다. 
그래서 온 가족이 25년 만에 처음으로 모두 한 자리에 모이는데 핑계는 하이빈의 아들 하오 하오(첸 한)와 그가 만난 지 3개월 밖에 안된 일본인 애인 아이코(아오이 미주하라)의 벼락치기 결혼. 엉겁결에 급조된 결혼식을 올리게 된 한 쌍을 놓고 벌어지는 코미디가 재미있다. 매사에 리더 노릇을 안 하면 몸살이 나는 나이 나이의 진두지휘 하에 성대한 결혼식을 준비하느라 시끌벅적하다. 한편 나이 나이는 할머니에게 사실을 숨기는 것이 못 마땅해 속을 썩이고 항의를 하지만 가족들의 뜻을 따르기로 한다. 
아콰피나가 듬직한 연기를 하면서 영화를 어깨에 짊어지다시피 하는데 그를 둘러싼 앙상블 캐스트도 아주 좋은 연기를 한다. 특히 자오 슈첸과 치 마의 연기가 돋보인다. 촬영도 좋다. PG등급. ★★★½ (5개 만점) 
                                                              <한국일보 박흥진 편집위원/ hjpark1230@gmail.com>



‘미드솜마’(Midsommar)


대니(오른쪽서 두번째)가 크리스천의 기상천와한 행위를 보고 대성통곡하자 마을 여인들이 함께 통곡하고 있다.

공동생활촌 축제 중 벌어지는 한여름의 공포·악몽


제목은 스웨덴어로 한 여름을 뜻하는데 이 영화는 한 여름 작렬하는 태양 아래서 눈을 뜨고 꾸는 악몽이다. 
감독 겸 각본을 쓴 아리 애스터의 재주 자랑이 장난이 지나치다시피하다고 여기질 만큼 변덕을 부리는 공포영화로 과다하게 끔찍한 장면(눈 뜨곤 못 본다)을 사용해 영화의 내용은 물론이요 흥미를 오히려 저해한다.
뭐라고 정의 내리기가 힘든 영화로 북구라파의 민화요 전설 같기도 하고 피범벅 변태적인 동화이기도 한데 영화가 잘 나가다가 어디로 빠진다는 식으로 흥미를 자극하는 얘기를 서술하다가 돌연 너무 터무니가 없어 폭소가 터져 나올 정도로 잔인하고 해괴한 내용을 섞어 넣어 “또 저러네. 별짓 다하네”하는 소리가 절로 나온다. 
스타일과 무드가 얘기를 앞지르고 배우들의 역이나 성격 묘사가 충분히 개발 되진 못 했지만 보면서도 도저히 믿지 못 하겠다고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게 만드는 해괴망측하고 이상하고 얄궂은 영화다. 그러나 상영시간 2시간 26분을 충분히 즐길 수 있는 작품이다. 보기 전에 마음 단단히 간직할 각오들을 하도록 충고한다. 
외지인을 산 제물로 바치는 공동 생활촌의 컬트영화라고 하겠는데 삶의 순환 같은 철학적인 소리도 하고 있지만 그 것은 괜한 소리. 
주인공인 젊은 여자 대니(플로렌스 퓨)의 끔찍한 가족 비극으로 시작된다. 이로 인해 대니는 슬픔과 고통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시달린다. 그에겐 대학원생으로 인류학 논문을 준비 중인 애인 크리스천(잭 레이노)이 있는데 둘의 관계는 파경 직전에 이른 상태. 크리스천은 다소 감정이 둔해 대니의 아픔 달램에 별 도움이 못 된다. 
크리스천에게는 3명의 친구가 있는데 이들은 역시 인류학을 공부하는 진지한 조쉬(윌리엄 잭슨 하퍼)와 스웨덴에서 유학 온 펠레(빌헬름 블롬그렌)와 막돼먹은 마크(윌 풀터). 이들은 펠레의 초청으로 그가 자란 스웨덴의 공동 생활촌으로 여행을 떠난다. 여기에 대니가 합류한다. 그리고 이들의 2주간의 여름 여행은 악몽과 공포와 유혈참극으로 끝난다.
모두 얇은 백의를 입고 머리에 화관을 두른 채 친절한 미소를 짓는 마을 사람들은 외지인들을 반갑게 맞는다. 크리스천 등은 환각상태를 유발하는 약초를 서비스 받으며 여름의 목가적 분위기를 즐기는데 마을은 9일간의 여름 축제를 시작한다. 그리고 축제과정의 하나로 방문객들은 차마 눈 뜨고 못 볼 끔찍한 일을 목격한다. 이들이 그 후에도 마을을 왜 안 떠나는지 알다가도 모를 일. 역시 외지인인 펠레 동생의 영국인 친구와 그의 애인은 짐을 꾸려 마을 떠나나 그 후 행방불명이 된다. 
축제가 계속되면서 크리스천 일행은 기상천외한 일들을 목격하는데 이어 동네 처녀의 유혹을 받은 마크가 사라지고 그 다음 희생자는 조쉬. 그러나 대니는 쓰러질 때까지 춤을 춰야하는 댄스(상-상스의 교향시 ‘죽음의 댄스’가 들려오는 것 같다)에서 이겨 ‘메이 데이’ 여왕이 되면서 제물로 바칠 마을 사람들의 생사여탈권을 갖는다. 처음에 크리스천 일행이 마을에 도착했을 때 우리에 갇힌 거대한 누런 곰을 보게 되는데 이 곰의 역할은 영화 끝에 끔찍하면서도 폭소가 터져 나올 만큼 해괴한 용도로 쓰여진다. 마지막 대니의 웃어야 할지 울어야 할지 모르겠다는 표정이 영화를 본 필자의 느낌을 대변한다. 촬영과 함께 음악과 음향효과가 아주 좋다. R등급. A24배급. ★★★½ (5개 만점) 
                                                             <한국일보 박흥진 편집위원/ hjpark1230@gmail.com>



‘마르탕 게르의 귀환’(The Return of Martin Guerre)


베르트랑드는 9년 만에 귀환한 남편 마르탕을 반갑게 맞는다.

전쟁 나갔다 9년만에 돌아온 남편이 가짜? 스릴 넘치는 기상천외 프랑스영화


재미있게 지어낸 전설과 같은 얘기인데 실화다. 신분 도용에 관한 이상하고 얄궂은 미스터리 드라마로 흙냄새가 물씬 풍기는 토속적인 실화인데도 내용이 하도 기상천외해 초현실적 분위기마저 느껴진다.
흥미진진한 옛날 애기를 듣는 것 같은데 시간이 갈수록 서스펜스와 스릴마저 갖추면서 결과가 과연 어떻게 될까하고 긴장하게 만든다. 일종의 재판 드라마이기도 한데 이와 함께 16세기 중엽 프랑스의 농촌의 모습과 가족관계, 결혼의 신성 및 교회의 역할 그리고 재산과 돈에 관한 역사도 함께 알아 볼 수 있는 재미있고 유익한 프랑스 작품이다. 
1549년 프랑스 남부 피레네산맥 아래 농촌 마을 아티가. 근면하고 아름다운 아내 베르트랑드(나탈리 바이가 고혹적이다)와 어린 아들을 둔 마르탕은 농사에는 관심이 없고 전쟁에 나가 세상 구경이 하고파 안달이 났다. 그리고 마르탕은 어느 날 아내와 아들과 부모를 버리고 사라진다. 
그로부터 9년 후 마르탕(제라르 드파르디외)이 느닷없이 귀환한다. 동네 사람들은 처음에 많이 달라진 마르탕을 거리를 두고 대하다가 마침내 받아들인다. 그리고 베르트랑드도 마르탕과 포옹을 나눈다. 마르탕은 과거와 달리 근면하게 일하면서 아내와의 사이에 아이까지 낳고 행복하게 산다. 그리고 전쟁에서 겪은 경험을 재미있게 마을 사람들에게 들려주면서 주민들의 큰 환심을 산다. 
그런데 마르탕이 자기 없는 동안 자기 농토를 돌본 삼촌 피에르(모리스 바리에)에게 자기 땅으로 번 돈을 내놓으라고 요구하면서 친척 간에 반목이 생기고 이 반목은 마을 사람들에게로 까지 번진다. 어느 날 마을에 떠돌이 세 명이 도착해 마르탕을 보더니 그가 마르탕이 아니라 마르탕과 함께 전쟁에 나갔던 아르노라고 마을 사람들에게 밝힌다. 진짜 마르탕은 한 쪽 다리를 잃은 채 플란더스에서 살고 있다는 것이다. 
물론 마르탕은 이를 부인하나 조카에게 앙심을 품은 피에르가 마르탕을 가짜라고 고소하면서 재판이 열린다. 재판에서 마르탕이 자기 결혼과 마을에 관한 질문에 대해 정확히 대답하면서 승소한다. 그러나 피에르가 얼마 후 다시 마르탕을 고소하면서 두 번째로 재판이 열리고 여기서 극적인 일이 일어난다. 
돌아온 마르탕은 진짜인가 아니면 가짜인가. 가짜라면 어떻게 해서 아내가 그 것을 모를 수가 있을까. 대답은 재판에서 나온다. 드파르디외가 차분하게 연기를 잘하고 바이도 조용하나 알찬 연기다. 촬영과 이미지도 마치 한 폭의 농촌화를 보는 것 같다. 1982년 작으로 새 프린트로 재개봉된다. 이 영화는 1993년 리처드 기어와 조디 포스터 주연의 ‘소머스비’로 리메이크됐다. ★★★★½ (5개 만점) 
                                                             <한국일보 박흥진 편집위원/ hjpark1230@gmail.com>



‘예스터데이’(Yesterday)


수퍼스타 가수가 꿈인 잭이 동네 후진 술집에서 노래를 부르고 있다.

비틀즈 없는 시대로 간 가수지망생
환상을 그린 뮤지컬 로맨틱 코미디


제목에서 알 수 있듯이 이 영화는 비틀즈에게 바치는 헌사와도 같다. 비틀즈 노래가 계속해 나오는 뮤지컬 로맨틱 코미디 환상영화로 터무니없는 얘기지만 보고 즐길 만한 영국영화다.
감독은 ‘슬럼독 밀리어네어’를 만든 대니 보일이고 각본은 달짝지근한 로맨스 영화들인 ‘노팅 힐’과 ‘러브, 액추얼리’를 쓴 리처드 커티스.
커티스의 이런 영화들처럼 내용이 사카린 맛이 나고 관객에게 아첨하듯이 알록달록 겉치장을 한데다가 감상적이긴 하나 비틀즈의 노래를 들으면서 향수감에 젖어볼 만한 영화다.
런던 서부에 살면서 수퍼마켓 창고에서 일하는 인도계 영국청년 잭 말릭(히메쉬 파텔)은 유명 가수 겸 작곡가가 되는 것이 꿈. 그래서 저녁과 주말이면 동네 후진 술집에 나가 노래를 부른다. 잭을 적극 후원하는 사람이 학교 때부터 친구이자 팬으로 그의 매니저 노릇을 하는 엘리(릴리 제임스). 그런데 엘리는 잭을 속으로 사랑한다.
어느 날 전 세계가 잠깐 정전이 되는 순간 잭은 교통사고를 당해 병원에 입원한다. 잭이 깨어나 보니 과거 시간과 공간에 변동이 생겨 아무도 비틀즈가 누구인지를 모른다. 잭이 엘리와 친구들 앞에서 비틀즈의 ‘예스터데이’를 부르니까 친구들이 “너 어떻게 해서 이런 멋진 노래를 작곡했느냐”며 경탄한다. 잭이 구글을 두들겨 보니 ‘비틀즈’는 딱정벌레라고 나온다. 그룹 비틀즈의 스펠링은 Beatles이고 딱정벌레의 그 것은 Beetles이다.
잭은 이제야 말로 출세와 부의 문이 열렸다고 생각하고 비틀즈의 노래들을 자기 것으로 소개하면서 노래 부른다. 잭이 비틀즈의 많은 히트곡들의 가사를 다 못 외워 쩔쩔매는 모습이 재미있다. 
잭의 노래를 듣고 접근한 사람이 유명 가수 에드 쉬란(실제 영국의 가수인 쉬란이 캐미오로 나온다). 쉬란은 잭을 자기 순회공연의 백업가수로 기용하는데 자기가 잭보다 재능이 떨어진다는 것을 알고 잭을 시샘한다.
잭의 노래 실력이 점차 널리 알려지면서 잭을 찾아온 사람이 할리웃의 비도덕적인 에이전트 한나(케이트 맥키논). 그리고 둘은 음악사상 최고의 앨범을 발매할 준비에 들어간다. 잭의 인기가 전 세계적으로 퍼지면서 잭은 명성과 부에 눈이 멀어 자기를 믿고 후원하던 엘리에 대해 소홀히 하면서 착한 엘리가 가슴앓이를 한다.
‘예스터데이’를 비롯해 ‘헤이 주드’(쉬란은 ‘주드’를 멋쟁이의 속어인 ‘듀드’로 바꾸자고 제안한다), ‘백 인더 U.S.S.R.’, ‘아이 쏘 허 스탠딩 데어’ 및 ‘아이 와나 홀드 유어 핸드’ 등 비틀즈의 노래들이 줄줄이 나온다. 파텔이 명창은 못되지만 직접 노래를 부르는데 연기도 귀염성 있게 한다. 그러나 제임스는 다소 충분히 사용되지 못한 감이 있다. PG-13 등급. Unversal. ★★★ (5개 만점)
                                                             <한국일보 박흥진 편집위원/ hjpark1230@gmail.com>


2019년 7월 18일 목요일

‘토이 스토리 4’(Toy Story 4)


우디(중간)와 보 피프(우디 왼쪽)와 로켓맨 버즈 라이트이어 등은 새 장난감 포키(맨 앞)와 함께 액션과 모험을 즐긴다.

새 장난감 캐릭터 등장… 더 신나는 액션과 모험


만화영화를 만드는 픽사(디즈니 소유)가 ‘토이 스토리’ 제1편을 만든 것이 24년 전인 1995년이고 제3편이 나온 것이 근 10년 전으로 이 시리즈는 제3편을 끝으로 할 얘기는 다 했었다. 그런데도 제4편을 만든 것인데 새 내용과 함께 새 인물(장난감)들을 등장시켜 야단스럽고 신나고 활기 왕성한 온 가족이 즐길 작품을 내놓았다.
영화에서 카우보이이자 셰리프인 우디 역을 음성 연기한 탐 행크스와의 인터뷰에서 “제5편에도 돌아올 것이냐”고 물었더니 “물론이지”라고 대답을 한 것을 보면 제5편을 만들 것임에 분명하다.
속도 빠르고 아이들이 장난치듯이 시끄럽고 요란하며 쫓고 쫓기는 액션과 모험이 가득하고 우습고 위트 있고 상상의 날개를 활짝 편 영화로 교훈적이기까지 하다. 두 번째의 기회와 세상에는 쓸모없는 것이 없다는 것을 강조하고 있는데 아이들에겐 좋은 가르침이다.
우디와 로켓맨 버즈 라이트이어(팀 알렌 음성) 등 구면인 주인공들 외에 새 장난감들이 많이 소개되는데 그 중에서 가장 재미있는 것이 캐나다의 ‘이블 크니블’인 모터사이클 스턴트맨으로 나르시스트인 듀크 카붐. 키아누 리브스가 음성 연기를 아주 우습게 잘 한다.
우디와 버즈 및 둘의 동료들의 첫 주인인 앤디는 이제 대학에 가고 이들의 새 주인은 유치원에 막 들어갈 바니(매들렌 맥그로 음성). 그런데 바니는 유치원 들어갈 생각에 매달려 우디 등에 영 관심이 없다. 이로 인해 우디와 그의 동료들은 맥이 빠졌지만 낙천적인 우디는 자신들의 때가 오리라고 확신한다.
그런데 바니가 유달리 애착을 가지는 인형이 쓰레기통에서 꺼낸 플래스틱 포크로 만든 포키(토니 헤일 음성). 이 포키가 실종되면서 우디 등이 이를 찾느라고 난리법석이 일어난다. 그런데 필자가 보기엔 얘기의 중요한 역인 포키가 별 흥미로운 주인공이 되지 못하는데 여하튼 영화는 포키로 인해 액션과 속도를 갖추게 된다. 포키는 자기가 장난감인줄도 모르고 “나는 쓰레기야”라며 자꾸만 쓰레기통으로 들어가는데 이에 우디는 “너는 이제 쓰레기가 아니고 장난감이야”라며 교육을 시킨다. 그러니까 이 세상에 쓸모없는 것은 없다는 말씀.
바니가 유치원에 들어가기 전에 바니의 부모가 바니와 우디와 그의 동료들을 차에 싣고 마침 카니발이 열리고 있는 옛 서부마을 그랜드 베이신으로 놀러간다. 가다가 실종된 포키를 찾으러 차를 떠난 우디 등은 중고품 장난감들이 있는 가게에 들러 옛 친구인 양치기소녀 보 피프(애니 파츠 음성)와 재회한다. 이와 함께 새 인형들로 오래 방치된 말하는 인형 개비 개비(크리스티나 헨드릭스 음성)와 살인 인형 처키를 연상시키는 4개의 기분 나쁘게 생긴 신사복으로 정장한 인형들과도 만난다.
우디와 보 피프 간의 재회의 기쁨과 함께 둘이 티격태격하며 주고받는 대사가 즐거운데 둘 사이에서 로맨스 기운마저 느껴진다. 영화는 카니발이 열리고 있는 그랜드 베이신에서 본격적으로 추진력을 갖추면서 마치 롤러코스터를 탄 것처럼 어지러울 정도로 고속으로 돌아간다. 음성연기들이 일품이다. 신예 조쉬 쿨리 감독. G등급. ★★★★ (5개 만점)
                                                                  <한국일보 박흥진 편집위원/ hjpark1230@gmail.com>

‘레토’(Leto)


아름다운 나타샤를 둘러싸고 두 록가수인  나타샤의 남편 마이크(왼쪽)와 빅토르가 삼각관계를 이룬다.

구 소련 젊은이의 해방구였던 록뮤직, 빅토르 최의 음악·사랑 흑백필름에 담아


1980년대 소련 록뮤직의 개척자로 러시아 록에 지대한 영향을 미친 밴드 ‘키노’의 창설자 중 하나인 한국계 록가수이자 작곡가요 배우였던 빅토르 최에 관한 기록영화 식의 흑백 드라마로 빅토르로는 독일 태생의 한국인 배우 유태오가 나온다. 빅토르와 유태오가 매우 닮았다. 
빅토르는 공산체제 말기인 1980년대 레닌그라드를 무대로 서방세계의 록뮤직을 들여와 소련 젊은이들의 열화와 같은 인기를 받았을 뿐 아니라 자신도 서방세계의 록뮤직에 러시아적 분위기를 가미한 록뮤직을 작곡, 노래해 러시아 록에 지대한 영향을 미친 사람이었다. 1990년 교통사고로 28세로 요절했다. 
영화는 빅토르와 처음에 그를 자기 그룹 안에 받아들인 록그룹 주파크의 리드싱어 마이크 나우멘코(로만 빌리크)의 우정과 마이크의 아름다운 아내 나타샤(이리나 스타쉔바움이 광채가 난다)를 둘러싼 3각 사랑을 실화와 허구를 섞어 얘기한다. 제목은 러시아어로 여름을 뜻한다.
플롯은 없다시피 하다. 공산체제의 억압된 분위기 속에서 록뮤직으로 자유와 해방을 찾으려는 젊은이들의 반항과 음주파티 그리고 이들의 우정과 노래와 공연을 다소 에피소드식으로 보여주고 있다. 가끔 환상적인 내용을 만화로 묘사했다.
때가 때이니만큼 빅토르의 밴드는 공연할 노래의 가사를 미리 정부의 검열관에게 보여주고 허락을 받는데 공연장에도 검열관이 참석해 청중이 박수를 치거나 몸을 흔드는 것을 중지시킨다. 박정희 정부 때를 연상케 한다. 영화에는 데이빗 보위와 이기 팝의 노래 뿐 아니라 빅토르가 작곡한 노래도 나온다. 
그러나 영화는 정치성을 별로 띠진 않았다. 그보다는 러시아 록뮤직의 자초지종과 함께 젊은이들의 록에 대한 갈망과 열광을 통해 구소련의 잘 알려지지 않은 단면을 보여주고 있다. 특별한 플롯이 없다시피 하니 만큼 내용이 반복되고 후반 들어 진행이 처지는 감이 있지만 유태오의 카리스마 있는 연기를 비롯해 소련의 언더그라운드 록세계를 들여다 볼 수 있는 흥미 있는 작품이다. 어느 정도 기시감이 느껴지는 작품으로 향수감이 짙은 청춘 찬가라 하겠다.
영화의 감독 키릴 세레브렌니코프는 영화 제작 종료 직전에 예술지원금 횡령혐의로 가택연금에 처해졌는데 그의 동료들은 이 조치를 푸틴 정부의 비판자인 키릴에 대한 보복으로 간주하고 있다. 따라서 이 영화가 작년에 칸영화제서 상영됐을 때 키릴은 참석하지 못 했다. 
★★★★ (5개 만점) 
                                                                <한국일보 박흥진 편집위원/ hjpark1230@gmail.com>



‘죽은 사람들은 죽지 않는다’(The Dead Don‘t Die)


클립(왼쪽부터), 민디와 로니가 산송장들의 습격에 대비하고 있다.

셀레나 고메스 출연 화제… 좀비영화에 바치는 헌사


영화 끝에 숲속의 은둔자 밥(탐 웨이츠)이 산송장들이 마을 사람들을 씹고 뜯어먹는 것을 보면서 “인생은 X판이네”라고 한 말씀하는데 필자가 보기엔 이 영화가 그렇다. 여유만만하고 시치미 뚝 떼면서 은근히 비꼬고 웃기는 얘기를 잘 만드는 짐 자무쉬 감독이 산송장 영화에 바치는 블랙 코미디로 그가 각본도 썼다.
이와 함께 트럼프와 미국의 물질위주의 사고방식을 풍자한 작품인데 지나치게 끔찍하고 어둡고 절망적이며 또 비관적이어서 코미디가 맥을 못 추고 말았다. 어떻게 이런 영화가 올 칸영화제 개막작으로 선발되었는지는 알다가도 모르겠지만 필자가 칸영화제를 크게 신뢰하지 못하는 이유도 영화제 측이 이런 불상사 같은 일을 종종 저지르기 때문이다.
산송장에 관한 헌사이니만큼 과거 이 종류의 영화들이 언급되는데 영화 첫 장면부터 조지 로메로의 ‘산송장들의 밤’을 연상케 만든다. 그리고 F. W. 무르나우의 ‘노스페라투’와 함께 산송장 영화는 아니지만 이 영화에 나오는 모텔이 베이츠모텔을 닮아 ‘사이코’도 거론된다.
영화는 자무쉬의 은근한 자기 자랑이기도 한데 그것이 자기비하와 은근을 지나쳐 지나치게 자의식적이어서 나중에는 희롱당하는 기분마저 느껴진다. 질척거리는 설익은 밥과도 같은 영화로 이름이 잘 알려진 배우들이 무려 20명 정도 나오는데 대부분이 산송장과도 같은 어색한 연기를 하면서 소모됐다.
인구 700여명의 마을 센터빌의 경찰서 직원은 3명. 서장 클립(빌 머리)과 그의 부하들인 로니(애담 드라이버)와 민디(클로이 세비니). 셋이 다 안경을 썼다. 처음부터 자무쉬는 트럼프를 비웃는다. 동네 다이너의 손님 중 하나인 농부 밀러(스티브 부세미)가 쓴 빨간 모자에는 ‘미국을 다시 하얗게’라는 문구가 적혀있다. 그가 옆에 앉은 철물점 주인인 흑인 행크(대니 글로버)와 나누는 ‘블랙’ 농담이 웃긴다. 
클립과 로니가 라디오에서 흘러나오는 컨트리송 ‘죽은 사람들은 죽지 않는다’를 들으면서 차를 타고 순찰을 하는데 이상한 일이 생긴다. 전파가 방해되면서 셀폰 등이 작동을 안 한다. 이어 뉴스로 심각한 환경오염으로 인해 지구가 궤도를 이탈했다는 보도가 나온다. 그리고 어두워질 때가 됐는데도 낮이 밤으로 변하질 않는다.
산송장들의 때가 온 것이다. 이 때부터 영화 끝까지 동네 무덤에서 깨어난 산송장들이 주민들을 뜯어먹고 씹어 먹는데 첫 희생자들은 다이너의 웨이트리스와 여자 청소원. 영화 끝에 가면 동네 사람들이 하나도 살아남질 못한다. 산송장들이 인육을 먹는 장면들이 너무 끔찍해 무섭다기보다 역겹다. 그런데 산송장들은 “커피” “샤도네” “와이-파이”라고 한 마디씩 하면서 살아 있었을 때의 문명의 산물들을 그리워한다.
클립과 그의 두 부하 그리고 사무라이검을 휘두르는 외계인(무슨 소리냐고 필자에게 묻지 마시길) 여자 장의사 젤다(틸다 스윈턴이 돋보인다)가 엽총과 정글용 큰 칼 그리고 검을 쏘고 휘두르면 산송장들의 목이 덜컹 덜컹 날아가면서 피가 튀는데 가관이다. 로지 페레스, 이기 팝, 캐롤 케인 및 셀레나 고메스 등도 나온다. R등급. Focus. ★★½ (5개 만점)
                                                              <한국일보 박흥진 편집위원/ hjpark1230@gmail.com>


‘존 들로리안 함정수사’ (Framing John DeLorean)


존 들로리안으로 분장한 알렉 볼드윈이 들로리안이 고안한 차 본넷에 앉아있다.

자동차산업의 풍운아 들로리안의 성공과 몰락… 스릴 있게 담은 다큐영화


영화 ‘백 투 더 퓨처’에 나온 양쪽 문이 마치 비상하는 갈매기의 날개처럼 올라가는 자동차를 고안한 자동차산업의 풍운아로 이상가요 야심가였던 존 들로리안의 기록영화이자 실제 인물들의 역을 배우들이 재연한 드라마이다. 
자동차 산업의 메카였던 디트로이트에서 태어난 절세 절세미남의 들로리안은 자동차산업에 혁명을 일으키면서 자동차산업의 골든 보이로 찬양 받았지만 과도한 야망으로 인해 스스로 몰락을 자초한 극적인 인물이었다. 
영화는 들로리안의 아메리칸 드림의 추구와 성공과 실패와 몰락의 과정을 그의 TV인터뷰와 기록필름 그리고 FBI가 들로리안을 잡으려고 펼친 마약거래 장면을 담은 흑백 필름 등을 통해 상세히 해부하는 식으로 만들었다. 영화와도 같은 그의 실제 삶이 허구보다 훨씬 더 재미있는데 마치 스릴있는 전기영화를 보는 것 같다.
영화는 들로리안으로 분장한 알렉 볼드윈의 해설로 진행된다. 들로리안은 탁월한 디자이너요 기술자로 제너럴 모터스의 간부로 있을 때 기존 폰티악을 개조한 차를 만들어 베스트셀러가 됐었다. 
지나치게 자신만만한 나르시스트였던 그는 당연히 제너럴 모터스의 사장이 될 것으로 기대됐지만 그의 아이디어가 보수적인 경영진의 눈에는 지나치게 위험부담이 커 오히려 해고당했다.
그러나 들로리안은 이에 좌절하지 않고 신·구교도간에 유혈폭력이 자심하던 북아일랜드의 벨파스트에 들로리안 모터스를 설립한다. 영국정부의 자금지원을 얻어냈으나 공장은 얼마 못 가 문을 닫으면서 들로리안의 몰락이 시작된다.
재기의 꿈을 버리지 못하면서 반드시 자기의 아이디어가 꽃을 피우리라고 믿는 들로리안은 자금조달에 혈안이 되면서 FBI에게 정보를 제공하는 전과자 짐(마이클 리스폴리)의 유혹에 넘어간다. 콜럼비아의 마약딜러들과의 거래 흥정인데 이는 FBI가 들로리안을 잡으려고 파 놓은 함정이다. 그러나 들로리안은 재판에서 무죄로 풀려났다. 
영화는 들로리안의 아들과 딸, 벨파스트의 공장 근로자, 들로리안의 변호사 및 연방마약단속국의 형사를 비롯해 그를 알았던 사람들과의 인터뷰를 통해 들로리안의 파란만장했던 삶을 생생히 보여주고 들려준다. 그러나 모델출신의 그의 아내 크리스티나 페리리(모레나 바카린)는 인터뷰에서 빠졌다. 크리스티나는 들로리안이 무죄 판결을 받은 얼마 후 이혼했다. 단 아곳과 쉬나 M. 조이스 공동감독. ★★★★(5개 만점)
                                                                  <한국일보 박흥진 편집위원/ hjpark1230@gmail.com>



'레이트 나잇' (Late Night)


캐서린은 자신의 토크쇼의 시청률이 하락하면서 궁지에 몰린다.

엠마 탐슨과 민디 케일링‘콤비’
TV 토크쇼 뒷얘기 다룬 코미디


두 여자가 주인공인 코미디 드라마로 보고 즐길 만은 하지만 내용이 다소 비현실적이고 끝도 만사형통 식으로 마감돼 어딘가 맥이 빠진다.
요즘도 논란거리가 되고 있는 남성과 백인 위주의 직장(특히 연예계) 내 여성과 소수계의 권리와 균형을 다룬 점이 돋보인다.
오스카상을 탄 영국의 연기파 엠마 탐슨과 인도계 미국인 코미디언 민디 케일링이 좋은 콤비를 이루며 호연을 한다. 탐슨이 의기양양하게 뽐을 내면서 화면을 주름 잡으면 케일링이 조심스럽고 기죽은 듯한 모습으로 탐슨의 뒷바라지를 한다.
각본은 케일링이 썼고 감독은 ‘걸스’와 케일링이 주연하는 ‘민디 프로젝트’ 등 TV작품을 연출한 여류 니샤 가나트라. 영화 내용이 TV쇼에 관한 것이어서 TV통인 가나트라에겐 잘 맞는 작품이다.
무대는 맨해탄. 인기 야간 코미디 토크 프로 ‘투나잇 위드 캐서린 뉴베리’의 사회자는 영국 태생의 위풍당당한 캐서린(탐슨)으로 나이는 56세. 캐서린 밑에는 10여명의 쇼 대사를 써주는 미 명문대 출신의 사람들이 있는데 모두 백인 남자들. 이들이 찧고 까불고 농담하는 부분이 너무 많은데 시간 낭비일 뿐 아니라 천편일률적이며 별로 우습지도 재미있지도 않다. 캐서린은 이들 위에 여왕처럼 군림하는데 수틀리면 즉석에서 해고를 하면서 힘을 과시한다. 그러나 캐서린의 이런 행동은 설득력이 부족하다.
캐서린의 문제는 한때 드높던 시청률이 자꾸 하락하는 것. 특히 젊은 층이 TV 대신 소셜 미디어 등 다른 매체로 이동하면서 낡고 구태의연한 캐서린의 쇼를 외면하는 바람에 캐서린은 궁지에 몰린다. 그래서 캐서린은 궁여지책 끝에 유튜브로 센세이션을 일으킨 젊은 남자를 고용하나 대재난이나 다름없는 결과만 낫는다.
이와 함께 캐서린의 쇼 대사를 써주는 팀이 백인 남자 일색이라는 비판을 받으면서 캐서린은 마지못해 여자 작가를 모집한다. 이에 응모하는 사람이 브루클린의 동네 클럽에서 스탠드업 코미디언으로 활동하는 몰리(케일링). 
유색인종 여자가 백인 남자 일색의 팀에 합류했으니 그 대우가 어쩔지는 명약관화한 일. 그리고 캐서린도 마지못해 뽑은 몰리 알기를 우습게 안다. 그러나 몰리가 서서히 실력발휘를 하면서 팀의 동료들과 캐서린으로 부터 인정을 받기 시작하나 잘 나가던 과정에서 문제가 발생, 몰리는 해고를 당한다.
시청률의 계속되는 하락과 함께 캐서린이 과거 잠깐 저지른 불륜행위가 밝혀지면서 캐서린과 파킨슨병을 앓는 남편(잔 리트가우)과의 갈등이 생기고 캐서린은 쇼무대에서 내려온다. 죽을 지경인 캐서린이 찾아가는 곳이 몰리가 쇼를 하는 클럽. 그 다음은 어떻게 될지는 삼척동자도 아는 일.
현실적인 얘기를 다뤘는데도 사실적이라기보다는 TV 코미디 프로 같지만 여자팬들에게 어필할 영화다. R등급. ★★★ (5개 만점)
                                                              <한국일보 박흥진 편집위원/ hjpark1230@gmail.com>


‘로켓맨’(Rocketman)


깃털로 장식된 야단스런 의상을 입고 커다란 안경을 쓴 엘튼 존이 공연장에서 노래 부르고 있다

록가수 엘튼 존의 파란만장한 삶을 뮤지컬로


‘로켓맨’을 노래 부른 영국의 수퍼스타 록가수 엘튼 존(72)의 전기영화로 과도하고 과장되고 과격하도록 화려하고 요란하며 야단법석을 떠는 뮤지컬이다. 작년에 나온 록그룹 퀸스의 리드싱어 프레디 머큐리의 삶을 그린 ‘보헤미언 랩소디’와 비교하면 사람의 감정을 휘몰아 감는 감동이 미흡하다.
엘튼이 생각하고 말하는 내용을 노래와 춤을 섞어 환상적으로 묘사한 뮤지컬인데 이런 환상적인 장면이 자주 등장하면서 파란만장한 삶을 산 엘튼의 생애를 극적으로 서술하는 것을 방해하고 있다. 이로 인해 영화는 시각적으로는 눈부시지만 극적으로는 소외감을 갖게 만든다.
그러나 이 영화는 에너지 충만하고 흥분되고 대담무쌍하며 엘튼의 수많은 노래들과 눈이 어지럽도록 화려하고 다채로운 의상 등 보고 듣고 즐길만한 작품이다. 특히 영화에 활화산 같은 불길을 일으키는 것이 엘튼 역을 맡은 영국배우 태론 에저턴(29·‘킹스맨’)의 연기다. 변화무쌍하고 정력적인 연기로 노래도 자신이 직접 불렀다. 
붉은 악마를 연상케 하는 세퀸으로 장식하고 깃털로 만든 날개가 달린 붉은 의상에 커다란 안경을 쓴 엘튼이 약물과 알코올 중독자 치료소에 보무당당하게 걸어 들어와 치료소의 다른 환자들에게 자기 신세타령을 하면서 영화가 시작된다. 영화는 가끔 이 장면으로 돌아와 엘튼의 여러 문제들인 술과 약물과 섹스와 쇼핑과 비만 그리고 성적 정체성에 대한 고뇌와 고독과 불안과 소외의식 등이 노래와 춤으로 된 뮤지컬 형식으로 얘기된다. 
전후 영국의 미들섹스 교외에서 레지날드 드와잇(엘튼의 본명)으로 태어난 엘튼은 어렸을 때부터 피아노와 음악에 천재적 재능을 지녔으나 헛된 꿈에 사로잡힌 어머니 쉴라(브라이스 댈라스 하워드)와 냉정한 아버지의 사랑을 못 받고 자라 커서도 사랑에 갈급하고 자신감을 잃은 사람이 된다. 음악적 재능으로 인해 어린 엘튼은 로열 음악아카데미에서 클래식 뮤직을 공부한다. 
이어 청년이 된 엘튼은 동네 술집에서 밴드를 구성해 활동하다가 한 매니저의 눈에 띠어 영국을 순회공연중인 미국 소울 보컬그룹의 백업가수로 활동하면서 소울뮤직에 젖는다. 엘튼의 가수로서의 생애는 작사자인 버니 터핀(제이미 벨)을 만나면서 꽃 피우기 시작한다. 엘튼과 버니는 오랫동안 함께 활동하면서 많은 히트곡을 내는데 둘의 오랜 우정이 불안정한 엘튼의 삶을 붙들어준다.
엘튼의 미국 첫 공연은 1970년 현재도 샌타모니카 블러바드와 베벌리힐스가 만나는 곳에 있는 클럽 ‘투르바두어’에서 시작된다. 여기서 엘튼은 빅히트곡인 ‘크로코다일 록’을 부르는데 엘튼과 노래에 열광하는 팬들이 공중으로 떠오르면서 환상적으로 처리된다. 이를 보는 사람도 흥분해 하늘로 떠오르는 기분이다. 여기서부터 엘튼은 세계적인 수퍼스타가 된다. 
이어 열린 개인 파티에서 엘튼은 오만방자하고 멋진 음악 매니저 존 리드(리처드 매든)를 만나 그를 자신의 매니저로 고용하는데 지금까지 고뇌하고 의문하던 자신의 성적 정체성 문제도 동성애자인 존과의 관계를 통해 해결된다. 그러나 이기적인 존은 결코 엘튼의 감정적 필요를 충족시켜주지는 못한다. 
엘튼의 자살미수를 비롯해 그가 겪는 개인적 문제들이 산만하게 묘사됐고 LA 다저스구장에서의 공연을 비롯해 여러 공연 장면들이 견본 식으로 그려지는 등 결점도 있는 작품이지만 에저턴의 연기와 노래 및 의상과 촬영 등 볼만한 것도 많은 작품이다. 덱스터 플레처(‘보헤미언 랩소디’ 촬영 종료 얼마 전 해고된 브라이언 싱어 감독의 대타로 영화를 마무리 지었다.) 감독. R등급. Paramount. ★★★★(5개 만점)
                                                                 <한국일보 박흥진 편집위원/ hjpark1230@gmail.com>




‘미 제국의 몰락’(The Fall of the American Empire)


피에르-폴(왼쪽)이 자기 애인 아스파시와 훔친 돈의 처리 문제를 놓고 고민하고 있다.

박사 배달기사와 창녀 “굴러온 돈 어떻게 쓰지”… 자본주의에 대한 냉소와 비판


제목은 미국이지만 영화의 내용은 몬트리올에서 일어나는 얘기로 자본주의의 병폐를 신랄하게 비판하고 있다. 프랑스계 캐나다인 감독인 드니 아르캉(각본 겸)의 위트와 비웃음과 사회주의적 이념이 담긴 멜로드라마요 필름 느와르이자 코미디다. 온순한 영화가 가끔 과도한 폭력을 휘두른다. 
다소 믿기 힘든 동화 같은 얘기로 끝이 할리우드 영화 식이지만 아기자기한 내용과 좋은 연기가 있는 다양한 장르를 뒤섞은 재미있는 작품이다. 돈 없는 서민들이 대리만족을 느낄 수 있는 소원 성취와도 같은 작품으로 현대판 우화라고 하겠다. 
안경을 쓴 샌님 형의 철학박사 학위를 지닌 피에르-폴 다우스(알렉상드르 랑드리)는 배달차 운전사. 그는 말끝마다 철학가 이름을 들먹이면서(첫 장면에서 자기와 헤어지려는 애인 앞에서도 철학을 운운한다) 트럼프를 비롯한 잘난(?) 사람들과 세상만사를 비웃지만 인자해 거지에게 돈을 주고 빈민급식소에서 봉사활동을 한다. 
피에르-폴이 어느 날 배달을 갔다가 갱의 돈을 보관한 건물에서 일어난 강도총격사건을 목격하게 된다. 사건관계자들은 다 죽고 거액의 현찰이 든 두 개의 더플백이 건물 앞에 놓였다. 이를 들어 자기 차에 싣는 피에르-폴. 
이어 등장하는 인물이 고급창녀 아스파시(마리피에르 모랑). 피에르-폴이 이 여자를 자기 아파트로 부른 이유는 섹스 때문이라기보다 여자의 광고문구가 라신느의 말을 인용했기 때문. 둘은 서로 마음이 통해 곧바로 공범이요 애인이 된다. 거액의 현찰을 처리할 방안에 고민하던 둘은 막 교도소에서 나온 투자전문가 실뱅(레미 지라르)을 찾아가 ‘투자’상담을 한다. 한편 두 명의 형사가 피에르-폴을 뒤쫓는데 이들은 그가 돈을 가졌다고 확신하지만 물증이 없어 어쩌질 못한다. 
실뱅은 피에르-폴의 현찰을 국내에서 소화할 수가 없음을 알고 해외로 빼내 돈세탁을 하기로 한다. 그래서 찾아간 사람이 이 부문의 전문가 윌브로 타쉐로(피에르 쿠르지). 윌브로는 아스파시의 전 고객이다. 윌브로가 컴퓨터 두 대를 자기 앞에 놓고 전 세계를 무대로 돈을 세탁하는 장면이 근엄하게 보이나 아주 우습다. 
빈부차이와 돈 많은 탈세자들의 돈 세탁 그리고 갈수록 약화하는 사회 안전망 및 경찰과 정치가들의 무능과 부패를 시큼한 맛이 나게 비판하고 조소한 영화로 재미가 솔솔 난다. 연기들도 좋은데 특히 지라르와 쿠르지 그 중에서도 말쑥하니 정장한 쿠르지의 연기가 일품이다. R. 프랑스어 대사에 영어자막. ★★★★(5개 만점)
                                                             <한국일보 박흥진 편집위원/ hjpark1230@gmail.com>



‘존 윅: 챕터 3-파라벨룸’ (John Wick: Chapter 3-Parabellum)


존 윅이 킬러들을 피해 교통이 혼잡한 맨해탄 거리를 말을 타고 달리고 있다.

킬러와 킬러들 대결… 키아누 리브스 특급 액션


가공할 액션과 살육과 유혈이 장장 130분 동안 난리법석을 떨면서 보는 사람을 초죽음이 되도록 피곤하게 만드는데도 온 몸의 피가 끓어오르는 흥분감을 어찌할 수가 없다. 터무니없는 비디오게임 같은 영화로 액션이 지나치도록 오만방자하고 또 잔인하고 끔찍한 장면이 많아 때론 눈을 감게 되면서도 그 과도한 허풍에 깔깔대고 웃게 되는 액션 코미디라고 하겠다. 
얻어터지고 총에 맞고 칼에 찔리면서도 결코 죽지 않는(못하는) 수퍼맨과도 같은 초특급 킬러 존 윅(키아누 리브스)의 액션 시리즈 제3편으로 ‘파라벨룸’은 ‘평화를 원한다면 전쟁을 준비하라’는 라틴어에서 따온 것이다. 
필자는 시리즈 첫 번째부터 세 번째 까지 매번 존이 처치하는 악인들의 수를 세다가 포기하고 말았는데 얼마 전 뉴욕에서 리브스를 만나 인터뷰 할 때 “당신이 전 3편의 영화에서 처치한 악인들이 모두 몇 명이나 되는지 아느냐”고 물었더니 “모른다”고 대답했다.
영화는 제2편이 끝난 직후부터 시작된다. 전 세계적 킬러집단의 규칙을 어겨 집단에서 퇴출당할 위기에 처한 존이 데드라인인 오후 6시까지 자기를 보호해줄 킬러들의 숙박호텔인 컨티넨탈의 주인 윈스턴(이안 맥쉐인)을 찾아 맨해탄을 뛰어 달리면서 액션이 시작된다. 존의 목에 1,400만 달러의 현상금이 걸려 온갖 킬러들이 그를 뒤쫓는다.
먼저 책들로 가득 찬 도서관의 비좁은 공간에서 존과 거구의 킬러 간에 치열한 격투가 벌어지는데 여기서 두꺼운 장정이 된 책이 살인무기로 쓰인다(책 제목이 무얼까 하고 궁금하다). 이어 존은 골동품상점 안에서 또 다른 킬러들을 맞는데 여기서는 수십 개의 단도들이 피바람을 내면서 연속동작으로 쏜살같이 나른다. 영화 내내 이어지는 액션 안무가 장관으로 아름답기까지 하다. 
오도 가도 못하게 된 존은 자기에게 신세를 진 디렉터라 불리는 여자(앤젤리카 휴스턴)의 도움을 받아 모로코로 피신, 역시 자기에게 신세를 진 소피아(할리 베리)에게 도움을 요청한다. 소피아는 맹견 훈련사로 남자의 중요한 곳을 물어뜯는 두 마리의 독일 셰퍼드를 갖고 있다. 존을 여기까지 쫓아온 킬러들이 개들로부터 어디를 물리겠는가. 여기서 얘기가 좀 산만해진다. 
존은 다시 뉴욕으로 돌아오는데 자기가 없는 사이 ‘하이 테이블’이라 불리는 범죄집단이 ‘심판관’을 파견해 존을 도와준 사람들인 윈스턴과 거지대왕(로렌스 피시번) 등에게 1주일 안에 존에 대한 일처리를 제대로 하지 못하면 현 위치를 지키지 못할 것이라고 통보한다. 물론 이는 죽음을 말한다. 
이어 존과 ‘심판관’이 고용한 포장마차 스시맨과 그의 졸개들간에 스시칼이 동원된 격투가 벌어지는데 볼만한 것은 이들과 존 간의 거울의 방에서의 액션신. 마치 이소룡의 ‘용쟁호투’와 오손 웰스의 ‘상하이에서 온 여인’의 거울의 방에서의 장면을 연상시키는데 아찔하다. 온 육체와 온갖 무기가 동원되면서 존은 비좁은 맨해탄을 말을 타고 달리기까지 한다. 액션팬들이 박수갈채를 치면서 볼 영화로 흥행서도 빅히트할 것이 분명하다. 그러니 제4편이 나오지 말라는 법 없겠다. 채드 스타헬스키 감독. R등급. Lionsgate. ★★★½ (5개 만점) 
                                                                <한국일보 박흥진 편집위원/ hjpark1230@gmail.com>




‘사진’(Photograph)


밀로니가 라피(왼쪽)가 찍은 자기 사진을 보면서 라피의 사정을 듣고 있다.


가짜 약혼자 행세하다 싹트는 애잔 로맨스


외로운 홀아비와 행복하지 못한 결혼생활을 하는 부인과의 서신교환을 다룬 데뷔작 ‘도시락’(2013)과 이 영화로 할리웃의 부름을 받고 만든 로버트 레드포드와 제인 폰다가 나온 황혼기의 로맨스 얘기 ‘밤의 우리의 영혼’(2017)을 연출한 인도 감독 리테쉬 바트라의 영화로 부드럽고 애잔하고 아름다운 러브 스토리다. 
바트라는 결코 서두르지 않고 차분하게 서서히 인물들의 성격과 배경 그리고 이들 주위 사람들의 얘기와 인도의 사회적 문화적 문제들을 서술하는데 연출 스타일이 티가 나지 않고 작품에 대한 배려가 매우 인간적이어서 고요한 감동을 느끼게 된다. 정이 가는 솜씨로 간간 유머를 양념식으로 섞어 넣어 가라앉은 분위기에 자극을 준다.
이 영화도 ‘도시락’처럼 알게 모르게 은근하게 지속되는 두 남녀의 로맨스를 다뤘는데 두 사람이 배경과 계급이 다른 걸맞지 않는 짝이어서 둘의 로맨스가 결실을 맺을 것인가 아닌가하고 시종일관 궁금하게 만든다. 끝에 가서도 시원한 대답은 없는데 그 게 더 매력적이다.
뭄바이의 판자집에서 여러 명의 거리 행상들과 함께 사는 라피(나와주딘 시디키)는 거리 사진사. 어느 날 침울한 표정의 밀로니(사니아 말호트라)의 스냅사진을 찍으면서 모든 것이 서로 다른 두 사람의 관계가 이어지게 된다. 
라피는 시골 고향에 사는 할머니(화룩 자파르)에게 번 돈을 꼬박꼬박 보내는데 그가 할머니를 그토록 생각하는 이유는 후에 밝혀진다. 할머니가 라피가 장가를 안 가 먹던 약을 중단했다는 편지를 받은 라피는 궁여지책으로 밀로니의 사진을 자기 약혼자인 누리라고 속여 할머니에게 보낸다. 이에 할머니가 누리를 보려고 뭄바이에 오겠다고 하면서 라피는 수소문해 밀로니를 찾아내 자기 사정을 털어놓고 누리 노릇을 해달라고 부탁한다. 그런데 라피는 이미 고적한 표정을 한 밀로니의 사진을 보고 마음이 이끌린 상태. 
밀로니는 중산층의 온순한 성격의 여자로 회계사 공부를 하고 있는데 부모가 결혼하라고 종용하면서 마련한 상대방 남자와의 만남에도 순순히 참석한다. 
그런데 밀로니의 성격 묘사가 좀 애매모호하다. 라피의 할머니가 올라오고 라피와 밀로니는 가짜 약혼자로서 할머니를 만난다. 그러다가 이 만남은 서서히 라피와 밀로니 둘만의 만남으로 변화한다. 둘이 영화를 구경하고 데이트를 하면서도 둘은 결코 사랑의 말이나 행동은 취하지 않는다. 장래가 암담한 라피로서는 자기와 계급과 생활 여건이 판이한 밀로니에게 자기 마음을 표시한다는 것이야말로 언감생심이다. 
하나 변화를 보이는 것은 얌전한 밀로니가 라피를 만나면서 보다 적극적이 된다는 점이다. 조용하면서도 할 말은 다 하는 웅변적인 영화로 연기들이 다 좋은데 특히 자파르의 흙냄새 나는 강인한 연기가 일품. 촬영도 좋다. Amazon Studios. ★★★½
                                                                <한국일보 박흥진 편집위원/ hjpark1230@gmail.com>